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무 / 天武......25 (죽림장의 대혈투)

월하벽송2002.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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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짐승이라고 하여도 어린 새끼를 품고 있으면 건들이지 않는 법이거늘, 내 새끼가 어미의 젓을 찾는 울음을 터뜨리고 있다. 나의 목숨을 받으러 온 때가 좋지 않다. 나중에 다시 오너라...... 내가 기어이 상대를 하여주마."
천봉자는 태연히 뒤 돌아 서더니 방에 들어가 설선녀 앞에 앉았다. 그리고는 아기를 등에서 내리더니 설선녀의 가슴을 헤치고는 젓을 물렸다. 의식을 잃고 있는 설선녀의 옷깃을 움켜쥐고 아기는 젓을 빨고 있었다.
(흠...... 사방에 고수들이 진을 치고 있도다. 동방교주의 복수를 하러 온 것인데......)
천봉자는 방문 앞에서 가부좌를 틀고 앉은 채 주위의 움직임을 더듬고 있었다.

방문 앞에서 음침한 흑의인의 목소리가 들렸다.
"흐흐흐...... 오늘 너의 식솔을 모두 저승으로 보내라는 교주님의 명령이다. 추호의 인정을 용납하지 않으니 각오하고 있거라...... 흐흐흐......"
천봉자는 침통한 목소리로 밖을 내다보며 말했다.
"내가 보아하니 침입자의 수가 삼십 여명을 헤아리는구나. 너희들의 각오를 익히 알겠노라. 어리석은 녀석들...... 내가 강호에 발을 딛으며 살생을 피하여 왔으며 원한에 대한 보복을 일컬어 어리석은 짓이라고 비웃었거늘, 일선교 교주라는 일개 아녀자의 좁은 소견을 하늘처럼 받들어 너희들의 목숨을 초개처럼 던지다니...... 장부의 짓이 아니로다. 내가 다시는 말을 되풀이 하지 않을 것이니 내 말을 잘 듣고 명심하여라."

천봉자의 안광이 분노에 불타고 있었다. 말을 이었다.
"오늘은 내가 너희들의 졸렬한 행동에 대한 답례를 단단히 할 것이다. 내 처자의 목숨이 경각에 달려 있는 지금......한번의 손속에 한 명의 목숨이 위태로울 것이니...... 나의 손속이 잔인하다고 원망을 하지 말지어다."

"흥...... 오늘 일선교의 힘을 너에게 보여 주마. 너와 너의 식솔의 목숨은 이미 죽음 목숨이거늘......흐흐흐...... 너의 간과 쓸개를 도려 내어 이미 승천하신 동방교주님의 영전에 받칠 것이다. 그리고 자혈검은 강호의 어리석은 도전으로 알고 잘 간수할 것이니...... 그리 알도록 하여라. 흐흐흐......"
흑의인은 땅에 꽂혀 있는 자혈검을 등에 매고는 몸을 돌려 대나무 숲으로 사라졌다. 그 뒤를 다른 흑의인이 따랐다.
방문 앞의 텅 빈 마당에는 햇빛이 쏟아지고 있었다.
천봉자는 졸지의 습격에 대비하여 주변의 움직임을 더듬고 있었다. 두 손을 무릎에 올린 채 눈을 반쯤 감고 미동도 하지 않았다. 사방에서 소리없는 움직임이 분주하게 천봉자의 거처를 압박하여 오고 있었다.

지붕 위로부터 날카로운 장검이 검은 그림자와 함께 떨어져 내렸다. 번쩍하는 칼날이 천봉자의 정수리에 닿는 순간에 억~ 하는 소리와 함께 검은 그림자가 마당 가운데로 나가 뒹굴었다.
"무당파의 만엽도인(萬葉道人)이 아니옵니까? 검법의 본산이라는 무당파의 대고수께서 일개 하수인으로서 그 검법을 펼치다니...... 가소롭소이다. 한번의 손속에 한 사람의 목숨이 위태로울 것이라는 경고를 제가 분명히 하였습니다. 저의 손이 맵다고 원망치는 않으시겠죠......"
천봉자를 공격하던 만엽도인은 몸을 일으키려고 무릎을 세우는 순간에 컥 하는 소리와 함께 피를 토하더니 숨이 끊어졌다. 그의 손에 들려져 있던 장검이 어느새 천봉자의 손에 들려 있었다.

주위에서 이 광경을 바라보던 수많은 고수들은 경악하였다.
소림사의 혜정선사와 서역의 고승인 묘연존자가 그토록 칭찬을 아끼지 않았던 이유를 비로소 알았다.
어떤 무공을 펼쳐서 한 순간에 장검을 뺏으며 상대방의 목숨을 끊어 버리는 살수를 펼쳤는지 알 수 없었다. 모든 초식은 만엽도인의 칼날이 번쩍하며 떨어지는 순간에 번개처럼 펼쳐진 것이었다.
주의에서 숨죽인 고요함이 흘렀다.
천봉자는 뺏은 장검을 앞에 놓고는 미동도 하지 않은 채 가부좌를 틀고 있었다.

"헤헤헤~ 참으로 대단한 초식이로다. 내가 그 매운맛을 직접 맛 보고 싶도다......헤헤~"
마당 한쪽에 서 있는 나무 위에서 굵은 목소리가 들리더니 자색승복이 펄럭이며 허공을 가로질러 천봉자 앞에 우뚝 섰다. 자색승복을 입은 승려를 보는 순간에 천봉자의 눈이 싸늘한 광채를 띄었다.
"흠...... 무림의 본산인 소림사의 얼굴에 먹칠을 하는구려...... 각공대사(覺空大師)님 반갑소이다."
"헤헤~ 나를 잊지 않고 알아보는구려...... 나한십팔고수 중에서 제일인 나를 잊지는 못하겠지......헤헤...... 말은 필요없겠지, 내가 너의 숨통을 끊어서 동방교주님의 원혼을 달래 주마......~"

두 팔을 내리고 앞 발을 내딛는 각공대사의 움직임을 보고는 차가운 목소리로 천봉자가 말했다.
"나한십팔수 중의 전배산운장(前排山運掌)을 펼치시면 저는 도해배산세(倒海排山勢)로 각공대사님의 연액혈(淵腋穴)을 내지름으로서 목숨을 앗아 가겠소이다. 지금 각공대사님의 발끝은 단단하나 장력을 펼치는 틈이 너무 허하니...... 사방으로 산운장(山運掌)을 펼친다 하여도 소용없소이다."

실로 무서운 담공(談功)이었다. 담공이란 무공을 말로 주고 받으며 승부를 가리는 것을 말한다. 무공의 절정에 있는 고수들만이 겨룰 수 있는 최상의 경지라고 할 수 있다.
그 말을 듣는 순간에 각공대사는 가슴이 철렁하였다. 한 눈에 자신의 허와 실을 간파하여 담공을 펼치는 천봉자가 아닌가......
얼른 자세를 바꾸면서 그 담공에 답하였다.
"대단한 식견이로다. 그러면 다음의 살수를 펼치마......헤헤~"

"지금의 자세는 흑호신요(黑虎伸腰)로서 나의 도해배산세를 타 넘으며 내 허리의 명문혈(命門穴)을 노리지만 각공대사의 내공이 전후로 흩어지니 그 힘이 미약할 것이오. 나는 선장추운세(仙掌推雲勢)로 흑호신요를 밀어내면서 각공대사의 가슴에 있는 전중혈을 강타할 것이요. 피할 수 있을 것인가?"
싸늘한 천봉자의 말에 각공대사는 무릎이 떨리면서 진땀이 흘러 내렸다. 만약에 진공(眞功)을 겨루었다면 자신은 발 아래에 피를 토하며 죽은 만엽도인처럼 되었을 것이었다.

"흠...... 실로 무서운 담공이로다." 신음소리를 내는 각공대사의 몸이 옆으로 흐르더니 두 팔을 위 아래로 활짝 펼쳤다. 그러자 천봉자의 담공이 매섭게 허공을 날았다.
"미련한 짓이로다. 지금 대사님의 혈기가 가슴을 치솟아 내공이 흔들리거늘...... 아래가 단단하여 바위 같아야 그 위력이 나오는 만궁개흉(挽弓開胸)이 아닌가...... 그러면 내가 나한투호(羅漢鬪虎)로 펄쩍 뛰어서 너의 목을 두 동강이 내어 버릴 것이다. 대사님은 이미 죽은 목숨이라고 해야 마땅하지 않은가?"

입술을 깨문 각공대사는 허공을 훌쩍 날더니 한 바퀴를 돌아서 천봉자 앞으로 바짝 다가갔다. 그리고는 왼발을 들면서 오른손을 앞으로 쭉 뻗은 자세를 취하였다. 비웃는 천봉자의 목소리가 싸늘하다.
"하하하...... 실로 죽을 자리를 찾아다니는 우매함이로다. 장퇴고거(長퇴高擧)는 내 신법을 바꿀 필요도 없이 오른손을 뒤로 돌려서 탄사천구(彈射天狗)를 펼치면 대사의 숨통은 끊어질 것이요."
각공대사의 몸에서 힘이 스르르 빠지더니 그 자리에 펄썩 주저 앉았다. 안색이 변하면서 진땀을 주르르 흘린다.

천봉자의 호령소리가 죽림장을 뒤흔들었다.
"각공대사...... 벌서 세 번의 초식을 펼치는 동안에 세 번의 목숨을 살려 준 공을 잊지 않겠지? 내가 소림사 장문인 혜정선사와의 관계가 각별하여 대사님의 목숨만은 보전하여 준 것이다. 지금 곧바로 소림사로 돌아가 대사님의 헛된 행동을 참회하여 은거하시오. 그렇지 않다면 지금 이 자리에서 자결하도록 하시오. 어떻소? 내가 제시한 두 가지의 길만이 대사님의 명예를 지키는 방법이라고 볼 수 있는데....."

주저앉은 각공대사는 눈을 감고 있다가 탄식을 하였다.
"오십 여 년을 밤낮으로 연마하여 오늘에 이른 나의 무공이거늘, 너무도 헛된 노력이로다. 실로 강호의 넓이를 알 수가 없으며 그 깊이를 잴 수가 없도다. 어찌 내가 세 번의 구원을 받으면서 마지막까지 비굴한 모습을 보이겠는가...... 천봉자님...... 고맙소이다. 나의 어리석은 살수를 세 번씩이나 관대히 넘겨 주시다니...... 안녕히 계십시오~"

오른 손을 위로 올린 각공대사는 자신의 머리 가운데에 있는 백회혈을 내리쳤다. 둔탁한 소리가 들리면서 각공대사는 앞으로 푹 쓰러졌다. 자결한 것이었다.
사방에서는 숨소리 하나도 들리지 않았다.
죽림장을 둘러싸고 이 광경을 보고 있는 고수들의 간담이 서늘하여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