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거푸 디즈니 월드 얘기를 꺼내서 죄송하지만) 디즈니 월드에서 펼쳐지는 퍼레이드 가운데 가장 환호를 받은 주인공은 동화 속의 마녀, 또는 악녀들이었다. 왜 있지 않은가. '백설공주'의 계모, '인어공주'에서 공주에게 목소리를 준 마녀, '101마리의 개'에서 달마시안 강아지를 괴롭히던 여자 말이다.
구경꾼들은 백설공주와 왕자, 인어공주와 왕자, 신데렐라와 왕자 (숨차다. 왕자들은 왜 그리도 흔한지)가 다정스럽게 손잡고 나올 때도 좋아했지만, 그 뒤를 이어 마녀들이 도도한 표정으로 등장하자 소리를 지르며 반가워했다.
디즈니 월드안엔 이런 마녀 관련 상품만 모아놓은 가게도 있다. 나처럼 그로테스크한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겨냥했는지도 모르겠으나, 마녀로 가득한 티셔츠 위에 쓰여진 '착한 것보다 착하게 보이는 것이 더 좋다'같은 문구는 내 마음에 쏙 들었다.
▼공주면 다냐!▼
'정치적으로 올바르기'를 추구하는 학자들, 특히 페미니즘 학자들이 동화를 새로 쓰기 시작한 것은 꽤 된 일이다. 그 공주들이 한결같이 예쁘고 착하다는 점, 남의 도움으로 성공한다는 것, 게다가 첫눈에 왕자를 사로잡아 오래오래 행복하게 산다는 점은 내 비위에 안맞았다 (맞다. 내가 예쁘지도 착하지도 않고 왕자라곤 구경도 못해봤기 때문이다).
백설공주만 해도 그렇다. 백설이가 한게 뭐가 있나. 계모에게 구박받다가 숲으로 쫓겨가 일곱 난쟁이 집에서 가정부 노릇을 한 것 밖에 없다. 멍청하게도 "낯선 사람을 조심하라"는 난쟁이들의 당부를 몇 번이나 어기고는 사과를 먹다 목에 걸려 죽을 뻔했다.
인어공주는 또 어떻고. 목소리와 바꾼 인어공주의 미끈한 다리는 참으로 의미심장하다. 자기 주장을 버리고 남자를 받아들일수 있는 성기를 얻었다는 뜻이다. 디즈니만화에선 해피엔딩으로 변질됐지만, 원래 동화에선 왕자에게 배신당하고 만다.
신데렐라를 생각해도 화가 치민다. 왕자의 눈에 띈 것은 아름다운 드레스와 마차를 선사한 '착한 마녀'의 도움 덕분이었다. 유리구두 역시 여성의 성기를 상징한다고 풀이하는 전문가들도 있다.
▼차라리 마녀가 낫다▼
이들에 비하면 마녀들은 훨씬 인간적이고도 섹시하다 (나는 남자고 여자고 간에 섹시하다고 하는 걸 최대의 찬사로 생각하는 사람이다). 그들은 스스로의 힘으로 자기가 원하는 것을 얻고 지키려고 부단히 노력했다.
백설공주의 계모는 백설공주를 죽일수 있는 마법을 열심히 개발했고, 인어공주 속의 마녀도 생선 꼬리를 사람 다리로 바꾸는 고난도의 약물 만들었다. 우리도 공부를 해봐서 알지만 계속, 더 높은 단계로 나아갈수 있게 공부하게 어디 쉬운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마녀의 굴레를 쓴 것은 '여자는 모름지기 착하고 예뻐야 한다'는 신화 때문이다. 이들 동화가 나타나 사랑받던 시기에, 여자가 어떤 능력을 갖고 그걸 발휘하려 드는 것은 비난받아 마땅한 일이었다.
실제로 중세 유럽에서 화형당한 '마녀'들이 진짜 마녀였는지는 의문이다. 아픈 사람을 치유하거나, 아이들과 약한 사람들을 도와줘 주위에 사람을 모으거나, 어떻게든 자기 능력을 발휘하려던 똑똑한 여자들이 마녀로 몰렸다는 연구도 있다.
▼우리 곁에 있는 마녀들▼
이런 마녀는, 아니 마녀로 몰리는 여자는 지금도 존재한다. 최근 뉴욕타임스가 소개한 알리슨 쉬펠린(40)이라는 여자도 그 중의 하나다.
월스트리트의 저명한 회사 모건 스탠리에 젊음을 바쳐온 그는 자타가 공인하는 일벌레였다. 일에만 몰두한 탓에 이혼한 것과 다름없다고 전 남편이 인정했을 정도다. 연봉 100만달러를 받던 쉬펠린이 2000년말 돌연 해고를 당했다. 여성에게 적대적인 직장환경을 항의하고, 실적으로 보아 당연히 승진돼야할 자신이 왜 안되는지를 물었다는 이유로.
물론 모건 스탠리가 밝히는 해고 사유는 따로 있다. 쉬펠린이 명령계통에 복종하지 않고 상사에게 육체적 위협을 가했다는 거다. 하지만 멀끔한 외모와 달리 모건 스탠리의 남자들은 여자동료들을 열등한 존재로 취급했으며 여성 담당자를 따돌리고 고객과 함께 토플리스바에 가서 진탕 놀면서 관계를 돈독히 했다고 알려져 있다.
자신이 '유리 천장'에 가로막혀 있음을 연방정부에 호소한 쉬펠린은 이같은 월 스트리트의 관행에 도전한 흔치 않은 여자다. 쉬펠린이 '문제'를 제기하는 동안, 이 회사는 부랴부랴 여성들을 대거 승진시켰다. 당연히 쉬펠린은 빼고. 만일 그가 그저 착하게 일만 했다면, 절대 '화형'당하지 않았을 거다.
▼마녀를 위하여▼
사실 여성에 관한 얘기를 쓸 때마다 나는 혼자 눈치를 본다. 남자들이 이 글을 읽으면 싫어할텐데 하고. 여권론자, 또는 트러블 메이커라는 소리를 들을까봐 (자칫하면 마녀로 찍힐지도!) 회사 근처에선 여성의 '여'자도 꺼내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나다.
하지만 마녀들의 등장에 환호하는 어린 소녀들을 보면서 우리는 변화를 감지하게 된다. 남의 도움으로 왕자의 사랑을 차지하는 예쁘고 착하기만 한 공주보다는, 자기 힘으로 원하는 것을 성취하려는 마녀가 훨씬 매력적인 역할 모델로 다가온다는 얘기다.
예쁘고 착하지 않아서, 공주라는 든든한 배경이 없어서, 뭔가 얻으려고 움직여대서 남자들의 눈엔 마녀로 보일지 몰라도 그들은 결코 마녀가 아니다. 세상이 달라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공주와 마녀 스토리를 재생산해는 기득 구조의 저의가 되레 의심스럽다.
(맨해튼 5번가 57번지에 새로 짓고 있는 루이비통 건물에 걸려있는 광고판도 입을 떡 벌리게 만든다. 백설공주가 일곱난쟁이를 거느리고 있는 장면이다. 물론 백설공주는 디즈니 만화 속의 노란드레스가 아니라 신화 속 여신같은 백색 드레스 차림에 루이비통 가방을 들고 있지만.)
머리와 입으로는 이렇게 주장하면서, 이 나이에도 … 왕자와 공주의 행복한 미소를 보면 부럽기 그지없다. 내가 너무나 예뻐서 착하게 굴어도 손해볼 것 없는 공주로 태어났더라면, 그리하여 가만있어도 행운이 찾아와준다면, '마녀를 위하여' 따위 말은 안했을지도 모르고.
source : 동아일보 <김순덕의 뉴욕일기>
=> 이 글은 제가 인상깊게 읽었던 글입니다..제가 여자라서 그런 것인지~더 가슴에 가깝게 다가서더군요..그래서, 다른 분들도 읽어보셨으면 해서 올립니다..
[펌]마녀가 더 섹시하다
(연거푸 디즈니 월드 얘기를 꺼내서 죄송하지만) 디즈니 월드에서 펼쳐지는 퍼레이드 가운데 가장 환호를 받은 주인공은 동화 속의 마녀, 또는 악녀들이었다. 왜 있지 않은가. '백설공주'의 계모, '인어공주'에서 공주에게 목소리를 준 마녀, '101마리의 개'에서 달마시안 강아지를 괴롭히던 여자 말이다.
구경꾼들은 백설공주와 왕자, 인어공주와 왕자, 신데렐라와 왕자 (숨차다. 왕자들은 왜 그리도 흔한지)가 다정스럽게 손잡고 나올 때도 좋아했지만, 그 뒤를 이어 마녀들이 도도한 표정으로 등장하자 소리를 지르며 반가워했다.
디즈니 월드안엔 이런 마녀 관련 상품만 모아놓은 가게도 있다. 나처럼 그로테스크한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겨냥했는지도 모르겠으나, 마녀로 가득한 티셔츠 위에 쓰여진 '착한 것보다 착하게 보이는 것이 더 좋다'같은 문구는 내 마음에 쏙 들었다.
▼공주면 다냐!▼
'정치적으로 올바르기'를 추구하는 학자들, 특히 페미니즘 학자들이 동화를 새로 쓰기 시작한 것은 꽤 된 일이다. 그 공주들이 한결같이 예쁘고 착하다는 점, 남의 도움으로 성공한다는 것, 게다가 첫눈에 왕자를 사로잡아 오래오래 행복하게 산다는 점은 내 비위에 안맞았다 (맞다. 내가 예쁘지도 착하지도 않고 왕자라곤 구경도 못해봤기 때문이다).
백설공주만 해도 그렇다. 백설이가 한게 뭐가 있나. 계모에게 구박받다가 숲으로 쫓겨가 일곱 난쟁이 집에서 가정부 노릇을 한 것 밖에 없다. 멍청하게도 "낯선 사람을 조심하라"는 난쟁이들의 당부를 몇 번이나 어기고는 사과를 먹다 목에 걸려 죽을 뻔했다.
인어공주는 또 어떻고. 목소리와 바꾼 인어공주의 미끈한 다리는 참으로 의미심장하다. 자기 주장을 버리고 남자를 받아들일수 있는 성기를 얻었다는 뜻이다. 디즈니만화에선 해피엔딩으로 변질됐지만, 원래 동화에선 왕자에게 배신당하고 만다.
신데렐라를 생각해도 화가 치민다. 왕자의 눈에 띈 것은 아름다운 드레스와 마차를 선사한 '착한 마녀'의 도움 덕분이었다. 유리구두 역시 여성의 성기를 상징한다고 풀이하는 전문가들도 있다.
▼차라리 마녀가 낫다▼
이들에 비하면 마녀들은 훨씬 인간적이고도 섹시하다 (나는 남자고 여자고 간에 섹시하다고 하는 걸 최대의 찬사로 생각하는 사람이다). 그들은 스스로의 힘으로 자기가 원하는 것을 얻고 지키려고 부단히 노력했다.
백설공주의 계모는 백설공주를 죽일수 있는 마법을 열심히 개발했고, 인어공주 속의 마녀도 생선 꼬리를 사람 다리로 바꾸는 고난도의 약물 만들었다. 우리도 공부를 해봐서 알지만 계속, 더 높은 단계로 나아갈수 있게 공부하게 어디 쉬운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마녀의 굴레를 쓴 것은 '여자는 모름지기 착하고 예뻐야 한다'는 신화 때문이다. 이들 동화가 나타나 사랑받던 시기에, 여자가 어떤 능력을 갖고 그걸 발휘하려 드는 것은 비난받아 마땅한 일이었다.
실제로 중세 유럽에서 화형당한 '마녀'들이 진짜 마녀였는지는 의문이다. 아픈 사람을 치유하거나, 아이들과 약한 사람들을 도와줘 주위에 사람을 모으거나, 어떻게든 자기 능력을 발휘하려던 똑똑한 여자들이 마녀로 몰렸다는 연구도 있다.
▼우리 곁에 있는 마녀들▼
이런 마녀는, 아니 마녀로 몰리는 여자는 지금도 존재한다. 최근 뉴욕타임스가 소개한 알리슨 쉬펠린(40)이라는 여자도 그 중의 하나다.
월스트리트의 저명한 회사 모건 스탠리에 젊음을 바쳐온 그는 자타가 공인하는 일벌레였다. 일에만 몰두한 탓에 이혼한 것과 다름없다고 전 남편이 인정했을 정도다. 연봉 100만달러를 받던 쉬펠린이 2000년말 돌연 해고를 당했다. 여성에게 적대적인 직장환경을 항의하고, 실적으로 보아 당연히 승진돼야할 자신이 왜 안되는지를 물었다는 이유로.
물론 모건 스탠리가 밝히는 해고 사유는 따로 있다. 쉬펠린이 명령계통에 복종하지 않고 상사에게 육체적 위협을 가했다는 거다. 하지만 멀끔한 외모와 달리 모건 스탠리의 남자들은 여자동료들을 열등한 존재로 취급했으며 여성 담당자를 따돌리고 고객과 함께 토플리스바에 가서 진탕 놀면서 관계를 돈독히 했다고 알려져 있다.
자신이 '유리 천장'에 가로막혀 있음을 연방정부에 호소한 쉬펠린은 이같은 월 스트리트의 관행에 도전한 흔치 않은 여자다. 쉬펠린이 '문제'를 제기하는 동안, 이 회사는 부랴부랴 여성들을 대거 승진시켰다. 당연히 쉬펠린은 빼고. 만일 그가 그저 착하게 일만 했다면, 절대 '화형'당하지 않았을 거다.
▼마녀를 위하여▼
사실 여성에 관한 얘기를 쓸 때마다 나는 혼자 눈치를 본다. 남자들이 이 글을 읽으면 싫어할텐데 하고. 여권론자, 또는 트러블 메이커라는 소리를 들을까봐 (자칫하면 마녀로 찍힐지도!) 회사 근처에선 여성의 '여'자도 꺼내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나다.
하지만 마녀들의 등장에 환호하는 어린 소녀들을 보면서 우리는 변화를 감지하게 된다. 남의 도움으로 왕자의 사랑을 차지하는 예쁘고 착하기만 한 공주보다는, 자기 힘으로 원하는 것을 성취하려는 마녀가 훨씬 매력적인 역할 모델로 다가온다는 얘기다.
예쁘고 착하지 않아서, 공주라는 든든한 배경이 없어서, 뭔가 얻으려고 움직여대서 남자들의 눈엔 마녀로 보일지 몰라도 그들은 결코 마녀가 아니다. 세상이 달라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공주와 마녀 스토리를 재생산해는 기득 구조의 저의가 되레 의심스럽다.
(맨해튼 5번가 57번지에 새로 짓고 있는 루이비통 건물에 걸려있는 광고판도 입을 떡 벌리게 만든다. 백설공주가 일곱난쟁이를 거느리고 있는 장면이다. 물론 백설공주는 디즈니 만화 속의 노란드레스가 아니라 신화 속 여신같은 백색 드레스 차림에 루이비통 가방을 들고 있지만.)
머리와 입으로는 이렇게 주장하면서, 이 나이에도 … 왕자와 공주의 행복한 미소를 보면 부럽기 그지없다. 내가 너무나 예뻐서 착하게 굴어도 손해볼 것 없는 공주로 태어났더라면, 그리하여 가만있어도 행운이 찾아와준다면, '마녀를 위하여' 따위 말은 안했을지도 모르고.
source : 동아일보 <김순덕의 뉴욕일기>
=> 이 글은 제가 인상깊게 읽었던 글입니다..제가 여자라서 그런 것인지~더 가슴에 가깝게 다가서더군요..그래서, 다른 분들도 읽어보셨으면 해서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