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피곤해하며 잠드신 어머니를 보니.. 혼자 생각이 길어져.. 결국 글을 쓰게 되네요. 어렸을 때.. 엄마와 떨어져.. 아버지와.. 할머니, 할아버지, 큰아버님과 큰어머님.. 그 밑에 딸린 사촌언니와 늦둥이 사촌동생, 그리고 남동생과 살았었습니다. 큰고모님 내외분과 슬하의 사촌오빠 둘도 걸어서 5분거리에 살았었고 작은 고모님도 자주 찾아오시곤 했기 때문에. 제법 복작댄다 할 정도의 가족이었죠. 어렸을 때의 저로서는 그 분들이 제 일상의 전부고, 제가 아는 모든 것이었습니다. 엄마라고 해 봐야 얼굴도 기억하지 못하는 막연한 그리움일 뿐이었으니까요. 그 모든 것들이.. 저를 천대시 했기 때문에.. 저는 당연히 천한 사람인 줄로만 알았습니다. ... 그냥 당연히 그렇기 때문에 세상 모든 사람들이 나를 천대한다 라고 생각했었습니다. 정말로. 제 나이 다섯살.. 부당하다 여겨도 어디 하나 얘기할 곳 없었고.. 얘기한들 동의해 줄 사람도 없었고.. 그 분들도 의심의 여지조차 없을 만큼 당연하게 그렇게 저를 대하셨었습니다. 제가 당연히 천박하고 가치가 없는 사람이라 그런 대접을 받으며 사는 줄로만 알았습니다. 그 분들이 제가 아는 사회의 모든 것이었습니다. 그 분들이 제가 아는 전부였다구요. 사랑받았던 기억은 너무 어렸을 적 일이었습니다. 어렸을 적 기억이라고 추억할 수 있는 나이부터 너무나 당연스레 구박받고, 천대받았기 때문에..제가 아는 건 그게 전부였던겁니다. 하다못해 제 친 남동생도.. 유일한 남자아이라는 이유로 할머님께 이쁨 받으며 할머님과 함께 저를 천대했었으니까요.. 아버지도.. 모르지 않으셨을 겁니다.. 그토록 공공연히 괴롭힘 당하는 저를.. 한 집에 살면서 어떻게 까맣게 모를 수 있었겠습니까.. 그 시절.. 어느 날은 자는데 느닷없이 할아버지께 목을 졸린 적도 있습니다. 또 어느 날은 할머님께서 식칼을 들이대며 저를 야단치신 적도 있구요. 그 식칼을 가져다 준 사람은 다름아닌 제 친 남동생이었답니다. 초가을 쌀쌀한 날씨에 얇은 티 달랑 한장 입고 집 밖으로 쫓겨난 적도 있었습니다. 죽도록 맞고 불조차 들어오지 않는 방에서 한나절 갇혀있었던 적도 있었죠. 이유 없이 친 남동생과 늦둥이 사촌 여동생에게 얼굴 살이 뜯겨질 정도로 꼬집힌 적도 있었습니다. 그렇게 상식 밖을 벗어난 일들로.. 3년을 살았더랩니다.. 그렇게 제가 여덟 살 되던 해에. 어머니께서 다시 들어와 함께 살았습니다. 사실 원래는 어머니와 함께 살았었지만.. 아버지께서 수소문 끝에 어머니를 찾아내셔서 사시미 칼 들고 찾아가 어머니에게서 저를 빼앗다시피 해서 아버지와 살게 된 거였죠. 꿈에도 그리던 엄마.. 얼굴도 모르던 엄마와 함께 살게 된 것은 지금 생각해도 기적같은 일이었죠 그 때.. 어머니께서 다시 아버지와 살기로 결심하신 것은.. 순전히 자식들 때문인것을 압니다. 하지만.. 제 상태가 썩 정상은 아니었답니다.. 자기 자신이 천한 대우를 받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상식적으로 가능한 일이기나 한가요.. 누구 하나 얘기를 들어주는 사람이 늘 없어왔기 때문에.. 사람과 대화하는 것 조차.. 너무 황송한 일인 양 조급하게 짧은 시간 내에 자기 얘기를 전달하고 싶어했답니다.. 저를 위해.. 시간을 할애하는 사람이 늘 없었던겁니다.. 그래서 시간을 빼앗을 수 없었던거구요.. 그게 아니면 차라리 혼자 틀어박혀 책이나 읽고.. 남동생이 때려도 반항조차 않는..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입이 있어도 말하지 못하는 애였다고.. 어머니께서 그 시간이 지나고 그때의 저를 묘사하신 이 말씀은.. 정말 잊을 수가 없네요.. 어머니와 함께 살게 되면서.. 분가를 하게 되었고 저와 제 동생은 참 많이 변했습니다. 저는.. 보통의 사람으로.. 사랑받기를 원할 줄 아는 사람이 되었고.. 제 동생 역시.. 저를 사람으로서 대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그렇게 보통 사람으로 변해가면서.. 나이를 먹고.. 철이 들면서.. 아버지라는 사람에 대해.. 어머니라는 사람에 대해.. 차츰 알게 되었습니다.. 그 전까지는.. 생각의 여지조차 없어왔기 때문에.. 그냥 한 집에 살기 때문에 가족인 줄 알았고.. 한 상에 앉아서 함께 밥을 먹기 때문에 가족인 줄로만 알아왔습니다. 그렇게 의식하기 시작하니.. 아버지라는 사람도 눈에 들어오더군요.. 술 먹고.. 싸울때면 손찌검도 하시는 아버지.. 외가 식구들에게 서슴치 않고 막말하시는.. 아버지...... 어머니가 너무 아파서.. 꼼짝도 할 수 없는데도.. 너무나 냉정하시던.. 아버지.... 그런 아버지가 너무 속상해서 찾아오신 외할아버지께도 당당히 버럭버럭 소리지르시던 ..... 아버지.. 많이 자란 저에게.. 조금도 변하지 않은 태도의.. 친가 식구들..... 친가 식구들 앞에만 가면.. 왕 대접 받는 가장으로 보이고 싶어하시던 아버지.... 그래서 식구들 다 모인 자리에서 저에게 손찌검까지 해보이신............ 아버지. 그러나 저는.. 모른 체 했습니다. 어머니께서 또 떠나가신다면.. 전 또 어렸던 그때처럼 괄시받고 구박받으며 할머니와 함께 살아야 했을테니까요... 그나마 분가해서 명절때나 친가 식구들을 보는 것으로 참을 수 있으니까요.. 어렸을 때야 .. 몰랐기 때문에 당연하다 여기며 살았지만.. 다시 그렇게 살 자신은 없었습니다. 그때 저는.. 명절때 할머니댁에 가면 꼭 크게 아파서 응급실에 하루에도 몇 번이고 실려갈 정도로 스트레스를 받았었니까요.. 그런 날이 매일 계속되는 건 상상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제가 고3 되던 해에..두 분 이혼하시고.. 저희는 다행히 어머니와 함께 삽니다. 아버지.. 또 사시미 들고 찾아오지는 않을까.. 과연 어머니와 함께 살 수 있을까.. 이혼하시면서도 이래저래 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대학 뒷바라지는 돈 많이들어 못하고.. 자식들 크면 알아서 찾아오니 그때 대접이나 받자고 어설프게 계산해주신 친가 식구들 덕택에 무사히 어머니와 오손도손 살고 있답니다. 이제.. 아버지께서 재혼하셔서.. 슬하에 자식 거느리고 사시기를 바랄 뿐이죠.. 어설픈 계산대로.. 나이들어 친가 식구들에게 대접해드리고 싶지는 않으니.. 아쉬울 거 없으실 만큼 잘 되시기만 바라며 지냅니다. 어머니 혼자.. 대학생 둘 뒷바라지 하시느라 어렵게 살지만.. 지금은 이혼하시길 잘 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다시 찾아와주신거.. 그래서.. 사람으로 만들어주신거.. 정말.. 너무 감사하고.. 감사합니다.. 만약.. 그때 함께 살지 못했더라면.. 지금의 저는 어떤 사람으로 살고 있을까요.. 그때의 제가 어땠는지.. 저 스스로 실감하진 못하지만.. 어렴풋이 알고 있답니다.. 잊고 싶은 추억이고.. 다시 생각해도 눈시울이 붉어지는.. 서글픈 추억이지만.. 지금 어머니가 계시기 때문에.. 그것이 비로소 추억으로 남을 수 있었던겁니다.. 어머니께서 오시지 않으셨더라면.. 그것은 아마도 현재진행형이었겠지요.. 그런데도 오로지 제 생각에.. 제가 결혼할 때.. 손 잡고 들어갈 어른이 없어서 어쩌냐는 걱정을 하십니다..지금 이렇게 사는 것 만으로도 차고 넘치도록 행복한데.. 어머니 당신께서 힘들다는 이유 하나로 혼자되신 게 아닌 줄 다 아는데.. 아버지때문에 제가 하고픈 미술조차 마음대로 못하는 게 맘 아파서.. 친가 식구들 만날 때마다 어렸을 적 그 기억 곱씹으며 힘들어하는 절 아시기 때문에.. 그것 하나만은 아니라 해도.. 그게 더 큰 이유였음을 다 아는데.. 어머니.. 전.. ^^ 아버지가 없어두 절 사랑해주는 남자 만날거예요~ 전 단 한번도 저에게 제대로 된 아버지가 안계시다는 것을 부끄럽게 생각해본 적은 없어요 어머니께서 돌아가신 외할아버지를 그토록 그리워하시고 존경하시는것을 보면.. 부(父)정이라는 것이 저토록 애닯구나 하고 생각하기도 하지만.. 그에 넘치는 사랑 받고 있다고 생각해요.. 정말.. 너무 감사해요.. 무뚝뚝하고, 표현할 줄 몰라서 늘 입 안에서만 맴도는 말. 어머니께서 읽지 않으시리라 생각하기에 용기내서 해봅니다. .. 사랑합니다. 어머니.... --------------------------------------------------------- 톡이 된걸.. 다음날에야 확인했습니다.. ^^ 사실 제 생일이었는데.. 큰 선물 받은 기분이 드네요 그리고 동생.. 지금은 아주 어엿하게 자라서 누나한테 잘해주는 착한 동생이 되었답니다.. 남동생이면 한번쯤 해볼법한.. 누나한테 "야" 소리 한번 안하구요.. 둘이 싸울 때가 있긴 해두 누나한테 져주는 이쁘고 착한 동생 됐지요.. ^^ 물론.. 우리가 이런 사이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철저한 어머님의 가르침이 있어서였구요// 저나 동생이나.. 어머니껜 없어서는 안될 소중한 자식임을 압니다.. 댓글들 너무 감사하게 읽었어요.. 정말 너무 힘이되고 감사하답니다 신랑과 동시입장이라 ^^;; 결혼할 날은 사실 아직 멀었지만 그런 방법이 있다니, 어머니께 살짝 귀뜸해드려야 겠어요 ㅋㅋ 오늘은 자그마한 쪽지라도 써서 어머님 머리맡에 놓아두고 싶네요 사랑한다고.. 너무 감사하다고.. ^^ 추신 : 생일날 톡된것도 너무 기쁘고~ 행복하게 잘 살라는 하늘의 계시인 거 같아서 답글도 죄다 달고 싶었는데... ^^ 야심한 시각이라 역시 쉽지 않네요// 정말 하나같이 너무나 힘이 되는 감사한 리플들이라 .. 잊지 않고 나중에 다 달아야겠어요! 여성 운전자들이 너무 무서워요... 덜덜덜
잊고싶은 기억.. 그러나 어머니, 당신덕에 제가 살아요
오늘.. 피곤해하며 잠드신 어머니를 보니.. 혼자 생각이 길어져.. 결국 글을 쓰게 되네요.
어렸을 때.. 엄마와 떨어져.. 아버지와.. 할머니, 할아버지, 큰아버님과 큰어머님..
그 밑에 딸린 사촌언니와 늦둥이 사촌동생, 그리고 남동생과 살았었습니다.
큰고모님 내외분과 슬하의 사촌오빠 둘도 걸어서 5분거리에 살았었고
작은 고모님도 자주 찾아오시곤 했기 때문에. 제법 복작댄다 할 정도의 가족이었죠.
어렸을 때의 저로서는 그 분들이 제 일상의 전부고, 제가 아는 모든 것이었습니다.
엄마라고 해 봐야 얼굴도 기억하지 못하는 막연한 그리움일 뿐이었으니까요.
그 모든 것들이.. 저를 천대시 했기 때문에.. 저는 당연히 천한 사람인 줄로만 알았습니다.
... 그냥 당연히 그렇기 때문에 세상 모든 사람들이 나를 천대한다 라고 생각했었습니다. 정말로.
제 나이 다섯살.. 부당하다 여겨도 어디 하나 얘기할 곳 없었고.. 얘기한들 동의해 줄 사람도 없었고..
그 분들도 의심의 여지조차 없을 만큼 당연하게 그렇게 저를 대하셨었습니다.
제가 당연히 천박하고 가치가 없는 사람이라 그런 대접을 받으며 사는 줄로만 알았습니다.
그 분들이 제가 아는 사회의 모든 것이었습니다. 그 분들이 제가 아는 전부였다구요.
사랑받았던 기억은 너무 어렸을 적 일이었습니다. 어렸을 적 기억이라고 추억할 수 있는
나이부터 너무나 당연스레 구박받고, 천대받았기 때문에..제가 아는 건 그게 전부였던겁니다.
하다못해 제 친 남동생도.. 유일한 남자아이라는 이유로 할머님께 이쁨 받으며
할머님과 함께 저를 천대했었으니까요.. 아버지도.. 모르지 않으셨을 겁니다..
그토록 공공연히 괴롭힘 당하는 저를.. 한 집에 살면서 어떻게 까맣게 모를 수 있었겠습니까..
그 시절.. 어느 날은 자는데 느닷없이 할아버지께 목을 졸린 적도 있습니다.
또 어느 날은 할머님께서 식칼을 들이대며 저를 야단치신 적도 있구요.
그 식칼을 가져다 준 사람은 다름아닌 제 친 남동생이었답니다.
초가을 쌀쌀한 날씨에 얇은 티 달랑 한장 입고 집 밖으로 쫓겨난 적도 있었습니다.
죽도록 맞고 불조차 들어오지 않는 방에서 한나절 갇혀있었던 적도 있었죠.
이유 없이 친 남동생과 늦둥이 사촌 여동생에게 얼굴 살이 뜯겨질 정도로 꼬집힌 적도 있었습니다.
그렇게 상식 밖을 벗어난 일들로.. 3년을 살았더랩니다..
그렇게 제가 여덟 살 되던 해에. 어머니께서 다시 들어와 함께 살았습니다.
사실 원래는 어머니와 함께 살았었지만.. 아버지께서 수소문 끝에 어머니를 찾아내셔서
사시미 칼 들고 찾아가 어머니에게서 저를 빼앗다시피 해서 아버지와 살게 된 거였죠.
꿈에도 그리던 엄마.. 얼굴도 모르던 엄마와 함께 살게 된 것은 지금 생각해도 기적같은 일이었죠
그 때.. 어머니께서 다시 아버지와 살기로 결심하신 것은.. 순전히 자식들 때문인것을 압니다.
하지만.. 제 상태가 썩 정상은 아니었답니다.. 자기 자신이 천한 대우를 받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상식적으로 가능한 일이기나 한가요..
누구 하나 얘기를 들어주는 사람이 늘 없어왔기 때문에.. 사람과 대화하는 것 조차..
너무 황송한 일인 양 조급하게 짧은 시간 내에 자기 얘기를 전달하고 싶어했답니다..
저를 위해.. 시간을 할애하는 사람이 늘 없었던겁니다.. 그래서 시간을 빼앗을 수 없었던거구요..
그게 아니면 차라리 혼자 틀어박혀 책이나 읽고.. 남동생이 때려도 반항조차 않는..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입이 있어도 말하지 못하는 애였다고..
어머니께서 그 시간이 지나고 그때의 저를 묘사하신 이 말씀은.. 정말 잊을 수가 없네요..
어머니와 함께 살게 되면서.. 분가를 하게 되었고 저와 제 동생은 참 많이 변했습니다.
저는.. 보통의 사람으로.. 사랑받기를 원할 줄 아는 사람이 되었고..
제 동생 역시.. 저를 사람으로서 대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그렇게 보통 사람으로 변해가면서.. 나이를 먹고.. 철이 들면서..
아버지라는 사람에 대해.. 어머니라는 사람에 대해.. 차츰 알게 되었습니다..
그 전까지는.. 생각의 여지조차 없어왔기 때문에.. 그냥 한 집에 살기 때문에 가족인 줄 알았고..
한 상에 앉아서 함께 밥을 먹기 때문에 가족인 줄로만 알아왔습니다.
그렇게 의식하기 시작하니.. 아버지라는 사람도 눈에 들어오더군요..
술 먹고.. 싸울때면 손찌검도 하시는 아버지.. 외가 식구들에게 서슴치 않고 막말하시는.. 아버지......
어머니가 너무 아파서.. 꼼짝도 할 수 없는데도.. 너무나 냉정하시던.. 아버지....
그런 아버지가 너무 속상해서 찾아오신 외할아버지께도 당당히 버럭버럭 소리지르시던 ..... 아버지..
많이 자란 저에게.. 조금도 변하지 않은 태도의.. 친가 식구들.....
친가 식구들 앞에만 가면.. 왕 대접 받는 가장으로 보이고 싶어하시던 아버지....
그래서 식구들 다 모인 자리에서 저에게 손찌검까지 해보이신............ 아버지.
그러나 저는.. 모른 체 했습니다. 어머니께서 또 떠나가신다면.. 전 또 어렸던 그때처럼
괄시받고 구박받으며 할머니와 함께 살아야 했을테니까요...
그나마 분가해서 명절때나 친가 식구들을 보는 것으로 참을 수 있으니까요..
어렸을 때야 .. 몰랐기 때문에 당연하다 여기며 살았지만.. 다시 그렇게 살 자신은 없었습니다.
그때 저는.. 명절때 할머니댁에 가면 꼭 크게 아파서 응급실에 하루에도 몇 번이고 실려갈 정도로
스트레스를 받았었니까요.. 그런 날이 매일 계속되는 건 상상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제가 고3 되던 해에..두 분 이혼하시고.. 저희는 다행히 어머니와 함께 삽니다.
아버지.. 또 사시미 들고 찾아오지는 않을까.. 과연 어머니와 함께 살 수 있을까..
이혼하시면서도 이래저래 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대학 뒷바라지는 돈 많이들어 못하고.. 자식들 크면 알아서 찾아오니 그때 대접이나 받자고
어설프게 계산해주신 친가 식구들 덕택에 무사히 어머니와 오손도손 살고 있답니다.
이제.. 아버지께서 재혼하셔서.. 슬하에 자식 거느리고 사시기를 바랄 뿐이죠..
어설픈 계산대로.. 나이들어 친가 식구들에게 대접해드리고 싶지는 않으니..
아쉬울 거 없으실 만큼 잘 되시기만 바라며 지냅니다.
어머니 혼자.. 대학생 둘 뒷바라지 하시느라 어렵게 살지만..
지금은 이혼하시길 잘 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다시 찾아와주신거..
그래서.. 사람으로 만들어주신거.. 정말.. 너무 감사하고.. 감사합니다..
만약.. 그때 함께 살지 못했더라면.. 지금의 저는 어떤 사람으로 살고 있을까요..
그때의 제가 어땠는지.. 저 스스로 실감하진 못하지만.. 어렴풋이 알고 있답니다..
잊고 싶은 추억이고.. 다시 생각해도 눈시울이 붉어지는.. 서글픈 추억이지만..
지금 어머니가 계시기 때문에.. 그것이 비로소 추억으로 남을 수 있었던겁니다..
어머니께서 오시지 않으셨더라면.. 그것은 아마도 현재진행형이었겠지요..
그런데도 오로지 제 생각에.. 제가 결혼할 때.. 손 잡고 들어갈 어른이 없어서 어쩌냐는
걱정을 하십니다..지금 이렇게 사는 것 만으로도 차고 넘치도록 행복한데..
어머니 당신께서 힘들다는 이유 하나로 혼자되신 게 아닌 줄 다 아는데..
아버지때문에 제가 하고픈 미술조차 마음대로 못하는 게 맘 아파서..
친가 식구들 만날 때마다 어렸을 적 그 기억 곱씹으며 힘들어하는 절 아시기 때문에..
그것 하나만은 아니라 해도.. 그게 더 큰 이유였음을 다 아는데..
어머니.. 전.. ^^ 아버지가 없어두 절 사랑해주는 남자 만날거예요~
전 단 한번도 저에게 제대로 된 아버지가 안계시다는 것을 부끄럽게 생각해본 적은 없어요
어머니께서 돌아가신 외할아버지를 그토록 그리워하시고 존경하시는것을 보면..
부(父)정이라는 것이 저토록 애닯구나 하고 생각하기도 하지만..
그에 넘치는 사랑 받고 있다고 생각해요.. 정말..
너무 감사해요..
무뚝뚝하고, 표현할 줄 몰라서 늘 입 안에서만 맴도는 말.
어머니께서 읽지 않으시리라 생각하기에 용기내서 해봅니다.
.. 사랑합니다. 어머니....
---------------------------------------------------------
톡이 된걸.. 다음날에야 확인했습니다.. ^^
사실 제 생일이었는데.. 큰 선물 받은 기분이 드네요
그리고 동생.. 지금은 아주 어엿하게 자라서
누나한테 잘해주는 착한 동생이 되었답니다.. 남동생이면 한번쯤 해볼법한..
누나한테 "야" 소리 한번 안하구요.. 둘이 싸울 때가 있긴 해두
누나한테 져주는 이쁘고 착한 동생 됐지요.. ^^
물론.. 우리가 이런 사이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철저한 어머님의 가르침이 있어서였구요//
저나 동생이나.. 어머니껜 없어서는 안될 소중한 자식임을 압니다..
댓글들 너무 감사하게 읽었어요.. 정말 너무 힘이되고 감사하답니다
신랑과 동시입장이라 ^^;; 결혼할 날은 사실 아직 멀었지만
그런 방법이 있다니, 어머니께 살짝 귀뜸해드려야 겠어요 ㅋㅋ
오늘은 자그마한 쪽지라도 써서 어머님 머리맡에 놓아두고 싶네요
사랑한다고.. 너무 감사하다고.. ^^
추신 : 생일날 톡된것도 너무 기쁘고~ 행복하게 잘 살라는 하늘의 계시인 거 같아서
답글도 죄다 달고 싶었는데... ^^ 야심한 시각이라 역시 쉽지 않네요//
정말 하나같이 너무나 힘이 되는 감사한 리플들이라 .. 잊지 않고 나중에 다 달아야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