펌] 빨간 상자의 비밀

정재훈2002.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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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석에서 쪼그려 앉은 아이를 봤다.



그 아이는 왠지 기분 나빴다.



그 아이와 만난 것은 그 아이가 옆집으로 이사를 오게



되면서부터였다. 보기에도 쭈글쭈글한 주름, 고생을 많이 한 듯



수척해져 있는 할머니와 함께...







“이사 오셨나보죠?”







수척해 보이는 할머니에게 말을 걸어 보았다.



할머니의 표정엔 웃음기라는 것을 찾아볼 수 없었다.



이삿짐을 많이 날라서 힘이 드신 것 같았다.



할머니는 그런 나를 향해 고개를 가로저으며 혀를 차며 말했다.







“젊은이. 우리에게 관심 갖지 않는 게 좋을거네.”



“네?”



“아참. 젊은이가 귀가 먹었나. 우리에게 상관 말라는 얘길세.”



“.......”







할머니는 뭐가 그리도 급한지 이삿짐을 나르는 용역회사 아저씨들을



다그쳤다. 덕분에 도와 줘야 한다는 생각도 못하고 있었을 때 아이와



눈이 마주쳤다. 양 갈래로 곱게 땋은 머리와 더불어 너무도 하얀 피부와



빨간 입술이 조화를 이루는, 일곱 살 정도 되어 보이는 아이였다.



아이는 어떤 상자에 앉아 있었다. 이삿짐으로 보이는 그 상자를 아이는



유난히 집착하듯 앉아선 이삿짐센터의 용역직원들을 노려보고 있었다.



상자는 다른 이삿짐과는 달리 유난히 빨간색을 띄고 있었다. 그렇다고



종이 상자는 아니었다. 마치 마술 상자를 연상케하는 상자였다.







‘왜 저러는 거지?’







아이의 눈빛이라고는 해도 믿을 수 없는 눈빛이었다.



상자에 집착을 보이는 그 아이는 용역직원들이 그것을 집 안으로



들여 보내는 것도 매우 조심스러워 했다.







‘보물이라도 들어 있나?’











이삿짐이 다 들어간 후 할머니가 나와서는 아이를 불렀다.



아이는 아까의 그 아이라고 믿을 수 없는 듯한 천진난만함을



보이며 집으로 들어가 버렸다.







그 날 이후 아이를 보게 된 것은 한 달이 다 되어서였다.



아이는 하얗고 곱던 피부가 조금은 창백하다싶을 정도로



변해 있었고, 눈은 실핏줄이 서 있어서 토끼 눈 같았다.







“어디 아프니?”







걱정이 되었다.







“아뇨.”







아이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그 와중에 눈에 띄는 것은 아이의 수척해진 몸이었다.







‘할머니와 단둘이 살아서 그런가..?’







아이가 순간 불쌍하게 보였다.



어떤 날은 아이가 마구 우는 소리가 들리기도 했다.



방음이 되어 있는 집이 아닌 탓에 아이가 이사 오게 된 후로



우리집은 그 소리를 계속 들어야 했던 것이다. 그래서 내린



생각이 그것이었지만..













“지수야!”







할머니가 매서운 눈으로 나를 노려보며 손녀딸을 불렀다.



손녀딸은 화들짝 놀라며 할머니 곁으로 다가갔다.







“내가 말했지. 사람들과 가까이 하지 말라고..”



“흑..흐흑..”







할머니는 남이 보기에도 친할머니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민망함이 느껴지도록 그 아이를 꾸짖다 못해 혼냈다. 그리고



병주고 약 주듯 아이를 달래더니 나를 노려보며 말했다.







“젊은이 내 말을 못 알아들었나? 우리와는 상관하지 말라고..”



“아니..상관한 게 아니라..”



“됐네. 들어가자. 지수야.”







지수와 할머니는 서두르듯 안으로 들어갔다.







‘정말 생각할수록 열 받네! 어른이라고 참으라는 거야! 뭐야!’







이후 할머니와 지수를 보는 일은 드물었다.



아이는 여전히 수척해져 갔고, 할머니는 더욱 더 초조해 했고,



심지어는 남들 다 참여하는 반상회 같은 거에도 벌금을 무는



한이 있어도 남들과 얽히는 것을 피해 왔다. 그래서 사람들도



그들이 있는지 없는지를 잘 몰랐고, 나도 그 중 하나가 되어 갔다.



사람이 잊혀진다는 것, 관심에서 멀어진다는 것은 후에 무서운 일이



될 줄은 생각도 못하는 것이 되고 말았다.







부모님이 부부동반 동창회를 나간 어느 비가 오는 오후였다.



천둥 마져 쳐서 혼자 있는 것이 무섭게 느껴졌다.







탕탕탕탕.







‘누구지?’







대문에서 누군가 문을 두들기는 소리가 났다.



흔히 집에 찾아오는 종교적인 문제를 들고 나타나는 이들이나



외판원일거라고 생각하고 텔레비전을 켰다.







탕탕탕탕







텔레비전의 소리와 더불어 들려서 그런지 들리지 않았다.







탕탕...







주르륵..







“아아..으아아아..”







빠가각..







빠가가각..







‘별로 재미없네.’







텔레비전을 끄면서 소리는 더 자세히 들리기 시작했다.







“으아아아!”







갑작스런 비명..이 들렸다.



그것도 또렷하게..











‘무슨 일이지?’







난 문을 열었다.











“꺄아아악!”







문 앞에는 핏자국이 흥건히 나 있었다.



핏자국을 따라 시선을 옮겼다.







‘옆집이다!?’







가슴 속에서 심장이 요동쳤다.



그리고 벌건 선혈을 따라 나도 모르게 발길이 옮겨지고 있었다.



발길은 옆집의 대문 앞에서 멈췄다.



문고리에 자그마한 손자국이 있는 핏자국이 있었다.



난 천천히 문고리를 돌려 당겼다.







끼이이이익~







“으아..”







문틈을 들여다 본 난 비명이 새어나오려 하는 것을 입으로 막았다.



작은 틈 사이로는 할머니의 쭈글쭈글한 가죽을 벗기는 자그마한



손길이 보였다. 그와 동시에 옆에선 피를 흘리며 허공을 응시하고



있는 아이가 보였다.







‘그 아이다!’







난 얼른 모른척 하려고 문을 닫으려 했다. 순간 문틈 사이로..







긴 머리를 늘어뜨린 사이로 보이는 커다란 눈이 보였다.







아이는 입에 피를 흘리며 무서울 정도로 섬뜩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어디 가려고? 언니 나랑 놀아줘야지..”







순간 내 몸을 빨려 들어가듯 안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그와 동시에..



내 몸은 서서히 해부되고 있었다.



아이는 내 몸의 신경 하나를 건드렸다.







‘움직일 수 없어!’







순간 아이의 입가에선 흐뭇하다는 듯한 음성이 들려왔다.







“내 상자의 수집품이 되줘서 고마워.”







순간 할머니 옆에 쓰러져 있던 아이의 정체가 확연히 보였다.







‘지수잖아!?’







순간 내 앞에 있는 아이의 얼굴이 드러났다.



하얀 얼굴에 빨간 입술이 돋보이는 아이였다.



그리곤 가슴엔 줄이 매여진 채 매달려 있는 인형이 있었다.



아이는 할머니와 지수를 상자에 뼈를 추려서 넣었다. 그와



동시에 상자는 더욱 더 붉은색을 띄고 있었다. 마치 저주에 걸린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