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성애 다룬 '로드무비' 최근 18세 관람가 판정 '금지된 사랑' 표현한 色 다른 작품도 봇물
다음달 18일 개봉하는 영화 '로드 무비'(감독 김인식)의 제작진은 최근 스스로도 깜짝 놀란 즐거운 충격을 받았다. 영상물등급위원회에서 '18세 관람가' 판정을 내린 것이다.
노인의 성을 정면에서 다룬 '죽어도 좋아'가 극장에서 틀 수 없는 '제한상영가' 등급을 받은 직후여서 사실 '로드 무비' 제작팀은 '18세 관람가'를 거의 기대하지도 않았다. 남성간의 사랑을 다룬 동성애 영화일뿐 아니라 표현 수위도 아슬아슬했던 때문이다.
◇동성애도 당당한 사랑이다=올 가을 충무로에 도발적 성이 넘실댄다. 그렇다고 우선 '벗기고 보자'식의 값싼 작전은 아니다.
사회적 통념 탓에, 혹은 영화적 관습 탓에 도전하지 못했던 영역을 파고드는 작품이 다수 선보일 예정이다. 성(性)에 성역(聖域)은 없다는 태세처럼 비친다.
가장 큰 변화는 동성애가 영화 속에 적극적으로 표현된다는 점이다. '로드 무비'가 첫 테이프를 끊는다. 결혼을 하고 애도 있는 산악인 출신의 멀쩡한 가장(황정민)이 가출, 여행 중에 만난 전직 증권사 직원(정찬)과 가까워진다는 내용이다.
김인식 감독은 "호기심 차원에서만 다뤄졌던 동성애자를 일반인과 동등하게 조명했다"고 말했다. 이성이든 동성이든, 연인 앞에서 상처받고 갈등하고 화해하는 건 차이가 없다는 것이다.
후반 작업을 마치고 내년 개봉을 기다리고 있는 '욕망'(김응수)의 초점도 남성간 사랑이다. 스무살의 싱거러운 청년(이동규)과 30대 초반의 전문직 남성(안태건)이 주인공이다.
'로드 무비'가 두 남자 사이에 다방 아가씨를 끼워넣어 남녀의 사랑관을 복잡하게 엮어간다면, '욕망'에선 전문직 남성의 아내가 둘의 관계를 미묘하게 이끌어간다.
동성애는 지난해 '번지 점프를 하다' '와니와 준하' 등에서도 등장했다. 그러나 당시엔 분위기만 잡는 '소품'에 불과했다. 충무로가 1년새 그만큼 변한 것이다.
◇사랑은 1대1이 아니다=올 가을 영화들의 또 다른 특징은 연인 관계가 다층적이라는 점이다. 지난주 개봉한 '연애소설'(이한)에선 귀여운 남자 차태현이 단짝 여자 친구 이은주.손예진과 '한패'를 이룬다.
명시적으로 드러나진 않지만 이은주.손예진 사이엔 둘만이 알 수 있는 어떤 느낌이 깔려있다. 그렇지만 '연애소설'은 애인을 앗아가려는 삼각 관계와는 거리가 멀다.
상대는 단지 상대일 뿐이다. 상반기 '결혼은 미친 짓이다'(유하)의 엄정화는 남편과 과거 애인을 오가며 이중살림을 하는 주부로 나온다. 전국 관객 1백만명을 기록할 만큼 공감대를 끌어냈다.
11월 개봉하는 '철없는 아내와 파란만장한 남편 그리고 태권소녀'(이무영)에선 두 여자와 한 남자가 한솥밥을 먹고 산다. 법적인 부부 사이(아내와 남편), 아이를 낳고 키우는 관계(남편과 태권소녀), 그리고 이성에 대한 사랑보다 더 소중한 우정(아내와 태권소녀) 등 그들의 관계는 한마디로 설명하기 어렵다.
교통사고로 사망한 남편의 영혼이 옮겨간 시동생을 수용하는 여인을 그릴 '중독'(박영훈), 외도한 남편 대신 시골 보건소 의사와 열애에 빠지는 '밀애'(변영주) 등도 순애보적 감성을 거부한다.
어차피 떠난 상대, 의연하게 대처하는 게 '쿨'한 것일까. 다음달 말 촬영에 들어갈 '바람난 가족'(임상수)에선 남편이 젊은 여자와 바람을 피우자 아내는 고등학생과 연애를 한다.
◇여자, 결코 연약하지 않다=지난해 히트한 '엽기적인 그녀'와 '조폭 마누라'의 흥행 코드는 강한 여성이었다. 남성은 우유부단한 반면 여성은 거침이 없었다. 억눌린 여성성의 폭발, 혹은 대리만족이란 해석도 있으나 남녀의 역할 분담이 무의미해진 요즘 세태를 반영한 결과다.
'조폭 마누라'까진 아니더라도 올 가을 스크린의 여성은 힘이 세다. 그리고 상대적으로 남성은 어리숙하다. '굳세어라 금순아'(현남섭)의 전직 국가대표 배구선수인 배두나는 유흥가에 서성대는 남자에게 강파이크를 내리꽂고, '몽정기'(정초신)에선 교생실습 나온 김선아가 수학 교사 이범수에게 적극적으로 달려든다.
◇관객은 어떻게 수용할까=이들 영화를 연출한 감독들은 한결 같이 변화한 세상사를 주목한다. 불륜.외도란 단어로는 달라진 가치관을 담을 수 없다는 것이다. 또 성을 묘사하되 결코 섹스만을 앞세운 게 아니라고 강조한다.
'태권소녀'의 이무영 감독은 "감독의 이름을 걸고 역사 속에 존재해온 성의 다양한 양식을 그릴 뿐"이라고 말했다. '바람난 가족'의 임상수 감독은 "TV 9시 뉴스 전에 방영되는 일일극에서 보여주지 않는 홈드라마를 만들 계획"이라고 밝혔다.
영화평론가 전찬일씨는 "지난해 위헌 판정을 받은 등급보류가 사라진 이후 영화사들이 그동안 당국의 감시, 혹은 자기 검열 때문에 시도하지 못했던 영화를 만든다는 사실 자체는 환영할 일이다. 많은 논란.진통이 예상되지만 산업.미학적으로 과도기에 처한 우리 영화계를 살찌우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관건은 의도한 만큼 완성된 영화가 나올 수 있느냐는 것. 혹시라도 달궈진 몸만 출렁대는 영화라면 조폭영화에 집중됐던 비판이 그대로 반복될 수도 있을 것이다.
한국영화 '성역'은 없다
동성애 다룬 '로드무비' 최근 18세 관람가 판정
다음달 18일 개봉하는 영화 '로드 무비'(감독 김인식)의 제작진은 최근 스스로도 깜짝 놀란 즐거운 충격을 받았다. 영상물등급위원회에서 '18세 관람가' 판정을 내린 것이다.'금지된 사랑' 표현한 色 다른 작품도 봇물
노인의 성을 정면에서 다룬 '죽어도 좋아'가 극장에서 틀 수 없는 '제한상영가' 등급을 받은 직후여서 사실 '로드 무비' 제작팀은 '18세 관람가'를 거의 기대하지도 않았다. 남성간의 사랑을 다룬 동성애 영화일뿐 아니라 표현 수위도 아슬아슬했던 때문이다.
◇동성애도 당당한 사랑이다=올 가을 충무로에 도발적 성이 넘실댄다. 그렇다고 우선 '벗기고 보자'식의 값싼 작전은 아니다.
사회적 통념 탓에, 혹은 영화적 관습 탓에 도전하지 못했던 영역을 파고드는 작품이 다수 선보일 예정이다. 성(性)에 성역(聖域)은 없다는 태세처럼 비친다.
가장 큰 변화는 동성애가 영화 속에 적극적으로 표현된다는 점이다. '로드 무비'가 첫 테이프를 끊는다. 결혼을 하고 애도 있는 산악인 출신의 멀쩡한 가장(황정민)이 가출, 여행 중에 만난 전직 증권사 직원(정찬)과 가까워진다는 내용이다.
김인식 감독은 "호기심 차원에서만 다뤄졌던 동성애자를 일반인과 동등하게 조명했다"고 말했다. 이성이든 동성이든, 연인 앞에서 상처받고 갈등하고 화해하는 건 차이가 없다는 것이다.
후반 작업을 마치고 내년 개봉을 기다리고 있는 '욕망'(김응수)의 초점도 남성간 사랑이다. 스무살의 싱거러운 청년(이동규)과 30대 초반의 전문직 남성(안태건)이 주인공이다.
'로드 무비'가 두 남자 사이에 다방 아가씨를 끼워넣어 남녀의 사랑관을 복잡하게 엮어간다면, '욕망'에선 전문직 남성의 아내가 둘의 관계를 미묘하게 이끌어간다.
동성애는 지난해 '번지 점프를 하다' '와니와 준하' 등에서도 등장했다. 그러나 당시엔 분위기만 잡는 '소품'에 불과했다. 충무로가 1년새 그만큼 변한 것이다.
◇사랑은 1대1이 아니다=올 가을 영화들의 또 다른 특징은 연인 관계가 다층적이라는 점이다. 지난주 개봉한 '연애소설'(이한)에선 귀여운 남자 차태현이 단짝 여자 친구 이은주.손예진과 '한패'를 이룬다.
명시적으로 드러나진 않지만 이은주.손예진 사이엔 둘만이 알 수 있는 어떤 느낌이 깔려있다. 그렇지만 '연애소설'은 애인을 앗아가려는 삼각 관계와는 거리가 멀다.
상대는 단지 상대일 뿐이다. 상반기 '결혼은 미친 짓이다'(유하)의 엄정화는 남편과 과거 애인을 오가며 이중살림을 하는 주부로 나온다. 전국 관객 1백만명을 기록할 만큼 공감대를 끌어냈다.
11월 개봉하는 '철없는 아내와 파란만장한 남편 그리고 태권소녀'(이무영)에선 두 여자와 한 남자가 한솥밥을 먹고 산다. 법적인 부부 사이(아내와 남편), 아이를 낳고 키우는 관계(남편과 태권소녀), 그리고 이성에 대한 사랑보다 더 소중한 우정(아내와 태권소녀) 등 그들의 관계는 한마디로 설명하기 어렵다.
교통사고로 사망한 남편의 영혼이 옮겨간 시동생을 수용하는 여인을 그릴 '중독'(박영훈), 외도한 남편 대신 시골 보건소 의사와 열애에 빠지는 '밀애'(변영주) 등도 순애보적 감성을 거부한다.
어차피 떠난 상대, 의연하게 대처하는 게 '쿨'한 것일까. 다음달 말 촬영에 들어갈 '바람난 가족'(임상수)에선 남편이 젊은 여자와 바람을 피우자 아내는 고등학생과 연애를 한다.
◇여자, 결코 연약하지 않다=지난해 히트한 '엽기적인 그녀'와 '조폭 마누라'의 흥행 코드는 강한 여성이었다. 남성은 우유부단한 반면 여성은 거침이 없었다. 억눌린 여성성의 폭발, 혹은 대리만족이란 해석도 있으나 남녀의 역할 분담이 무의미해진 요즘 세태를 반영한 결과다.
'조폭 마누라'까진 아니더라도 올 가을 스크린의 여성은 힘이 세다. 그리고 상대적으로 남성은 어리숙하다. '굳세어라 금순아'(현남섭)의 전직 국가대표 배구선수인 배두나는 유흥가에 서성대는 남자에게 강파이크를 내리꽂고, '몽정기'(정초신)에선 교생실습 나온 김선아가 수학 교사 이범수에게 적극적으로 달려든다.
◇관객은 어떻게 수용할까=이들 영화를 연출한 감독들은 한결 같이 변화한 세상사를 주목한다. 불륜.외도란 단어로는 달라진 가치관을 담을 수 없다는 것이다. 또 성을 묘사하되 결코 섹스만을 앞세운 게 아니라고 강조한다.
'태권소녀'의 이무영 감독은 "감독의 이름을 걸고 역사 속에 존재해온 성의 다양한 양식을 그릴 뿐"이라고 말했다. '바람난 가족'의 임상수 감독은 "TV 9시 뉴스 전에 방영되는 일일극에서 보여주지 않는 홈드라마를 만들 계획"이라고 밝혔다.
영화평론가 전찬일씨는 "지난해 위헌 판정을 받은 등급보류가 사라진 이후 영화사들이 그동안 당국의 감시, 혹은 자기 검열 때문에 시도하지 못했던 영화를 만든다는 사실 자체는 환영할 일이다. 많은 논란.진통이 예상되지만 산업.미학적으로 과도기에 처한 우리 영화계를 살찌우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관건은 의도한 만큼 완성된 영화가 나올 수 있느냐는 것. 혹시라도 달궈진 몸만 출렁대는 영화라면 조폭영화에 집중됐던 비판이 그대로 반복될 수도 있을 것이다.
중앙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