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소설)-알약(17)-

임마누엘2006.04.22
조회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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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만 괜찮다면

나는 아무래도 상관없어.


1

 퉁퉁 부은 눈을 아침부터 가라앉히려고 얼음찜질을 하고 있는 수현. 요즘 수현의 눈이 부어 있지 않는 날은 없었지만 오늘 아침처럼 심하게 부은 날은 처음 일 것이다. 출근시간이 촉박해서 눈에 붓기 빼는 것을 포기하고 출근하는 수현. 지하철에서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눈만 쳐다보고 있는 것 같았다. 눈은 빨갛게 충혈 되어 있고 눈 주위는 부어서 눈이 작아졌다. 쌍 꺼플이 진한 편에 속하는 수현의 눈은 울고 나면 그 쌍꺼플이 더 커지는 경향이 있었다. 너무 못 생겨져버린 자신의 눈이 마음에 안 들었는지 지하철에서 자신을 조금만 쳐다보는 사람이 있으면 기분이 좋지 않았다. 자신의 집에서 회사까지의 거리는 30분. 30분은 그리 긴 시간이 아니었지만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고 있는 수현에게는 상당히 긴 시간처럼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사무실로 들어 온 수현은 직원들에게 인사를 하고 자리에 앉는다. 최대한 부은 눈을 직장 동료들에게 들키지 않고 그냥 넘어 가고 싶은 마음에 최대한 고개를 숙여 컴퓨터로 얼굴을 가린다.

 

 

시계가 12시를 가리키고 있었고 점심 먹으러 식당으로 향하던 수현은 1층 로비로 들어오는 선우와 마주친다. 선우도 수현을 보고 빠르게 다가온다.

 

 

“ 점심 먹으러 가는 건가? ”

“ 네.. ”

“ 그럼 같이 하지.. ”

“ 아니요. 괜찮습니다. ”

“ 그래도 난 오늘 당신이랑 점심 먹어야 겠어. 가자고. ”

직장 동료들 앞에서 수현을 잡아끌고 나가버리는 선우는 수현을 자신의 차에 태운다.

“ 지금 뭐 하는 거에요? ”

라며 화를 내보지만 다가오는 선우 때문에 놀라 조용해지는 수현. 안전벨트를 손수 매주고는 말도 없이 어디론가 출발한다.

“ 점심시간 1시간 밖에 없어요. 시간 별로 없다고요. ”

“ 알았으니까. 너무 그러지 말라고~ ”

 

 

15분 쯤 가던 선우의 차가 멈췄고 두 사람은 차에서 내린다. 전통 한식집이었다. 그리고 여전히 비싸 보이는 곳이었다. 수현은 방으로 들어가는 선우를 따라 들어가서 자리를 잡는다. 잠시 후 주문을 받으러 온 직원이 들어왔고 매번 그러는 것처럼 알아서 음식을 시킨다.

 

“ 근데. 눈은 왜 그래? 어제 밤에 라면이라도 먹고 잤나? ”

눈 얘기를 하자 민감해지는 수현.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물을 마신다.

“ 라면 먹어서 그런 것 같지는 않고. 라면 두 개정도 먹고 빵도 왕창 먹었어? 하하하 ”

약간은 장난스러운 말투로 말하는 선우에 말에 물을 마시고 있던 수현이 웃다가 사례에 걸렸는지 제체기를 심하게 한다.

“ 왜 그래? 물 먹다 걸린 거야?  에이~ 조심하지. 내 말이 그렇게 재미있었어~? 그러고 보    니 그렇게 웃는 거 오랜만이다. 예전에는 당신 잘 웃었잖아~ 그 때가 참 예뻤어. 그러니    까 웃어. 웃어줘. 날 보면서 웃어주면 더 좋겠지만 꼭 그게 아니더라도 상관없으니 항상    웃으라고. ”

분명 자신을 걱정해서 하는 말이라는 거 알지만 사실 선우의 얼굴을 보고 있는 것이 쉽지만은 않았던 수현은 어렵게 말을 꺼낸다.

 

“ 이사님. ”

“ 이제 이사님이라고 부르 지마. 난 강남지사에 이사니까. 그러고 여긴 밖이잖아. ”

“ 그래요. 선우씨. 나 웃을게요. ”

“ 그래~ 좋은 생각 했네. ”

“ 그렇지만... 당신을 보고는 웃어 줄 수 없어요. ”

수현의 단호한 말에 눈이 커지는 선우.

“ 그리고 다시는 이렇게 절 찾아오지 말아 주세요. ”

“ 뭐? 찾아오지 말라니.. 무슨 소리야? ”

“ 선우씨 보는 것도 나한테 너무 힘들어요. ”

“ 하..하.. 날 보는 게 힘들다고? 왜? 아~ 내가 승우 형 동생이라서? 아니지... 승우 형이랑    내가 너무 닮아서겠지. 안 그래? ”

“ 선우 씨..... ”

“ 난 왜 당신이 날 보면서 그렇게 슬픈 표정을 짓는 건지 몰랐어. 아니. 몰라도 상관없었다 고. 나는 그냥 당신의 슬픈 눈을 내가 웃게 만들고 싶었을 뿐이야. 내가 바꿔 놓고 싶었 을 뿐 이라고. 내가 당신한테 성급하게 다가간 건 인정해~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당신 도 날 받아들여 줄지도 모르겠다는 희망이 보이기 시작했었어. 그런데.. 그런데... 그 슬픈  표정의 원인이 승우 형이라는 걸 알고는 미치는 줄 알았지. 왜..하필........승우형의 과거    의 여자가 당신인지. 왜 하필.... 당신의 과거의 남자가 승우형인건지.. 화가 나서 미쳐버    릴 것 같았다고. ”

 

탁자를 사이에 두고 수현의 어깨를 흔들며 흥분하는 선우. 자신이 이러면 안 된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지만 그 동안 참고 있었던 분노와 감정이 폭발하려는 것 같았다.

 

“ 왜...? 도대체..왜....? 왜..하필..... 형 인거냐고...왜.. 그게 너인 건데....?

 

 

점점 수현의 어깨를 흔들던 선우의 손에 힘이 풀리면서 수현을 놔주고 자신의 자리에 털썩 앉아 버리는 선우. 마음을 진정시키지 못 하겠는지 옷을 들고 음식점을 나가버리는 선우.

혼자 남아 있는 수현은 멍한 표정으로 있다가 밖으로 나간다. 밖에 나가보니 승우가 기다리고  있었다. 수현이 지나쳐 가려고 하자 수현의 팔을 잡고는 차 문을 열고 밀어 넣듯이 강제로 차에 태운다. 회사 앞에 도착하여 수현이 내리려고 하자 붙잡는 선우. 그리고 뒷 자석에 있던 쇼핑백을 건네준다. 이것이 무엇이냐는 말 대신 표정을 하고 있는 수현을 보고는 선우가 대답한다.

 

“ 나오면서 포장해 달라고 했어. 들고 가서 챙겨 먹어. ”

 

 

차에서 내린 수현이 회사로 들어가자 차를 출발시킨다.. 회사로 들어온 수현은 떠나는 선우의 차를 한 참을 바라보다가 사무실로 향한다. 생각해 보면 이 남자에겐 미안한 일이다. 자신에게는 정말 잘 해줬던 사람인데 그 사람 또한 충격이 컸을 텐데 자신이 매정했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 아닌가. 인연이 아닌 것을.





2

 승우가 다녀 간지 벌써 3주가 지나가고 있었다. 승우가 말 한 대로 그 뒤로 승우는 단 한 번도 수현에게 찾아오지 않았다. 영영 다시 볼 수 없다는 것이 아프고 힘들지만 이것 또한 자신이 이겨내야 하는 이이므로. 퇴근해서 집으로 오는 수현은 혹시나 승우가 와 있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에 집 앞에서 두리 번 거리면서 승우를 찾는 버릇이 생겨 버렸다. 다시는 오지도 않겠다던 승우를 말이다. 한 숨을 쉬고는 집으로 들어가는 수현. 오랜만에 다이어리를 열어 그 동안 자신이 써 왔던 일기며 글을 읽어 내려가는 수현. 그리고 자신의 마음을 표현해 주는 글을 작성해 나간다.


당신의 이름을 들으면...나는 아직도 표정관리가 안됩니다....

당신의 이름을 들으면...나의 표정은 순식간에 굳어져 버립니다...

당신의 이름이 듣기 싫어서가 아니라...이름만 들어도 쏟아져버릴 내 눈물이 민망스러워....

당신을 기억하기 싫어서라 아니라...

울어버리는 내 모습을 보는 다른 사람들에 시선이 두려워....

당신의 이름을 들으면...나는 아직도 표정관리가 안됩니다.

당신의 이름을 듣고는...애써 표정관리 한다고 하는 게 무표정인거라서..

당신의 이름을 기억하고는...애써 여전히 내게 남아 있는 그리움에 표정을 감추려고 한다고 하는 게 굳어지는 표정인거라서.

당신의 이름을 들으면...

나는 여전히.. 표정관리가 안됩니다.


글을 쓰고 나서 눈으로 다시 한 번 읽어 본다. 자신의 마음을 대신 표현하고 있는 글 이었다. 자신의 입으로 이 말들을 하게 된다면 주체 할 수 없는 아픔이 밀려와 너무나 그리운 승우와 얼굴이 떠올라 지금 당장이라도 승우를 찾아 달려 나갈지도 모르기에.





3

JD그룹 회장실. 서류를 검토하고 있는 한 회장과 옆에 서 있는 윤 비서.

 

 

“ 그래. 이번 개발 건은 생각보다 아이템이 괜찮군. 누가 기획 한 건가? ”

“ 그게... 저기... ”

“ 뭔데 자네가 그렇게 빨리 말을 못 해? ”

“ 개발 기획팀에서 근무 했던 최 수 현이라는 직원이 기획 한 것이라고 합니다. ”

“ 최 수 현..?  최 수 현이라면.. 그 최 수 현 말인가? ”

“ 예. 회장님. ”

“ 허허허허. 쓸모없을 줄 알았더니 제법이군. ”

“ 입사해서도 직원들과 아주 잘 지냈다고 합니다. 톡톡 튀는 아이디어도 많이 내 놓았다고    기획팀 과장이 칭찬이 많았습니다. ”

“ 나는 그런 칭찬을 듣고 싶은 건 아닐세.  ”

“ 예. 죄송합니다. 회장님. ”

“ 그나저나. 승우는 어찌하고 있다던가? ”

“ 처음엔 최 수 현이라는 여자의 집에 가서 만나려고 했지만 그 여자가 만나주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여러 번 허탕만 키고 돌아 왔었고요. 그리고 요즘은 그 여자를 안 만나신    지 는3주 정도 됐을 겁니다. ”

“ 허허허허. 생각 보다 약속을 잘 지켜주고 있었군. 그래도 안심하지 말고 승우 감시 잘 하    게. 조금이라도 다시 만나는 분위기가 느껴지면 바로 알리고. ”

“ 예. 알겠습니다. ”



4

 오랜 시간 운전해서 남원역에 도착한 승우. 지리산으로 20분쯤 올라가더니 큰 나무 앞에서 걸음을 멈춘다. 꼭 4년 만에 오는 곳이다. 어느 날 수현이 아무 말도 없이 이곳까지 데려와서 돌아가신 부모님을 소개해주었고 그 부모님께 자신을 소개시켜 주었다. 비록 돌아가신 부모님이지만 유골을 이 나무에다 뿌렸으니 수현에게는 이 나무가 아버지이고 어머니인 셈이었다. 4년 전에 이곳에 와서는 부모님 앞에서 수현을 영원히 사랑할 것이라고 약속했었다. 옆에서 영원히 지켜줄 것이라고 말이다. 그런 약속을 수현의 부모님 앞에서도 그리고 수현에게도 했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아무런 말도 없이 미국으로 떠나버렸고 4년 만에 한국에 돌아왔지만 너무 오랜 시간동안 힘들어 했던 수현에게 더 짐을 안겨줄 수는 없었다. 승우는 사랑이만 있으면 아무것도 없어도 상관없다고 생각했었다. 그 생각에는 지금도 변함이 없지만 세상 모든 사람들은 사랑만으로 모든 것이 충족 될 수 없다고 자신에게 계속해서 타협을 요구한다. 세상도. 아버지도. 동생도. 경미도. 그리고 수현 까지..

 

 

“ 아버님. 어머님. 이렇게 늦게 찾아와서 송구스럽습니다. ”

처음에는 평소의 목소리로 말을 꺼냈지만 점점 시간이 지날수록 승우의 목소리가 울리고 있었다. 이를 악물고 말해보는 승우.

“ 수현이를 힘들게 해서 죄송합니다. 아프게 해서 죄송합니다. 수현이 곁에 영원히 있겠 다 는 약속......지킬 수가.... 없을 것 같습니다..... 정말 옆에서 지켜주고 마음껏 사랑해주고 싶었는데.. 제가 노력하면 될 줄 알았는데 4년 동안 그러기 위해서 죽도록 노력했는데... 죄송합니다..죄송합니다.. 제가 사랑하면... 참고 기다리면... 다 될 줄 알았는데.. 안 되는 거랍니다.. 아버님.... 어머님..... 죄송합니다. ”

 

 승우는 큰 나무를 붙잡고 오열을 토하고 있었다. 그 동안 참았던 설움과 괴로움이 지독한 슬픔이 한꺼번에 폭발하듯이. 몸으로. 떨리는 어깨로. 흐르는 눈물로. 통곡하는 목소리로 표현되고 있었다. 미국에서도 수현이 보고 싶어 혼자 울었던 적은 수없이 많았지만 이렇게 절규하면서 우는 것은 처음인 승우. 한 참 동안을 나무를 붙잡고 놓지 않는 승우의 모습은 너무도 슬퍼 보인다.



5

 회사 일로 바쁜 선우는 요즘 야근을 자주 한다. 마음이 괴로우면 무언가에 집중해야만 그나마 견딜 수 있을 것 같아서 이 것 저 것 찾다가 찾은 게 일이었다. 욕심도 많고 야망도 컸던 선우가. 재력과 명예를 쟁취하고자 지금까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려왔던 선우가 한 여자 때문에 변해가고 있었다. 자신의 목표를 위해서라면 내키지 않아도 최대한 아버지에게 효자 노릇을 하던 선우가. 그렇게라도 아버지의 신임을 얻고 싶어 하던 선우가 그 것 보다 더 중요한 일이 생겼으니 말이다. 최 수 현. 이 여자는 선우를 변화하게 만들고 있었다. 냉정하고 자기중심적이고 상당히 이성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었던 자신이 수현을 만나고 알게 되면서부터 자신도 알 수 없는 행동들을 하고 있었다. 예를 들면 관심 없던 여자한테 관심이 생겼고 그 여자가 알고 싶었고 자신의 끼니는 챙기지 않아도 그 여자가 끼니를 챙겨 먹었는지 궁금해서 미칠 것 같았다. 무엇이든지 해주고 싶었고 그 여자에게 만큼은 자상하고 좋은 남자가 되고 싶었다. 더구나 지금은 자신의 친 형에게서 유치한 질투라는 것도 하고 있었다. 승우는 남들이 말하는 그 대단한 사랑이라는 것을 그 여자를 통해 알아 가고 싶었다. 일보다 재력보다 명예보다 사랑이 더 갖고 싶었다.

 

 

회사를 나와 집으로 향하는 선우. 거대한 저택으로 들어온 선우. 거실에 앉아 있는 한 회장을 보고 인사를 하고는 올라가려고 한다.

 

 

“ 요즘 회사를 자주 비우더구나. ”

“ 아~ 예. 업체 담당자를 좀 만나다 보니.. 요즘은 자주 비웁니다. ”

“ 최 수 현이라는 그 아이가 업체 담당자를 한다고 말하고 싶은 게냐? ”

수현이라는 이름이 나오자 놀라는 선우.

“ 아버지...?”

“ 내가 예상하고 있는 것이 아니길 바란다. 허나 만약... 내가 예상하고 있는 것이 맞다면...    이 에비는 네게 상당히 실망을 하게 되겠지. 그리고 하나 더. 그 아이는 조용히 살지 못    할 것이다. ”

“ 아버지 ?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조용히 살지 못하다니요? 그게 무슨..그 여자를 어떻게    하기라도 하시겠다는 겁니까? ”

“ 흥분하지 마라. 그러니 행동 가지를 조심하라는 게다. 승우도 너도.. 도대체... 어떻게 그    런 형편없는 아이를....흠...... 쯧쯧... ”

“ 아버지 형편없지 않습니다. 정말 좋은 여잡니다. 그렇게만 생각하지 마십.. ”

“ 그걸 말이라고 하는 거냐?  승우도 너도. 지금 내 얼굴에 먹칠을 하려고 작정이라도 한     거냔 말이다. 그만 올라가 보거라. 더 이상 너에게까지 실망하고 싶지는 않으니. ”

 

 

 힘겨운 얼굴로 위층으로 올라가는 선우. 이제는 자신의 마음을 한 회장이 알았으니 어쩌면 수현이 더 힘들어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괴로운 선우.

선우는 욕실에서 물을 틀어 놓고 쏟아지는 물줄기를 옷을 입을 채로 받아들인다.

 

 

6

 주말이라 회사에는 출근하지 않지만 수현은 아침부터 외출 할 준비를 한다. 선유도 공원에 도착한 수현. 승우가 보고 싶을 때는 이곳에 자주 찾아오고는 한다. 이렇게라도 추억을 되 살려야만 숨을 쉴 수 있을 것만 같아서 참을 수 없을 정도가 되면 주말마다 오기도 하는 선유도 공원. 승우가 JD그룹 회장 아들이라는 사실을 전혀 모르던 그 때로 돌아가 그 때의 승우를 회상하면서 마음의 평안을 얻고자 그 곳을 찾는 것이다. 승우와 거닐던 거리. 생일 선물로 벽화를 선물 받은 나무가 배치된 공터. 같이 나누던 대화를 생각하면서 수현은 4년 전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7

 세진그룹 이사장과 간단한 미팅이 있었지만 취소시키고 차를 운전해서 승우가 도착한 곳은 선유도 공원이었다. 4년 만에 한국으로 귀국하자마자 찾았던 곳이었고 다음에 이곳을 또 오게 된다면 수현과 함께일 거라고 생각했던 승우였다. 그러나 여전히 혼자 찾아온 이 장소. 시간을 거꾸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라는 생각을 하면서 이번에는 반대 방향으로 선유도 공원을 돌기 시작했다. 그나마 가장 최근의 기억들에서부터 머릿속에서 일부러 끄집어내고 있었다. 시간이 거꾸로 돌아가는 것을 느끼고 있는 것처럼. 그렇게 오랜 시간을 그 추억 속으로 빠져드는 승우. 도로 옆에 있는 인도를 걷고 있는 승우는 반대편에서 걸어오는 한 여자를 발견한다. 점점 가까워지면 질수록 또렷해지는 얼굴은 요즘 자신의 꿈에 자주 등장하는 여자였다. 순간 이 모든 게 꿈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할 정도로 수현의 모습을 본 승우가 자신의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반대편에서 걸어오던 수현도 승우를 발견하고는 걸음이 느려졌고 이내 그 걸음이 멈춰졌다. 한 달이 넘도록 볼 수 없었던 두 사람은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볼 수 있는 한국 땅에서도 이 땅이 한국이라는 것을 잊으면서 그렇게 지내야만 했다. 거리를 두고 가던 길을 멈춘 채 움직이지 않았다.

 

 

 더 이상 가까이 가면 지금 자신의 뺨 위로 흐르고 있는 눈물을 들켜버릴 것만 같아서. 조금 더 자세히 보고 싶어 더 가까이 가게 된다면 같은 극과 극끼리 가까운 거리에 있으면 자동적으로 붙어서 떨어질 줄 모르는 자석처럼 당장 한 걸음에 달려가 안고 싶을지도 모르기에. 자신을 믿을 수가 없었던 두 사람은 더 이상 움직일 수가 없었다. 그래서 수현은 주위를 두리 번 거린다. 어디론가 피해야겠다는 생각에 신호가 파란불에서 빨간불로 바뀌려고 하는 찰나에 횡단보도로 뛰어가기 시작한다. 수현을 지켜보던 승우의 시선이 움직이기 시작했고 수현을 따라가고 있을 때 반대편에서는 커다란 트럭이 수현을 향해 질주하고 있었다. 그러나 수현은 발견하지 못한 듯 했다.

 

“ 수현아.. ”

 

 

라고 크게 외쳐보지만 돌아보지 않고 달려가는 수현. 점점 더 가까워지는 트럭이 금방이라도 수현을 덮쳐버릴 것만 같았다. ‘ 빵빵 ’ 거리는 소리를 듣고 고개를 돌려 자신을 향해 질주하는 트럭을 발견했지만 당황해서 몸이 얼어버리는 수현. 수현이 트럭에 치이기 몇 초 전에 수현을 밀치고 대신 트럭에 치이는 승우. 승우의 손에 밀쳐진 수현은 딱딱한 콘크리트 바닥에 쓰러진다. 승우는 트럭에 치어 요란하게 부딪치고는 잠시 하늘로 솟았다가 바닥으로 곤두박질친다. 도로 한 가운데 쓰러진 수현이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들어 주위를 살핀다. 정신이 몽롱한 수현은 아직도 트럭이 자신을 향해 달려오면서 “ 빵빵 ” 대던 소리가 귓가에서 사라지지 않는다. 주위를 살피다가 바닥에 쓰러져 있는 승우를 발견하고는 놀라서 달려간다.

 

 

“ 오빠... 오빠....? 승우오빠.. 정신 좀 차려봐.. 오빠.. ”

 

 

온 몸이 바닥에 뒹굴어 더럽혀진 옷이며 차에 치이면서 어디론가 날라 가버린 신발이며 여기저기 얼굴에 난 상처이며 머리에는 작은 피가 흐르고 있었다.

 

“ 오빠! 승우오빠. 오빠 눈 좀 떠봐.. 오빠....오..빠~~ ”

 

 

트럭을 운전하던 기사가 달려오더니 난감한 표정을 짓고는 핸드폰을 꺼내 전화를 한다. 119에 연락을 하는 것이리라. 수현은 정신 나간 사람처럼 소리를 질러댄다. 지금 이 순간이 제발 꿈이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승우를 흔들어 깨워보지만 꼼작도 하지 않는 승우를 보자 왈칵 눈물이 난다. 소리를 지르며 승우를 부르는 수현. 그러나 미동도 일어나지 않는다. 잠시 후 119가 도착했고 의사들과 간호사들의 의해 차에 실리는 승우. 그를 따라 수현도 오른다. 승우의 상태를 체크하는 의사들. 수현의 귀에는 아무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단지 윙윙 거릴 뿐이다. 떨리는 손으로 주머니에 있던 핸드폰을 꺼낸다. 좀 점에 쓰러지면서 부딪쳐서 그런지 폰이 커진 상태였고 전원을 눌러 다시 킨다. 그리고 선우에게 전화를 거는 수현. 도서관에 있던 선우는 핸드폰이 울리자 발신번호를 확인하였고 수현의 이름이 뜨자 기분 좋은 듯 받는다.

 

 

“ 수현아. 네가 먼저 웬일이야? ”

“ ....... ”

아무런 소리가 들리지 않자 전화가 끊겼는지 다시 확인하는 선우.

“ 수현아.. 수현아.. ”

“ 이...이...이사님.... 저..저기..어떻해요..어떻해요.. ”

“ 수현아? 무슨 일이야? 목소리가 왜 그래? 우니? ”

“ 차에....차...차에...오빠가.....”

“ 당황하지 말고 천천히 말해봐. 무슨 일이야? ”

“ 승우오빠가 교통사고..가 났다고요... 어떻해요.. 흐흐흐흑.. ”

“ 뭐? 교통사고? 하..하.. 그래.. 지금 병원으로 가고 있는 거야?  ”

“ 네.. 병원이요.. ”

“ 어느 병원으로 가는 거니...? ”

“ 어느 병원...? 저...저기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 거죠? 아....네.. 세..세진 병원..세진 병    원이래요... ”

“ 알았어.. 나도 지금 바로 갈게..  ”

그리고는 전화가 끊겼고 승우의 손을 잡고 이름을 계속해서 부르는 수현. 병원으로 도착했고 이미 도착해서 기다리고 있던 선우가 응급차에서 내리는 승우와 수현을 발견하고는 달려간다. 곧 바로 수술실로 들어가는 승우.

“ 오빠~! 오빠.. 승우오빠~~~~ 하하하....흑흑흐  안 돼... ”

 

 

수술실로 들어가는 승우를 따라 들어가려고 하자 간호사들이 막았고 계속해서 들어가겠다는 수현을 선우가 막는다.

 

 

“ 오빠!  안 돼~ 으...으...흐흐흐흐흐 흑... 오~빠..아....”

 

 

그렇게 소리 내서 우는 수현을 처음 본다.  이토록 서럽게 우는 수현은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그렇게 울다가 수현이 갑자기 정신을 잃고 쓰러지자 수현에게로 달려가 수현을 들고 의사에게로 달려간다.

병원 간이침대에 누워 링겔을 맞고 있는 수현을 바라보는 선우. 의사의 말을 회상한다.

 

 

[ 심한 과로가 싸여 있습니다. 게다가 끼니를 제 때 챙겨 먹지 않아서 영양 상태도 별로 좋    지는 않고요. 일시적인 쇼크가 와서 정신을 잃은 것이니 깨어나면 몸 관리를 하도록 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수현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안쓰러운 표정을 짓는 선우.

“ 그렇게 힘들었니? 네가 그렇게 우는 건 처음 봐.... 한 번도 소리 내서 울던 적이 없었잖    아. 승우 형이 잘못 될 까봐서 그래? 그래서 그렇게 슬펐니..? ”




8

 트럭과 부딪치면서 머리를 살짝 다쳐서 머리가 찢어지는 부상을 입은 승우는 간단한 봉합 수술을 했고 수술을 마치고 일반 병실로 옮겨졌다. 병실에서 형을 돌봐야하겠지만 정신을 잃고 쓰러진 수현이 먼저 깨어나기만을 기다리는 선우. 잠시 후 수현이 눈을 떴고 정신을 차려 주변을 살피더니 승우를 찾는다.

 

 

“ 이사님.. 오빠는요? 어딨 어요? 괜찮아요? ”

“ 일반 병동으로 옮겼어. B동 1654호야. 링겔 다 맞 .. ”

선우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팔에 꽂혀 있던 링 겔 바늘을 뽑고 침대에서 내려와 뛰어가는 수현. 선우도 뒤 따라 달려간다. 정신 나간사람처럼 병원을 휘젓고 돌아다니며 B동 1654호를 찾는 수현. 그렇게 돌아다니다 승우의 이름이 적힌 병실을 찾았고 다급하게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다. 머리에는 붕대를 감고 왼쪽 다리로 깁스를 한 승우가 침대에 누워 잠들어 있었다. 승우에게 달려가는 수현.

“ 오빠... 오빠... 승우오빠... 어쩌면 좋아.? 어쩌면..좋아.. 오빠..? 나야. 수현이.. 수현이가 왔어. 눈 좀 떠봐. 오빠..? 내가 잘 못했어. 내가 다 잘못했어. 내가 오빠한테 못되게 굴었는데 왜 오빠가 이런 벌을 받아.. 오빠. 내가 못되게 군거..내가 잘못했어. 오빠.. 흐흐흐흐... ”

수현의 뒤를 따라 승우가 있는 병실 앞에 도착한 선우는 참아 문을 열 자신이 없었다. 손잡이를 잡아 문을 작게 열었지만 들어가지도 못하고 서 있다.

“ 오빠... 죽으면 안 돼.. 절대..나만 남겨주고 죽으면 안 돼~ 오빠 잘 못되면 나 못 살아. 오빠가 살아 있어야 나도 산단 말야. 오빠.. 오빠? 죽으면 안 돼. 나 아직 오빠한테 하고 싶은 말도 못했단 말야. 꼭 해야 하는 말도 못했다고... 이러지 마. 이러면 정말 반칙이야 ! 맘에도 없는 말 하면서 오빠 맘 아프게 한 것 때문에 이렇게 심술부리는 거지? 그렇지? 오빠한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단 말야. 보고 싶었다고.. 사랑한다고.. 그 말도 못했는데. 안 돼. 흐..흐..흐. 오빠~! ”

 

승우의 손이 살짝 움직인다. 그리고 눈도 희미하게 움직이고 있었고 입 꼬리가 살짝 올라간다. 그리고 눈을 살짝 떠서 수현을 보다가 눈치를 보며 슬슬 눈을 뜨는 연기를 한다. 눈을 뜬 것을 발견하는 수현이 놀란 토끼눈을 한다.

 

 

“ 오빠? 승우오빠.. 정신이 들어? ”

“ 수...수현아....”

“ 나도 알아보겠어? 하.하... 오빠아~ ”

 

 

갑자기 승우를 껴안는 수현. 그리고 한 참 동안을 꺼 이 꺼 이 울어댄다. 조금은 진정이 되었는지 울음소리가 작아지더니 이내 승우에게서 떨어지는 수현. 일어나려고 하는 승우를 부축해서 앉는 것을 도와준다. 눈물 범벅이가 된 수현의 얼굴에 묻는 눈물을 손수 자신의 손으로 닦아주는 승우.

 

 

“ 바보야. 왜 그렇게 울었어... ”

“ 흠..흐..흐..흐.. 오빠가 ..죽는 줄 알았잖아.. 차에 치어 머리에서는 피도 나고.. 너무 무서    웠단 말야.. 오빠가..이대로 죽을 까봐서.. ”

“ 안 죽었잖아. 그럼 되는 거지. 너는 다친 데 없어? ”

“ 지금 누굴 걱정하는 거야? 나 때문에 그렇게 다쳐 놓고... 오빠.. 좀 혼나야. 돼.. 내가.. 뭐    라고.. 내가 뭐라고 오빠가 나 때문에 그렇게 다치고 그래.... 흐흐흐흐흑.. ”

“ 또.. 운다.. 울지마.. 난 괜찮아..  ”

“ 괜찮긴.. 뭐가 괜찮아... 나 때문에...오빠가 이게..뭐야..? 진짜. 속상해... ”

수현을 자신의 품안으로 잡아끄는 승우.

“ 나는 또 다시 그런 상황이 온다고 해도 같은 행동을 할 거야. 너만 괜찮다면 나는 아무래    도 상관없어. 너만 무사하다면 나는 어떻게 되는 상관없다고. ”

“ 오빠.... ”

 

 

그리고 한 참을 안고 있다가 승우가 몸을 떨어뜨려 수현을 바라보면서 장난스러운 표정을 짓는다. 수현을 뚤어지게 보는 승우.

 

 

“ 왜..? 왜 그래 오빠? ”

“ 사실은.... 나..다 들었다~ ”

“ 뭘? 뭘 다 들어? ”

“ 네가 누워 있는 나에게 달려와서 나한테 울면서 했던 말..”

“ 어..? ”

“ 사실은... 깨어 있었거든. 흠...헤헤헤 ”

“ 뭐? 뭐라고? 오빠~~ 내가 얼마나 놀랐는지 알아? 오빠가 죽은 줄 알았단 말야. ”

“ 그래서 적당한 때에 일어났잖아~~ 헤헤헤.. 근데.. 나한테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하     지 않았었나? 그랬던 것 같은데~~ ? ”

“ 흠.. 머... 내가 단기 기억이라서 몇 분 전에 했던 말도 잘 기억 못하거든. 기억이 안나.. ”

“ 그런 게 어딨어.. 말도 안돼.. ”

수현의 대답에 잔뜩 기대하고 있었던 승우의 표정이 삐진 듯한 표정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입이 나오고 고개를 푹 숙이는 승우를 보면서 부끄러운지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라서는 조심스럽게 말을 꺼낸다.

“ 그게....그러니까.... 음.... 보고 싶었고....오빠를 ..내가 많이...사...”

“ 사....사..뭐? ”

“ 사...랑한다고.. ”

 

기분이 좋아진 승우가 장난스러운 표정을 한 번 짓더니 수현을 본다.

 

“ 아유~ 사고 나서 귀가 잘 안 들려.. 너무 작게 말한 거 아니야? 뭐라고 수현아? ”

그런 승우를 밉지 않다는 듯이 기분 좋게 한 번 흘겨보는 수현.

“ 오빠를 많이 사랑한다고.. 이제 됐어?  ”

“ 응.. 헤헤헤.. ”

 

 

행복한 미소를 지어 보이는 승우가 수현을 와락 껴안는다. 얼마나 안아 보고 싶었던지. 얼마나 그리웠던 수현의 냄새였는지 모른다. 한국으로 돌아 온지는 두 달이 다 되어 가지만 오늘은 4년 만에 한국으로 돌아와 수현을 만나는 기분이었다.

 

“ 수현아.. 사랑한다. ”

 

 

병실 문 앞에서 그 모습을 모두 지켜보던 선우가 조심스레 문을 닫고 병실 벽에 몸을 기대어 한숨을 쉰다. 저렇게 사랑하는 두 사람 앞에서 자신의 사랑은 많이 어리다는 생각을 하게 하게 되는 선우. 자신의 감정보다 상대방의 감정을 배려하고 자신보다 상대방을 더 사랑하고 목숨까지도 아깝지 않을 만큼 사랑하는 저 두 사람의 사랑을 당해 낼 수 없다는 것을 선우는 몸소 실감할 수 있었다. 기운 없는 발걸음을 천천히 옮기며 병원을 나오는 선우의 모습은 너무도 쓸쓸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