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게......" "됐어. 어서 들어와서 먹 좀 갈아줘. 쓰고 싶은게 있는데 너 때문에 못했잖아." 춘향은 얼른 방으로 들어가 버렸고 뒤따라 들어가는 향단의 마음은 조금 복잡했다. 춘향이가 물어봤을때 바로 대답하지 못한게 마음에 걸렸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오히려 말하지 않았다는것이... 둘만의 비밀이 생겼다는것에 엷은 미소를 띄게 했다. 벼루에 물을 조금 넣고 먹을 동그라미 모양으로 돌렸다. 점점 짙은 흑색으로 바뀌자 춘향은 자신이 가진것중 제일 좋은 붓에 먹물을 묻히고는 흰 한지에 정성스럽게 한자 한자 써 내려갔다. "서신을 보내시게요?" "응" "아씨가 제일 아끼는 붓으로 쓰시는걸 보니 귀한 분이신가봐요." "그래?... 그럴지도.."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고 다 쓴 서신을 보며 춘향은 흐믓한듯 웃음을 머금었다. "다썼다. 향단아 이 서신 지금 몽룡 도련님께 전해드리렴." "네? 지금요?" "그래. 지금 얼른가서 전해드리고와. 꼭 전해드려야 한다. 알겠지!" 서신을 들고 대문을 나서는 향단의 발걸음이 무겁다. 한숨을 쉬며 할수없이 관아로 향했다. 관아로 향하는 길목엔 석양의 붉은빛으로 물든 광안루가 있었다. 보통같아선 그냥 지나쳤을 그곳이지만 어제의 기억때문인지 한번더 보고싶단 생각이 들었다. '잠시만.. 잠시만 들렀가가자' 광안루의 다리를 건너 향단의 몸보다 10배는 굵어보이는 버드나무가 있는곳으로 향했다. 미풍에 흔들리는 나무를 보고있는데 뒤편에서 인기척이 들린다. "여기서 뭘하고 있느냐?" 저무는 석양을 등지고 서있는 몽룡이 보인다. 향단은 믿을수 없다는 표정으로 몽룡을 보고만 있다. "벙어리가 된것이냐? 아까는 소리도 잘 지르더니 왜 아무말도 없는것이냐?" "예?....그게 아니오라 이곳에서 도련님을 만난것이 믿기지 않아서요." "그건 내가 할말인것 같은데..너는 이시간에 여기 어인일인것이냐?" 자신을 뚫어져라 보는 몽룡의 눈빛에 향단은 얼른 고개를 숙여 눈을 피했다. 그리고 향단의 얼굴은 점점 달아올랐다. "그것이 저희 아씨께서 도련님께 서신을 전하라 하셔서요." 향단은 몽룡을 보지 못하고 고개를 숙이며 소매에서 서신을 꺼내 주었다. "서신을?" 몽룡은 서신을 읽어내려갔다. '도련님 평안하시온지요? 일전의 제실수로 아직 심기가 불편하지 않은지 걱정이옵니다. 그 밤 도련님을 만나뵈옵지 못한것을 후회하고 또 후회하고 있사옵니다. 하오나 도련님 제가 비록 미천한 퇴기의 딸이라고 하나 저도 여인네인지라 정조과 절개를 가지고 있사옵니다. 도련님께서 사흘뒤에 만나자고 하신말씀 소녀 너무 기쁘지만 감히 소녀 도련님께 청을 올려도 되겠사옵니까. 얼마간은 이렇게 서신으로 제마음을 도련님께 전해드려도 괜찮을지요. 여인의 정조가 얼마나 중요한지는 양반이신 도련님께서 더 잘 아실꺼라고 믿습니다. 향단이에게 도련님의 뜻을 알려주시면 도련님의 뜻이 싫든 좋든 소녀 도련님을 따르겠나이다.' 서신을 다 읽은 몽룡은 생각에 잠기었다. '나를 시험하고 있는건가? 흥. 네뜻대로 할순 없지.' 춘향의 서신을 접으며 몽룡이 말했다. "향단아 따라오너라. 너에게 따로 할말이 있다" 영문도 모른체 향단은 몽룡의 뒤를 따라갔다. 향단이 따라간곳은 작은 들꽃이 많이 피어있는 조그만 언덕이었다. "너무 이뻐요." "혼자보기 아까운곳이지. 다 포기하고 싶을때 이곳에 와 이것들을 보면 조금 위로가 되서 가끔 찾는 곳이야. 그리고 추억이 있는곳이기도 하지." 몽룡은 새빨간 하늘을 보며 옛일을 떠올렸다. 그런 그를 향단은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다. "내가 어릴적에 뱀에 물린적이 있었는데 그 장소가 바로 여기야. 내 평생의 잊을수 없는 기억이지... 어린나이에 죽음의 공포를 경험했고 육체적 고통도 느꼈던 그날... 한 아이를 만났어.. 내 생명의 은인.. 그아이가 없었다면 난 지금 이곳에 존재하지 않았을지도 모르지..." "..." 향단은 느닷없는 몽룡의 어린시절 얘기에 의아해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그때의 몽룡의 심정이 떠올라 자신도 모르게 조금 침울해졌다. "그날 이후로 그아이 생각을 늘 했었다. 꼭 찾고 싶었어.. 내가 해줄수 있는건 다해주고 싶었거든.. 무엇이든지 말야...... 근데 드디어 그아이를 찾았어. 날 살려준 내생명의 은인은..... 바로 너야." 갑작스런 몽룡의 말에 깜짝 놀랐지만 조금 뒤 향단의 옛기억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날은 향단이에게도 평생 잊을수 없는날...하지만 그 상대가 몽룡이었을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리고 낮에 그가 한말.. "전 그때 너무 어려서 뱀에 물렸던 그아이의 얼굴은 잊어버렸었어요. 도련님일꺼라고는 생각도 못했는데... 두번째라는게 이거였군요." 몽룡은 말없이 고개만 끄덕인다. 둘은 한동안 아무말없이 그저 하늘만 보고 있었다. 그러다 먼저 향단이 입을 열었다. "그날은 아침부터 되는일이 없었어요. 그릇을 깨질 않나 물을 엎지르지 않나... 그리고 더 큰 사건은 춘향 아씨가 없어진거에요. 아씨를 찾는다고 온 고을 뒤지다 여기까지 온것이었어요. 그러다 뱀에 물린 아이를 봤고 우선 독을 빼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렇게 한거였고요. 그날은 저도 평생 잊지 못해요. 잘못됐다면 아마 제 제삿날이 됐을꺼니까요. 입에 상처가 있었어요 아주 조그만...아주머니가 그러는데 닷세를 알았데요. 노비라 의원도 못부르고 다른사람들은 다 제가 죽을꺼라고 했었나봐요. 근데 운이 좋아 살았죠." "줄곳 생각했다. 나를 살려준 그 소녀를... 광안루에서 널 처음 보았을때 10년만에 보았지만 한눈에 알아볼수 있었다. 어렸을때 얼굴이 그대로더구나.. 후후 날 살려준 보답으로 네 소원을 들어주고 싶은데 원하는것이 있느냐? 내 할수있는한 모두 들어주마." 오월인데도 스산한 바람이 불어 향단의 옷고름이 풀어질듯 말듯 하늘하늘거렸다. "대가를 원해서 한일이 아닙니다. 무언가를 원한다해도 목숨을 걸만큼의 일은 하지 않아요. 저는 그저 죽어가는 사람을 위해 내 맘이 가는대로 했을뿐이에요. 후사는 필요없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만 돌아가겠습니다." 향단은 말을 끊어버리고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한후 몽룡을 뒤로한체 서둘러 자리를 떠났다. 갑자기 돌아가버리는 향단의 행동에 몽룡은 당황한듯한 표정을 지으며 떠나는 향단의 뒤통수에 대고 소리친다. "춘향이에게 전하거라 허락한다고 그뜻을 받아들인다고"
[몽룡전] 5장. 인연
"그게......"
"됐어. 어서 들어와서 먹 좀 갈아줘. 쓰고 싶은게 있는데 너 때문에 못했잖아."
춘향은 얼른 방으로 들어가 버렸고 뒤따라 들어가는 향단의 마음은 조금 복잡했다.
춘향이가 물어봤을때 바로 대답하지 못한게 마음에 걸렸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오히려 말하지 않았다는것이...
둘만의 비밀이 생겼다는것에 엷은 미소를 띄게 했다.
벼루에 물을 조금 넣고 먹을 동그라미 모양으로 돌렸다.
점점 짙은 흑색으로 바뀌자 춘향은 자신이 가진것중 제일 좋은 붓에 먹물을 묻히고는
흰 한지에 정성스럽게 한자 한자 써 내려갔다.
"서신을 보내시게요?"
"응"
"아씨가 제일 아끼는 붓으로 쓰시는걸 보니 귀한 분이신가봐요."
"그래?... 그럴지도.."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고 다 쓴 서신을 보며 춘향은 흐믓한듯 웃음을 머금었다.
"다썼다. 향단아 이 서신 지금 몽룡 도련님께 전해드리렴."
"네? 지금요?"
"그래. 지금 얼른가서 전해드리고와. 꼭 전해드려야 한다. 알겠지!"
서신을 들고 대문을 나서는 향단의 발걸음이 무겁다. 한숨을 쉬며 할수없이 관아로 향했다.
관아로 향하는 길목엔 석양의 붉은빛으로 물든 광안루가 있었다. 보통같아선 그냥 지나쳤을
그곳이지만 어제의 기억때문인지 한번더 보고싶단 생각이 들었다.
'잠시만.. 잠시만 들렀가가자'
광안루의 다리를 건너 향단의 몸보다 10배는 굵어보이는 버드나무가 있는곳으로 향했다.
미풍에 흔들리는 나무를 보고있는데 뒤편에서 인기척이 들린다.
"여기서 뭘하고 있느냐?"
저무는 석양을 등지고 서있는 몽룡이 보인다.
향단은 믿을수 없다는 표정으로 몽룡을 보고만 있다.
"벙어리가 된것이냐? 아까는 소리도 잘 지르더니 왜 아무말도 없는것이냐?"
"예?....그게 아니오라 이곳에서 도련님을 만난것이 믿기지 않아서요."
"그건 내가 할말인것 같은데..너는 이시간에 여기 어인일인것이냐?"
자신을 뚫어져라 보는 몽룡의 눈빛에 향단은 얼른 고개를 숙여 눈을 피했다. 그리고 향단의 얼굴은
점점 달아올랐다.
"그것이 저희 아씨께서 도련님께 서신을 전하라 하셔서요."
향단은 몽룡을 보지 못하고 고개를 숙이며 소매에서 서신을 꺼내 주었다.
"서신을?"
몽룡은 서신을 읽어내려갔다.
'도련님 평안하시온지요? 일전의 제실수로 아직 심기가 불편하지 않은지 걱정이옵니다.
그 밤 도련님을 만나뵈옵지 못한것을 후회하고 또 후회하고 있사옵니다. 하오나 도련님 제가 비록
미천한 퇴기의 딸이라고 하나 저도 여인네인지라 정조과 절개를 가지고 있사옵니다. 도련님께서
사흘뒤에 만나자고 하신말씀 소녀 너무 기쁘지만 감히 소녀 도련님께 청을 올려도 되겠사옵니까.
얼마간은 이렇게 서신으로 제마음을 도련님께 전해드려도 괜찮을지요. 여인의 정조가 얼마나
중요한지는 양반이신 도련님께서 더 잘 아실꺼라고 믿습니다. 향단이에게 도련님의 뜻을 알려주시면
도련님의 뜻이 싫든 좋든 소녀 도련님을 따르겠나이다.'
서신을 다 읽은 몽룡은 생각에 잠기었다.
'나를 시험하고 있는건가? 흥. 네뜻대로 할순 없지.'
춘향의 서신을 접으며 몽룡이 말했다.
"향단아 따라오너라. 너에게 따로 할말이 있다"
영문도 모른체 향단은 몽룡의 뒤를 따라갔다. 향단이 따라간곳은 작은 들꽃이 많이 피어있는 조그만
언덕이었다.
"너무 이뻐요."
"혼자보기 아까운곳이지. 다 포기하고 싶을때 이곳에 와 이것들을 보면 조금 위로가 되서 가끔 찾는
곳이야. 그리고 추억이 있는곳이기도 하지."
몽룡은 새빨간 하늘을 보며 옛일을 떠올렸다.
그런 그를 향단은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다.
"내가 어릴적에 뱀에 물린적이 있었는데 그 장소가 바로 여기야. 내 평생의 잊을수 없는 기억이지...
어린나이에 죽음의 공포를 경험했고 육체적 고통도 느꼈던 그날... 한 아이를 만났어..
내 생명의 은인.. 그아이가 없었다면 난 지금 이곳에 존재하지 않았을지도 모르지..."
"..."
향단은 느닷없는 몽룡의 어린시절 얘기에 의아해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그때의 몽룡의 심정이 떠올라
자신도 모르게 조금 침울해졌다.
"그날 이후로 그아이 생각을 늘 했었다. 꼭 찾고 싶었어.. 내가 해줄수 있는건 다해주고 싶었거든..
무엇이든지 말야...... 근데 드디어 그아이를 찾았어. 날 살려준 내생명의 은인은.....
바로 너야."
갑작스런 몽룡의 말에 깜짝 놀랐지만 조금 뒤 향단의 옛기억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날은 향단이에게도 평생 잊을수 없는날...하지만 그 상대가 몽룡이었을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리고 낮에 그가 한말..
"전 그때 너무 어려서 뱀에 물렸던 그아이의 얼굴은 잊어버렸었어요. 도련님일꺼라고는 생각도
못했는데... 두번째라는게 이거였군요."
몽룡은 말없이 고개만 끄덕인다.
둘은 한동안 아무말없이 그저 하늘만 보고 있었다. 그러다 먼저 향단이 입을 열었다.
"그날은 아침부터 되는일이 없었어요. 그릇을 깨질 않나 물을 엎지르지 않나... 그리고 더 큰 사건은
춘향 아씨가 없어진거에요. 아씨를 찾는다고 온 고을 뒤지다 여기까지 온것이었어요. 그러다 뱀에 물린
아이를 봤고 우선 독을 빼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렇게 한거였고요. 그날은 저도 평생 잊지
못해요. 잘못됐다면 아마 제 제삿날이 됐을꺼니까요. 입에 상처가 있었어요 아주 조그만...아주머니가
그러는데 닷세를 알았데요. 노비라 의원도 못부르고 다른사람들은 다 제가 죽을꺼라고 했었나봐요.
근데 운이 좋아 살았죠."
"줄곳 생각했다. 나를 살려준 그 소녀를... 광안루에서 널 처음 보았을때 10년만에 보았지만 한눈에
알아볼수 있었다. 어렸을때 얼굴이 그대로더구나.. 후후 날 살려준 보답으로 네 소원을 들어주고
싶은데 원하는것이 있느냐? 내 할수있는한 모두 들어주마."
오월인데도 스산한 바람이 불어 향단의 옷고름이 풀어질듯 말듯 하늘하늘거렸다.
"대가를 원해서 한일이 아닙니다. 무언가를 원한다해도 목숨을 걸만큼의 일은 하지 않아요. 저는 그저
죽어가는 사람을 위해 내 맘이 가는대로 했을뿐이에요. 후사는 필요없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만 돌아가겠습니다."
향단은 말을 끊어버리고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한후 몽룡을 뒤로한체 서둘러 자리를 떠났다.
갑자기 돌아가버리는 향단의 행동에 몽룡은 당황한듯한 표정을 지으며 떠나는 향단의 뒤통수에 대고
소리친다.
"춘향이에게 전하거라 허락한다고 그뜻을 받아들인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