똑바로 걷기【6】

쵸코쿠키2006.04.17
조회1,418

"지금… 뭐하자는거지..?"
"뭐…뭐가요?"
"당신이 왜!!! …......여기있냐고…!"
언성을 높이던 예후는... 베란다 쪽을 돌아보는가 싶더니..이내 란아의 어깨를 잡아올려..입술이 
닿을듯 한… 아찔한 거리에서... 악문 잇새로 물어온다.
"지금… 지금 막 가려던 참이었어요."
"그래… 잘도 그러시겠지..이 교활한 암캐 같으니라구!!! 나에게 삼일의 시간을 벌어놓고.. 뒤로는 이런
꿍꿍이가 있었군… 영리해.. 아~주 영리해.. 설마… 이렇게 나오리라곤 상상도 못했거든... 왜…? 다시
생각해 보니 100억도 모자라던가…? 그래서.. 하민이를 잡기로 했나?? 그래?"
"그런거 아니에요!"
단지… 난...  당신이 누군지… 무슨 이유로 그러는지… 그게 궁금했을 뿐이에요..
당신의 이름을 듣는 순간… 그냥… 무작정 와야 한다는 생각뿐이었어요.
이럴 거… 예상 못하고… 바보같이…
날… 그렇게 벌레보듯... 바라보지 말아요…
"오늘 이렇게… 집안 식구들 모두 있는 자리에와서 눈도장을 찍으면… 누가 인정이나 할 것 같나??
철없는 하민이 자식 부추기지 말고… 얌전히 있었어야지…내 눈앞에서 고고한 척… 순진한 척 하지
말았어야지… 이도 저도 다 놓치지 않으려면 말이야…"
아니라고… 그런게 아니라고… 자신도 몰랐다고…
말을 해야 하는데… 목소리를 빼앗겨 버린 사람처럼… 한 마디도 하지 못한 채 입술만 달싹거렸다.
이 남자의 말에… 왜 가슴이 아린지…왜 이토록 시린지… 동생에게 웃어주는 것 처럼은 아니어도
이렇듯 차갑게만 바라보지 않으면... 좋으련만…
"아무리 발버둥 쳐도… 아무리 악을 써도 안되는게 있지. 니가… 네까짓게… 감히… 누구.."
"그래요!!! 당신 불구 동생의 약혼자을 넘보면 안 되는거죠!!!"
자신의 입에서 나온말을… 귀로 전해들으며… 어이없음에 눈을 감아버렸다.
이게 정말… 내 입에서 나온 말이야…? 믿을 수가 없다.
어떻게… 어떻게… 이런 말을…
방금 전에 만난…하민과 아무사이도 아니라는 말에 환하게 웃던…날 미워하지 않아도 돼 다행이라며..
살며시 안아주던 그녀가 떠올라 죄책감이 밀려온다.
그에게 사과를 하려 눈을 뜨는데….
차가운 눈을 부릅뜨고 내려다보는 시선과 얽혔다.
"저기… 난… 그러니까 내말은…정말 미..."
"이 손으로 당신.. 이 가느다란 목을 움켜잡으면 몇초만에 부러질까…?"
어깨를 잡고 있던 오른손을 천천히 들어올리며 나지막히 말하는 그로인해, 입 밖으로 꺼내려던 말을    
도로 집어 삼켰다.         
"한번… 시험 해 보는건 어떨까…?"         
순간… 이 남자라면 정말 그럴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가슴 저 밑 바닥에서부터 공포감이 밀려온다.     
뒷 걸음질을 쳐보지만... 나머지 손이 어깨를 잡고 있어 아무리 애를 써도 그 자리다.         

 

 


예전과 달리 하민의 집안 사람들을 어려워하며 겉도는 예은이 때문에, 마음이 답답하여 담배를 피러 
나왔다.         
그러다 문득 베란다에 시선이 가고… 아직도 구석에 앉아있을 예은이가 안쓰러워 전화를 했다.         
목소리가 밝아보여 다행이라는 생각도 잠시…. 밖으로 떨어진 누군가를 보며 예은이일거란 생각에   
심장이 멎는 줄 알았다.         
어서 빨리 달려가야 하는데…. 소리를 질러 도움을 청해야 하는데…. 그날의… 그 사고가 떠올라….   
숨이 가빠오고… 다리가 후들거려… 옆에 있는 나무를 잡고서야 겨우 몸을 지탱할 수 있었다.         
정신 차리자.. 정신 차리자… 수없이 속으로 되뇌이며 자신을 가다듬고 막 걸음을 옮기려는 찰나…         
벌떡 일어나 자신이 있는곳으로 뛰어오는 여자가 보인다.         
예은이라면 저렇게 뛸 수 없다.         
휴……          
안도하고 안도하며 의문의 왈가닥 여인을 바라보는데… 제기랄!!!!!         
그녀다.          
금방이라도 가슴에서 흘러 내릴것만 같은 아찔한 드레스를 입고… 쭉 뻗은 다리를 살짝 살짝 보여주며
잘도 뛰어온다.     
지나치려는 그녀를 잡아 돌려세웠다.         
예은이가 온다는 걸 뻔히 알고 있으면서도 그녀를 데려오다니…         
하민이 자식.. 가만 안 둘테다.         
저기서 뛰어내린걸 보면 벌써 예은이랑 만났을지도…         
앙큼하게 여기까지 따라온 이 여자도 괘씸하다.         
아니… 하민이를 위해 이렇게 차려입은 그녀에게 화가 난건가…?         
모르겠다. 지금… 뒤죽 박죽인 이 심정으로 인해 머리가 지끈거린다.         

 


불구 동생……
그 말을 듣는 순간 몸안의 모든 핏줄이 확 땡겨지는 기분이었다.
아마도 그녀가 남자였다면… 지금 이렇게 무사히 서 있지는 못했으리라…
아니… 자신이 한 말에 스스로도 놀라며 금방 자책하는 그녀의 표정을 보지 못했다면… 아무리 여자라해도 참지 못했을 것이다.

대체… 눈앞의 이 여자를 어찌해야 할까….?
손바닥을 통해 전해지는 부드러운 살결과…  세차게 뛰고 있는 맥박을 느끼며 손아귀에 힘을 조금

주었다.

"으… 윽…"
금세 벌게진 얼굴로 고통스러워 하지만, 아랫 입술을 지그시 깨물고는 그 어떤 저항도 하지 않는다.
이 여자… 정말… 중독성이다.
같이 있으면 거슬리지만 없으면 자꾸 생각나고… 떠오르고… 혼자 미소 짓게 만든다.
이 여자에게 끌리는 자신을 느낀다.
아니라 부인해보고,,, 그렇고 그런 여자라 생각해 봐도 … 마음이… 눈이 말을 듣지 않는다.
지금 내가 이러는 건…어쩌면... 예은이에 대한 그녀의 발언보다… 알면서도 멈추지 않는 내 마음과… 자꾸 내 앞에서 알짱거리는 이 여자에게 괜한 분풀이를 하는 것 일지도 모른다.

 

 

중심을 잃고 주저앉으려는 그녀 때문에 퍼뜩 정신이 들었다.
세상에…!!! 내가 지금 뭘 하고 있었던거지??!!
젠장!!! 제기랄!!!!
자신을 향해 저주를 퍼부으며 그녀를 붙들었다.
창백하게 질린 채 눈을 감고 있는 그녀 때문에 미칠 지경이다.
"이봐!!! 한란아!!! 눈떠! 눈 좀 떠보라구!!"
뺨을 살짝 두들기며 흔들어 보지만 아무런 반응이 없다.
손가락을 인중에 대보니.. 다행히 숨은 쉬고 있다.
다시 한번 몸을 흔들자…
"콜록…콜록…"
오! 하느님, 감사합니다.
드디어 그녀가 눈을 떴다.
"이봐… 괜찮나…?"
"괜찮…… 을..리가 있어요??!!! 이 나쁜사람!!!! 정말 죽는 줄 알았잖아요!!!!"
두 주먹을 꼭 쥐고 내 가슴을 사정없이 두들겨 댄다.
"미안… 정말 미안... ... 정말… 다행이야."
그대로 그녀를 안아버렸다.
양 손을 위로 올린 채 굳어버린 그녀는…
한참만에 입을 열었다.
"저기… 내가 죽지 않았다는게 기쁘고… 또… 그로인해 당신이 살인자를 면했다는게 기쁘겠지만….
꼭… 이렇게 까지 할 필요는 없을거 같은데요… 저기…숨이.."
………………….
그래… 아주… 찬물을 확 끼얹는군….

 

 

 

 

"가방이랑 옷 챙겨 나와요. 데려다 주겠소."
멍하니 그의 가슴만 바라보다 낮게 울리는 목소리에 화들짝 놀랐다.
넓은 가슴에… 단단한 두 팔에 안겼을때…
어릴때 이후로 한번도 느껴보지 못한 포근함에 하마터면 그 가슴으로 파고들 뻔 했다.
그래서 마음에도 없는 말을 내 뱉었는데…
오히려 그 가슴에서 떨어져 나온 지금… 가슴이 두근거리고 침조차 삼킬 수 없다.
"아니… 괜찮아요. 혼자 갈 수 있어요."
"내가 가지고 올까? 어디다 뒀소?"
내 말은 들은체도 않고 안으로 들어갈 태세다.
"아뇨! 저기… 김하민씨.. 차에 두고 내렸어요."
괜스레 고개가 숙여지고 목소리도 작아져만 간다.
얼굴은 보지 못했지만,, 분명 노려보고 있음을… 느낄수 있었다.
"참… 하민이랑 같이 왔겠지.. 그렇게 홀딱 벗고 말이야."
그 말에 귀까지 벌게졌다.
"아니에요. 겉옷을 입고 왔는데… 너무 더워서 아까 벗어…."
자신이 왜 변명을 하는지도 모른 채 … 다급히 말하는데…
"됐소. 그만 가지."
그가 자신의 팔뚝을 붙잡고 앞서 가며 무뚝뚝하게 말한다.
"아! 잠깐만요. 그 옷.. 돌려 줘야 해요. 제 옷이랑 가방도 찾아야 하고…."
"그 옷이야 어차피 그녀석 집에 있으니까 신경쓰지 말고, 당신 소지품은… 남한테 두고 가는거 처음도
아니면서 뭘 그렇게 걱정하나..? 다음에 내가 찾아다 주겠소."
어느새 그의 차 앞에 도착했고,,, 차 문이 열리자 나는 조수석으로 떠밀리듯이 들어갔다.


 

 

 

"란아씨! 여기 있어요…?"
하민은 아까부터 보이지 않는 란아를 찾아 여기 저기 헤매는 중이다.
대체 어딜간거지…?
막 서재문을 열었을 때… 쇼파 위에 떨어져 있는 란아의 겉옷이 보였다.
그 뒤로… 이상한 소리가 들린다.
빠르게 뛰는 심장과는 달리… 천천히… 아주 천천히... 그 앞으로 걸어가 쇼파 뒤를 내려다 보았다.
그 사이로 한참 작업(?) 중이던 예후의 사촌형 경후가 보였고,,, 다행히 그 위에 걸터 앉아 있는
여자는 란아가 아니었다.
그제야 오그라들었던 심장이 다시 원래대로 돌아와 제 역할을 한다.
정.경.후….
정말 못말리게도 주색에 푹 빠져...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다.
자신은 성 개방론자에 예찬론자라며 항상 떠들고 다니는 그…
연일 신문의 가십란에 오르내리며 좋지않은 유명세를 자랑하지만,,, 그런것쯤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무시하며 또 다른 기사거리를 만들어 낸다.
그런데도 웃기는 건… 여자가 끊이지 않는다는 거다.
여자들은… 자신만은 그에게 특별 하다는 듯… 바로 전의 희생양을 비웃으며 그에게 사랑을 준다.
그러다 결국엔 온갖 욕설과 저주를 퍼부으며 떠나고… 다시 그 자리는 새로운 여자가 차지한다.
이 사람이 예전의 똑똑하고,,,겸손하고,,, 열정이 끓어 넘치던 정경후가 맞는지… 정말이지 의문스럽다.
예전과 다름없는 건 일할때의 추진력, 결단력, 아니다 싶을때의 냉정함 이지만,,, 그 외에는... 어떤것이
그를 이렇게 만들었을까… ? 싶을 정도로 방탕하다.
눈 앞에 누군가 있다는 걸 알면서도.. 여전히 몸을 흔들어 대는 여자를 보니… 뉘집의 대단한 자식은
아닌가 보다.. 클럽에서 데리고 온 여잔가…?
그곳에선 구석자리를 둘러보면 흔히 볼 수 있는 광경이지만…아무리 그래도 여긴.. 환한…. 그것도..
뒷구멍으론 무슨짓을 하는지 몰라도 대중 앞에서는 고상한 척 하는 사람들이 모여있는 곳 아닌가…?
"후… 후우~ 훔쳐보는 놈은 많이 봤어도… 너처럼 당당하게 쳐다보는 놈은 처음이다.. 윽.."
그제야 퍼뜩 정신이 들었다.
"아.. 미안.. 형… 혹시 이방에서 어떤 아가씨 못봤어,,,? 이 옷 주인인데… "
란아의 옷을 들어올리며 묻자…
"아~ 아까… 그 죽이게 생긴 여자…? 눈앞의 이 애물단지만 아니었어도…내가 꿀꺽 했을텐데…."
그의 말에 여자는 앙탈을 부리며 경후의 귓볼을 깨물었고…
나 역시 한 몫했다.
"혀엉… 그말 취소하는게 좋을껄…? 그 여잔 그런 여자 아냐. 지금 당장 형네 어머니 이리로 모셔올까?"
"아아.. 취소.취소! 윽!! 근데… 하민아.. 나 지금 끝날것 같거든..? 좀… 나가줄…래…? 그 여잔 아까
우리보고 놀래서 나갔어.. 윽.."
란아가 이 장면을 봤을 거란 생각에 머리가 멍… 해졌다.
나야.. 이런것쯤… 하도 자주 보는 일이라 아무렇지도 않지만… 얼마나 놀랐을까..
"형!! 제발 장소 좀 가려가면서 해!! 조금 참았다 할 순 없었어?!! 아우씨!!!"
경후의 나직한 웃음소리와 이어지는 신음소리를 뒤로하고 그 방을 나섰다.
제길..!! 대체 어딜 간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