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숍에서 수현의 일을 도와주고 있는 승우. 그리고 카운터를 보고 있는 수현. 계산서를 정리하고 있는데 선반 위에 올려져 있는 승우에 핸드폰 벨소리가 울린다. 핸드폰을 들고는 발신 번호를 확인하고 승우에게로 가져다준다. 요즘 집에서 걸려오는 전화를 받을 때 마다 승우에 표정을 잠시 동안 이지만 어두워진다는 것을 수현은 느꼈다. 그리고 수현이 듣는 것을 피하려고 커피숍 밖에 나가서 전화를 받고 들어오는 등 무언가 승우에게 좋지 않은 일이 있는 것만 같았다. 그러나 함부러 물어 볼 수는 없는 일이다. 가정일이니 수현이 관심을 가지는 것은 권한이 없다고 생각했기에. 오늘도 나가서 전화를 받고는 어두운 표정으로 들어오는 승우. 그러나 수현을 보자 바로 웃어 보이는 승우. 하지만 어딘지 모르게 인위적인 억기 웃음이었다. 자신이 걱정할까봐 일부러 웃어 보이려는 듯한 느낌을 수현은 벌써 몇 번이고 느끼고 있었다.
“ 수현아. 오늘은 내가 일찍 집에 가봐야 할 것 같아. 혼자 집에 갈 수 있겠어 ?”
“ 내가 무슨 어린앤가? 그 동안 오빠 없었을 때도 아주 잘 다녔으니까 걱정 말고 어서 가봐. 정말. 괜찮아. ”
“ 퇴근할 때 연락하고. 나도 집에 가서 연락 할게. 오늘은 먼저 가서 미안. ”
“ 왜 오빠가 미안해 해..? 어서 들어가. ”
미안한 마음에 쉽게 발길이 떨어지지 않는 승우를 수현은 몸으로 밀어 내서 커피숍 밖까지 배웅한다. 걸어가면서도 계속 손을 흔들며 어서 들어가라고 말하는 승우. 왠지 마음이 불안 하다.
2
집에 도착해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는 승우를 보자 한 회장과 비서실장이 대화를 나누고 있다. 굳어버린 승우의 표정은 조금은 무섭게 변해있었다.
“ 저 왔습니다. ”
“ 앉거라. ”
간결하고 단호한 말로 승우를 맞이하는 한 회장은 비서실장에게 서류봉투를 달라고 한 다음 승우 앞에 내 놓았다.
“ 출국 날짜는 다음 주 목요일이다. 그렇게 알고 준비해. ”
“ 그럴 수 없습니다. 가지 않겠습니다. ”
“ 내가 가라고 하면 가야 하는 거야. ”
“ 가서 공부도 하고 회사일도 배우고 멋진 경영인이 되면 그 때 돌아 오거라. 되지 못하면 돌아오지 않아도 된다. ”
“ 회사일도 매사에 이런 식으로 밀고 나가시는 겁니까? 사람들의 의견은 전혀 상관없이 아 버지 생각대로 모든 게 움직여줘야만 직성이 풀리시냐고요. ”
“ 승우. 너 이 녀석! 이 에비한테 무슨 말 버릇이냐? ”
“ 가지 않겠습니다. 아버지가 뭐라 하셔도 갈 수 없습니다. ”
그렇게 단호하게 말하고는 자신의 방으로 올라가 버리는 승우. 그런 모습을 보면서 무섭게 일그러지는 한 회장의 표정.
“ 윤 비서. 승우 저 녀석이 도대체 왜 이렇게 고집을 피우는 건지 한번 알아봐. ”
“ 예. 알겠습니다. 회장님. ”
3
막무가내로 밀어붙이는 한 회장 때문에 혼란스러운 승우는 자신의 방문을 세게 닫고 들어와 책상을 내려친다. 이렇게 갈 수는 없는 거다. 수현을 놔두고 다른 나라에 가서 자신은 그 무엇도 할 수 없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안다. 언제가 될지도 모르는 그 시간을 무작정 수현에게 기다려달라고 할 수만은 없지 않은가. 서로 너무 사랑하던 연인들도 남자가 군대에 가면 80퍼센트가 헤어지기 마련인데 2년도 아닌 기약할 수도 없는 그 시간을 기다려 달라고 수현에게 말 할 수 없다. 절대로 할 수 없다. 그래서 버텨야 한다. 아버지인 한 회장이 어떻게 나오던 간에 이곳에서 버텨야 한다. 이대로 수현을 떠나고 나면 다시는 만나지 못할 인연이 되어 버릴 것만 같아서. 영원히 곁에 있겠다고 약속까지 했는데 이렇게 자신이 떠나버리면 수현이 받은 상처와 상실감을 누구에게 위로 받는단 말인가. 욕실로 향하는 승우는 옷을 입을 채로 샤워기를 틀고 강한 수압의 쏟아지는 물을 온 몸으로 받아 내고 있었다. 그러나 그 괴로움은 씻어지지 않는다.
4
요즘 들어 표정이 어두운 승우가 걱정되는 수현. 10시가 넘은 시각에 버스를 타고 집으로 향한다. 승우와 함께 타고 올 때는 서로 대화하고 장난치느라 그 동안 보지 못했던 집으로 가는 길을 창밖으로 보면서..
‘ 사람이란 정말 간사해. 오빠 없이도 그 동안 잘 살아 왔던 내가 오늘 하루 집에 가는 길이 혼자라고 이렇게 쓸쓸한 거 보면...하..하..하.. ’
집에 도착해서 터벅터벅 걸어오는 수현의 발걸음이 어째 무거워 보인다. 계단을 올라 자신의 아지트 옥탑 방에 도착했을 때 주인도 없는 집에 환하게 불이 켜져 있어서 놀라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는 수현은 약간은 난장판이 되어 있는 집안을 보고 신음소리가 절로 나왔다.
“ 집에 도둑이 들었나? 왜 이렇게 된 거지? ”
없어진 물건이 없나 찾아보는데 딱히 없어진 물건은 없는 듯하다.
“ 도둑도..그렇지 이런 옥탑 방에 훔칠 물건이 어디 있다고 우리 집을 털어...에휴.. ”
힘이 빠진 얼굴로 난장판이 되어 버린 집안을 하나 둘씩 치워나가기 시작했다. 힘들게 지금 이 시간까지 일하고 들어 왔는데 집에 들어와서도 할 일이 생긴 것을 보면 일복이 터졌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오늘은 괜히 기분이 좋지 않는 날이다.
“ 아가씨. 이제 왔나보네. 어휴. 아까 낮에 왠 여자랑 이상한 남자들이 서너 명 찾아 와서는 아가씨 어딨 냐고 소리를 고래고래.. 치는 거야. 글쎄. 우린 잘 모른다고 했더니 집을 난 장판을 하고는 겨우 돌아갔어. 내가 딱 생김새를 보아하니 빚쟁이 같던데. 아가씨 혹시 사채 쓴 적이라도 있어? ”
“ 사채요? 아니요.. 하....저도 모르는 사람들인데 이렇게 난장판을 만들어요? 전 도둑이 든 줄 알았어요. ”
“ 모르는 사람들이 아가씨 이름을 어떻게 알겠어? 아가씨 이름이 최수현 맞잖아? ”
“ 네... 그래도 전 정말 모르는 사람들인데요.? 하... ”
“ 내일 또 온다고 했는데. 내일은 좀 일찍 와서 그 사람들이랑 무슨 일인지 대화를 좀 해 봐. 이게 뭐야. 주위 사람들 잔뜩 겁먹고. 에 휴... ”
“아..네. 죄송합니다. 죄송해요. 편히 쉬세요. ”
주인아주머니가 다녀간 이 후로 머리가 복잡해진 수현은 도무지 아무리 생각을 해도 그 사람들이 왜 자신을 찾아와 행패를 부렸는지 알 길이 없었다. 내일 만나보기 까지는..
5
아침부터 어두운 표정을 하고 있는 수현은 계속해서 한숨을 쉬어댔다. 항상 명랑하긴 했지만 승우를 만나고부터 더 밝아진 수현이 어두운 표정을 지으니 어색했는지 경미가 유심히 본다. 그리고 진지하게 묻는 경미.
“ 너.. 승우씨랑 싸웠지? ”
“ 뭐? 내가 ? 아니야. 내가 오빠랑 왜 싸워.. ”
“ 아니야? 승우씨랑 싸운 게 아니라고? 아니. 근데 네 표정이 왜 그렇게 심각해? ”
“ 휴...... 나도 몰라. ”
“ 땅 꺼지겠다. 모른다니. 다 죽어가는 얼굴을 하고는 모른다니... ? ”
“ 사실은.. 그게 말야.. ”
어제 있었던 황당한 난장판 사건을 경미에게 들려주자 성격 급한 경미가 벌떡 일어나서 경찰서에 신고하자고 소리친다. 경미를 말리면서 어색하게 웃는 수현.
“ 경찰서에 함부로 신고 했다가 봉변당하면 어떻해... ”
“ 야야야.. 뭐가 걱정이야. 너한텐 든든한 보디가드가 있잖아. 승우씨한테 말했어? ”
“ 아니. 오빠가 알면 기겁을 할 거야. 당장 이사하라면서. 요즘 오빠도 집안에 힘든 일이 있 는 것 같아서 조심스러워. ”
그렇다. 요즘 들어 말은 안 하지만 뭔가 힘든 일이 있는 것은 분명했다. 승우에겐 비밀로 하고 어쩔 수 없이 오늘은 일찍 들어가서 집을 난장판으로 만든 이유를 들을 수밖에.
오후 수업까지 마치고 강의실을 나가려는데 핸드폰이 울렸고 발신 번호는 ‘사랑하는 오빠’ 라고 뜬다. 반가운 듯 목소리를 가다듬고 전화를 받는다.
“ 여보세요? 오빠.. ”
“ 응. 수현아. 수업 끝났지? ”
“ 응 방금 막 끝나서 나가려던 참이었어. 오늘 하루 잘 지내셨습니까? ”
“ 응. 그래그래. 잘 지냈어. 커피숍 가기 전에 스탠드에서 잠깐 보자. ”
“ 응 알았어. 오빠. 금방 갈게. ”
걱정스러운 일은 걱정스러운 일일 뿐이고 지금은 열심히 웃어야 한다. 승우를 만나러 가는 중이니. 승우가 힘들 때 자신이라도 걱정 끼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하면서. 가벼운 발걸음으로 스탠드로 향한다. 승우에게 가는 길이라 날 수만 있다면 하늘을 날아가고 싶었다. 한시라도 더 빨리 그리고 더 오래 보고 싶기에. 먼저 도착한 승우를 멀리서 발견 하고는 있는 힘껏 뛰기 시작하는 수현. 약간의 내리막길이라서 속도 조절이 안 됐는지 바로 멈춰지지 않아 승우를 살짝 지나쳐 갔다가 다시 머리를 글적거리면서 돌아오는 수현. 평소 같았으면 그런 모습을 보고 장난스러운 말투로 놀렸을 테지만 승우는 왠지 오늘 진지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승우의 진지한 표정에 괜히 엄숙해지는 분위기. 다소고시 계단에 앉는다. 그러나 한참을 말이 없는 승우. 시간은 가는데 말이 없자 수현은 은근슬쩍 손목에 있는 시계 바늘을 확인한다. 무슨 말일까?
“ 수현아.. ”
“ 응. 오빠.. ”
다시 말이 없는 승우. 이렇게까지 말하기를 힘들어 하는 승우를 처음 본다. 도대체 무슨 말이 길래 이토록 어렵게 생각하는 것일까. 그리고는 갑자기 일어서버리는 승우.
“ 아니야. 오늘은 시간이 너무 지났다. 너 알바 시간 늦겠다. 나중에 얘기 할게. ”
“ 어? 아... 그..그래..오빠..”
“ 오늘도 급한 볼 일이 있어서 먼저 가봐야 할 것 같아. 전화 할게. 내일 보자. ”
“ 응.. 내일봐~ ”
그렇게 걸어가는 승우를 보는 데 이상하다. 갑자기 눈물이 난다. 오늘따라 승우에 뒷모습이 너무 낯설게 느껴진다. 점점 거리가 멀어지면 질수록 수현의 가슴이 이상하게 저려온다.
그리고 심하게 수현의 심장이 뛰기 시작한다. 그 넓은 공터에 울려 퍼지도록.....
커피숍 사장에게 양해를 구하고 평소보다 두 시간 일찍 나온 수현. 솔직히 무섭고 떨리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니. 만나서 해결해야 한다면 해야 하기에. 마음을 단단히 먹고 집으로 향한다. 집 앞에 도착해서 계단을 오르는 수현의 심장 소리는 두려움에 떨려 뛰고 있었다. 혹시나 드라마에서 보는 것처럼 깡패들이 들이닥쳐서 자신을 해코지하지는 않을지. 모르는 남자들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왔구나. 떨지 말자. 최수현. 기죽지 말자. 최수현.
“ 누..누구세요? 누구신데. 주인도 없는 집 앞에서 뭐하시는 거죠? ”
“ 아~ 당신이 최수현인가? 왜 이렇게 얼굴 보기가 힘들어? 엉? ”
“ 누구신데 이러시는 거에요? ”
“ 우리가 누구냐면 말야,,, 당신한테 돈을 받아야 할 사람들이거든. ”
“ 돈이요? 무슨 돈을 나한테 받겠다는 거에요? ”
“ 당신 삼촌이라는 작자가 최기준 맞지? ”
“ 최..기.. 준.. 네..그런데요.? ”
“ 그 사람 우리한테 돈을 빌려가서는 어디론가 몸을 감춰버렸거든~ 그래서 신원조회를 해 봤더니 살아 있는 피붙이라고는 당신 밖에 없더라고.~ ”
“ 뭐라고요? 삼촌이 빌린 돈을 왜 나한테 와서 갚으래요? ”
“ 원래는 당신 아버지라는 작자가 대신해서 갚아줘야 하는데. 죽은 사람한테 무슨 수로 받 겠냐고. 안 그래? 딸인 최수현 .당신이 대신 갚아야지. 빛은 원래 대물림 되는 거거든. ”
“ 하..하.... 억지 부리지 마세요. 우리 아버지가 빚을 지신 것도 아닌데, 친척이 진 빚을 나 한테 갚으라니. 그게 말이 되요? 나랑은 상관없어요. 어서 나가주세요. ”
“ 하하하 이 여자 봐라~ 아주 당돌하게 나오네? 이봐~ 우린 여자라고 봐주는 그런 신사가 못 되거든~! 까불지 않는 게 좋을 거야. ”
“ 나..나가 주시라고요. 어제처럼 집을 난장판으로 만들어 놓으면 경찰을 부르겠어요. ”
“ 오호~ 그러셔? 그래. 어디 한 번 불러봐~ 엉? ”
옆에 있던 신발장이며 부엌에 있는 그릇이며 모든 물건들을 때려 부수고 있었다. 그만하라는 수현의 외침에도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수현을 위협하는 빚쟁이들. 하지 말라고 울면서 소리쳐도 소용없었다. 집 안에 있는 물건이란 물건은 다 때려 부수고 나서야 멈췄다.
“ 이봐~ 아가씨. 세상살이란 그렇게 쉽지만은 않은 거거든? 우리를 너무 원망하진 말라고~ 이런 꼴 더 이상 당하기 싫으면 돈 준비하든가..? 응? 이천만원인데..그게 뭐 어렵나? 한 번에 안 갚으면 이자가 계속 불어난다는 걸 잊지 말라고.~ 가자. ”
빚쟁이들이 돌아간 자리는 아수라장이 되 버렸다. 어느 물건 하나 제대로 남아 있는 것이 없을 정도로. 설움에 복받쳐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은 쉼 없이 떨어지고 있었다.
“ 아......아..........앙...앙아앙.... 아빠.... 아빠......나 어떻 하면 좋아요. 하..하.흑..흑흑... ”
때려 부수는 빚쟁이들을 온 몸으로 막다가 뿌리치는 손에 맞은 수현의 입술은 피가 터졌고 빨갛게 부어올랐다. 벽에 기대어 정신 나간 사람처럼 멍하게 눈물만 흘리는 수현.
6
술이 떡이 돼서 집으로 들어온 승우는 거실에 앉아 있는 한 회장에게 인사조차 건네지 않고 위층으로 올라가려고 한다.
“ 이름이 최수현이던가? ”
아버지의 입에서 수현의 이름이 나오자 번쩍 정신이 들어 무섭게 한 회장을 쏘아보는 승우
“ 아주 형편없는 아이 더구나. ”
“ 그렇게 말씀하지 마십시오. 수현이가 아버지한테 그런 말 들어야 할 이유 없습니다. ”
“ 그런 아이 때문에 네 성공을 포기하겠다는 것이냐? 고작 그런 아이 때문에? ”
“ 고작 그런 아이가 아닙니다. 저한테는 가장 소중한 여잡니다. 수현이겐 상처주지 마세요.”
“ 그 아이가 상처 받는 게 두려우면 내 말에 따라라. ”
“ 더 이상 듣고 싶지 않습니다. 올라가 보겠습니다.”
수현까지 알고 있다면 분명 수현을 찾아갈 것이다. 안 되는 일이다. 그런 일이 있어서는 절대 안 되는 일이다. 지금까지 살면서 아버지인 한 회장과의 트러블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자신의 생각대로 움직이고 일을 처리하는 것은 어쩔 때는 모든 일을 간결하게 해결 할 때 좋은 효과를 가져오며 지금까지 아버지가 하신 일에 대해서는 옳다고 생각 해 왔던 지라 동생 선우 보다는 순종적이지 않지만 그런대로 아들의 역할을 잘 해내고 있다고 생각했었다. 그런 아버지와 이렇게까지 얼굴 붉히며 대화하는 것도 진저리가 난다. 아들로서 이러면 안 된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알지만 수현을 생각하면 마음이 저리기에. 무엇보다 자신이 수현없이는 단 하루도 살 수 없기에.
7
어젯밤에 술을 마시고 들어와 아침에 일어나니 머리가 깨질 것 같은 통증이 느껴진다. 그래도 학교는 가야 하니 정신을 차리고 학교로 향하는 승우. 경영학과 과사무실에서 교수에게 가보라는 연락이 왔고 노크를 하고 들어간다.
“ 어~ 승우군 왔군. 어서 오게나. ”
“ 부르셨습니까. 교수님. ”
“ 자네 부친께는 연락을 받았네. 그래. 미국으로 유학을 간다고? ”
‘이런. 벌써 교수님과도 얘기가 끝나버렸군’
“ 네... 그게 아직은 정해진 게 아니라서요, ”
“ 정해진 게 아니라니? 한 회장님이 이미 모든 준비를 마쳤다고 하셨었는데. 아닌가? ”
“ 아... 네...”
교수의 방에 들어가서 대답하기가 참으로 난처했던 승우. 모든 일은 재빠르게 처리해버리고 자신이 손을 쓸 수도 없게 만들어 버린 아버지가 야속하기만 하다.
‘ 정말 가야 하는 것일까? 수현이와 헤어지고 내가 얻는 성공이라는 게 뭐가 그리 중요 하다는 건지. 수현이가 보고 싶다. 보고 싶어.... ’
갑자기 수현이 보고 싶은 마음에 유아교육과 건물로 뛰어 가는 승우. 아직은 수업 중인 득하다. 벽에 기대어 수업이 끝나기만을 기다리는 승우. 잠시 뒤에 학생들이 한 두 차례 몰려 나오 더니 경미의 얼굴이 보였고 수현의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 경미씨 ~ ”
“ 어머? 승우씨? 수현이 만나러 온 거죠? ”
“ 네.. 수현이는요? ”
“ 아..저기 그게요. 안 왔어요. 학교에. ”
“ 학교에 안 오다니. 그게 무슨 말이에요? ”
“ 저도 모르겠어요. 오늘 아침에 안 보이 길래 전화를 스무 번도 넘게 했는데 할 때 마다 꺼져 있어요. 수현이 결석 한 적 한 번도 없잖아요? ”
“ 네..그러니 이상하다는 거에요. 전화기도 계속 꺼져있고. 아~ 혹시 어제 그 사람들 때문에 무슨 일 있었나? ”
“ 그 사람들이라니요? ”
8
다급하게 택시를 잡고 수현의 집으로 향하는 승우.
[ 어제 수현이가 걱정이 있는 것 같아서 물었더니 그 전날 집에 돌아가니까 집이 난장판이 되어 있더래요. 물건이 다 흐트러져 있고. 주인아주머니가 그러는데 험악하게 생긴 남자 들이 와서 수현이 어딨냐면서 집안을 난장판으로 만들어 놨다고 하더라고요. ]
‘ 아버지야..아버지다.. 아버지가 시킨 거야.. 수현아..수현아..’
택시에서 내리자마자 있는 힘껏 뛰어 옥탑 방까지 단숨에 올라가는 승우. 현관문이 반쯤 열려 있고 안으로 들어가자 모든 물건이 사방팔방으로 널려져 있었고 부서지거나 깨진 물건들이 대부분이었다.
“ 수현아. 수현아...”
다급하게 수현의 방으로 들어가자 방 안에서 쓰러져 있는 수현을 발견한다.
“ 수현아. 수현아... 정신 차려봐. 수현아? ”
머리는 헝클어져 있고 수현의 입술은 피가 났었는지 마른 핏자국이 보였으며 입술을 매 말라 있었다. 그런 모습의 수현을 보자마자 두 손으로 안아 들고 계단을 빠르게 내려 와서는 좀 전에 타고 왔던 택시를 타고 병원으로 향한다. 택시 안에서 수현을 자신의 품 안에 꽉 안은 채 눈물을 흘리는 승우.
‘ 미안해..미안해..수현아...’
병원에서 간단한 치료를 받고 병실에 누워 있는 수현의 얼굴을 어루만지는 승우. 한 손은 수현의 손을 꽉 잡고 눈에서는 눈물을 흘린다.
‘ 나 때문에 미안해..수현아. 널 다치게 해서 미안해. 너하고 했던 약속... 영원히 너의 곁에 있겠다던 그 약속. 지키지 못 할 것 같아. 미안해.. 미안해..수현아..’
밖으로 나와 경미에게 전화 걸어 병원 위치를 알려주는 승우. 경미가 오는 것을 멀리서 지켜보다가 병실에 들어가는 것 까지 확인하고는 승우는 병원 밖으로 나와 택시를 타고 회사로 향한다. 회장실로 향하는 승우. 비서가 반갑게 인사하는 데도 받지 않고 노크도 없이 회장실의 문을 열고는 한 회장에게 다가간다.
“ 아버지 뜻대로 하겠습니다. 그러니 더 이상 수현이는 건들지 말아 주십시오. 다시 수현이 가 다치면 그 때는 다시는 아버지를 뵙지 않겠습니다. ”
큰 소리로 외치고 다시 나가는 승우를 바라보는 한 회장. 결제 서류를 들고 있던 비서실장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는다.
“ 회장님. 회장님께서는 최수현 양을 만나신적이 없...”
“ 됐네. 어찌되었든 승우가 결정을 했으니.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없네. 유학준비 계획대로 추진하게나. ”
(연애소설)-알약(8)-
*
- 약 속 -
1
커피숍에서 수현의 일을 도와주고 있는 승우. 그리고 카운터를 보고 있는 수현. 계산서를 정리하고 있는데 선반 위에 올려져 있는 승우에 핸드폰 벨소리가 울린다. 핸드폰을 들고는 발신 번호를 확인하고 승우에게로 가져다준다. 요즘 집에서 걸려오는 전화를 받을 때 마다 승우에 표정을 잠시 동안 이지만 어두워진다는 것을 수현은 느꼈다. 그리고 수현이 듣는 것을 피하려고 커피숍 밖에 나가서 전화를 받고 들어오는 등 무언가 승우에게 좋지 않은 일이 있는 것만 같았다. 그러나 함부러 물어 볼 수는 없는 일이다. 가정일이니 수현이 관심을 가지는 것은 권한이 없다고 생각했기에. 오늘도 나가서 전화를 받고는 어두운 표정으로 들어오는 승우. 그러나 수현을 보자 바로 웃어 보이는 승우. 하지만 어딘지 모르게 인위적인 억기 웃음이었다. 자신이 걱정할까봐 일부러 웃어 보이려는 듯한 느낌을 수현은 벌써 몇 번이고 느끼고 있었다.
“ 수현아. 오늘은 내가 일찍 집에 가봐야 할 것 같아. 혼자 집에 갈 수 있겠어 ?”
“ 내가 무슨 어린앤가? 그 동안 오빠 없었을 때도 아주 잘 다녔으니까 걱정 말고 어서 가봐. 정말. 괜찮아. ”
“ 퇴근할 때 연락하고. 나도 집에 가서 연락 할게. 오늘은 먼저 가서 미안. ”
“ 왜 오빠가 미안해 해..? 어서 들어가. ”
미안한 마음에 쉽게 발길이 떨어지지 않는 승우를 수현은 몸으로 밀어 내서 커피숍 밖까지 배웅한다. 걸어가면서도 계속 손을 흔들며 어서 들어가라고 말하는 승우. 왠지 마음이 불안 하다.
2
집에 도착해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는 승우를 보자 한 회장과 비서실장이 대화를 나누고 있다. 굳어버린 승우의 표정은 조금은 무섭게 변해있었다.
“ 저 왔습니다. ”
“ 앉거라. ”
간결하고 단호한 말로 승우를 맞이하는 한 회장은 비서실장에게 서류봉투를 달라고 한 다음 승우 앞에 내 놓았다.
“ 출국 날짜는 다음 주 목요일이다. 그렇게 알고 준비해. ”
“ 그럴 수 없습니다. 가지 않겠습니다. ”
“ 내가 가라고 하면 가야 하는 거야. ”
“ 가서 공부도 하고 회사일도 배우고 멋진 경영인이 되면 그 때 돌아 오거라. 되지 못하면 돌아오지 않아도 된다. ”
“ 회사일도 매사에 이런 식으로 밀고 나가시는 겁니까? 사람들의 의견은 전혀 상관없이 아 버지 생각대로 모든 게 움직여줘야만 직성이 풀리시냐고요. ”
“ 승우. 너 이 녀석! 이 에비한테 무슨 말 버릇이냐? ”
“ 가지 않겠습니다. 아버지가 뭐라 하셔도 갈 수 없습니다. ”
그렇게 단호하게 말하고는 자신의 방으로 올라가 버리는 승우. 그런 모습을 보면서 무섭게 일그러지는 한 회장의 표정.
“ 윤 비서. 승우 저 녀석이 도대체 왜 이렇게 고집을 피우는 건지 한번 알아봐. ”
“ 예. 알겠습니다. 회장님. ”
3
막무가내로 밀어붙이는 한 회장 때문에 혼란스러운 승우는 자신의 방문을 세게 닫고 들어와 책상을 내려친다. 이렇게 갈 수는 없는 거다. 수현을 놔두고 다른 나라에 가서 자신은 그 무엇도 할 수 없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안다. 언제가 될지도 모르는 그 시간을 무작정 수현에게 기다려달라고 할 수만은 없지 않은가. 서로 너무 사랑하던 연인들도 남자가 군대에 가면 80퍼센트가 헤어지기 마련인데 2년도 아닌 기약할 수도 없는 그 시간을 기다려 달라고 수현에게 말 할 수 없다. 절대로 할 수 없다. 그래서 버텨야 한다. 아버지인 한 회장이 어떻게 나오던 간에 이곳에서 버텨야 한다. 이대로 수현을 떠나고 나면 다시는 만나지 못할 인연이 되어 버릴 것만 같아서. 영원히 곁에 있겠다고 약속까지 했는데 이렇게 자신이 떠나버리면 수현이 받은 상처와 상실감을 누구에게 위로 받는단 말인가. 욕실로 향하는 승우는 옷을 입을 채로 샤워기를 틀고 강한 수압의 쏟아지는 물을 온 몸으로 받아 내고 있었다. 그러나 그 괴로움은 씻어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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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들어 표정이 어두운 승우가 걱정되는 수현. 10시가 넘은 시각에 버스를 타고 집으로 향한다. 승우와 함께 타고 올 때는 서로 대화하고 장난치느라 그 동안 보지 못했던 집으로 가는 길을 창밖으로 보면서..
‘ 사람이란 정말 간사해. 오빠 없이도 그 동안 잘 살아 왔던 내가 오늘 하루 집에 가는 길이 혼자라고 이렇게 쓸쓸한 거 보면...하..하..하.. ’
집에 도착해서 터벅터벅 걸어오는 수현의 발걸음이 어째 무거워 보인다. 계단을 올라 자신의 아지트 옥탑 방에 도착했을 때 주인도 없는 집에 환하게 불이 켜져 있어서 놀라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는 수현은 약간은 난장판이 되어 있는 집안을 보고 신음소리가 절로 나왔다.
“ 집에 도둑이 들었나? 왜 이렇게 된 거지? ”
없어진 물건이 없나 찾아보는데 딱히 없어진 물건은 없는 듯하다.
“ 도둑도..그렇지 이런 옥탑 방에 훔칠 물건이 어디 있다고 우리 집을 털어...에휴.. ”
힘이 빠진 얼굴로 난장판이 되어 버린 집안을 하나 둘씩 치워나가기 시작했다. 힘들게 지금 이 시간까지 일하고 들어 왔는데 집에 들어와서도 할 일이 생긴 것을 보면 일복이 터졌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오늘은 괜히 기분이 좋지 않는 날이다.
“ 아가씨. 이제 왔나보네. 어휴. 아까 낮에 왠 여자랑 이상한 남자들이 서너 명 찾아 와서는 아가씨 어딨 냐고 소리를 고래고래.. 치는 거야. 글쎄. 우린 잘 모른다고 했더니 집을 난 장판을 하고는 겨우 돌아갔어. 내가 딱 생김새를 보아하니 빚쟁이 같던데. 아가씨 혹시 사채 쓴 적이라도 있어? ”
“ 사채요? 아니요.. 하....저도 모르는 사람들인데 이렇게 난장판을 만들어요? 전 도둑이 든 줄 알았어요. ”
“ 모르는 사람들이 아가씨 이름을 어떻게 알겠어? 아가씨 이름이 최수현 맞잖아? ”
“ 네... 그래도 전 정말 모르는 사람들인데요.? 하... ”
“ 내일 또 온다고 했는데. 내일은 좀 일찍 와서 그 사람들이랑 무슨 일인지 대화를 좀 해 봐. 이게 뭐야. 주위 사람들 잔뜩 겁먹고. 에 휴... ”
“아..네. 죄송합니다. 죄송해요. 편히 쉬세요. ”
주인아주머니가 다녀간 이 후로 머리가 복잡해진 수현은 도무지 아무리 생각을 해도 그 사람들이 왜 자신을 찾아와 행패를 부렸는지 알 길이 없었다. 내일 만나보기 까지는..
5
아침부터 어두운 표정을 하고 있는 수현은 계속해서 한숨을 쉬어댔다. 항상 명랑하긴 했지만 승우를 만나고부터 더 밝아진 수현이 어두운 표정을 지으니 어색했는지 경미가 유심히 본다. 그리고 진지하게 묻는 경미.
“ 너.. 승우씨랑 싸웠지? ”
“ 뭐? 내가 ? 아니야. 내가 오빠랑 왜 싸워.. ”
“ 아니야? 승우씨랑 싸운 게 아니라고? 아니. 근데 네 표정이 왜 그렇게 심각해? ”
“ 휴...... 나도 몰라. ”
“ 땅 꺼지겠다. 모른다니. 다 죽어가는 얼굴을 하고는 모른다니... ? ”
“ 사실은.. 그게 말야.. ”
어제 있었던 황당한 난장판 사건을 경미에게 들려주자 성격 급한 경미가 벌떡 일어나서 경찰서에 신고하자고 소리친다. 경미를 말리면서 어색하게 웃는 수현.
“ 경찰서에 함부로 신고 했다가 봉변당하면 어떻해... ”
“ 야야야.. 뭐가 걱정이야. 너한텐 든든한 보디가드가 있잖아. 승우씨한테 말했어? ”
“ 아니. 오빠가 알면 기겁을 할 거야. 당장 이사하라면서. 요즘 오빠도 집안에 힘든 일이 있 는 것 같아서 조심스러워. ”
그렇다. 요즘 들어 말은 안 하지만 뭔가 힘든 일이 있는 것은 분명했다. 승우에겐 비밀로 하고 어쩔 수 없이 오늘은 일찍 들어가서 집을 난장판으로 만든 이유를 들을 수밖에.
오후 수업까지 마치고 강의실을 나가려는데 핸드폰이 울렸고 발신 번호는 ‘사랑하는 오빠’ 라고 뜬다. 반가운 듯 목소리를 가다듬고 전화를 받는다.
“ 여보세요? 오빠.. ”
“ 응. 수현아. 수업 끝났지? ”
“ 응 방금 막 끝나서 나가려던 참이었어. 오늘 하루 잘 지내셨습니까? ”
“ 응. 그래그래. 잘 지냈어. 커피숍 가기 전에 스탠드에서 잠깐 보자. ”
“ 응 알았어. 오빠. 금방 갈게. ”
걱정스러운 일은 걱정스러운 일일 뿐이고 지금은 열심히 웃어야 한다. 승우를 만나러 가는 중이니. 승우가 힘들 때 자신이라도 걱정 끼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하면서. 가벼운 발걸음으로 스탠드로 향한다. 승우에게 가는 길이라 날 수만 있다면 하늘을 날아가고 싶었다. 한시라도 더 빨리 그리고 더 오래 보고 싶기에. 먼저 도착한 승우를 멀리서 발견 하고는 있는 힘껏 뛰기 시작하는 수현. 약간의 내리막길이라서 속도 조절이 안 됐는지 바로 멈춰지지 않아 승우를 살짝 지나쳐 갔다가 다시 머리를 글적거리면서 돌아오는 수현. 평소 같았으면 그런 모습을 보고 장난스러운 말투로 놀렸을 테지만 승우는 왠지 오늘 진지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승우의 진지한 표정에 괜히 엄숙해지는 분위기. 다소고시 계단에 앉는다. 그러나 한참을 말이 없는 승우. 시간은 가는데 말이 없자 수현은 은근슬쩍 손목에 있는 시계 바늘을 확인한다. 무슨 말일까?
“ 수현아.. ”
“ 응. 오빠.. ”
다시 말이 없는 승우. 이렇게까지 말하기를 힘들어 하는 승우를 처음 본다. 도대체 무슨 말이 길래 이토록 어렵게 생각하는 것일까. 그리고는 갑자기 일어서버리는 승우.
“ 아니야. 오늘은 시간이 너무 지났다. 너 알바 시간 늦겠다. 나중에 얘기 할게. ”
“ 어? 아... 그..그래..오빠..”
“ 오늘도 급한 볼 일이 있어서 먼저 가봐야 할 것 같아. 전화 할게. 내일 보자. ”
“ 응.. 내일봐~ ”
그렇게 걸어가는 승우를 보는 데 이상하다. 갑자기 눈물이 난다. 오늘따라 승우에 뒷모습이 너무 낯설게 느껴진다. 점점 거리가 멀어지면 질수록 수현의 가슴이 이상하게 저려온다.
그리고 심하게 수현의 심장이 뛰기 시작한다. 그 넓은 공터에 울려 퍼지도록.....
커피숍 사장에게 양해를 구하고 평소보다 두 시간 일찍 나온 수현. 솔직히 무섭고 떨리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니. 만나서 해결해야 한다면 해야 하기에. 마음을 단단히 먹고 집으로 향한다. 집 앞에 도착해서 계단을 오르는 수현의 심장 소리는 두려움에 떨려 뛰고 있었다. 혹시나 드라마에서 보는 것처럼 깡패들이 들이닥쳐서 자신을 해코지하지는 않을지. 모르는 남자들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왔구나. 떨지 말자. 최수현. 기죽지 말자. 최수현.
“ 누..누구세요? 누구신데. 주인도 없는 집 앞에서 뭐하시는 거죠? ”
“ 아~ 당신이 최수현인가? 왜 이렇게 얼굴 보기가 힘들어? 엉? ”
“ 누구신데 이러시는 거에요? ”
“ 우리가 누구냐면 말야,,, 당신한테 돈을 받아야 할 사람들이거든. ”
“ 돈이요? 무슨 돈을 나한테 받겠다는 거에요? ”
“ 당신 삼촌이라는 작자가 최기준 맞지? ”
“ 최..기.. 준.. 네..그런데요.? ”
“ 그 사람 우리한테 돈을 빌려가서는 어디론가 몸을 감춰버렸거든~ 그래서 신원조회를 해 봤더니 살아 있는 피붙이라고는 당신 밖에 없더라고.~ ”
“ 뭐라고요? 삼촌이 빌린 돈을 왜 나한테 와서 갚으래요? ”
“ 원래는 당신 아버지라는 작자가 대신해서 갚아줘야 하는데. 죽은 사람한테 무슨 수로 받 겠냐고. 안 그래? 딸인 최수현 .당신이 대신 갚아야지. 빛은 원래 대물림 되는 거거든. ”
“ 하..하.... 억지 부리지 마세요. 우리 아버지가 빚을 지신 것도 아닌데, 친척이 진 빚을 나 한테 갚으라니. 그게 말이 되요? 나랑은 상관없어요. 어서 나가주세요. ”
“ 하하하 이 여자 봐라~ 아주 당돌하게 나오네? 이봐~ 우린 여자라고 봐주는 그런 신사가 못 되거든~! 까불지 않는 게 좋을 거야. ”
“ 나..나가 주시라고요. 어제처럼 집을 난장판으로 만들어 놓으면 경찰을 부르겠어요. ”
“ 오호~ 그러셔? 그래. 어디 한 번 불러봐~ 엉? ”
옆에 있던 신발장이며 부엌에 있는 그릇이며 모든 물건들을 때려 부수고 있었다. 그만하라는 수현의 외침에도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수현을 위협하는 빚쟁이들. 하지 말라고 울면서 소리쳐도 소용없었다. 집 안에 있는 물건이란 물건은 다 때려 부수고 나서야 멈췄다.
“ 이봐~ 아가씨. 세상살이란 그렇게 쉽지만은 않은 거거든? 우리를 너무 원망하진 말라고~ 이런 꼴 더 이상 당하기 싫으면 돈 준비하든가..? 응? 이천만원인데..그게 뭐 어렵나? 한 번에 안 갚으면 이자가 계속 불어난다는 걸 잊지 말라고.~ 가자. ”
빚쟁이들이 돌아간 자리는 아수라장이 되 버렸다. 어느 물건 하나 제대로 남아 있는 것이 없을 정도로. 설움에 복받쳐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은 쉼 없이 떨어지고 있었다.
“ 아......아..........앙...앙아앙.... 아빠.... 아빠......나 어떻 하면 좋아요. 하..하.흑..흑흑... ”
때려 부수는 빚쟁이들을 온 몸으로 막다가 뿌리치는 손에 맞은 수현의 입술은 피가 터졌고 빨갛게 부어올랐다. 벽에 기대어 정신 나간 사람처럼 멍하게 눈물만 흘리는 수현.
6
술이 떡이 돼서 집으로 들어온 승우는 거실에 앉아 있는 한 회장에게 인사조차 건네지 않고 위층으로 올라가려고 한다.
“ 이름이 최수현이던가? ”
아버지의 입에서 수현의 이름이 나오자 번쩍 정신이 들어 무섭게 한 회장을 쏘아보는 승우
“ 아주 형편없는 아이 더구나. ”
“ 그렇게 말씀하지 마십시오. 수현이가 아버지한테 그런 말 들어야 할 이유 없습니다. ”
“ 그런 아이 때문에 네 성공을 포기하겠다는 것이냐? 고작 그런 아이 때문에? ”
“ 고작 그런 아이가 아닙니다. 저한테는 가장 소중한 여잡니다. 수현이겐 상처주지 마세요.”
“ 그 아이가 상처 받는 게 두려우면 내 말에 따라라. ”
“ 더 이상 듣고 싶지 않습니다. 올라가 보겠습니다.”
수현까지 알고 있다면 분명 수현을 찾아갈 것이다. 안 되는 일이다. 그런 일이 있어서는 절대 안 되는 일이다. 지금까지 살면서 아버지인 한 회장과의 트러블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자신의 생각대로 움직이고 일을 처리하는 것은 어쩔 때는 모든 일을 간결하게 해결 할 때 좋은 효과를 가져오며 지금까지 아버지가 하신 일에 대해서는 옳다고 생각 해 왔던 지라 동생 선우 보다는 순종적이지 않지만 그런대로 아들의 역할을 잘 해내고 있다고 생각했었다. 그런 아버지와 이렇게까지 얼굴 붉히며 대화하는 것도 진저리가 난다. 아들로서 이러면 안 된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알지만 수현을 생각하면 마음이 저리기에. 무엇보다 자신이 수현없이는 단 하루도 살 수 없기에.
7
어젯밤에 술을 마시고 들어와 아침에 일어나니 머리가 깨질 것 같은 통증이 느껴진다. 그래도 학교는 가야 하니 정신을 차리고 학교로 향하는 승우. 경영학과 과사무실에서 교수에게 가보라는 연락이 왔고 노크를 하고 들어간다.
“ 어~ 승우군 왔군. 어서 오게나. ”
“ 부르셨습니까. 교수님. ”
“ 자네 부친께는 연락을 받았네. 그래. 미국으로 유학을 간다고? ”
‘이런. 벌써 교수님과도 얘기가 끝나버렸군’
“ 네... 그게 아직은 정해진 게 아니라서요, ”
“ 정해진 게 아니라니? 한 회장님이 이미 모든 준비를 마쳤다고 하셨었는데. 아닌가? ”
“ 아... 네...”
교수의 방에 들어가서 대답하기가 참으로 난처했던 승우. 모든 일은 재빠르게 처리해버리고 자신이 손을 쓸 수도 없게 만들어 버린 아버지가 야속하기만 하다.
‘ 정말 가야 하는 것일까? 수현이와 헤어지고 내가 얻는 성공이라는 게 뭐가 그리 중요 하다는 건지. 수현이가 보고 싶다. 보고 싶어.... ’
갑자기 수현이 보고 싶은 마음에 유아교육과 건물로 뛰어 가는 승우. 아직은 수업 중인 득하다. 벽에 기대어 수업이 끝나기만을 기다리는 승우. 잠시 뒤에 학생들이 한 두 차례 몰려 나오 더니 경미의 얼굴이 보였고 수현의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 경미씨 ~ ”
“ 어머? 승우씨? 수현이 만나러 온 거죠? ”
“ 네.. 수현이는요? ”
“ 아..저기 그게요. 안 왔어요. 학교에. ”
“ 학교에 안 오다니. 그게 무슨 말이에요? ”
“ 저도 모르겠어요. 오늘 아침에 안 보이 길래 전화를 스무 번도 넘게 했는데 할 때 마다 꺼져 있어요. 수현이 결석 한 적 한 번도 없잖아요? ”
“ 네..그러니 이상하다는 거에요. 전화기도 계속 꺼져있고. 아~ 혹시 어제 그 사람들 때문에 무슨 일 있었나? ”
“ 그 사람들이라니요? ”
8
다급하게 택시를 잡고 수현의 집으로 향하는 승우.
[ 어제 수현이가 걱정이 있는 것 같아서 물었더니 그 전날 집에 돌아가니까 집이 난장판이 되어 있더래요. 물건이 다 흐트러져 있고. 주인아주머니가 그러는데 험악하게 생긴 남자 들이 와서 수현이 어딨냐면서 집안을 난장판으로 만들어 놨다고 하더라고요. ]
‘ 아버지야..아버지다.. 아버지가 시킨 거야.. 수현아..수현아..’
택시에서 내리자마자 있는 힘껏 뛰어 옥탑 방까지 단숨에 올라가는 승우. 현관문이 반쯤 열려 있고 안으로 들어가자 모든 물건이 사방팔방으로 널려져 있었고 부서지거나 깨진 물건들이 대부분이었다.
“ 수현아. 수현아...”
다급하게 수현의 방으로 들어가자 방 안에서 쓰러져 있는 수현을 발견한다.
“ 수현아. 수현아... 정신 차려봐. 수현아? ”
머리는 헝클어져 있고 수현의 입술은 피가 났었는지 마른 핏자국이 보였으며 입술을 매 말라 있었다. 그런 모습의 수현을 보자마자 두 손으로 안아 들고 계단을 빠르게 내려 와서는 좀 전에 타고 왔던 택시를 타고 병원으로 향한다. 택시 안에서 수현을 자신의 품 안에 꽉 안은 채 눈물을 흘리는 승우.
‘ 미안해..미안해..수현아...’
병원에서 간단한 치료를 받고 병실에 누워 있는 수현의 얼굴을 어루만지는 승우. 한 손은 수현의 손을 꽉 잡고 눈에서는 눈물을 흘린다.
‘ 나 때문에 미안해..수현아. 널 다치게 해서 미안해. 너하고 했던 약속... 영원히 너의 곁에 있겠다던 그 약속. 지키지 못 할 것 같아. 미안해.. 미안해..수현아..’
밖으로 나와 경미에게 전화 걸어 병원 위치를 알려주는 승우. 경미가 오는 것을 멀리서 지켜보다가 병실에 들어가는 것 까지 확인하고는 승우는 병원 밖으로 나와 택시를 타고 회사로 향한다. 회장실로 향하는 승우. 비서가 반갑게 인사하는 데도 받지 않고 노크도 없이 회장실의 문을 열고는 한 회장에게 다가간다.
“ 아버지 뜻대로 하겠습니다. 그러니 더 이상 수현이는 건들지 말아 주십시오. 다시 수현이 가 다치면 그 때는 다시는 아버지를 뵙지 않겠습니다. ”
큰 소리로 외치고 다시 나가는 승우를 바라보는 한 회장. 결제 서류를 들고 있던 비서실장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는다.
“ 회장님. 회장님께서는 최수현 양을 만나신적이 없...”
“ 됐네. 어찌되었든 승우가 결정을 했으니.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없네. 유학준비 계획대로 추진하게나. ”
“ 예. 회장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