똑바로 걷기【7】

쵸코쿠키2006.04.19
조회1,470

또 다른 가슴… 그 안의 사랑.. ①

 

"성하야.. 미안.. 정말 미안해. 엄마가 꼭 데릴러 올께. 응? 여기서 조금만 기다려. 꼭올께. 꼭!"
"엄마.. 안돼. 안돼.. 나 두고 가지마. 응? 나도 데리고 가."
"안돼. 성하야. 성하 이제 다 컸잖아. 우리 성하... 한 번도 엄마 힘들게 한 적 없어. 그렇지?
이번에도 그럴거지? 엄마 믿고 여기서 몇 년만 지내. 그럼 꼭 데릴러 올께. 알았지? 사장님, 사모님,,
모두 좋은 분들이시니까… 우리 성하… 잘 키워 주실거야. … 분명… 그러실거야.
착하게… 건강하게… 잘 지내고 있어…? 응..?"
엄마…나 아직 어려… 다 안컸어… 아직 엄마가 필요하단 말야.
나보다 그 아저씨가 더 좋아…? 그런거야…? 나 버리고 갈만큼…?
"대답해. 성하야.. 엄마한테 좀 웃어줘.. 엄마... 편하게 보내줄꺼지..?"
"……………"
"성하야…응?"
"……...응."
9살.. 어린날의 나는… 그렇게 엄마를 보내 주었다.
그때 난…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엄마가 오지 않을 거라는 걸… 이제 다시는 엄마를 볼 수 없다는 걸…
하지만 알면서도 난… 엄마를 보내 줄 수 밖에 없었다.
전에는 한 번도 행복해 보이는 엄마를 본적이 없었기에…
항상 아버지에게 맞아서… 입가가 찢어지고… 피멍이 들고… 두 눈에 눈물이 맺힌 모습만 봐 왔었다.
어느날… 엄마는 나를 데리고…아버지에게서 도망쳐... 여기까지 왔다.
어마어마하게 큰집… 정원도 있고,, 연못도 있고,,, 나무엔 예쁜 그네도 매달려 있고,,, 미끄럼틀과 온갖
탈 것들이 즐비했다.
물론 가정부의 아들인 내가... 만지고,, 탈 수는 없었지만… 그저... 바라보기만 해도 좋았다.
배를 곯지 않아도 되었고,, 따뜻한 방에서 잠도 잘 수 있었다.
무엇보다...1년이나 늦었지만 학교도 다닐 수 있어… 좋았다.
그렇게 반년의 행복한 시간은… 너무도 빨리 지나갔다.

 

 

장마가 시작되던… 무척 더웠던 날… 정원에서 흙장난을 하다 내리는 빗방울로 옷이 더러워지고…
더러워진 옷 때문에 사장 할머님께 혼날까… 무척 조심히… 집안으로 들어갔다.

 

 

 

쫘악!!!
!!!!!!!!
그때 내 눈에 들어온 건… 또 다시 맞고 있는 엄마의 모습이었다.
어렸던 난… 약했던 난… 겁이 많던 난…
더러운 꼴로… 커다란 화분뒤에 웅크리고 앉아 .. 사장할머니의 노여움이 담긴 목소리를… 엄마의 울부짖는 목소리를… 부들부들 떨며… 고스란히 들을 수 밖에 없었다.
"긴 말 않겠다. 어서 네 아들 데리고!!! 여기서 썩나가!!! 은혜를 웬수로 갚아도 유분수지!!!
갈 곳 없는 두 모자 거둬서.. 여지껏 먹여주고 입혀주고 재워 줬더니!!! 니가 어찌!!! 분수도 모르고
우리 상호를 넘봐!!! 나가!!! 나가거라… 제발… 내가 이렇게 부탁하마…응?? 아이고~ 이것아!!!
상호는 이미 정해진 혼처가 있잖니... 그런 앨 데리고… 니가.. 어찌…사람의 탈을 쓰고 그러면 안된다.
한번의 실수쯤은 내가 눈 감아 주마.. 내가… 뒷돈이라도 챙겨주련…? 섭섭치 않게 챙겨주마..
그러면.. 니 아들 데리고 조용히 사라져 주겠니..?"
"사모님..!!! 제발… 안돼요… 저.. 상호씨 사랑해요.. 그러면 안되는데.. 안되는데… 저도 아는데..
우리 서로 사랑하고 있어요..그렇게 됐어요... 제발.. 사모님… 저 내쫒지 말아주세요!!! 네??"
"정녕 니가… 끝까지 이렇게 나오겠다는 말이냐??!!!! 어??!!! 이 더러운 년!!! 애까지 딸린 년이!!!
어디서 굴러 먹다 온지도 모를 그 더러운 몸뚱이로 내 아들을 유혹해??!! 앞날이 창창한 내아들..
앞길을 ...혼사를 막아???!!!! 이년!!! 나가!!!! 나가!!!!"
"어머님!! 고정하세요!!!"
"사모님!!! 용서해주세요…제발…"
그렇게 사장 할머니는 엄마의 머리채를 잡고… 작은 사모님은 사장할머님을 말리시고….엄마는…
사장 할머니의 발에 매달려… 나와 마찬가지로… 숨죽여… 울었다.
그리고 그날 저녁… 엄마는… 나를 두고 떠났다.
아저씨와 함께…

 

 

 


"당장 데리고 나가!!!! 저놈!!! 저 더러운 놈을!!! 내집에서 당장 끌고 나가!!!!"
"어머님!! 고정하세요.. 저 어린것이 무슨죄에요.. 죄가 있다면 무책임한 선경이와 서방님한테 있잖아요.."
"뭐라고? 에미 너.. 방금 뭐라고 했니!! 왜 우리 상호를 걸고 넘어지는게냐? 그 배은망덕한 년이 처음부터 돈을 노리고 상호한테 접근한 것을!!! 혈기 왕성한 젊은이가 맘먹고 덤비는 계집을 어떻게 막아!!!"
"어머님,, 제 말은 그런 뜻이 아니라…"
"그만 됐다!!! 더 이상 듣고 싶지도 않다. 내 분명히 말해두지만,, 더러운 년의 자식새끼!! 절대 우리집에
둘 수 없다! 어딜 감히.. 천한 것이 천한 짓만 한다고… 쯪쯪… 저런 놈 버려두고 가면,, 우리가 애지중지 키워줄 줄 알았더냐?!! 에이!!! 몹쓸년…!!! 어서 내보내!!"
"어머님… 지금 밖에 비도 많이와요. 비라도 그치면 보낼께요. 생각해보세요.. 우리 예후보다 어린 것이.. 이 밤에.. 비도 오는데 어딜 가겠어요."
"나가서 죽든 살든!! 내 알바 아니다!! 지 어미도 버려두고 간 자식..뭐가 이쁘다고 그런거까지 생각해!!
그리고.. 당장에 낼모래면 예후랑 예은이 들어오는데.. 저런 놈을 뭘 믿고 두겠니?? 그 피가 어디가??
조금만 커봐라...분명.. 저것도 지 분수 모르고 예은이한테 달려들거 뻔하다.. 누런싹은 일찍부터
잘라내야 하는게야!! 에미.. 니가 못하면 오비서 시키마.. 오비서!!! 오비서!!! 거기있나?!!!"
"아니에요!! 어머님!!! 제가.. 제가 내보낼께요… 옷가지랑.. 챙겨서.. 금방 내보낼께요. 성하야.. 이리오렴.."
여리고 착한… 사모님… 슬픈 눈으로 바라보며 내미는 손을… 감히 잡을 수 없어… 그랬다간 당장에라도 사장할머님의 불벼락이 내려질까 무서워… 고개를 숙인 채 두 손을 맞잡고 나아갔다.
"쯪쯔… 저렇게 맘이 약해서야… 어찌 이 살림을 이끌어갈꼬…우는거 밖에 잘하는게 없으니.. 쯪.."
사장할머님의 사모님에 대한 질타가… 괜스레 내 맘을 졸이게 했다.

 

 


"성하야.. 춥니?"
"아니요. 괜찮아요."
사모님과 난… 억수같이 쏟아지는 비를 피해 대문앞에 쪼그리고 앉았다.
"성하야.. 걱정하지마.. 엄마 꼭 오실거야. 그때까지 우리집에서 기다리면 돼.. 조금 이따가…
어머님 주무시면 들어가자.. 원래 나쁘신 분은 아니니까… 화가 좀 누그러 지시면… 문제 없을거야.
넌 아무 걱정하지말고..씩씩하게 지내면 돼. 응? 할 수 있지?"
"걱정 안해요.사모님. 저.. 엄마 없이도 잘 살아갈 수 있어요. 이제 다 컸는 걸요? 사모님도 저한테
신경 쓰시지 마세요. 괜히 사장 할머님한테 혼만 나시잖아요. 비가 그치면… 비만 좀 그치면…
고아원이든… 아버지한테든 갈거에요. 저 씩씩하니까… 용감하니까.. 잘 할 수 있어요. 그러니까..
그만 들어가세요."
"괜찮아… ...성하.. 참.. 기특하네… 근데 그러면 안돼. 그럼 엄마가 찾으러 왔을때 성하 못 만나잖아.
그러니까 그냥 우리 집에 있자. 응?"
"사모님… 엄마… 이제 안 와요. 그쵸? 이제 안 오실꺼에요…난.. 그냥… 엄마가 행복하면… 안봐도…
다신 못봐도… 꾹 참을 수 있어요…."
담담하게… 씩씩하게… 말하려 했는데… 아직은 엄마 품이 그리운지… 엄마가 보고픈지… 목소리가
떨려 나온다.
"휴... 몹쓸사람… 이 어린것을…  무정한 사람 같으니라구… 이 속 깊은 애를…. 불쌍한 애를…
어쩌라고… 어쩌라고… 흑…흑…"
두 팔로 나를 안으며 머리를 쓰다듬어 주시는 손길에… 등을 토닥여 주시는 손길에… 그만… 울음이
터져 나왔다.
한번 새어나온 눈물은… 뭐가 그리도 서러운 지… 뭐가 그리도 서글픈 지… 막을 새도 없이 흘러나온다.

비가 눈물이 되고… 눈물이 비가되어… 얼마만큼 흘렸는지… 또 얼마의 시간이 흘렀는 지도 모른다.
사모님의 촉촉하고.. 따스한 목소리가 귓가에 들렸다.
"성하… 아줌마 아들할래…?"
??????
사모님은 아들이랑 딸이 있는데… 왜…?
지금은 유학 중이지만… 이제 곧 있으면 돌아올텐데…
그러면 나 같은건… 거들떠도 안 보실거면서… 그럴꺼면서…
"너를 보면… 내 아들… 그 아이가 생각나…자꾸만… 자꾸만 생각나.."
?????
도무지 무슨말인지...이해할 수가 없었다.
이제 조금 있으면… 볼 수 있을 텐데….그런데... 왜 이렇게 가슴아프게 들리는 거지…?
사모님의 목소리가… 왜 이렇게… 슬프지…?
"아줌마 아이들…  예후랑 예은이… 한번도 보지 못했지만… 사진으로는 많이 봤지…? 참 이쁘지..?"
"…...네…"
온 집안을 도배하듯 걸려있는 커다랗고 작은 액자 속의 아이들… 멋있게… 예쁘게 차려입고…
환하게 웃고 있는… 너무나도 부러운 사진 속의 아이들…
"너무 예쁘고 사랑스러워서… 아줌만 마냥 행복해야 하는데… 항상 가슴 한 구석이 시려… 자꾸 눈물이 나.. ...있지……… 예후 바로 아래에… 아들이 하나 더 있었어… 그런데… 아파서… 많이 아파서… 하늘나라로….아줌마 두고 가버렸어… 그 아이한테 다 못준 사랑이… 마음이… 내 가슴 속에서 맴돌다… 지쳤나봐…차갑게 식었나봐… 그래서 시린가봐… 가지 않았다면 너랑 같은 나이일텐데… 너처럼.. 씩씩하고…예쁠텐데… 널 보면 자꾸만 그 아이가 생각나서… 아파… … 아줌마.. 참… 바보같지…?"
"… 아니요."
"성하야… 아줌마 참 나쁘다… 자꾸… 니가 내 아이였으면 해… 그동안 널 보면서… 내 아이 생각에
마음아프고… 욕심나고… 그랬어… 너희 엄마가… 널 내게 주고 가서… 고맙기도 해… 성하야…
...아줌마…... 아들해줄래…?"
안겨있는 품에서… 엄마와 비슷한 냄새가 났다.
엄마……
내가… 허락한다면… 난… 내가 아니라… 죽은 아이의 대타가 되는 거겠지…?
알고 있음에도… 따뜻한 품이 그립다.
벌써부터...엄마의 품이 그립다.
날… 김성하로 봐주지 않는다 해도… 난… 사랑이 탐난다.
설령 내 것이 아닌… 다른 이의 사랑이라 해도… 갖고 싶다.

 

 


"말도 안돼!!! 싫어!!! 어떻게 쟤가 우리 오빠야!!! 난 분명히 싫다고 말했어… 할머니도 절대 인정하실 수 없다고 하셨잖아!!!! 싫어!!! 엄마 미워!!! 엄마 이상해!!! 아빠~!!! 쟤 나가라고 해~!!! 엉? 나가라고
하란말야!!"
1년만에 돌아온 예은은… 엄마를 볼 수 있다는 기쁨으로… 한달음에 계단을 올랐었다.
그런데… 생전 처음 보는앨 데려와서는… 앞으로 오빠라고 부르라 하신다.
예후 오빠를 안고 계시던 할머니도…
"에미 니가… 날 빨리 죽으라고… 아주 등을 떠미는구나!!!! 나 살아 있는 동안은 그런 꼴 못본다!!!
거둬 주는 것만도 감지 덕지 해야지!!! 아주 지 어밀 닮아서 뻔뻔스럽기는!!!! 아이구!!! 내가 빨리
죽어야 이꼴 저꼴 안보지…!!"
저 애를 노려보며 화를 내시곤.. 나가셨잖은가…?
난 절대 인정할 수 없다.
두 주먹을 불끈 쥐고… 그 아이를 노려보았다.
"예은아. 엄마한테 그게 무슨 말버릇이야! 아빠가 허락한 일이다."
"아빠!!!"
"그래 예은아.. 엄마 힘들게 하지마. 아이처럼 왜그래…? 오빠는 남동생 생겨서 좋기만 하다. 게다가
잘생기기까지 했는데…? 예은인 안좋아…? 잘생긴 오빠가 둘씩이나 있잖아."
정말… 오빠까지 이상하다.
"싫어!!! 싫다구!!! 엄마도 밉고!! 아빠도 밉고!!! 오빠도 미워!!! 악~~~~!!!"
악을 쓰며 소리를 질러대곤… 쿵쾅거리며 내 방으로 향했다.
"안녕. 난 정예후야.. 형이라고 불러봐."
등뒤로… 예후 오빠의 듣기 좋은 목소리가 흐른다.
평소… 정말 좋은 목소리를 타고 났다고… 우리 오빠만큼 좋은 목소리는 없을거라 생각했지만…
지금 이 순간 만큼은 뛰어가 오빠의 입을 막고 싶었다.

 

 

예후 13세, 성하 9세, 예은 7세.

 

 

 

 

"지긋지긋해!!! 넌 왜 자꾸 내 뒤만 따라다니는 거야!!! 너때문에 하민이 오빠도 제대로 만날수가 없잖아!!!"
"예후 형이 너 잘 지켜주랬어… 요새 나쁜놈들 많다고…"
"으이구… 그래.. 넌 오빠 말이라면 똥물이라도 먹을 애지.. 그런데… 너한텐 누가 나를 지켜주냐?!!
니가 나쁜놈일 수도 있잖아."
"난… 너한테 해되는짓 안해."
"넌… 참… 유머라고는 눈 씻고 찾을래야 찾을 수가 없어.. 너무 재미없고 따분해.. 하민이 오빠처럼
유머라도 있으면 데리고 다닐만 한데… 어휴.. 됐다.. 참… 여름에 눈 내리기를 바라지… 암튼!!! 나
지금부터 하민이 오빠 만나러 갈꺼니까.. 넌 집에가. 가서 엄마한테 어리광이나 부리셔~엄마~ 엄마~ 베~"
둘째 손가락으로 큰 눈을 아래로 눌러 내리며...혀를 앞으로 내밀고는 저만치 앞서간다.
정예은…
사랑스럽지만,,, 사랑해선 안되는 그녀…
엄마의 아들이고,,, 그녀의 오빠라 사랑해선 안된다.
물론,,, 그녀는 죽어도 인정 안하겠지만…
예후형과 아버지의 믿음을 져버려선 안되기에… 사랑해선 안된다.
이미 약혼자가 있는… 다른 이를 사랑하는 그녀이기에… 사랑해선 안된다.
너무나 환하고… 맑아서… 나같은게 사랑해선 안된다.
친 엄마와 같은… 그런일은 없어야 하기에… 사랑해선 안된다.
알지만… 너무도 잘 알지만… 내 사랑은 자꾸만 커져간다.
더 이상 내 가슴에 담아 둘 자리가 없을 정도로… 그렇게 커져만 간다.
죽이고… 또 죽여보지만… 좀비같은 생명력으로… 끝없이 살아나는… 내 사랑…

 

 


하민과 손을 잡고… 즐겁게 웃는그녀를… 어느 정도 거리를 유지해 가며 볼 수 밖에 없었다.
내가 따라다닌 다는걸… 그녀가 알면… 싫어할테니까…
어느 덧,, 둘은 집 앞에 다다랐고…
몇마디 인사를 나누며 헤어지려 한다.
그녀가 막 들어가려는데…
김하민 자식이 돌려 세운다.
그리곤… 차마 볼 수 없어... 두 눈을 감았다.         
얼마의 시간이 지나 그 자식이 돌아가고,,,          
발갛게 상기된 얼굴로… 너무나 아름다워 보이는 그녀가… 미소짓고 있다.         
그자식의 뒷모습을 보면서…         

예나 지금이나… 난… 겁쟁이에… 아무것도 할 수 없다.         
그런 내가… 죽이고 싶을만큼.. 싫다.         
          
성하 19세, 예은 17세.         


         
         
"기다려.. 내가 운전할께…"         
"됐어! 넌 오늘도 우리 가족 모임에 낄 생각이니…? 이제 이만큼 컸으면 너 혼자 살 수도 있잖아. 언제까지 우리집에 붙어있을 생각이야? 설마.. 평생은 아니겠지?"         
예은은 심한 말이라는걸 알면서도.. 멈출 수가 없었다.         
오전에 하민과의 말다툼으로 신경이 예민해져 있었기에… 애꿎은 성하에게 분풀이를 해버렸다.         
금세 후회 했지만… 어차피 성하는 금방 풀릴 것이므로 신경쓰지 않기로 했다.         
같이 살면서 미운정이 어느새 들었는지… 오빠 따라서 출장이라도 갈라치면 서운한 맘도 들곤 했는데… 항상 이렇게 툭툭 쏘아대는건… 언제라도 성하가 받아주기 때문에 버릇이 되어버렸나 보다.    
"그게 아니야. 너 기분 별로잖아. 그런 마음으로 운전하면 안좋아. 어차피 일 있어서 바로 와야하니까   
같이 식사는 못해. 어서 키줘."         
"됐다니까 자꾸 왜그래? 너 우리 엄마 맘 약한거 이용해서 은근슬쩍 끼려는거 아냐? 그런거 아니라면  
상관말고 니 일이나 해!"         
"휴,, 그럼 윤기사 아저씨한테 운전하라고 해."         
"너.. 진짜 주제넘다. 니가 뭐라도 되는 줄 아니?!! 짜증나니까 좀 꺼져줄래? 아우 진짜 열나.."         
성하를 무시하며 차 문을 열었다.         
저만치서 엄마와 아빠가 내려오시는게 보였고,,,          
"성하야.. 왜 옷도 안 갈아 입었어…? 이 옷차림으로 갈려고…?"         
"아.. 저기… 전 일이 좀 밀려서.. 못갈거 같아요."         
"그렇게 급한일이야? 나중에 와서 하면 안돼? 예후가 서운해 할꺼야.. "         
"하하..저도 가고 싶은데… 너무 중요한 일이라서… 맛있게 드시고 오세요.. 제가 따로 형한테 전화
넣을께요."
"너무 일에만 파묻히지 말고… 몸 생각 좀 해가면서 하려무나."
"예.. 아버지…"
어이구~… 아빠나 엄마나… 이젠 아주 친 딸보다 더 끔찍히 생각하셔…
확~ 삐져 버릴까보다.. 이러니 내가 쟤한테 고운정이 안가지…

 

 


저만치서 예후오빠가 손을 흔드는게 보인다.
오늘은 멋지게 주차를 해야지.. 오빠가 더 이상 놀리지 않도록… 후후
그동안 얼마나 연습을 했는지 오빠는 모를거다.
"우리딸.. 이젠 운전 잘하네…?"
"그러게요… 차선도 못 바꾸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호호"
"치… 그치만 지금은 카레이서 해도 손색없겠지?"
"그럼그럼…하하하."
"푸훗~"
두 분의 기분좋은 웃음소리를 들으며…우회하여 천천히 레스토랑으로 진입하려는데…
덜컹..
응??? 아우씨.. 너무 빨리 돌았나보다.
뒷 바퀴가 인도와 차도 사이에 걸려버렸다.
다시 후진을 하는데.. 이번에는 앞바퀴가 덜컹…
에이… 오늘도 멋진 카레이서는 물건너 갔나보다.
이상하게 한번 헤매면 계속 헤매게 된다.
할 수없이 주차는 오빠 시켜야지…
"아빠가 할까..?"
"아냐.. 됐어요. 오빠 시키지뭐.. 주차요원하려고 아까부터 나와서 기다리고 있잖아.. 크크"
"하하하!! 녀석.."
차에서 내려 오빠에게 슬며시 미소지었다.
오빠는 그럼그렇지… 라는 표정으로 걸어오고….
내 언젠간… 저 표정을 싹 지워주겠어… 라고 생각하는 찰나…
빠아앙!!!!!!!!!!!!!!!!!!!!!!!!!!!!!!!!!!!!!!!
쾅!!!!!!!!!!!!!!!!!!!!!!!!!!!!!!!!!!!
귓청이 찢어질 것만 같은 굉음과 함께 몸이 붕 떠올랐다.
"예은아!!!!!!!!!!!!!!!!!!!!!!!!!!!!"
오빠의 절규하는 목소리가 들리고,, 마치 바이킹을 타고 내려가는 듯한 느낌과… 한번의 충격,, 그리고…무감각하다.
뭐지…? 이건….? 몸이 움직이질 않아…
설마… 아닐거야… 아닐거야… 이건 꿈이야….
점점 멀어지는 의식속에서… 생각했다.
어릴때부터 성하를 미워해서… 괴롭히고 싫어해서…나쁘게 굴어서... 벌 받나보다…
정말 미운건 아니었는데…

 

 

 

 

탁탁탁탁…
탁탁탁탁…헉… 헉…
아니다.. 이건.. 현실이 아니다..
꿈이다.. 누가.. 누가 날 좀 깨워줘..
달리는 내내 현실이 아닐꺼라 여기며 눈물을 삼켰다.
마치… 눈물이 흐르면… 현실이라는게… 너무나 가혹한 현실이라는걸 인정하는 것만 같아서,,,
깜박거리면 눈물이 흘러내릴까.. 그저… 눈을 부릅뜨고 달렸다.
쾅!!!!!!!!!!!!!!
"어머!!! 안돼요!!! 지금 수술중이라 들어가시면 안돼요!!!!"
"놔!!!!!!!!!!!!!!!!!!"
"왜 이러세요!!!! 저기 그쪽 보호자분!! 이분좀 진정시켜 주세요!!"
힘없는 손이 내 어깨위로 올려지고……
"뭐야!!!!!!"
닥치는 대로 부셔버릴 것만 같은 심정으로 돌아본 나는…
하염없이 떨어지는 눈물을 방치한 채 초점이 없는 눈으로 어딜 바라보는지,, 생기를 잃어버린 투명한
눈과 마주쳤다.
"혀..형!!!! 어떻게 된거야!!!! 응??!!! 어떻게 된거냐고!!!! 아니지?? 아니지?? 아니라고 말해줘!!!!"
예후의 어깨를 잡아 사정없이 흔들며 애원했다.
"아버지는!!! 어머니는!!!! 그리고 예은이는!!!! 어딨어!!!! 어딨냐고!!!!!!"
내 하늘… 내 심장… 내가 숨쉴 수 있는 공기… 예은이… 내 사랑… 어딨냐고!!!!
가슴이… 울부짖는다.
"저기요.. 이쪽 보호자 분도 정신이 없으시네요. 우선… 이분은 여기 앉히시고… 따라 오세요…"
보다 못한 간호사가 예후형을 앉히고 나를 어디론가 이끈다.
엘리베리터를 타고…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 채…
내 마음은… 입술은… 바삭바삭… 타고있다.
이윽고 어는 문 앞에 다다른 간호사는 비장한 표정으로 문을 열었다.
들어가기전 잠깐… 올려다본 곳에는….
[영안실]
끔찍한 푯말이 붙어 있었다.
모두 똑같아 보이는 직사각형 철문이 즐비한 곳에 들어서자… 올라오는 신물 때문에.. 이를 악물었다.
"덤프 트럭이 그대로 밀고 나가는 바람에.. 그자리에서…"
간호사의 말이 허공에 떠돌고… 내 귀는... 듣기를 거부한다.
두 개의 문이 열리고… 흰 천으로 덮인 누군가가 보이고… 간호사의 손길에 열려진 천 아래는…
너무도 익숙한… 너무도 사랑하는… 존경하는… 두 분이 계셨다.
"지금… 뭐하세요…네? 왜... 거기 계세요… 왜 그렇게 누워계세요… 집 놔두고… 왜!!! 여기 누워계시
냐구요!!!! 눈 좀 떠보세요… 네?? 제발… 일어나세요… 집에가게… 집에가게… 일어나시란 말이에요!!!
제발요… 제발!!!!! 으아아악!!!!!!!!!!!!!! 우욱!!!! 우웨엑!!!!!!"
모든걸 게워내고… 게워냈다… 쓰디쓴 신물이 목과 코로 넘어 올 때까지…

 


내가 걷고 있는건지… 어디로 가는지… 무엇때문인지…또 나는 누구인지…
모든 것이 혼란 스럽고 갈피를 잡을 수가 없다.
머리속에서 엉켜버린 수많은 실타래로 인해 정신이 아득해진다.
두 손을 휘저어 실타래를 몰아내려 했다.
그러다 손에 잡힌.. 하나의 끈…
어렵게 따라간 그 끈의 끝엔… 그곳엔… 나의 예은이가 있었다.
정신이 번쩍 들었고,,, 어느새 난… 뛰고 있었다.

수술중이라는 불이 켜진 커다란 문 앞에.. 예후형과 나는 아무말 없이,,, 고개를 숙인 채 앉아 있었다.
길고 긴 영원의 시간이 흐른 후…
문이 열리고,,, 창백한 얼굴의 예은이가 보였다.
두 눈을 꼭 감고… 이불을 가슴까지 덮은 채…
형과 나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예은이를 쫒았다.
하지만 또다른 철문이 우리를 가로막았고… 그 후로도 한참 동안… 예은이를 볼 수 없었다.

 

 


"뭐...라고요???"
"휴… 저희로써도 최선을 다했지만… 결과가 좋지 않군요. 우선 환자분에게 어떻게 알리느냐가 중요한데.."
"그런 개소리 집어치워!!!! 더 노력해보란 말이야!!!!"
어느 덧 내 손은 의사의 멱살을 쥐고 흔든다.
"성하야..!!! 그만.. 그만.. 하자… 예은이… 한테…가자."
저렇듯 어깨를 움츠리고 걷는건… 풀 죽은 목소리로 얘기하는 건… 생기 없는 눈으로 바라보는 건…
내가 알던 형이 아니다..
그리고… 이렇듯 흥분하며 소릴 질러대는 이.. 또한… 내가 아니다.
그 사고는 우릴 모두… 변하게 했다.
제일 많이 변해버린건… 마음의 문을 닫아버리고 말이 없어진… 점점 자신감을 잃어가는 예은이었다.
얼마 후, 김하민은… 단 한마디의 인사도 없이,, 안부도 없이,,,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 버렸고,,,
예은이는 더욱 더… 생기를 잃어갔다.
오직.. 예후 형만이 예은이를 세상과 이어주는 유일한 끈이었고,,, 난,,, 그 무엇도 아니었다.

 

 

 

 

"!!!!! 성하야… 너까지 이러지 말아라… 너 아니어도 나.. 힘들다."
"형.. 아버지, 어머니,, 그분들.. 돌아가신 지금… 전 형 동생으로 있을 수 없어요. 그렇다고 제가
떠난다는 건 아니잖아요. 그냥.. 그냥.. 형의 동생.. 예은이의 오빠를 떠나… 한 사람의 인간으로
살고 싶어요. 절… 이해해 주세요. 인간 김성하로 살고 싶어요. 지금의 지위.. 내것이 아닌것들..
모두 버리고,,, 새로 출발하게.. 이해해 주세요. 그동안 넘치게.. 과분하게 받았던 것들.. 모두
제것이 아니라는거… 형도 아시잖아요. 그분들이 안계신 지금.. 뻔뻔하게… 차지할 수 없어요."
"아무도 너에게 뭐라하는 사람 없다."
"네.. 아무도 없어요.. 없지요… 하지만… 단 한사람… 여기… 마음속의 제가 안된다해요…할수 없대요."
"휴… 성하야…"
"절 이해해주세요. 형.. 오늘부로 팀장 자리.. 사표쓰겠습니다. 대신… 형님 비서로 취임시켜주세요.
저만큼 형님을 잘 아는사람도 없잖아요.. 딱일거 같은데요.."
"그래… 그동안 니 마음이 니것이 아니었겠지.. 부모님 기대에 부응하려.. 애쓰고… 눈밖에 나지 않으려고 노력한거… 나도 안다. 니자리가 아닌것에 불안하고 불편했겠지… 하지만.. 어느 새 넌.. 진짜 내 동생이 되어버렸어. 두 분이나 나나... 한번도 널 남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다시… 다시 생각해보면 안되겠니..?"
"………"
"휴…니 생각이 정 그렇다면 나도 말리진 않으마.. 하지만.. 힘들때는 내가 니 형이라는 걸… 잊지말아라.."
"네… 형… 형… 형…. 형!!!!!"
"왜 임마!!!"
"푸훗… 형이라고 부르는거… 오늘로 마지막이에요… 내일부터는 사장님이라고 부르겠습니다. 하지만… 오늘까지는… 오늘까지는… 형…형이에요…"
"나쁜 놈…"
"혀엉~!!!!"
"왜 이 나쁜자식아!!!"
"형~형~ 형!!!"
어느새 두 남자는,,, 서로 붉어진 눈시울을 감추려 고개를 돌렸다.

 

아무리 괴로워도… 힘겨워도… 시간이 지나면 어떻게든 살아지나 보다.
남은 이들은…그렇게... 주어진 삶을 살아가나보다.

 

예후 28세, 성하 24세, 예은 22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