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바람에 흔들리는 게 한두가지일까. 저 굳건한 소나무도 솔잎 떨구며 몸 으으스 떤다. 그리고 억새. 가장 섬세하게, 가장 민감한 몸짓으로 물결치며 반짝이는 햇살의 자식들이다. 이른아침 또는 해지기 전 햇살 비스듬이 받으며 춤추는 억새 무리는 참으로 눈부시다. 솜털같은 부드러움으로 거대한 산봉우리를 감싸고 있는 가을 억새밭으로 가본다.
억새는 주로 산등성이나 정상부에 9월말부터 11월까지 피어나는 볏과에 속하는 여러해살이 풀. 갈대도 볏과에 속하지만 강가이나 바닷가에서 자란다는 점에서 다르다. 갈대의 흔들림이 대개 쓸쓸한 풍경을 그려보인다면, 억새의 흔들림은 푸근함속에서도 가슴을 파고드는 어떤 안타까움같은 걸 자아낸다. 그들이 흔들리며 일제히 가리키고 있는 방향, 그 곳은 아마도 모진 겨울을 견디고 다시 일어설 새봄의 문턱쯤이 아닐런지.
“한치 뒷산에 곤드레 딱주기 임의 맛만 같다면, 올봄내나 그것만 뜯어도 봄 살아 내잖나….” 정선아리랑의 한 구절. `한치 뒷산‘은 정선의 민둥산(1118.8m)을 가리킨다. 민둥산은 봄이면 산나물이 지천으로 깔리는 곳이다. 민둥산에 나무가 없는 것도 산나물 생육을 위해 해마다 산에 불을 질러왔기 때문이라고 한다. 봄철 민둥산을 덮는 것이 산나물이라면, 가을이 깊어가는 지금 이곳은 억새들의 은갈색 물결이 장관을 이루고 있다.
△ 정상에서 춤추는 억새들.(위) 억새밭에 드리운 가을하늘.(아래)
아침 7시 무릉리 능전마을에서 시작해 발구덕마을 지나 배추밭 사잇길로 올라섰다. 소나무와 잣나무가 짙은 솔향을 내뿜는 비탈길을 따라 20여분 오르면 어느 순간 훌렁 벗겨진 밋밋한 산자락이 펼쳐진다. 벗겨졌다고는 하지만 그것은 나무가 없다는 뜻일 뿐, 억새 무리가 도토리 키자랑 하듯 솟아올라 흔들리며 비탈을 덮고 있다. 억새들 사이에서 시들어가며 마지막 빛을 내뿜고 있는 것은 보라색 엉겅퀴와 쑥부쟁이들이다. 산불감시탑이 껑충하게 선 정상에 올라서자 탄성이 저절로 튀어나온다. 억새 때문이 아니다. 동서남북으로 시원하게 펼쳐진 산줄기들의 파노라마가 아찔하다. 눈부신 구름바다에 떠 흘러가는 산줄기들. 가까이는 같은 능선상의 지억산과 철쭉으로 이름난 두위봉, 멀리는 함백산과 태백산까지 흰 파도에 안긴 섬이 되어 흐르고 있다. 동북쪽 능선 일부외엔 거의 180도 사방이 트였다. 그리고 시선을 떨구면 은갈색 억새바다다. 막 피기 시작한 것에서부터 활짝 부풀어올라 바람에 날리는 것들까지 능선 일대가 포슬포슬한 솜밭이다. 지난해에 비하면 억새밭 경관이 덜하다는 게 주민들의 말. 지난해엔 산불 우려로 불을 놓지 못하고 베어내기만 했기 때문이다. 베어낸 억새로 만든 움막집이 능선에 세 채 있어 비나 추위를 피할 수 있다.
덤. 늦은 오후 달맞이 재미도 쏠쏠하단다. 발구덕마을 포장마차 안주인 김명순(44)씨는 “일찍 문 닫으려다가도 동쪽 작은발구데이 위로 둥실 떠오르는 달을 구경하는 재미 때문에 더 기다리게 된다”며 황홀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민둥산에 오르는 길은 몇가지 코스가 있지만 능전마을에서 오르는 코스가 정상에서 가장 가깝다. 정상까지 2.5㎞. 능전에서 발구덕마을까지 시멘트로 포장돼 승용차를 타고 갈 수 있지만, 길이 좁아 차량이 몰릴 땐 매우 불편하다. 능전마을에 차를 대고 걸어오르는 게 낫다. 발구덕마을까지 걸어서 40분, 발구덕에서 정상까지 30분 거리다. 비가 오면 길이 매우 미끄러워져, 맑은 날을 골라야 한다. 발구덕마을엔 간이포장마차(박재홍씨·011-9058-4118)가 있어 메밀부침·컵라면 등으로 요기를 할 수 있다. 정선군 증산읍 증산초등학교에서 능선을 타고 갈 수도 있다. 4㎞, 2시간 거리.
<가는 길>
서울 청량리역에서 증산역(033-591-1069)으로 가는 열차가 하루 6회(8시, 10시, 12시, 14시, 17시, 22시) 있다. 17시 열차가 새마을호(3시간30분 소요), 나머지는 무궁화호(4시간 소요)다. 영동고속도로 진부나들목을 나와 33번 국도 타고 정선읍 지나 문곡(남면소재지)에서 38번 국도 타고 증산까지 간다. 증산에서 421번 지방도 따라 좌회전하면 민둥산 팻말이 있는 능전마을로 갈 수 있다. 중앙고속도로에선 서제천나들목을 나와 38번 국도 타고 제천~영월~신동~문곡~증산으로 간다.
<먹을거리>
정선읍에는 메밀손칼국수인 콧등치기국수를 내는 집이 많다. 면발이 푸들푸들해 먹을 때 콧등을 친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읍내 동광식당의 콧등치기국수가 많이 알려졌으나, 최근 수해로 식당 건물을 헐었다. 11월께 다시 열 예정. 정선읍 장터 뒤 등기소 부근의 이모네식당(033-562-9711)도 맛있게 한다. 감자 옹심이를 넣은 감자옹심메밀콧등치기국수(4000원) 한가지만을 낸다. 국물이 부드럽고 진하다.
<묵을곳>
증산과 문곡리에 여관이 여러곳 있다. 증산의 사우나장(033- )은 1박에 3만5000원을 받는데 새로 지어 비교적 깨끗하고, 목욕탕도 그냥 이용할 수 있다.
정선 ‘민둥산’ 은갈색 물결들이 ‘출렁’
가을 바람에 흔들리는 게 한두가지일까. 저 굳건한 소나무도 솔잎 떨구며 몸 으으스 떤다. 그리고 억새. 가장 섬세하게, 가장 민감한 몸짓으로 물결치며 반짝이는 햇살의 자식들이다. 이른아침 또는 해지기 전 햇살 비스듬이 받으며 춤추는 억새 무리는 참으로 눈부시다. 솜털같은 부드러움으로 거대한 산봉우리를 감싸고 있는 가을 억새밭으로 가본다.
억새는 주로 산등성이나 정상부에 9월말부터 11월까지 피어나는 볏과에 속하는 여러해살이 풀. 갈대도 볏과에 속하지만 강가이나 바닷가에서 자란다는 점에서 다르다. 갈대의 흔들림이 대개 쓸쓸한 풍경을 그려보인다면, 억새의 흔들림은 푸근함속에서도 가슴을 파고드는 어떤 안타까움같은 걸 자아낸다. 그들이 흔들리며 일제히 가리키고 있는 방향, 그 곳은 아마도 모진 겨울을 견디고 다시 일어설 새봄의 문턱쯤이 아닐런지.
“한치 뒷산에 곤드레 딱주기 임의 맛만 같다면, 올봄내나 그것만 뜯어도 봄 살아 내잖나….” 정선아리랑의 한 구절. `한치 뒷산‘은 정선의 민둥산(1118.8m)을 가리킨다. 민둥산은 봄이면 산나물이 지천으로 깔리는 곳이다. 민둥산에 나무가 없는 것도 산나물 생육을 위해 해마다 산에 불을 질러왔기 때문이라고 한다. 봄철 민둥산을 덮는 것이 산나물이라면, 가을이 깊어가는 지금 이곳은 억새들의 은갈색 물결이 장관을 이루고 있다.
△ 정상에서 춤추는 억새들.(위) 억새밭에 드리운 가을하늘.(아래)
아침 7시 무릉리 능전마을에서 시작해 발구덕마을 지나 배추밭 사잇길로 올라섰다. 소나무와 잣나무가 짙은 솔향을 내뿜는 비탈길을 따라 20여분 오르면 어느 순간 훌렁 벗겨진 밋밋한 산자락이 펼쳐진다. 벗겨졌다고는 하지만 그것은 나무가 없다는 뜻일 뿐, 억새 무리가 도토리 키자랑 하듯 솟아올라 흔들리며 비탈을 덮고 있다. 억새들 사이에서 시들어가며 마지막 빛을 내뿜고 있는 것은 보라색 엉겅퀴와 쑥부쟁이들이다. 산불감시탑이 껑충하게 선 정상에 올라서자 탄성이 저절로 튀어나온다. 억새 때문이 아니다. 동서남북으로 시원하게 펼쳐진 산줄기들의 파노라마가 아찔하다. 눈부신 구름바다에 떠 흘러가는 산줄기들. 가까이는 같은 능선상의 지억산과 철쭉으로 이름난 두위봉, 멀리는 함백산과 태백산까지 흰 파도에 안긴 섬이 되어 흐르고 있다. 동북쪽 능선 일부외엔 거의 180도 사방이 트였다. 그리고 시선을 떨구면 은갈색 억새바다다. 막 피기 시작한 것에서부터 활짝 부풀어올라 바람에 날리는 것들까지 능선 일대가 포슬포슬한 솜밭이다. 지난해에 비하면 억새밭 경관이 덜하다는 게 주민들의 말. 지난해엔 산불 우려로 불을 놓지 못하고 베어내기만 했기 때문이다. 베어낸 억새로 만든 움막집이 능선에 세 채 있어 비나 추위를 피할 수 있다.덤. 늦은 오후 달맞이 재미도 쏠쏠하단다. 발구덕마을 포장마차 안주인 김명순(44)씨는 “일찍 문 닫으려다가도 동쪽 작은발구데이 위로 둥실 떠오르는 달을 구경하는 재미 때문에 더 기다리게 된다”며 황홀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민둥산에 오르는 길은 몇가지 코스가 있지만 능전마을에서 오르는 코스가 정상에서 가장 가깝다. 정상까지 2.5㎞. 능전에서 발구덕마을까지 시멘트로 포장돼 승용차를 타고 갈 수 있지만, 길이 좁아 차량이 몰릴 땐 매우 불편하다. 능전마을에 차를 대고 걸어오르는 게 낫다. 발구덕마을까지 걸어서 40분, 발구덕에서 정상까지 30분 거리다. 비가 오면 길이 매우 미끄러워져, 맑은 날을 골라야 한다. 발구덕마을엔 간이포장마차(박재홍씨·011-9058-4118)가 있어 메밀부침·컵라면 등으로 요기를 할 수 있다. 정선군 증산읍 증산초등학교에서 능선을 타고 갈 수도 있다. 4㎞, 2시간 거리.
<가는 길>
서울 청량리역에서 증산역(033-591-1069)으로 가는 열차가 하루 6회(8시, 10시, 12시, 14시, 17시, 22시) 있다. 17시 열차가 새마을호(3시간30분 소요), 나머지는 무궁화호(4시간 소요)다. 영동고속도로 진부나들목을 나와 33번 국도 타고 정선읍 지나 문곡(남면소재지)에서 38번 국도 타고 증산까지 간다. 증산에서 421번 지방도 따라 좌회전하면 민둥산 팻말이 있는 능전마을로 갈 수 있다. 중앙고속도로에선 서제천나들목을 나와 38번 국도 타고 제천~영월~신동~문곡~증산으로 간다.
<먹을거리>
정선읍에는 메밀손칼국수인 콧등치기국수를 내는 집이 많다. 면발이 푸들푸들해 먹을 때 콧등을 친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읍내 동광식당의 콧등치기국수가 많이 알려졌으나, 최근 수해로 식당 건물을 헐었다. 11월께 다시 열 예정. 정선읍 장터 뒤 등기소 부근의 이모네식당(033-562-9711)도 맛있게 한다. 감자 옹심이를 넣은 감자옹심메밀콧등치기국수(4000원) 한가지만을 낸다. 국물이 부드럽고 진하다.
<묵을곳>
증산과 문곡리에 여관이 여러곳 있다. 증산의 사우나장(033- )은 1박에 3만5000원을 받는데 새로 지어 비교적 깨끗하고, 목욕탕도 그냥 이용할 수 있다.
한겨레 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