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여자의 일생..그리고 우리 윗집

잠안오는밤2006.03.19
조회2,741

1948년에 어떤 여자가 태어났습니다.

원래 외가쪽이 부자라, 6.25.전쟁통에 아버지가 돌아가셨어도

전쟁 후 어머니가 명동에 보석상을 차릴 정도였다고 합니다.

그 여자는 타고난 미모에 머리도 좋아, 이화여대 메이퀸(오월의 여왕)에 뽑히기도 했답니다.

어머니는 이런 장녀를 자랑스러워 하시며, 명동 양품줌에서 머리부터 발끝까지

천을 떠서 옷을 맞춰주고 양산에 신발까지 세트로 꾸며주곤 했다고 합니다.

 

그러던 어느날

어느 남자가 이여자를 보게 됩니다.

남자는 저기 바닷가 마을에서 집안환경 때문에 중학교밖에 못나왔습니다.

서울에 구경왔다가 이 여자를 보고 마음에 품게 된 후

몰래 뒤를 밞아 여자의 집을 알아둡니다.

그리고 시골 동네 친구들을 서울에 불러올린 후 기회를 보아 여자를 납치합니다.

머리를 때려 기절시킨 뒤 강간을 합니다.

깨어나서 자기가 당한 것을 안 여자는 죽으려고 하지만

남자가 무릎꿇고 너무나 사랑해서 그랬노라 간절하게 빌기에

영원히 사랑하겠노라 맹세하기에

그 남자를 따라 바닷가로...갑니다.

찢어지게 가난한 집..홀어머니에 장남...줄줄이 딸린 시동생 다섯......여자는 일을 해야 했습니다.

곱게만 자랐는데..매일 바닷가에서 굴을 따고 찬물에 손을 담가 일합니다.

..여자를 그렇게 내팽겨쳐두고 남자는 군대를 가버립니다.

 

여자는 도망갈려고도 하고 죽으려고도 하지만

곧 들어서버린 아이 때문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습니다.

없어진 딸내미 때문에 정신이 나간 친정엄마가

천신만고 끝에 여자를 찾아내서 같이 돌아가자 사정했지만

여자는 이미 몸을 버렸고 아이도 생겼고 더구나 자기가 가버리면

홀시어머니와 철없는 시동생 다섯은 모두 길거리로 나앉을 지경이니

울고불고 하는 홀시어머니를 매정하게 버리지 못해

친정어머니를 돌려보내고야 말았습니다.

친정어머니는 그러한 딸의 모습에 너무나 실망을 한 나머지, 의절을 하고...

충격으로 곧 돌아가시고야 말았습니다.

 

남자가 군대에서 돌아왔습니다.

......................

맨날 여자 패고 아이 패고 두들겨 부시고 돈들고 나가 술과 노름으로 탕진했습니다.

너무 힘들어 친정에 기대고 싶었지만

친정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나서 친정 여동생 하나와 남동생 하나는 친척들에게 맡겨지고

딸에게 실망을 했던 친정어머니는 이 여자분에게 한푼의 재산도 남겨주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5년이 흐릅니다.

어느날 일나갔다 돌아와보니 아이가 죽어있었습니다.

간만에 밥을 차려주고 나갔는데, 얼마나 배가 고팠던지 애가 급하게 먹다가

급체했는데....... 아비라는 작자는 술에 취해 옆에서 널부러져 자느라

아이가 고통에 죽어가도록 손가락 까딱 안한 겁니다..

아이가 얼마나 고통스러웠는지 손톱에 피가 나도록 바닥을 긁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걸 보고 여자는 결심합니다.

 

내가 짐승에게 더럽혀졌구나

 

여자는 그 길로 미련없이 집을 나옵니다.

그러나 남편이라는 작자는 악착같이 여자를 찾아내곤 했습니다.

 

언젠가는 도망가서

다른 좋은 남자 만나 행복했던 적도 있었다 합니다.

한 3년 살고 있는데

남편이라는 작자가 나타나서 두들겨패서 또 여자를 데려온 적도 있답니다.

 

강제로 아이를 또 임신했지만..돈이 없어서...

도저히 자신이 없어 벼랑에서 몸을 던지고 계단에서 뛰어내리고 해서

겨우 아이를 지운 적도 있다 합니다..

 

세월이 흘렀습니다.

여자분의 여동생, 남동생은 친정어머니의 재산과 친척들의 돌봄으로

무난히 공부를 마쳐 여동생은 안정된 집에 시집을 갔고 남동생은 검사가 됐습니다.

둘은 그동안에도 열심히 큰언니, 큰누나를 찾았습니다.

....그러나 여자가 남편을 피해 여기저기 도망다니다 보니

그들도 큰언니, 큰누나를 찾기가 여간 힘들지 않았나 봅니다.

 

그들은 35년만에 드디어 큰누나를 찾았습니다.

어느 사이비 기독교 종파에서 운영하는 허름한 요양소 병상 위에서 말이지요....

처음에는 전혀 못알아봤다고 합니다

얼굴이 이뻐서 남자가 꼬인다고 남편이 칼로 얼굴을 그어 놓은데다

머리는 다 빠지고 한쪽눈은 맞아서 실명이 되고

왼손은 비틀리고 손가락 두 개는 잘리고

다리도 관절염이 심해 걸어다니지도 못하게 부어있고

그리고 온몸에 남은 폭력의 흔적들

까맣게 말라죽어가는 얼굴

 

두 사람은 눈물밖에 안났다고 합니다.

그렇게 몇번의 만남이 있었습니다.

아직 총기가 남아있던 여자분은 동생들에게 말합니다.

"여기 연고가 없다고 해서 내가 겨우 들어올 수 있었는데, 이제 너희들이 나타났으니

여기 목사가 너희에게 돈을 요구할꺼다. 그러니 오지 말아라."

동생들은 그럴 수 없다고, 이제 자기네들이 돌봐주겠다며

거기서 데리고 나올려 했으나 목사의 농간으로(그동안의 치료비며 간병비며 돈 달라는...)

여자분은 다른 어딘가로 빼돌려져 버렸습니다.

다른 곳으로 이송을 원한다는 본인의 싸인이 확실한 증명서 때문에

현직 검사인 남동생도 어쩔 수가 없더군요.

빨리 데리고 나오지 못한게 한이 될 뿐...

 

두 사람은 다시 또 큰언니, 큰누나를 찾아다니고 있습니다.

 

 

그 여자의 남편이 바로 저희 친정아버지의 '친구'입니다.

그리고 우연의 일치로.. 저희 친정 근처에 여동생분이 살고 계신다 합니다.

저희 친정어머니는 모르고 친해지셨지만 알고봤더니 그렇게 관계가 되더군요.

 

그 남자, 가족에게는 개차반이었지만 친구들에게는 의리있는 사람으로 통했다는 아이러니.....

이미 여자분의 남동생에 의해 이혼당한 상태입니다(행방불명되기 전에 이것부터 처리하느라

여자분을 다른 곳으로 모시는 게 늦었다고 합니다)

 

그 아저씨..허구헌날 말합니다.

"내가 그 여자한테 지은 죄는 남은 평생 잠 안자고 빌기만 해도 씻지 못할 죄"라고....

그러면서

그 여자분의 여동생과 남동생에게 전화해서

자기 죽겠다고 돈달라고 사정합니다.

안주면 가서 두사람 집에 가서 깽판치고 드러눕습니다.

현직 검사라 경찰은 빨리 오는데

허구헌날 그러니 두 분도 힘들어서 어쩔 줄 몰라합니다.

 

선과 악.....

저는 아버지에게 저런 인간과 상종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근묵자 흑이라고....

그렇게 저희 집에 올 때마다 신세한탄 하며 후회하며 주변의 동정을 사서 돈을 얻어갑니다.

아버지는 인생이 불쌍하다 하시며 가끔 빌려준다는 명목하에 다는 아니지만 용돈도 주시곤 합니다.

어릴 떄 앞뒷집 살던 정이 있다 하시며 말이죠.

그렇게 여기저기 빌린 돈으로 멀끔하게 차려입고 잘 먹고 삽니다.

친구들에게는 의리있는 놈으로 통했다니까.....

그리고 어디서 연변여자 하나 구해 살려고 발악 중입니다.

말로는 전처에게 지은 죄 죽어도 못갚는다 되뇌며 살아도 말이지요.

 

선과 악.........

아무도 그 여자분을 도와주지 않았고 아무도 관심가져주지 않았고

아무도 친구니까 친구의 행동을 나무라지 않았고

후안무취한 행동을 방치했습니다.

 

방조자도 동조자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아버지에게 참 답답하다고, 저런 쓰레기랑 어울린다며 강한 비난을 했었습니다.

 

오밤중에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이유는

저희 윗집에서 요즘 허구헌날 여자 패는 소리, 여자 비명소리, 여자 울음소리가 들리는데

몇번 인터폰으로 경비아저씨에게 말하고는 했어도

솔직히.......증인으로 출석하라 어쩌라 할까봐 경찰에 연락까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 윗집 여자.......

제가 방조하고 있는 걸까요.

누군가의 도움을 기다리며 외로와하고 있는 걸까요.

남을 돕는다는 건, 여기 시친결 게시판에 리플다는 것처럼 쉽지가 않네요.

제가 아버지를 비난하는 건 정말 쉬웠습니다만....

 

윗집 여자는 또 두들겨 맞고 겨우 숨을 내쉬고 있겠지요

남편이라는 작자, 저번에 엘레베이터에서 봤더니 겨우 30살 초반이던데

'메O라이프 생명'이라는 폴더를 옆구리에 끼고 좋은 양복 쫙 빼입고 출근하던데

........

윗집여자는 뭘 하고 있을까요 지금 이시간에..

아까도 우당탕 퉁탕 식탁이나 소파 쯤..이 뒤로 넘어가는 소리가 들리던데....

밤이라 흐느끼던 소리도 다 들렸는데 새벽 2시 반...이젠 안들리네요

울면서 자신의 어린시절, 자기를 안아주고 웃어주던 친정엄마 얼굴을 생각하고 있을까요

처녀시절 예쁘게 차려입고 친구들과 즐겁게 수다떨던 찻집의 오후를 떠올리고 있을까요

아니면 맞다가 지쳐 잠들어버렸을까요

 

혹시 죽어버린 건 아니겠죠.......그쵸?

 

선과 악에 대한 생각을 하는 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