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이란 편견 투성이 입니다. 인생이란 이기심 투성이 입니다. 제대로 알지 못하면서 마치 다 아는 것처럼 떠드는 사람이 많습니다. 저 역시 남을 나무랄 수 없는 그런 부류의 사람입니다. 편견과 이기심은 두려움을 낳고 적대심을 낳습니다. 지식이란 배워서 습득할 수 있지만 지혜는 지식처럼 습득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요. 나이란 지혜를 쌓아 가는 것입니다. 그 지혜를 남들에게 슬기롭게 나누어 주는 것이지요. 많은 세월을 살아와도 추악하게 주름살만이 늘어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유리알 처럼 맑은 슬기로 가득 찬 나이도 있습니다.
지난 시의원 선거때 일입니다. 시의원 선거 때문에 온 마을이 열병을 앓은 적이 있었답니다. 시의원에 출마한 사람들 모두가 면면이 아는 분들이라 누구의 친척, 또는 선배, 후배이고 한 다리만 건너면 남이 아닙니다. 참 난감한 일이였답니다. 우리 동네 작은 마을도 두 패로 자연스럽게 나누어 졌습니다. 선거 덕인지는 몰라도 한전에서 마을 고샅길에 몇 개의 가로등을 달아주었습니다. 어두운 고샅길이 참 환해졌습니다. 손전등 없이 마실이 가능해 졌습니다.
그런데 그 밝은 외등 때문에 한 바탕 소동이 아랫집과 벌어졌습니다. 전신주에 매달린 외등이 아랫집 밭을 향하고 있었기 때문에 아랫집 아저씨는 불만이었답니다. 외등의 불빛 때문에 밭에서 자라고 있는 작물은 밤낮을 잊어버려서 열매가 여물지 않는다는 주장입니다. 말은 맞는 말입니다. 저도 경험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밭에는 열매작물이 아니라 푸성귀 밭이기 때문에 아무른 지장도 없다고 제가 주장했습니다.
우리 집 마당이 밤이면 너무 어두워서 아내가 늘 무서워했습니다. 변소 때문입니다. 밤에 드나들기는 좀 꺼림칙하답니다. 서걱거리는 대숲의 밤바람 소리가 무섭기도 합니다. 산자락에 붙은 집이라 산그늘도 일찍 내려와 어둠도 빨리 찾아옵니다. 아내의 등살에 정원등을 달았습니다. 밝은 조명등을 단 그해에 자두와 배와 앵두 그리고 석류나무까지 열매가 아주 부실하고 배나무와 앵두는 아예 열매가 맺지 않았습니다. 모과만 영향이 없고 석류는 달랑 세알 달렸고요.
그 외등은 우리 골목길에는 꼭 필요한 불빛이였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두 패로 나뉘어 졌습니다. 저녁에 불이 들어오면 누군가 꺼버리고 또 켜면 꺼버리고 한동안 밀고 당기는 기 싸움이 벌어졌습니다. 묘하게도 선거 지지하던 패로 나뉘었습니다. 저는 켜는 쪽 이였지요. 그러다 누군가 아예 전구를 깨어버렸습니다. 아랫집과 앙금이 생겼지요.
그런데 올 여름 태풍 루사가 지나간 직후 아랫집과 경계 진 우리 집 축대가 무너지면서 아랫집 밭을 덮쳐버렸습니다. 눈에 불을 켜드군요. 우리 집으로 달려와서 시비가 벌어졌습니다. 축대 무너진 일만이 아니라 서로 잔잔한 앙금이 쌓여 있었던 상태엿답니다. 작은 욕도 서너마디 오갔지요. 아랫집 아저씨는 항상 우리집을 못마땅하게 여겼습니다. 소견 짧은 제 생각으로는 우리가 이사 오기 전 까지 우리 집 마당을 밭으로 갈고 유실수에서 나오는 과일들도 수월찮이 걷우었겠지요. 자연 이웃이라도 소 닭 보듯, 닭 소 보듯 하는 사이가 되었습니다.
"태풍이 지나가고 쌓아드리겠습니다." 하지만 막무가내였습니다. " 그럼 아저씨가 쌓아 주시면 수고비 드리겠습니다." 십만원 달라 했습니다. 그러기로 했지요. 한나절 일거리는 되었습니다. 여름에 무너진 축대 차일피일 미루다 겨울에 쌓았습니다. 봉투에 십만원을 넣어서 그 댁 아주머니에게 드렸지요. 밤에 아주머니가 오만원을 돌려 주셨습니다. 이웃간에 너무 과한 돈 받았다고 아저씨와 말다툼 벌렸다며 웃으시드군요. 그 댁 아주머니의 웃음에 꽁해 있던 제 마음도 풀어졌습니다.
돌려받은 오만원으로 마을 구판장에서 맥주파티 열었습니다. 물론 아랫집 아저씨도 귀빈으로 모셨지요. 서로의 편견과 이기가 낳은 불만이 몇 잔 주고받은 맥주거품 속에 날아가 버렸습니다. 도시에서 살던 놈이 시골 와서 사는 것도 못 마땅해 하였고 시의원에 출마한 선배가 우리 집 여러 번 다녀간 것도, 또 이런저런 것들이 거슬렸다고 했습니다. 저는 저대로 시골의 인정이 매말랐다고 투덜거렸지요.
인정이란, 허기는 채울 수 없어도 이웃간의 사랑은 채울 수 있지요. 가만히 생각해 보니 아랫집 아저씨의 이기나 저의 편견도 모두 슬기 부족함 때문이었나 봅니다. 맥주 한 상자가 저에게 마을 사람들과 친해지는 슬기로운 지혜였다는 것을 배운 날이였습니다.
시골 인정이 매말랐다고 투덜거렸습니다
지난 시의원 선거때 일입니다. 시의원 선거 때문에 온 마을이 열병을 앓은 적이 있었답니다. 시의원에 출마한 사람들 모두가 면면이 아는 분들이라 누구의 친척, 또는 선배, 후배이고 한 다리만 건너면 남이 아닙니다. 참 난감한 일이였답니다. 우리 동네 작은 마을도 두 패로 자연스럽게 나누어 졌습니다. 선거 덕인지는 몰라도 한전에서 마을 고샅길에 몇 개의 가로등을 달아주었습니다. 어두운 고샅길이 참 환해졌습니다. 손전등 없이 마실이 가능해 졌습니다.
그런데 그 밝은 외등 때문에 한 바탕 소동이 아랫집과 벌어졌습니다. 전신주에 매달린 외등이 아랫집 밭을 향하고 있었기 때문에 아랫집 아저씨는 불만이었답니다. 외등의 불빛 때문에 밭에서 자라고 있는 작물은 밤낮을 잊어버려서 열매가 여물지 않는다는 주장입니다. 말은 맞는 말입니다. 저도 경험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밭에는 열매작물이 아니라 푸성귀 밭이기 때문에 아무른 지장도 없다고 제가 주장했습니다.
우리 집 마당이 밤이면 너무 어두워서 아내가 늘 무서워했습니다. 변소 때문입니다. 밤에 드나들기는 좀 꺼림칙하답니다. 서걱거리는 대숲의 밤바람 소리가 무섭기도 합니다. 산자락에 붙은 집이라 산그늘도 일찍 내려와 어둠도 빨리 찾아옵니다. 아내의 등살에 정원등을 달았습니다. 밝은 조명등을 단 그해에 자두와 배와 앵두 그리고 석류나무까지 열매가 아주 부실하고 배나무와 앵두는 아예 열매가 맺지 않았습니다. 모과만 영향이 없고 석류는 달랑 세알 달렸고요.
그 외등은 우리 골목길에는 꼭 필요한 불빛이였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두 패로 나뉘어 졌습니다. 저녁에 불이 들어오면 누군가 꺼버리고 또 켜면 꺼버리고 한동안 밀고 당기는 기 싸움이 벌어졌습니다. 묘하게도 선거 지지하던 패로 나뉘었습니다. 저는 켜는 쪽 이였지요. 그러다 누군가 아예 전구를 깨어버렸습니다. 아랫집과 앙금이 생겼지요.
그런데 올 여름 태풍 루사가 지나간 직후 아랫집과 경계 진 우리 집 축대가 무너지면서 아랫집 밭을 덮쳐버렸습니다. 눈에 불을 켜드군요. 우리 집으로 달려와서 시비가 벌어졌습니다. 축대 무너진 일만이 아니라 서로 잔잔한 앙금이 쌓여 있었던 상태엿답니다. 작은 욕도 서너마디 오갔지요. 아랫집 아저씨는 항상 우리집을 못마땅하게 여겼습니다. 소견 짧은 제 생각으로는 우리가 이사 오기 전 까지 우리 집 마당을 밭으로 갈고 유실수에서 나오는 과일들도 수월찮이 걷우었겠지요. 자연 이웃이라도 소 닭 보듯, 닭 소 보듯 하는 사이가 되었습니다.
"태풍이 지나가고 쌓아드리겠습니다." 하지만 막무가내였습니다.
" 그럼 아저씨가 쌓아 주시면 수고비 드리겠습니다." 십만원 달라 했습니다. 그러기로 했지요. 한나절 일거리는 되었습니다. 여름에 무너진 축대 차일피일 미루다 겨울에 쌓았습니다. 봉투에 십만원을 넣어서 그 댁 아주머니에게 드렸지요. 밤에 아주머니가 오만원을 돌려 주셨습니다. 이웃간에 너무 과한 돈 받았다고 아저씨와 말다툼 벌렸다며 웃으시드군요. 그 댁 아주머니의 웃음에 꽁해 있던 제 마음도 풀어졌습니다.
돌려받은 오만원으로 마을 구판장에서 맥주파티 열었습니다. 물론 아랫집 아저씨도 귀빈으로 모셨지요. 서로의 편견과 이기가 낳은 불만이 몇 잔 주고받은 맥주거품 속에 날아가 버렸습니다. 도시에서 살던 놈이 시골 와서 사는 것도 못 마땅해 하였고 시의원에 출마한 선배가 우리 집 여러 번 다녀간 것도, 또 이런저런 것들이 거슬렸다고 했습니다. 저는 저대로 시골의 인정이 매말랐다고 투덜거렸지요.
인정이란, 허기는 채울 수 없어도 이웃간의 사랑은 채울 수 있지요. 가만히 생각해 보니 아랫집 아저씨의 이기나 저의 편견도 모두 슬기 부족함 때문이었나 봅니다. 맥주 한 상자가 저에게 마을 사람들과 친해지는 슬기로운 지혜였다는 것을 배운 날이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