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진 것은 아무것도 없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와 반대로 세상의 모든 것을 소유한 사람들도 있었고 기아와 참극 그리고 전쟁으로 이어지는 고통 속에서 어떻게 든 소유하고자 발버둥 치는 사람들도 있었다. 마치 더 이상 넘어질 필요가 없는 이미 넘어진 자처럼 세상은 그 사실을 부정하려는 모순으로 가득 차있는 상태였다.
가난한 마을 부스타파노프에서 홀로 생활을 하는 한 청년이 있었다. 지난 겨울 부모를 모두 잃어야만 했던 가난한 농부의 자손 보나파르트 기요틴, 그는 자신이 아무것도 가지지 못했다는 사실을 그 누구보다 잘 아는 청년이기도 했다.
해는 이미 기울여져 그 잔혹하리 만치 누런 배고픔의 빛을 대지에 내리쬔다. 허기에 지쳐 벽에 기댄 사람들의 모습에는 이미 생기라고는 느껴지지 않는다. 그런 그들의 무리들이 서둘러 누군가에게 몰려가기 시작했다. 어둠이 밀려오자 닥쳐오는 검은 승려의 복장을 한 남자. 그의 곁으로 몰려드는 사람들은 알아듣기 힘든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언제인가…” “누구 차례지..” “이젠 끝난 건가..” “그에게 가는 건가.” “죽여라. 계집아이가 그의 마지막 희망이다.”
죽은 자의 목소리처럼 아무런 힘도 느껴지지 않고 스쳐가는 바람처럼 다시 말할 수도 없는 그들의 이야기는 남자가 자신들을 지나쳐 지나갈 때까지 계속되었다. 남자가 움직이는 데로 어둠은 굶주린 황혼의 빛을 밀어내 자신의 영역을 늘려나간다. 그의 발걸음이 멈춘 것은 허름한 3층 건물이었다. 가난한 자들의 집이라 불리는 “펜유리아”, 그리고 22세의 청년 보나파르트 기요틴의 유일한 집이기도 했다.
………….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나 보니 저녁 7시를 넘어서 이미 해는 진 후였다. 보나파르트는 작업하고 있던 서류들을 정리하고 가방을 들었다. ‘바스티유’사교회의 회장 막스 엥겔스의 사서였던 그는 집에서 멀지않은 곳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그 아이가 오늘은 괜찮을까.”
보나파르트는 특유의 낮게 깔린 저음으로 입을 열고는 사무실 밖으로 나왔다. 일주일 전부터 여동생인 마르텔에게 감기 같은 증세가 나타나 걱정이 이만 저만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는 지체 없이 달리기 시작했다. 마을의 유일한 의사인 파스테르씨의 사무실이 닫히기 전에 동생의 약을 타가야 했던 것이다. 그에겐 마지막 남은 혈육이었다.
다시 가을의 문턱으로 들어선 밤거리는 벌써 아련한 추위가 느껴지었다. 가난 때문에 다른 사람들보다 더욱 얇고 기운 옷을 입고 있는 그는 그 추위를 고스란히 느꼈지만 동생을 생각하는 마음에 묻혀 그 발걸음은 빠르기만 했다.
다행히 보나파르트가 파스테르의 사무실에 도착했을 때는 아직 불이 꺼지지 않은 때였다.
- 똑똑
서둘러 사무실의 문을 두드리자 늙은 노파가 나왔다.
“안녕하십니까. 베스바이퍼부인.”
보나파르트는 인사했다. 베스바이퍼부인은 닥터 파스테르의 아내였다.
“자 여기 남편이 이걸 전해주라고 했네.”
베스파이퍼부인은 하나의 봉투를 건넸다. 그것은 마르텔의 하루치 약이었다. 돈이 부족한 보나파르트는 매일 하루치의 약만 살 수 있었다. 그것도 이제는 사용해도 효과가 있을지 없을지 모를 오래된 약이었다. 그는 서둘러 돈을 건네고 봉투를 받았다.
“안녕히 계십시오.”
몸을 돌리는 보나파르트는 속으로 비참한 기분이 느껴졌지만 더 이상 지체할 수 없었다. 조금이라도 약효가 남아있을 때 동생에게 약을 먹여야 했던 것이다. 그는 파스테르의 집을 방문할 때보다 더 빨리 뛰기 시작했다.
“하아 하아..”
가뿐 숨을 몰아 쉬며 집에 도착한 보나파르트. 그런데 어딘가 이상한 기운과 함께 정면에 응시 된 어둠의 저편이 자신을 쳐다보는 것 같은 느낌. 그는 불길함을 느꼈다.
한걸음 한걸음. 평소에는 그렇게 가볍던 발걸음이 낡은 돌계단에 올라서자마자 무거워지며 시선이 정면이 오목하게 들어가 보인다. 심장의 박동도 계속해서 올라가고 정말이지 참을 수 없는 느낌에 서늘한 공포마저 그를 덮쳐왔다.
“마르텔!!!”
불길한 그 무엇인가를 인지한 보나파르트는 동생의 이름을 부르며 급하게 올라갔다. 이미 무거웠던 발은 그를 방해하지 못했다.
마침내 방문 앞에 섰을 때 천천히 문을 열어 안으로 들어갔다. 차가운 가을 바람이 깨진 창문의 틈에서 새어 나와 방안에서 몰아치었다. 회오리 치는 그 모습은 보이지 않았지만 편안히 잠든 한 어린 소녀의 잠을 방해라도 하려는 듯 그 움직임은 차가웠다.
창백한 얼굴 고이 잠든 모습은 푸르스름한 달빛을 받아 더욱 창백했다. 보나파르트는 잠시 소녀를 보고 경직된 표정을 짖더니 이내 천천히 소녀에게 다가갔다. 한걸음씩 다가설 때마다 그의 눈가에 맺혀지는 뜨거운 이슬은 가을 바람의 춤에 의해 차갑게 식었다. 소녀의 얼굴에서 차가운 기운이 올라와 보나파르트의 손을 타고 그의 심장으로 스며들었다.
눈물이 계속 쏟아졌다. 그렇지만 그는 소리내지 않았다. 부모님이 돌아가신 그날 이후로 처음으로 곤히 잠든 동생이었다. 그는 그 잠을 깨우고 싶지 않았다. 어차피 깨지 않을 잠이라면 깨우고 싶지 않았다.
그의 눈물은 뺨을 타고 소녀의 볼 위로 떨어졌다. 그렇게 한 방울 한 방울..떨어지며 가을의 어느날 밤은 잠든 소녀를 위해 눈물만 흘리는 남자를 남겨두고 깊어만 갔다. 차가운 가을날은 그의 가슴을 깊은 검정색 어둠으로 몰아 넣었다.
색상(色相) - 검정(Black) 편
색상(色相)
“내가 가진 유일한 것이 죄라면 세상은 사형을 당해야 한다.”
- 보나파르트 기요틴 -
검정(black)
가진 것은 아무것도 없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와 반대로 세상의 모든 것을 소유한 사람들도 있었고 기아와 참극 그리고 전쟁으로 이어지는 고통 속에서 어떻게 든 소유하고자 발버둥 치는 사람들도 있었다. 마치 더 이상 넘어질 필요가 없는 이미 넘어진 자처럼 세상은 그 사실을 부정하려는 모순으로 가득 차있는 상태였다.
가난한 마을 부스타파노프에서 홀로 생활을 하는 한 청년이 있었다. 지난 겨울 부모를 모두 잃어야만 했던 가난한 농부의 자손 보나파르트 기요틴, 그는 자신이 아무것도 가지지 못했다는 사실을 그 누구보다 잘 아는 청년이기도 했다.
해는 이미 기울여져 그 잔혹하리 만치 누런 배고픔의 빛을 대지에 내리쬔다. 허기에 지쳐 벽에 기댄 사람들의 모습에는 이미 생기라고는 느껴지지 않는다. 그런 그들의 무리들이 서둘러 누군가에게 몰려가기 시작했다. 어둠이 밀려오자 닥쳐오는 검은 승려의 복장을 한 남자. 그의 곁으로 몰려드는 사람들은 알아듣기 힘든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언제인가…”
“누구 차례지..”
“이젠 끝난 건가..”
“그에게 가는 건가.”
“죽여라. 계집아이가 그의 마지막 희망이다.”
죽은 자의 목소리처럼 아무런 힘도 느껴지지 않고 스쳐가는 바람처럼 다시 말할 수도 없는 그들의 이야기는 남자가 자신들을 지나쳐 지나갈 때까지 계속되었다. 남자가 움직이는 데로 어둠은 굶주린 황혼의 빛을 밀어내 자신의 영역을 늘려나간다. 그의 발걸음이 멈춘 것은 허름한 3층 건물이었다. 가난한 자들의 집이라 불리는 “펜유리아”, 그리고 22세의 청년 보나파르트 기요틴의 유일한 집이기도 했다.
………….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나 보니 저녁 7시를 넘어서 이미 해는 진 후였다. 보나파르트는 작업하고 있던 서류들을 정리하고 가방을 들었다. ‘바스티유’사교회의 회장 막스 엥겔스의 사서였던 그는 집에서 멀지않은 곳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그 아이가 오늘은 괜찮을까.”
보나파르트는 특유의 낮게 깔린 저음으로 입을 열고는 사무실 밖으로 나왔다. 일주일 전부터 여동생인 마르텔에게 감기 같은 증세가 나타나 걱정이 이만 저만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는 지체 없이 달리기 시작했다. 마을의 유일한 의사인 파스테르씨의 사무실이 닫히기 전에 동생의 약을 타가야 했던 것이다. 그에겐 마지막 남은 혈육이었다.
다시 가을의 문턱으로 들어선 밤거리는 벌써 아련한 추위가 느껴지었다. 가난 때문에 다른 사람들보다 더욱 얇고 기운 옷을 입고 있는 그는 그 추위를 고스란히 느꼈지만 동생을 생각하는 마음에 묻혀 그 발걸음은 빠르기만 했다.
다행히 보나파르트가 파스테르의 사무실에 도착했을 때는 아직 불이 꺼지지 않은 때였다.
- 똑똑
서둘러 사무실의 문을 두드리자 늙은 노파가 나왔다.
“안녕하십니까. 베스바이퍼부인.”
보나파르트는 인사했다. 베스바이퍼부인은 닥터 파스테르의 아내였다.
“자 여기 남편이 이걸 전해주라고 했네.”
베스파이퍼부인은 하나의 봉투를 건넸다. 그것은 마르텔의 하루치 약이었다. 돈이 부족한 보나파르트는 매일 하루치의 약만 살 수 있었다. 그것도 이제는 사용해도 효과가 있을지 없을지 모를 오래된 약이었다. 그는 서둘러 돈을 건네고 봉투를 받았다.
“안녕히 계십시오.”
몸을 돌리는 보나파르트는 속으로 비참한 기분이 느껴졌지만 더 이상 지체할 수 없었다. 조금이라도 약효가 남아있을 때 동생에게 약을 먹여야 했던 것이다. 그는 파스테르의 집을 방문할 때보다 더 빨리 뛰기 시작했다.
“하아 하아..”
가뿐 숨을 몰아 쉬며 집에 도착한 보나파르트. 그런데 어딘가 이상한 기운과 함께 정면에 응시 된 어둠의 저편이 자신을 쳐다보는 것 같은 느낌. 그는 불길함을 느꼈다.
한걸음 한걸음. 평소에는 그렇게 가볍던 발걸음이 낡은 돌계단에 올라서자마자 무거워지며 시선이 정면이 오목하게 들어가 보인다. 심장의 박동도 계속해서 올라가고 정말이지 참을 수 없는 느낌에 서늘한 공포마저 그를 덮쳐왔다.
“마르텔!!!”
불길한 그 무엇인가를 인지한 보나파르트는 동생의 이름을 부르며 급하게 올라갔다. 이미 무거웠던 발은 그를 방해하지 못했다.
마침내 방문 앞에 섰을 때 천천히 문을 열어 안으로 들어갔다. 차가운 가을 바람이 깨진 창문의 틈에서 새어 나와 방안에서 몰아치었다. 회오리 치는 그 모습은 보이지 않았지만 편안히 잠든 한 어린 소녀의 잠을 방해라도 하려는 듯 그 움직임은 차가웠다.
창백한 얼굴 고이 잠든 모습은 푸르스름한 달빛을 받아 더욱 창백했다. 보나파르트는 잠시 소녀를 보고 경직된 표정을 짖더니 이내 천천히 소녀에게 다가갔다. 한걸음씩 다가설 때마다 그의 눈가에 맺혀지는 뜨거운 이슬은 가을 바람의 춤에 의해 차갑게 식었다. 소녀의 얼굴에서 차가운 기운이 올라와 보나파르트의 손을 타고 그의 심장으로 스며들었다.
눈물이 계속 쏟아졌다. 그렇지만 그는 소리내지 않았다. 부모님이 돌아가신 그날 이후로 처음으로 곤히 잠든 동생이었다. 그는 그 잠을 깨우고 싶지 않았다. 어차피 깨지 않을 잠이라면 깨우고 싶지 않았다.
그의 눈물은 뺨을 타고 소녀의 볼 위로 떨어졌다. 그렇게 한 방울 한 방울..떨어지며 가을의 어느날 밤은 잠든 소녀를 위해 눈물만 흘리는 남자를 남겨두고 깊어만 갔다. 차가운 가을날은 그의 가슴을 깊은 검정색 어둠으로 몰아 넣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