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보야! 대학교 4학년 때 생각나니? 드래프트를 거부할 때 말이야. 거의 한달 동안 같이 지냈잖아. 얘기를 참 많이 했는데…. '왜 우리가 원하는 팀에 정당한 대우를 받고 갈 수 없나' 하고 고민을 많이 했었지. 돈! 지금 생각해 보면 사실 돈은 둘째 문제였던 것 같은데…. 둘이 함께 청주에 농구구경도 갔고….
명보야! 네가 유니폼을 벗고 감독이 된다면 나보다 훨씬 잘할 수 있을 거야. 둘이 똑같이 감독이 된다면 내가 너를 이길 수 있을까?
솔직히 말해 봐! 너, 그 날(폴란드전) 눈물 흘렸지? 내가 골을 넣었을 때 네가 제일 기뻐했잖니.
***********************************
명보를 처음 만난 것은 90년이었다. 나는 건국대 시절인 88년 태극마크를 처음 달았고, 명보는 90년 고려대 4학년 때 대표팀에 합류했다. 명보는 호적상으로는 분명 나보다 한살이 어렸지만 같은 학년이라 당연히 친구가 됐다. 지금도 명보는 동갑이라고 우기지만 그 당시 내 기억은 정확하다. 한살이 어리지만 형 같은 친구였다.
대표팀에서의 막내. 외국에 나갈 때면 늘 둘의 보따리에는 고추장과 김치가 차곡차곡 쟁여져 있었다. 대표팀 '쫄따구'. 하는 일도 똑같고 선배들에게 반응하는 행동도 똑같을 수밖에 없었던 살벌한 분위기가 우리를 꽁꽁 묶어놓았다.
J리그 가시와에서도 다른 외국선수들은 우리 사이를 조금 이상하게 봤다. 분명 내가 한살 많은데 치고받고 장난치는 모습이 의아했던 모양이다.
속깊은 친구. 어떤 상황에서도 냉정하게 판단을 잘하는 친구다. 그동안 나의 진로에 적잖은 영향을 미쳤다. 조언이나 충고를 할 때는 무서우리만큼 냉정하다. 분위기에 휩싸이지 않고 늘 이성이 앞선다.
똑똑한 친구. 아는 것이 많은 게 아니라(정말 아는 게 많은지 몰라도) 판단력이 뛰어나다. 축구할 때의 모습 그대로다.
명보야! 그동안 누구보다 나를 안쓰럽게 생각했던 사람이 바로 너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집사람 빼놓고 말이야. 부상으로 좌절에 빠졌던 나를 볼 때마다 어떻게 해줬으면 좋겠는데, 어떻게 해줄 수 없어 안절부절못했던 너잖아. 이제 더 이상 걱정은 하지 않겠구나. 폴란드전에서 내가 골을 넣을 때 미친 듯이 달려오던 네가 문득 떠오른다.
축구팬들은 나와 명보가 라이벌 의식이 강할 것으로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나는 많은 어려움 속에서도 지금껏 '너를 밟아야 내가 일어설 수 있다'라는 어리석은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나보다 좀더 행복하게 지냈던 명보는 두말 할 필요가 없다. 그래서 지금껏 좋은 관계가 유지되고 있는지 모른다.
라이벌? 우리는 신문에서 이런 문구를 볼 때마다 서로 피식 웃곤 했다.
만난 지 14년. 내가 세레소 오사카에 있고, 명보가 벨마레 히라쓰카에 있던 1년반 정도를 제외하고는 늘 붙어다녔다.
명보야! 94년 미국월드컵 때의 일을 기억하니. 내 어깨를 두드리며 아무 말도 하지 못했던 너를 잊을 수가 없다. 이제 우리에게는 또 다른 길이 놓여 있는 것 같다.
[황선홍 수기] <8> 친구에게 보내는 편지
[사진=연합]
명보야! 대학교 4학년 때 생각나니? 드래프트를 거부할 때 말이야. 거의 한달 동안 같이 지냈잖아. 얘기를 참 많이 했는데…. '왜 우리가 원하는 팀에 정당한 대우를 받고 갈 수 없나' 하고 고민을 많이 했었지. 돈! 지금 생각해 보면 사실 돈은 둘째 문제였던 것 같은데…. 둘이 함께 청주에 농구구경도 갔고….명보야! 네가 유니폼을 벗고 감독이 된다면 나보다 훨씬 잘할 수 있을 거야. 둘이 똑같이 감독이 된다면 내가 너를 이길 수 있을까?
솔직히 말해 봐! 너, 그 날(폴란드전) 눈물 흘렸지? 내가 골을 넣었을 때 네가 제일 기뻐했잖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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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보를 처음 만난 것은 90년이었다. 나는 건국대 시절인 88년 태극마크를 처음 달았고, 명보는 90년 고려대 4학년 때 대표팀에 합류했다. 명보는 호적상으로는 분명 나보다 한살이 어렸지만 같은 학년이라 당연히 친구가 됐다. 지금도 명보는 동갑이라고 우기지만 그 당시 내 기억은 정확하다. 한살이 어리지만 형 같은 친구였다.
대표팀에서의 막내. 외국에 나갈 때면 늘 둘의 보따리에는 고추장과 김치가 차곡차곡 쟁여져 있었다. 대표팀 '쫄따구'. 하는 일도 똑같고 선배들에게 반응하는 행동도 똑같을 수밖에 없었던 살벌한 분위기가 우리를 꽁꽁 묶어놓았다.
J리그 가시와에서도 다른 외국선수들은 우리 사이를 조금 이상하게 봤다. 분명 내가 한살 많은데 치고받고 장난치는 모습이 의아했던 모양이다.
속깊은 친구. 어떤 상황에서도 냉정하게 판단을 잘하는 친구다. 그동안 나의 진로에 적잖은 영향을 미쳤다. 조언이나 충고를 할 때는 무서우리만큼 냉정하다. 분위기에 휩싸이지 않고 늘 이성이 앞선다.
똑똑한 친구. 아는 것이 많은 게 아니라(정말 아는 게 많은지 몰라도) 판단력이 뛰어나다. 축구할 때의 모습 그대로다.
명보야! 그동안 누구보다 나를 안쓰럽게 생각했던 사람이 바로 너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집사람 빼놓고 말이야. 부상으로 좌절에 빠졌던 나를 볼 때마다 어떻게 해줬으면 좋겠는데, 어떻게 해줄 수 없어 안절부절못했던 너잖아. 이제 더 이상 걱정은 하지 않겠구나. 폴란드전에서 내가 골을 넣을 때 미친 듯이 달려오던 네가 문득 떠오른다.
축구팬들은 나와 명보가 라이벌 의식이 강할 것으로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나는 많은 어려움 속에서도 지금껏 '너를 밟아야 내가 일어설 수 있다'라는 어리석은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나보다 좀더 행복하게 지냈던 명보는 두말 할 필요가 없다. 그래서 지금껏 좋은 관계가 유지되고 있는지 모른다.
라이벌? 우리는 신문에서 이런 문구를 볼 때마다 서로 피식 웃곤 했다.
만난 지 14년. 내가 세레소 오사카에 있고, 명보가 벨마레 히라쓰카에 있던 1년반 정도를 제외하고는 늘 붙어다녔다.
명보야! 94년 미국월드컵 때의 일을 기억하니. 내 어깨를 두드리며 아무 말도 하지 못했던 너를 잊을 수가 없다. 이제 우리에게는 또 다른 길이 놓여 있는 것 같다.
정말 고맙다!
정리〓양정석 도쿄특파원 jsyang@hot.c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