앗! 엽기손님 백화점 속앓이

임정익2002.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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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강남의 A백화점에서 근무하는 김모대리는 지난 여름,주말마다 나타나는 커플 고객 때문에 황당한 경험을 했다. 이 커플은 항상 속옷처럼 보이는 민소매 티셔츠를 맞춰입고 나타났다. 저런 자세로 어떻게 걸어다닐까 싶을 정도로 밀착해 매장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다 여자의 엉덩이 위에 올려진 남자의 손이 간혹 옷속으로 들어가기까지 했다. 여직원들 사이에서 “너무 민망하니 주의를 주자”는 의견이 나올 정도였다. 그러나 이들은 오히려 주위의 시선을 즐기는 듯 이목이 집중된다 싶으면 한술 더 떠 진한 키스를 보여주는 서비스를 제공하기도 했다.

매일 수만명의 다양한 사람들이 드나드는 백화점이나 대형할인점에서는 이처럼 독특하다 못해 엽기적이기까지 한 단골 고객(?)들이 있다. 고객정보를 1급 비밀로 다루는 유통업계의 특성상 널리 알려지진 않지만 직원들 사이에서는 이런 ‘엽기고객’들이 화제가 되기도 한다.

B백화점 의류매장 단골 중에는 ‘조폭마누라’가 아닌 ‘자칭 조폭애인’ 아가씨가 있다. 빨간색 핫팬츠를 즐겨 입는 20대 초반의 이 여성은 항상 사소한 일로 언성을 높여 여직원들을 울리기 일쑤다. 흥분하면 “내가 ○○파 두목 애인이야”라고 외치곤 한다. 사실 여부를 확인할 수는 없지만 일단 그 손님이 등장하면 직원들은 행여 심기를 건드릴까 초긴장 상태에 빠진다.

명품으로 유명한 C백화점에는 ‘슬리퍼 아저씨’가 있다. 허름한 티셔츠에 반바지,맨발에 슬리퍼 차림을 즐기는 이 30대 중반의 아저씨는 1주일에 2∼3차례 명품 매장을 두리번거리는 게 취미. 프랑스 유명 가방메이커의 제품 이름을 모두 외울 정도로 ‘명품 마니아’다. 구입하는 일은 절대 없지만 명품매장의 신입사원들에게 ‘가짜 명품 구별하는 법’ 등을 강의하기도 해 의외로 인기를 끈다. 직원들 사이에서는 이 ‘슬리퍼 아저씨’가 가짜 명품 제조 공장 사장이라는 설도 돌고 있다.

반포의 D할인매장에는 ‘오이 아가씨’가 있다. 상당한 미모의 소유자인 이 여성은 매일 오전 10시경 매장에 나타나 오이 1개를 구입,비닐 봉지에 넣어 어깨 위로 빙글빙글 돌리며 매장을 순회한다. 야채코너가 주 활동무대지만 식료품 코너나 음반매장을 기웃거리기도 한다. 1시간 정도 느릿느릿 걸어다니며 오이를 돌리지만 다른 고객이나 직원들에게 피해를 주는 일은 없다. 가끔 그녀가 ‘야채코너 순회’를 거르는 날이면 직원들 중에는 “혹시 무슨 일이 생긴 것 아니냐?”며 걱정하는 사람이 있을 정도.

매일 아침 시식코너를 모조리 도는 얌체 고객은 각 유통업체마다 1∼2명씩 꼭 있다. 시식코너 직원들은 자주 나타나는 손님들의 식성까지 파악할 정도. 이들 중에는 “오늘은 간이 안 맞네”라며 세심하게 맛 평가까지 해주는 사람도 있다. 시식코너를 매일 아침식사로 이용하는 것 정도는 애교로 넘기지만 최근에는 시식 후 갈증을 풀기 위해 요구르트나 음료수를 마신 뒤 진열대에 껍데기만 올려놓고 나가는 ‘파렴치범’까지 나타나 골치를 썩이고 있다. 강남 D백화점에서 근무하는 보안 직원 박모씨(34)는 “웃고 넘길 만한 일도 있지만 비상식적인 행동은 자제해 줬으면 한다”고 당부했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단골 유통업체의 ‘엽기 고객’이 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한번쯤 생각해 볼 일이다.

 

 

스포츠투데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