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무 / 天武... 1 - 펌

게시판담당자2002.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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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두봉에 뜨는 달.

1.

얼마나 뻗었는가....... 깊고 깊은 계곡을 허리에 끼고 천리를 달리는 태산준령의 험한 산은 휘황한 보름달 아래에 그 위용을 드러내고, 굽이치는 강물은 고요하다. 물 안개 피는 계곡에서 간간이 맹수의 울음소리와 풀벌레 소리만 들려 오고 있으니 태고의 세월 속에서 사람의 자취는 그림자 조차 어른 거리지 않았으리라.

세간에 알려지지 않은 우뚝 선 봉우리.
천 길의 벼랑을 하늘위로 치솟아 둥근 보름달 아래 구름 위에 떠 있는 북두봉. 한눈에 아래에 펼쳐진 산세가 힘있게 밀어 올려 솟아오른 듯한 북두봉 위에 두 사람이 마주 앉아 있었다.

백발에 하얀 수염이 가슴까지 내려오는 칠 십은 넘어 보이는 노인과 준수한 얼굴에 눈빛이 초롱한 미소년이 차를 마시고 있었다. 안광이 날카롭고 꼿꼿한 허리를 펴고 있는 노인은 상당한 무공의 소유자로 보이며, 십 팔세 가량의 흰 얼굴을 한 미소년 역시 틀림없이 대단한 무공을 지닌 소년이리라.

"도련님, 벌써 삼년이 되었군요. 주인님이 타계하신지......"
소년은 옆에 있는 묘비를 바라보며 묵묵히 앉아 있었다. 찬 이슬이 방울방울 맺힌 비석에는 뚜렷한 묘의 주인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
천봉자지묘(天鳳子之墓)

"주인님이 도련님과 같이 이 곳에 은거하여 지낸 세월이 십 오 년이고 타계하신지 삼년이 지났습니다. 저기 천기도 석실에서 지낸 도련님과의 세월은 바로 오늘을 기약한 세월 이였고 또한 도련님과 주인마님을 위한 세월 이였습니다."
노인은 차를 한 모금 마시더니 찬찬히 소년의 얼굴을 바라 보았다. 달빛 아래 푸른빛을 발하는 소년의 얼굴은 천봉자를 그대로 박아 놓은 듯한 모습이다. 굵은 눈썹은 의협심을 나타내고 초롱한 눈에는 총명함이 엿보인다.

천봉자 고욱(高旭)
강호에 홀로 나타나 무림의 오대문파와 이대교파의 무공을 두루 연마하여 무림의 일가를 꿈꾸었던 협객 이였다. 호방한 기질과 의협심 그리고 무공에 대한 선천적인 소질을 가진 천봉자는 무림의 대가들과 친분을 두터이 하였다.

무림의 대문파인 소림사의 장문인 혜정선사(惠晶禪師)는 천봉자를 일컬어 말하기를 "그의 무공은 절대자비의 온화함이 있으며 그 깊이를 알 수 없다. 또한 그의 의협심은 청솔과 같으니 사악함이 그를 침범치 못하며 그윽한 인품은 함께 있기만 하여도 향기롭다."라고 하였다.

서역의 라마승인 묘연존자(妙蓮尊子)는 천봉자와 삼년에 한 번씩 만나서 무공을 겨루고 연구하였다. 그는 천봉자의 무공을 극찬하기를 마다하지 않았다.

"천봉자의 무예는 벽을 허무는 과정을 목표로 한다. 흐름에 있어서 막혀서도 안 되고 모양에 있어서 특정한 틀이 있어서도 안 되며 초식에 있어서 이름이 있어서도 안 된다. 흡사 바람과 같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흐름이 있으며 잡으려 하지만 실체가 없다. 느낌은 있으나 모양은 없다. 그와 무공을 겨루고 연구하다 보면 나 자신 마저 사라져 없어진다."

노인은 수염을 쓸어 내리며 다시 천천히 말을 이었다.
"죽림장의 대혈투 이후에 강호에서는 주인님이 이미 죽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워낙 큰 상처와 혈도의 손상을 입은 주인님이기에 도련님을 등에 지고 죽림장에서 탈출한 직후에 죽었다고 보는 것도 무리가 아닙니다."

소년은 눈을 감았다.
밤이면 밤마다 기의 흐름이 역행하여 호홉을 가다듬고 그 기를 바로 잡으려는 아버지의 고통이 얼마나 심했던 것인가...... 석실에서 잠을 자다가 눈을 뜨면 어둠 속에서 큰 어깨를 드리우고 벽을 향해 좌선하고 있던 아버지. 역행되는 기의 흐름에 고통스런 땀을 흘리던 모습을 보고 소년은 너무도 안타까운 마음에 울음을 터뜨렸던 일이 한 두 번이 아니였다. 천봉자는 일어나서 울고 있는 소년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하였다.

"내 아들의 심성이 이렇듯 다정하니 네 어머니의 모습을 보는 것 같구나. 측은히 여기는 마음이란 곧 자비를 말하는 것이니 너의 그 마음이 흡족하다"
무공을 연마시킬 때에는 추상의 서릿발 같은 모습이지만 소년을 위로하며 잠자리를 다시 챙겨 주던 천봉자의 자상한 모습이 소년의 눈가에 어른거렸다.

"도련님이 강호에 발을 딛는 것은 주인님의 원수를 갚으려거나 혹은 무림에 나서서 명성을 날리려는 것도 아닙니다. 주인님은 평소에 말씀하시길 자식이 부모의 원수를 갚는 데에 그 삶을 허비하여서는 안 되는 것이다. 도련님에게 분명히 과거의 일은 잊으라고 하였으며 명성은 쫓아가는 자의 것이 아니고 인물의 됨됨이를 보고 쫓아오는 것이 명성이라고 하였습니다."

달 아래의 노송을 굽어보는 소년의 눈에는 고통에 일그러진 아버지의 얼굴이 떠 올랐다. 십 오 년의 긴 세월을 일어서지 못하는 앉은뱅이로 지냈다. 밤이면 찾아오는 역류하는 기의 흐름에 진땀을 흘리다가 새벽 동 틀 무렵이 되어야 겨우 지친 몸을 눕히고 잠을 이룰 수가 있었던 것이다.

 

(( 라이코스에서 활동하시는 월하벽송 / viking999 님의 작품을 허락 하에 가져왔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