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선홍 수기] <7> 영원한 내사랑

김항준2002.0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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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선홍 수기] <7> 영원한 내사랑

황선홍
[황선홍 수기] <7> 영원한 내사랑

황선홍 부인

폴란드전 2-0 승리. 월드컵 첫승. 결승골을 터트린 감격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아내는 경기가 끝나기 무섭게 대표팀이 묵고 있던 숙소로 달려왔다. 나를 보자마자 목을 끌어안고 흐느꼈다. "태어나서 이렇게 기쁜 날은 처음이에요…." 말을 잇지 못하는 아내….
 
나는 "다시 태어나도 지금 부인과 결혼하겠느냐"는 질문을 받을 때마다 "그렇다"고 주저없이 대답한다. 절망과 좌절에 빠져 있을 때 늘 곁에서 희망의 노래를 불러줬던 그다.
 
어렸을 때 단란한 가정에서 자라지 못해서인지 나이가 들수록 가정에 대한 애틋한 감정이 점점 강해지는 것 같다.
 
지금도 운동을 나갈 때면 딸 현진이(9)와 아들 재훈이(5)가 보는 앞에서 일부러 아내의 볼에 뽀뽀를 해준다. 의도적이기는 하지만 아빠 엄마가 이렇게 잘 지내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서다. 나는 초등학교 때 부모님이 우리에게 잘해주는 것보다 두분이 서로 다정하게 지내는 모습을 보는 게 소원이었다.
 
헤어져 서로 큰 고통을 겪었던 부모님처럼 돼서는 안된다는 다짐은 아이들 얼굴을 볼 때마다 더욱 단단해진다.
 
아내와는 대화를 많이 하는 편이다. 하지만 축구 얘기, 특히 나도 모르게 몸 어디가 안 좋다고 하면 아내는 너무 민감하게 반응해 며칠 동안 고민을 한다. 그런 까닭에 가급적 밖의 일이 아닌 가장 쉽게 공통분모를 찾을 수 있는 아이들 문제를 놓고 얘기를 나눌 때가 많다. 공부는 잘하고 있는지, 앞으로 무엇을 시키면 좋을지 등.
 
둘째 재훈이는 운동에 소질이 있어 축구를 시키고 싶은 마음이 있지만 아내는 여전히 결사반대다. 도시락을 싸갖고 다니면서라도 말리겠다며 벌써부터 엄포다. 여러 차례 수술대에 누웠던 나를 봐서 그런지….
 
사실 아내와 결혼에 골인할 수 있었던 것도 수술 때문이었다. 올해로 결혼 9년째. 두살 아래인 아내를 만난 것은 93년 초였다. 당시 나는 독일 2부리그의 부퍼탈에 있었다.

어느날 아는 후배들이 본대학에서 축제가 있다며 같이 놀러 가자고 했다. 축제에 가서 한국 학생들과 어울렸는데 한눈에 들어오는 어여쁜 아가씨가 있었다. 첫눈에 반했다. 후배에게 맛있는 것은 뭐든지 사줄 테니 '소개팅'을 해달라고 보채 첫 만남이 이뤄졌다.
 
축구가 몇명이 하는 운동인지도 모르고, 제법 알려졌다고 생각했는데 '황선홍'이라는 이름도 모르고 있던, 그저 공부만 할 줄 아는 순수한 여학생. 그녀는 나를 딱 한번 만난 뒤 그야말로 피할 수 없는 고행길에 들어섰다. 나는 곧바로 무릎수술을 했고 전화를 걸어 거동을 하기 힘드니까 도와줄 수 없겠느냐고 또 한번의 프러포즈를 했다.
 
이때부터 공부만하던 여학생은 하루도 빠짐없이 내 병상을 지켰다. 어학연수 일정이 모두 끝났지만 나 때문에 귀국을 6개월 늦추기도 했다.
 
93년 6월 2년간의 독일 생활을 정리하고 귀국 비행기를 탔다. 옆좌석에는 아내가 있었지만 공항에서 기자들에게 들킬까봐 제 각각 행동을 했다. 내가 먼저 나가 인터뷰를 해 기자들을 감쪽같이 따돌리기도 했다.
 
포항에 복귀한 뒤 합숙 때문에 서로 만나는 횟수가 급격히 줄어들었다. 합숙이 없는 독일에서는 둘만의 시간을 많이 가질 수 있었는데 너무 답답해 미칠 지경이었다. 그래서 용기를 내 결혼을 하자고 했고, 그해 크리스마스에 우리는 부부가 됐다.
 
결혼한 뒤 와이프에게 처음 만났을 때 내가 어땠느냐고 묻자 "인상이 선하고 악의가 없는 것 같아 편했다"고 했다. 아내도 혹시 첫 눈에 반한 것은 아닐까….
 
아내는 9년간 참 힘든 시간을 보냈다. 좋아하는 여행 한번 제대로 못 가고 늘 조바심 속에 살았다.
 
98년 프랑스월드컵 때 부상 소식에 밤새 울어 눈이 퉁퉁 부어올랐던 아내. '불운의 스트라이커'를 만나 지금껏 남편의 날개를 펴주지 못했다는 자책감을 안고 살았던 아내. 그러면서도 별 내색없이 건강하게 가족을 잘 지켜준 아내….

정지원씨! 사랑합니다.  


정리〓양정석 도쿄특파원 jsyang@ho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