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망스

백승권2006.0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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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마른 도화선 같은 사람들이 있다. 그냥 겉보기엔 건조한 가늘고 연약해 보이기만한 끈인데. 막상 불이 붙어버리면 절대 꺼지지 못하다가 자신도 어쩌지 못하다가 그렇게 다 타버리고 끝내 펑하는 굉음과 함께 자신은 물론이고 주위까지 산산조각 내버리는 그런, 남자와 여자가 있었다.


로망스


사연 없는 사람 없는 세상속에서도 모든 기구함과 안스러움은 다 끌어안고 사는 듯한 이들을 우리는 스크린 안에서 마주한다. 가장 비현실적이면서도 가장 현실 수 밖에 없는 그들의 사연에 가슴 쓸어내리며 동경하고 공감하며 빠져든다. 가질 순 없지만 바람만으로 행복해지는 그런 애틋한 감정을 스미게 하는, 그렇게 해 주는 이들의 비극을 바라보며 눈물 짓지만 그땐 그저 저건 영화잖아 이러면서 뒤돌아서고 만다. 그렇게 잊으면서 다시 판타지 함유율 제로의 현실로 돌아간다. 하지만 아닌걸. 가끔 진짜를 모아다가 거짓말처럼 이야기를 하는게 영화의 미묘한 매력인걸. 그때 다시 생각한다. 나도 저렇게 사랑할 수 있었을텐데 라고 쓴 웃음을 지으며 자신의 이루지 못한 과거의 뜨거움을 회상한다. 로맨스라고 핑크빛 우표를 붙이면서 얼룩진 그때의 기억과 해후한다. 다시 아냐 난 못해 라며 눈가에 주름을 그리지만 어느 누가 목숨 건 사랑에 대한 열망이 없으리요. 틀린 줄 알면서도 답을 쓸 수 밖에 없었던 한 남자와 그 남자에게 짧은 순간 모든 것을 내어준 여자가 있었다. 그들은 처음부터 서로가 잘못 끼워진 단추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잘못된 것은 단추가 아니라 처음부터 입지 말아야 할 옷깃이었고 이미 짊어지고 있던 삶의 무게였다. 이미 지탱할 힘도 없이 쏟을 눈물도 없이 삶의 그늘에서 마주한 그들은 말하지 않아도 서로가 서로의 마지막 선택이 될 수 밖에 없음을 깨달은 듯 엉켜버린 심지에 불을 붙이고 만다. 타오르는 것을 몰랐을까 타오르다 타오르다 결국엔 파괴와 먼지 속에 결국엔 비극의 재만 남길지도 모른다는 것을 결국엔 인정받지 못한 행복에 결국엔 서로를 영영 가둘 수도 있다는 것을 몰랐던 것일까

 

요즘 사람들은 너무도 똑똑해서 한없이 이해하면서도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고 그렇게 안전하고 그렇게 추스리며 살다가 적당한 선에서 자신의 위치를 점지으며 매듭짓는다 그게 현명하다고 믿고 대부분 그렇게 인정해준다. 그걸 거부하면 영웅이 될 수 도 있지만 결국엔 영웅은 대부분 한때의 화려함에 취했다가 미참한 최후를 맞지 않냐며 겪어보지도 않은 일을 마치 많이 지켜본 양 답을 내린다. 모험은 줄이고 위험 앞에선 수그리는 게 정말 똑똑한 삶이라고 그게 답이고 좋은게 좋은거라고 그렇게 지내온 자신을 대견스러워 한다. 비록 용감하지 못했지만 부끄럽지 않게 살아왔다면서.

 

얼마나 상식이 통하는 사회인지 아직 덜 살아봐서 모르겠다만 사람들은 여하튼 상식의 어떤 기준이 되는 불분명한 선을 넘는 이들에게 미쳤다는 딱지를 붙여준다. 저렇게 살면 안되는 거라고. 사실 맞는 말이다. 안되는 일은 안되는 거다. 사랑도 예외는 아니다. 넘지 말아야 할 선이 있는 것이다. 사연이 얼마나 애처로운지는 기자들과 그거 가지고 왈가왈부하는 대중들외에는 그리 알바아니다. 하면 위험하다고 정해놓은 일은 하면 안된다. 그게 세상의 법이고 진리이며 위대한 상식이다.

 

하지만 이건 가정이지만 어쩌면 상식보다 더 솔직한 진실일 수도 있는 이야기지만 불법과 비상식과 말도 안되는 비리와 통하지 않는 진리로 점철된 세상이라면 그걸 뿌리치며 거기서 도망다니며 태어나 처음 만나는 자유를 서로를 통해 느끼게 된다면 그게 맞는거 아닌가 비상식을 비상식으로 대응하는게 상식이고 불법에 불법적으로 대응하는게 진리가 아니더냔 말이다. 적어도, 적어도 사랑이라면 이런식으로라도 지켜내야할 것이 아니냔 말이다.

 

썩은 돈과 죽은 개만도 못한 권력의 감투를 쓴 이들에게 미친 취급을 받는 이들이 있었다. 결코 길지 못했고 끝내 폭발하는 화염 속에서 부둥킨채 함께 가야했던, 사랑할 수 밖에 없어서 사랑할  수 밖에 없었던 그남자, 그여자가 있었다.


조재현, 김지수 주연
문승욱 감독

the romanc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