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 소개팅 소사 (小史)

깜괭이가 꺄웅2006.03.29
조회1,127

유난히 잠을 자기 힘든 밤이었지만 이런 저런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다가 그동안의 소개팅에 대해 생각하다가 완전히 하룻밤을 날렸습니다.격일로라도 자면 되는거죠, 뭐...

 

그리하여 그동안의 소개팅에 대해 잠시... <강렬한 스크롤의 압박 예고>

저는 인위적인 만남을 그리 반기는 것이 아니라 5번 가량의 소개팅을 했었습니다.
그 후로는 완전 좌절 상태입니다. 이유인 즉슨,


첫 번째,

24살 경에 애니메이션 회사 새끼 AD로 일하고 있을 때 였습니다.
애니 파트 감독님이 극구 소개팅을 해주신다고 해서 날짜를 잡고 본사로 갔다가 만나러 가려는데
아침부터 스물스물 기어올라오던 감기기운이 자리를 잡았더군요.
열이 쩔쩔쩔 나고 있는데, 제 사정으로 많이 미룬터라 감기가 들었다고 차 한잔만 할 수 있다고
나름대로 성심성의껏 설명을 드리고 만나러 갔습니다.

오오, 준수하신분이 나와 계십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 와중에, (열이 있기 때문에) 평상시의 쌩쌩함과 임기응변을 못 보이고 있었습니다.더구나 머리털 나고서 처음하는 소개팅이었습니다.

평범한 얘기들 와중에...

 

소개팅남: 읽으신 책 중에서는 어떤 책을 좋아하세요?
본좌:        책은 특별하게 좋아하는 것은 없고, 지금 읽는책은 "손자병법과 군주론 인데요."
소개팅남:  ..................................................

(잠시 후)
소개팅남: 음악은 어떤 것을?
본좌:        가요는 안듣고 주로 pimp rock 과 하드코어 랩이요.
소개팅남:  ..................................................

지금 생각해 보면 굉장히 건방져 보였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당연히 after는 없었습니다.


두 번째,

약 3년간의 공백기간을 채워주고자 회사 친구가 해 주었던 소개팅. 무개념으로, 시간 계산을 잘 못 해서 차를 가지고 미친듯이 밟으며 갔습니다. 동갑의 남성이었는데, 완전히 저희 친오빠 입니다. 생각하는 것도, 성격도.. 오빠하고 연애를 할 수 없습니다.


세 번째,

여기서 부터가 기우였습니다.
28살때, 8살 차이의 갑부랍니다. 매우 돈이 많으신 분이라고 한 번 해보라는 부추김에 나가게 됐습니다. 친구 A양의 대학동기 B양의 지인의 아는 사람.. 이라는 복잡스런 소개였습니다. 절대 잘 가지않는 청담동으로 갔습니다.

 

외제차가 오더라구요. 뭐, 돈이 많다니까...
아저씨의 외모를 가진 아저씨이십니다. 뭐, 나이가 많으니까...

 

차를 마시고, 밥을 먹고 이런 저런 얘기를 하다 슬쩍슬쩍 내비치는 암시에, 뭐 마음에 있나보다 했습니다. 밥을 먹고 배가 부르니 공원을 가자고 했습니다. 날씨가 꽤 더웠고, 한강 시민공원에는 성실한 시민들이 아이들과 애완동물들과 뛰놀고 있는 밝은 분위기 였습니다. 더우니까 차안에서 음악을 듣자고 하더군요. 그러지요 했습니다. 그러더니..

소개팅남: 심심한데 오빠랑 잘까?
본좌:        .................................................. 가까운 전철역에 내려주세요.

전철역 까지 가는데 그얘기 했다고 내가 화났다고 본인이 삐집니다. 끝까지 오빠에게 전화하라고 합니다. 만난지 세시간 만에는 뭐냐구. 나에게도 취향이라는 것이 있다고 소리지르고 싶은 것을 참았습니다. 차에서 내리는 순간 친구 A양에게 전화 했습니다. "당장 나와"


네 번째,

동갑이랍니다. 나름대로 자기주관 뚜렸하고 좋은 얘기는 다합니다.
약속장소에 조금 일찍 가서 책을 읽고 있었습니다. 시간이 되어도 전화가 안오길래 정각이 조금 지나서전화를 해 보았더니, '제발 저 사람만 아니길' 하신 분이 전화를 받습니다. 뭐, 여튼...

밥을 먹으로 갔습니다. 제가 가자고 한 밥집이길래 제가 돈을 냈습니다.

어딜갈까? 고민 하다 홍대 벼룩시장을 한 바퀴 돌고 차를 마시러 갈까 했습니다. 그 날의 날씨는 31도에 육박하고 있었습니다. 신촌가서 영화를 보자는 의견이 모아졌습니다. 홍대에서 신촌..

 

본좌:  어떻게 갈까요? 택시타고 갈까요? 버스타고 갈까요? 아니면 걸어서???
걸어가자고 합니다. 그 날의 날씨는 31도!

걸어 갔습니다. 아시는 분은 아시는 홍대 정문앞 위험스러운 길을 따라서.... 31도에...
잠시 나왔던 '차마시러 갈까?'가 생각났나 봅니다. 편의점에서 캔커피를 사옵니다. 차라리 테이크아웃을 마시면 마셨지, 네스*페 캔커피란...

 

땀빼며 매연을 마시며 간 곳이 녹색 극장입니다. 영화는 가문의 위기와 외출을 하고 있습니다.
보통은 첫 만남에서 가문의 위기를 볼 것입니다.

본좌:       가문의 위기 재밌다는데 이걸로 할까요?
소개팅남: 외출 보죠.

영화값을 (제가) 치르고 보러 갔습니다. 보시면 아시겠지만, 외출은 아주~ 그렇습니다!!!

소개팅남을 뒤로하고 집으로 갔습니다. 나중에 들은 얘기지만, 이 사람 돈 많답니다.
하지만, 센스가 없는 분은 사양입니다.


다섯번 째,

한살 연하랍니다. 고시 준비중이랍니다. 얼추 관심사가 비슷할 거랍니다. 핸드폰은 수신만 된답니다.
명동에서 보기로 하고, 시간이 지났길래 전화를 한 번 넣었습니다. "오랜만에 나와서 길을.."
뭐, 그렇다니까.. 하고 기다렸습니다. 얼굴을 보니, 완전 애기 입니다. 저도 동안이긴 하지만, 이건 "애기" 입니다. 저녁을 먹으러 아*백을 갔습니다.

 

소개팅남: 아하하~ 사람하고 밥먹으니까 좋군요.
본좌:       .................................................. 공부를 열심히 하시나 봐요.

밥값을 (제가)치르고 차를 마시러 갔습니다. 속으론, 사람하고 차를 마시니 어떠신가요가 맴돕니다...


이후에 소개팅이라는 것을 안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정말로 평범한 사람이란 보기 힘든 것인지 의문이 생겼습니다.


사람도 다양하고 그 사람을 바라보는 시각도 다양하기 때문에 이 사람이 저사람이랑 어울릴
거라고 생각해도, 내가 마음에 들어서 보는 사람 만큼은 못하리라는 생각 때문입니다.

여기까지 생각을 했더니 왠지 잠이 들 수가 없더군요. 에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