“거짓말일것 같아서, 무서워... 호기심에 찔러보는 것 같고.. 심심해서 장난하는 것 같아서..그래서..”
“그래서.. 또, 상처받게 될까봐 그래?”
“.........”
미우는 대답없이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그 모습을 보던 하다는 드디어 상처가 곪아 터졌다고 생각했다.
늘 그런일들이 있어도 아무렇지 않은 척 쿨한 척.. 그 상처를 꽁꽁 싸매서 감추더니. 결국은 곪아 터졌다고 생각했다.
“니가 보기에.. 태봉씨가 그럴 사람으로 보여? 태봉씨가 감정가지고 장난칠 사람같아?”
“아니...”
“그런데.. 그러면.. 아무문제 없잖아..”
“그래도,, 사람마음은 변하는 거야... 그래서.. 지금은 진심일지 모를 그 사람 마음이.. 언젠간 변할까봐.. 그게 싫어..”
“변하면.. 변하기 전까지. 서로 후회 없을만큼 사랑하면 되잖아.. 이 겁쟁이야.. 이미 일어나지 않은 일을 지레 짐작하고 도망부터 가려고 하니?”
“겁쟁이라고 해도 상관없고.. 바보라고 해도 상관없어.. 차라리.. 그래.. 차라리.. 이정도가 나을것 같아..
내가 좋아한 사람도 나 좋아했다고.. 그 정도면 충분할 것 같아.... 힘들다.. 나 잘래...“
아직 몸도 다 완쾌 되지 않은 상태에서 너무 울어서인지 미우는 어지럼증을 참지 못하고, 이불을 뒤집어 쓰고 누웠다. 하다는 그런 미우를 물끄러미 내려다 보다가. 결심한듯 일어났다.
하다는 미우의 방문을 조용히 닫고는 자신의 방으로 돌아와.. 핸드폰을 꺼내 태봉에게 문자메세지를 보냈다.
[저녁 8시에. 요앞 카페에서 잠깐 만나요.. 할 얘기 있어요]
하다의 문자를 받은 태봉은 일찌감치 카페에 나와 있었다. 하다가 따로 자신을 보자고 한다면. 미우문제일거라고 추측했다. 그렇지 않아도. 병원에서 갑자기 차가워진 미우 때문에 몇 시간동안. 이상한기분이 자꾸만 들었다.
약속한 8시가 되자, 카페의 문에 달린 종이 딸랑거리며, 하다가 카페안으로 들어섰다.
카페안을 둘러보던 하다는 곧, 태봉을 발견하고는 다가와 태봉의 앞자리에 앉았다.
“일찍 나왔나 봐요? 오래 기다렸어요?”
“아뇨.. 금방 왔어요.. 그런데.. 무슨일...”
하다는 말을 꺼내기 전.. 태봉의 표정을 살폈다. 아마. 미우 때문에 만나자고 한걸 알고 있는지. 무슴 말이든 빨리 해주길 바라는 표정이였다.
“태봉씨.. 혹시.. 미우랑 무슨일 있었어요?”
“아뇨.. 별일 없었어요.. 그냥.. 병원 데려다 주고..그게 다에요..”
“정말.. 그게 다에요?”
태봉이 원하는 대로 시원스럽게 말문을 터주지 않는 하다를 오래 기다리지 못한 태봉은. 대답대신. 지금 자신의 심경을 토로했다.
“하다씨,,, 이런말.. 어떻게 들릴지 모르지만..제가 좀 많이 답답하거든요? ”
정말 답답하다고 말하고 있는 태봉을 보던 하다는 결심한 듯, 빙그레 미소지으면서, 태봉에게 말했다.
“정말... 모르겠어요?”
“네....”
태봉은 정말 모르는 얼굴로, 하다를 뚫어지게 쳐다봤다.
“후~ 제가 말해주고 나면, 완전 일급비밀인데... 수습은 알아서 하셔야 해요.. 전 제 삼자라. 껴들지 않으려고 했는데..어쩔 수가 없네요.”
“무슨.....”
“태봉씨가 미우한테 크게 잘못하긴 했어요.....”
“네.?...”
태봉은 하다의 얼굴을 뚫어지게 쳐다보며, 다음 말을 기다렸다.
“태봉씨가... 미우마음에 들어갔기 때문이에요..”
“네?....”
뜻밖의 말에, 태봉은 그대로 정지되서, 하다의 말을 이해하기 위해서 잠깐의 이해시간이 필요했다.
지금껏. 자신의 마음을 느낀 미우가 윤호 때문에 그 마음이 부담스러워 피한거라고 생각하고 있던 태봉으로선 놀라수 밖에 없었다.
“그게..무슨말...”
“말 그대로에요... 미우가.. 태봉씨 좋아한다구요... 이해되요?”
태봉은 뜻밖의 사실에 할말이 없었다..
태봉의 머릿속은 하나의 의문이 풀리자마자, 다시 다른 의문이 꼬리를 물고 일어났다.
누군가를 좋아한다면, 오히려, 그 사람과 더 같이하고 더 많은 말을 하기 위하는게, 일반적인 것 아닌가? 그런데, 미우는 피하는데다.. 얼음같이 차갑기만 했다. 미우처럼. 옆에 누가 들러붙어 있는것도 아닌데. 미우가 다시한번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런데... 왜? 미우씨가 날 피하는 건데요?”
태봉의 물음에 하다는 잠시 심각한 듯한 표정으로 바뀌었다.
어디까지 예기해줄까? 재벌3세인것 까지? 아니면, 결혼식장에서 소박맞은것까지?
한때, 연예계 가십란을 가득채운, 영화배우 강유미의 로맨스의 그 악녀인 것까지?
하다는 잠시 고민하다가 그만두기로 하고, 간단하게만 말해주었다.
“상처받을까봐, 그래요... 미우.. 이제까지. 자기가 좋아했던 사람들한테 상처만 입었거든요.. 그래서, 다시는 사랑 같은거 생각도 안한다고 했거든요.. 아마... 지금 지 감정이 자기도 감당이 안될거에요. 그래서, 피하는걸 거에요...그리고.. 또 하나... 아까 병원에서 태봉씨 잠든 미우한테 뭐라고 했죠?”
“....................”
“미우 그때 잠든거 아니였거든요.. 다 들었대요,.. 그래서.. 태봉씨 말이 나중에라도 거짓말이 될까봐. 그래서 다시 상처 입을까봐.. 그래서 아마. 열심히 도망치는 중이에요..”
태봉의 머리는 더 복잡해졌다.
좋아하지만, 상처받을까봐.. 피한다니... 아니, 다시, 원점으로,, 어떻게 미우가 자신을 좋아하는거지?
그럼 윤호의 존재는.... 심각하게 머릿속을 정리했다. 여러 가지 의문점을 제쳐두고, 지금은. 미우역시 자신을 좋아한다는 사실에 한동안. 가슴을 아리게 만드는 통증이 가시는 느낌이였다.
하다는, 여기서 더 이상의 말은 아껴야 한다고 판단했다. 이제는 둘이서 알아서 해야 하는 거라고..
“이제 말해줬으니까, 그 다음은 태봉씨가 알아서 하세요,, 아마 내가 태봉씨한테 이말 해준거 알면, 나 미우한테 초상치를 것 같거든요? 그럼. 도와주고 싶어도 못도와 줄것같아요.”
하다는 말을 마치고, 돌아서서 집을향해 걸어갔다.
그리고, 하다는 느낄수 있었다. 어쩌면, 이번만큼은 미우가 자기 마음을 좀 믿어도 되지 않을까.... 하면서... 태봉의 표정에 태봉의 마음이 그대로 비쳐지는게 너무나 선명이 보였으니까...
태봉은 기쁜 마음에 들떠 새벽같이 일어나 미우를 기다렸다.
분명. 오늘도 자신을 피하느라. 일찍 나갈테니까.. 태봉의 예상은 크게 빗나가지 않고. 그들이 출근하는 시간보다 한시간이나 빨리. 미우가 현관문을 열고 집을 나섰다.
그리고 한걸음도 채 걷지 못하고 머칫 멈춰섰다. 뭐가 그렇게 기쁜지 환하게 웃고있는 태봉이 자신을 보며 서있었다. 머리로는 차가워져야한다고 명령을 하고 있었지만. 미우의 심장은. 태봉을 봄과 동시에 스위치라도 킨것 처럼. 열심히 뛰었다.
마음 이란걸 알고나니 대담해진건지. 태봉은 성큼성큼 다가와 미우의 이마에 손을 올려보곤 말했다.
“괜찮아? 걱정했는데.. 열은 다 내린것 같은데?”
“.....”
“그런데.. 왜? 이렇게 일찍 나가? 기다렸다. 같이가자.”
미우는 태봉의 서글서글한 웃음에 심장이 뛰면서도, 열심히 무시하며 자신의 이성에서 내려진 지령을 따르고 있었다. 차가운 표정 차가운 말투로..
“일찍 가든말든.. 태봉씨가 상관할바 아니잖아요.. 그리고, 태봉씨하고 저.. 그다지 친하고 싶지 않으니까. 친한척 그만 하세요!”
미우는 태봉을 비켜 가려 했지만. 태봉은 재빠르게 미우를 막아섰다.
“알아... 나도.. 니가 내 마음을 알아버린것 처럼.. 나도 니 마음.. 이제 알아.. 그러니까.. 그만해. 니가 걱정하는 일.. 없을거야. 그러니까 안심해도 돼...”
태봉의 직접적인 말에 미우는 순식간에 얼어붙었다.
뭘 안단 말인가? 마음? 그건 착각일 뿐일거다.. 걱정하는일? 그 어떤 누구도 장담할 수 없는 일이다.
미우는 매섭게 태봉을 노려보며 말했다.
“아는척 하지마! 당신이 뭘 알아? 아는척도, 친한척도.. 장담도 하지마.. 세상에 사람 감정만큼 변하기 쉽고 장담할수 없는건 없을테니까...그리고, 비켜.. 아직 날 잘 모르나 본데? 나 화나면.. 감당할수 없을거야.. 그러니까.. 비켜!”
태봉이 너무 쉽게 생각했었다.
어떤 상처를 어떻게 받았는지 몰라도. 미우의 상처라는게. 아주 깊다고만 느낄뿐이였다.
미우는 힘껏 태봉을 제치고, 재빨리 발걸음을 옮겼고. 태봉도 이내 미우를 뒤따르기 시작했다.
아무말없이 미우가 하는양을 그대로 보면서. 옆에 찰싹 달라붙어있었다.
윤호는 미우가 일찍 출근한다는 사실을 알고는 일찍 출근해서 미우를 기다렸다.
그 까칠 공주께서 꽤나 자신의 속을 썩인다 싶었다.
그리고, 이제껏 윤호가 마음먹고 이루지 못한 일이 거의 없었고, 이렇게 애 먹인일도 거의 없어서.. 이젠 슬슬 지겨워질려고 하고 있었다.
예상대로, 미우는 일찍이 출근했다. 그런데... 윤호는 미우의 옆에 붙어서 있는 태봉의 존재를 의아하게 쳐다보았다. 그리고 미우의 굳은 듯한 차가운 표정.. 둘의 분위기가 이상했지만. 윤호는 미우에게 성큼성큼 다가가. 아침부터 준비해온, 선식을 내밀었다.
“미우씨. 오늘도 일찍 왔네요? 자요.. 입맛에 맞을지는 모르지만. 드세요”
미우는 걸음을 멈추고, 윤호가 내민 선식컵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리고, 윤호를 한번 보고는 생끗 웃으면 그 컵을 받아들었다.
“권상무님.. 시간 괜찮으시면, 잠깐 상무님 방에서 얘기좀 할까요?”
“그러시죠,.”
윤호는 짧은 대답을 하고, 먼저 자신의 방으로 향했다.
미우는 핸드백을 자신의 자리에 놓아두고, 바로 윤호를 따라들어갔다
그리고는..
윤호가 준 선식을 바로 옆에 있는 화분에 부어버렸다.
싸가지 없는 미우의 행동에 윤호는 처음으로 화가났다.
미우는 이쪽이든 저쪽이든 더 이상 다가오는 걸 내버려둬선 안된다고 생각했다.
윤호는 표정이 굳은채 미우를 보며 말했다.
“미우씨! 아무리 그래도 사람 성의가 있는데. 너무한거 아닙니까?”
윤호의 말에. 미우는 한쪽 눈썹을 까딱 올리며, 말했다.
“참.. 싸가지 없다고 생각하시죠?”
“.....네..”
“지금 화 나시죠?”
“그렇네요.”
“그러니까. 그만하세요.. 저도 참을 만큼 참고, 말씀 드리는 거니까. 여기서 더 제 인내심 건드리지 마세요.. 알겠어요?”
“미우씨. 정말 너무하는거 아닙니까?‘
“상무님! 저 안다고 하셨죠? 그럼 똑똑히 들으세요! 마지막 경고니까요. 여기서 더! 제 경고 무시하고 할머니 믿고 다가서거나 하면, 곤란할 수도 있을테니까.. 또, 한가지! 내 가족사가 새나가는 일도 조심하세요.. ”
미우는 윤호가 뭐라고 말할 틈도 없이 말을 마치자 마자 윤호의 방문을 거칠게 열고 나갔다.
윤호는 그런 미우의 모습을 황당하게 보다가 생각했다.
익히 들어왔지만... 미우의 온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카리스마가 대단했던 것이다.
냉정하고 차가운 윤호가 당황해서 단 한마디도 할수 없을 정도로..
“무서운데? 앞으로.. 계획을 좀 바꿔야 겠군..”
윤호는 골똘히 생각에 바지며. 책상앞에 앉았다.
태봉은 하루종일 미우의 곁에서 미우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애썼지만.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얼음조각은 윤호가 아니라, 미우였다. 사무실 사람들은 평소와 사뭇다른 미우의 분위기에 다들 고개를 갸웃거렸다. 처음보는 차가운 분위기에. 여기저기서 수군거렸지만. 미우는 그 수군거림을 싹! 무시하고는 할일만하고, 퇴근시간이 되자, 재빨리 사무실을 나섰다.
태봉은 끈질기게 미우를 따라다녔지만. 미우의 태도는 일관성 있게도 아주 차갑고 도도했다.
어쩌면, 엉뚱하고 엽기발랄하던 모습보다. 저 모습이 미우의 진짜 모습인것 처럼...
하지만, 아무도 미우의 진심을 알지 못했다. 미우는 거의 죽을힘을 다 끌어올려 참고 있었다.
태봉이 손을 뻗으면. 그 손을 잡아버릴 것같아. 애써 표정도, 태도도, 말투도.. 차갑게 포장하고 있었다.
윤호에게 내뱉었던 말도..그 노력에 평소보다 더 악날하게 나온것 같았다.
하지만. 견뎌야했다. 어떻게든. 빨리 마음을 정리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태봉에게만은.. 절대로 태봉에게만은 상처같은거 받고싶지가 않았다.
몇일동안. 미우를 끈질기게 설득하던 태봉과 애써 그를 무시하고 있는 미우.. 그리고, 그들을 지켜보고 있는 하다까지.. 점점 지쳐가는것 같았다.
태봉은 마지막으로 딱 마지막으로 미우에게 대쉬하겠다고 생각하며, 붉은 장미 한다발을 사 들고, 집앞에서 기다렸다. 태봉보다 먼저나간 미우가 어디를 들렸다 오는 것인지 몰라도, 꽤 늦은 시간까지 미우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열시가 다 될무렵.. 엘리베이터 소리가 들렸고, 그리고, 또각거리는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분명 미우일것이다.
미우는 집앞으로 걸음을 옮기다가. 뒷짐을 지고 웃으며 서있는 태봉을 보고는 멈춰섰다.
‘그만해.. 힘들어... 질리지도 않아?’
미우는 마음속으로 한탄하며, 다시 표정을 가다듬고, 걸음을 옮겼다.
하지만, 복도 한가운데 서있는 태봉 때문에 집앞까지 가지 못했다.
미우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비켜주실래요?”
“미우씨.. 늦었네?”
태봉은 미우의 말은 들은척도 하지않고 말했다.
“추운데. 또, 감기 걸리면 어떡할려구 그래?”
“........비켜요..”
“미우씨... 다시한번 말할게... 나.. 미우씨..”
“비켜!”
태봉의 뒷말을 미우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 말이 나오기 전에 소리를 질러버렸다.
그 말을 들으면.. 이제까지 버텨오던 자신의 마음이 한번에 허물어 질것만 갔았다.
그럴순.. 없었다. 태봉은 방금 소리친 미우에게 말했다.
“왜? 그렇게 겁내? 도망가지마! 니가 걱정하는일.. 없을거라고 했잖아.. 나.. 내 마음 믿어주면 안되니?”
“안 지겨워요? 내가 말했죠! 아무것도 장담할 수 없다고.. 그러니까,, 정말 그만해요!”
태봉은 미우의 말에 인내심의 한계를 느낀것 같았다.
“당신 똑똑한 여잔 줄 알았는데. 정말 어리석은 여자야! 어떻게 가보지도 앟은 길에 지레 겁부터 먹고 피할려고만 해? 내가 아니라잖아! 절대로 걱정하는 일 없다고 했잖아!”
“간장이 짠지 그렇지 않은지, 매번 먹어보지 않아도 알죠? 여름이 더운 줄, 꼭, 느껴보지 않아도 알죠? 이미 경험해 봤으니까.. 뻔한거... 괜히 시간들이고 정신적 체력까지 소모시켜가며, 하고싶지 않다구요.. 어차피, 내 정신건강에 좋지 않았으니까..나같은 여자! 당신도 금새 흥미 잃을거니까!”
“그렇게 말하면 좀 나아? 그렇게 자신은 상처받는데 익숙하다고 자기가 보잘 것 없다고 그렇게 말하면.. 니 상처가 낫니?“
“뭐, 나같은 여자는 태봉씨 좋아하지 않으면, 자존심에 금이가요? 호기심에. 찔러보지 말란말이에요, 나, 당신이 생각하는만큼 그렇게 쉽고 만만한 사람 아니니까..내가 하나는 분명히 말하죠.. 당신이 지금 나한테 이러고 있는거.. 오기고, 당신 자존심이잖아?”
“.... 너 아주 삐뚤어졌구나... 그래, 미안해, 나도 잠깐 착각했어. 이렇게 삐뚤어진 여잔 줄도 모르고... 괜한 시간 버린것 같아서..아주, 후회가 된다... 평생 그렇게 살아. 마음 감추고, 늘 상처받은 척 그렇게 살아...”
<< 내 인생의 로맨스 >> - 38
#10장. < 도망 가지마.. > - 4
시간이 있었음에도 빨리 선자리를 차고 나온것과 연락도 하지 않고 내려갔다고 잔소리해대는 유미의 전화를 끊고는 다시. 응급실의 미우에게로 돌아왔다.
미우는 어느새 일어나 앉아있었다..
그런데.. 어쩐지 분위기가 이상했다. 얼굴도... 특히.. 눈주위가 촉촉해진채 부어있었고. 미우는 이제껏 처음보는 냉랭한 분위기로 앉아있었다.
“괜찮아? 그렇게 아픈데, 어떻게 참았어?”
태봉의 말에 미우는 아무 대답없이 차갑게 태봉을 바라보았다.
처음보는 표정이다.. 처음보는 분위기였다.
태봉이 미우의 표정과 분위기에 당황해서 다른 말을 하지 못하고 있자. 미우가 겨우 입을 열었다.
“번번히. 미안합니다. 그리고, 고마워요... 하다에게 연락할 테니까.. 이만 가보셔도 괜찮아요..”
“왜..그래? 무슨 문제 있어?”
“아뇨.. 그냥.. 태봉씨가 너무 불편하네요.. 도움 받는 것도 한두번이지... 매번.. 너무 미안하고 불편해서요,.”
미우의 딱 부러지는 대답에 태봉은 다른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그만큼.. 미우의 표정은 마치 얼음장 같았다. 최근 얼음조각이라 생각했던 윤호보다 더 차가워 보였다.
“그럼.. 하다씨 올 때 까지만. 있을게요..”
“그럴 필요 없어요.. 차태봉씨가 제 보호자도 아니잖아요?”
“................ 그렇죠... 미안해요.. 부담스럽게 해서.. 그럼..실례할게요.. 몸조리 잘하세요..”
태봉은 싸아하게 아파오는 가슴으로 병원을 나섰다.
생각보다. 태봉의 감정을 알고 많이 부담스러워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온 몸으로 거절당한것 같은 아픈 느낌으로 태봉은 집으로 향했다..
다시한번.. 사랑이란 것이 너무 힘들다고 생각하면서...
미우의 전화를 받은 하다는 급하게 병원으로 들어섰다. 하다가 들어설 때 쯤은 미우가 맞고있던 링거가 거의 다 들어갔을 때라 하다는 오래 기다리지 않고. 미우를 데리고 집으로 향했다.
솔직히 말도없이 사라진것이 서운해서 얼굴을 보자마자 따질 생각이였지만.. 병원이라는 전화에 놀라고, 그러고, 달려와 보니, 무겁게 가라앉은 미우의 분위기에 놀라. 긴 말은 꺼내지 않았다.
그리고, 집에 돌아와서는 그 분위기를 유지하며, 방에 틀어박혀있었다.
하다는 뭔가.. 미우에게 무슨일이 생긴것 같았다.
저녁쯤이 되자 초인종이 울렸다. 하다는 얼른 뛰어나가 현관문을 열어보니. 태봉이 서있었다.
“어? 태봉씨! 무슨일이에요?”
“미우씨는.. 좀 괜찮아요?”
“네..어? 미우 아픈줄 어떻게 알았어요?”
“아.. 그냥.. 저기 이거..”
태봉은 하다에게 쇼핑백을 하나 내밀었다.
“이게 뭐죠?”
“전복죽이에요.. 미우씨좀 챙겨줘요..”
말을마친 태봉은 곧바로 돌아서 자신의 집으로 돌아갔다.
그런 태봉의 모습이 하다의 눈에 왠지 쓸쓸해 보였다.
하다는 태봉에게서 받아든 죽을 먹기 좋게 차리고는 미우를 깨우러 들어갔다.
“미우야.. 저녁먹자.. 먹고 약먹고 누워야지..”
미우는 하다의 말에 별 반박없이 슬머시 일어나. 하다를 따라 주방으로 나갔다.
식탁위엔 따뜻한 전복죽이 먹기좋게 담겨져 있었다.
“언제 끓였냐? 고맙다.. 잘 먹을게..”
“인사는 태봉씨한테 해.. 어 아픈줄 어떻게 알았는지. 좀 전에 이거 사들고 왔더라..”
미우는 한숟갈 떠 입에 넣으려다가. 하다의 말에 멈칫거리며, 그대로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미우의 표정은 떨리기 시작했다.
하다는 갑자기 수저를 놓은채. 뭔가를 꾹꾹 눌러 참는듯한 미우를 보고 의아했다.
병원에서부터 이상했지만..
“왜? 그래? 너..”
그리고, 다음순간 하다는 아무말도 할 수가 없었다. 미우가 굵은 눈물을 뚝뚝 흘리기 시작한 것이였다.
아무래도 무슨 일이 있었던 것 같다.. 미우에게도.. 태봉에게도...
한참만에야 울음을 멈춘 미우는 이미 식어버린 전복죽을 떠먹기 시작했다.
무미건조하게.. 그저 입에 넣어서 삼키기만.. 하지만, 반도 먹지 못하고, 미우는 수저를 놓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자신의 방으로 돌아갔다.
하다는 곧바로 미우를 따라 들어가. 이제껏 참았던 궁금증을 물어대기 시작했다.
“너.. 무슨 일이야? 무슨일 있었지.. 그치.. 말해봐.. 무슨 일인데?”
하다의 다그침에. 미우는 얘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하다가 눈치 빠르게 찔렀고 극구 부인했던 감정부터.. 오늘 병원에서 태봉이 중얼거린 말까지..
얘기를 다 들은 하다는 미우를 한심한 듯 쳐다보며. 어깨를 툭치고는 말했다.
“이 바보야.. 널 좋아한다는 거잖아.. 너도.. 태봉씨 좋아하고.. 태봉씨도 그러면.. 뭐가 문젠데? 뭐가 문제라서.. 이렇게 울고 난리야?”
“무서워...”
“뭐?”
“거짓말일것 같아서, 무서워... 호기심에 찔러보는 것 같고.. 심심해서 장난하는 것 같아서..그래서..”
“그래서.. 또, 상처받게 될까봐 그래?”
“.........”
미우는 대답없이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그 모습을 보던 하다는 드디어 상처가 곪아 터졌다고 생각했다.
늘 그런일들이 있어도 아무렇지 않은 척 쿨한 척.. 그 상처를 꽁꽁 싸매서 감추더니. 결국은 곪아 터졌다고 생각했다.
“니가 보기에.. 태봉씨가 그럴 사람으로 보여? 태봉씨가 감정가지고 장난칠 사람같아?”
“아니...”
“그런데.. 그러면.. 아무문제 없잖아..”
“그래도,, 사람마음은 변하는 거야... 그래서.. 지금은 진심일지 모를 그 사람 마음이.. 언젠간 변할까봐.. 그게 싫어..”
“변하면.. 변하기 전까지. 서로 후회 없을만큼 사랑하면 되잖아.. 이 겁쟁이야.. 이미 일어나지 않은 일을 지레 짐작하고 도망부터 가려고 하니?”
“겁쟁이라고 해도 상관없고.. 바보라고 해도 상관없어.. 차라리.. 그래.. 차라리.. 이정도가 나을것 같아..
내가 좋아한 사람도 나 좋아했다고.. 그 정도면 충분할 것 같아.... 힘들다.. 나 잘래...“
아직 몸도 다 완쾌 되지 않은 상태에서 너무 울어서인지 미우는 어지럼증을 참지 못하고, 이불을 뒤집어 쓰고 누웠다. 하다는 그런 미우를 물끄러미 내려다 보다가. 결심한듯 일어났다.
하다는 미우의 방문을 조용히 닫고는 자신의 방으로 돌아와.. 핸드폰을 꺼내 태봉에게 문자메세지를 보냈다.
[저녁 8시에. 요앞 카페에서 잠깐 만나요.. 할 얘기 있어요]
하다의 문자를 받은 태봉은 일찌감치 카페에 나와 있었다. 하다가 따로 자신을 보자고 한다면. 미우문제일거라고 추측했다. 그렇지 않아도. 병원에서 갑자기 차가워진 미우 때문에 몇 시간동안. 이상한기분이 자꾸만 들었다.
약속한 8시가 되자, 카페의 문에 달린 종이 딸랑거리며, 하다가 카페안으로 들어섰다.
카페안을 둘러보던 하다는 곧, 태봉을 발견하고는 다가와 태봉의 앞자리에 앉았다.
“일찍 나왔나 봐요? 오래 기다렸어요?”
“아뇨.. 금방 왔어요.. 그런데.. 무슨일...”
하다는 말을 꺼내기 전.. 태봉의 표정을 살폈다. 아마. 미우 때문에 만나자고 한걸 알고 있는지. 무슴 말이든 빨리 해주길 바라는 표정이였다.
“태봉씨.. 혹시.. 미우랑 무슨일 있었어요?”
“아뇨.. 별일 없었어요.. 그냥.. 병원 데려다 주고..그게 다에요..”
“정말.. 그게 다에요?”
태봉이 원하는 대로 시원스럽게 말문을 터주지 않는 하다를 오래 기다리지 못한 태봉은. 대답대신. 지금 자신의 심경을 토로했다.
“하다씨,,, 이런말.. 어떻게 들릴지 모르지만..제가 좀 많이 답답하거든요? ”
정말 답답하다고 말하고 있는 태봉을 보던 하다는 결심한 듯, 빙그레 미소지으면서, 태봉에게 말했다.
“정말... 모르겠어요?”
“네....”
태봉은 정말 모르는 얼굴로, 하다를 뚫어지게 쳐다봤다.
“후~ 제가 말해주고 나면, 완전 일급비밀인데... 수습은 알아서 하셔야 해요.. 전 제 삼자라. 껴들지 않으려고 했는데..어쩔 수가 없네요.”
“무슨.....”
“태봉씨가 미우한테 크게 잘못하긴 했어요.....”
“네.?...”
태봉은 하다의 얼굴을 뚫어지게 쳐다보며, 다음 말을 기다렸다.
“태봉씨가... 미우마음에 들어갔기 때문이에요..”
“네?....”
뜻밖의 말에, 태봉은 그대로 정지되서, 하다의 말을 이해하기 위해서 잠깐의 이해시간이 필요했다.
지금껏. 자신의 마음을 느낀 미우가 윤호 때문에 그 마음이 부담스러워 피한거라고 생각하고 있던 태봉으로선 놀라수 밖에 없었다.
“그게..무슨말...”
“말 그대로에요... 미우가.. 태봉씨 좋아한다구요... 이해되요?”
태봉은 뜻밖의 사실에 할말이 없었다..
태봉의 머릿속은 하나의 의문이 풀리자마자, 다시 다른 의문이 꼬리를 물고 일어났다.
누군가를 좋아한다면, 오히려, 그 사람과 더 같이하고 더 많은 말을 하기 위하는게, 일반적인 것 아닌가? 그런데, 미우는 피하는데다.. 얼음같이 차갑기만 했다. 미우처럼. 옆에 누가 들러붙어 있는것도 아닌데. 미우가 다시한번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런데... 왜? 미우씨가 날 피하는 건데요?”
태봉의 물음에 하다는 잠시 심각한 듯한 표정으로 바뀌었다.
어디까지 예기해줄까? 재벌3세인것 까지? 아니면, 결혼식장에서 소박맞은것까지?
한때, 연예계 가십란을 가득채운, 영화배우 강유미의 로맨스의 그 악녀인 것까지?
하다는 잠시 고민하다가 그만두기로 하고, 간단하게만 말해주었다.
“상처받을까봐, 그래요... 미우.. 이제까지. 자기가 좋아했던 사람들한테 상처만 입었거든요.. 그래서, 다시는 사랑 같은거 생각도 안한다고 했거든요.. 아마... 지금 지 감정이 자기도 감당이 안될거에요. 그래서, 피하는걸 거에요...그리고.. 또 하나... 아까 병원에서 태봉씨 잠든 미우한테 뭐라고 했죠?”
“....................”
“미우 그때 잠든거 아니였거든요.. 다 들었대요,.. 그래서.. 태봉씨 말이 나중에라도 거짓말이 될까봐. 그래서 다시 상처 입을까봐.. 그래서 아마. 열심히 도망치는 중이에요..”
태봉의 머리는 더 복잡해졌다.
좋아하지만, 상처받을까봐.. 피한다니... 아니, 다시, 원점으로,, 어떻게 미우가 자신을 좋아하는거지?
그럼 윤호의 존재는.... 심각하게 머릿속을 정리했다. 여러 가지 의문점을 제쳐두고, 지금은. 미우역시 자신을 좋아한다는 사실에 한동안. 가슴을 아리게 만드는 통증이 가시는 느낌이였다.
하다는, 여기서 더 이상의 말은 아껴야 한다고 판단했다. 이제는 둘이서 알아서 해야 하는 거라고..
“이제 말해줬으니까, 그 다음은 태봉씨가 알아서 하세요,, 아마 내가 태봉씨한테 이말 해준거 알면, 나 미우한테 초상치를 것 같거든요? 그럼. 도와주고 싶어도 못도와 줄것같아요.”
하다는 말을 마치고, 돌아서서 집을향해 걸어갔다.
그리고, 하다는 느낄수 있었다. 어쩌면, 이번만큼은 미우가 자기 마음을 좀 믿어도 되지 않을까.... 하면서... 태봉의 표정에 태봉의 마음이 그대로 비쳐지는게 너무나 선명이 보였으니까...
태봉은 기쁜 마음에 들떠 새벽같이 일어나 미우를 기다렸다.
분명. 오늘도 자신을 피하느라. 일찍 나갈테니까.. 태봉의 예상은 크게 빗나가지 않고. 그들이 출근하는 시간보다 한시간이나 빨리. 미우가 현관문을 열고 집을 나섰다.
그리고 한걸음도 채 걷지 못하고 머칫 멈춰섰다. 뭐가 그렇게 기쁜지 환하게 웃고있는 태봉이 자신을 보며 서있었다. 머리로는 차가워져야한다고 명령을 하고 있었지만. 미우의 심장은. 태봉을 봄과 동시에 스위치라도 킨것 처럼. 열심히 뛰었다.
마음 이란걸 알고나니 대담해진건지. 태봉은 성큼성큼 다가와 미우의 이마에 손을 올려보곤 말했다.
“괜찮아? 걱정했는데.. 열은 다 내린것 같은데?”
“.....”
“그런데.. 왜? 이렇게 일찍 나가? 기다렸다. 같이가자.”
미우는 태봉의 서글서글한 웃음에 심장이 뛰면서도, 열심히 무시하며 자신의 이성에서 내려진 지령을 따르고 있었다. 차가운 표정 차가운 말투로..
“일찍 가든말든.. 태봉씨가 상관할바 아니잖아요.. 그리고, 태봉씨하고 저.. 그다지 친하고 싶지 않으니까. 친한척 그만 하세요!”
미우는 태봉을 비켜 가려 했지만. 태봉은 재빠르게 미우를 막아섰다.
“알아... 나도.. 니가 내 마음을 알아버린것 처럼.. 나도 니 마음.. 이제 알아.. 그러니까.. 그만해. 니가 걱정하는 일.. 없을거야. 그러니까 안심해도 돼...”
태봉의 직접적인 말에 미우는 순식간에 얼어붙었다.
뭘 안단 말인가? 마음? 그건 착각일 뿐일거다.. 걱정하는일? 그 어떤 누구도 장담할 수 없는 일이다.
미우는 매섭게 태봉을 노려보며 말했다.
“아는척 하지마! 당신이 뭘 알아? 아는척도, 친한척도.. 장담도 하지마.. 세상에 사람 감정만큼 변하기 쉽고 장담할수 없는건 없을테니까...그리고, 비켜.. 아직 날 잘 모르나 본데? 나 화나면.. 감당할수 없을거야.. 그러니까.. 비켜!”
태봉이 너무 쉽게 생각했었다.
어떤 상처를 어떻게 받았는지 몰라도. 미우의 상처라는게. 아주 깊다고만 느낄뿐이였다.
미우는 힘껏 태봉을 제치고, 재빨리 발걸음을 옮겼고. 태봉도 이내 미우를 뒤따르기 시작했다.
아무말없이 미우가 하는양을 그대로 보면서. 옆에 찰싹 달라붙어있었다.
윤호는 미우가 일찍 출근한다는 사실을 알고는 일찍 출근해서 미우를 기다렸다.
그 까칠 공주께서 꽤나 자신의 속을 썩인다 싶었다.
그리고, 이제껏 윤호가 마음먹고 이루지 못한 일이 거의 없었고, 이렇게 애 먹인일도 거의 없어서.. 이젠 슬슬 지겨워질려고 하고 있었다.
예상대로, 미우는 일찍이 출근했다. 그런데... 윤호는 미우의 옆에 붙어서 있는 태봉의 존재를 의아하게 쳐다보았다. 그리고 미우의 굳은 듯한 차가운 표정.. 둘의 분위기가 이상했지만. 윤호는 미우에게 성큼성큼 다가가. 아침부터 준비해온, 선식을 내밀었다.
“미우씨. 오늘도 일찍 왔네요? 자요.. 입맛에 맞을지는 모르지만. 드세요”
미우는 걸음을 멈추고, 윤호가 내민 선식컵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리고, 윤호를 한번 보고는 생끗 웃으면 그 컵을 받아들었다.
“권상무님.. 시간 괜찮으시면, 잠깐 상무님 방에서 얘기좀 할까요?”
“그러시죠,.”
윤호는 짧은 대답을 하고, 먼저 자신의 방으로 향했다.
미우는 핸드백을 자신의 자리에 놓아두고, 바로 윤호를 따라들어갔다
그리고는..
윤호가 준 선식을 바로 옆에 있는 화분에 부어버렸다.
싸가지 없는 미우의 행동에 윤호는 처음으로 화가났다.
미우는 이쪽이든 저쪽이든 더 이상 다가오는 걸 내버려둬선 안된다고 생각했다.
윤호는 표정이 굳은채 미우를 보며 말했다.
“미우씨! 아무리 그래도 사람 성의가 있는데. 너무한거 아닙니까?”
윤호의 말에. 미우는 한쪽 눈썹을 까딱 올리며, 말했다.
“참.. 싸가지 없다고 생각하시죠?”
“.....네..”
“지금 화 나시죠?”
“그렇네요.”
“그러니까. 그만하세요.. 저도 참을 만큼 참고, 말씀 드리는 거니까. 여기서 더 제 인내심 건드리지 마세요.. 알겠어요?”
“미우씨. 정말 너무하는거 아닙니까?‘
“상무님! 저 안다고 하셨죠? 그럼 똑똑히 들으세요! 마지막 경고니까요. 여기서 더! 제 경고 무시하고 할머니 믿고 다가서거나 하면, 곤란할 수도 있을테니까.. 또, 한가지! 내 가족사가 새나가는 일도 조심하세요.. ”
미우는 윤호가 뭐라고 말할 틈도 없이 말을 마치자 마자 윤호의 방문을 거칠게 열고 나갔다.
윤호는 그런 미우의 모습을 황당하게 보다가 생각했다.
익히 들어왔지만... 미우의 온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카리스마가 대단했던 것이다.
냉정하고 차가운 윤호가 당황해서 단 한마디도 할수 없을 정도로..
“무서운데? 앞으로.. 계획을 좀 바꿔야 겠군..”
윤호는 골똘히 생각에 바지며. 책상앞에 앉았다.
태봉은 하루종일 미우의 곁에서 미우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애썼지만.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얼음조각은 윤호가 아니라, 미우였다. 사무실 사람들은 평소와 사뭇다른 미우의 분위기에 다들 고개를 갸웃거렸다. 처음보는 차가운 분위기에. 여기저기서 수군거렸지만. 미우는 그 수군거림을 싹! 무시하고는 할일만하고, 퇴근시간이 되자, 재빨리 사무실을 나섰다.
태봉은 끈질기게 미우를 따라다녔지만. 미우의 태도는 일관성 있게도 아주 차갑고 도도했다.
어쩌면, 엉뚱하고 엽기발랄하던 모습보다. 저 모습이 미우의 진짜 모습인것 처럼...
하지만, 아무도 미우의 진심을 알지 못했다. 미우는 거의 죽을힘을 다 끌어올려 참고 있었다.
태봉이 손을 뻗으면. 그 손을 잡아버릴 것같아. 애써 표정도, 태도도, 말투도.. 차갑게 포장하고 있었다.
윤호에게 내뱉었던 말도..그 노력에 평소보다 더 악날하게 나온것 같았다.
하지만. 견뎌야했다. 어떻게든. 빨리 마음을 정리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태봉에게만은.. 절대로 태봉에게만은 상처같은거 받고싶지가 않았다.
몇일동안. 미우를 끈질기게 설득하던 태봉과 애써 그를 무시하고 있는 미우.. 그리고, 그들을 지켜보고 있는 하다까지.. 점점 지쳐가는것 같았다.
태봉은 마지막으로 딱 마지막으로 미우에게 대쉬하겠다고 생각하며, 붉은 장미 한다발을 사 들고, 집앞에서 기다렸다. 태봉보다 먼저나간 미우가 어디를 들렸다 오는 것인지 몰라도, 꽤 늦은 시간까지 미우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열시가 다 될무렵.. 엘리베이터 소리가 들렸고, 그리고, 또각거리는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분명 미우일것이다.
미우는 집앞으로 걸음을 옮기다가. 뒷짐을 지고 웃으며 서있는 태봉을 보고는 멈춰섰다.
‘그만해.. 힘들어... 질리지도 않아?’
미우는 마음속으로 한탄하며, 다시 표정을 가다듬고, 걸음을 옮겼다.
하지만, 복도 한가운데 서있는 태봉 때문에 집앞까지 가지 못했다.
미우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비켜주실래요?”
“미우씨.. 늦었네?”
태봉은 미우의 말은 들은척도 하지않고 말했다.
“추운데. 또, 감기 걸리면 어떡할려구 그래?”
“........비켜요..”
“미우씨... 다시한번 말할게... 나.. 미우씨..”
“비켜!”
태봉의 뒷말을 미우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 말이 나오기 전에 소리를 질러버렸다.
그 말을 들으면.. 이제까지 버텨오던 자신의 마음이 한번에 허물어 질것만 갔았다.
그럴순.. 없었다. 태봉은 방금 소리친 미우에게 말했다.
“왜? 그렇게 겁내? 도망가지마! 니가 걱정하는일.. 없을거라고 했잖아.. 나.. 내 마음 믿어주면 안되니?”
“안 지겨워요? 내가 말했죠! 아무것도 장담할 수 없다고.. 그러니까,, 정말 그만해요!”
태봉은 미우의 말에 인내심의 한계를 느낀것 같았다.
“당신 똑똑한 여잔 줄 알았는데. 정말 어리석은 여자야! 어떻게 가보지도 앟은 길에 지레 겁부터 먹고 피할려고만 해? 내가 아니라잖아! 절대로 걱정하는 일 없다고 했잖아!”
“간장이 짠지 그렇지 않은지, 매번 먹어보지 않아도 알죠? 여름이 더운 줄, 꼭, 느껴보지 않아도 알죠? 이미 경험해 봤으니까.. 뻔한거... 괜히 시간들이고 정신적 체력까지 소모시켜가며, 하고싶지 않다구요.. 어차피, 내 정신건강에 좋지 않았으니까..나같은 여자! 당신도 금새 흥미 잃을거니까!”
“그렇게 말하면 좀 나아? 그렇게 자신은 상처받는데 익숙하다고 자기가 보잘 것 없다고 그렇게 말하면.. 니 상처가 낫니?“
“뭐, 나같은 여자는 태봉씨 좋아하지 않으면, 자존심에 금이가요? 호기심에. 찔러보지 말란말이에요, 나, 당신이 생각하는만큼 그렇게 쉽고 만만한 사람 아니니까..내가 하나는 분명히 말하죠.. 당신이 지금 나한테 이러고 있는거.. 오기고, 당신 자존심이잖아?”
“.... 너 아주 삐뚤어졌구나... 그래, 미안해, 나도 잠깐 착각했어. 이렇게 삐뚤어진 여잔 줄도 모르고... 괜한 시간 버린것 같아서..아주, 후회가 된다... 평생 그렇게 살아. 마음 감추고, 늘 상처받은 척 그렇게 살아...”
태봉은 미우를 비켜서 자신의 집으로 사라졌다..
멀어져가는 태봉의 뒷모습을 보며, 미우는 가슴이 쓰려왔다. 하지만.. 참아야지... 그래야지..
그러면서도 미우는 조심스럽게 태봉의 집에 시선을 멈추었다. 두눈 가득 눈물을 머금고..지금 당장 저문을 두드리면 나와서.. 다시 말해줄라나? 하지만 미우는 이내 고개를 세차게 흔들며, 중얼거렸다.
“착각하지마, 전미우! 그렇게 격고도 모르냐? 니 인생엔 그런거 없다고 했잖아... 정신차려!”
그날이... 크리스마스를 일주일 앞둔 날 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