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부터 마음이 들떠 있는 수현은 어젯밤에 난생 처음 황토 팩을 해서 그런지 거울에 비치는 자신의 피부를 보면서 만족스러운 듯 웃어 보인다. 마르지 않은 머리카락을 자연 바람으로 말리기 위해 현관문을 열고 난간에서 바람을 온 몸으로 맞고 있었다. 공기가 오염된 서울 하늘의 공기라지만 바람과 함께 불어올 때면 평소에는 느낄 수 없는 시원함과 개운함을 느낄 수 있어서 좋았다. 자연바람의 의지해 젖은 머리카락을 말리고 있을 때 대문을 열고 경미가 들어선다. 오래 된 대문이라서 그런지 문을 열고 닫을 때 마다 마찰이 생겨 시끄러운 소리가 나는 게 귀에 거슬리지만 경미의 등장에 웃음꽃을 피우는 수현.
“ 나와 있었네? 나 기다린 거야? ”
“ 헤헤. 그런 거라면 감동 받겠지 네가? ”
“ 당근이지. ”
“ 근데 어찌지? 머리 말리려고 나온 건데. 헤헤 ”
“ 빈말이라도 일부러 나와서 나를 기다렸다고 하면 어디가 아프지? 나참. 나는 친구 면접 본다 길래 아침부터 달려 왔구만. ”
“ 하하. 알았어. 알았어~ 들어가자~ ”
살짝 삐친 표정을 지어 보이자 수현이 살살 경미를 달래며 집으로 들어간다. 집으로 들어선 경미는 수현의 방으로 들어간다. 침대에 널 부러져 있는 옷들이며 장롱 문은 활짝 열려있는 것을 보고는 한숨을 쉬는 경미.
“ 뭐 입고 갈지는 정했어? ”
“ 깔끔하고 단정한 정장차림으로 오라던데. 어떻게 입을지 못 정하겠어. ”
“ 내가 오늘 머리에서부터 발끝까지 새 단장 시켜주마. 헤헤헤. 기대하시라~ 머리를 다 말 랐지? 머리 말아야 하니까 완전히 말려야 돼. ”
“ 응. 다 마른 것 같은데? ”
수현의 머리카락을 만져보는 경미는 침대에 앉고 수현을 자신의 앞바닥에 앉힌다. 가져온 세팅기를 꺼내 머리를 만지기 시작하는 경미. 마치 이 순간만큼은 자신이 헤어 디자이너가 된 것처럼 능숙하게 수현의 머리를 만진다. 수현의 화장까지도 손수 해주어 분위기를 바꿔 놓는 경미.
“ 자~ 이제. 옷만 입으면 완성되겠다. 음..정장이라... 이옷이랑 저 치마를 같이 입으면 어울 릴까? 이게 더 낫겠다. 수현아. 이걸로 입어봐. 머리 망가지지 않게 조심하고 ”
정말 머리에서부터 발끝까지 다 알아서 자신을 꾸며주는 경미에게 웃어 보이며 코디해준 옷을 입고 거울 앞에 선다. 완전 딴 사람이 된 기분이다. 자신이 꾸미고 화장할 때와는 다른 분위기를 연출해 내는 재주가 경미에겐 있는 듯 했다.
“ 어때? 마음에 들어? 예쁜 것 같아? ”
“ 응. 분위기가 싹 달라졌어. 1시간 전이랑 너무 다른데? 고마워~ ”
“ 쑥스럽게 고맙긴. 암튼 오늘 면접 꼭 잘 봐서 꼭 붙어라~ 거기 회사 탄탄하다고 하더라.”
“ 응. 최선을 다해야지. ”
2시까지 도착해야 하기 때문에 1시간 전에 나와서 지하철을 탄다. 삼성역에 도착하여 지하철 내에 화장실에 잠시 들리는 수현. 화장이 지워지지는 않았는지 머리가 망가지지는 않았는지 살피고는 밖으로 나온다. JD그룹 건물 앞에 도착한 수현은 마음을 가다듬고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간다. 들어가는 순간부터 뛰기 시작하는 심장 소리 때문에 온 몸이 떨릴 정도이다. 안으로 들어가자 넓게 펼쳐진 로비는 현대식으로 세련되게 잘 꾸며져 있었다. 이런 큰 건물에 들어온 건 이번이 처음이라 신기하기만 한 수현. 두리 번 거리다가 급하게 닫히려고 하는 엘리베이터에 올라탄다. 5층에서 문이 열려 내려서 표지판을 확인하는 수현은 세미나실이라고 쓰여진 표지판을 따라 긴 통로를 걸어간다. 통로가 끊기고 약간 넓은 공터가 나오더니 정장차림에 많은 사람들이 의자에 앉아 기다리고 있었다.
‘ 아~ 저 사람들도 면접을 보러 온 거구나. ’
면접을 보러 온 정장 차림에 사람들을 보고 나니 더 더욱 심장이 크게 뛰고 있었다. 괜히 화장실도 가고 싶었고 이상하게도 커 보이고 멋있어 보이는 사람들에게 주눅들 정도로 분위기가 엄숙했다. 시계를 보니 아직 시간이 남아 있어서 화장실을 찾는 수현. 찾아도 찾아도 화장실이 보이지 않아서 헤매고 있는데 비상구라고 쓰여 있는 문이 살짝 열려 있어서 문을 열고 계단이 있는 곳으로 나왔다. 사람들이 모여 있는 그 공터에서 벗어나니 한결 살 것 같았다.
“ 안녕하십니까? 저는 최수현 입니다. 한국대학교 유아교육학과를 졸업 했구요...아..이게 아닌데. 어 휴 떨려~ 뭘 물어 볼까? 뭐라고 대답해야 하지? ”
2
책상 앞에는 ‘이사 한선우 ’ 라고 쓰여진 팻말이 놓여져 있고 컴퓨터 앞에 앉아 무언가 정리하고 있는 선우. 잠시 후 노크소리와 함께 김 비서가 서류를 들고 들어온다.
“ 이사님. 오늘은 JD건설 이부장님과 오후 7시에 저녁 만찬이 있으십니다. 이부장님께서는 저녁 만찬을 중에 이번 재개발 계획에 대한 서류를 지참하셔서 간단한 부리 핑을 해 주신다고 합니다. 그리고 잠시 후 오후 2시부터는 정기 채용 면접이 5층 세미나실에서 있 습니다. 오늘 면접을 통하여 채용된 직원들은 각각 홍보 마케팅부와 기획개발팀으로 배정 될 예정입니다.”
“ 알았어요. 5층 세미나실이라고 했나요? 심사위원은 누가 하시죠? ”
“ 각 부서 과장님 두 분과 기획 실장님이 하시게 됩니다. ”
“ 그래요? 그럼 한 번 둘러보도록 하죠. 준비해주세요. ”
“ 네. 이사님. ”
3
김 비서와 함께 5층에 도착한 선우는 긴 통로를 걸어가다가 반쯤 열려 있는 비상문 쪽에서 들려오는 여자 목소리를 듣고는 걸음을 멈추고 살짝 그 안을 들여다본다. 뒷모습밖에는 보이지 않지만 무언가 열심히 연습하고 있는 듯 했다.
“ 안녕하십니까? 저는 최 수 현이라고 합니다. 오늘 날씨가 바람이 살짝 부는 시원함을 느 끼게 해주는데요. 심사위원님들께서는 상쾌한 공기의 바람을 느끼시면서 출근 하셨습니 까?... 아 휴.. 이건 너무 아나운서 흉내 내는 것 같잖아. 그냥 간단하게 인사만 할까? ”
면접을 보러 온 여자인 듯하다. 다른 사람들이 없는 이곳에서 따로 인사말을 연습하고 있는 모습이 열정이 있어 보여 좋게 느껴진다. 그 때 고개를 살짝 돌려 비상문을 향해 돌아선 수현을 보고는 어디서 본 여자라는 생각을 하는 선우.
‘어디서 봤던 얼굴인데 ? 누구더라 ? ’
갑자기 걸음을 멈추고 비상문으로 보이는 한 여자를 지켜보고 있는 선우를 보며 재촉 하듯 말을 꺼내는 김 비서.
“ 이사님. 세미나실에 가셔야 하는데요. ”
그제 서야 눈치가 보였는지 머쓱한 표정을 짓고는 다시 걸음을 옮기는 선우. 걸어가면서도 어디서 본 얼굴인지 생각하기에 바쁘다. 그러나 생각나지 않는다.
4
수현은 면접시간이 되어 세미나실로 들어갔고 초반에 조금 떨기는 했지만 심사위원들에 질문에 재치 있게 답변했고 5분에서 10분정도 걸린 면접시간을 마치고 밖으로 나온다. 시계를 보니 정확히 8분정도 걸렸지만 8분이 80분처럼 느껴진 것은 부인할 수 없었다. 웃으면서 답변하기는 했지만 속으로는 떨고 있었으니 말이다. 회사에서 나와 집으로 돌아가는 그 시간이 그렇게 편할 수가 없었다. 집에 가서 침대에 눕고만 싶었다. 너무 긴장한 탓인지 몸에 기운이 하나도 없었으니. 집으로 돌아와 바로 침대에 누워버리는 수현. 침대에 누워 한 참을 있었지만 이른 시간이라 잠은 오지 않았다. 낮잠이라도 푹 자고 싶었으나 낮잠을 자는 버릇을 들이면 나중에 피곤해지니까. 일기를 써야겠다는 생각에 일어나 책상 서랍에 넣어둔 다이어리를 꺼내는 수현. 책상에 앉아 다이어리를 열어 본다. 다이어리 속에 끼어져 있는 사진 세장을 발견한다. 3년 전 승우가 자신의 생일날에 선유도 공원으로 데리고 가서 깜짝 이벤트 해준 사랑의 시가 적인 벽화와 장미꽃으로 만든 하트의 사진. 그 것을 배경으로 삼고 포즈를 취하고 있는 자신의 모습에 사진이었다. 오랜만에 보는 사진이었다. 요즘 일기를 쓸 시간과 마음의 여유가 생기지 않아 서랍에 넣어두고는 한참을 꺼내지 않았으니 말이다. 그 사진 속에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참 행복해 보인다는 생각을 하는 수현.
‘ 내 얼굴에서 빛이 나. 너무 행복하게 웃고 있어. ’
그리고는 오랜만에 열어 본 다이어리에 오늘 날짜의 일기를 쓰기 시작한다.
- 10월 15일 화요일 -
내가 가장 예뻤던 때는....
아마 그 때 일겁니다.
여자가 사랑을 하면 가장 아름다워지니까요.
얼굴이 예쁘게 생겼다거나, 이목구비가 뚜렷하다거나, 멋있다거나,
그런 의미가 아닌.. 가장 행복한 미소를 지을 수 있기에
나는 아마도 그 때가 가장 예뻤을 겁니다.
조금은 시간이 지난 지금에 와서야..
예전에 찍었던 내 모습이 담긴 사진을 보면서뒤늦게 깨닫게 되었습니다.
재미있는 코미디 프로그램을 보면서 즐거움에 웃는 웃음과는 달리..
인위적으로 내가 만들어 낸 어색한 웃음과는 달리..
나는 마냥..
단지 행복해서..웃고 있었습니다.
세상을 다 가진 사람처럼.
그 누구도 부럽지 않는 사람의 표정을 하고는..
나는 마냥..
평안한, 행복한 미소를 지어보였습니다.
내가 다시 그때처럼. 예쁘게 웃는 날이 언제쯤 오게 될까요?
내가 다시 그때처럼..
환하게 ..그리고 행복하게 웃는 날은 언제 일까요?
5
지루하고 길기만 했던 회의가 끝나고 모두가 나간 선우의 사무실. 책상에 앉는 선우는 회의를 시작하기 전부터 시작된 투통이 나아지지 않자 슬슬 짜증이 난다. 자신의 원하는 방향으로 일은 진행해 나가고 싶었지만 아직은 회상에서 입지가 굳지 않아서 그런지 무조건적으로 자신의 말을 수용하는 분위기 아니고 어리다는 게 마이너스가 되는 것 같았다. 사무용 의자에 앉아 고개를 뒤로 기대고 눈 주위를 지압하는 선우. 노크하는 소리가 드렸고 이어 김 비서가 서류를 들고 들어왔다.
“ 이사님. 말씀 하신 프레젠테이션 준비 자료입니다. ”
“ 놓고 나가요. ”
기분 상태도 안 좋고 몹시 피곤해 보이는 선우가 걱정스러운 김 비서가 선우를 바라본다.
“ 이사님. 어디 불편하십니까? ”
“ 나가. 나가랬잖아. ”
“ 예. 죄송합니다. 그럼. ”
직접적인 말이 아니더라도 그 말투에 억양에서 그 사람의 의도가 보이는 것이 말인데 회의에서 자신보다 나이가 많은 부하직원들이 자신의 생각에 방해하는 것이 몹시 언짢았던 선우는 무서운 눈빛을 보인다. 다시 바쁘게 일하는 선우. 오랜 시간이 지나 퇴근시간이 다 되었는데도 끊임없이 일을 하고 있는 선우를 보는 김 비서. 직장 상사이기에 걱정도 되고 만난지 며칠 되지 않았지만 능력 있고 재력, 인물도 갖춘 선우가 마음에 든다. 모두가 퇴근한 시간임에도 선우가 퇴근하지 않자 덩달아 하지 않는다. 저녁 9시까지 사무실에서 프레젠테이션을 준비하고 있는 선우. 노크 소리가 들렸고 문을 열고 김 비서가 들어온다. 아직까지 퇴근하지 않은 김 비서를 보면 놀란 모양이다.
“ 이사님. 퇴근 안하십니까? ”
“ 나는 아직 할 일이 더 있으니 먼저 퇴근하도록 하세요. ”
“ 이사님. 요즘 피곤해 보이십니다. 영양제 사왔는데 드시고 하십시오. ”
영양제를 사왔다는 김 비서의 말에 재미있다는 얼굴로 김 비서를 바라보는 선우. 갑자기 일어나서는 김 비서에게 다가온다. 김 비서의 뒤로 와서는 어깨에 손을 올리고 몸을 밀착하는 선우. 선우의 손이 김 비서의 허리에 다가가고 그 손은 허리에서 점점 위로 올라온다. 그리고 선우는 김 비서의 귓가에 작고 조금은 거친 신음소리를 낸다. 자신의 가슴으로 올라오는 선우의 손을 뿌리치지도 않고 기다렸다는 듯이 그대로 맞이하고 있는 김 비서를 보면서 더욱 더 재미있다는 표정을 짓는 선우. 선우의 손이 가슴에 거의 다다랐을 때 이제는 김 비서의 손이 승우의 팔을 붙잡고 유혹한다. 점점 더 밀착하는 선우. 김 비서의 귓가에 속삭인다.
“ 이봐. 상대를 잘못 찾았어. 미인계를 쓰려면 좀 더 괜찮은 얼굴과 몸매로 접근을 했었야 지. 안 그래? 세상에 널린 게 잘빠진 여잔데 내가 당신한테 만족할 순 없잖아? 내가 나갔 다 왔을 때는 당신 얼굴 안 봤으면 좋겠군. ”
그 말을 남기고는 문을 열고 사무실 밖으로 나가버리는 선우. 기가 막히고 분하다는 얼굴로 뛰쳐나간다.
6
“ 여보세요? ”
“ 최수현 씨 핸드폰 맞으신가요? ”
“ 네 . 맞아요. ”
“ 최수현씨 되십니까? ”
“ 네. 어디시죠? ”
“ 여기는 JD 그룹 개발기획팀 인데요. 최수현씨께서 이력서를 내실 때 지원을 홍보 마케팅 으로 하신 걸로 알고 있는데 맞으신 가요? ”
“ 예. 맞습니다. ”
“ 우선 죄송하다는 말씀드리겠습니다. 원래는 합격을 하시게 되면 지원하신 부서에 배정이 되는데요. 저희 회사에서 이번에 개발기획팀이 새롭게 조가 편성이 돼서 인원이 부족 한 상태입니다. 그래서 양해에 말씀 구하려고 연락 드렸는데요. 개발 기획팀에 입사 하시는 것은 괜찮으십니까? ”
“ 개발 기획팀이요? 주로 어떤 일을 하게 되는 건가요? ”
“ 아이디어를 개발하고 기획하면서 제작까지 하시게 됩니다. 괜찮으시겠습니까? ”
“ 네..뭐.. 괜찮습니다. ”
“ 그러면 내일부터 개발 기획팀으로 8시까지 출근하시면 됩니다. 좋은 하루 되십시오. ”
이내 전화가 끊겼고 지원한 부서에는 입사하지 못하지만 우선은 취직이 되었다는 기쁨이 앞섰다. 내일부터 아르바이트가 아닌 정규직으로 일하게 되는 것이다. 이곳에서는 열심히 하겠다는 다짐을 하고는 편안하게 잠자리에 드는 수현.
알람소리에 깨어나 아침부터 부산하게 움직이는 수현. 이제는 늦장을 부릴 시간과 여유가 없어졌다. 오늘이 첫 출근이니 회사 직원들을 처음 만나는 자리가 될 텐데. 지각은 하면 안 되는 거니까. 기쁜 마음으로 건물 입구로 들어서는 수현. 그런데 건물 안이 어수선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사람들이 모여 있고 한 여자가 고래고래 소리친다. 경비로 보이는 남자들이 그 여자를 밖으로 끌고 나가고 있었다.
“ 한 이사. 당신 이러는 거 아니야. 당신이 나한테 먼저 접근했잖아. 근데 내가 왜 이런 부 당한 일을 당해야 돼? 엉? 당장 한 이사 불러와. 나오라고 하라고. 한 이사. ”
그 모습을 지켜보던 수현은 도대체 무슨 일이 길래 저 여자가 저렇게 화를 내는지 알 수 없었지만 지각을 하지 않기 위해 서둘러 엘리베이터를 탄다. 7층을 누르는 수현. 같이 엘리베이터에 탄 여직원들이 수근 거린다.
“ 김 비서님 말야. ”
“ 김 비서님은 무슨. 이제 완전 목 날라 갔는데 뭘. ”
“ 이사님이랑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
“ 아까 소리치는 거 봤지? 완전 독한 여자라니까~ 말은 이사님이 자기한테 접근했다고 하 지만 분명히 먼저 꼬리 쳤을 거야. ”
“ 하긴. 이사님이 뭐가 아쉬 워서 비서랑 연애를 하겠어? ”
“ 그러게 말야.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 ”
4층에서 문이 열리고 두 여직원이 내리면서 수현의 어깨를 툭 치고 내렸다. 그 바람에 들고 있던 서류를 바닥에 떨어뜨렸고 주으려고 몸을 숙이는 사이에 선우가 그 엘리베이터에 탄다. 다시 몸을 일으켜 서류를 정리하는 수현. 뒷모습만 보이는 방금 탄 남자는 키가 정말 크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7층에서 문이 열렸고 그 남자도 내렸다. 성큼성큼 걸어가 버리는 남자. 주위를 두리 번 거리다가 겨우 표지판을 보고 기획 개발팀의 사무실을 찾은 수현. 문을 열기 전에 숨을 고르게 가다듬고 조심스레 여는 수현.
“ 안녕하십니까? 이번에 새로 입사하게 된 신입사원 최 수 현입니다. ”
수현의 등장에 모두들 웃으면서 맞아 주었고 그 중에 가장 나이도 있고 높아 보이는 남자가 다가오더니 악수를 청한다.
“ 반가워요. 최수현 씨. 잘해봅시다. ”
어떨 결에 악수를 받고는 어색한 웃음을 짓는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남자 직원이 장난스럽게 말한다.
“ 에이. 과장님. 행동 너무 빠르시다~ 벌써 신입사원 손도 잡아 보시고. 너무 티 납니다.”
“ 그래. 내가 좀 너무 티를 냈나 보군. 허허허허 ”
직원 전체가 웃으면서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니 수현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지는 것 같았다. 수현의 자리를 안내해주는 여직원. 그 여직원의 이름은 현정이다. 처음 입사해서 일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하는 수현에게 자세하게 친절하게 가르쳐 주고 어디를 가든지 항상 챙겨준다. 처음에 홍보 마케팅에 지원했지만 이곳으로 발령받은 것도 나쁘지만은 않은 것 같았다. 그렇게 수현의 첫 출근이 시작되었다.
7
“ 수현씨. 짐 챙겨서 외근 나갈 준비해요. ”
“ 네? 외근이요? ”
“ 동작지사 좀 다녀와야 할 일이 생겼어요. 장현정씨가 길 잘 아니까 따라가면 될 거에요”
“ 네. 다녀오겠습니다. ”
수현과 현정은 동작지사로 가기 위해서 지하철을 이용했다. 전철을 타고 가는 중에도 현정은 알게 된지 얼마 안 되었는데도 편안하게 주제를 자신이 먼저 말하고 대화를 즐겁게 이끌어 가는 재주가 있었다. 가는 동안에도 지루함을 느끼지 못 할 정도였으니 말이다. 동작지사에 도착한 수현과 현정은 사무실을 찾아 실무 당담자를 만나려고 했으나 자리가 비어 있었다. 실무 담당자가 올 때까지 기다리게 된 수현과 현정은 의자에 앉아서 기다린다. 잠시 후 사무실에서 한 여직원이 다가와 현정에게 컴퓨터에 대한 도움을 요청했고 요청에 따라 컴퓨터의 전문적인 기술을 알려주고 있다. 그 때 수현의 핸드폰에서 전화가 온다.
“ 여보세요? ”
“ 안녕하십니까? 고객님의 전화 요금이 연체되었습니다. 오늘 오후 4시까지 가까운 은행에 납부해 주십시오. ”
미리 녹음된 여자 목소리의 전화였다. 매달 자동이체로 되어 있던 것을 회사에 취직하면서 은행을 바꿨다는 것을 깜박 있고 있었다. 컴퓨터를 열심히 만지고 있는 현정에게 말하고는 건물을 빠져 나와 은행을 찾는 수현. 10분쯤 걸어가다 보니 은행이 보였고 은행 계좌 번호를 바꾸고 현금지급기에서 돈을 찾아 지갑에 넣는다. 은행에서 나오던 수현은 길거리에서 과일을 놓고 팔고 계시는 할머니를 발견했다. 다가가는 수현.
“ 할머니. 귤 어떻게 해요? ”
“ 아이고. 아가씨. 귤이 아주 맛도 좋고. 씽씽한 게 많이 줄게. ”
“ 음. 3천원워치 싸주세요. ”
“ 뭐라고? ”
“ 할머니. 3천원이요. ”
귀가 잘 안 들리시는지 대 묻는 할머니를 보니 괜히 마음이 안 좋다. 날씨는 쌀쌀한데 이 곳에 나와 과일을 파시는 할머니. 동작구 중에서도 고층이 몰려 있는 이 지역에서 장사를 하면 잘 안 될 것이라는 것을 알기에. 귤을 사서 인사를 하고 뒤 돌아 다시 사무실로 돌아가려던 수현. 그 때 뒤에서 뭔가 요란한 소리가 들려서 뒤를 돌아보니 차에 짓밟힌 할머니의 과일들. 내동 강이 쳐버린 과일 소쿠리. 당황해서 어쩔 줄 몰라 하시며 과일들을 하 나 하 나 줍는 할머니의 모습을 보고는 놀라서 뛰어간다.
“ 할머니. 괜찮으세요? 다치 신데는 없으시고요? ”
“ 아이고. 어쩌나. 내 과일들. 다 뭉개졌네. 아이고. ”
무참하게 짓밟힌 과일들을 보면서 속상해 하시는 할머니를 보면서 안타까운 수현은 일어나서 자신의 만행에 대해서 사과도 하지 않고 차안에서 달려 나오지도 않는 차 주인을 만나기 위해 차로 다가간다. 창문을 손을 치는 수현.
“ 이봐요. 이봐요. 문 좀 열어 보세요. ”
잠시 후 차 문을 열고 나오는 한 남자.
“ 이봐요. 그쪽한텐 저거 안 보여요? 할머니가 얼마나 놀라셨겠어요? ”
라고 말하고는 그 남자 얼굴을 보는데 또 한 번 굳어버린 수현. 왜 이렇게 이 남자 자주 마주치는 걸까. 승우와 닮은 얼굴을 하고 있는 이름 모를 그 남자였다. 잠시 멍해 있는 수현을 한 번 보고는 과일을 치우는 할머니 쪽을 한 번 보고나서 지갑을 꺼낸다.
“ 이 돈으로 변상하죠. 이 돈이면 충분할 겁니다. ”
수현은 이런 사람들을 제일로 싫어한다. 뭐든지 돈이면 다 되는 줄 아는 사람. 뭐든지 돈으로 해결하자고 타협하자고 하는 사람. 그런데 이 남자가 자신에게 수표 한 장을 내밀며 싸가지 없이 행동 한다.
“ 뭐라고요? 변상? ”
“ 내가 피해를 준 건 사실이니까. 충분한 변상을 하겠다는 겁니다. ”
“ 이봐요. 당신 눈에는 놀라신 할머니가 안 보여요? 이런 사고를 냈으면 빨리 차에서 내려 서 할머니께 죄송하다고 사과부터 드려야 하는 거라고요. 그런데 돈으로 변상만 하고 가 시겠다? ”
“ 이봐. 나는 바쁜 사람이야.. 보아하니 다친 것 같지도 않은데 돈으로 변상하면 되는 거 아 닌가? ”
“ 뭐라고요? 그래서 사과를 못하겠다는 건가요? 그래요? ”
“ 당신하고 실랑이 부릴 시간 없어. 이 돈 받는지 말든지. 알아서 하라구. ”
수표를 땅에 던지고 다시 차에 타서 운전을 하고 가버리는 그 남자. 기가 막힌 수현은 너무 흥분해서 말이 안 나올 정도다.
‘ 뭐. 저런 사람이 다 있어? 하...하...완전 제 멋대로네. ’
흥분을 가라앉히고 그 남자가 던져버리고 간 수표를 들고 할머니에게 가서 치우는 것을 도와드리고는 돈을 할머니 손의 쥐어 드린다. 그리고 수현은 생각한다.
‘ 내가 잘못 봐도 한 참 잘못 봤지. 내가 그런 사람을 보고 승우오빠랑 닮았다고 생각하다 니. 하..하... 얼굴만 조금 비슷하면 뭐해? 성격이 완전 다른데. 내가 미첬지. “
(연애소설)-알약(12)-
*
제 멋 대로인 남자
1
아침부터 마음이 들떠 있는 수현은 어젯밤에 난생 처음 황토 팩을 해서 그런지 거울에 비치는 자신의 피부를 보면서 만족스러운 듯 웃어 보인다. 마르지 않은 머리카락을 자연 바람으로 말리기 위해 현관문을 열고 난간에서 바람을 온 몸으로 맞고 있었다. 공기가 오염된 서울 하늘의 공기라지만 바람과 함께 불어올 때면 평소에는 느낄 수 없는 시원함과 개운함을 느낄 수 있어서 좋았다. 자연바람의 의지해 젖은 머리카락을 말리고 있을 때 대문을 열고 경미가 들어선다. 오래 된 대문이라서 그런지 문을 열고 닫을 때 마다 마찰이 생겨 시끄러운 소리가 나는 게 귀에 거슬리지만 경미의 등장에 웃음꽃을 피우는 수현.
“ 나와 있었네? 나 기다린 거야? ”
“ 헤헤. 그런 거라면 감동 받겠지 네가? ”
“ 당근이지. ”
“ 근데 어찌지? 머리 말리려고 나온 건데. 헤헤 ”
“ 빈말이라도 일부러 나와서 나를 기다렸다고 하면 어디가 아프지? 나참. 나는 친구 면접 본다 길래 아침부터 달려 왔구만. ”
“ 하하. 알았어. 알았어~ 들어가자~ ”
살짝 삐친 표정을 지어 보이자 수현이 살살 경미를 달래며 집으로 들어간다. 집으로 들어선 경미는 수현의 방으로 들어간다. 침대에 널 부러져 있는 옷들이며 장롱 문은 활짝 열려있는 것을 보고는 한숨을 쉬는 경미.
“ 뭐 입고 갈지는 정했어? ”
“ 깔끔하고 단정한 정장차림으로 오라던데. 어떻게 입을지 못 정하겠어. ”
“ 내가 오늘 머리에서부터 발끝까지 새 단장 시켜주마. 헤헤헤. 기대하시라~ 머리를 다 말 랐지? 머리 말아야 하니까 완전히 말려야 돼. ”
“ 응. 다 마른 것 같은데? ”
수현의 머리카락을 만져보는 경미는 침대에 앉고 수현을 자신의 앞바닥에 앉힌다. 가져온 세팅기를 꺼내 머리를 만지기 시작하는 경미. 마치 이 순간만큼은 자신이 헤어 디자이너가 된 것처럼 능숙하게 수현의 머리를 만진다. 수현의 화장까지도 손수 해주어 분위기를 바꿔 놓는 경미.
“ 자~ 이제. 옷만 입으면 완성되겠다. 음..정장이라... 이옷이랑 저 치마를 같이 입으면 어울 릴까? 이게 더 낫겠다. 수현아. 이걸로 입어봐. 머리 망가지지 않게 조심하고 ”
정말 머리에서부터 발끝까지 다 알아서 자신을 꾸며주는 경미에게 웃어 보이며 코디해준 옷을 입고 거울 앞에 선다. 완전 딴 사람이 된 기분이다. 자신이 꾸미고 화장할 때와는 다른 분위기를 연출해 내는 재주가 경미에겐 있는 듯 했다.
“ 어때? 마음에 들어? 예쁜 것 같아? ”
“ 응. 분위기가 싹 달라졌어. 1시간 전이랑 너무 다른데? 고마워~ ”
“ 쑥스럽게 고맙긴. 암튼 오늘 면접 꼭 잘 봐서 꼭 붙어라~ 거기 회사 탄탄하다고 하더라.”
“ 응. 최선을 다해야지. ”
2시까지 도착해야 하기 때문에 1시간 전에 나와서 지하철을 탄다. 삼성역에 도착하여 지하철 내에 화장실에 잠시 들리는 수현. 화장이 지워지지는 않았는지 머리가 망가지지는 않았는지 살피고는 밖으로 나온다. JD그룹 건물 앞에 도착한 수현은 마음을 가다듬고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간다. 들어가는 순간부터 뛰기 시작하는 심장 소리 때문에 온 몸이 떨릴 정도이다. 안으로 들어가자 넓게 펼쳐진 로비는 현대식으로 세련되게 잘 꾸며져 있었다. 이런 큰 건물에 들어온 건 이번이 처음이라 신기하기만 한 수현. 두리 번 거리다가 급하게 닫히려고 하는 엘리베이터에 올라탄다. 5층에서 문이 열려 내려서 표지판을 확인하는 수현은 세미나실이라고 쓰여진 표지판을 따라 긴 통로를 걸어간다. 통로가 끊기고 약간 넓은 공터가 나오더니 정장차림에 많은 사람들이 의자에 앉아 기다리고 있었다.
‘ 아~ 저 사람들도 면접을 보러 온 거구나. ’
면접을 보러 온 정장 차림에 사람들을 보고 나니 더 더욱 심장이 크게 뛰고 있었다. 괜히 화장실도 가고 싶었고 이상하게도 커 보이고 멋있어 보이는 사람들에게 주눅들 정도로 분위기가 엄숙했다. 시계를 보니 아직 시간이 남아 있어서 화장실을 찾는 수현. 찾아도 찾아도 화장실이 보이지 않아서 헤매고 있는데 비상구라고 쓰여 있는 문이 살짝 열려 있어서 문을 열고 계단이 있는 곳으로 나왔다. 사람들이 모여 있는 그 공터에서 벗어나니 한결 살 것 같았다.
“ 안녕하십니까? 저는 최수현 입니다. 한국대학교 유아교육학과를 졸업 했구요...아..이게 아닌데. 어 휴 떨려~ 뭘 물어 볼까? 뭐라고 대답해야 하지? ”
2
책상 앞에는 ‘이사 한선우 ’ 라고 쓰여진 팻말이 놓여져 있고 컴퓨터 앞에 앉아 무언가 정리하고 있는 선우. 잠시 후 노크소리와 함께 김 비서가 서류를 들고 들어온다.
“ 이사님. 오늘은 JD건설 이부장님과 오후 7시에 저녁 만찬이 있으십니다. 이부장님께서는 저녁 만찬을 중에 이번 재개발 계획에 대한 서류를 지참하셔서 간단한 부리 핑을 해 주신다고 합니다. 그리고 잠시 후 오후 2시부터는 정기 채용 면접이 5층 세미나실에서 있 습니다. 오늘 면접을 통하여 채용된 직원들은 각각 홍보 마케팅부와 기획개발팀으로 배정 될 예정입니다.”
“ 알았어요. 5층 세미나실이라고 했나요? 심사위원은 누가 하시죠? ”
“ 각 부서 과장님 두 분과 기획 실장님이 하시게 됩니다. ”
“ 그래요? 그럼 한 번 둘러보도록 하죠. 준비해주세요. ”
“ 네. 이사님. ”
3
김 비서와 함께 5층에 도착한 선우는 긴 통로를 걸어가다가 반쯤 열려 있는 비상문 쪽에서 들려오는 여자 목소리를 듣고는 걸음을 멈추고 살짝 그 안을 들여다본다. 뒷모습밖에는 보이지 않지만 무언가 열심히 연습하고 있는 듯 했다.
“ 안녕하십니까? 저는 최 수 현이라고 합니다. 오늘 날씨가 바람이 살짝 부는 시원함을 느 끼게 해주는데요. 심사위원님들께서는 상쾌한 공기의 바람을 느끼시면서 출근 하셨습니 까?... 아 휴.. 이건 너무 아나운서 흉내 내는 것 같잖아. 그냥 간단하게 인사만 할까? ”
면접을 보러 온 여자인 듯하다. 다른 사람들이 없는 이곳에서 따로 인사말을 연습하고 있는 모습이 열정이 있어 보여 좋게 느껴진다. 그 때 고개를 살짝 돌려 비상문을 향해 돌아선 수현을 보고는 어디서 본 여자라는 생각을 하는 선우.
‘어디서 봤던 얼굴인데 ? 누구더라 ? ’
갑자기 걸음을 멈추고 비상문으로 보이는 한 여자를 지켜보고 있는 선우를 보며 재촉 하듯 말을 꺼내는 김 비서.
“ 이사님. 세미나실에 가셔야 하는데요. ”
그제 서야 눈치가 보였는지 머쓱한 표정을 짓고는 다시 걸음을 옮기는 선우. 걸어가면서도 어디서 본 얼굴인지 생각하기에 바쁘다. 그러나 생각나지 않는다.
4
수현은 면접시간이 되어 세미나실로 들어갔고 초반에 조금 떨기는 했지만 심사위원들에 질문에 재치 있게 답변했고 5분에서 10분정도 걸린 면접시간을 마치고 밖으로 나온다. 시계를 보니 정확히 8분정도 걸렸지만 8분이 80분처럼 느껴진 것은 부인할 수 없었다. 웃으면서 답변하기는 했지만 속으로는 떨고 있었으니 말이다. 회사에서 나와 집으로 돌아가는 그 시간이 그렇게 편할 수가 없었다. 집에 가서 침대에 눕고만 싶었다. 너무 긴장한 탓인지 몸에 기운이 하나도 없었으니. 집으로 돌아와 바로 침대에 누워버리는 수현. 침대에 누워 한 참을 있었지만 이른 시간이라 잠은 오지 않았다. 낮잠이라도 푹 자고 싶었으나 낮잠을 자는 버릇을 들이면 나중에 피곤해지니까. 일기를 써야겠다는 생각에 일어나 책상 서랍에 넣어둔 다이어리를 꺼내는 수현. 책상에 앉아 다이어리를 열어 본다. 다이어리 속에 끼어져 있는 사진 세장을 발견한다. 3년 전 승우가 자신의 생일날에 선유도 공원으로 데리고 가서 깜짝 이벤트 해준 사랑의 시가 적인 벽화와 장미꽃으로 만든 하트의 사진. 그 것을 배경으로 삼고 포즈를 취하고 있는 자신의 모습에 사진이었다. 오랜만에 보는 사진이었다. 요즘 일기를 쓸 시간과 마음의 여유가 생기지 않아 서랍에 넣어두고는 한참을 꺼내지 않았으니 말이다. 그 사진 속에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참 행복해 보인다는 생각을 하는 수현.
‘ 내 얼굴에서 빛이 나. 너무 행복하게 웃고 있어. ’
그리고는 오랜만에 열어 본 다이어리에 오늘 날짜의 일기를 쓰기 시작한다.
- 10월 15일 화요일 -
내가 가장 예뻤던 때는....
아마 그 때 일겁니다.
여자가 사랑을 하면 가장 아름다워지니까요.
얼굴이 예쁘게 생겼다거나, 이목구비가 뚜렷하다거나, 멋있다거나,
그런 의미가 아닌.. 가장 행복한 미소를 지을 수 있기에
나는 아마도 그 때가 가장 예뻤을 겁니다.
조금은 시간이 지난 지금에 와서야..
예전에 찍었던 내 모습이 담긴 사진을 보면서뒤늦게 깨닫게 되었습니다.
재미있는 코미디 프로그램을 보면서 즐거움에 웃는 웃음과는 달리..
인위적으로 내가 만들어 낸 어색한 웃음과는 달리..
나는 마냥..
단지 행복해서..웃고 있었습니다.
세상을 다 가진 사람처럼.
그 누구도 부럽지 않는 사람의 표정을 하고는..
나는 마냥..
평안한, 행복한 미소를 지어보였습니다.
내가 다시 그때처럼. 예쁘게 웃는 날이 언제쯤 오게 될까요?
내가 다시 그때처럼..
환하게 ..그리고 행복하게 웃는 날은 언제 일까요?
5
지루하고 길기만 했던 회의가 끝나고 모두가 나간 선우의 사무실. 책상에 앉는 선우는 회의를 시작하기 전부터 시작된 투통이 나아지지 않자 슬슬 짜증이 난다. 자신의 원하는 방향으로 일은 진행해 나가고 싶었지만 아직은 회상에서 입지가 굳지 않아서 그런지 무조건적으로 자신의 말을 수용하는 분위기 아니고 어리다는 게 마이너스가 되는 것 같았다. 사무용 의자에 앉아 고개를 뒤로 기대고 눈 주위를 지압하는 선우. 노크하는 소리가 드렸고 이어 김 비서가 서류를 들고 들어왔다.
“ 이사님. 말씀 하신 프레젠테이션 준비 자료입니다. ”
“ 놓고 나가요. ”
기분 상태도 안 좋고 몹시 피곤해 보이는 선우가 걱정스러운 김 비서가 선우를 바라본다.
“ 이사님. 어디 불편하십니까? ”
“ 나가. 나가랬잖아. ”
“ 예. 죄송합니다. 그럼. ”
직접적인 말이 아니더라도 그 말투에 억양에서 그 사람의 의도가 보이는 것이 말인데 회의에서 자신보다 나이가 많은 부하직원들이 자신의 생각에 방해하는 것이 몹시 언짢았던 선우는 무서운 눈빛을 보인다. 다시 바쁘게 일하는 선우. 오랜 시간이 지나 퇴근시간이 다 되었는데도 끊임없이 일을 하고 있는 선우를 보는 김 비서. 직장 상사이기에 걱정도 되고 만난지 며칠 되지 않았지만 능력 있고 재력, 인물도 갖춘 선우가 마음에 든다. 모두가 퇴근한 시간임에도 선우가 퇴근하지 않자 덩달아 하지 않는다. 저녁 9시까지 사무실에서 프레젠테이션을 준비하고 있는 선우. 노크 소리가 들렸고 문을 열고 김 비서가 들어온다. 아직까지 퇴근하지 않은 김 비서를 보면 놀란 모양이다.
“ 이사님. 퇴근 안하십니까? ”
“ 나는 아직 할 일이 더 있으니 먼저 퇴근하도록 하세요. ”
“ 이사님. 요즘 피곤해 보이십니다. 영양제 사왔는데 드시고 하십시오. ”
영양제를 사왔다는 김 비서의 말에 재미있다는 얼굴로 김 비서를 바라보는 선우. 갑자기 일어나서는 김 비서에게 다가온다. 김 비서의 뒤로 와서는 어깨에 손을 올리고 몸을 밀착하는 선우. 선우의 손이 김 비서의 허리에 다가가고 그 손은 허리에서 점점 위로 올라온다. 그리고 선우는 김 비서의 귓가에 작고 조금은 거친 신음소리를 낸다. 자신의 가슴으로 올라오는 선우의 손을 뿌리치지도 않고 기다렸다는 듯이 그대로 맞이하고 있는 김 비서를 보면서 더욱 더 재미있다는 표정을 짓는 선우. 선우의 손이 가슴에 거의 다다랐을 때 이제는 김 비서의 손이 승우의 팔을 붙잡고 유혹한다. 점점 더 밀착하는 선우. 김 비서의 귓가에 속삭인다.
“ 이봐. 상대를 잘못 찾았어. 미인계를 쓰려면 좀 더 괜찮은 얼굴과 몸매로 접근을 했었야 지. 안 그래? 세상에 널린 게 잘빠진 여잔데 내가 당신한테 만족할 순 없잖아? 내가 나갔 다 왔을 때는 당신 얼굴 안 봤으면 좋겠군. ”
그 말을 남기고는 문을 열고 사무실 밖으로 나가버리는 선우. 기가 막히고 분하다는 얼굴로 뛰쳐나간다.
6
“ 여보세요? ”
“ 최수현 씨 핸드폰 맞으신가요? ”
“ 네 . 맞아요. ”
“ 최수현씨 되십니까? ”
“ 네. 어디시죠? ”
“ 여기는 JD 그룹 개발기획팀 인데요. 최수현씨께서 이력서를 내실 때 지원을 홍보 마케팅 으로 하신 걸로 알고 있는데 맞으신 가요? ”
“ 예. 맞습니다. ”
“ 우선 죄송하다는 말씀드리겠습니다. 원래는 합격을 하시게 되면 지원하신 부서에 배정이 되는데요. 저희 회사에서 이번에 개발기획팀이 새롭게 조가 편성이 돼서 인원이 부족 한 상태입니다. 그래서 양해에 말씀 구하려고 연락 드렸는데요. 개발 기획팀에 입사 하시는 것은 괜찮으십니까? ”
“ 개발 기획팀이요? 주로 어떤 일을 하게 되는 건가요? ”
“ 아이디어를 개발하고 기획하면서 제작까지 하시게 됩니다. 괜찮으시겠습니까? ”
“ 네..뭐.. 괜찮습니다. ”
“ 그러면 내일부터 개발 기획팀으로 8시까지 출근하시면 됩니다. 좋은 하루 되십시오. ”
이내 전화가 끊겼고 지원한 부서에는 입사하지 못하지만 우선은 취직이 되었다는 기쁨이 앞섰다. 내일부터 아르바이트가 아닌 정규직으로 일하게 되는 것이다. 이곳에서는 열심히 하겠다는 다짐을 하고는 편안하게 잠자리에 드는 수현.
알람소리에 깨어나 아침부터 부산하게 움직이는 수현. 이제는 늦장을 부릴 시간과 여유가 없어졌다. 오늘이 첫 출근이니 회사 직원들을 처음 만나는 자리가 될 텐데. 지각은 하면 안 되는 거니까. 기쁜 마음으로 건물 입구로 들어서는 수현. 그런데 건물 안이 어수선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사람들이 모여 있고 한 여자가 고래고래 소리친다. 경비로 보이는 남자들이 그 여자를 밖으로 끌고 나가고 있었다.
“ 한 이사. 당신 이러는 거 아니야. 당신이 나한테 먼저 접근했잖아. 근데 내가 왜 이런 부 당한 일을 당해야 돼? 엉? 당장 한 이사 불러와. 나오라고 하라고. 한 이사. ”
그 모습을 지켜보던 수현은 도대체 무슨 일이 길래 저 여자가 저렇게 화를 내는지 알 수 없었지만 지각을 하지 않기 위해 서둘러 엘리베이터를 탄다. 7층을 누르는 수현. 같이 엘리베이터에 탄 여직원들이 수근 거린다.
“ 김 비서님 말야. ”
“ 김 비서님은 무슨. 이제 완전 목 날라 갔는데 뭘. ”
“ 이사님이랑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
“ 아까 소리치는 거 봤지? 완전 독한 여자라니까~ 말은 이사님이 자기한테 접근했다고 하 지만 분명히 먼저 꼬리 쳤을 거야. ”
“ 하긴. 이사님이 뭐가 아쉬 워서 비서랑 연애를 하겠어? ”
“ 그러게 말야.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 ”
4층에서 문이 열리고 두 여직원이 내리면서 수현의 어깨를 툭 치고 내렸다. 그 바람에 들고 있던 서류를 바닥에 떨어뜨렸고 주으려고 몸을 숙이는 사이에 선우가 그 엘리베이터에 탄다. 다시 몸을 일으켜 서류를 정리하는 수현. 뒷모습만 보이는 방금 탄 남자는 키가 정말 크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7층에서 문이 열렸고 그 남자도 내렸다. 성큼성큼 걸어가 버리는 남자. 주위를 두리 번 거리다가 겨우 표지판을 보고 기획 개발팀의 사무실을 찾은 수현. 문을 열기 전에 숨을 고르게 가다듬고 조심스레 여는 수현.
“ 안녕하십니까? 이번에 새로 입사하게 된 신입사원 최 수 현입니다. ”
수현의 등장에 모두들 웃으면서 맞아 주었고 그 중에 가장 나이도 있고 높아 보이는 남자가 다가오더니 악수를 청한다.
“ 반가워요. 최수현 씨. 잘해봅시다. ”
어떨 결에 악수를 받고는 어색한 웃음을 짓는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남자 직원이 장난스럽게 말한다.
“ 에이. 과장님. 행동 너무 빠르시다~ 벌써 신입사원 손도 잡아 보시고. 너무 티 납니다.”
“ 그래. 내가 좀 너무 티를 냈나 보군. 허허허허 ”
직원 전체가 웃으면서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니 수현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지는 것 같았다. 수현의 자리를 안내해주는 여직원. 그 여직원의 이름은 현정이다. 처음 입사해서 일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하는 수현에게 자세하게 친절하게 가르쳐 주고 어디를 가든지 항상 챙겨준다. 처음에 홍보 마케팅에 지원했지만 이곳으로 발령받은 것도 나쁘지만은 않은 것 같았다. 그렇게 수현의 첫 출근이 시작되었다.
7
“ 수현씨. 짐 챙겨서 외근 나갈 준비해요. ”
“ 네? 외근이요? ”
“ 동작지사 좀 다녀와야 할 일이 생겼어요. 장현정씨가 길 잘 아니까 따라가면 될 거에요”
“ 네. 다녀오겠습니다. ”
수현과 현정은 동작지사로 가기 위해서 지하철을 이용했다. 전철을 타고 가는 중에도 현정은 알게 된지 얼마 안 되었는데도 편안하게 주제를 자신이 먼저 말하고 대화를 즐겁게 이끌어 가는 재주가 있었다. 가는 동안에도 지루함을 느끼지 못 할 정도였으니 말이다. 동작지사에 도착한 수현과 현정은 사무실을 찾아 실무 당담자를 만나려고 했으나 자리가 비어 있었다. 실무 담당자가 올 때까지 기다리게 된 수현과 현정은 의자에 앉아서 기다린다. 잠시 후 사무실에서 한 여직원이 다가와 현정에게 컴퓨터에 대한 도움을 요청했고 요청에 따라 컴퓨터의 전문적인 기술을 알려주고 있다. 그 때 수현의 핸드폰에서 전화가 온다.
“ 여보세요? ”
“ 안녕하십니까? 고객님의 전화 요금이 연체되었습니다. 오늘 오후 4시까지 가까운 은행에 납부해 주십시오. ”
미리 녹음된 여자 목소리의 전화였다. 매달 자동이체로 되어 있던 것을 회사에 취직하면서 은행을 바꿨다는 것을 깜박 있고 있었다. 컴퓨터를 열심히 만지고 있는 현정에게 말하고는 건물을 빠져 나와 은행을 찾는 수현. 10분쯤 걸어가다 보니 은행이 보였고 은행 계좌 번호를 바꾸고 현금지급기에서 돈을 찾아 지갑에 넣는다. 은행에서 나오던 수현은 길거리에서 과일을 놓고 팔고 계시는 할머니를 발견했다. 다가가는 수현.
“ 할머니. 귤 어떻게 해요? ”
“ 아이고. 아가씨. 귤이 아주 맛도 좋고. 씽씽한 게 많이 줄게. ”
“ 음. 3천원워치 싸주세요. ”
“ 뭐라고? ”
“ 할머니. 3천원이요. ”
귀가 잘 안 들리시는지 대 묻는 할머니를 보니 괜히 마음이 안 좋다. 날씨는 쌀쌀한데 이 곳에 나와 과일을 파시는 할머니. 동작구 중에서도 고층이 몰려 있는 이 지역에서 장사를 하면 잘 안 될 것이라는 것을 알기에. 귤을 사서 인사를 하고 뒤 돌아 다시 사무실로 돌아가려던 수현. 그 때 뒤에서 뭔가 요란한 소리가 들려서 뒤를 돌아보니 차에 짓밟힌 할머니의 과일들. 내동 강이 쳐버린 과일 소쿠리. 당황해서 어쩔 줄 몰라 하시며 과일들을 하 나 하 나 줍는 할머니의 모습을 보고는 놀라서 뛰어간다.
“ 할머니. 괜찮으세요? 다치 신데는 없으시고요? ”
“ 아이고. 어쩌나. 내 과일들. 다 뭉개졌네. 아이고. ”
무참하게 짓밟힌 과일들을 보면서 속상해 하시는 할머니를 보면서 안타까운 수현은 일어나서 자신의 만행에 대해서 사과도 하지 않고 차안에서 달려 나오지도 않는 차 주인을 만나기 위해 차로 다가간다. 창문을 손을 치는 수현.
“ 이봐요. 이봐요. 문 좀 열어 보세요. ”
잠시 후 차 문을 열고 나오는 한 남자.
“ 이봐요. 그쪽한텐 저거 안 보여요? 할머니가 얼마나 놀라셨겠어요? ”
라고 말하고는 그 남자 얼굴을 보는데 또 한 번 굳어버린 수현. 왜 이렇게 이 남자 자주 마주치는 걸까. 승우와 닮은 얼굴을 하고 있는 이름 모를 그 남자였다. 잠시 멍해 있는 수현을 한 번 보고는 과일을 치우는 할머니 쪽을 한 번 보고나서 지갑을 꺼낸다.
“ 이 돈으로 변상하죠. 이 돈이면 충분할 겁니다. ”
수현은 이런 사람들을 제일로 싫어한다. 뭐든지 돈이면 다 되는 줄 아는 사람. 뭐든지 돈으로 해결하자고 타협하자고 하는 사람. 그런데 이 남자가 자신에게 수표 한 장을 내밀며 싸가지 없이 행동 한다.
“ 뭐라고요? 변상? ”
“ 내가 피해를 준 건 사실이니까. 충분한 변상을 하겠다는 겁니다. ”
“ 이봐요. 당신 눈에는 놀라신 할머니가 안 보여요? 이런 사고를 냈으면 빨리 차에서 내려 서 할머니께 죄송하다고 사과부터 드려야 하는 거라고요. 그런데 돈으로 변상만 하고 가 시겠다? ”
“ 이봐. 나는 바쁜 사람이야.. 보아하니 다친 것 같지도 않은데 돈으로 변상하면 되는 거 아 닌가? ”
“ 뭐라고요? 그래서 사과를 못하겠다는 건가요? 그래요? ”
“ 당신하고 실랑이 부릴 시간 없어. 이 돈 받는지 말든지. 알아서 하라구. ”
수표를 땅에 던지고 다시 차에 타서 운전을 하고 가버리는 그 남자. 기가 막힌 수현은 너무 흥분해서 말이 안 나올 정도다.
‘ 뭐. 저런 사람이 다 있어? 하...하...완전 제 멋대로네. ’
흥분을 가라앉히고 그 남자가 던져버리고 간 수표를 들고 할머니에게 가서 치우는 것을 도와드리고는 돈을 할머니 손의 쥐어 드린다. 그리고 수현은 생각한다.
‘ 내가 잘못 봐도 한 참 잘못 봤지. 내가 그런 사람을 보고 승우오빠랑 닮았다고 생각하다 니. 하..하... 얼굴만 조금 비슷하면 뭐해? 성격이 완전 다른데. 내가 미첬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