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당연함

소설쿼터제2006.0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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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그 앤 어김없이 맞고 있다. 서너명의 아이들에 둘러싸인 채. 그 앤 양손으로 얼굴을 감싸쥐고 아이들의 발길질에 사정없이 두들겨 맞고 있다. 지금쯤이면 울고 있겠지...감싸쥔 두 손을 풀면 온통 눈물, 콧물이 범범 된 채 구겨진 인상을 하고 있겠지...


  어라? 안 우네. 오히려 아무 상념도 찾아볼 수 없는 무표정이다. 되려 발길질 하는 아이들을 불쌍하듯 바라보는 눈빛이다. 어떻게 저럴 수 있지?

  교복 치마 속에 체육복 바지를 입고서 사정없이 내리꽂는 아이들의 발길질에 이리 채이고, 저리 채이다 그 애의 눈가가 손가락 마디만큼 찢어졌다. 피가 고이고 이내 흘러내린다. 조금 불쌍하단 생각도 든다.

  순간, 그 애와 눈이 마주쳤다. 곧 아이들의 발길질로 일어난 부연 먼지 속에 그 애의 얼굴이 묻혀버렸지만, 몰래 자기를 훔쳐보던 내 눈을 보고 있었다. 희미한 미소를 띈건지, 아니면 무표정인지...난 벽 뒤에서 훔쳐보는 것을 그만두고 그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냅다 뛰었다. 심장이 터져버릴 만큼 뛰고 또 뛰었다. 그 애의 형상이 떠오르지 않을 때까지...


  그래, 그 앤 자초한거야. 어쩔 수 없는 거지. 제일 친했던 나까지도 속였는걸. 태어날 때부터 아빠 없는 나에게, 지지리도 가난해서 고등학교도 못 다닐 뻔 한 나에게 그 앤 자신도 그렇다고 했어. 자신도 고아나 다름없다고. 집은 허우대만 갖췄지, 자기 것인 건 하나도 없다고. 지금의 몸뚱아리를 제외하곤 자기 것인게 하나도 없다고 했지.

  근데 뭐야...넌 선생님도 굽신대게 할 만큼의 재력가 집안에 태어나, 남들이 한눈에 보고 반할만큼 미모가 출중한 부모님이 모두 살아 계셨어. 날 속였다구. 난...제일 친한 너에게 내 모든 걸 꺼내 보였는데...그건 평생 꺼내 보이기 싫은 치부였단 말야. 사생아에, 엄만 생선장수고, 집은 언제 쫓겨날지 모르는 무허가 판자집에서 살고 있다고...그런 말 하고 싶은 사람이 어딨겠어! 안그래? 너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그래, 어쩌면 당연한 결과야. 니가 그렇게 된건...내 잘못이 아니라구. 내가 그 애들에게 이간질을 하지 않았더라도 그 애들은 널 왕따시키고 때렸을 거야. 그건 니 운명이니까. 내 잘못이 아니라구. 그저 당연한 댓가를 받고 있는 거야. 근데 넌 왜 날 그렇게 쳐다봤니? 날 저주하는 눈빛도, 원망하는 눈빛도 아니었어. 내가 더러운 앞잡이 역할을 했다는 걸, 널 배신했다는 걸 너도 잘 알고 있었을 텐데 말야. 왜 그런 망망한 눈빛이었지?


  도무지 너란 앨 알다가도 모르겠어. 아니, 알 길이 없어. 무슨 생각을 하고 사는지 네 속이 궁금해. 이 세상에 혼자 남겨진 것 같다느니, 남녀는 만나서 왜 사랑하고, 왜 애를 낳는지 모르겠다느니, 세상에서 기댈 수 있는 사람은 너뿐이라느니...솔직히 그런 입바른 소리만 안했어도 난 이러지 않았어. 온갖 사탕발림만 하다가 결국 넌 나한테 거짓말 한 꼴이잖아.


  그래, 알아. 진정한 친구사이라면 니가 다른 애들에게 왕따를 당한다거나, 니가 맞고 있을 때 달려가 니 편이 되어주고, 대신 맞아주기라도 해야 한다는거. 근데 이미 넌 내 친구이길 포기한거야. 너도 그랬잖아. 너에게만 했던 내 소중한 얘기들...그걸 넌 다른 니 친구에게 말해버렸어. 친한 친구라고해서, 내 치부를 남에게 고스란히 일러버린 앨 용서해야 하니? 난 그렇게 마음이 넓지 않아. 그건 아마 너도 알거야. 난 이미 마음속에서 세상을 등진 사람이야. 더 이상 두려울 것도, 지키고 싶은 것도 없는 사람이라구, 난!

  이런 말했을 때 너도 그랬었지. 너 또한 그렇다고. 너도 태어날 때부터 세상을 등지고 태어났다고. 근데 이게 뭐니? 넌 부잣집 안방마님이고, 난 그저 밥이나 짓는 부엌때기 신세잖아. 진지하게 고민 상담하던 내게 고작 넌 사춘기에 흔히 나타나는 푸념들만 해댔어. 난 정말 진지했다구. 너처럼 그냥 스쳐지나가는 질풍노도의 한자락이 아니었다구! 나쁜...!!!


 ‘♬~정말 닮았잖아~너무도 행복했었잖아~♬’


  핸드폰...! 헉헉. 숨 좀 고르고...


 “여보세요?”

 “야...이 년 이상해. 이 년 무슨 병이라도 있어?”

 “...뭐? 그런거 없어...”

 “움직이질 않아. 눈이 돌아갔다구! 너가 일루와서 함 봐봐!”


  너를 때리던 서너명 중 하나인 애의 목소리가 다급했지. 숨을 고르던 나보다 더...


  넌 곧 병원 응급실로 실려갔다고 했어. 난 주체할 수 없는 자책감으로 두 다리를 덜덜 떨었어. 병원의 응급실로 가는 복도가 너무 길어. 사색이 되어버린 내 얼굴 피부의 온도를 체감할 만큼 내 몸 안의 세포 하나하나가 요동치는 걸 느낄 수 있었어. 심장은 터져버릴 듯 가슴을 두드려댔고, 발목이 꺾인 사람마냥 두 다리에 힘이 없었지. 한 발짝 내딛는게 가시밭길을 걷는 듯 해. 죽으면 어쩌지? 그럼...내가 죽인 거잖아...제일 친한 친구라고 자부하던 내가...


 “내참...무슨 대학병원이라는 게 시설도 후지고, 더러워서 원...”


  너의 엄마. 사진으로 본 적이 있어. 어떻게 죽어가는 딸 앞에서 저렇게 태연할 수 있지?

  순간, 울컥 하더라. 산소 호흡기를 떼면 이내 죽어버릴 것만 같은 너의 창백한 얼굴 너머로, 뇌를 다쳐 식물인간으로 살게 될 지도 모른다는 진단이 떠올라 이 아줌마의 냉소적인 태도가 눈에 보였을 때, 모든 감정이 뒤섞여 나도 모르게 이 아줌마의 팔목을 힘껏 잡아 당겼어. 물론 그러면 안됐겠지, 너의 엄마니까...


 “지금 병원 타령이에요? 아줌마의 하나밖에 없는 딸이 죽어간다는데!!!”

 “이거 놔! 넌 또 뭐야? 얘들이랑 한패거리야? 나도 이러고 싶어서 이러는 줄 알아? 나이 속이고 결혼한 것도 모자라서, 나랑 나이 차이도 얼마 안 나는 애를 딸처럼 키우라는데 따뜻하게 키워줄 미친년이 이 세상에 어딨어! 첩인 지 애미나, 애비는 다 잡아먹고 삼촌한테 들러붙어서 이 지랄이야, 지랄이!”


  뭔가 뒷통수를 후려갈기는 느낌. 뭐? 딸이 아니라고? 하긴, 엄마치곤 너무 젊다 했지. 그저 외제 화장품 쓰는 귀부인 피부는 원래 저런가보다 하고 넘겼지, 20대인줄 꿈에나 알았겠어? 어째 싸구려같은 말투하며...

  너...그동안 저런 여자랑 함께 살았었니?


 “고등학교 졸업하고 호적 파가기만 기다렸더니 이게 뭔 꼴이야. 송장치게 생겼으니...”


  짐승만도 못한 말을 지껄여대는, 보호자라는 그 여자를 뒤로 하고 쓰러지듯 응급실을 빠져나왔지. 발목이 꺾였는대도 아픈 느낌이 없었어.


  앞으로 식물인간이 될지도 모른다는데, 어찌됐든 호적상 지 딸로 받아들였던 아빠 삼촌은 병원에 코빼기도 보이지 않고, 엄마라는 저 여자는 고래고래 미친 사람처럼 소리만 질러대고...폭행을 가한 서너명의 애들은 아무 죄책감 없이 그저 송장같은 니 곁에 서서 물끄러미 바라보고 서있고...경찰은 조사한다고 우왕좌왕하고...어쩐지 니가 가엾다. 왜 니 주위엔 다 그 모양이니?


  그런데...그런 난 도대체 뭐지? 한심한 저 작자들과 내가 뭐가 다르지? 어쩌면 니가 받은 정신적 충격은 저 작자들보다 내가 준 게 더 클 텐데...니가 이렇게 될 때까지 난 그동안 뭘하고 있었지?

  니 돈을 몰래 훔쳐내고, 니가 맞을 때 비웃고 있었고, 널 모함하고, 부자인 니 환경을 들먹여 애들에게 괜한 질투심을 유발시키고...나, 그동안 참 한 게 많구나, 너한테. 정말 한 일이 많아. 어쩌면 그렇게도 몹쓸 짓만 많이 했다니...


  첩의 자식으로 태어나 부모님 모두 돌아가시고, 삼촌네 식구 눈칫밥에 겨우 연명하다가, 지보다 7살 많은 언니를 호적상 엄마라고 불러야 하는, 재산은 많지만 하나도 니 것인 게 없는 그런 집에서 넌 그동안 무얼 하며 살았니...태어날 때부터 이 세상을 등지고 태어난 것 같다는 그 말이 그런 뜻이었어? 왜 진작 말하지 않았어...그런 니 환경을 왜 말하지 않았어, 왜!...말했다면 내가 죄책감으로 일분일초를 눈 뜬 봉사처럼 살아가지 않아도 될 텐데...


  우습게도...지금 이 순간에조차 난 니 탓만 하는구나. 내 걱정만 하면서...미안해, 정말 미안해....니가 날 몰라준다고 느끼던 그 순간에 나도 널 몰라주고 있었다는거...왜 이제서야, 왜 니가 이렇게 되고서야 알게 된 걸까? 왜 사람은 자기 생각밖에 못하고 살다가 돌이킬 수 없는 시간이 되어서야 후회하는지...미안해, 정말 미안해...제발 일어나줘...일어나서 날 발로 걷어차고, 멱살을 잡고 뒤흔들어도, 때려도 좋아...제발 일어나줘...


  제발, 아까 날 바라보던 그 무표정한 얼굴로 평생을 살아가지 말아줘...암흑같은 미로 속에서 죄책감에 시달리며 평생을 살지 않게 날 도와줘...제발 일어나줘...부탁이야...제발...미안해, 은정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