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 전철에서 .....

nhlee2006.04.11
조회4,099

요즘 전철에서 있었던 글들을 올리시는 분들이 있기에.. ^^

예전에 있었던 일을 하나 올릴까 합니다..

 

1997년, 피끓는 청춘, 20대의 저는 강원도 모 부대에서 군복무를 하고 있었죠.

화창한 어느 가을, (10월초였나?) 군생활이 남들보다 좀 빨리 풀려서 상병 4개월 째,

무소불위의 권력의 상징인 녹색 견장을 어깨에 달고 기분좋게 휴가를 나오게 되었답니다..

 

서울구경이 처음이라는, 처음 100일 휴가를 나오는 저희 분대 막내와 같이 말이죠...

전라도 어느 산골에서 군대를 와서 참 열심히, 사람들도 잘 따르고 유난히 제가 귀여워하던 후임였죠..

 

그! 래! 서!!!

'그래, 저넘 집에 가려면 강남 고속터미널까지 가는게 더 나으니까.. 같이 데려가서 밥이라두 먹여 보내야쥐' 하는 생각에 데리구 나왔답니다... 저는 집이 방배동이었거든요.. 어차피 가는길이니까 처음나와서 헤메는것보다 길을 아는 제가 책임을 지자는 생각에....

 

분위기 좋았습니다~ 출발은 말이죠... ㅠㅠ

버스를 타고 약 2시간 여를 달려 동서울 터미널에 내렸답니다..

이제 전철을 타고 가면 되는데...

첫번째 상황이 발생합니다...

이녀석... 부대에서는 참 착하구 안그랬는데... 밖에 나오니 돌변합니다..

그냥 표 끊지... 매표소 앞에서 휴가증을 보여주면서 반액표를 끊습니다

(원래... 휴가나온 군인들도 반액, 우대권을 끊을수는 있거든요...)

반액권, 색깔도 다릅니다..게다가 선명하게 "어린이용" 이라고 찍혀있습디다...

 

안습....

 

민망함을 무릅쓰고 서둘러 데라고 개찰구를 빠져나왔습니다...

그러나... 설상가상이라 했던가요? 바로 두번째 상황이 발생합니다.

한 5M 갔을까나? 뒤에서 어떤 어린 아이가 우리들을 불러 세웁디다..

"군인 아저씨~ 표 가져가세요~!!"

 

...........

 

서울이 초행인 후임병 녀석, 물론.... 전철도 처음이라고 하드라구요....

표를 넣고 자연스레... "난 표 냈다~^^" 하면서... 안뽑고 나와버린 것이었슴다...

바로 뒤에 따라오던 착한 어린이가 그걸 보고 우릴 불러세운거죠...

 

아~~ 씁~~

 

눈앞이 캄캄해집니다... 부대에서 참 이뻐하구 귀여워하던 후임이 그리 미울수가 없습니다...

몰라서 그랬다는데 갈굴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ㅜㅜ 빨리 차 태워서 집으루 보내구 싶었습니다..

그런데, 이 넘.... 그냥 빨리 터미널루 가지 인사동이라는 곳을 가보고 싶다구 하네요...

어쩌겠습니까... 데리구 나왔으니 책임을 져야죠...

초행인 녀석 도심한복판에서 길이라두 잃으면 얼마나 절 원망하겠습니까....라는 것보다는 나중에 부대 복귀해서 이등병 하나 제대루 못 챙겼다는 소리 듣고 싶지 않았던 게 더 컸겠죠? ^^

암튼.. 그래서 왕십리를 거쳐 5호선을 갈아탔답니다... 종로3가에서 내리려구요

그게 좀 더 빠르다고 생각했거든요..

 

아까 강변역에서 쌩쑈를 했으니 이제 전철 타는 것에 대해 별 걱정은 없겠다 싶었습니다.

그러나 마지막까지 긴장의 끈을 늦추면 안되는게 냉혹한 현실이었습니다..

1,2,3,4 호선과 5호선을 타보신 분들은 아시겠죠??

개찰구가 조금 다른 형식이라는 것을요...

1~4 호선은.. 표를 넣으면 반대쪽 끝에서 튀어나옵니다..

그러나 5호선은 포를 넣으면 바루 앞에서 불쑥 튀어 올라옵니다..

 

제가 생각이 짧았습니다...

역시나 제 후임...

표 넣구 반대쪽에 나와서 표 안나온다구 한참을 뒤지고 있습니다...

조용히나 있지... "분대장님~~ 표가 안나옵니다~!!!"

목소리도 큽니다...

 

그날.. 마음속 깊이 결심했습니다..

'내가 두번 다시 저넘하구 나오면 성을 간다....'

 

벌써 거의 10년 가까이 되었지만 아직도 가끔씩 그 친구를 만나거나 연락할때면 종종 꺼내곤 하는 이야기랍니다..

그 친구도 이제는 결혼하고 한 아이의 아빠가 되어서 잘 살고 있지요.

조만간 같이 복무했었던 사람들끼라 한 번 모여서 저녁이라도 해야겠다는 마음이 드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