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그맨 이혁재 "나, 변했어 이젠 웃지마"

임정익2002.0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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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그맨 이혁재(29)가 탤런트로 데뷔했다. 풍운아 김두한의 일대기를 다룬 SBS '야인시대'(극본 이환경.연출 장형일)를 통해서다. .유도선수 출신으로 쌍칼패에 몸담고 있다가 김두한의 부하가 되는 천하장사 김무옥 역이다. .지난 14일 오후 6시 경기도 부천시에 마련된 야외세트장에서는 김무옥이 김두한과 처음 만나 '맞장(맞대결)'을 뜨는 장면이 연출됐다. 개그맨에서 건달로 변한 그의 모습은 어떠할까. 스타들이 땀을 쏟아내는 현장을 찾아가는 '생생 스타'의 첫 상대는 그래서 이혁재로 결정했다. .호돌이 배지가 달린 빵모자를 쓰고 고동색 파이프를 입에 문 장형일PD는 가만히 앉아 있질 못했다. 원하는 '그림'을 얻기 위해 모니터와 현장을 오가며 "큐, 컷"을 외칠 때마다 그의 가슴팍에 매달린 라이터와 볼펜이 춤을 춘다. 그 사이 머리에 수건을 동여맨 인력거꾼, 기모노 차림의 일본인, 갓을 쓴 도포차림의 할아버지, 화려한 원피스를 입은 신여성들이 몇 차례고 반복해 거리를 오갔다. .이혁재는 카메라 뒤에서 잠시 쉬고 있었다. 짙은 남색 더블재킷에 흰 맥고모자. 1백70㎝에 88㎏, 커다란 얼굴에 날카로운 눈매가 제법 잘 어울렸다. 장PD가 막간을 이용해 기자를 소개하자 "어디 식구인가"라며 사투리로 너스레를 떨었다. .-어떻게 출연하게 됐죠? ."장감독님이 몇년 전 드라마 '덕이'를 할 때 같이 일해 보자고 했어요. 그때는 아직 개그맨으로 검증도 못받은 상태라 도저히 못하겠다고 했죠. '기회되면 보자'고 했는데 이번에 불러줬어요." .-드라마 해보니 어때요? ."가슴이 벌렁벌렁 해요. 카메라도 오락 프로그램 때와 다른 것 같구요. 무엇보다 철저하게 극중 인물로 살아야 한다는 점이 매력적이에요. 일주일에 나흘을 여기 매달리고 있는데, 정말 일 좀 하는 것 같다니까요." .-드라마에서도 웃기나요? ."그런 요소가 분명히 있어요. 그래서 감독님과 계속 얘기 중인데, 개그맨이라 오버한다는 말은 듣고 싶지 않고요. 연기 잘하는 개그맨이라는 소리 좀 들어보려고 해요." .문득 함성이 들려 고개를 돌리니 김두한과 김무옥의 대역배우들이 한창 대결하고 있었다. 물론 주인공과 같은 옷차림이다. 모래를 튀기는 돌려차기가 실전을 방불케 할 정도로 매섭다. ."자, 이제 재모하고 혁재!" .보조요원 두 명이 달려나와 이혁재와 청년 김두한 역을 맡은 안재모의 얼굴과 옷에 스프레이로 물을 뿌린다. 순식간에 땀에 젖어 번들거리는 모습으로 변했다. ."살살 차라, 재모야." .싸움 연기에 열중하던 안재모가 돌려차기 도중 미끄러진다. 순간 기다렸다는 듯 이혁재가 익살을 떤다. "(이렇게 열심히 하니)제가 감동받으실거라 그랬죠." .혁재의 말에 긴장했던 군중들이 비로소 웃음을 머금는다. 대역들만큼 날렵하진 못하지만 흙먼지도 일으키면서 성공적으로 촬영을 마친 그의 이마엔 진짜 땀이 맺혀 있었다. .격투기도 좀 했느냐고 묻자 "격투기만 빼고 다 해봤다"고 대답한 이혁재의 숨겨진 특기는 서예. 급한 성미 좀 죽이라며 부모님이 여섯살 때부터 시킨 서예를 지금까지 하고 있다. 특히 구양순체를 즐겨 쓴다고. .이혁재는 인하대 기계공학과에 재학 중이던 1998년 KBS2-TV '수퍼TV 일요일은 즐거워'의 '캠퍼스 영상가요'에 출연해 친구들과 차력연기를 선보이며 화제가 됐다. .99년 MBC 개그맨 공채 10기로 공식 입문한 이래 본인 말마따나 유행어 하나 못 만들었지만, KBS의 '토요대작전'과 '주말 버라이어티쇼', SBS의 '좋은 친구들'과 '뷰티풀 선데이'등에 출연하며 인기 가도를 달리고 있다. .뭐든 지나칠 정도로 열심히 하는 그의 모습에 절로 웃음이 난다는 기자의 말에 그는 "그렇게 봐주셨다면 제 의도가 성공한 셈"이라고 했다. "열심히 하는 모습에서 나오는 자연스러운 웃음이야말로 내가 추구하는 웃음의 본질"이라는 얘기였다. .지난 4월 결혼한 그는 신혼의 단꿈이 한창이다. "키 크고 잘 생긴 분들이 결혼하면 그 많던 팬들이 다 사라지잖아요. 저는 결혼하니까 팬들이 더 좋아하세요. 와이프도 무지 착하고. 행운아인가 봐요." .땀을 닦아낸 그의 얼굴에 편안한 웃음과 석양이 겹쳐 보기 좋게 물들었다. 이제 그는 인천에 있는 집으로 돌아가 부모님과, 아내와 함께 오늘 하루를 보낸 이야기를 도란도란 나눌 참이었다.     중앙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