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소설)-알약(9)-

임마누엘2006.04.22
조회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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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 약  -


1

 조용한 병실 안에서는 밤새 간호하다가 잠이 들어 버린 경미가 침대에 엎드려 자고 있다. 잠에서 깨어난 수현이 두리 번 거리면서 주위를 살피더니 자신의 옆에서 엎드려 잠들어 있는 경미를 발견하고는 조심스레 일어나려고 한다. 조심스레 일어난다고 했는데 작은 움직임에 잠에서 깨어난 경미가 이미 정신을 차린 수현을 보고 놀란다.

 

 

“ 깨어났어? 어휴. 몸은 괜찮아? ”

“ 응. 근데 어떻게 된 거야? 내가 왜 병원에 있어? ”

“ 어떻게 된 건지는 내가 묻고 싶은 말이다. 난장판이 된 너희 집에 쓰러져 있는 너를 승우    씨가 병원까지 데리고 왔어.  ”

“ 오빠가? 휴. 오빠가 우리 집을 봤어? ”

“ 승우씨가 강의실로 찾아 왔더라고. 네가 학교 안 나오고 전화도 안 된다고 하니까 엄청     걱정하더라. 넌 승우씨한테는 비밀로 해달라고 했지만 너랑 연락도 안 되고 얼마나 답답    하던지 그래서 그날 있었던 일 승우씨한테 말해줬더니 바로 너희 집으로 달려가더라고. ”

“하.....하.... 그랬구나..”

“ 그런데 어떻게 된 거야? 그 사람들 정체가 뭐야? 너희 집은 그렇게 폭탄 맞은 집처럼 만들어 놓고 네 얼굴은 이게 뭐야... 그 사람들이 널 때리기라도 한 거니? ”

“ 휴.. 아버지한테 남동생이 있다는 말만 들었었는데 얼굴도 모르는 삼촌이 그 사람들한테    돈을 빌려가고는 몸을 숨겨버렸대. 아버지가 살아계셨다면 삼촌대신 아버지가 갚아야 하    는 거지만 돌아가신 분한테 받을 수는 없는 거니까. 나한테 왔더라. ”

“ 뭐 그런 사람들이 다 있어? 그 돈을 왜 네가 갚아? 완전 막무가내다~ 그 돈이 얼마 길래    그렇게 집을 난장판으로 만들어? ”

“ 이천만원. 하..하..하..”

“ 이천만원? 진짜 웃기네. 그렇게 큰돈도 아닌데 겨우 이천만원가지고 집을 그렇게 만들고    너한테 폭력까지 썼단 말야? ”

“ 휴..”

세상이 끝난 사람처럼 한숨을 쉬는 수현을 보자 안타까운 경미는 수현의 어깨에 손을 얹고 잠시 생각 한다.

“ 우선 그 돈부터 갚아야지. 네가 그 동안 모아놓은 돈을 얼마나 돼? 나도 구해 볼 테니까    돈 마련해서 갚으면 되는 거지. ”

 

 

경미의 격려과 위로에도 쉽게 펴지지 않는 수현의 얼굴은 근심이 가득하다. 승우가 보고 싶다. 예전에는 너무 힘들 때 돌아가신 부모님이 생각났었지만 이제는 승우가 생각나고 보고 싶다. 그런 수현의 마음을 읽었는지 경미가 승우에게 전화를 건다. 그러나 연결이 되지 않는다. 수현의 눈치를 살피고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는 경미.


 2

 개인 사물함에서 물건들을 챙기는 승우. 이리 저리 뛰어다니면서 승우를 찾던 민섭이 사물함 앞에서 정리하고 있는 승우를 발견하고는 다가간다.

 

 

“ 야. 한승우. 너 어떻게 된 거야? 갑자기 유학이라니. 사실이야? ”

“ 왔냐? 사실이지 그럼. ”

“ 무슨 소리야? 왜 갑자기 유학을 간다는 건데? 수현씨는 알고 있는 거야? ”

 

수현이라는 말에 눈썹에 주름이 생기면서 갑자기 표정이 어두워지는 승우를 보자 알겠다는 듯이 승우를 바라보는 민섭.

“ 수현씨 한테도 아직 말 안 한 거야? 그럼 수현씨는 ? 설마 너. 말도 안하고 가려는 건 아    니지? 그렇지? ”

“ 내가 출국하기 전까지는 수현이한테 비밀로 해줘. ”

“ 그게 무슨 소리야? 그러면 안 되지. 수현씨랑 헤어지겠다는 거야? ”

 

 

 참고 있던 눈물이 더 이상 참을 수 없는지 바닥으로 떨어지는 승우의 눈물. 입술을 깨물고 참으려고 무던히 노력하는 중이었다. 그런 승우를 보자 어쩔 수 없이 자신의 생각과는 다른 유학을 간다는 것을 눈치 챈 민섭이 안타깝게 바라본다. 우리나라에서 알아주는 대그룹의 장남인 승우가 더 나은 성공을 위해 유학을 간다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것이겠지만 부유층에 자녀들과는 하는 행동에서부터 달랐던 승우가 언젠가 자신에게 유학생각은 없다고 말했던 것이 민섭에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간다. 게다가 지금은 그 누구보다도 사랑하는 여자 수현이 곁에 있는데 그 여자를 떠나 유학을 간다는 것이 승우에게 얼마나 고통스러운 일이지 대충 짐작할 수 있었다. 힘들어 하는 승우를 보는 것도 안타깝지만 정말 좋은 친구 하나 잃어버린 다는 생각에 섭섭함이 앞선다. 짐을 챙겨 준비 되어 있는 고급 승용차에 몸을 실고 떠나 버리는 승우.




3

 퇴원 소속을 밟고 있는 경미와 수현. 짐을 챙겨 택시를 잡아타고 수현의 옥탑 방으로 향한다. 벌써 며칠 째 연락이 안 되는 승우. 그 뒤로 병원에 찾아오지도 않았고 전화도 없고 전화기도 꺼져 있기만 하다. 자신에게 닥친 돈 문제, 집으로 돌아가면 난장판이 되어 있을 집이며 많은 문제들이 있지만 무엇보다도 며칠 째 연락조차 안 되고 자신을 찾아오지도 않는 승우가 걱정되고 불안하기만 한 수현. 병원에서도 말은 안하지만 승우가 오기만을 기다리는 수현을 보면서 덩달아 답답하고 마음이 아픈 경미가 행동과 말을 조심스럽게 하려고 노력한다. 집 앞에 도착해서 계단을 올라 옥상에 도착한 수현과 경미. 오랜만에 집에 돌아왔는데 너무도 썰렁한 이 분위기에 집이 낯설기만 하다. 열려 있는 현관문 사이로 들어간다.

 

“ 허~? 이게 뭐야? 완전 폭탄 맞은 집이 따로 없네.. 아 유 열 받아. ”

 

난장판이 되어 있는 집을 보자 그 날일이 생각났는지 눈물이 나는 수현. 그런 수현을 보자 들고 있던 짐을 내려놓고 수현을 안아 주는 경미.

 

“ 괜찮아..괜찮아. 수현아. 다 잘 될 꺼야. ”

 경미는 이미 망가져 버린 물건들을 밖에 옮기고 다시 쓸 수 있는 물건들을 정리하기 시작한다. 그런 경미가 어찌나 고맙던지 계속해서 눈물이 나는 수현. 수현도 정신을 차리고 집안의 물건들을 정리한다. 그 때 문을 열고 들어오는 주인아주머니.

 

 

“ 어머 왔네~ 집은 난장판이 되 있고 아가씨는 온데 간데 없길래 말도 없이 이사가버린 줄    알았어~ 어찌나 놀랐던지.. 어휴 그 생각만 하면.. ”

“ 정말 죄송합니다. 아주머니. ”

“ 그건 그렇고 어떻하지? 그렇게 두 번씩이나 깡패들이 왔다 간 뒤론 이웃 사람들이 난리가    아니야~ 무서워서 못살겠다면서. 내가 얼마나 입장이 난처한지. ”

“ 정말 죄송합니다. 다시는 그런 일 없도록 주의 하겠습니다. ”

“ 그래서 말인데. 아가씨가 방을 비워줘야겠어. ”

“ 아주머니? 소란을 피운 건 정말 죄송해요. 하지만 방을 비우라니요.? ”

“ 나도 아가씨 딱한 사정은 알겠는데. 어쩌겠어? 우리도 살아야 하는데. 우리 입장이 아주    난처해. 아가씨가 나 좀 봐줘 응? 그렇게 알고 나는 가볼게. ”

“ 아주머니.. 아주머니!!! 하...하... ”

 

기가 막히다는 듯 힘이 빠져버린 수현은 그 자리에서 주저앉는다. 주저앉는 수현을 보고 놀라 달려오는 경미는 수현을 안으며 괜찮다고 위로한다. 경미는 혼자 생각으로 이럴 때 어디 가서 연락도 안 되고 찾아오지도 않는 승우가 야속하기만 하다. 수현이 가장 힘들 때인데 사랑하는 연인이 와서 힘이 되어주지는 못 할망정 연락두절에 꽁꽁 숨어버린 승우가 미워지기까지 하는 경미.

 

 

“ 수현아. 우리 집으로 가자. 집구할 때 까지 만이라도 우리 집에 가서 같이 생활하자. ”

“ 어떻게 그래... 너희 부모님도 계신데.. ”

“ 내가 잘 말씀드려 볼게. 너도 잘 아시니까 허락해 주실 거야.  응? ”

자꾸 이렇게 신세를 지게 되는 경미에겐 미안하고 고마운 일이지만 이번에는 수현도 어쩔 수 없다. 당장 갈 곳도 없고 많이 지쳐 있는데다가 딱히 좋은 방법이 없기 때문에 경미를 따라 나서는 수현.




4

 경미의 침대의 나란히 누운 두 사람. 그러나 잠이 오지 않는다. 한 참을 뒤척인다.

“ 경미야.. 자? ”

“ 아니... 너도 잠 안 오는구나? ”

“ 응. 잠이 안와.. ”

“ 어색해서 그럴 거야. 시간이 좀 지나면 익숙해지겠지. 헤헤. ”

“ 경미야.. 승우오빠. 벌써 5일째 연락도 없고 만나지도 못했어. ”

“ 그..그래... 무슨 급한 일이 있나봐. ”

“ 무슨 일 일까? 나한테 전화 한 번 못할 정도로 급한 일이라는 게. ”

“ 곧 연락 올 거야. 걱정 하지마~  자자. 내일 학교가야 하잖아. ”

“ 응. 잘 자 ~”



5

 나란히 같이 등교하는 수현과 경미를 보자 경비 아저씨가 반갑게 맞는다. 항상 수현이 먼저 등교하고 경미가 수업 시간에 맞춰 간당간당하게 등교했는데 아침 일찍 함께 등교하는 모습이 꼭 친자매처럼 느껴진다. 도서관으로 향하는 두 사람. 이틀씩이나 학교에 결석을 하고 도서관 일도 커피숍일도 하지 못해서 마음이 석연치 않은 수현. 오늘이 벌써 6일째다. 승우와 연락이 안 되고 만나지도 못한 지. 이틀 동안은 학교에 나오지 못해서 알아 볼 수 없었지만 오늘은 자신이 승우가 다니는 경영학과에 직접 찾아가리라 마음을 먹어서 그런지 그래도 한결 마음이 가볍다. 1교시가 끝나고 1시간에 공강 시간이 있어서 그 사이에 경영학과가 있는 건물로 발걸음을 옮기는 수현. 경영학을 공부하는 곳이라 그런지 여자 보다는 남학생들이 더 많아 보였다. 약간의 눈치를 살피며 승우를 찾는 수현. 승우 대신 먼저 눈에 띄는 사람을 발견한다. 민섭이었다.

 

“ 민섭씨. ”

 

자신을 부르는 소리 쪽으로 고개를 돌려 보니 수현이었다. 수현을 보자마자 얼굴이 굳어 버리는 민섭.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강의실에서 나와 수현 앞에 서는 민섭.

“ 안녕하셨어요? 오랜만이네요.  ”

“ 네..안녕하셨어요, ”

“ 저기. 승우오빠는요? 헤. 요 며칠 째 핸드폰이 꺼져 있어서요. ”

 

 

승우의 핸드폰이 꺼져 있는 것은 당연하다. 승우가 일부러 수현의 전화를 받지 않으려고 꺼 놓았을테니. 이 상황에서 무슨 답변을 해줘야 한단 말인가.

‘ 내가 유학 가는 거 내가 출국하기 전까지는 수현이한테 비밀로 해줘.’

승우가 비밀로 해달라는 간곡한 부탁이 있었기에 어떻게 거짓말을 해야 할지 몰라 머뭇거리고 있는 민섭, 민섭이 무슨 말이라도 해주길 바라면서 애타게 기다리는 수현.

“ 교수님 심부름으로 일주일동안 세미나에 참석하러 갔어요. 지방에. ”

“ 아.. 그랬군요. 네 알겠습니다. 가 볼게요. ”

안심한 표정을 하고는 인사를 하고 돌아가는 수현을 보는 민섭의 마음이 편치가 않다. 이대로 수현과 승우가 헤어지는 것을 보고만 있어야 한다는 것이 마음 아프다. 서로 그렇게 사랑하는데 헤어져야 하다니. 갈등하는 민섭.

 

민섭과 헤어져 건물을 나와 다시 강의실로 향하는 수현. 그래도 다행이다. 교수님 심부름으로 세미나에 참석하느라 바빴던 거라면 다행이다. 괜히 불안한 마음을 가졌다고 생각하면서 후회하며 자신의 머리를 살짝 때리는 수현.

“ 잠깐만요 수현씨! ”

 

다급하게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뒤를 돌아보니 방금 헤어졌던 민섭이 자신에게도 달려오고 있었다. 숨을 고르면 힘겹게 말을 잇는 민섭.

“ 사실은요. ”




 교문을 나와 다급하게 택시를 잡는 수현.

“ 인천 공항이요. 아저씨 빨리 가주세요. ”

 

[ 승우. 오늘 떠나요. 미국으로. 유학 가는 거라 지금 못 보면 적어도 3년은 걸릴 거에요.     지금 쯤 승우도 인천 공항으로 출발했을 겁니다. 1시 비행기에요. 이제 서야 사실대로 말    해서 미안해요. ]

 

 

 그 동안 승우의 표정이 어두웠던 것도. 그 날 자신을 스탠드로 불러내서는 30분 이상 말도 없이 승우가 한 숨만 쉬었던 이유도 그 때문이었고. 뒤 돌아서서 걸어가는 승우의 모습을 보는데 알 수 없는 눈물이 났던 것도. 그렇게 불안했던 것도 승우가 자신을 떠난다는 것을 예감했던 것이었다.

 

‘ 안 돼. 안 돼 오빠. 이렇게 가는 건 아니야. 승우오빠. ’



6

 인천 공항에 도착한 승우. 그리고 한 회장과 비서실장. 굳어버린 그리고 웃음을 잃어버린 승우의 표정을 보면서 한 회장 역시 마음이 편치만은 않다. 비행기 표와 비자를 승우에게 건네는 비서실장. 아무런 표정도 없이 건네받고는 약간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한 다음 안으로 들어가는 승우. 표를 승무원에게 건네고 들어가려는 순 간 다시 뒤를 돌아 주위를 살핀다. 그럴 리는 없겠지만 혹시나. 혹시나. 수현이 있을까봐서.

 

‘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한 승 우. 수현이가 있을 리 없잖아. ’

 

뒤 돌아 수현을 생각하면서 안으로 들어가는 승우. 들어가는 승우를 보면서 그저 뿌듯한 한 회장은 비장한 표정을 짓고는 뒤 돌아서 가려고 하는데 정신 나간 사람처럼 뛰어 다니면 사람들이 얼굴을 확인하는 한 여자가 눈에 띈다. 그러나 무관심하게 지나치는 한 회장.



7

 인천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정신없이 뛰어다니면서 승우를 찾아 헤매는 수현. 승우는 그런 수현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보이지 않는다. 처음 인천 공항에 와 본 수현으로서는 어디가 어디인지 알 길이 없다. 그냥 몸이 움직이는 데로 뛰어 다닐 수밖에. 겨우 겨우 찾아 헤매다가 드라마에서 본 입구가 보여 뛰어 와보지만 승우는 보이지 않는다. 전광판을 보면서  미국행을 살펴보다가 11시 비행기 탑승이 종료되었음을 알리는 문구를 보자마자 그 자리에 주저앉아 버리는 수현.



 8

 길거리를 헤매고 돌아다니는 수현은 아무런 생각도 나지 않는다. 승우가 미국행 비행기를 타고 다른 나라로 떠나버렸다는 것을 인정하고 싶지도 않다. 왜 말도 없이 그렇게 떠나야만 했는지. 야속하기만 할 뿐이다. 정신 나간 사람처럼 온 거리를 돌아다니는 수현의 모습은 세상 다 끝난 사람의 표정을 하고 있다. 지나가는 사람들과 부딪쳐도 사과 한마디 없이 무시하고 가던 길을 계속해서 가는 수현. 그런 수현을 보며 욕을 해대는 사람들. 그러나 수현에게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단지 귀에서는 윙윙 거리는 소리가 들려올 뿐. 한 참을 돌아다니다 정신을 잃고 길거리에서 쓰러진다. 쓰러진 수현의 주위로 사람들이 몰려들고 병원으로 실려 간다.



9

 병원으로 실려 갔다는 연락을 받고 급하게 달려온 경미가 응급실 환자 중에 수현을 찾는다. 작은 침구에 힘없이 누워 있는 수현을 보자 눈물부터 나는 경미는 수현을 부른다.

 

“ 수현아. 수현아? 정신 좀 차려봐. ”

“ 가벼운 탈진 상태입니다. 안정하고 쉬시면 괜찮아 질 거고요. 오늘은 그냥 자도록 놔두시    는 게 좋을 것 같네요. ”

“ 네.. 고맙습니다. 선생님. ”

 

 

오늘은 직접 승우를 만나러 경역학과 건물에 가보겠다면서 헤어진 수현이 수업시간이 되었는데도 돌아오지 않자 수업을 마치고 경역학과를 찾은 경미는 그 곳에서 민섭에게 자초지정을 듣고는 그렇게 달려간 수현을 걱정하고 있었는데 전화도 받지 않고 자신의 집으로 돌아오지도 않는 수현을 기다리고 있었다. 한 참을 기다리고 있는데 병원에서 전화가 왔고 수현이 응급실에 실려 왔다는 말에 다급하게 달려 온 것이다.

 

‘ 충격이 컸을 텐데. 어쩌니..수현아..너한테 이렇게 힘든 일만 생겨서. ’



10

 깨어난 수현을 부축하면서 집으로 돌아온 경미와 수현. 깨어나서부터 한 마디도 하지 않는다. 침대에 누워 눈을 감아 버리는 수현을 보고 안타까운 경미는 자리를 피해주려고 밖으로 나온다. 부엌으로 가서 냉수를 마시는 경미. 자신의 소중한 친구를 저렇게까지 아프게 한 그 남자가 밉다. 무슨 사정이 있었다 할지라도 적어도 수현에게는 사실대로 말했어야 했다. 그렇게 몰래 떠나버리면 남겨진 수현은 어떻게 지내라는 말인지.

 

 

그렇게 승우가 떠난 지도 5일이 지났지만 수현은 침대에서 꼼작도 하지 않고 먹지도. 자지도 않는다. 눈만 감고 있을 뿐 잘 수가 없었다. 모든 것을 잊어버리고 싶어 자려고 누워도 잠은 오지 않고 더 또렷해지는 정신은 어쩔 수가 없었고 그러다 지쳐 잠이 들어도 꿈에서는 수현을 괴롭히는 악몽을 꾸기 때문에 1시간도 잠을 이루지 못하고 땀을 흘리며 깨어나기 일쑤다. 그런 수현을 보면서 마음이 아픈 경미는 수현의 입맛을 살리기 위해서 맛있는 음식이며 다양한 죽을 먹이려고 하지만 모든 것을 거부하기만 하는 수현.

 

“ 너 도대체 왜 그래? 먹지도 않고 잠도 안자고. 죽을 려고 작정이라도 했어? ”

경미가 큰소리로 소리치는데도 초점 없는 수현의 눈빛.

“ 네가 이런다고 승우씨 다시 돌아오는 거 아니잖아~ 이미 떠난 사람이야. 그만 좀 해. ”

 

승우의 이름이 나오자 초점이 사라진 수현의 눈에서는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힘들어 하는 수현을 보면서 마음 아픈 경미. 들고 들어 왔던 죽을 놔두고 밖으로 나간다. 핸드폰을 꺼내 병원으로 전화하는 경미.

 

“ 김 박사님. 저 경미에요. 저희 집에 좀 와주세요. 친구가 많이 아파서요. 네..네..”

전화를 끊고 방문을 바라보는 경미의 표정이 어둡다. 두 시간 뒤에 김 박사가 방문하여 수현의 상태를 체크하고는 영양제와 약간의 수면제가 부여된 주사를 놔주고 떠난다. 먹지도 않고 자지도 않는 수현에게 약기운에서라도 잠을 잘 수 있도록.


11

 주사를 맞고 오랜만에 잠을 편히 자고 일어난 수현은 다행이도 악몽도 꾸지 않았고 자는 동안은 생각 할 수 없어서 한결 편하게 잘 수 있었다. 수현도 너무 잘 안다. 자신이 이런다고 승우는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도. 이제는 볼 수 없는 먼 미국 땅에 있어서 어쩌면 다시는 볼 수 없다는 것도, 여기서 사랑이 끝났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더 아팠다. 인정하기 싫었고 부정하고 싶었다. 꿈이었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하고 또 생각하고. 먹고 싶지 않았고 자고 싶어도 잘 수 없었다. 자신의 몸의 욕구를 충족시켜주고 싶지 않았다. 그냥 이대로 잠이 들어서 깨어나고 싶지 않았다. 수현은 이런 기분을 예전에도 한 번 느껴 본적이 있었다. 부모님이 갑작스런 교통사고로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고는 지금의 수현처럼 모든 것을 끝내버리고 싶었던 시절이 있었다.

 

 

 몸을 일으켜 오랜만에 자리에 앉은 수현은 옆에 놓여 진 종이를 발견했고 그 종이에 써있는 글을 읽어내려 가면서 눈물을 쏟았다.


  수현아. 네가 지금 많이 힘든 거 알아.

  네가 얼마나 승우씨를 사랑했는지도 누구보다도 잘 아는 나지만 이젠 너무 아파 하지마.

  사랑은.. 사랑은 말야.. 코팅 된 알약 같은 거래.

  처음엔 코팅 되어 있는 부분처럼 쓴 맛이 나는지 모르고 삼키지 않고 빨아 먹다가

  나중엔 그 코팅이 벗겨져 쓴 맛을 느끼고는 괴로워하잖아.

  하지만 그 알약을 다 먹고 난 뒤에는 아팠던 몸이 서서히 낫게 되거든.

  지금의 너도. 코팅이 벗겨져 쓴 맛을 경험하고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 네가 아팠던 시간을 위로해 줄 만한 성숙이라는 단어가 찾아 올 거야.

  승우씨를 사랑했다면. 너무 아파하지만 말고

  그 시간을 행복한 추억으로 돌릴 수 있도록 노력해봐.

  소중한 내 친구 수현아.

  넌 잘 해 낼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