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파 채널마다 일일 드라마는 그 날의 메인 뉴스 전후에 편성되어 있다. 그 둘은 평일에 방송사가 시청자에게 제공하는 밥상의 주된 요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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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는 실제로 있었던 이야기고 드라마는 있을 만한 이야기다. 때로는 있을 법하지 않은 이야기도 나오지만 시청자는 "저런 일이 실제로 있었으면 좋겠다"거나 "저런 일이 현실에선 일어나지 않으니 참 다행이다"라는 생각을 하면서 지켜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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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가장 인기 있는 일일 드라마는 MBC '인어아가씨'다. 활극 '야인시대'를 빼고는 주중 시청률이 가장 높다. 인기 있는 방송작가가 어머니와 자신을 버린 아버지의 가정에 복수하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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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복수(자신이 직접 하는 것보다 남의 복수를 보는 것)를 통쾌하게 여긴다. '청춘의 덫'처럼 노골적인 복수극이 아니더라도 대부분의 인기 드라마에는 복수적인 모티브가 포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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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을 무시한 사람, 혹은 제도나 관습을 무너뜨리고 성공하는 것도 일종의 복수다. 결말은 달라도 '허준'이나 '여인천하'의 정난정은 세상의 차별적 시선에 대해 복수를 결행한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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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어아가씨'가 내년 봄까지 방송한다고 해서 논란이 일고 있다. 연장의 배경은 짐작이 가능하다. 모니터하는 사람들은 시청률 만능주의를 제발 버리라고 타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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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작진의 대응도 만만치 않다. '할 이야기가 아직도 많은데 왜 끝내느냐'는 것이다. 그 진정을 믿지 못하겠다는 게 또한 감시자의 변이다. 차라리 "시청자가 간절히(!) 원하는데, 그 욕구를 저버릴 수 있느냐"고 항변하는 게 솔직하지 않으냐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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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을 몇 시간씩 두는 친구에게 "야 빨리 끝내"라고 말할 수는 없다. 바둑을 두는 사람이나 지켜보는 사람들이 흥미와 긴장을 놓치지 않는다면, 그 바둑은 며칠간 계속해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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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꾸 옆에서 끝내라고 재촉하는 건 실례다. 드라마가 바둑은 아니지만 정말로 시청자가 보기 원하도록 이야기를 탄탄하게 끌고 갈 재주만 있으면 30년 한다해서 누가 말리겠는가. (미국의 아침드라마 중에는 몇십년 계속하는 것들도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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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드라마는 작품이지 상품이 아니라는 점에 유념할 필요가 있다. 많이 팔린다고 해서 생산량을 무한정 늘일 수는 없다. 완결성을 가져야 할 극적 구성을 어떻게 엿가락처럼 늘일 수 있느냐는 질문에 겉으로든 속으로든 "시청률이 이렇게 높은데 네가 제작진이라면 끝낼 수 있겠느냐"고 대응하는 일은 옹색하고 민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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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는 드라마틱해야 한다. 드라마틱할 수 있도록 밀고 나갈 역량을 키우는 일이 우선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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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일 드라마의 경우 앞으로는 제작발표할 때 "시청자의 반응에 따라 탄력적으로 횟수를 조정하겠다"고 떳떳하게 털어놓는다면 어떤 반응이 올까. 문제는 이런 논쟁에서 시청자는 정작 소외된다는 점이다. 시청자는 단지 '봐주는' 존재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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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 만한 가치가 없어지면 누가 무슨 말로 유혹해도 시청자는 채널을 돌린다. 이제 시청자가 복수할 때다. 제작진에게 복수할지, 노파심을 지닌 감시자에게 복수할지는 두고볼 일이다. 시청자는 힘이 세다.
'꼬리'가 너무 긴 인어아가씨
지상파 채널마다 일일 드라마는 그 날의 메인 뉴스 전후에 편성되어 있다. 그 둘은 평일에 방송사가 시청자에게 제공하는 밥상의 주된 요리다.
.뉴스는 실제로 있었던 이야기고 드라마는 있을 만한 이야기다. 때로는 있을 법하지 않은 이야기도 나오지만 시청자는 "저런 일이 실제로 있었으면 좋겠다"거나 "저런 일이 현실에선 일어나지 않으니 참 다행이다"라는 생각을 하면서 지켜본다.
.지금 가장 인기 있는 일일 드라마는 MBC '인어아가씨'다. 활극 '야인시대'를 빼고는 주중 시청률이 가장 높다. 인기 있는 방송작가가 어머니와 자신을 버린 아버지의 가정에 복수하는 이야기다.
.사람들은 복수(자신이 직접 하는 것보다 남의 복수를 보는 것)를 통쾌하게 여긴다. '청춘의 덫'처럼 노골적인 복수극이 아니더라도 대부분의 인기 드라마에는 복수적인 모티브가 포함된다.
.자신을 무시한 사람, 혹은 제도나 관습을 무너뜨리고 성공하는 것도 일종의 복수다. 결말은 달라도 '허준'이나 '여인천하'의 정난정은 세상의 차별적 시선에 대해 복수를 결행한 사람들이다.
.'인어아가씨'가 내년 봄까지 방송한다고 해서 논란이 일고 있다. 연장의 배경은 짐작이 가능하다. 모니터하는 사람들은 시청률 만능주의를 제발 버리라고 타이른다.
.제작진의 대응도 만만치 않다. '할 이야기가 아직도 많은데 왜 끝내느냐'는 것이다. 그 진정을 믿지 못하겠다는 게 또한 감시자의 변이다. 차라리 "시청자가 간절히(!) 원하는데, 그 욕구를 저버릴 수 있느냐"고 항변하는 게 솔직하지 않으냐는 것이다.
.바둑을 몇 시간씩 두는 친구에게 "야 빨리 끝내"라고 말할 수는 없다. 바둑을 두는 사람이나 지켜보는 사람들이 흥미와 긴장을 놓치지 않는다면, 그 바둑은 며칠간 계속해도 좋다.
.자꾸 옆에서 끝내라고 재촉하는 건 실례다. 드라마가 바둑은 아니지만 정말로 시청자가 보기 원하도록 이야기를 탄탄하게 끌고 갈 재주만 있으면 30년 한다해서 누가 말리겠는가. (미국의 아침드라마 중에는 몇십년 계속하는 것들도 많다.)
.그러나 드라마는 작품이지 상품이 아니라는 점에 유념할 필요가 있다. 많이 팔린다고 해서 생산량을 무한정 늘일 수는 없다. 완결성을 가져야 할 극적 구성을 어떻게 엿가락처럼 늘일 수 있느냐는 질문에 겉으로든 속으로든 "시청률이 이렇게 높은데 네가 제작진이라면 끝낼 수 있겠느냐"고 대응하는 일은 옹색하고 민망하다.
.드라마는 드라마틱해야 한다. 드라마틱할 수 있도록 밀고 나갈 역량을 키우는 일이 우선되어야 한다.
.일일 드라마의 경우 앞으로는 제작발표할 때 "시청자의 반응에 따라 탄력적으로 횟수를 조정하겠다"고 떳떳하게 털어놓는다면 어떤 반응이 올까. 문제는 이런 논쟁에서 시청자는 정작 소외된다는 점이다. 시청자는 단지 '봐주는' 존재가 아니다.
.볼 만한 가치가 없어지면 누가 무슨 말로 유혹해도 시청자는 채널을 돌린다. 이제 시청자가 복수할 때다. 제작진에게 복수할지, 노파심을 지닌 감시자에게 복수할지는 두고볼 일이다. 시청자는 힘이 세다.
.중앙일보(주철환 이화여대 언론홍보영상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