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 시대에 들어 우리민족 고유의 두뇌 스포츠인 화투가 각종 문물과 함께 일본에 전수되어 당시 무지몽매했던 일본 백성들의 여가선용에 획기적인 전기를 마련했다는 것은 잘 알고 있을 것이다. 특히 이 중 백제 유민들에 의해 도입된 것으로 추측되는 9세기경의 화투장은 인쇄 상태가 선명하고 화투장의 질이 상당히 우수하여 그당시 수준 높은 우리 민족의 인쇄, 제조술에 다시 한번 놀라지 않을 수 없다. 그 당시 일본에 직접 건너가 화투를 전수했던 한 백제인이 있었으니, 그의 본명이나 나이 등은 기록되어 있지 않고 다만 일본인들이 그를 오광선인이라 부르며 추앙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그는 쳤다하면 오광을 다 묵꼬 의연히 판을 싹쓸이 했으며 특히 맨 마지막에 팔광을 먹는 기술은 신기에 가까워 함께 치는 사람들이 입을 다물지 못했다 한다. 이에 일본인들은 오광선인의 팔광 먹는 기술을 높이 기려, 팔광의 해를 새긴 깃발을 만들어 걸었는데, 이것이 바로 일장기의 시초가 되었다. 그러면서도 그는 불우한 이웃들을 위해 판돈 전부를 개평으로 희사하는 고귀한 화투 정신을 가진 자였는데, 말년에는 전국에서 그를 찾아오는 인재들을 모아 오로지 하루 한판씩 지도 대국만 하다가 어느날 갑자기 고도리 속의 세마리 새를 찾아 입산하여 다시는 속세로 돌아오지 않았다는 신비스러운 인물이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또한 중국과 일본에서는 민화투, 월남뽕 정도의 저급한 수준의 화투 문화가 주종을 이루었지만, 국내에서는 화투 종주국답게 계속적인 연구와 발전을 통해 화투 문화의 최고봉이라 일컬어지는 고도리가 개발되어 이미 사대부 집안을 중심으로 폭넓게 행해졌다.
[난알아-역사탐방]화투의 역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