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냄새

은하철도 2006.0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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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냄새



실실 웃으며 반찬가게 앞에 서서 쭈빗쭈빗 대다가 ‘김치 좀 주셔’하면, 주인아줌마는 달갑지 않은 표정으로 ‘어떤 김치요?’하고 되묻는데, 나는 별안간 뾰루퉁하게 튀어나온 아줌마의 입술을 그냥 콱 깨물어주고 싶어진다. 여자의 입술은 예뻐서 깨물어주고 싶어지기도 하겠지만, 얄미워서도 깨물어주고 싶어지니, 나처럼 천대받으며 단골노릇 하는 사람도 없을 것이다.

반찬가게에 처음 갔을 때부터 그 아줌마에게 미운털이 박혔으니, 비닐봉투에 담는 김치의 양이 영 적어 보여서 ‘더 줘요, 그게 뭐예요?’했는데, 이상하게 내 말이 속을 콱 뒤집었는지 아줌마는 ‘뭐가 적어요? 많이 주는 거잖아요.’하고 눈을 흘겼다. ‘아이, 정말...... 삼천 원 어치가 그게 뭐예요?’하고 또 한 마디 던지니깐, 김치 담긴 비닐봉투를 저울위에다가 탁 얹더니 바늘침을 가르치며, ‘봐요, 삼천 삼백 원어치잖아요.’했는데, 아무리 봐도 양이 적어보여서 ‘에이, 정말 뭔 김치가 그렇게 비싸요?’하고 투덜댔다.


돌아오면서 가만히 생각해보니 기분이 묘했다. 물건을 팔아주면서 괜히 구박받은 느낌이었다. 다음부터는 그 가게에 안 가려고 작정했는데 김치를 먹어보니 그 맛이 일품이라, 다음에 또 그 집에 들리 게 되었다. 슬금슬금 가게에 다가가니 그 아줌마의 성격이 원래 그래서인지, 약간은 화가 난 듯, 뭔가 삐진 듯, 누구에게라도 한대 콱 쥐어박고 싶은 듯, 그리고 원래 좀 튀어나온 입술이면서도, 뽀루퉁하고, 양 볼도 역시 사탕을 문 모양으로 뽈록뽈록 튀어나와 보였으니, 어떤 양반이 저 여편네하고 사나,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아마 반찬솜씨 때문에 살겠지, 늙으면 음식 맛으로 산다던데,


반찬을 이리저리 둘러보는 척 하면서 아줌마의 옆얼굴을 힐끔힐끔 훔쳐보다가 고개를 휙 돌린 아줌마의 눈과 그만 딱 마주쳐버렸다. 나는 능글능글 표정으로 실실 웃으며 ‘저기 있는 김치가 좀 쉰 것 같은데, 그렇죠?’하고 말을 던졌다. 그러자 아줌마의 튀어나온 입술이 더욱 앞으로 쭉 내밀어지더니, ‘뭐가 신김치에요? 우리 집에서는 그런 김치 안 팔아요.’하고 기분이 아주 나쁘다는 말투로 응수했는데, 그냥 사근사근하게 안 그렇다고 하면 그만이지, 꼭 이렇게 대답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자 나는 슬슬 짓궂어지기 시작했다. ‘정말이에요? 근데 되게 맛없게 생겨먹었네, 때깔이 영 아냐,’하고 눙쳐 말하니깐, 아줌마는 부르르 떠는 듯한 볼을 몇 번 실룩실룩 대더니 속을 꾹꾹 눌러 참으며 말하는 투로, ‘아니면, 그만 두세요. 누가 사 가라고 했어요?’한다.


사실 나도 기분이 좀 나빴지만 명색이 남자인데 여자처럼 뾰루퉁할 일이야 없지, 목소리도 끈적끈적 대듯 ‘저 열무김치는 안 익은 것 같아, 언제 익을 때를 바라고 사가? 음...... 이 배추김치는 꼭 미친년 머리카락 쥐어뜯은 모양이야, 그래도 맛은 있어 뵈네,’하고 치근치근 댔다. 내 손길에 고개를 갸웃갸웃 대던 아줌마는 정말 미운 오리새끼 쳐다보듯 힐끔 눈을 흘기더니, ‘빨랑빨랑 사가던지 말던지 해요, 아유, 바빠 죽겠는데,’하는 것이었다. ‘네? 빨랑빨랑 사가라고 말하는 거야 이해할 수 있는 말인데, 말던지는 뭐예요? 살 테면 사고 말 테면 말라는 식으로 장사하는 아줌마는 첨 보네,’했는데, 기분 나빠서 던지는 손님의 말투 치고는 너무도 다정했으니, 아줌마에게 더 트집 잡을 기회를 주지 않기 위한 수법이었다.

‘아휴, 또 고만큼이야? 정말 왜 나한테만 적게 주는 거예요?’

‘저울을 봐요. 삼천 원이 넘었잖아요.’

‘앗따 그 놈의 저울은 나한테만 야박한 모양이야.’

‘얼른 가져가던지 해요. 무슨 아저씨가 그렇게 말이 많아요?’

‘말하고 싶어서 하나요, 너무 양이 적어서 그렇지.’


사실 그 날은 아줌마한테 노골적으로 구박 받았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었다. 목소리 축축하게 능글능글 대는 내가 그렇게 뵈기 싫었나? 손에 들린 김치봉투를 내려다봤다.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 비싸, 삼천 원 어치가 이게 뭐야, 하는 의아심이 여전해서 오늘도 추근추근 댄 모양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소비자는 왕이라는데 내가 주도권을 쥐고 있는 시장판이 아닌가,

세 번째 들리는 그 가게였다. 내가 앞에서 쭈빗 거려도 아줌마는 아예 쳐다보지도 않았다. 은근히 장난기가 동했다. ‘저번에 사 간 배추김치 말이에요. 너무 새우젓을 많이 넣은 것 같아요. 맛이 영 그렇던데,’하고 슬쩍 운을 떼었지만 아줌마는 들은 척도 안했다. 아프리카원주민처럼 삐죽 튀어나온 저 입술에서 ‘당신한테는 안 팔아욧.’하는 소리가 나오게 해야 할 텐데, 어떻게 염장을 퍽퍽 지를까, 하는 생각에 골똘하던 나는 총각김치를 손가락으로 들추면서, “이거 익은 거예요?‘했다. 아줌마는 돌아보지도 않고 ’네, 잘 익었어요.‘한다. 어쭈 저 여편네가 이제는 사람취급도 안 하네,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꾹 참고, ’익었으면 얼른 장가 보내야죠. 이대로 두었다가 시들시들해져서 노총각 되면 슬픈 일이 아니겠우?”했다. 아줌마는 눈꼬리를 꼬여 치뜨더니 ‘신경 쓰지 말아욧, 어련히 알아서 다 갈까봐 그래요?’한다.

나는 총각무를 들어서 이리저리 훑어보다가 ‘삼천 원 어치만 주셔.’했는데, 저번에 사간 배추김치와 열무김치보다 훨씬 양이 적어 보였다. ‘얼래? 왜 이렇게 양이 적어요? 날이 갈수록 점점 더 하네,’하고 느물대니깐, ‘달랑무가 무겁잖아요.’한다.

‘달랑무? 이거 총각김치인데, 내가 보기에는 방망이무 같은데, 안 그래요?

‘총각무나 달랑무가 다 같은 말이지, 왜 그래요? 잘 알면서.’

‘아니죠, 달랑무는 똥그래야 하죠. 총각무 아래에 달랑달랑 달려 있는 거 아니우?’

여기까지 말이 진행되니깐 아줌마의 볼떼기와 입술이 확 불어나는 것처럼 보였다. 저울에다가 김치를 탁 놓으면서 손가락으로 가리킨다.

‘봤죠? 이거 삼천 육백 원 어치인데, 그냥 드리는 거예요. 알았어요?’

‘아휴, 정말 그게 뭐예요? 총각이라서 방망이가 무거운가? 유부남 김치로 주셔. 너무 양이 작아.’

이쯤이면 그 아줌마의 분위기로 봐서는 ‘안 팔아욧, 정말 이상한 아저씨야,’하는 소리가 튀어 나올 법도 한데, 정말 더러워 장사 못해먹겠다는 표정이었지만 집게로 달랑무를 두 어 개 집어서 더 넣어주는 것이었다.

‘우리는 흙 파서 장사하는 거 아니에요.’

분에 못이긴 듯한 목소리다.

‘제 돈도 마찬가지에요. 흙 파서 돈 만드는 거 아니라우.’

돌아서는 뒤통수가 좀 간질간질했다. 사실 나는 그 아줌마의 원색적인 성격이 좋았던 것이었다. 투박하고 거친 성격이지만 그런 사람 치고 악한 사람이 없다는 나 나름대로의 경험이랄까,


언젠가 친구가 미국에 가려고 미대사관에 비자를 신청했다가 거절을 당한 일이 있었다. 거절하는 이유를 아주 친절하고 자세하게 적어서 서신으로 붙여왔는데, 왠지 모르게 친절하게 표현한 글귀가 트집 안 잡히려고 상대방을 처음부터 꽁꽁 묶어가는 교활함으로 느껴졌었다. 왜 그럴까, 친절함이란 분명히 권장할 만한 미덕인데,

다음에 그 아줌마한테 가면 더 치근치근 거려야지, 부르르 볼떼기를 떨며 ‘아저씨한테는 김치 안 팔아욧.’하는 소리를 들어 봐야겠다. 사람냄새 펄펄 나도록......



글 / 은하철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