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리'가 너무 긴 인어아가씨

임정익2002.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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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파 채널마다 일일 드라마는 그 날의 메인 뉴스 전후에 편성되어 있다. 그 둘은 평일에 방송사가 시청자에게 제공하는 밥상의 주된 요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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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는 실제로 있었던 이야기고 드라마는 있을 만한 이야기다. 때로는 있을 법하지 않은 이야기도 나오지만 시청자는 "저런 일이 실제로 있었으면 좋겠다"거나 "저런 일이 현실에선 일어나지 않으니 참 다행이다"라는 생각을 하면서 지켜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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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가장 인기 있는 일일 드라마는 MBC '인어아가씨'다. 활극 '야인시대'를 빼고는 주중 시청률이 가장 높다. 인기 있는 방송작가가 어머니와 자신을 버린 아버지의 가정에 복수하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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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복수(자신이 직접 하는 것보다 남의 복수를 보는 것)를 통쾌하게 여긴다. '청춘의 덫'처럼 노골적인 복수극이 아니더라도 대부분의 인기 드라마에는 복수적인 모티브가 포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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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을 무시한 사람, 혹은 제도나 관습을 무너뜨리고 성공하는 것도 일종의 복수다. 결말은 달라도 '허준'이나 '여인천하'의 정난정은 세상의 차별적 시선에 대해 복수를 결행한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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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어아가씨'가 내년 봄까지 방송한다고 해서 논란이 일고 있다. 연장의 배경은 짐작이 가능하다. 모니터하는 사람들은 시청률 만능주의를 제발 버리라고 타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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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작진의 대응도 만만치 않다. '할 이야기가 아직도 많은데 왜 끝내느냐'는 것이다. 그 진정을 믿지 못하겠다는 게 또한 감시자의 변이다. 차라리 "시청자가 간절히(!) 원하는데, 그 욕구를 저버릴 수 있느냐"고 항변하는 게 솔직하지 않으냐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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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을 몇 시간씩 두는 친구에게 "야 빨리 끝내"라고 말할 수는 없다. 바둑을 두는 사람이나 지켜보는 사람들이 흥미와 긴장을 놓치지 않는다면, 그 바둑은 며칠간 계속해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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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꾸 옆에서 끝내라고 재촉하는 건 실례다. 드라마가 바둑은 아니지만 정말로 시청자가 보기 원하도록 이야기를 탄탄하게 끌고 갈 재주만 있으면 30년 한다해서 누가 말리겠는가. (미국의 아침드라마 중에는 몇십년 계속하는 것들도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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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드라마는 작품이지 상품이 아니라는 점에 유념할 필요가 있다. 많이 팔린다고 해서 생산량을 무한정 늘일 수는 없다. 완결성을 가져야 할 극적 구성을 어떻게 엿가락처럼 늘일 수 있느냐는 질문에 겉으로든 속으로든 "시청률이 이렇게 높은데 네가 제작진이라면 끝낼 수 있겠느냐"고 대응하는 일은 옹색하고 민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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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는 드라마틱해야 한다. 드라마틱할 수 있도록 밀고 나갈 역량을 키우는 일이 우선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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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일 드라마의 경우 앞으로는 제작발표할 때 "시청자의 반응에 따라 탄력적으로 횟수를 조정하겠다"고 떳떳하게 털어놓는다면 어떤 반응이 올까. 문제는 이런 논쟁에서 시청자는 정작 소외된다는 점이다. 시청자는 단지 '봐주는' 존재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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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 만한 가치가 없어지면 누가 무슨 말로 유혹해도 시청자는 채널을 돌린다. 이제 시청자가 복수할 때다. 제작진에게 복수할지, 노파심을 지닌 감시자에게 복수할지는 두고볼 일이다. 시청자는 힘이 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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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주철환 이화여대 언론홍보영상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