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태지에서 샵까지' 그룹해체 가지가지

임정익2002.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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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태지에서 샵까지' 그룹해체 가지가지

4인조 혼성그룹 샵의 해체 이유는 팀의 간판격인 이지혜와 서지영의 갈등이다. 그러나 해체 결정은 이지혜와 서지영에게 권한이 없었다. 샵의 소속사가 최종결정했다.

80년대 이후 숱하게 피고 진 댄스그룹들은 대부분 소속사가 결성하고 해체시켰다. 멤버들이 연주하고 작곡하는 밴드와 달리 프로젝트에 의해 만들어지는 댄스그룹들은 음반제작자의 수지타산의 논리에 의해 탄생하고 생을 마감하기 마련이다.

영국의 하드록 그룹 레드 제플린은 드러머 존 보냄이 비행기 추락사고로 사망하자 스스로 해체를 선언했다. 리드 보컬 로버트 플랜트는 “보냄이 없는 레드 제플린은 의미가 없다”고 해체 이유를 밝혔다. 세계 대중음악계에서 가장 위대했다는 평가를 받는 비틀즈. 해체후 각각의 길을 걷던 중 리더인 존 레넌이 광적인 팬의 총격에 의해 사망하자 음악계와 팬들은 나머지 3명에게 레넌을 기리기 위해서라도 재결성하라는 거센 압력을 받았지만 재결성을 포기했다. 이들이 재결성된다면 돈방석에 앉는 것은 시간문제였음에도 불구하고. 그 이유는 역시 “레넌이 없는 비틀즈는 없다”였다.

그러나 이처럼 멋진 해체는 댄스그룹의 경우는 드물다.

80년대 후반 인기를 끌었던 남성듀오 ‘도시아이들’. 이들은 지면에 누구 이름이 먼저 나오는가에도 민감할 정도로 인기도만큼 갈등의 골이 깊어진 끝에 2년만에 해체됐다.

국내 힙합의 선두주자 ‘듀스’. 작곡과 안무는 이현도가 도맡아 했지만 인기는 김성재가 더 높았다. 이들은 이런 인기도와 수입배분으로 갈등을 빚다가 결국 3집을 끝으로 해체를 선언했다. 소속사에서는 계속 그룹을 이끌어가고 싶었지만 음악과 안무를 총괄했던 이현도의 솔로 독립 의지를 꺾을 수 없었다.

80년대를 주름잡은 송골매는 배철수와 구창모라는 쌍두마차가 이끌었다. 한 나라에 왕이 둘이다보니 결국 나라가 결단날 수밖에 없었다.

'서태지에서 샵까지' 그룹해체 가지가지80년대 후반 댄스뮤직의 중흥시대를 연 3인조 그룹 소방차. 이들은 절정의 인기를 누리던 92년 전격 해체됐다. 인기도만큼 수입이 뒤따르지 않은데다가 3명의 멤버중 한명이 말썽을 피우자 수지타산이 안맞는다고 판단한 소속사에서 전격 해체를 언론에 발표해 버린 것. 발표 전날까지도 3명의 멤버들은 자신들이 해체되는 줄 까마득히 모르고 있었다. ‘젝스키스’도 비슷한 케이스. 인기가 높아질수록 6명의 멤버에게 지급되는 수입배분율이 높아지는데 반해 수입증가율이 그다지 높지 않자 소속사에서는 더이상 관리가 힘들다는 판단하에 전격 해체를 선언해버렸다.

HOT는 소득분배 과정에서 멤버간의 갈등이 깊어져 해체된 케이스. 시쳇말로 ‘똑같이 고생하는데 누구는 많이 주고 누구는 조금 준다’는 불만이 증폭돼 해체로 이어진 것. 듀스와 비슷한 예다. ‘투투’와 ‘룰라’는 멤버중 한명이 인기도만큼이나 튀는 행동을 해서 나머지 멤버들에게 ‘왕따’를 당하는 바람에 해체됐다. 팀워크의 중요성을 보여준 대표적인 사례다.

1인 독주로 인해 멤버교체가 끊이지 않는 그룹도 많다. 벗님들과 해바라기가 대표적이다. 영국의 유명 기타리스트 리치 블랙모어는 딥 퍼플 탈퇴후 결성한 그룹 레인보우 시절 보컬리스트 그래험 보네트가 머리를 짧게 깎았다는 이유(록그룹은 머리를 길게 기르는 게 트레이드 마크)로 기타로 머리를 때려 그가 탈퇴하게 만들었다. 그후에도 그는 수시로 멤버를 갈아치우는 악명을 떨쳤다. ‘서태지와 아이들’의 해체 때 서태지는 창작의 고통을 이겨내기 힘들어서라고 말했다. 그게 사실이든 아니든 어쨌든 양현석 이주노의 의지와 상관 없는 서태지의 일방적인 결정이었던 것만큼은 확실하다.

 

 

스포츠서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