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도 이런 사람이.....

김성준2002.10.09
조회209

사람은 누구나 가정이란 환경속에서 산다.
그러나 나는 그런 환경속에서 지내지 못했다.
나는 3살때 장애가 생기고 아버지, 어머니의 잦은 부부
싸움에 결국 내가 13살때 서로 이혼하셨다.
건강이 좋지 못하신 아버지께서는 결국 나를 재활원이란 곳에
맡기며 평생 재활원에 살 수 있도록 원장과 계약을 하였다.
난 그곳에서 8년이란 세월을 보내면서 설움, 아픔을 모두를
경험하며 하남시라는 비닐하우스 속에서 생활환경을 하고
사는 곳을 옮기기로 마음먹었다.
그곳을 옮긴 계기는 이렀다.
처음 그곳에 방문한 순간 내가 경험하지 못한 따뜻한 가족
애가 느껴지는 화목한 모습이었고 또 돈을 벌 수 있었기 때문이다.
몇일 뒤 나는 그곳으로 내 삶의 터전을 옮기고 시장에서 장애
인들이 음악을 틀며 구루마를 끌며 수세미, 목욕타올, 좀약
그런 것들을 파는 장사를 하게 되었다.
처음에 장사를 할때는 얼마나 창피하고 여름철이라 소나기를
맞으며 장사할 때는 너무나 서글프고 내 자신이 얼마나 처량
한지 비 속에 내 눈물을 감추며 마구 울었다.
그러나 한 보름정도 지나니 오히려 오기가 생기며 더욱 더
열심히 살아야 되겠다는 생각이 들며 서글프고 처량한 그런
마음들은 내 가슴깊이 묻어버리고 지워버렸다.
그 장사를 하면서 장애로 생겨있던 욕창이 더욱더 심해져
난 결국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고 13개월동안 수술을 8번을 하였다.
그 후 퇴원한 뒤 나는 그 장사를 그만 두고 그곳 교회 사무실에서
간사직을 맡으며 근무하게 되었다.
그 곳에서 한 8년을 지내니 지겹다는 생각도 들고 처음에
내가 보고 느꼈던 모습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원장전도사의
부정적인 행동과 탈세 주의 종으로서의 어긋난 행동들에 더 이상
그 곳에서 지내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하남시에 오기전에 마음속에 다짐한 것이 그 곳으로 마지막으로
더이상 단체생활은 하지 않겠다고.....
그러지만 난 돈도 아는 사람도 없어 나가고 싶었지만 나갈 수가 없었다.
그래서 하는수 없이 청와대 비서실장한테와 보사부장관에게 편지를
썼어 보냈다. 그 후 몇일 뒤 청와대에서 이런 사람이 있는지
알아보고 있으면 어떻게 해 주어라는 공문이 내려왔다.
그래서 난 재빨리 등본을 서울 영등포구로 옮겼다.
그러던 어느 날 구청에서 생활보호대상자 1종과 장애1급에게 전세
자금을 대여해 준다는 말과 함께 신청하겠냐고 물어왔다.
난 신청을 하였고 당첨되었다.
당첨은 되었지만 서류절차, 논쟁등으로 방을 얻으라고 돈이 내려오
지 않았다. 난 이미 그 곳에서 눈밖에 놔 결국 나올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가 있을만한 곳이 없어 아는 사람들 집에서 2달씩 옮겨
다니며 생활한 끝에 1년만에 돈이 내려왔다.
그래서 난 양평동이란 곳에 방을 얻고 만 4년전 이 곳 가양동
도시개발아파트로 이사를 오게 된 것이다.
그 모든 과정을 겪는 동안 우리 가족들을 아무런 관심도
도움도 주지 않았고 나혼자 생각하고 판단하고 결정하며 지냈다.
그러나 이젠 나도 마음도 육체도 정신도 모두 지쳤다.
그리고 내 나이 35세 정말이 한 여자를 만나 아름다운 가정
을 꾸며가며 살고 싶다.
나의 과거의 아픔, 슬픔, 고통, 외로움 모두 이해 해 주고
나의 장애마저 이해 해 주고 감싸 안아주는 사람을 만나
행복한 가정, 아름다운 가정을 꾸미며 살고 싶다.
그러나 나의 이런 모습, 마음들을 해아려 줄 사람이 없다.
정말이지 난 너무 외롭고 쓸쓸함에 견딜 수가 없다.
난 결국 내가 소망하는 가정이라는 것조차도 나의 등을
돌리는 것일까?
정말이지 너무 답답하고 암담하다.
답답한 나머지 이 곳에 이렇게 글을 남겨 봅니다.
저의 넋두리라 생각하시고 기분 나빠 하지들 마세요.
저에게 좋은 글과 말을 해 주실 분은 아래에 연락처를
남겨 놓을테니 연락들 주세요.
그럼 여러분 모두들 알찬 삶을 살아가시길 빌며 이만 줄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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