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몽사 홍승표 회장과의 가슴 졸였던 200일 러브스토리, 나의 아픔 망설임 없이 받아준 그와 결혼 결심하기까지
혹여 나로 인해 일을 그르칠까 조심스러웠습니다. 식을 치를 때까지 제발 아무런 문제도 생기지 않기를, 매스컴의 이목을 피해 조용히 마무리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했죠. 큰일을 겪다보니 언론 매체의 반응에 민감해지더군요. 사실과는 달리 이상한 방향으로 이야기가 와전되면 어쩌나 걱정이 많았어요. 내가 연예인이었다는 이유로 그이와 그쪽 집안 어른들께 폐를 끼치는 불상사는 막아야 했기에 갑작스런 결혼 보도를 접하고 몹시 당황했습니다. 지금은 한편으론 후련합니다. 결혼식을 마친 다음에 알려졌으면 좋았을 거라는 아쉬움은 남지만 어쩌겠어요. 이미 엎질러진 물을.
처음 만난 순간부터 결혼 상대로 욕심이 났다고 고백 오히려 자신이 부족하다며 내 자격지심 감싸준 남자
아직은 결혼이 실감나진 않습니다. 함을 받는 날에도 그냥 얼떨떨한 기분이었어요. 오랜만에 화장하고 한복을 차려입은 내 모습이 쑥스럽기도 하고. 얼마나 경황이 없었는지 끝나고 보니까 사진 한 장 남기지 못 했더라구요. 함은 보통 결혼식을 며칠 앞두고 받는 게 상식이지만 우리는 사정이 있었어요. 식은 나중에 올리더라도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는 의미에서 함을 먼저 받기로 한 거죠. 그이가 보석으로 나온 후에 갑작스럽게 결정된 거예요. 나는 어려운 일로 고생한 그이의 마음을 편하게 해주고 싶었고, 그이는 그이대로 나를 배려하려는 의도였습니다.
원래는 그날(8월 16일) 식구들과 가까운 친지들만 모여서 저녁 식사를 하기로 했어요. 그런데 밖에서 ‘함 사세요’라고 외치는 함진아비의 목소리가 들리더군요. 예정에 없던 일이라 화들짝 놀라 나가봤더니 글쎄 그이와 가까운 분들 몇 명이 집 앞에 진을 치고 있지 뭐예요. 아마도 그이가 제대로 격식을 갖추고 예비 신부를 맞아주고 싶었던 모양이에요. 그렇게 잠깐 밖에서 소란(?)을 피우다 집으로 들어와 함께 식사를 하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이를 처음 만난 건 올해 1월 말이었어요. 그때 나는 친구와 둘이서 사업을 준비 중이었죠. 백화점에 식품을 납품하는 아이템이었는데 투자자를 구하기 위해서 사업 계획서를 돌리는 와중에 그이와 끈이 닿았습니다. 그에 대한 첫인상은 ‘예상보다 젊다’ ‘추진력이 강한 스타일인 것 같다’는 정도였어요. 사업차 만난 사이였으므로 별다른 감정은 없었습니다. 사업에 관한 얘기를 주로 나누고 헤어졌죠.
그이는 나와 조금 달랐나 봅니다. 힘든 상황에서도 의욕적으로 일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고 말하더군요. 듣던 것과는 많이 다르다구요. 첫눈에 반한다는 말 별로 믿지는 않지만, 어쨌든 그이는 처음부터 좋은 감정이었다고 하네요. 사업 관계로 두세 번쯤 만났을 때 그이가 속마음을 나에게 털어놓았습니다. 연애 상대가 아니라 결혼 상대의 느낌으로 다가온다고….
뜻밖의 고백이었어요.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할지 판단이 서질 않더라구요. 비즈니스에 개인적인 감정이 개입되면 좋을 게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면서 이래저래 머리가 복잡해졌습니다. 한 가지 확실했던 것은 인간적으로 그의 호의가 고마웠고 함부로 저버리지 못하겠다는 사실이었어요. 그러나 이때 나는 만나는 사람이 따로 있었습니다. 그이에게도 솔직하게 털어놨어요. 내 말을 듣고 알겠다고, 이해하는 눈치였습니다.
거기서 우리의 만남은 일단 정지 상태로 넘어갔습니다. 2월 중순 제가 일본으로 출국을 했거든요. 그로부터 석 달 동안 일본과 미국에 머물렀기 때문에 그이를 만날 기회는 없었어요. 가끔씩 사업 문제로 통화한 적은 있지만. 서울을 비웠던 3개월은 나에게 닥친 시련과 싸우는 시간이었습니다. 영화 ‘블루’의 출연 불발로 국내 연예계 복귀가 좌절됐고 일본에서 활동할 절호의 기회도 놓치고 말았죠. 추진하던 사업도 주춤거렸습니다. 게다가 실연의 상처까지….
다시 서울로 돌아온 것은 5월 말. 내가 왔다는 소식을 접한 그이한테서 사업 차 만나자는 연락이 왔더군요. 약속 장소로 나갔습니다. 그이는 여전했어요. 자신감 넘치는 태도도, 저를 따뜻하게 대해주는 자상한 마음 씀씀이도 예전과 똑같았습니다. 그이가 나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아는 몇몇 사람들이 ‘너에 대한 홍회장의 감정은 변함이 없다’고 전해주더니 괜한 소리가 아니었어요. 바로 그 자리에서 프러포즈를 했으니까.
이렇게 빨리 우리를 둘러싼 기류가 급변하리라고는 상상하지도 못했죠. 당장 대답할 형편은 아니었으므로 며칠 시간을 두고 고민해보겠다고 했습니다. 저의 상태는 최악이었어요. 하려는 일마다 풀리지 않았고 무엇을 새롭게 시작할 자신감도 잃어버렸으니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나, 한숨만 내쉬던 즈음. 다른 일을 도모하기도 막막했을 뿐더러 과연 무슨 일을 해야 할지도 모르겠더라구요.
프러포즈를 받기 전이었어요. 이런저런 일들로 무기력해진 탓인지 결혼이라는 단어가 자꾸 머리를 스쳤습니다. ‘차라리 한 남자의 아내로 살게 되면 좋을 텐데, 누가 나를 힘껏 끌어 당겨주면 좋겠다’. 어쩌면 내가 절실하게 원하는 것은 일이 아니고 사랑과 결혼이라는…. 그이에게 청혼을 받은 순간부터 흔들릴 수밖에 없었죠. 그의 눈빛이 말해주고 있었어요. 당신과 결혼해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싶다는 말이 진심이라는 걸요. 떨어져 지냈음에도 불구하고 한결같은 관심과 사랑을 베풀어준 그이가 고마웠습니다.
일에 열정적인 모습이 남자로서의 가장 큰 매력 급한 성격 고쳐주려고 ‘심호흡 세번만’ 줄기차게 주입
그이는 나에게서 힘들 때 같이 손수레도 끌 수 있고 돌멩이도 맞을 수 있는 여자라는 확신이 들었다고 하더군요. 첫 만남부터 지금까지의 시간을 찬찬히 돌이켜보니 나 역시도 그에 대한 강한 믿음 같은 게 있었습니다. 그이의 일을 처리하는 놀라운 추진력을 보고 대단한 사람이라고 느꼈거든요. 결혼도 결국은 추진력이잖아요. 연애와 달라서 남자가 얼마만큼 끌어주느냐에 따라서 여자의 행복이 좌우되기 마련이니까요.
이따금 결혼이 오르지 못할 나무처럼 높게만 보일 때가 있었습니다. 누가 뭐라지 않아도 가슴속에서 불쑥불쑥 치미는 자격지심을 다스릴 재간이 없었죠. 그이는 그런 나의 아픔을 가슴으로 감싸준 사람입니다. 움츠러들 필요가 없다고 다독여주고, 충분히 사랑받을 자격이 있는 여자라고 용기를 주었습니다. 오히려 자신이 부족하다고 몸을 낮추는 그이. 미래를 기약해도 괜찮겠다는 결론에 이르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어요. 그이에게 답을 전한 것은 6월 초였습니다.
곧바로 양가 상견례를 가지기로 했습니다. 나이가 어린 사람들도 아닌데 결심을 굳힌 마당에 굳이 시간을 길게 끌 이유가 없었으니까요. 다행히도 양가 가족들 모두 우리의 결합을 축복하는 분위기였어요. 상대 집안에서 반대할 가능성에 대해서도 염두에 두고 있던 나는 한시름 놓았습니다. 평범한 사람이 아니라 탐탁지는 않았겠지만 아들의 선택을 인정해주는 분들이었어요. 칠순의 어머니와 누나 네 분이 계십니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어머님께서는 당부의 말씀을 잊지 않으셨어요. 당신의 아들에게 고난이 닥칠 때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달라고, 단점 많은 당신 아들의 모자람을 사랑으로 채워주고 앞으로 잘될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하셨습니다. 우리 엄마와 동생들도 그이를 환영했어요. 엄마는 든든하고 남자다운 성품이 마음에 든다며 저를 행복하게 해줄 거라는 믿음이 생긴다고 기뻐하시더라구요. 요즘은 그이 갖다주라고 밑반찬 등의 음식들을 챙겨주시기도 합니다.
홍승표라는 남자는 유머 감각이 풍부하거나 깜짝 이벤트로 감동을 주는 스타일의 남자는 아니에요. 일만 파고드는 워커홀릭이라 자기 일에서 벗어난 다른 분야에는 까막눈입니다. 그래서 나를 택한 것일 수도 있을 거예요(웃음). 물론 일을 즐기고 좋아하는 성향은 100% 이해합니다. 나도 일을 해봤고 일이 주는 재미와 성취감을 알기 때문에 자신의 일에 열정적인 사람을 존경하게 되죠. 그이의 가장 큰 매력이 바로 일에 취한 모습이에요.
우리는 대화를 많이 나눠요. 대화를 통해서 모든 문제를 해결합니다. 화가 나도 와인 한잔 마시면서 어디서부터 오해가 불거진 건지 하나씩 더듬어보죠. 입을 다물고 가만히 있는 사람이 제일 무섭잖아요. 껄끄러운 감정들을 속으로 꽁하니 쟁여두고 있으면 언젠가는 폭발하고 맙니다. 싸워도 얘기만 통하면 되는 거예요. 우리는 자주 싸우진 않지만 간혹 다투기도 하죠. 나의 무뚝뚝한 성격이 주로 원인을 제공합니다. 사근사근하게 애정표현을 하지 않는다고 타박이에요. 그이는 미국에서 오래 살아서 그런지 사고 방식이나 문화적인 습성이 자유롭고 개방적이거든요.
데이트는 아무래도 운신의 폭이 좁았습니다. 다른 사람들의 눈이 신경 쓰여 자주 밖으로 다니지는 못했어요. 그나마도 우리 둘 다 길눈이 어두워 차를 타고 드라이브하는 것도 여의치 않았습니다. 한 번은 이런 일도 있었어요. 바다를 보고 싶다는 그이와 월미도로 가는데 길을 잘못 들어 인천 공항 근처에서 헤매다 결국 서울로 차를 돌렸지 뭐예요. 드라이브라고 해봐야 동네 한 바퀴 돌고 오는 길에 순대 한 봉지 사다 같이 먹으면 그걸로 끝입니다. 전화하고 가끔씩 맛있는 거 먹으러 가고 드라이브하고, 다른 평범한 연인들처럼 데이트를 즐겼죠. 자주 만나지는 못했어요.
그이가 한동안 사업상의 일로 고초를 겪었습니다. 사랑하는 남자가 일생일대의 위기를 맞았는데도 나는 그이를 위해 해줄 게 아무것도 없더군요. 면회를 가서 위로의 말 한마디 건넬 처지도 아니었습니다. 얼굴을 나타냈다가는 오히려 그이의 신상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쳤을 텐데요. 너무나 마음이 아팠어요. 제가 드러나지 않는 것만이 그를 돕는 길임을 인정해야만 하는 심정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요.
그래도 그 사건을 계기로 우리는 서로의 소중함을 더욱 절실하게 깨달았고 사랑도 깊어졌습니다. 최근에 함을 받은 것도 이런 맥락에서 이루어진 일이에요. 원래 9월 6일로 잡혔던 결혼식은 뒤로 미루기로 했습니다. 날짜가 아버지 기일과 겹치는 데다 그이 사업 관계로 일정을 불가피하게 조정하게 됐어요. 연말까지 갈 것 같지는 않고 그전에 잡히지 않을까 합니다. 결혼식은 검소하고 조용하게 치르고 싶습니다.
‘현경씨, 승표씨’이름 부르고 존칭 사용하는 사이 결혼 후 사업에 전념하도록 내조만 열심히 할 것
신혼살림은 그이가 살고 있는 한남동 빌라에 차리기로 했어요. 그이가 바리바리 싸 오지 말고 몸만 들어오라고 그러네요. 혼수는 꼭 필요한 것만 골라서 준비하고 나머지는 그이가 쓰던 것들을 그대로 쓰려고 합니다. 결혼을 앞두고 보니 내가 별로 할 줄 아는 게 없더라구요. 살림을 해본 적이 없어서 주부의 역할을 다할 수 있을지 걱정입니다. 요리도 일식, 중식, 한식 등을 전에 배웠었는데 지금은 가물가물해졌어요. 이제부터라도 신부수업을 본격적으로 해야겠습니다.
요즘은 어른들에게 내조에 관한 이야기를 자주 듣습니다. 사업가의 아내로 살기가 만만찮은 일이라고 잔뜩 겁을 주세요. 남편이 성공하느냐 실패하느냐는 아내 하기에 달렸다는 말을 하잖아요. 여자 잘못 만나 앞길 망쳤다는 얘기는 듣지 말아야죠. 결혼생활은 해봐야 알겠지만 상대방의 독립된 세계를 존중해주면 별다른 문제는 없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남편 혹은 아내를 자신의 스타일로 만들려는 욕심이 불화를 자초하는 것 아닐까요. 남편이 일밖에 모르더라도 이해하고 열심히 뒷바라지하려고 합니다.
연예 활동은 당분간 재개하지 않을 작정이에요. 은퇴라고 못박기에는 섣부른 감이 있습니다. 사람 하는 일이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모르는 거죠. 그저 지금으로선 남편 내조에만 전념할 계획이라는 것만 밝혀두고 싶군요. 그이는 내가 일을 하길 원합니다. 엔터테인먼트 사업에도 관심이 많은 터라 좀 더 시간이 흐른 다음에 간접적으로라도 일할 기회가 생길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우리는 서로 존댓말을 씁니다. 호칭은 현경씨, 승표씨. 처음에는 회장님이라고 부르다가 요새 승표씨로 바꿨습니다. 아직 입에 붙지 않아서 헤매고 있어요. 전에는 존칭하는 연인이나 부부들이 이상하게 보이더니 이제야 어떤 이유로 존칭을 고집하는지 알겠다니까요. 아무리 화가 나도 막말을 할 수 없기 때문에 한발 물러서고 참게 됩니다.
그이에게 바라는 게 있다면 급한 성격을 바꿔보도록 노력하라는 거예요. 후닥닥후닥닥, 성질이 어찌나 급한지 말도 못해요. 옆에서 ‘심호흡 세 번만 하세요’ ‘10초만 기다리면 모든 것이 달라질 수 있어요’ 귀에 못이 박히도록 얘기를 합니다. 전보다 나아지긴 했어요. 아주 쬐금(웃음).
여자로서의 행복에 대해 회의한 시절도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남자를 만나 결혼을 하고 예쁜 아기를 낳아 오순도순 사는 것이 남의 일인 양 뒷짐 지고 바라보던 때에도 마음 깊은 곳에서는 평범한 여자로 살고 싶은 바람이 꿈틀거렸죠. 머지않아 나를 닮은 딸을 낳고 싶다는 그이와 부부의 연을 맺습니다. 나의 ‘아픔’을 망설임 없이 받아준 남자. 목숨이 다하는 날까지 그이를 사랑할 것입니다.
오현경·홍승표 결혼 스토리 공개!
계몽사 홍승표 회장과의 가슴 졸였던 200일 러브스토리,
혹여 나로 인해 일을 그르칠까 조심스러웠습니다. 식을 치를 때까지 제발 아무런 문제도 생기지 않기를, 매스컴의 이목을 피해 조용히 마무리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했죠. 큰일을 겪다보니 언론 매체의 반응에 민감해지더군요. 사실과는 달리 이상한 방향으로 이야기가 와전되면 어쩌나 걱정이 많았어요. 내가 연예인이었다는 이유로 그이와 그쪽 집안 어른들께 폐를 끼치는 불상사는 막아야 했기에 갑작스런 결혼 보도를 접하고 몹시 당황했습니다. 지금은 한편으론 후련합니다. 결혼식을 마친 다음에 알려졌으면 좋았을 거라는 아쉬움은 남지만 어쩌겠어요. 이미 엎질러진 물을.나의 아픔 망설임 없이 받아준 그와 결혼 결심하기까지
처음 만난 순간부터 결혼 상대로 욕심이 났다고 고백
오히려 자신이 부족하다며 내 자격지심 감싸준 남자
아직은 결혼이 실감나진 않습니다. 함을 받는 날에도 그냥 얼떨떨한 기분이었어요. 오랜만에 화장하고 한복을 차려입은 내 모습이 쑥스럽기도 하고. 얼마나 경황이 없었는지 끝나고 보니까 사진 한 장 남기지 못 했더라구요. 함은 보통 결혼식을 며칠 앞두고 받는 게 상식이지만 우리는 사정이 있었어요. 식은 나중에 올리더라도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는 의미에서 함을 먼저 받기로 한 거죠. 그이가 보석으로 나온 후에 갑작스럽게 결정된 거예요. 나는 어려운 일로 고생한 그이의 마음을 편하게 해주고 싶었고, 그이는 그이대로 나를 배려하려는 의도였습니다.
원래는 그날(8월 16일) 식구들과 가까운 친지들만 모여서 저녁 식사를 하기로 했어요. 그런데 밖에서 ‘함 사세요’라고 외치는 함진아비의 목소리가 들리더군요. 예정에 없던 일이라 화들짝 놀라 나가봤더니 글쎄 그이와 가까운 분들 몇 명이 집 앞에 진을 치고 있지 뭐예요. 아마도 그이가 제대로 격식을 갖추고 예비 신부를 맞아주고 싶었던 모양이에요. 그렇게 잠깐 밖에서 소란(?)을 피우다 집으로 들어와 함께 식사를 하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이를 처음 만난 건 올해 1월 말이었어요. 그때 나는 친구와 둘이서 사업을 준비 중이었죠. 백화점에 식품을 납품하는 아이템이었는데 투자자를 구하기 위해서 사업 계획서를 돌리는 와중에 그이와 끈이 닿았습니다. 그에 대한 첫인상은 ‘예상보다 젊다’ ‘추진력이 강한 스타일인 것 같다’는 정도였어요. 사업차 만난 사이였으므로 별다른 감정은 없었습니다. 사업에 관한 얘기를 주로 나누고 헤어졌죠.
그이는 나와 조금 달랐나 봅니다. 힘든 상황에서도 의욕적으로 일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고 말하더군요. 듣던 것과는 많이 다르다구요. 첫눈에 반한다는 말 별로 믿지는 않지만, 어쨌든 그이는 처음부터 좋은 감정이었다고 하네요. 사업 관계로 두세 번쯤 만났을 때 그이가 속마음을 나에게 털어놓았습니다. 연애 상대가 아니라 결혼 상대의 느낌으로 다가온다고….
뜻밖의 고백이었어요.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할지 판단이 서질 않더라구요. 비즈니스에 개인적인 감정이 개입되면 좋을 게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면서 이래저래 머리가 복잡해졌습니다. 한 가지 확실했던 것은 인간적으로 그의 호의가 고마웠고 함부로 저버리지 못하겠다는 사실이었어요. 그러나 이때 나는 만나는 사람이 따로 있었습니다. 그이에게도 솔직하게 털어놨어요. 내 말을 듣고 알겠다고, 이해하는 눈치였습니다.
거기서 우리의 만남은 일단 정지 상태로 넘어갔습니다. 2월 중순 제가 일본으로 출국을 했거든요. 그로부터 석 달 동안 일본과 미국에 머물렀기 때문에 그이를 만날 기회는 없었어요. 가끔씩 사업 문제로 통화한 적은 있지만. 서울을 비웠던 3개월은 나에게 닥친 시련과 싸우는 시간이었습니다. 영화 ‘블루’의 출연 불발로 국내 연예계 복귀가 좌절됐고 일본에서 활동할 절호의 기회도 놓치고 말았죠. 추진하던 사업도 주춤거렸습니다. 게다가 실연의 상처까지….
다시 서울로 돌아온 것은 5월 말. 내가 왔다는 소식을 접한 그이한테서 사업 차 만나자는 연락이 왔더군요. 약속 장소로 나갔습니다. 그이는 여전했어요. 자신감 넘치는 태도도, 저를 따뜻하게 대해주는 자상한 마음 씀씀이도 예전과 똑같았습니다. 그이가 나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아는 몇몇 사람들이 ‘너에 대한 홍회장의 감정은 변함이 없다’고 전해주더니 괜한 소리가 아니었어요. 바로 그 자리에서 프러포즈를 했으니까.
이렇게 빨리 우리를 둘러싼 기류가 급변하리라고는 상상하지도 못했죠. 당장 대답할 형편은 아니었으므로 며칠 시간을 두고 고민해보겠다고 했습니다. 저의 상태는 최악이었어요. 하려는 일마다 풀리지 않았고 무엇을 새롭게 시작할 자신감도 잃어버렸으니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나, 한숨만 내쉬던 즈음. 다른 일을 도모하기도 막막했을 뿐더러 과연 무슨 일을 해야 할지도 모르겠더라구요.
프러포즈를 받기 전이었어요. 이런저런 일들로 무기력해진 탓인지 결혼이라는 단어가 자꾸 머리를 스쳤습니다. ‘차라리 한 남자의 아내로 살게 되면 좋을 텐데, 누가 나를 힘껏 끌어 당겨주면 좋겠다’. 어쩌면 내가 절실하게 원하는 것은 일이 아니고 사랑과 결혼이라는…. 그이에게 청혼을 받은 순간부터 흔들릴 수밖에 없었죠. 그의 눈빛이 말해주고 있었어요. 당신과 결혼해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싶다는 말이 진심이라는 걸요. 떨어져 지냈음에도 불구하고 한결같은 관심과 사랑을 베풀어준 그이가 고마웠습니다.
일에 열정적인 모습이 남자로서의 가장 큰 매력
급한 성격 고쳐주려고 ‘심호흡 세번만’ 줄기차게 주입
그이는 나에게서 힘들 때 같이 손수레도 끌 수 있고 돌멩이도 맞을 수 있는 여자라는 확신이 들었다고 하더군요. 첫 만남부터 지금까지의 시간을 찬찬히 돌이켜보니 나 역시도 그에 대한 강한 믿음 같은 게 있었습니다. 그이의 일을 처리하는 놀라운 추진력을 보고 대단한 사람이라고 느꼈거든요. 결혼도 결국은 추진력이잖아요. 연애와 달라서 남자가 얼마만큼 끌어주느냐에 따라서 여자의 행복이 좌우되기 마련이니까요.
이따금 결혼이 오르지 못할 나무처럼 높게만 보일 때가 있었습니다. 누가 뭐라지 않아도 가슴속에서 불쑥불쑥 치미는 자격지심을 다스릴 재간이 없었죠. 그이는 그런 나의 아픔을 가슴으로 감싸준 사람입니다. 움츠러들 필요가 없다고 다독여주고, 충분히 사랑받을 자격이 있는 여자라고 용기를 주었습니다. 오히려 자신이 부족하다고 몸을 낮추는 그이. 미래를 기약해도 괜찮겠다는 결론에 이르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어요. 그이에게 답을 전한 것은 6월 초였습니다.
곧바로 양가 상견례를 가지기로 했습니다. 나이가 어린 사람들도 아닌데 결심을 굳힌 마당에 굳이 시간을 길게 끌 이유가 없었으니까요. 다행히도 양가 가족들 모두 우리의 결합을 축복하는 분위기였어요. 상대 집안에서 반대할 가능성에 대해서도 염두에 두고 있던 나는 한시름 놓았습니다. 평범한 사람이 아니라 탐탁지는 않았겠지만 아들의 선택을 인정해주는 분들이었어요. 칠순의 어머니와 누나 네 분이 계십니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어머님께서는 당부의 말씀을 잊지 않으셨어요. 당신의 아들에게 고난이 닥칠 때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달라고, 단점 많은 당신 아들의 모자람을 사랑으로 채워주고 앞으로 잘될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하셨습니다. 우리 엄마와 동생들도 그이를 환영했어요. 엄마는 든든하고 남자다운 성품이 마음에 든다며 저를 행복하게 해줄 거라는 믿음이 생긴다고 기뻐하시더라구요. 요즘은 그이 갖다주라고 밑반찬 등의 음식들을 챙겨주시기도 합니다.
홍승표라는 남자는 유머 감각이 풍부하거나 깜짝 이벤트로 감동을 주는 스타일의 남자는 아니에요. 일만 파고드는 워커홀릭이라 자기 일에서 벗어난 다른 분야에는 까막눈입니다. 그래서 나를 택한 것일 수도 있을 거예요(웃음). 물론 일을 즐기고 좋아하는 성향은 100% 이해합니다. 나도 일을 해봤고 일이 주는 재미와 성취감을 알기 때문에 자신의 일에 열정적인 사람을 존경하게 되죠. 그이의 가장 큰 매력이 바로 일에 취한 모습이에요.
우리는 대화를 많이 나눠요. 대화를 통해서 모든 문제를 해결합니다. 화가 나도 와인 한잔 마시면서 어디서부터 오해가 불거진 건지 하나씩 더듬어보죠. 입을 다물고 가만히 있는 사람이 제일 무섭잖아요. 껄끄러운 감정들을 속으로 꽁하니 쟁여두고 있으면 언젠가는 폭발하고 맙니다. 싸워도 얘기만 통하면 되는 거예요. 우리는 자주 싸우진 않지만 간혹 다투기도 하죠. 나의 무뚝뚝한 성격이 주로 원인을 제공합니다. 사근사근하게 애정표현을 하지 않는다고 타박이에요. 그이는 미국에서 오래 살아서 그런지 사고 방식이나 문화적인 습성이 자유롭고 개방적이거든요.
데이트는 아무래도 운신의 폭이 좁았습니다. 다른 사람들의 눈이 신경 쓰여 자주 밖으로 다니지는 못했어요. 그나마도 우리 둘 다 길눈이 어두워 차를 타고 드라이브하는 것도 여의치 않았습니다. 한 번은 이런 일도 있었어요. 바다를 보고 싶다는 그이와 월미도로 가는데 길을 잘못 들어 인천 공항 근처에서 헤매다 결국 서울로 차를 돌렸지 뭐예요. 드라이브라고 해봐야 동네 한 바퀴 돌고 오는 길에 순대 한 봉지 사다 같이 먹으면 그걸로 끝입니다. 전화하고 가끔씩 맛있는 거 먹으러 가고 드라이브하고, 다른 평범한 연인들처럼 데이트를 즐겼죠. 자주 만나지는 못했어요.
그이가 한동안 사업상의 일로 고초를 겪었습니다. 사랑하는 남자가 일생일대의 위기를 맞았는데도 나는 그이를 위해 해줄 게 아무것도 없더군요. 면회를 가서 위로의 말 한마디 건넬 처지도 아니었습니다. 얼굴을 나타냈다가는 오히려 그이의 신상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쳤을 텐데요. 너무나 마음이 아팠어요. 제가 드러나지 않는 것만이 그를 돕는 길임을 인정해야만 하는 심정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요.
그래도 그 사건을 계기로 우리는 서로의 소중함을 더욱 절실하게 깨달았고 사랑도 깊어졌습니다. 최근에 함을 받은 것도 이런 맥락에서 이루어진 일이에요. 원래 9월 6일로 잡혔던 결혼식은 뒤로 미루기로 했습니다. 날짜가 아버지 기일과 겹치는 데다 그이 사업 관계로 일정을 불가피하게 조정하게 됐어요. 연말까지 갈 것 같지는 않고 그전에 잡히지 않을까 합니다. 결혼식은 검소하고 조용하게 치르고 싶습니다.
‘현경씨, 승표씨’이름 부르고 존칭 사용하는 사이
결혼 후 사업에 전념하도록 내조만 열심히 할 것
신혼살림은 그이가 살고 있는 한남동 빌라에 차리기로 했어요. 그이가 바리바리 싸 오지 말고 몸만 들어오라고 그러네요. 혼수는 꼭 필요한 것만 골라서 준비하고 나머지는 그이가 쓰던 것들을 그대로 쓰려고 합니다. 결혼을 앞두고 보니 내가 별로 할 줄 아는 게 없더라구요. 살림을 해본 적이 없어서 주부의 역할을 다할 수 있을지 걱정입니다. 요리도 일식, 중식, 한식 등을 전에 배웠었는데 지금은 가물가물해졌어요. 이제부터라도 신부수업을 본격적으로 해야겠습니다.
요즘은 어른들에게 내조에 관한 이야기를 자주 듣습니다. 사업가의 아내로 살기가 만만찮은 일이라고 잔뜩 겁을 주세요. 남편이 성공하느냐 실패하느냐는 아내 하기에 달렸다는 말을 하잖아요. 여자 잘못 만나 앞길 망쳤다는 얘기는 듣지 말아야죠. 결혼생활은 해봐야 알겠지만 상대방의 독립된 세계를 존중해주면 별다른 문제는 없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남편 혹은 아내를 자신의 스타일로 만들려는 욕심이 불화를 자초하는 것 아닐까요. 남편이 일밖에 모르더라도 이해하고 열심히 뒷바라지하려고 합니다.
연예 활동은 당분간 재개하지 않을 작정이에요. 은퇴라고 못박기에는 섣부른 감이 있습니다. 사람 하는 일이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모르는 거죠. 그저 지금으로선 남편 내조에만 전념할 계획이라는 것만 밝혀두고 싶군요. 그이는 내가 일을 하길 원합니다. 엔터테인먼트 사업에도 관심이 많은 터라 좀 더 시간이 흐른 다음에 간접적으로라도 일할 기회가 생길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우리는 서로 존댓말을 씁니다. 호칭은 현경씨, 승표씨. 처음에는 회장님이라고 부르다가 요새 승표씨로 바꿨습니다. 아직 입에 붙지 않아서 헤매고 있어요. 전에는 존칭하는 연인이나 부부들이 이상하게 보이더니 이제야 어떤 이유로 존칭을 고집하는지 알겠다니까요. 아무리 화가 나도 막말을 할 수 없기 때문에 한발 물러서고 참게 됩니다.
그이에게 바라는 게 있다면 급한 성격을 바꿔보도록 노력하라는 거예요. 후닥닥후닥닥, 성질이 어찌나 급한지 말도 못해요. 옆에서 ‘심호흡 세 번만 하세요’ ‘10초만 기다리면 모든 것이 달라질 수 있어요’ 귀에 못이 박히도록 얘기를 합니다. 전보다 나아지긴 했어요. 아주 쬐금(웃음).
여자로서의 행복에 대해 회의한 시절도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남자를 만나 결혼을 하고 예쁜 아기를 낳아 오순도순 사는 것이 남의 일인 양 뒷짐 지고 바라보던 때에도 마음 깊은 곳에서는 평범한 여자로 살고 싶은 바람이 꿈틀거렸죠. 머지않아 나를 닮은 딸을 낳고 싶다는 그이와 부부의 연을 맺습니다. 나의 ‘아픔’을 망설임 없이 받아준 남자. 목숨이 다하는 날까지 그이를 사랑할 것입니다.
<중앙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