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뜨자마자 기분 나쁠 정도고 느껴지는 두통이 반갑지 않은 수현은 주위를 두리번거린다. 무심코 시간을 보니 11시가 조금 넘어가고 있었다. 뜨 악~ 지각이다. 수현의 인생의 지각이라는 단어는 허용할 수 없었다. 그런데 지각이라니. 허겁지겁 화장실로 가서 세안을 하고 양치질을 하는 수현. 그 때 전화 벨 소리가 울린다. 경미일 것이다. 지각을 했으니 분명 걱정이 돼서 전화 했으리라. 칫솔을 입에 물고 있는 체로 전화기를 열었는데 모르는 번호다. 누구지? 저장 안 된 번호네?
“ 여..여복세오 ”
“ 여보세요? ”
“ 네.. 마씁하세오. ”
“ 수현씨? 목소리가 왜 그래요? ”
수현씨? 나한테 수현씨라고 부르는 사람이 누가 있더라? 아~하~.
“ 저기.. 잠시마오. ”
어제 맥주 반잔을 마시고도 인사불성이 돼서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했던 수현이 걱정 되서 오늘 아침에만 벌써 세 번째 전화를 하는 거였는데 잠을 자고 있었는지 두 번째까지 신호만 가다가 세 번째 통화를 눌렀는데 받아서 반가운 승우. 그러나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하는 수현이 이상해 보였다. 무슨 일이 있는 것일까. 조금 시간이 흐른 뒤 목소리를 가다듬는 소리가 조그맣게 들려왔다.
“ 여. 여보세요? 누구세요? ”
“ 아~ 한승우 입니다. ”
“ 아.. 저기 죄송한데요. 제가 지금 상당히 바쁘거든요 지각을 해서 빨리 준비하고 나가야 하는데. ”
수현은 오늘이 대학생들의 공식 공휴일인 토요일이라는 것을 모르고 있는 듯하다.
“ 저기 수현씨. 오늘 토요일인데요. ”
“ 그래요 토요일. 토요일이니까 학교 가야 하는데 늦... 뭐라 구요? ”
“ 오늘은 토요일이라고요. 더 쉽게 말하면 학교 안가는 날인데요. ”
“ 아~ 그렇군. 괜히 겁먹었네. ”
“ 아까는 목소리가 왜 그랬어요? 무슨 일 있어요? ”
“ 아~ 양치질하고 있던 중이었어요. 타이밍 한번 좋으시네요. 한승우씨~ ”
빠르게 움직여 준비하던 수현은 갑자기 김빠진 얼굴을 하고는 침대에 털썩 앉았다. 오늘이 토요일이면 어제는 금요일이었겠군. 가만.. 금요일? 나이트?
“ 저기요. 수현씨? 전화 끊은 건 아니죠? ”
“ 네? 아..네.. ”
“ 속은 좀 괜찮아요? 아침 아직 안 먹었죠? ”
“ 속이 괜찮다니.. 무슨 말이에요? ”
“ 술을 먹었으면 해장을 해야죠. 지금 수현씨 집으로 가고 있는 중이니까 20분 뒤에 집 앞으로 나와요. 20분 그거 금방 갑니다. ”
“ 뭐라 구요? 우리 집에 온다니.. 여..여보세요? 여보세요? 끊었네? 뭐야 이 사람... ”
정말 이 남자 우리 집에 온다는 말인가? 에이 농담이겠지. 가만 우리 집은 어떻게 알고? 내가 술 마신 건 또 어떻게 알아? 한승우 그 사람. 내 뒷조사 하고 다니는 건가?
별 생각이 다 드는 수현. 오랜만에 운동이나 해보려고 트레이닝복으로 갈아입고 많은 계단을 내려와 대문을 여는 순간.
“ 아~ 깜짝이야. ”
“ 왜 그렇게 놀라요? ”
“ 아휴.. 정말 온다는 거였어요? ”
“ 네~ 20분 뒤면 집 앞으로 도착한다고 말했잖아요. 운동가는 복장이네요? ”
“ 진짜 올 줄 몰랐죠. 농담인 줄 알았는데. 아니. 저기. 혹시 내 뒷조사 하고 다녀요? ”
“ 네? 뒷조사요? ”
“ 그게 아니면 어떻게 그렇게 나에 대해 잘 알고 있냐 구요. ”
“ 푸하하하하하하. 난 또 뭐라고. 머.. 뒷조사라고 해두죠. 배고파요 밥 먹으러 가요. ”
자연스럽게 수연의 어깨의 두 손을 올리고 뒤에서 수현을 밀어 뛰어간다. 수현은 아랑곳 하지 않고 뒷산으로 열심히 뛰기 시작했다. 승우는 수현을 만난다는 이유로 멋있게 차려 입고 왔다면 고생했을 거라는 생각을 하니 지금 자신이 입고 있는 간단한 케쥬얼이 마음에 들었다. 운동도 같이 하게 될 줄을 몰랐으니까. 생각보다 수현의 체력은 대단했다. 느리지 않은 속도고 일정하게 ..그리고 오랜 시간 뛰는 모습을 보면서 그 동안 볼 수 없었던 건강미를 느낄 수 있었다. 너무 적극적인데다가 자신에게 유독 관심을 보이니까 처음에는 부담스러워서 피하고 싶었는데 무작정 피하고 미워하기에는 나쁜 사람 같지 않았다. 편한 친구가 되면 좋겠다라는 생각을 하면서. 1시간정도 운동을 하고 내려와 음식점을 찾는 승우.
“ 어? 저기가 좋겠다. 어서 가요. ”
이번에도 자연스럽게 수현의 팔을 잡아끄는 승우의 행동에 살짝 놀랐지만 금 새 적응하는 것 같았다.
“ 음.. 뭘 로 먹을까... 선짓국, 콩나물국, 북어 국 뭐가 좋을까? 뭐로 할래요? ”
“ 난 콩나물국. ”
“ 그럼 난. 북어 국 해야겠다. 다른 거 시켜서 나눠 먹어요. 우리~ ”
“ 네? 안돼요. 그건. ”
“ 에이 너무 욕심 많다. 혼자 다 먹으면 살찌는데. ”
“ 누..누가 다 먹는데요? 북어 국 못 먹는단 말이에요. 난.. ”
“ 아~ 알았어요. 선짓국 먹을게요. 아주머니 여기 콩나물국 하고 선짓국하나요. 배가 많이 고프거든요, 최대한 빨리 해주세요. ”
아침에 처음 봤을 때부터 싱글 벙글 인 승우가 신기하다는 듯이 빤히 쳐다보는 수현.
“ 왜 그렇게 빤히 보실까? 1번 내 얼굴에 뭐가 묻었다. 2번 내 얼굴이 너무 잘생겨서.~”
2번이라는 말을 듣고는 물을 먹고 있던 수현이 먹던 물을 내 뿜었다. 앞에 있는 승우에게로
“ 어우~ 미안해요. 어떻해.”
“ 이야~ 너무한 거 아닌가? 난 농담이었는데 그렇게 비웃고. 자기 얼굴 생각은 안 해요? ”
“ 뭐라고요? ”
“ 하하하하. 경미씨가 농담을 진담으로 받아들인다더니 정말 그런가보네. ”
“ 아~~ 그 뒷조사의 배경이 경미였군요. 어쩐지 나에 대해 너무 잘 안다 했어요. ”
그렇게 승우와 수현이 티격태격 하고 있는 동안에 주문했던 해장국이 나왔고 휴지를 먼저 깔고 숟가락, 젓가락을 수현의 것부터 놓아주는 승우. 그 모습을 보는 수현. 배고팠는지 열심히 먹고 있는데 깍두기를 수현이 들고 있던 숟가락에 올려주는 승우. 수현이 보고 놀라자 다시 먹기에 바쁜 척 하는 승우. 그런 승우의 모습을 보면서 웃음이 나는 수현.
운동도 열심히 했겠다. 맛있는 해장국으로 속도 달랬겠다. 가벼운 발걸음으로 걷는 두 사람. 처음에는 둘의 사이가 멀어서 같은 일행이라고 생각 할 수 없었지만 이제는 비교적 가까워진 두 사람. 자석이 끌어당기는 것일까?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에 걷는 폭의 사이가 좁아지고 걸을 때마다 움직이는 손과 손이 부딪칠 때마다 얼굴이 붉어지는 두 사람.
수현의 집 앞까지 도착했고 간단한 인사를 주고받은 뒤 승우는 뒤 돌아서 가려는 듯 하더니 역시나 다시 뒤 돌아서서 수현을 본다.
“ 지금 이 순간부터는 널 더 편하게 대 할 꺼다. 이따가 전화 할게. 수현아~ ”
그리고는 떨리고 쑥스러웠던 모습을 감추려 빠르게 뛰어 모습을 감췄다. 갑작스런 승우의 말투의 놀람감이 있었지만 ‘수현씨’ 보다는 ‘수현아’ 라는 호칭이 맘에 들었다.
2
수업이 끝나자 승우의 자리로 다가오는 민섭. 승우에 어깨의 손을 올린다. 빽빽하게 필기 되어 있는 책을 승우가 덮으려고 하자 재빠르게 움직여 승우에게서 책을 가져온다. 승우가 놀라서 민섭을 바라보자 천진난만한 얼굴로 승우를 바라보는 민섭.
“ 오늘 이 형님이 너무 피곤하셔서 필기 못했거든. 하하하 ”
그 말을 듣고 피씩 웃는 승우. 잊고 있었던 무엇인가 생각난 듯 다급한 목소리로
“ 야. 우리 금요일 날 발표수업 우리차례 아니야? 맞지? ”
“ 금요일? 아~ 맞다. 저번 주에 형진이네가 했으니까 우리차례 맞네. ”
“ 너 준비는 하고 있었어? ”
“ 어떻 하냐? 아무것도 못했는데. ”
“ 나도 하나도 못했는데.. 요즘 네가 정신이 딴 데 가있으니 내가 이해해주지.. 푸하하하 ”
“ 삼일밖에 안 남았어.. 오늘부터 학교에 남아서 준비해야겠다. ”
“ 에 휴..내 팔자야. 과제 없는 세상에서 살고 싶다~ ”
수업이 끝난 뒤에도 민섭과 승우는 학교 도서관에서 관련 도서를 찾으면서 발표수업 준비에 한창이다. 마음 같아서는 수현이 일하고 있는 커피숍에 가고 싶지만 모든 자료가 도서관에 있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무언가에 집중하고 있을 때는 평소의 장난 끼 가득한 민섭과 승우가 아니다. 모범생임을 알려주는 듯 표정이 신중하고 진지하기만 하다. 그렇게 금요일 날 있을 발표 수업 때문에 정신없이 바빴던 승우는 수현의 얼굴을 보기 힘들었다. 요즘 하루도 거르지 않고 오후가 되면 커피숍으로 출 퇴근을 하던 승우가 이틀 째 안 보이는 것뿐인데 벌써 수현은 승우가 걱정된다. 처음엔 바쁜 일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틀이 지나도 나타나지 않자 무슨 일이 생긴 것은 아닐까. 걱정되기 시작했다. 물론 승우에게 연락할 길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었다. 이미 핸드폰 번호를 알고 있었으니까. 그러나 항상 먼저 전화하고 먼저 찾아오던 승우에게 자신이 먼저 전화한다는 것이 어색하고 이상하게 생각할 까봐서 무작정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일 할 때는 핸드폰을 가방에 넣어 놓는데 이틀 동안은 자신이 입고 있는 옷 주머니에 항상 지니고 다녔다. 혹시나 연락이 올 때 못 받을까봐서. 겨우 이틀 못 본 것인데.
“ 내가 왜 그 사람 생각을 하고 있는 거지? 오던 안 오던 나하고는 상관없는 일이잖아? 최수현. 정신 차려. 너 요즘 이상해.~ ”
자신의 얼굴을 손바닥으로 살짝 치고 그래도 생각이 나는지 고개를 도리도리 여러 번 돌린다. 지금 시계 바늘은 9시 56분을 지나치고 있었다. 그 때 문 열리는 경쾌한 종소리가 들렸고 문을 열고 승우가 들어 왔다. 눈으로 승우를 확인하고는 저절로 웃음이 나오는 걸 억지로 참으려고 이를 악물고 어색한 표정으로 승우를 바라보는 수현. 초롱초롱 하게 자신을 쳐다보는 수현을 보자 그렇게 보고 싶었던 수현이었지만 장난 끼가 발동했다.
“ 수현아. 내가 그렇게 보고 싶었어? ”
수현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이 남자. 지금 나한테 뭐라고 한 거야? “
“ 네? ”
“ 내가 들어오니까 수현이 네 눈이 초롱초롱해졌는데? ”
“ 무..무슨 소리에요? 아유.. 참.. 내가 언제요? ” “ 왜 얼굴은 빨개지고 그래? ”
자신의 얼굴이 붉어지고 있음을 수현 자신도 느낄 수 있었다. 수현은 당황하면 얼굴색이 금 새 붉게 변해버리는 체질이라.. 민망했는지 손으로 얼굴을 만지는 수현을 보면서 마냥 귀엽기만 한 승우.
“ 하하하. 알바 끝나려면 얼마 안 남았지? ”
“ 네? 네.. 정리하고 가려고요. ”
“ 정리하는 거 내가 도와줄게. 정리 빨리 하고 같이 나가자. ”
“ 안 그러셔도 되는데.. 음.. ”
수현의 말을 듣는 건지 마는 건지 각 테이블을 정리하기 시작한 승우. 매일 이 시간이 되면 혼자 커피 숍 안을 정리하고 청소하던 수현이었는데 남자인 승우가 도와주니 빠른 시간 내에 마칠 수 있었다. 어색하게 버스 정류장으로 걸어가는 두 사람. 그렇게 보고 싶었던 수현을 이틀 동안 못 찾아 왔던 건 시간이 얼마 남지 않는 발표 수업 준비를 하다 보니 시간이 나질 않았다. 내일 발표 수업을 하는 날인데 도저히 안 되겠는지 밤늦게라도 수현을 봐야 겠다는 생각에 커피숍으로 달려온 승우. 그런 승우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수현은 아까부터 별 말이 없었다. 수현 역시 기다렸던 승우가 와서 반가웠지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떠오르지 않아 대화 할 주제를 찾고 있던 중이었다.
“ 어? 버스 온다. ”
“ 어... 오네? 저 갈게요. 안녕히 가세요. ”
라고 말하고 수현은 버스에 몸을 실었지만 사실 무슨 대화라도 더 하고 싶었는데 생각보다 빨리 도착한 버스가 얄밉기만 했다. 버스에 탑승해서 자리를 잡아 손잡이로 지탱하고 서 있는데 바로 그 뒤를 따라 승우가 탑승하더니 수현의 옆에 자리를 잡는 것이 아닌가. 당황하는 수현.
“ 어? 집이 이 방향이었어요? ”
“ 아니. 이 방향 아닌데. ? ”
“ 근데 왜 탔어요? ”
“ 밤길이잖아. 너 혼자 어떻게 보내. ”
자신을 챙기고 배려하는 승우에 말 한마디에 얼굴이 화끈거리는 것을 숨기려 고개를 잠시 창가 쪽으로 돌렸다가 잠시 후에 다시 승우를 보는 수현. 그 때 버스가 급정거 하면서 승우에 품으로 수현이 안겼다.
쿵닥..쿵닥...
당황한 수현은 이내 빠르게 다시 몸을 지탱해 세웠지만 아까부터 뛰기 시작한 수현의 심장은 좀처럼 멈추지 않는다. 한참을 대화 없이 달리는 버스 안에서 어색한 두 사람. 그러나 버스 각 정류장에 멈출 때마다 수현은 몸을 지탱하지 못하고 흔들거렸다. 그 모습을 보고 승우는 수현의 팔을 아프지 않게 잡았다. 놀란 토끼 눈으로 승우를 보는 수현.
“ 흔들리잖아. 내가 도착 할 때까지 잡아 줄게. 헤헤. ”
아까부터 뛰는 심장 소리 때문에 당황하고 부끄러운 건 승우도 마찬가지다. 급정거 할 때 갑자기 수현이 자신의 품으로 잠시 들어 왔다간 그 시간에 승우는 시간이 멈추기만은 바랬다. 잠시였지만 느낄 수 있었던 수현의 머리카락에서 나는 샴푸냄새도 좋았고 그렇게까지 가까운 거리로 수현과 있어보기도 처음이었으니.
동네의 도착해서 버스에서 내리는 수현과 승우. 또 다시 벌어진 두 사람과의 거리는 혹여나 아직도 멈추지 않는 서로의 심장소리가 들리지는 않을지 과도한 걱정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이 어색함을 깨어 보고자 이번에는 수현이 먼저 용기를 낸다.
“ 바쁘셨나 봐요? ”
“ 어? 아~ 내일 중요한 발표수업이 있거든. 그거 준비하느라. 하하.. ”
“ 아... 그랬구나. ”
“ 저기 혹시.. 내가 궁금했어? ”
“ 네? 아.... 그게...궁금하긴 했죠. 헤헤.. ”
자신의 안부가 궁금했다고 말해주는 수현을 보자 갑자기 엔돌핀이 마구 쏟는 것을 느꼈다.
수현의 옥탑 방에 거의 도착 할 때 즈음. 수현이 가던 길을 멈췄다.
“ 오늘 데려다 줘서 고마워요. 조심해서 들어가세요. ”
“ 그래... 잘 들어 가구. 잘자. 수현아. ”
“ 네.. ”
승우는 뒤 돌아서 가려고 하는 수현의 팔목을 잡아끌어 자신의 품안으로 수현을 안았다. 승우에 갑작스러운 행동에 놀라서 잠시 머뭇거렸지만 자신을 안고 있는 승우에 팔을 뿌리치려고 하자 더욱 세게 껴안는 승우.
“ 이제는 도망가려고 하지마. 이제는 나도 널 놔주기 싫다. 이렇게 널 내가 볼 수 있는 곳에..내 옆에 있게 하고 싶어. 내 옆에 있어줘 수현아. ”
뿌리치려던 손... 그대로 안겨 있기만 했던 수현의 손이 승우에 허리에 서서히 감싸 안아지기 시작한다. 이렇게 따듯하고 포근했던 품안은 13살 돌아가신 아버지 이후로 처음이었다. 아버지 말고 남자 품에 안겨 본 적도 이번이 처음이었고 작은 체구에 수현의 몸이 다 감싸 질 정도로 승우에 어깨는 넓었고 팔도 길었으며 무엇보다 따듯했다. 한참 동안을 그렇게 서로의 체온을 느끼고 있던 두 사람. 서서히 껴안고 있던 팔을 느슨하게 하되 다 풀지는 않고서는 사랑스러운 눈으로 수현을 바라보는 수현.
“ 수현아. 작은 소원이 하나 있는데 들어 줄래?
“ 소원이요? 뭔데요? ”
“ 오늘 이 시간 이후로 날 편하게 대하기. ”
“ 편하게 대하기? 어떻게 대하는 게.. 편하게 대하는 거죠? ”
“ 우선.. 날 오빠라고 불러줘. 그리고. 지금 내가 하는 것처럼. 더 친근감 있게 존댓말을 사용하지 않는 거야. 해줄 거지? ”
“ 오빠라고 하는 건 어렵지 않은데. 존댓말 대신..반말을 하는 건... 그래도 노력할게요. 편하게~ 알았어...요...? 헤헤.”
“ ... 편하게~ 잘자~ 수현아.”
수현의 이마의 가벼운 키스를 해주고 돌아가는 승우. 서로의 모습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손을 흔들면서 인사하는 두 사람. 세상을 다 얻은 사람처럼 기뻐하는 승우. 이런 거구나. 사랑이라는 게 이런 거구나.
- 5월24일 화요일 -
언제부터였는지..나는 알지 못 합니다.
내 마음이 당신에게 다가가고 있었던 것은..
내 마음이.... 당신 앞에서 뜨거워집니다.
내 심장이.. 뜁니다.
유독 당신 앞에서만 가슴이 답답했고.
안보면 기다려지고 걱정되고
처음엔...몰랐습니다.
왜 마음이 이렇게 답답한 것인지
속이 울렁거리는 것인지
무언가 내 마음에 들어와 숨을 못 쉬게 하고 있는 그 느낌.
그건... 내가 당신을 향에 심장이 뛰기 시작했기 때문인 것을....
3
부스스한 얼굴로 거실로 나와 텔레비전을 켜는 수현은 채널을 계속 바꿔 보지만 재미난 프로가 방영되지 않자 다시 전원을 커버린다. 텔레비전 옆에 있는 라디오를 키고는 부엌으로 향한다. 냉장고 문을 열고 안을 확인하는데 너무도 썰렁한 냉장고 안을 보고는 잠시 고민한다. 김치와 각종 채소류를 꺼내고 저번에 남겨둔 햄을 꺼내 요리를 시작한다. 요리라고 해봐야 김치 볶음밥이지만 반찬도 마땅치 않고 입맛도 없을 때는 그래도 괜찮은 식단이었다. 부모님이 돌아가신 뒤로 모든 끼니를 혼자 챙겨 먹어야 했기 때문에 음식을 한 번도 직접 해보지 않았던 수현은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요리를 시작하게 되었다. 집에서 밥을 챙겨 먹어야 할 일이 별로 없기는 했으나 이렇게 챙겨 먹을 때는 거의 볶음밥을 해 먹곤 했었다. 음식 솜씨가 전혀 없어서인지 도무지 정체불명의 음식 맛이 나는 시행착오를 경험하면서 이제는 제법 맛있는 볶음밥을 만들 수 있었다. 아주 자신 있게 볶음밥을 만들고 있는 수현. 볶음밥이 완성되자 식탁에 앉아 음식을 먹으려는 찰나에 수현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 누구지? 이 시간에.. 누구세요? ”
“ 나야. 승우. 문 열어줘. ”
“ 누...누구라고요? ”
“ 승우.. 한승우라고. ”
한승우라는 말에 놀라서 갑자기 부산해지는 수현은 벽에 걸려있는 거울을 본다. 머리는 부스스해가지고 아침이라 눈은 부을 대로 부어버린 상태이며 옷은 잠옷 그대로였다. 자신의 모습을 보고 당황하고는 방으로 달려간다. 빠르게 옷을 갑아 입고 머리를 풀러 다시 묶고는 다시 벽에 걸려있는 거울을 통해 자신의 모습을 확인하고는 조심스럽게 문을 연다.
“ 아...안녕하세요..? 헤헤헤 ”
현관문을 활짝 여는 것도 아니고 살짝 열어서 고개만 내미는 수현을 보고는 웃음이 나오는 승우는 당황하는 표정을 잠시였지만 놓치지 않고 볼 수 있었다.
“ 잘 잤어? 밥은 먹었고? ”
“ 아.... 밥이요? 지..지금 먹으려고요. ”
“ 아~ 잘됐다. 그럼 같이 먹자. ”
“ 네? 아... 저.. 그게.. ”
수현이 대답도 하기 전에 문을 열고 집으로 들어가는 승우.
“ 어? 이 냄새 무슨 냄새야? 음식 냄새 같은데? ”
“ 아..그거요? 아침 밥 냄새요..하..하.. ”
“ 아~~ 그럼 나도 한 그릇 부탁해~ ”
부엌으로 들어가 식탁을 확인하던 승우가 큰 목소리로 소리친다.
“ 이야~ 김치 볶음밥이네? 맛있겠다. 근데. 내가 먹을 것도 있나? ”
갑작스런 승우의 방문에도 당황스러운데 아침밥까지 달라는 이 남자의 배짱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1인분만 만들었기 때문에 승우가 먹을 음식이 있을리 없었다. 조심스레 밥통을 열어 확인해보지만 마지막 남은 밥으로 만든 볶음밥이었기 때문에 텅 비어 있었다. 다시 냉장고에 찬밥이라도 있는지 확인해보지만 역시나 너무도 텅 빈 냉장고였다. 혹여나 승우가 텅 빈 냉장고를 보게 될까봐 살짝 열어 확인하고는 다시 닫아버리는 수현.
“ 하..하.. 이거라도 같이 나눠 먹을까요? 지금은 이것 밖에는 없네요. ”
“ 그래~ 이야~ 맛있겠다. ”
식탁에 앉아 볶음밥을 바라보면서 입맛을 다시는 승우를 보면서 그릇과 수저를 꺼내 조금만 덜어 자신 앞에 놓고 원래 그릇을 승우에게 건넨다.
“ 드세요. ”
“ 응. 잘 먹을게. ”
너무 맛있게 먹는 것을 보니 괜히 승우가 고맙다는 생각이 든다. 가끔 너무 엉뚱하게 자신을 놀래킬 때도 많지만 이런 깜짝 등장이 기분 나쁘지만 않았고 오히려 혼자 쓸쓸하게 먹는 것보다 외롭지 않아서 좋았다. 양이 적기도 했지만 빠르게 자신의 분량을 먹고는 물을 마시는 승우는 이제 수현이 먹는 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연애소설)-알약(5)-
*
내 심장이 두근거립니다.
내 심장이 뛰기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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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뜨자마자 기분 나쁠 정도고 느껴지는 두통이 반갑지 않은 수현은 주위를 두리번거린다. 무심코 시간을 보니 11시가 조금 넘어가고 있었다. 뜨 악~ 지각이다. 수현의 인생의 지각이라는 단어는 허용할 수 없었다. 그런데 지각이라니. 허겁지겁 화장실로 가서 세안을 하고 양치질을 하는 수현. 그 때 전화 벨 소리가 울린다. 경미일 것이다. 지각을 했으니 분명 걱정이 돼서 전화 했으리라. 칫솔을 입에 물고 있는 체로 전화기를 열었는데 모르는 번호다. 누구지? 저장 안 된 번호네?
“ 여..여복세오 ”
“ 여보세요? ”
“ 네.. 마씁하세오. ”
“ 수현씨? 목소리가 왜 그래요? ”
수현씨? 나한테 수현씨라고 부르는 사람이 누가 있더라? 아~하~.
“ 저기.. 잠시마오. ”
어제 맥주 반잔을 마시고도 인사불성이 돼서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했던 수현이 걱정 되서 오늘 아침에만 벌써 세 번째 전화를 하는 거였는데 잠을 자고 있었는지 두 번째까지 신호만 가다가 세 번째 통화를 눌렀는데 받아서 반가운 승우. 그러나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하는 수현이 이상해 보였다. 무슨 일이 있는 것일까. 조금 시간이 흐른 뒤 목소리를 가다듬는 소리가 조그맣게 들려왔다.
“ 여. 여보세요? 누구세요? ”
“ 아~ 한승우 입니다. ”
“ 아.. 저기 죄송한데요. 제가 지금 상당히 바쁘거든요 지각을 해서 빨리 준비하고 나가야 하는데. ”
수현은 오늘이 대학생들의 공식 공휴일인 토요일이라는 것을 모르고 있는 듯하다.
“ 저기 수현씨. 오늘 토요일인데요. ”
“ 그래요 토요일. 토요일이니까 학교 가야 하는데 늦... 뭐라 구요? ”
“ 오늘은 토요일이라고요. 더 쉽게 말하면 학교 안가는 날인데요. ”
“ 아~ 그렇군. 괜히 겁먹었네. ”
“ 아까는 목소리가 왜 그랬어요? 무슨 일 있어요? ”
“ 아~ 양치질하고 있던 중이었어요. 타이밍 한번 좋으시네요. 한승우씨~ ”
빠르게 움직여 준비하던 수현은 갑자기 김빠진 얼굴을 하고는 침대에 털썩 앉았다. 오늘이 토요일이면 어제는 금요일이었겠군. 가만.. 금요일? 나이트?
“ 저기요. 수현씨? 전화 끊은 건 아니죠? ”
“ 네? 아..네.. ”
“ 속은 좀 괜찮아요? 아침 아직 안 먹었죠? ”
“ 속이 괜찮다니.. 무슨 말이에요? ”
“ 술을 먹었으면 해장을 해야죠. 지금 수현씨 집으로 가고 있는 중이니까 20분 뒤에 집 앞으로 나와요. 20분 그거 금방 갑니다. ”
“ 뭐라 구요? 우리 집에 온다니.. 여..여보세요? 여보세요? 끊었네? 뭐야 이 사람... ”
정말 이 남자 우리 집에 온다는 말인가? 에이 농담이겠지. 가만 우리 집은 어떻게 알고? 내가 술 마신 건 또 어떻게 알아? 한승우 그 사람. 내 뒷조사 하고 다니는 건가?
별 생각이 다 드는 수현. 오랜만에 운동이나 해보려고 트레이닝복으로 갈아입고 많은 계단을 내려와 대문을 여는 순간.
“ 아~ 깜짝이야. ”
“ 왜 그렇게 놀라요? ”
“ 아휴.. 정말 온다는 거였어요? ”
“ 네~ 20분 뒤면 집 앞으로 도착한다고 말했잖아요. 운동가는 복장이네요? ”
“ 진짜 올 줄 몰랐죠. 농담인 줄 알았는데. 아니. 저기. 혹시 내 뒷조사 하고 다녀요? ”
“ 네? 뒷조사요? ”
“ 그게 아니면 어떻게 그렇게 나에 대해 잘 알고 있냐 구요. ”
“ 푸하하하하하하. 난 또 뭐라고. 머.. 뒷조사라고 해두죠. 배고파요 밥 먹으러 가요. ”
자연스럽게 수연의 어깨의 두 손을 올리고 뒤에서 수현을 밀어 뛰어간다. 수현은 아랑곳 하지 않고 뒷산으로 열심히 뛰기 시작했다. 승우는 수현을 만난다는 이유로 멋있게 차려 입고 왔다면 고생했을 거라는 생각을 하니 지금 자신이 입고 있는 간단한 케쥬얼이 마음에 들었다. 운동도 같이 하게 될 줄을 몰랐으니까. 생각보다 수현의 체력은 대단했다. 느리지 않은 속도고 일정하게 ..그리고 오랜 시간 뛰는 모습을 보면서 그 동안 볼 수 없었던 건강미를 느낄 수 있었다. 너무 적극적인데다가 자신에게 유독 관심을 보이니까 처음에는 부담스러워서 피하고 싶었는데 무작정 피하고 미워하기에는 나쁜 사람 같지 않았다. 편한 친구가 되면 좋겠다라는 생각을 하면서. 1시간정도 운동을 하고 내려와 음식점을 찾는 승우.
“ 어? 저기가 좋겠다. 어서 가요. ”
이번에도 자연스럽게 수현의 팔을 잡아끄는 승우의 행동에 살짝 놀랐지만 금 새 적응하는 것 같았다.
“ 음.. 뭘 로 먹을까... 선짓국, 콩나물국, 북어 국 뭐가 좋을까? 뭐로 할래요? ”
“ 난 콩나물국. ”
“ 그럼 난. 북어 국 해야겠다. 다른 거 시켜서 나눠 먹어요. 우리~ ”
“ 네? 안돼요. 그건. ”
“ 에이 너무 욕심 많다. 혼자 다 먹으면 살찌는데. ”
“ 누..누가 다 먹는데요? 북어 국 못 먹는단 말이에요. 난.. ”
“ 아~ 알았어요. 선짓국 먹을게요. 아주머니 여기 콩나물국 하고 선짓국하나요. 배가 많이 고프거든요, 최대한 빨리 해주세요. ”
아침에 처음 봤을 때부터 싱글 벙글 인 승우가 신기하다는 듯이 빤히 쳐다보는 수현.
“ 왜 그렇게 빤히 보실까? 1번 내 얼굴에 뭐가 묻었다. 2번 내 얼굴이 너무 잘생겨서.~”
2번이라는 말을 듣고는 물을 먹고 있던 수현이 먹던 물을 내 뿜었다. 앞에 있는 승우에게로
“ 어우~ 미안해요. 어떻해.”
“ 이야~ 너무한 거 아닌가? 난 농담이었는데 그렇게 비웃고. 자기 얼굴 생각은 안 해요? ”
“ 뭐라고요? ”
“ 하하하하. 경미씨가 농담을 진담으로 받아들인다더니 정말 그런가보네. ”
“ 아~~ 그 뒷조사의 배경이 경미였군요. 어쩐지 나에 대해 너무 잘 안다 했어요. ”
그렇게 승우와 수현이 티격태격 하고 있는 동안에 주문했던 해장국이 나왔고 휴지를 먼저 깔고 숟가락, 젓가락을 수현의 것부터 놓아주는 승우. 그 모습을 보는 수현. 배고팠는지 열심히 먹고 있는데 깍두기를 수현이 들고 있던 숟가락에 올려주는 승우. 수현이 보고 놀라자 다시 먹기에 바쁜 척 하는 승우. 그런 승우의 모습을 보면서 웃음이 나는 수현.
운동도 열심히 했겠다. 맛있는 해장국으로 속도 달랬겠다. 가벼운 발걸음으로 걷는 두 사람. 처음에는 둘의 사이가 멀어서 같은 일행이라고 생각 할 수 없었지만 이제는 비교적 가까워진 두 사람. 자석이 끌어당기는 것일까?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에 걷는 폭의 사이가 좁아지고 걸을 때마다 움직이는 손과 손이 부딪칠 때마다 얼굴이 붉어지는 두 사람.
수현의 집 앞까지 도착했고 간단한 인사를 주고받은 뒤 승우는 뒤 돌아서 가려는 듯 하더니 역시나 다시 뒤 돌아서서 수현을 본다.
“ 지금 이 순간부터는 널 더 편하게 대 할 꺼다. 이따가 전화 할게. 수현아~ ”
그리고는 떨리고 쑥스러웠던 모습을 감추려 빠르게 뛰어 모습을 감췄다. 갑작스런 승우의 말투의 놀람감이 있었지만 ‘수현씨’ 보다는 ‘수현아’ 라는 호칭이 맘에 들었다.
2
수업이 끝나자 승우의 자리로 다가오는 민섭. 승우에 어깨의 손을 올린다. 빽빽하게 필기 되어 있는 책을 승우가 덮으려고 하자 재빠르게 움직여 승우에게서 책을 가져온다. 승우가 놀라서 민섭을 바라보자 천진난만한 얼굴로 승우를 바라보는 민섭.
“ 오늘 이 형님이 너무 피곤하셔서 필기 못했거든. 하하하 ”
그 말을 듣고 피씩 웃는 승우. 잊고 있었던 무엇인가 생각난 듯 다급한 목소리로
“ 야. 우리 금요일 날 발표수업 우리차례 아니야? 맞지? ”
“ 금요일? 아~ 맞다. 저번 주에 형진이네가 했으니까 우리차례 맞네. ”
“ 너 준비는 하고 있었어? ”
“ 어떻 하냐? 아무것도 못했는데. ”
“ 나도 하나도 못했는데.. 요즘 네가 정신이 딴 데 가있으니 내가 이해해주지.. 푸하하하 ”
“ 삼일밖에 안 남았어.. 오늘부터 학교에 남아서 준비해야겠다. ”
“ 에 휴..내 팔자야. 과제 없는 세상에서 살고 싶다~ ”
수업이 끝난 뒤에도 민섭과 승우는 학교 도서관에서 관련 도서를 찾으면서 발표수업 준비에 한창이다. 마음 같아서는 수현이 일하고 있는 커피숍에 가고 싶지만 모든 자료가 도서관에 있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무언가에 집중하고 있을 때는 평소의 장난 끼 가득한 민섭과 승우가 아니다. 모범생임을 알려주는 듯 표정이 신중하고 진지하기만 하다. 그렇게 금요일 날 있을 발표 수업 때문에 정신없이 바빴던 승우는 수현의 얼굴을 보기 힘들었다. 요즘 하루도 거르지 않고 오후가 되면 커피숍으로 출 퇴근을 하던 승우가 이틀 째 안 보이는 것뿐인데 벌써 수현은 승우가 걱정된다. 처음엔 바쁜 일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틀이 지나도 나타나지 않자 무슨 일이 생긴 것은 아닐까. 걱정되기 시작했다. 물론 승우에게 연락할 길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었다. 이미 핸드폰 번호를 알고 있었으니까. 그러나 항상 먼저 전화하고 먼저 찾아오던 승우에게 자신이 먼저 전화한다는 것이 어색하고 이상하게 생각할 까봐서 무작정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일 할 때는 핸드폰을 가방에 넣어 놓는데 이틀 동안은 자신이 입고 있는 옷 주머니에 항상 지니고 다녔다. 혹시나 연락이 올 때 못 받을까봐서. 겨우 이틀 못 본 것인데.
“ 내가 왜 그 사람 생각을 하고 있는 거지? 오던 안 오던 나하고는 상관없는 일이잖아? 최수현. 정신 차려. 너 요즘 이상해.~ ”
자신의 얼굴을 손바닥으로 살짝 치고 그래도 생각이 나는지 고개를 도리도리 여러 번 돌린다. 지금 시계 바늘은 9시 56분을 지나치고 있었다. 그 때 문 열리는 경쾌한 종소리가 들렸고 문을 열고 승우가 들어 왔다. 눈으로 승우를 확인하고는 저절로 웃음이 나오는 걸 억지로 참으려고 이를 악물고 어색한 표정으로 승우를 바라보는 수현. 초롱초롱 하게 자신을 쳐다보는 수현을 보자 그렇게 보고 싶었던 수현이었지만 장난 끼가 발동했다.
“ 수현아. 내가 그렇게 보고 싶었어? ”
수현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이 남자. 지금 나한테 뭐라고 한 거야? “
“ 네? ”
“ 내가 들어오니까 수현이 네 눈이 초롱초롱해졌는데? ”
“ 무..무슨 소리에요? 아유.. 참.. 내가 언제요? ”
“ 왜 얼굴은 빨개지고 그래? ”
자신의 얼굴이 붉어지고 있음을 수현 자신도 느낄 수 있었다. 수현은 당황하면 얼굴색이 금 새 붉게 변해버리는 체질이라.. 민망했는지 손으로 얼굴을 만지는 수현을 보면서 마냥 귀엽기만 한 승우.
“ 하하하. 알바 끝나려면 얼마 안 남았지? ”
“ 네? 네.. 정리하고 가려고요. ”
“ 정리하는 거 내가 도와줄게. 정리 빨리 하고 같이 나가자. ”
“ 안 그러셔도 되는데.. 음.. ”
수현의 말을 듣는 건지 마는 건지 각 테이블을 정리하기 시작한 승우. 매일 이 시간이 되면 혼자 커피 숍 안을 정리하고 청소하던 수현이었는데 남자인 승우가 도와주니 빠른 시간 내에 마칠 수 있었다. 어색하게 버스 정류장으로 걸어가는 두 사람. 그렇게 보고 싶었던 수현을 이틀 동안 못 찾아 왔던 건 시간이 얼마 남지 않는 발표 수업 준비를 하다 보니 시간이 나질 않았다. 내일 발표 수업을 하는 날인데 도저히 안 되겠는지 밤늦게라도 수현을 봐야 겠다는 생각에 커피숍으로 달려온 승우. 그런 승우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수현은 아까부터 별 말이 없었다. 수현 역시 기다렸던 승우가 와서 반가웠지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떠오르지 않아 대화 할 주제를 찾고 있던 중이었다.
“ 어? 버스 온다. ”
“ 어... 오네? 저 갈게요. 안녕히 가세요. ”
라고 말하고 수현은 버스에 몸을 실었지만 사실 무슨 대화라도 더 하고 싶었는데 생각보다 빨리 도착한 버스가 얄밉기만 했다. 버스에 탑승해서 자리를 잡아 손잡이로 지탱하고 서 있는데 바로 그 뒤를 따라 승우가 탑승하더니 수현의 옆에 자리를 잡는 것이 아닌가. 당황하는 수현.
“ 어? 집이 이 방향이었어요? ”
“ 아니. 이 방향 아닌데. ? ”
“ 근데 왜 탔어요? ”
“ 밤길이잖아. 너 혼자 어떻게 보내. ”
자신을 챙기고 배려하는 승우에 말 한마디에 얼굴이 화끈거리는 것을 숨기려 고개를 잠시 창가 쪽으로 돌렸다가 잠시 후에 다시 승우를 보는 수현. 그 때 버스가 급정거 하면서 승우에 품으로 수현이 안겼다.
쿵닥..쿵닥...
당황한 수현은 이내 빠르게 다시 몸을 지탱해 세웠지만 아까부터 뛰기 시작한 수현의 심장은 좀처럼 멈추지 않는다. 한참을 대화 없이 달리는 버스 안에서 어색한 두 사람. 그러나 버스 각 정류장에 멈출 때마다 수현은 몸을 지탱하지 못하고 흔들거렸다. 그 모습을 보고 승우는 수현의 팔을 아프지 않게 잡았다. 놀란 토끼 눈으로 승우를 보는 수현.
“ 흔들리잖아. 내가 도착 할 때까지 잡아 줄게. 헤헤. ”
아까부터 뛰는 심장 소리 때문에 당황하고 부끄러운 건 승우도 마찬가지다. 급정거 할 때 갑자기 수현이 자신의 품으로 잠시 들어 왔다간 그 시간에 승우는 시간이 멈추기만은 바랬다. 잠시였지만 느낄 수 있었던 수현의 머리카락에서 나는 샴푸냄새도 좋았고 그렇게까지 가까운 거리로 수현과 있어보기도 처음이었으니.
동네의 도착해서 버스에서 내리는 수현과 승우. 또 다시 벌어진 두 사람과의 거리는 혹여나 아직도 멈추지 않는 서로의 심장소리가 들리지는 않을지 과도한 걱정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이 어색함을 깨어 보고자 이번에는 수현이 먼저 용기를 낸다.
“ 바쁘셨나 봐요? ”
“ 어? 아~ 내일 중요한 발표수업이 있거든. 그거 준비하느라. 하하.. ”
“ 아... 그랬구나. ”
“ 저기 혹시.. 내가 궁금했어? ”
“ 네? 아.... 그게...궁금하긴 했죠. 헤헤.. ”
자신의 안부가 궁금했다고 말해주는 수현을 보자 갑자기 엔돌핀이 마구 쏟는 것을 느꼈다.
수현의 옥탑 방에 거의 도착 할 때 즈음. 수현이 가던 길을 멈췄다.
“ 오늘 데려다 줘서 고마워요. 조심해서 들어가세요. ”
“ 그래... 잘 들어 가구. 잘자. 수현아. ”
“ 네.. ”
승우는 뒤 돌아서 가려고 하는 수현의 팔목을 잡아끌어 자신의 품안으로 수현을 안았다. 승우에 갑작스러운 행동에 놀라서 잠시 머뭇거렸지만 자신을 안고 있는 승우에 팔을 뿌리치려고 하자 더욱 세게 껴안는 승우.
“ 이제는 도망가려고 하지마. 이제는 나도 널 놔주기 싫다. 이렇게 널 내가 볼 수 있는 곳에..내 옆에 있게 하고 싶어. 내 옆에 있어줘 수현아. ”
뿌리치려던 손... 그대로 안겨 있기만 했던 수현의 손이 승우에 허리에 서서히 감싸 안아지기 시작한다. 이렇게 따듯하고 포근했던 품안은 13살 돌아가신 아버지 이후로 처음이었다. 아버지 말고 남자 품에 안겨 본 적도 이번이 처음이었고 작은 체구에 수현의 몸이 다 감싸 질 정도로 승우에 어깨는 넓었고 팔도 길었으며 무엇보다 따듯했다. 한참 동안을 그렇게 서로의 체온을 느끼고 있던 두 사람. 서서히 껴안고 있던 팔을 느슨하게 하되 다 풀지는 않고서는 사랑스러운 눈으로 수현을 바라보는 수현.
“ 수현아. 작은 소원이 하나 있는데 들어 줄래?
“ 소원이요? 뭔데요? ”
“ 오늘 이 시간 이후로 날 편하게 대하기. ”
“ 편하게 대하기? 어떻게 대하는 게.. 편하게 대하는 거죠? ”
“ 우선.. 날 오빠라고 불러줘. 그리고. 지금 내가 하는 것처럼. 더 친근감 있게 존댓말을 사용하지 않는 거야. 해줄 거지? ”
“ 오빠라고 하는 건 어렵지 않은데. 존댓말 대신..반말을 하는 건... 그래도 노력할게요. 편하게~ 알았어...요...? 헤헤.”
“ ... 편하게~ 잘자~ 수현아.”
수현의 이마의 가벼운 키스를 해주고 돌아가는 승우. 서로의 모습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손을 흔들면서 인사하는 두 사람. 세상을 다 얻은 사람처럼 기뻐하는 승우. 이런 거구나. 사랑이라는 게 이런 거구나.
- 5월24일 화요일 -
언제부터였는지..나는 알지 못 합니다.
내 마음이 당신에게 다가가고 있었던 것은..
내 마음이.... 당신 앞에서 뜨거워집니다.
내 심장이.. 뜁니다.
유독 당신 앞에서만 가슴이 답답했고.
안보면 기다려지고 걱정되고
처음엔...몰랐습니다.
왜 마음이 이렇게 답답한 것인지
속이 울렁거리는 것인지
무언가 내 마음에 들어와 숨을 못 쉬게 하고 있는 그 느낌.
그건... 내가 당신을 향에 심장이 뛰기 시작했기 때문인 것을....
3
부스스한 얼굴로 거실로 나와 텔레비전을 켜는 수현은 채널을 계속 바꿔 보지만 재미난 프로가 방영되지 않자 다시 전원을 커버린다. 텔레비전 옆에 있는 라디오를 키고는 부엌으로 향한다. 냉장고 문을 열고 안을 확인하는데 너무도 썰렁한 냉장고 안을 보고는 잠시 고민한다. 김치와 각종 채소류를 꺼내고 저번에 남겨둔 햄을 꺼내 요리를 시작한다. 요리라고 해봐야 김치 볶음밥이지만 반찬도 마땅치 않고 입맛도 없을 때는 그래도 괜찮은 식단이었다. 부모님이 돌아가신 뒤로 모든 끼니를 혼자 챙겨 먹어야 했기 때문에 음식을 한 번도 직접 해보지 않았던 수현은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요리를 시작하게 되었다. 집에서 밥을 챙겨 먹어야 할 일이 별로 없기는 했으나 이렇게 챙겨 먹을 때는 거의 볶음밥을 해 먹곤 했었다. 음식 솜씨가 전혀 없어서인지 도무지 정체불명의 음식 맛이 나는 시행착오를 경험하면서 이제는 제법 맛있는 볶음밥을 만들 수 있었다. 아주 자신 있게 볶음밥을 만들고 있는 수현. 볶음밥이 완성되자 식탁에 앉아 음식을 먹으려는 찰나에 수현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 누구지? 이 시간에.. 누구세요? ”
“ 나야. 승우. 문 열어줘. ”
“ 누...누구라고요? ”
“ 승우.. 한승우라고. ”
한승우라는 말에 놀라서 갑자기 부산해지는 수현은 벽에 걸려있는 거울을 본다. 머리는 부스스해가지고 아침이라 눈은 부을 대로 부어버린 상태이며 옷은 잠옷 그대로였다. 자신의 모습을 보고 당황하고는 방으로 달려간다. 빠르게 옷을 갑아 입고 머리를 풀러 다시 묶고는 다시 벽에 걸려있는 거울을 통해 자신의 모습을 확인하고는 조심스럽게 문을 연다.
“ 아...안녕하세요..? 헤헤헤 ”
현관문을 활짝 여는 것도 아니고 살짝 열어서 고개만 내미는 수현을 보고는 웃음이 나오는 승우는 당황하는 표정을 잠시였지만 놓치지 않고 볼 수 있었다.
“ 잘 잤어? 밥은 먹었고? ”
“ 아.... 밥이요? 지..지금 먹으려고요. ”
“ 아~ 잘됐다. 그럼 같이 먹자. ”
“ 네? 아... 저.. 그게.. ”
수현이 대답도 하기 전에 문을 열고 집으로 들어가는 승우.
“ 어? 이 냄새 무슨 냄새야? 음식 냄새 같은데? ”
“ 아..그거요? 아침 밥 냄새요..하..하.. ”
“ 아~~ 그럼 나도 한 그릇 부탁해~ ”
부엌으로 들어가 식탁을 확인하던 승우가 큰 목소리로 소리친다.
“ 이야~ 김치 볶음밥이네? 맛있겠다. 근데. 내가 먹을 것도 있나? ”
갑작스런 승우의 방문에도 당황스러운데 아침밥까지 달라는 이 남자의 배짱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1인분만 만들었기 때문에 승우가 먹을 음식이 있을리 없었다. 조심스레 밥통을 열어 확인해보지만 마지막 남은 밥으로 만든 볶음밥이었기 때문에 텅 비어 있었다. 다시 냉장고에 찬밥이라도 있는지 확인해보지만 역시나 너무도 텅 빈 냉장고였다. 혹여나 승우가 텅 빈 냉장고를 보게 될까봐 살짝 열어 확인하고는 다시 닫아버리는 수현.
“ 하..하.. 이거라도 같이 나눠 먹을까요? 지금은 이것 밖에는 없네요. ”
“ 그래~ 이야~ 맛있겠다. ”
식탁에 앉아 볶음밥을 바라보면서 입맛을 다시는 승우를 보면서 그릇과 수저를 꺼내 조금만 덜어 자신 앞에 놓고 원래 그릇을 승우에게 건넨다.
“ 드세요. ”
“ 응. 잘 먹을게. ”
너무 맛있게 먹는 것을 보니 괜히 승우가 고맙다는 생각이 든다. 가끔 너무 엉뚱하게 자신을 놀래킬 때도 많지만 이런 깜짝 등장이 기분 나쁘지만 않았고 오히려 혼자 쓸쓸하게 먹는 것보다 외롭지 않아서 좋았다. 양이 적기도 했지만 빠르게 자신의 분량을 먹고는 물을 마시는 승우는 이제 수현이 먹는 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 먹는데 쳐다보면 민망해요. 다른데 보세요. ”
“ 음식 잘하는지 몰랐네? 아주 맛있었어. ”
“ 다른 건 하나도 못해요. 이것만 주기장창 연습했거든요. ”
“ 주기장창? 하하하하하. ”
“ 왜.. 왜 웃어요? ”
“ 그럼 나중에 수현이가 다른 음식 만들 때 또 먹어봐야겠다. 내가 평가해줄게. ”
“ 평가는 무슨. 다른 음식은 거의 안해봤어요. ”
“ 음식도 해보면 는다고 하던데. 아참.. 그러고 보니...수현이 너. 나한테 존댓말 안하기로 나랑 약속 했잖아. ”
“ 약속은 안했어요. 그냥..노력하겠다고 했지.. ”
“ 그럼 지금 약속해. 자 아~ 손가락 걸고. ”
“ 어린애 같애. ”
“ 뭐어? 하하하. 그래도 약속해. 나랑 편하게 지내겠다고. 그리고 한 가지 더~ ”
한 가지 더 라는 말에 눈이 커지는 수현. 장난스러운 얼굴을 하는 승우.
“ 다음 뻔엔 다른 메뉴의 음식 만들어 주겠다고. 해 줄 거지? ”
“ 순~ 자기 맘대로 라니까. ”
승우를 얄밉다는 듯이 쳐다보지만 기분 좋게 다시 웃어 보이는 수현. 행복한 아침 시간을 함께 보내는 두 사람. 햇빛이 부엌 창문 사이로 서서히 이 곳 저 곳을 찾아다니면서 인사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