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선홍 수기] <1> 마지막 월드컵

김항준2002.0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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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잔잔한 감동을 주는 글이라서 10회 분량을 다 퍼올려구 합니다....

 

[황선홍 수기] <1> 마지막 월드컵

본지는 2002년 한·일월드컵을 끝으로 14년간 달아온 태극마크를 반납한 '황새' 황선홍(34·가시와 레이솔)의 축구 인생을 수기 형식으로 10회에 걸쳐 재조명한다.

월드컵에 4회 연속 출전한 황선홍은 폴란드와의 조별리그 1차전에서 선취골을 뽑으며 아시아 사상 첫 4강 신화의 든든한 초석을 다진 주인공이다. A매치 102경기에서 50골. 황선홍의 드라마 같은 인생의 굴곡을 따라가다 보면 한국 간판 스트라이커의 성공과 좌절을 만날 수 있다. 지친 날개를 접을 준비를 시작한 황선홍의 첫 이야기는 그의 축구 인생에서 빼놓을 수 없는 2002년 월드컵이다.<편집자주>

6월22일 광주월드컵경기장에서 벌어진 스페인과의 8강전에서 맞은 승부차기.
 
코칭스태프가 승부차기의 순번을 알려줬다. 1번. 순간 나의 마지막 몫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최고 선배로서 치러야 할 '형벌'이나 다름없었다. 슛하는 찰나, 골키퍼가 뜨는데 아차 싶었다. 오른쪽 코스를 선택, 공이 잘 맞으면 골대 상단에 꽂히지만 잘못 맞으면 그 정도 높이에서 막히곤 한다. 전날 페널티킥 훈련 도중 '골키퍼가 막으면 어쩔 수 없다. 무조건 그 쪽으로 때리겠다'는 방향 설정을 해놓았다. 볼이 골키퍼 옆구리를 맞고 골인되는 것을 보면서 몸이 얼어붙는 줄 알았다.
 
이번 월드컵은 나를 세번 울렸다. 첫승을 올린 폴란드전과 16강, 8강에 올랐을 때였다. 14년간 태극마크를 달면서 선수들이 승리했을 때 그처럼 눈물이 나도록 감격스러워한 적이 있을까. 지금까지 겪어 보지 못한 새로운 경험이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것도 첫승하던 순간이었다. 후배들도 16강이 확정됐을 때보다 첫승한 날 더 기뻐했다. 경기 전 라커룸에서는 베스트 11명과 감독, 코치만 파이팅을 외치고 후보선수들이 뒤에서 등을 두드려주는 게 관례다. 그런데 폴란드전은 닥터에서부터 장비담당, 주무까지 라커룸에서 어깨동무를 했다. 예전의 파이팅과는 아주 많이 다른 뭔가가 느껴졌다. '우리는 하나'라는 느낌은 처음이었다.
 
폴란드와의 1차전 전반 26분. 수비수와 2대2 상황. (이)을용이가 킥이 좋으니까 됐다 싶어 순간적으로 뛰어들어갔고 '구석이 어딘가' 생각했다. 을용이의 센터링은 뒤쪽에서 올라오는 경우여서 때리기 힘들었다. 왼발을 대기만 하려고 했는데 타이밍이 좋았다. "한두번 찬스가 오면 놓치지 않겠다"던 경기 전날의 인터뷰만 생각했다. 골을 넣고 벤치로 달려갔는데 선수나 코칭스태프나 눈물이 안 떨어질 뿐이지 모두 눈가에 이슬이 맺혀 있었다.
 
물러설 곳이 없다는 사실은 나를 채찍질하는 힘이 됐다. 솔직히 부담스러웠지만 더 이상 비난받을 기회도 없는 거니까 후회없이 해 보자고 다짐했다. 대표팀 버스를 타고 팬들의 환호를 받으며 운동하는 것, 후배들과 식사를 하면서도 문득 마지막이라는 생각이 들면 애착이 생겼다. 매경기 '18번 유니폼을 다시 입을 수 있을까'라는 알 수 없는 기대와 서운함…. 이탈리아를 꺾었을 때 '한경기를 더 뛸 수 있게 됐구나'라는 안도감이 들어 핌 코치와 포옹하는데 눈물이 핑 돌았다. 마지막이어서 하늘이 도와준 듯하다.
 
몸이 안 좋은 건 아쉬웠다. 폴란드전 직후 왼쪽 엉덩이 아래쪽 근육이 문제였다. 순간 스피드를 내려고 하면 찢어질 듯 아팠다. 2∼3일 쉬었는데 '뛰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 감독에게 "아프지 않다"고 말했다. 경기 당일은 진통제 주사를 맞아 괜찮았는데 훈련은 통증을 참고 뛰느라 실전보다 힘들었다. 히딩크 감독은 훈련을 설렁설렁하면 절대 출전시키지 않는다. 이탈리아와 스페인전에서 한번씩 결정적 찬스를 놓쳤는데 졌다면 가차없이 내게 화살이 돌아왔을 것이다.
 
지난 6일 일본으로 돌아가는 비행기에서 많은 생각을 했다. 첫째는 '이제는 쉴 수 있구나'였고, 둘째는 '한국에서 더 이상 축구를 못할 수도 있겠구나'였다. 지난 2일 국민대축제에 참석한 뒤 마음이 편치 않았다. "여러분 사랑합니다"라고 인사하는데 어찌나 떨리든지. 그렇게 많은 팬을 다시 만날 수 있을까. 한국에서 은퇴한다고 했는데 가능할지 모르겠다. 안 하겠다는 것은 아니지만 플레잉코치를 하면서 느슨하게 선수생활을 하고 싶지 않다. 축구 욕심이 많아 그렇다. 나이를 먹어도 대표팀에서 부르지 않으면 선수 생명은 끝이라고 생각한다. 선수 생활을 하는 한 대표팀에 있어야 한다고 믿어왔다. 가시와 레이솔과의 계약이 만료되는 10월 말을 전후로 인생을 바꿀 결단이 기다리고 있다.


[정리〓김미연 기자 ibiza@ho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