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업을 마치고 도서관으로 갈 준비를 하고 있었던 수현은 발을 돌려 황 교수의 방으로 가서 노크를 했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반갑게 수현을 맞이하는 황 교수.
“ 교수님 부르셨어요? ”
“ 어 그래. 왔구나. 이것만 마무리 하고 갈테니 쇼파에 않아 있거라.”
“ 네. 교수님.”
수현은 쇼파에 않아 책장에 꽃혀 있는 책들을 하나하나 살피기 시작한다. 역시 전공과목 도서들이 다양하게 꽂혀 있었다. 유심히 한참을 보다가 연애소설로 보이는 책을 발견한 수현은 의외의 도서가 학과장인 황 교수의 방 책장에 꽂혀 있는 것이 신기하기만 하다. 유독 책장에 관심을 보이며 살피고 있는 수현을 보고는 황 교수가 피식 웃어 보였다.
“ 역시 도서관에서 일해서 그런지 책의 관심이 많은 것 같구나. ”
“ 헤. 헤 책보는 걸 좋아해서요. 유아교육 전공 도서가 정말 많네요. 교수님. ”
“ 유아교육전공을 했으니 많은 건 당연 한거지. ”
“ 근데요 교수님. 책장을 보니까 연애소설도 있네요? 연애소설도 즐겨 읽으시나 봐요? ”
“ 아..그거. 나도 책 읽는 거 좋아했거든. 비록 학교는 같지 않지만 나도 대학 때 수현이 너처럼 도서관 아르바이트를 했었거든. ”
“ 아.. 그러셨구나. ”
“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 볼까? 수현이 네가 매번 학기마다 성적이 좋아서 장학금 받았는데 이번 학기가 예전보다 성적이 조금 떨어졌더구나. 그래서 장학 재단에 의뢰했더니 널 한 번 보고 싶어 하시더라고. 그래서 오늘 널 보자고 한 거고. ”
“ 교수님.. 정말 감사합니다. 이렇게 매번 신경 써 주시고..”
황 교수의 배려가 감사한 나머지 수현의 눈에는 눈물이 맺혔다. 힘내라는 말을 하면서 수현의 어깨를 다독여 주고 있을 때. 작은 노크 소리가 들려왔고 이어서 깔끔하고 멋있는 차림에 한 중년 남자가 들어왔다.
“ 어머 오셨어요? 한 회장님. 이리로 않으세요. ”
“ 안녕하세요? ”
“ 아.. 자네가 최수현 양이군요. 만나서 반가워요.”
“ 네? 아..예 안녕하세요. 처음 뵙겠습니다. ”
“ 내가 너무 한눈에 알아봐서 조금 놀란 것 같네요. 황 교수님이 수현 양을 추천해 주실 때 사진을 보여주셔서 쉽게 알아볼 수 있었어요. ”
“ 네..그러셨군요. ”
한회장이 자리에 않고 황 교수는 전화기를 들어 과사무실에 전화를 하는 듯 하더니 이내 다시 내려놓았다.
“ 조교가 자리에 없나보네. 한회장님 차는 어떤 걸로 하시겠어요? ”
“ 저는 아무거나 괜찮습니다. 허 허허허 ”
“ 교수님. 제가 차 준비 해올게요. ”
그리고는 조심스레 일어나 방에서 나와 과사무실로 향했다. 이토록 배번 신경써주시는 교수님과 모든 분 들게 감사한 마음과 기쁜 마음을 동시에 느낄 수 있다는 기쁜 마음으로 차를 준비해 쟁반에 놓고 다시 황 교수의 방으로 가고 있었다. 커브를 돌려고 할 때.
꽈당!!!!!!!!!
누군가와 심하게 부딪혔고 들고 있는 쟁반에 차가 떨어지면서 부딪혔던 상대방에 옷에 엎질러졌다.
“ 어떻해. 정말 죄송합니다. 괜찮으세요? ”
너무나 당황했고 미안했던지 손으로 상대방 남자의 옷에 물기를 털어내려고 노력했다. 계속해서 사과를 하면서 떨어진 쟁반과 깨진 컵을 치우기 시작했다.
“ 옷이 많이 젖었네요. 정말 죄송합니다. 제가 세탁 비 물어 드릴게요. ”
그러면서 자신의 옷 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내서 지갑을 열어 돈을 확인하는 수현.
“ 아. 아니에요. 안 그러셔도 괜찮습니다. "
“ 아니에요 세탁 비 드릴게요. 잠시 만요. ”
지갑을 열었으나 지갑 속에는 달랑 오천 원 권 지페 하나가 전부였다. 이 돈으로는 세탁 비라고 줄 수도 없다는 것을 깨닫고 수현은 자신의 옷 주머니에서 조금은 오래되고 낡은 만 연필 하나를 꺼내어 상대방 남자에 손에 쥐어주고는
“ 제가 지금 오천 원밖에 없거든요. 지금 빨리 가서 돈 찾아 올 테니까 여기 꼭 계세요. 그리고 이건 제가 가장 아끼는 물건이거든요. 혹시나 제가 세탁 비 안 물고 그냥 도망치는 게 걱정되실까봐 담보로 잠시 드리는 거예요. 빨리 다녀올게요.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
그 말을 하고는 있는 힘을 다해서 뛰어 가기 시작했다.
“ 아.. 저기..저기요..괜찮은데..음.. ”
뛰어가는 수현을 바라보는 승우는 기분 좋은 듯한 미소를 지으며
“ 또 만났네. 저 아가씨. 당황하는 모습도 귀엽다. ”
2
열심히 뛰어 현금 출납기까지 갔더니 고장수리중이라 학교 밖에 있는 은행까지 갔다 온 수현이 다시 그 장소로 돌아갔을 때 만 연필을 담보로 맡긴 그 남자는 없고 깨진 컵은 누가 청소했는지 말끔하게 없었고 쟁반만 창가에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 내 만 연필. 그냥 가버리면 어떻해. ”
만 연필을 잃어버렸다는 상실감에 뚜벅뚜벅 걷다가 작은 충돌사고가 나서 그 동안 까맣게 잊어버리고 있었던 일이 생각났다.
‘ 아. 맞아. 난 교수님 심부름 중이었지..아휴..오늘 왜 이렇게 일이 꼬이지.? ’
3
그날 이후로 수현은 깊은 생각에 빠졌다. 수현이 그 남자에게 담보로 맡긴 만 연필은 다른 사람들이 볼 때는 오래되고 낡은 만 연필처럼 보이겠지만 수현에게는 아주 소중한 물건이기에.. 수현이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에 입학하던 날 지금은 돌아가신 아버지가 수현에게 입학선물로 주신 것이니 소중하지 않을 수 없다.
세월이 지나서 지금은 사용하기는 힘들지만 아버지의 유품이라는 생각에 항상 몸에 지니고 다니던 물건인데 왜 하필 그 때 지갑 속에 돈이 오 천원밖에 없었던 것인지. 왜 하필 그 때 옷 주머니 속에 만 열필 밖에 없었던 것인지, 아무리 미안하다고 해도 그렇지 만 연필을 담보로 처음 본 사람한테 담보로 맡길 생각을 할 수가 있었던 것인지...
‘ 어디를 가다가도 다시 한 번 만나면 한 번에 알아 볼 수 있을 텐데. 그나저나 어디 가서 찾지 그 사람을? 우리학교 사람인 것 같기는 한데 무슨 과인지도 모르고 이름도 모르는데 무슨 수로 찾지? ’
4
경미와 나란히 앉아 점심을 먹고 있는 수현. 그러나 수현은 어딘가 불안해 보이고 주위를 계속해서 두리번거린다. 마치 누구라도 찾는 사람처럼. 의아한 표정으로 경미가 뚤어 져라 보니 그제 서야 뜨거운 경미의 시선을 느꼈는지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다시 반찬을 집어 드는 수현. 이틀 전부터 수현이 예전과 같지 않다는 것을 느낀 경미는 수현이 무슨 일인지 자신에게 말해주길 내심 기다리고 있었으나 수현은 끝내 오늘 수업이 끝나기까지 말해주지 않았다.
“ 야. 최수현. 너 나한테 뭐 할 말 없어? ”
“ 어? 할말? 무슨 말? ”
“ 시치미 떼는 거야.. 아니면 정말 할 말이 없는 거야 ? ”
“ 시치미를 떼다니? 뭘? ”
“ 내가 잘못 짚은 건가? 요즘 너 뭔가 이상한데. ”
“ 이상해? 아.. 요즘 고민거리가 있기는 한데...에휴... ”
“ 거봐. 너 그런 거 있을 줄 알았어. 내 눈 은 못 속인다니까. 뭔데? 어서 말해봐 ”
이틀 전에 있었던 작은 사고에 대해 설명해 주자 경미가 심각한 표정을 하고는 수현의 이마를 자신의 손으로 짚어 본다.
“ 경미 너 뭐 하는 거야? ”
“ 열이 있나 확인해 보려구. ”
“ 나 열어 없어. 아프지도 않는데 열이 왜 있어? ”
“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너의 그 소중한 만 연필을 처음 보는 남자한테.. 그것도 담보로 맡겨? 고등학교 때부터 널 봐왔지만 그 만 연필하고 너는 일심동체였잖아. 항상 몸에 지니고 다니던 물건을 4년 지기 단짝 친구인 나한테도 안 맡기던 네가 처음 본 사람한테 맡겼다는 건 보통 일이 아니지. 음... 이거 냄새가 나는데? ”
“ 냄새? 무슨 냄새? ”
“ 너.. 혹시 그 남자한테 첫 눈에 뿅 간 거 아니야? ”
“ 뭐 어~? 말도 안 돼 ”
“ 농담으로 한 말인데 왜 이렇게 강하게 반응해? 이 거 이 거 정말 그런 거 아니고? ”
“ 아니라니까...”
그렇다. 정말 이상한 일이다. 가장 친한 경미에게도 지금까지 만 연필을 맡겨 본 적 조차 없었고 아버지가 돌아가신 이후로 항상 몸에 지니고 다녔던 물건이었는데 아무리 그 상황에서 당황하고 있었다고 해도 이건 수현 자신도 이해가 안 가는 부분 이었다.
그 날 이후로 경미와 수현은 시간만 나면 학생 식당이며 학생 회관이며 전교생이 모이는 채플 시간에도 지금껏 관심도 없었던 남학생들의 얼굴을 유심히 살피고 다녔고 이름 모를 남정네를 찾아 다녔다. 그러나 우리학교 학생인 것은 분명하지만 무슨 과인지 몇 학년인지 이름은 뭔지 전혀 모르는 상황에서 사람을 찾기란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다. 평소 둘이 만나면 하는 일상적인 수다는 사라지고 어느새 만 연필을 담보로 가지고 사라져버린 남자의 대한 주제로 대화는 이루어졌고 수현과 경미 사이에서는 이름 모를 그 남정네를 [만 연필] 이라고 임의대로 불렀다.
5
노인정 자원봉사를 마치고 집에 돌아온 승우. 현관을 들어서는데 캄캄한 집안의 부엌만 유독 불이 환하다. 아마도 승우의 아버지인 한기준이 약주를 하고 있으리라. 부엌으로 들어서려는 순간 아버지의 뒷모습이 안쓰럽게 느껴지는 승우. 어렸을 때는 그렇게 커 보일 수가 없었던 아버지의 어깨였지만 언제 부터인가 커 보이기만 하던 아버지의 어깨가 작아 보이기 시작했다.
“ 아버지 . 다녀왔습니다. ”
“ 어 그래.. 왔냐,, 한잔 할 테냐 ? ”
“ 네.. 저도 한 잔 주세요. ”
“ 어머니 기일 다가와서 마음이 외로우시죠? ”
“ 이제 몇 칠 안 남았구나. 너희 엄마 참 고왔는데.. ”
“ 맞아요. 세상에서 제일 고운 분이셨어요. ”
“ 기억 나냐? 네 엄마 얼굴. ”
“ 기억나죠. 어떻게 잊겠어요. 보고 싶을 때마다 사진도 보는데요. ”
“ 그래...그래야지. 그래야지..암... ”
“ 내가 네 엄마에게 너무 무심했어. 성공해야 한다는 생각이 너무 커서 그 때 내 눈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었다. 네 엄마조차.. 우선 내가 성공하고 싶었고 내 가족이 잘 살고 내 자식들이 크게 성공하도록 하는 게 내 목적이었으니 말이다. 그렇게 외롭게 지낸 네 엄마를 떠나보내고도 네 엄마에겐 미안한 말이지만 나는 멈추고 싶지가 않구나. 너희가 잘 되면 네 엄마도 날 용서해주고 이해해줄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위안을 얻는 거다. 하..하...하.. ”
“ 아버지.... 어머닌 아버지를 이해하고 계실 겁니다. 아버지 저 이만 올라가 볼게요. 약주 조금만 하시고 주무세요. ”
“ 그래.. 피곤 할 텐데 쉬어라. ”
승우는 잘 안다. 승우가 6살 때 돌아가신 어머니의 기일이 돌아 올 때 마다 힘들어 하시는 아버지는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에도 어머니를 잊지 못하고 계신다는 것을. 승우 자신이 옆에서 위로해 드리는 것 보다 혼자서 돌아가신 어머니를 추억하기를 더 원하신다는 것을.
부엌에서 나와 자신의 방으로 올라와 외투를 벗어 옷걸이에 걸고는 책상 앞에 앉는다. 그리고는 책상 앞에 높여 있는 어머니의 사진이 담긴 액자를 들어 어루만진다. 한참을 그렇게 사진을 바라보고만 있는 승우. 씻기 위해 화장실로 가려고 일어서는데 승우의 몸과 부딪혀 무언가 떨어지는 소리. 소리가 나는 쪽을 보고 몸을 숙여 잡는다. 만 연필이다. 만 연필을 보는 순간. 잊고 있었던 작은 사건 하나가 생각난다. 만 연필을 보면서 기분 좋은 미소를 짓고는 외투 주머니 속에 넣는다.
‘ 소중한 거라고 했는데 내가 너무 오래 보관했군. ’
6
강의가 유난히 많이 잡힌 목요일 오후 . 약간은 지친 듯한 얼굴의 수현과 경미가 강의실을 나온다. 벌써 일주일째다. 만 연필을 담보로 들고 꽁꽁 어디론가 숨어버린 그 남자의 행방을 찾지 못한지. 그래서 그런지 수현의 얼굴에는 생기가 없어 보인다.
“ 오늘도 하루가 거의 가고 있네. 내일도 빨리 올 텐데.. 내일은 꼭 찾을 수 있을 거야. 이제 커피숍 가는 거지? ”
“ 응...... ”
“ 기운 다 빠진 소리다. 진짜 그 만 연필은 어디로 숨어버린 거니? 웬만하면 한번은 마주 칠텐데... 진짜 징하다.. 징해.. ”
“ 경미야 나갈게.... ”
“ 그래 내일 보자. ”
7
어깨가 축 쳐진 체로 오후 아르바이트 장소인 커피 숍 문을 열고 들어오는 수현. 수현을 보자 반가운 듯 달려오는 커피숍 사장님. 수현에게 앞치마를 건네며.
“ 아이고 왔네. 엄청 기다렸어. ”
“ 네? 아직 시간 남았는데요? 늦은 거 아닌데. ”
“ 알지~ 내가 지금 급하게 은행가서 처리해야 할 게 있어서 전화 했더니 전화기가 꺼져 있더라고. 그래서 넋 놓고 무작정 기다렸어. ”
“ 아~ 제가 충전한다는 게..시간이 없어서 못했거든요. 다녀오세요. ”
사장님이 건네고 간 앞치마를 걸치고 카운터에서 일하는 수현. 손님이 오면 주문 받고 서빙하고 오늘은 다른 날 보다 손님이 많아서 이리저리 정신없이 불려 다니는 수현. 조금은 한가해 진 시간이라 카운터 의자에 않아 얼굴에 턱을 괴고 생각에 빠졌다. 그 남정네.. 만 연필... 도대체 어리로 사라진 걸까? 땅으로? 하늘로? 에휴.....
수현이 생각에 빠져있는 동안 커피숍 문을 열고 또 한 팀의 손님들이 들어왔지만 문소리를 듣지 못한 듯하다. 평소 같았으면 문 열리는 소리를 듣고 그 누구보다도 더 빨리 문 쪽으로 시선을 돌리고 “어서 오세요. ” 라고 상량하게 인사했을 수현인데 잠자코 앉아 무관심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토록 찾던 만 연필을 담보로 가져간 남정네가 나타났는데도 말이다.
항상 매번 수현 보다 승우가 수현을 먼저 발견하고 보게 된다. 카운터에서 턱을 괴고 무슨 생각을 그렇게 골똘히 하는지 손님이 왔는데도 주문 받으러 안 오는 수현을 유심히 지켜보는 승우. 승우와 동행한 친구 민섭이 마음이 급했는지 주문 벨을 눌렀다.
띵 동..
그러나 수현은 여전히 반응이 없다. 성격 급한 민섭이 다시 한 번 주문 벨을 눌렀으나 여전히 반응이 없자 난감해 하는 민섭. 그 모습을 지켜보던 다른 테이블에 손님이 안 되겠는지 수현에게로 가서 말해준다. 그제 서야 정신 차리고 주위를 둘러보는 수현. 자신을 뚤어 져라 보고 있는 한 남자를 발견하고는 저쪽이구나 하고 주문 판을 들고 테이블로 향한다.
“ 손님. 죄송합니다. 주문하시겠어요? ”
“ 아. 괜찮습니다. 아..저는 봉숭아 아이스티 주시구요. 너는 뭘 로 할래? ”
민섭에게로 향해 있던 수현의 시선이 반대편에 앉아 있는 사람에게로 시선이 고정되고.
“ 음..난 뭘 로 할까? 난 그냥. 커..”
“ 어? 만 연필! ”
일주일간 헤매고 여기저기 찾아 다녔던 사람을 찾았다는 기쁨과 동시에 만 연필도 되찾았다는 기쁨이 너무 컸는지 큰 소리로 외쳤고 커피 숍 안에 있던 사람들의 시선이 한 테이블로 고정되었다. 손가락으로는 승우를 가리키며 놀란 토끼 눈을 하고는 한 참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무슨 영문인지 모르는 민섭이 더 당황한 눈치였다.
“ 아니..이봐요 아가씨? ”
민섭이 말을 해도 들리지 않았다. 수현에게는 오직 만 연필밖에 눈에 뵈는 게 없었으니까.
“ 내 만 연필 어딨어요? 그 날 그렇게 가버리면 어떻해요? 지금 가지고 있어요? ”
“ 저기.. 진정해요. 목소리가 좀 컸던 것 같은데. ”
승우는 수현에게 진정하라며 주위를 둘러보라는 손짓을 했다. 주위를 둘러보는 수현. 작지 않은 커피숍 안에 손님들이 모두 이쪽을 ...아니 자신을 보고 있었다. 순간 얼굴이 달아오르는 것을 느낄 수 있었고 순식간에 얼굴이 사과처럼 빨개져버린 수현. 이 순간을 어떻게 무마시켜야 할지 난감했던 수현은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자신을 향하고 있는 손님들을 향해 웃어 보였다. 고개를 약간 숙이며 시끄럽게 해서 죄송하다는 표현을 몸으로 대신 했다. 그리고 다짜고짜 승우의 팔을 잡아끌고 커피숍 밖으로 나갔다.
“ 주세요. 내 만 연필. ”
“ 저기... ”
“ 제가 그날 그 쪽한테 실례를 한건 죄송스럽게 생각하거든요? 제가 분명히 말씀 드렸잖아요. 소중한 물건이니까 잠시만 담보로 맡긴 다구요. 말도 없이 그냥 가버리면 어떻해요? ”
“ 저기..저기요.. ”
“ 저기 뭐요? ”
“ 저기.. 이 팔 좀.. 풀러주시면...”
커피숍 안에서 승우를 잡아 끌로 나올 때 그 모습이었다. 적어도 5분은 이 남자의 손목을 붙잡고 있었다는 것이다. 순간 화들짝 달아오르는 얼굴을 숨기려고 손을 뿌리치고 뒤로 물러 선 수현.
“ 아..그..그건... 음..음..”
당황한 수현은 헛기침을 하고 그 모습을 지켜보는 승우는 이 여자가 재미있기만 하다.
“ 왜 웃어요? ”
“ 아..아니요..그냥. 헤헤..”
“ 암튼.. 주세요. 만 연필. ”
“ 아~ 만 연필이요..어떻 하죠? ”
“ 왜요? 설마..버렸어요? ”
“ 아..아니요. 그런 건 아니 구요. 지금 저한테 없어요. 집에 있는데. ”
“ 에 휴.. 다행이다. 난 또 버린 줄 알았네. 여기서 잠시만 기다리세요. ”
그리고는 다시 커피숍 안으로 들어가는 수현. 이내 다시 나오는데 수현의 손에는 종이와 펜이 하나 들려 있다.
“여기 10000원이요. 그리고 이거요. ”
“이건 뭐예요? ”
“ 내가 그쪽 찾느라고 얼마나 고생 했는 줄 알아요? 무슨 과인지 몇 학년인지 이름은 뭔지.
그 종이에 적으시라구요!“
“아~~ 네..”
종이에 학과 학년 이름 그리고 연락처까지 적어주는 승우. 종이를 수현에게 건넨다.
“ 연락처도 적으셨네요? 머...내일 제가 찾으러 갈게요. 아~ 그리고 저번엔 정말 미안했습니다. 제가 시간을 너무 많이 뺏었네요. 즐거운 시간 되세요. ”
그리고 매정하게 뒤돌아서 커피숍 안으로 들어가는 수현을 승우는 잡아서 이름이라도 물어보고 싶었으나 꾹 참았다. 이제 겨우 마음이 진정 된 것 같은데 엉뚱하게 이름 물어봤다가는 왠지 저 여자 단번에 퉁명스럽게 변해 버릴까봐서..
(연애소설) -알약(2) -
*
만 연 필
1
“ 수현아. 황 교수님이 부르셔 교수님께 가봐.”
“ 교수님이? 왜 그러시지? 알았어.”
수업을 마치고 도서관으로 갈 준비를 하고 있었던 수현은 발을 돌려 황 교수의 방으로 가서 노크를 했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반갑게 수현을 맞이하는 황 교수.
“ 교수님 부르셨어요? ”
“ 어 그래. 왔구나. 이것만 마무리 하고 갈테니 쇼파에 않아 있거라.”
“ 네. 교수님.”
수현은 쇼파에 않아 책장에 꽃혀 있는 책들을 하나하나 살피기 시작한다. 역시 전공과목 도서들이 다양하게 꽂혀 있었다. 유심히 한참을 보다가 연애소설로 보이는 책을 발견한 수현은 의외의 도서가 학과장인 황 교수의 방 책장에 꽂혀 있는 것이 신기하기만 하다. 유독 책장에 관심을 보이며 살피고 있는 수현을 보고는 황 교수가 피식 웃어 보였다.
“ 역시 도서관에서 일해서 그런지 책의 관심이 많은 것 같구나. ”
“ 헤. 헤 책보는 걸 좋아해서요. 유아교육 전공 도서가 정말 많네요. 교수님. ”
“ 유아교육전공을 했으니 많은 건 당연 한거지. ”
“ 근데요 교수님. 책장을 보니까 연애소설도 있네요? 연애소설도 즐겨 읽으시나 봐요? ”
“ 아..그거. 나도 책 읽는 거 좋아했거든. 비록 학교는 같지 않지만 나도 대학 때 수현이 너처럼 도서관 아르바이트를 했었거든. ”
“ 아.. 그러셨구나. ”
“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 볼까? 수현이 네가 매번 학기마다 성적이 좋아서 장학금 받았는데 이번 학기가 예전보다 성적이 조금 떨어졌더구나. 그래서 장학 재단에 의뢰했더니 널 한 번 보고 싶어 하시더라고. 그래서 오늘 널 보자고 한 거고. ”
“ 교수님.. 정말 감사합니다. 이렇게 매번 신경 써 주시고..”
황 교수의 배려가 감사한 나머지 수현의 눈에는 눈물이 맺혔다. 힘내라는 말을 하면서 수현의 어깨를 다독여 주고 있을 때. 작은 노크 소리가 들려왔고 이어서 깔끔하고 멋있는 차림에 한 중년 남자가 들어왔다.
“ 어머 오셨어요? 한 회장님. 이리로 않으세요. ”
“ 안녕하세요? ”
“ 아.. 자네가 최수현 양이군요. 만나서 반가워요.”
“ 네? 아..예 안녕하세요. 처음 뵙겠습니다. ”
“ 내가 너무 한눈에 알아봐서 조금 놀란 것 같네요. 황 교수님이 수현 양을 추천해 주실 때 사진을 보여주셔서 쉽게 알아볼 수 있었어요. ”
“ 네..그러셨군요. ”
한회장이 자리에 않고 황 교수는 전화기를 들어 과사무실에 전화를 하는 듯 하더니 이내 다시 내려놓았다.
“ 조교가 자리에 없나보네. 한회장님 차는 어떤 걸로 하시겠어요? ”
“ 저는 아무거나 괜찮습니다. 허 허허허 ”
“ 교수님. 제가 차 준비 해올게요. ”
그리고는 조심스레 일어나 방에서 나와 과사무실로 향했다. 이토록 배번 신경써주시는 교수님과 모든 분 들게 감사한 마음과 기쁜 마음을 동시에 느낄 수 있다는 기쁜 마음으로 차를 준비해 쟁반에 놓고 다시 황 교수의 방으로 가고 있었다. 커브를 돌려고 할 때.
꽈당!!!!!!!!!
누군가와 심하게 부딪혔고 들고 있는 쟁반에 차가 떨어지면서 부딪혔던 상대방에 옷에 엎질러졌다.
“ 어떻해. 정말 죄송합니다. 괜찮으세요? ”
너무나 당황했고 미안했던지 손으로 상대방 남자의 옷에 물기를 털어내려고 노력했다. 계속해서 사과를 하면서 떨어진 쟁반과 깨진 컵을 치우기 시작했다.
“ 옷이 많이 젖었네요. 정말 죄송합니다. 제가 세탁 비 물어 드릴게요. ”
그러면서 자신의 옷 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내서 지갑을 열어 돈을 확인하는 수현.
“ 아. 아니에요. 안 그러셔도 괜찮습니다. "
“ 아니에요 세탁 비 드릴게요. 잠시 만요. ”
지갑을 열었으나 지갑 속에는 달랑 오천 원 권 지페 하나가 전부였다. 이 돈으로는 세탁 비라고 줄 수도 없다는 것을 깨닫고 수현은 자신의 옷 주머니에서 조금은 오래되고 낡은 만 연필 하나를 꺼내어 상대방 남자에 손에 쥐어주고는
“ 제가 지금 오천 원밖에 없거든요. 지금 빨리 가서 돈 찾아 올 테니까 여기 꼭 계세요. 그리고 이건 제가 가장 아끼는 물건이거든요. 혹시나 제가 세탁 비 안 물고 그냥 도망치는 게 걱정되실까봐 담보로 잠시 드리는 거예요. 빨리 다녀올게요.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
그 말을 하고는 있는 힘을 다해서 뛰어 가기 시작했다.
“ 아.. 저기..저기요..괜찮은데..음.. ”
뛰어가는 수현을 바라보는 승우는 기분 좋은 듯한 미소를 지으며
“ 또 만났네. 저 아가씨. 당황하는 모습도 귀엽다. ”
2
열심히 뛰어 현금 출납기까지 갔더니 고장수리중이라 학교 밖에 있는 은행까지 갔다 온 수현이 다시 그 장소로 돌아갔을 때 만 연필을 담보로 맡긴 그 남자는 없고 깨진 컵은 누가 청소했는지 말끔하게 없었고 쟁반만 창가에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 내 만 연필. 그냥 가버리면 어떻해. ”
만 연필을 잃어버렸다는 상실감에 뚜벅뚜벅 걷다가 작은 충돌사고가 나서 그 동안 까맣게 잊어버리고 있었던 일이 생각났다.
‘ 아. 맞아. 난 교수님 심부름 중이었지..아휴..오늘 왜 이렇게 일이 꼬이지.? ’
3
그날 이후로 수현은 깊은 생각에 빠졌다. 수현이 그 남자에게 담보로 맡긴 만 연필은 다른 사람들이 볼 때는 오래되고 낡은 만 연필처럼 보이겠지만 수현에게는 아주 소중한 물건이기에.. 수현이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에 입학하던 날 지금은 돌아가신 아버지가 수현에게 입학선물로 주신 것이니 소중하지 않을 수 없다.
세월이 지나서 지금은 사용하기는 힘들지만 아버지의 유품이라는 생각에 항상 몸에 지니고 다니던 물건인데 왜 하필 그 때 지갑 속에 돈이 오 천원밖에 없었던 것인지. 왜 하필 그 때 옷 주머니 속에 만 열필 밖에 없었던 것인지, 아무리 미안하다고 해도 그렇지 만 연필을 담보로 처음 본 사람한테 담보로 맡길 생각을 할 수가 있었던 것인지...
‘ 어디를 가다가도 다시 한 번 만나면 한 번에 알아 볼 수 있을 텐데. 그나저나 어디 가서 찾지 그 사람을? 우리학교 사람인 것 같기는 한데 무슨 과인지도 모르고 이름도 모르는데 무슨 수로 찾지? ’
4
경미와 나란히 앉아 점심을 먹고 있는 수현. 그러나 수현은 어딘가 불안해 보이고 주위를 계속해서 두리번거린다. 마치 누구라도 찾는 사람처럼. 의아한 표정으로 경미가 뚤어 져라 보니 그제 서야 뜨거운 경미의 시선을 느꼈는지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다시 반찬을 집어 드는 수현. 이틀 전부터 수현이 예전과 같지 않다는 것을 느낀 경미는 수현이 무슨 일인지 자신에게 말해주길 내심 기다리고 있었으나 수현은 끝내 오늘 수업이 끝나기까지 말해주지 않았다.
“ 야. 최수현. 너 나한테 뭐 할 말 없어? ”
“ 어? 할말? 무슨 말? ”
“ 시치미 떼는 거야.. 아니면 정말 할 말이 없는 거야 ? ”
“ 시치미를 떼다니? 뭘? ”
“ 내가 잘못 짚은 건가? 요즘 너 뭔가 이상한데. ”
“ 이상해? 아.. 요즘 고민거리가 있기는 한데...에휴... ”
“ 거봐. 너 그런 거 있을 줄 알았어. 내 눈 은 못 속인다니까. 뭔데? 어서 말해봐 ”
이틀 전에 있었던 작은 사고에 대해 설명해 주자 경미가 심각한 표정을 하고는 수현의 이마를 자신의 손으로 짚어 본다.
“ 경미 너 뭐 하는 거야? ”
“ 열이 있나 확인해 보려구. ”
“ 나 열어 없어. 아프지도 않는데 열이 왜 있어? ”
“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너의 그 소중한 만 연필을 처음 보는 남자한테.. 그것도 담보로 맡겨? 고등학교 때부터 널 봐왔지만 그 만 연필하고 너는 일심동체였잖아. 항상 몸에 지니고 다니던 물건을 4년 지기 단짝 친구인 나한테도 안 맡기던 네가 처음 본 사람한테 맡겼다는 건 보통 일이 아니지. 음... 이거 냄새가 나는데? ”
“ 냄새? 무슨 냄새? ”
“ 너.. 혹시 그 남자한테 첫 눈에 뿅 간 거 아니야? ”
“ 뭐 어~? 말도 안 돼 ”
“ 농담으로 한 말인데 왜 이렇게 강하게 반응해? 이 거 이 거 정말 그런 거 아니고? ”
“ 아니라니까...”
그렇다. 정말 이상한 일이다. 가장 친한 경미에게도 지금까지 만 연필을 맡겨 본 적 조차 없었고 아버지가 돌아가신 이후로 항상 몸에 지니고 다녔던 물건이었는데 아무리 그 상황에서 당황하고 있었다고 해도 이건 수현 자신도 이해가 안 가는 부분 이었다.
그 날 이후로 경미와 수현은 시간만 나면 학생 식당이며 학생 회관이며 전교생이 모이는 채플 시간에도 지금껏 관심도 없었던 남학생들의 얼굴을 유심히 살피고 다녔고 이름 모를 남정네를 찾아 다녔다. 그러나 우리학교 학생인 것은 분명하지만 무슨 과인지 몇 학년인지 이름은 뭔지 전혀 모르는 상황에서 사람을 찾기란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다. 평소 둘이 만나면 하는 일상적인 수다는 사라지고 어느새 만 연필을 담보로 가지고 사라져버린 남자의 대한 주제로 대화는 이루어졌고 수현과 경미 사이에서는 이름 모를 그 남정네를 [만 연필] 이라고 임의대로 불렀다.
5
노인정 자원봉사를 마치고 집에 돌아온 승우. 현관을 들어서는데 캄캄한 집안의 부엌만 유독 불이 환하다. 아마도 승우의 아버지인 한기준이 약주를 하고 있으리라. 부엌으로 들어서려는 순간 아버지의 뒷모습이 안쓰럽게 느껴지는 승우. 어렸을 때는 그렇게 커 보일 수가 없었던 아버지의 어깨였지만 언제 부터인가 커 보이기만 하던 아버지의 어깨가 작아 보이기 시작했다.
“ 아버지 . 다녀왔습니다. ”
“ 어 그래.. 왔냐,, 한잔 할 테냐 ? ”
“ 네.. 저도 한 잔 주세요. ”
“ 어머니 기일 다가와서 마음이 외로우시죠? ”
“ 이제 몇 칠 안 남았구나. 너희 엄마 참 고왔는데.. ”
“ 맞아요. 세상에서 제일 고운 분이셨어요. ”
“ 기억 나냐? 네 엄마 얼굴. ”
“ 기억나죠. 어떻게 잊겠어요. 보고 싶을 때마다 사진도 보는데요. ”
“ 그래...그래야지. 그래야지..암... ”
“ 내가 네 엄마에게 너무 무심했어. 성공해야 한다는 생각이 너무 커서 그 때 내 눈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었다. 네 엄마조차.. 우선 내가 성공하고 싶었고 내 가족이 잘 살고 내 자식들이 크게 성공하도록 하는 게 내 목적이었으니 말이다. 그렇게 외롭게 지낸 네 엄마를 떠나보내고도 네 엄마에겐 미안한 말이지만 나는 멈추고 싶지가 않구나. 너희가 잘 되면 네 엄마도 날 용서해주고 이해해줄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위안을 얻는 거다. 하..하...하.. ”
“ 아버지.... 어머닌 아버지를 이해하고 계실 겁니다. 아버지 저 이만 올라가 볼게요. 약주 조금만 하시고 주무세요. ”
“ 그래.. 피곤 할 텐데 쉬어라. ”
승우는 잘 안다. 승우가 6살 때 돌아가신 어머니의 기일이 돌아 올 때 마다 힘들어 하시는 아버지는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에도 어머니를 잊지 못하고 계신다는 것을. 승우 자신이 옆에서 위로해 드리는 것 보다 혼자서 돌아가신 어머니를 추억하기를 더 원하신다는 것을.
부엌에서 나와 자신의 방으로 올라와 외투를 벗어 옷걸이에 걸고는 책상 앞에 앉는다. 그리고는 책상 앞에 높여 있는 어머니의 사진이 담긴 액자를 들어 어루만진다. 한참을 그렇게 사진을 바라보고만 있는 승우. 씻기 위해 화장실로 가려고 일어서는데 승우의 몸과 부딪혀 무언가 떨어지는 소리. 소리가 나는 쪽을 보고 몸을 숙여 잡는다. 만 연필이다. 만 연필을 보는 순간. 잊고 있었던 작은 사건 하나가 생각난다. 만 연필을 보면서 기분 좋은 미소를 짓고는 외투 주머니 속에 넣는다.
‘ 소중한 거라고 했는데 내가 너무 오래 보관했군. ’
6
강의가 유난히 많이 잡힌 목요일 오후 . 약간은 지친 듯한 얼굴의 수현과 경미가 강의실을 나온다. 벌써 일주일째다. 만 연필을 담보로 들고 꽁꽁 어디론가 숨어버린 그 남자의 행방을 찾지 못한지. 그래서 그런지 수현의 얼굴에는 생기가 없어 보인다.
“ 오늘도 하루가 거의 가고 있네. 내일도 빨리 올 텐데.. 내일은 꼭 찾을 수 있을 거야. 이제 커피숍 가는 거지? ”
“ 응...... ”
“ 기운 다 빠진 소리다. 진짜 그 만 연필은 어디로 숨어버린 거니? 웬만하면 한번은 마주 칠텐데... 진짜 징하다.. 징해.. ”
“ 경미야 나갈게.... ”
“ 그래 내일 보자. ”
7
어깨가 축 쳐진 체로 오후 아르바이트 장소인 커피 숍 문을 열고 들어오는 수현. 수현을 보자 반가운 듯 달려오는 커피숍 사장님. 수현에게 앞치마를 건네며.
“ 아이고 왔네. 엄청 기다렸어. ”
“ 네? 아직 시간 남았는데요? 늦은 거 아닌데. ”
“ 알지~ 내가 지금 급하게 은행가서 처리해야 할 게 있어서 전화 했더니 전화기가 꺼져 있더라고. 그래서 넋 놓고 무작정 기다렸어. ”
“ 아~ 제가 충전한다는 게..시간이 없어서 못했거든요. 다녀오세요. ”
사장님이 건네고 간 앞치마를 걸치고 카운터에서 일하는 수현. 손님이 오면 주문 받고 서빙하고 오늘은 다른 날 보다 손님이 많아서 이리저리 정신없이 불려 다니는 수현. 조금은 한가해 진 시간이라 카운터 의자에 않아 얼굴에 턱을 괴고 생각에 빠졌다. 그 남정네.. 만 연필... 도대체 어리로 사라진 걸까? 땅으로? 하늘로? 에휴.....
수현이 생각에 빠져있는 동안 커피숍 문을 열고 또 한 팀의 손님들이 들어왔지만 문소리를 듣지 못한 듯하다. 평소 같았으면 문 열리는 소리를 듣고 그 누구보다도 더 빨리 문 쪽으로 시선을 돌리고 “어서 오세요. ” 라고 상량하게 인사했을 수현인데 잠자코 앉아 무관심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토록 찾던 만 연필을 담보로 가져간 남정네가 나타났는데도 말이다.
항상 매번 수현 보다 승우가 수현을 먼저 발견하고 보게 된다. 카운터에서 턱을 괴고 무슨 생각을 그렇게 골똘히 하는지 손님이 왔는데도 주문 받으러 안 오는 수현을 유심히 지켜보는 승우. 승우와 동행한 친구 민섭이 마음이 급했는지 주문 벨을 눌렀다.
띵 동..
그러나 수현은 여전히 반응이 없다. 성격 급한 민섭이 다시 한 번 주문 벨을 눌렀으나 여전히 반응이 없자 난감해 하는 민섭. 그 모습을 지켜보던 다른 테이블에 손님이 안 되겠는지 수현에게로 가서 말해준다. 그제 서야 정신 차리고 주위를 둘러보는 수현. 자신을 뚤어 져라 보고 있는 한 남자를 발견하고는 저쪽이구나 하고 주문 판을 들고 테이블로 향한다.
“ 손님. 죄송합니다. 주문하시겠어요? ”
“ 아. 괜찮습니다. 아..저는 봉숭아 아이스티 주시구요. 너는 뭘 로 할래? ”
민섭에게로 향해 있던 수현의 시선이 반대편에 앉아 있는 사람에게로 시선이 고정되고.
“ 음..난 뭘 로 할까? 난 그냥. 커..”
“ 어? 만 연필! ”
일주일간 헤매고 여기저기 찾아 다녔던 사람을 찾았다는 기쁨과 동시에 만 연필도 되찾았다는 기쁨이 너무 컸는지 큰 소리로 외쳤고 커피 숍 안에 있던 사람들의 시선이 한 테이블로 고정되었다. 손가락으로는 승우를 가리키며 놀란 토끼 눈을 하고는 한 참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무슨 영문인지 모르는 민섭이 더 당황한 눈치였다.
“ 아니..이봐요 아가씨? ”
민섭이 말을 해도 들리지 않았다. 수현에게는 오직 만 연필밖에 눈에 뵈는 게 없었으니까.
“ 내 만 연필 어딨어요? 그 날 그렇게 가버리면 어떻해요? 지금 가지고 있어요? ”
“ 저기.. 진정해요. 목소리가 좀 컸던 것 같은데. ”
승우는 수현에게 진정하라며 주위를 둘러보라는 손짓을 했다. 주위를 둘러보는 수현. 작지 않은 커피숍 안에 손님들이 모두 이쪽을 ...아니 자신을 보고 있었다. 순간 얼굴이 달아오르는 것을 느낄 수 있었고 순식간에 얼굴이 사과처럼 빨개져버린 수현. 이 순간을 어떻게 무마시켜야 할지 난감했던 수현은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자신을 향하고 있는 손님들을 향해 웃어 보였다. 고개를 약간 숙이며 시끄럽게 해서 죄송하다는 표현을 몸으로 대신 했다. 그리고 다짜고짜 승우의 팔을 잡아끌고 커피숍 밖으로 나갔다.
“ 주세요. 내 만 연필. ”
“ 저기... ”
“ 제가 그날 그 쪽한테 실례를 한건 죄송스럽게 생각하거든요? 제가 분명히 말씀 드렸잖아요. 소중한 물건이니까 잠시만 담보로 맡긴 다구요. 말도 없이 그냥 가버리면 어떻해요? ”
“ 저기..저기요.. ”
“ 저기 뭐요? ”
“ 저기.. 이 팔 좀.. 풀러주시면...”
커피숍 안에서 승우를 잡아 끌로 나올 때 그 모습이었다. 적어도 5분은 이 남자의 손목을 붙잡고 있었다는 것이다. 순간 화들짝 달아오르는 얼굴을 숨기려고 손을 뿌리치고 뒤로 물러 선 수현.
“ 아..그..그건... 음..음..”
당황한 수현은 헛기침을 하고 그 모습을 지켜보는 승우는 이 여자가 재미있기만 하다.
“ 왜 웃어요? ”
“ 아..아니요..그냥. 헤헤..”
“ 암튼.. 주세요. 만 연필. ”
“ 아~ 만 연필이요..어떻 하죠? ”
“ 왜요? 설마..버렸어요? ”
“ 아..아니요. 그런 건 아니 구요. 지금 저한테 없어요. 집에 있는데. ”
“ 에 휴.. 다행이다. 난 또 버린 줄 알았네. 여기서 잠시만 기다리세요. ”
그리고는 다시 커피숍 안으로 들어가는 수현. 이내 다시 나오는데 수현의 손에는 종이와 펜이 하나 들려 있다.
“여기 10000원이요. 그리고 이거요. ”
“이건 뭐예요? ”
“ 내가 그쪽 찾느라고 얼마나 고생 했는 줄 알아요? 무슨 과인지 몇 학년인지 이름은 뭔지.
그 종이에 적으시라구요!“
“아~~ 네..”
종이에 학과 학년 이름 그리고 연락처까지 적어주는 승우. 종이를 수현에게 건넨다.
“ 연락처도 적으셨네요? 머...내일 제가 찾으러 갈게요. 아~ 그리고 저번엔 정말 미안했습니다. 제가 시간을 너무 많이 뺏었네요. 즐거운 시간 되세요. ”
그리고 매정하게 뒤돌아서 커피숍 안으로 들어가는 수현을 승우는 잡아서 이름이라도 물어보고 싶었으나 꾹 참았다. 이제 겨우 마음이 진정 된 것 같은데 엉뚱하게 이름 물어봤다가는 왠지 저 여자 단번에 퉁명스럽게 변해 버릴까봐서..
‘ 우연히 만난 게 오늘이 세 번째.... 이것도 인연인가? 풋.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