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거 제친구..이야긴데요..좀 봐주시고..도와주세요...꼭이요..

윤선주2002.11.16
조회326

지금부터 저에게 일어난 아주 슬프고 기막힌 이야기를 해 드리겠습니다. 제가 글재주가 뛰어나지 못해 이야기의 짜임이 엉성하겠지만, 끝까지 읽어주시기 바랍니다.

저는 지금 고등학교 1학년에 겉으로는 아주 평범한 학생입니다. 하지만 저에게는 12년동안 가슴에
묻어온 상처가 하나 있습니다. 저의 어머니는 제가 5살 되던 해 이른봄, 집을 나가셨습니다. 다섯 살
이기는 했지만 아직도 그날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습니다.
아버지는 밤낚시를 가신다고 마당에서 채비를 하시어 낚시가방을 오토바이에 싣고 계셨고, 어머니
도 마당으로 나와 시장에 다녀오신다고 하시며 두분다 외출을 하셨습니다. 하지만 밤늦도록 어머니는
돌아오지 않았고, 언니와 저는 밤새 공포에 질려 울다 지쳐 잠이 들었습니다. 날이 밝아 아버지는 낚
시에서 돌아오셨지만, 어머니는 저녁때가되도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나서 이틀이 더 지났지
만, 어머니는 돌아오지 않으셨고, 저는 다섯 살밖에 안된 꼬마였기 때문에 엄마가 그리워 몇날몇일을
울었습니다. 아버지는 엄마를 찾기위해 KBS지역뉴스 시간에 엄마에게 제가 아프니 돌아오라는 광고를
실었고 저는 TV에 나오는 엄마 사진을 보면서 TV속으로 들어가려고 했습니다. 그러면 엄마를 만날 수
있을 것 같아서요...
그리고 일주일이 지났지만, 엄마의 소식은 끝내 들을수 없었고, 그 일주일을 기다리는 동안 아빠는
아무것도 입에 대시지를 않으셨습니다. 일주일만에 친구분이 아이들 생각해서 마시라고 주신 우유한
잔을 마시지 못하시고 다시 쏟아내시는 아빠를 보며, 많이 어렸지만 너무 마음이 아팠습니다. 그 일
주일 동안 아빠는 10년은 더 늙으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요새 알게된 사실인데, 엄마는 다른남자와
함께 간거라고 합니다.
하지만 저의 아버지는 강했습니다. 아빠는 언니와 나를 위해 마음을 다잡고 막노동일을 시작했습니
다. 한창 엄마를 따라다닐 저를 이웃집에 맞겨놓고 마음속으로 아주 뜨거운 눈물을 삼키며 우리 세식
구를 위해 열심히 일하셨습니다.
하지만 아버지의 노력에도 엄마의 빈자리를 채우기는 역부족이었습니다. 언니는 한참 사춘기일 때,
엄마를 잃어 방황하기 시작했고, 아빠는 속이 상해 언니에게 매를 댔습니다. 아빠는 닐낚시 받침대
로, 동네사람들이 내일 학교 못간다고 말릴정도로 언니를 때렸지만, 언니는 다음날 꿋꿋히 일어나 학
교를 갔습니다. 자신이 아파 누워 있으면 아빠의 맘이 더 아플것이라면서요..엄마를 잃어 상처받은
마음이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아빠를 사랑하는 마음은 더 켜졌던것입니다. 하지만 언니의 성적은 날
이갈수록 떨어졌고 결국엔 용인에 있는 산업채 고등학교에 가게 되었습니다. 혼자서 객지 생활을 하
던 언니는 나쁜 친구들을 만나 담배와 술을 배웠고, 날이 갈수록 변해갔습니다. 하지만, 우리가족을
사랑하고 걱정하는 마음 하나는 지금도 여전합니다.
제가 초등학교 시절 가장 싫었던 날은 남들이 다 좋아하는 소풍날과 운동회날 이었습니다. 소풍날
은 김밥대신 빵을..따뜻한 엄마의 배웅대신 쓸슬한 발걸음을 혼자 옮겨야 했으니까요. 운동회도 마찬
가지 였습니다. 다른가족들이 맛있는 음식을 쌓오고, 응원해주고 할 때, 저는 아빠도 일을 가시고,
언니도 없었기 때문에 엽집 언니와 오빠 가족사이에 끼어 점심을 얻어 먹곤 했습니다.
지금까지는 제가 엄마없이 살아온 12년을 말씀드렸습니다. 물론 그 아프고 힘들던 날들을 이 짧은
글로 다 표현할 수는 없겠지만 말입니다.진짜 중요한 얘기는 지금부터입니다.
올해초 아빠는 엄마의 주민등록증을 말소시켰는데, 엄마가 대전에 어느곳에 전입이 되어 있다는걸
저희 사정을 아시는 동사무소분이 엄마를 찾아 보라고 알려 주셨습니다. 학교에 가야 했기 때문에 토
요일까지 기다렸다가 엄마 주소 하나를 들고 무작정 대전으로 향해 어렵게 어렵게 집을 찾아 저녁 6
시부터 다음날 새벽까지 밤을 새워 기다렸지만, 엄마를 만나지 못하고 돌아와야 했습니다. 그러나 어
떻게 어떻게 해서 엄마의 핸드폰 번호를 알게 됐고, 매일같이 전화를 해서 음성을 남겼습니다. 그리
고 몇일 뒤 저희집으로 걸려온 한통의 전화..저는 수화기에서 들려오는 낯선 여자의 목소리에 "누구
세요?"라고 물었습니다. 이어 들려온 대답에 저는 하마터면 수화기를 떨어뜨릴뻔 했습니다. "엄마
다..."너무도 담담하고 떳떳한 목소리..저는 기가차서 아무말도 못하고 아빠께 수화기를 드렸습니다.
아빠는 한번 만나보자고 했습니다. 당신이 낳은 자식이니 얼굴이라도 한번 보라고, 그리고 이혼을 하
던지 하자고, 하지만 엄마는 나와 언니의 얼굴을 보는걸 원하지 않으셨습니다. 이혼만을 원할뿐..엄
마는 서류가 다 되면 다시 연락하라고 하고 전화를 끊어 버렸습니다.
처음 엄마의 주소를 알게되고 나서 엄마를 볼 수 있다는 마음에 잠시나마 기뻤던 저의 마음은 일순
간 증오로 바뀌었습니다. 12년만에 전화를 한 사람이 그것도 다른 남자와 눈이맞아 자식도 버리고 간
사람이 어떻게 그렇게 떳떳하게 엄마라는 말을 입에 담을수가 있는건지...정말 분노가 치밀러 올라
저절로 눈물이 흘렀습니다.
제가 마음속에 있는 이야기를 이렇게 힘들게 꺼내게 된건 나를 낳아준, 자신의 입으로 엄마라고 하
는 그 사람에게 복수를 하고 싶어서입니다. 지금은 핸드폰 번호도 바뀌어서 연락도 할 수 없고 , 아
직은 나이가 어리고, 저희집 형편이 그다지 좋지 못하기 때문에 이렇게 그 사람의 이름과 얼굴을 밝
혀 망신을 주고 자신이 한짓이 얼마나 더럽고 추잡한짓인지 일깨워 주고 싶어서입니다. 제가 이렇게
까지 하는게 옹졸하게 보이실지도 모르지만, 저희 불쌍한 아버지를 위해서라면 호로자식이라고 손가
락질을 받아도 좋습니다.
 
저를 낳아준 그 잘난 사람입니다.
이름은 "임순오" 이고, 나이는 51세입니다.
이십년가까이 된 사진이라 많이 변했겠지만, 그래도 길
을 가다가 이런 사람을 보시면 017-511-6086 이리로 연
락 주시기 바랍니다. 특히 대전에 계신분들 저희 가족이
엄마 없이 살아온 12년세월을 불쌍히 여기시어 꼭 연락
주시기 바랍니다.
끝까지 읽어 주시어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제가 이글을
어디에 올려야 할지 몰라 몇군데 올리지 못하니 이글을
많이 많이 퍼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