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소설)-알약(11)-

임마누엘2006.04.22
조회4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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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 수현아. 여기야 ”

 분위기 있는 커피 전문점에 미리 와서 자리를 잡고 있던 경미는 문을 열고 들어오는 수현을 보자 손을 들어 자신의 위치를 확인시켜 준다. 손을 흔드는 경미를 발견하고는 웃으며 다가오는 수현.

 

 

“ 많이 기다렸어? ”

“ 아니야. 한 20분정도 밖에 안 기다렸는데? ”

“ 뭐야~ 늦은 거 반성하라는 거지? ”

“ 빙고~ 어디 갔다 오는 거야? ”

“ 아.. 이력서 제출하고 오는 길이야. 생각보다 유치원 교사 채용 광고가 별로 없더라고. 이    력서를 벌써 5통이나 썼는데 연락이 안 온다. 휴. ”

“ 우리나라 이래 뵈도 청년 실업률이 꽤 높잖아. 그래서 나는 우리 아버지 회사에 홍보부에    라도 취직하려고. 요즘은 전공 살려서 취직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 랜다. ”

“ 그렇겠지. 혹시나 몰라서 나도 사무 쪽으로 이력서를 냈기는 했는데. 아직은 모르겠어. ”

“ 그럴 거면 나랑 같이 우리 아버지 회사에 넣을 걸 그랬네. 회사도 같이 다니고 좋잖아. ”

“ 너희 아버지 회사에 넣으면 100퍼센트 채용되겠지. 내 힘으로 해보는 때까지 해볼래. ”

“ 어련하시겠어요. 최수현 양. 어? 헤헤 케이크다. ”

 

 

수현이 먹던 남은 조각 케이크를 포크로 찍어서 자신의 입으로 넣는 경미. 그리고는 너무 행복한 표정을 짓는 경미. 정말이지 털털한 성격에 소유자이다. 충분히 부유하게 자랐고 집안에서는 공주처럼 자랐을 텐데 너무나 인간적인 모습을 자주 보여주는 경미를 보고 있으면 웃음이 절로 나온다. 짐을 챙겨 들고 커피 전문점을 나오는 두 사람. 너무도 다정하게 붙어 다니는 연인들을 보면서 부러운 듯 쳐다보는 경미.

 

 

“ 에 휴. 나는 언제 열렬 한 사랑을 해보나? 운명적인 사랑을 해보고 싶다. 나도. ”

“ 운명적인 사랑? 너도 너무 영화 많이 봤네. 푸하하하 ”

“ 너.. 내가 사랑 한 번 못 해봤다고 비웃는 거지? ”

“ 하하하..아..아니야. 설마 그럴 라고?  헤헤. ”

“ 영화 같은 사랑이 아니라고 해도 좋아. 그냥 드라마 같은 사랑이라도 만족하겠는데. ”

“ 참.. 영화나 드라마나 같은 거지. 그치만 그런 사랑은 대부분 슬프잖아. 그런 건 별로. ”

 

웃으면서 말하고 있지만 어딘가 모르게 슬픈 표정을 하고 있는 수현을 보자 경미는 자신이 실수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간이 많이 지난 지금에도 사랑이라는 단어는 수현에게 아픈 단어 일테니.

 

 두 사람은 3호선과 4호선이 연결 된 충무로역에서 헤어졌고 수현은 4호선을 타고 이수역 행으로. 경미는 3호선을 타고 압구정역 행으로. 갈라져 지하철에 올랐다. 지하철에 탑승한 수현은 출입문 앞에 자리를 잡고 서서 가면서 창문과 창문 사이로 비춰지는 자신의 얼굴을 보면서 마음속으로 파이팅을 외치고 있었다. 지하철이 명동역에 도착하여 문이 열렸고 내리는 사람들에게 밀려 손에 들고 있던 핸드백을 놓쳐 바닥에 떨어졌다. 몸을 숙여 핸드백을 들고 일어서려는데 열린 문 사이로 승우와 많이 닮은 남자가 사람들 사이로 지나가고 있었다. 순간 승우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반사적으로 전철에서 내려 사람들 사이로 보일 듯 말 듯 걸어가는 그 남자를 쫒아 가기 시작한다. 퇴근 시간인데다 명동이라는 번화가였으니 사람들이 많은 건 당연한 일이지만 그 사람들 때문에 그 남자를 쫒아 가는데 힘겨웠다. 뒷모습을 보면서 계속해서 뒤 따라 갔지만 커브를 돌아 찾아보니 그 남자의 흔적이 사라져버리고 말았다. 이 쪽 저 쪽이고 계속해서 두리 번 거리며 그 남자를 찾아 헤매는 수현.

 

‘ 정말. 비슷했었는데. 너무 닮았었는데. ’

 

승우가 아니 여도 좋았다. 승우와 닮은 사람이라도 좋으니 다시 한 번 얼굴을 자세히 보고 싶을 뿐이었다. 승우와 만났던 그 시간들 중에 가장 후회스러운 것은 같이 찍은 사진은 고사하고라도 승우의 사진 한 장이라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는 것이다. 보고 싶고 그리운데도 사진으로라도 볼 수 없는 그 심정. 그리워도 자신의 기억 속에 있는 승우의 얼굴만을 애타게 그려볼 수밖에 없는 그 상황. 그림을 잘 그리는 수현은 자신의 기억 속에 승우를 그림으로라도 남기고 싶은 마음에 여러 차례 그려봤지만 생각만으로는 사람의 이미지를 그려낼 수 는 있어도 그 사람의 분위기, 정확한 생김새를 그려낼 수는 없었다. 그 남자를 놓친 것이 안타깝기만 한 수현. 터벅터벅 걸어 다시 전철에서 내렸던 그 자리로 돌아와 전철을 기다리는데 핸드폰이 울린다. 저장되어 있지 않는 번호가 뜬다.

 

 

“ 여보세요? ”

“ 최수현씨 핸드폰 맞습니까? ”

“ 네. 제가 최수현인데요. ”

“ 네. 안녕하십니까? 여기는 JD 그룹 홍보부인데요. 이력서 제출하신 거 맞으신가요? ”

“ 아~ 예. 이력서 제출 했습니다. ”

“ 저희가 최수현씨 이력서는 잘 읽어 봤고요. 1차 서류심사에 합격되셨고요. 2차 면접이 남    아 있습니다. 면접 날짜는 다음 주 화요일 2시이고요. JD 5층 세미나실로 오시면 되겠습    니다. 의상은 단정한 정장을 입고 오시면 됩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

“ 네.. 네..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어쩌면 취직이 될지도 모른다. 졸업하자마자 유치원 교사로 일했었지만 악독 원장을 만나서6개월 동안 마음고생을 하다가 결국엔 그만 두고 나와 버린 뒤론 간단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다른 곳을 알아보면서 이력서를 5군데나 보냈지만 연락이 없어서 걱정하고 있었는데 아직 면접심사가 남아 있기는 하지만 최선을 다하면 뽑힐 것도 같다. 집으로 돌아오는 발걸음이 좀 점보다는 가벼워진 수현.



2

 오랜만에 웃음소리가 들리는 한 회장의 저택. 모처럼 부자지간에 많은 음식을 차려 놓고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오랜만에 돌아온 아들을 흐뭇한 표정으로 바라보는 한 회장.

 

 

“ 그래. 그 곳에서는 박사학위까지 땄다고. 하하하하하. 허허허허. 내가 윤 과장한테 이미     많은 얘기를 전해 들었다. 공부도 하면서 회사에 많은 기발하고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내    서 회사에도 많은 공헌을 했다니. 역시...허허허허. ”

“ 아닙니다. 아버지. 아직도 배워야 할 것이 많습니다. 실무 능력도 키워야 하고요.  ”

“ 그래. 그래. 선우 네가 실무 능력을 키워서 회사 일을 하면 이 에비에게 많은 도움이 될    게다. 박사학위까지 수여 받은 너를 이사자리에 앉혀도 아무도 뭐라 하지 못하겠지. 암~”

“ 열심히 하겠습니다. 아버지를 실망시켜 드리지 않도록. ”

“ 아니다. 너는 지금껏 나를 실망시킨 적이 단 한 번도 없었어. 잘 해낼 거다. ”



3

 6년 만에 한국에 돌아온 한 회장의 둘째 아들이자 승우의 동생인 한 선우. 고등학교에 졸업하자마자 호주로 가서 모든 공부를 마치고 박사학위를 따서 한국으로 돌아왔다. 모든 과정을 마치고 돌아온 아들 선우가 대견한 한 회장은 좋은 음식을 차려 선우에게 먹이고 회사에 중요한 직분인 이사자리를 내주려고 한다. 아버지인 한 회장 앞에서 유난히 순종적이고 효자인 아들이지만 실제로 선우는 욕심이 많고 야망도 크다. 둘째 아들이지만 형인 승우를 제치고 아버지의 회사를 자신이 주도자가 되어 이어가려는 야망을 가지고 있을 정도로.

 

 

 즐거운 식사가 끝나고 위층으로 올라가는 선우는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기 전에 반대편에 있는 승우의 방의 문을 열고 주인도 없는 방에 들어간다. 3년 동안이나 비어 있는 형의 방. 승우의 방을 살피다가 선우의 시야에 들어오는 것이 있다. 작은 액자에 걸려 있는 사진하나. 사진으로 남겨서 그런지 무슨 내용의 글이 적혀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림과 함께 써 있는 벽화를 연출해 내는 이 액자의 사진. 그리고 옆에 걸려 있는 또 하나의 사진. 그 사진은 장미꽃으로 하트 모양을 만들어 놓은 사진이었다. 왜 이런 사진이 형의 방에 걸려 있을지 의문이 생기는 선우.

 

“ 하트라... 하트.... 사랑하는 여자가 있었던 거야? 그런 거야? 형?  ”

 비웃는 듯한 표정의 얼굴을 하고는 선우는 승우의 방에서 나와 무려 6년간이나 주인 없이 비워 놓은 자신의 방으로 들어간다. 감회가 새롭다. 6년 전에 이 집을. 그리고 이 나라를 떠나기 전에 선우는 마음속으로 목표를 세웠고 보란 듯이 그 목표를 이루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주먹을 쥐는 선우.

 

‘ 이제부터 시작이야. 내 능력을 발휘해 보이겠어. ’



4

  점심을 먹으려고 냉장고 문을 여는 수현. 냉장고 안에는 썰렁하다. 반찬도 얼마 전에 경미가 집에서 싸온 깍두기와 나물이 전부다. 한숨을 쉬고는 냉장고 문을 닫고 이번에는 밥솥을 열어 본다. 밥도 한공기도 안 되는 분량밖에 없어 다시 한 번 한숨을 쉬고는 겉옷을 걸치고 지갑을 챙겨 밖으로 나온다.

 

“ 밥 먹고 시장 좀 봐야겠다. 요즘 내가 내 몸 관리는 너무 안하는 건 사실이니. ”

배를 만지며 배에 대고 말한다.

“ 미안하다. 이제는 제 때 제 때 잘 챙겨 먹고 관리 잘 해줄게. ”

어디로 가서 점심을 사먹을까 고민하다가 무심코 지나치려던 그 곳. 3년 전 경미의 성화에 못 이겨 나이트에 갔다가 맥주 반잔을 마시고 쓰러진 자신을 위해  아침 일찍 찾아 온 승우와 같이 해장국을 먹었던 그 곳.

“ 그래. 오늘은 그 곳으로 가서 아침을 먹자. ”

 

3년 만에 와보는 이 곳. 하나도 변한 것은 없었다. 다만 변한 것이 있다면 오늘은 둘이 아닌 혼자 이곳에 왔다는 것 밖에는. 자리를 잡고 앉아서 그 날을 회상하는 수현. 일 하시던 아주머니가 수현을 보자 묻는다.

“ 뭘로 할 거람유? ”

“ 네? 아~ 선지국으로 주세요. 맛있게요. ”

“ 우리 집은 원래 다 맛있는디. 허허허. ”

 

잠시 뒤에 주문한 선지국과 밑반찬, 밥공기가 나왔고 밥을 국에 말아서 먹기 시작했다. 3년 전 그 날 자신은 콩나물국을 시켰고 승우는 선지국을 시켜 나눠먹었었다. 그 때 그 맛이 생각나서 그런지 자꾸 눈물이 난다. 훌쩍 훌쩍 거리며 먹는 수현이 이상해 보였는지 빤히 쳐다보는 주인아주머니.

“ 왜요? 고추가 매워유? 안 매운 고추로 준다는 게 잘못 줬나 보구만. 바꿔 줄까유? ”

“ 네? 아..아니요. 선지국이 너무 맛있어서요. 정말 맛있어요. 아주머니. ”

“ 난 또. 맛있어서 우는 사람 처음 보겄네. 많이 들어유. ”

“ 네.. ”

 

수현은 맛있게 점심을 먹고 승우를 떠올릴 수 있었던 짧은 시간이 행복하게 다가온다. 장을 봐야겠다는 생각에 근처에 있는 대형 할인매장으로 향한다. 여유롭게 장을 보는 수현.



5

 “ 이사님. 저희는 최고의 제품만을 취급하고 있습니다. 식 제품은 모두다 유기농으로 배치되어 있으며 이틀이 지나면 고객님들께 판매하지 않고 있습니다. 각 종 식료품들 마다 고객님들을 위한 시식 코너를 마련해 소비자들로 하여금 제품을 구입하도록 유도하고 있고요. ”

 

 

“ 매장 청결은 잘 되고 있는 건가요? ”

“ 아~ 그럼요. 고객님들이 자주 오시는 시간 때를 피해서 자주 청소를 하고 있습니다. ”

“ 직원들은 고객들에게 최대한 친절해야 한다는 거 아시죠? ”

“ 예 그럼요. 이곳 직원들에 교육을 철저히 하고 있습니다. ”

 

 

 어제부터 회사에 첫 출근하여 실무 상황을 익히고 있는 선우는 오늘은 식품매장에 실무 상황을 파악하고 있는 중이다. 선우가 회사에 입사하기 전까지 여러 가지 소문이 많았다. 천재라고 불리던 한 회장의 둘째 아들이 6년만에 유학생활을 마치고 박사학위까지 수여받고 한국으로 돌아와 경영 후계자 교육을 받으려는 중이며 그 후계자 교육의 첫 번째가 이사로서의 역할을 얼마나 잘 감당해 내는지에 대한 것이라는 소문들이 순식간에 퍼져나갔고 어제부터 첫 출근한 선우는 회사 직원들에게 얼굴을 보여 화제가 되고 있었다.



 6

 여유롭게 장을 보고 있던 수현. 그 때 어머니로 보이는 여자와 장을 보고 있던 어린 아이가 통로를 휘저으며 뛰어오다가 수현을 밀쳐서 중심을 못 잡고 비틀거리다 옆에 있던 시식코너의 음식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잠시 그 자리를 비운 직원이 멀리서 그 모습을 보고 놀라서 뛰어와 엉망진창이 되어버린 음식이며 바닥이며 그 주변 환경을 보더니 수현을 본다.

 

“ 손님. 조심하셨어야죠. 이렇게 되면 저희가 손해가 얼마나 큰지 아세요? ”

“ 네? 아.. 죄송합니다. 제가 균형을 못 잡아서 그랬어요. ”

미안한 마음에 엉망이 된 진열장과 바닥에 떨어진 음식과 물건을 줍기 시작했다.

“ 됐어요. 제가 할 테니 저리 비키세요. 여 휴. 정말 내가 못 살아. ”

 

줍고 있던 수현을 뿌리치고 서둘러 치우는 직원. 미안하고 난감한 수현은 그래도 옆에서 치우는 것을 돕는다.

“ 아 유. 됐다니까요 ! 하시던 일이나 계속 하세요. ”

“ 정말 죄송합니다. 제가 일부러 그런 건 아니구요. ”

 

실무 상황 파악을 위해서 매장에 나와 있던 선우가 갑자기 소란스러워진 매장 안을 살펴  보다가 직원과 손님으로 보이는 한 여자가 바닥에 떨어진 물건들을 줍고 있는 것을 발견하고는 그 쪽으로 향한다.

“ 정말 죄송해요. 제가 변상해 드릴게요. ”

“ 변상이요? ”

그 여자 직원은 수현이 장을 보던 것을 살펴보더니 어의가 없다는 표정을 하고는

“ 됐습니다. 장보러 오신 것 같은데. 여긴 고가의 제품들이 진열되어 있어요. 손님이 원하시    는 물건은 이쪽에 없는 것 같으니 저기 세일하는 곳으로 한 번 가시죠? ”

“ 뭐라고요 ? ”

“ 무슨 일입니까? ”

 갑작스런 선우와 과장의 등장에 놀라는 여자 직원.

“ 과장님. 아..이 손님께서 넘어지시는 바람에 시식 코너의 음식들이 바닥에 떨어졌습니다.    그래서 제가 괜찮다고 말씀드리고 있던 중이었습니다. ”

 

표정 하나 안변하고 말을 조작해서 하는 그 여직원에 말에 어의가 없어 기가 막힌 수현.

 

“ 제가 듣기론 손님한테 화를 내시는 것 같았는데요. 아닌가요? ”

그 여직원의 말을 단번에 자르면서 직원을 추궁하는 선우.

“ 손님 분께 사과하십시오. ”

“ 아닙니다. 저도 잘못했는데요. 사과는 필요 없습니다. ”

라고 말하면서 뒤 돌아있었던 몸을 돌려 선우를 보는 수현은 자신의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남자였다. 승우와 얼굴이 닮은 그 남자. 놀란 표정으로 선우를 바라보는 수현. 잠시 시간이 멈춘 것 같은 기분이었다.

 

“ 죄송합니다. 손님. 말 함부로 해서. 정말 죄송합니다. ”

 

 

여직원의 사과도 들리지 않았고 그 장소에 있던 다른 사람들의 얼굴도 보이지 않았다. 오직 자신의 앞에 서있는 이 남자. 승우와 너무나도 닮은 이 남자밖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마치 3년 만에 승우를 만나기라도 한 것처럼. 얼마나 보고 싶었던 얼굴이었는지. 말로는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그리웠던 이 얼굴. 이 남자를 보자 눈물이 나오려고 한다. 하지만 입술을 질끈 깨물고 참아 본다. 모든 상황이 종료가 되자 실무 파악 중이던 선우는 그 자리를 떠나 다른 곳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멀어져 가는 뒷모습. 3년 전 마지막으로 스탠드에서 승우가 걸어가던 뒷모습을 보는 듯 했다. 선우를 따라가는 수현.

 

“ 저기요. 잠깐만요. ”

 

 

뒤에서 뛰어와 자신의 팔을 잡아 버리는 좀 전에 그 손님. 갑작스런 이 여자의 행동에 놀라는 선우. 옆에 있던 실무과장도 놀란 눈치다.

 

“ 더 하실 말씀이라도 있으십니까? ”

 

자신의 팔을 잡아 놓지 않고는 조금만 건드리면 바로 눈물이 흘러내릴 것 같은 눈을 하고는 자신을 바라보는 이 여자. 무슨 일 일까. 선우는 잠깐이지만 이 여자의 눈망울이 심하게 흔들리는 것을 발견했다. 그 모습이 너무 안타깝고 슬퍼 보여 오늘 처음 본 이 여자를 안아서 다독여 주고 싶을 만큼 선우의 마음이 심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 아...아닙니다. 죄송합니다. 제..제가 사람을 잘못 봤네요. ”

 

잡고 있던 선우의 팔을 서서히 놓고는 뛰어가 버리는 수현.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는 선우와 실무과장. 급하게 뛰어 가더니 이내 진열대 뒤로 몸을 숨겨 버리는 그 여자를 한동안 바라보다가 실무과장의 재촉에 다시 걸음을 옮기는 선우. 그러면서도 계속 뒤를 돌아본다.




7

 공원 의자에 힘없이 앉아 있는 수현. 사람들도 많이 지나다니지 않는 시간이다. 조금은 멍한 표정을 하고 무언가 골똘히 생각하는 듯하다. 경미가 수현을 발견하고는 뛰어온다.

“ 뭐야~ 날씨도 쌀쌀한데 집으로 오지 않고. 여기서 보자고 하고. ”

수현에게 장난스러운 말투로 말을 걸었지만 대답이 없는 수현을 보고는 표정을 살피기 시작한다. 뭔가 다른 표정을 읽고는 조심스럽게 수현의 옆자리에 앉는다.

 

 

“ 왜~? 무슨 일 있었어? ”

“ 경미야. ”

“ 응. 그래. 말해봐. 무슨 일인데 그렇게 표정이 심각해? ”

“ 나 말야...나...”

“ 응.. 말해봐 속 시원하게~ ”

“ 꿈을 꾸고 있는 것 같아. 꿈을... ”

“ 꿈? 네가 요즘 잠을 제대로 못 잤구나?  헤헤. 그렇지? ”

“ 경미야... 근데 말야. 꿈이라면...이게 꿈이라면 깨어나지 않았으면 좋겠어. ”

장난도 아니고 농담도 아니다. 지금의 수현의 표정은 진지하고 심각하다. 무슨 일인지 모르는 경미는 갑자기 수현이 걱정되기 시작한다.

 

 

“ 무슨 일 있었구나? 무슨 일이야.. 응? ”

“ 오빠를 봤어. 오빠를.. ”

“ 뭐? 오빠? 무슨 소리야? 승우씨를 봤다고? ”

“ 아니.. 오빠가 아니야. 오빠가 아니고. 오빠랑 똑같은 얼굴을 한 사람을 봤어. ”

“ 똑같은 얼굴이라니? 닮은 사람을 봤다는 거야? ”

“ 정말.. 비슷했어. 눈썹도. 눈도. 코도... 체형도..너무 비슷했어.. ”

“ 수현아...... 승우 씨가 많이 보고 싶은 거야? 그래? ”

 3년이나 지났는데도 가끔씩 승우를 못 잊고 힘들어 하는 수현을 보면 가슴이 아프다. 이제는 잊을 때도 됐는데. 이제는 괜찮아질 때도 됐는데. 이토록 아직도 아파하다니. 수현을 안아주는 경미.

“ 괜찮아. 괜찮아. 수현아. 네가 너무 그리워 하니까. 얼굴이라도 한번 보라고 하나님이 잠    깐 보여주신 건가봐. ”







-  10월 1일 수요일  -

승우오빠. 나 오늘 오빠랑 너무 닮은 사람을 만났었어.

혹시나 오빠 일까봐서 다급하게 뛰어가 그 남자 옷자락 잡았는데.. 아니더라고...

오빠였으면 좋았을 텐데. 얼굴은 닮았는데 뭔가 다른 사람 같았어. 오빠를 만났다는 기쁨에 뛰어가는 동안 사실..나 참 행복했는데... 아니라는 생각에 눈물 나서 혼났어.

모르는 사람 앞에서 울면 이상한 사람이라고 생각할까봐서 고개 숙인 채로 달려 나왔는데

오빠가 아니라도 좋으니까 한 번만 더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 참. 바보지?

알아. 나 바보라는 거. 내 마음 조절하나 못하는 바보라는 거..

근데. 오빠 이름만 들어도. 오빠가 남기고 간 추억만 생각나도. 오빠를 닮은 사람을 봐도. 눈물이 나는 걸...어떻해...? 이러는 난.. 어떻해야 해?

점점 줄어 가겠지? 오빠가 읽지도 못하는 편지를 쓰는 일도...

처음엔....거의 매일 매일 쓰던 편지였는데

이제는....이렇게 오랜만에 쓰게 되니까..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오빠에게 남기는 이 편지는....횟수가...줄어들겠지?.

그리고 어쩌면....더 오랜 시간이 흘러... 이 편지를 오빠에게 보내지 못한 채..

거품처럼.... 사라져버릴지도 모를 거야....

그리움에서...... 그냥...하나의 기억으로...남은 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