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세대 개그맨 이정수

임정익2002.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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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세대 개그맨 이정수인터뷰를 위해 그가 1주일에 3일 공연을 하고 있는 대학로의 한 소극 장을 찾았다. 예정된 시간보다 30분이 넘은 시간, 가쁜 숨을 고르며 그가 등장한다.

“늦었죠. 죄송합니다. 시위 때문에 길이 많이 막히네요.” 곱상한 외모에 짙은 눈썹. 탤런트 차인표를 닮은 얼굴. 이제 갓 신입생 티를 벗은 듯한 해맑은 웃음을 지닌 그는 도저히 개그맨의 타이틀이 어울 려 보이지 않는다. 오! 맙소사, 이 친구가 요즘 시도 때도 없이 우겨 서 뜬 그 개그맨 맞아?

생각보다 무척 자그마한 체구에 놀라고, TV보다 훨씬 어려보이는 데 두 번 놀란다. 구석구석 살펴봐도 이 신인 개그맨에게 사람들이 미치 도록 열광할 만한 꺼리는 쉽게 감지되지 않는다. 어떻게 보면 그저 번듯하게 잘생긴 동네 청년 같은 분위기. 그러나 미소년의 나약한 이 미지는 무대에 서는 순간 금세 달라진다. 흰색 바바리를 걸치고 미간 에 잔뜩 인상을 찌푸린 채 등장하면 객석은 한껏 기대에 부풀어 오르 고, 그가 던지는 말재주에 포복절도하기 시작한다.

‘웃기지, 웃기잖아. 내 개그는 관절염이야, 지긋지긋하지.’

5분이 채 안 되는 짧은 시간이지만 그가 남기는 웃음의 파장은 길고 도 강력하다. 말에 담긴 속뜻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흔 히 ‘형광등’이라고 표현한다. 그러나 아무리 재치있는 사람도 그의 개그 앞에서는 형광등이 되기 십상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향이 진해 지는 녹차 잎처럼 곱씹을수록 색다른 느낌이 남다르기 때문이다. 그 래서 혹자는 이정수를 가리켜‘언어의 달인’이라고 표현했던가.

중학교 2학년 때부터 개그맨의 꿈을 키웠다는 이정수. 그러나 말이 없고 조용했던 그의 성격을 아는 주위 사람들은 뜯어말렸다.‘주위에 서 계속 안 웃기다니까 오기가 나더라’며 입문 동기를 밝힌 그는 ‘ 한 번 정하면 끝까지 밀고나가는 고집이 지금의 나를 만든 것 같다’ 고 덧붙인다.

이정수는 올해 4월 KBS 개그맨 공채로 방송국에 입성했다. 그러나 발 목을 잡은 건 아이로니컬하게도 지나치게 잘생긴 얼굴이었다.

“개그맨스럽지 않은 외모가 문제였죠. 사람들의 고정관념을 뛰어넘 어 웃음을 유발할 수 있는 새로운 방법이 필요했어요. 개그맨으로서 부족한 조건들이 억지 개그의 힌트를 준 셈이에요.”

대학로도 아닌 공중파 방송, 더군다나 근엄(?)하기로 소문난 국영방 송에서 아무리 개그 프로그램이라지만 관객들에게 반말을 던지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자칫 대중의 도마에 올라 영원히 매장될지도 모를 터.

“이렇게 반응이 좋을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어요. 친구에게 말하듯 반말을 한다는 건 모험에 가까웠죠.” 그러나 ‘과거에는 갈갈이 때 문에 개그콘서트 봤지만 요즘은 우격다짐 때문에 본다’는 사람들이 적지 않은 것을 보면 그의 모험은 확실히 성공을 거둔 셈이다.

그는 어디를 가든 항상 대학노트를 들고 다닌다. 우격다짐 개그에 쓸 아이디어를 메모하기 위해서다. ‘내 개그는~’의 다음에 이어지는 한마디 말을 찾는 것이 결코 쉽지 않지만, 관객들이 그에게 보여주는 열광에 비할 바가 아니다. 회원수 1만3,000명을 훌쩍 넘긴 이정수의 홈페이지(cafe.daum.net/LOVE 2314) 게시판에 팬들이 올린 우격다짐 아이디어들은 그에게 힘을 주는 최고의 에너지원이다.

요즘 그는 개그콘서트에 선보일 또 다른 소재의 1인 개그를 준비 중 이다. 아이디어를 혼자 골몰해야 하고, 썰렁해질 경우 수습이 난감할 때가 적지 않지만 자신에게 가장 맞는 건 역시 스탠딩 개그라고 말한 다.

이정수는 앞으로 좀더 경험을 쌓은 후 정통 코미디 영화에 도전할 계 획이다. 개그맨이 영화를 제작하면 ‘싸구려 3류 영화’라는 색안경 을 끼고 보는 사람들이 많은데, 이런 편견을 뒤집을 수 있는 웃기면 서 여운이 남는 영화를 찍고 싶단다. 잘생긴 데다 남다른 유머감각까 지 지닌 이정수라면 한번쯤 기대를 걸어도 좋을 것 같다.

【이정수가 남긴 우격다짐 베스트 명언 10선】

① 내 개그는 17대 1이야, 17명 중에 한 명만 웃지.

② 내 개그는 반찬이야, 똑같으면 짜증나지.

③ 내 개그는 TV유치원이야, 혼자서도 잘해요.

④ 내 개그는 2%야, 항상 부족해.

⑤ 내 개그는 복권이야, 잘 되면 대박이고 안 되면 500원이지.

⑥ 내 개그는 정화조야, 터지면 큰일나지.

⑦ 내 개그는 교통사고야, 우기면 장땡이지.

⑧ 내 개그는 만화책이야, 재미없으면 그냥 넘어가지.

⑨ 내 개그는 변비야, 1주일 모아 한방에 터트리지.

⑩ 내 개그는 똥꼬 바지야. ‘옷’끼지(웃기지)

[매일경제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