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 이눔아..진짜로~~ 진지하게 생각해봐..내 아들이래서가 아니라 진짜 이 놈 괜찮아..
졸업하고 공장 다니면서 꼬박꼬박 적금 넣어서 지금 한 1000만원 돈 된다!. 애는 참 성실해..지 엄마 닮아서 숫기가 없어 가지고 여잘 못 만나서 그렇지. 아마 이 놈 장가가면 마누라한테 끔찍히도 잘할게다.."
"하하..아버님......아우....하하... 아무리 그래도 그렇죠..규석이랑 저 6살 차이 나는데요..
아니 아버님..규석이 젊은 색시 얻고 싶지 저 같은 노땅 얻고 싶겠어요..하하"
"아녀~근데....이 자식도 연상 좋아하는거 같어..니 우리집에 들어와 그냥 살자..내가 하루에 용돈 만원씩 줄께...어..? 웃기는……여 와서 살믄 규영이랑도 매일 같이 놀고 좋잖여"
"규영아! 아버님 좀 말려 드려라..하하..
우리 아버님께서 낮부터 약주가 좀 과하셨나 본데요...하하"
규영이는 과일을 깍아 한 조각 입에다 넣으면서 피식 웃어 보인다.
"아우 아빠! 서화는 눈 높아..그리고 갖다 붙일 델 갖다 붙여..대학 나와서..서울 서 좋은 회사 댕기는데 우리 규석이가 눈에 차겠어? 괜한 일에 열 올리지 마시고 그만 주무시죠 아바마마..엄마 오시면 아빠 또 한 소리 들어요..얼릉요."
죽마고우 단짝 규영이가 아버질 꼬집는 시늉을 하며 방에 들어가시라고 재촉한다.
나의 난처한 얼굴을 읽고는 20년 우정을 과시하듯 재빨리 중재에 들어간 것이다.
"(씨익) 사과 먹어...울 아빠 주책 신경쓰지마..뭔 또 갑자기 규석이랑 엮을라고 그러시나.."
"주책은 무슨...아버님 때매 오랫만에 한바탕 웃어본다...
이야~~규석이 어릴 때 그렇게 코 흘리고 다니더니..고게 벌써 연애도 하고 그럴 나이구나."
"그럼..야~~규석이는 뭐 안크냐..그 자식 요새 술을 좀 먹고 다녀서 아빠가 어디 좋은 여자 있으면 맺어 줬음 하시더라구..손주도 보고 싶다 그러시고.. 우리 아빠 벌써 늙으시나봐"
"어..그래..!?..음..아직 나이가 너무 어린거 아니야? 규석이가.. 올해 스물 둘인가?"
"음..스물 둘...너 못본지 꽤 됐지?"
"어..한 3~4년 된것 같은데...내가 올때 번번히 못 마주쳤던 것 같애.."
"제법 의젓해 졌어..고등학교 졸업하고 바로 가구 공장으로 취업 나갔던 건 알지?”
규영이 과일을 깎기 위해 꽂아 두었던 시선을 나의 대답을 유도하듯 잠시 내쪽으로 향한다.
“어 알지..그때 니가 얘기 했었어.”
“사회생활 하면서 부터 진짜 확 다르게 철 들더라고..그리고 되게 짠돌이야..돈 벌어보니까 소중한 걸 알겠나봐..내가 걔 주머니에서 돈 나오는 걸 잘 못 본다니까..적금도 꼬박꼬박 붓고 부모님 용돈도 잘 챙겨 드리고. 기뜩해 죽겠어 아주"
규영이 입에서 동생 칭찬이 나오긴 참 오랜만 인 것 같다.
어릴땐 말도 징그럽게 안 듣는다고 하소연을 해대는 통에 나도 같이 혼내 준 적이 있었었다.
지금은 철이 들었다고 하니까 규영이의 마음이 한시름 놓인 것 같아 안심이다.
규영이가 귤을 까서 살짝 벌린 내 입에 쏙 밀어주곤 창밖으로 시선을 내던지며 조심스레 물어본다.
"서화야…그 남자는……… 어떻게…… 된거야?
“그 남자? 음…”
‘그 남자..’란 말이 규영이의 입을 통해 나오는 순간 화로의 있던 불덩어리가 목에 걸려 온 몸을 뜨겁게 달구는 것 같았다. 목에서 시작된 불덩이를 끄려고 온 정신을 집중해 마음을 쓰다듬어 불씨를 겨우 잠재울 순 있었지만 목의 섬세한 기관들을 다 태우고 뿌연 연기만 자욱하다. 지금 내 목에선 남은 불씨와 연기를 지우기 위한 생명수가 간절하다
쟁반에 놓인 주스를 마신다. 주스가 식도를 타고 목으로 넘어갈 때마다
너절해진 신경들이 느껴져 고통스러운 듯 극도로 불규칙한 목넘김을 하고 있다.
이런 감정의 발작을 규영이 모를 리 없다.
규영인 내가 지금 무엇이 필요한지 가슴으로 전달받고 아무말 없이 진정할 시간을 준다.
그 침묵속에서 20년 동안 손을 놓지 않은 친구의 깊은 위로가 나로 하여금 먼저 침묵을 깰 수 있는 에너지가 되어 주는 것이 감동스러울 따름이다.
“규영아 저녁에 뭐 해줄꺼야? 나…니가 해준 닭찜 먹고 싶은데..”
분위기를 바꾸려 되지도 않는 애교를 좀 섞어서 물어보지만 영 어색하다.
“뭐? 닭찜이라고? 닭찜 좋지..빙고! 실은 니가 내가 요리 한 것 중에 닭찜이 제일 맛있다고 해서 그거 해줄려고 그랬는데..역시 우린 뭔가 통한다 그치?”
실은 저녁 메뉴는 보나마나 닭찜이란 걸 알고 있다. 규영인 내가 닭찜이 너무 맛있다고 하니까 그 다음부터 놀러올때면 항상 닭찜을 해준다. 어릴땐 내가 장조림을 좋아한다고 했더니 매일 장조림 반찬을 싸와서 날 감동시켰던 친구다. 너무 사랑스럽다.
“진짜? 아 좋아라…내가 우리 엄마한테도 솔직히 닭찜은 규영이가 해준게 더 맛있다 그랬더니 나중에 와서 꼭 한번 해달라고 그러시더라.”
“좋지~ 아.. 근데 서화야. 난 다른건 별로 모르겠는데..닭찜 맛있다 그러면 기분 되게 좋다..
니가 유달리 닭요리 좋아해서 그런가”
“규영이표 닭요린 진짜 진짜 맛있으니깐요..이런 내 애교 때문이 아닐까..하하”
“그래! 나의 영원한 골수팬 생각에 기분 엄청 좋은 가보다 하하”
우린 닭찜에 대해 얘기한 듯 하나 닭찜을 탄 그 대화 속에는
진심 어린 위로와 마음까지 들여다 봐주는 친구에 대한 고마움을 차례로 주고 받는다.
‘역시 규영이에게 오길 잘했어’
2
“김팀장! 지금 정신이 있는거야 없는거야. 지금 얼마나 바쁜지 알면서 휴갈 간다니
그게 말이 되는 소리야?”
“정말 죄송합니다 부장님. 3년동안 상반기 후반기 휴가 모두 반납하고 일주일에 몇일씩 야근했던거 아시잖아요. 정말 죄송지만 개인적으로 정리가 좀 필요합니다. 딱 일주일만 휴가 쓰고 오겠습니다. 다녀와서 더 열심히 일하겠습니다. 부장님 결재 해 주십시오. 부탁 드리겠습니다”
“대신 회사 창립 이레 초고속 승진 타이틀까지 따내며 인정 받고 있잖아. 그럼 된 거 아니야? 어떻게 남들 하는거 똑같이 하면서 성공도 하고 싶고 그런가. 그건 이기적인 생각 아닌가?”
“정말 죄송합니다. 그래서 부탁 드리는 겁니다 부장님. 저 지금까지 지켜보셔서 잘 아시잖아요. 지금 책상에 앉아 있어도 아무것도 할 수가 없어서 그럽니다. 다녀와서 정말 더 열심히 노력하겠습니다. 부장님… 저 믿으시잖아요.”
내 말에 어이 없다는 듯 한번 흘겨 보시고는
“그래도 일주일은 길어..오늘이 수요일이니까 다음주 월요일날 정시에 출근해.
그래도 목, 금, 토, 일 4일은 쉬는 거다.”
“예! 알겠습니다. 부장님 정말 감사 드립니다. 업무에는 차질 없도록 철저하게 지시 해 놓고
다녀오겠습니다. 그리고 부장님! 잊지 않겠습니다. 저… 믿어주시는 거요”
“듣기 싫으니까 그런 말 하지도 말어.”
“예! 알겠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부장님”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벗어놓은 안경을 다시 집어 썼다.
안경에서 손을 떼고 천천히 책상에 너저분하게 흩어져 있는 서류들을 들추는 모습을 보니
죄송한 생각이 들어 얼른 뒤를 돌아 버렸다.
집중에 방해가 될세라 조심조심 발을 떼어 문 꼬리를 잡는 찰나에 그가 부르는 소리에 화들짝 놀라 심장에서 ‘쿵’ 하고 내려치는 소리가 머리까지 울렸다.
“김팀장!”
“예? 예!”
“남을 다스리기 위해선 자신부터 다스릴 줄 알아야 한다.”
냉철하지만 온화한 그의 말에서 존경 받는 지도자의 운상기품이 느껴졌다.
“예! 명심하겠습니다.”
그의 방에서 나와 자리를 비우는4일 동안 비교적 업무를 차질 없이 진행시킬 전략을 짜고 직원들을 회의실로 소집했다. 갑작스런 팀장의 휴가 소식을 접하게 된 직원들의 표정을 일일이 읽기엔 내 열정이 너무나 소진 된 상태였다.
직원들에게 가벼운 인사만 전하고 도망치듯 회사를 빠져 나왔다.
휴가를 가겠노라 마음먹은 후부터 조금씩 두근대던 가슴이 주차장을 들어서는 순간 그 적막하고 음산스러움에 질색한 듯 마구 요동치기 시작했다.
문제를 해결해 보겠노라고 생각을 정리해 보겠노라고 반억지를 부려 얻어낸 첫 휴가지만 미안한 마음에 죄책감까지 들어 내 딛는 발걸음마다 접착제라도 붙여 놓은 듯 떼기가 힘들다.
‘이러고도 내가 팀장 자격이 있는걸까’
차문을 열려고 키를 꼽다 썬팅된 창문에서 굴절현상 때문인지
조금 을씨년스럽기 까지한 내 얼굴이 보였다.
벌써 몇 분째 키만 박아 놓고는 돌리지도 않고 운전석 옆 창만 응시하고 서 있었다.
내가 이 길로 주차장을 빠져 나가면 그 동안 공들인 모든 것이 날아갈 것만 같은 불안이 엄습해 왔다.
‘대체 뭐가 그렇게 두려운거야.’
뭐라 정확히 알 수 없는 불안 때문에 미적대는 내 자신이 슬슬 미워졌다.
꽂아 둔 키를 다시 재빨리 빼내 들어 가방에 던져 버렸다.
그리곤 다시 엘리베이터를 타고1층 로비로 올라갔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또랑또랑한 안내 데스크의 여직원 음성이 들려왔다.
그 음성이 유난히 크게 들리는 건 아마도 지하주차장안에 너무 오래 있었기 때문인 것 같다.
또박또박 걸음을 옮겨 문 쪽으로 걸어가 오른팔에 힘을 주고 유리문을 밖으로 힘껏 밀어 제쳤다.
얼굴 전체로 느닷없이 쏟아져 들어온 햇살 때문에 몇번 눈이 깜빡 거렸다.
따사로운 것이 그리 나쁘지 않았다. 아니 기분을 묘하게 풀어 주는 듯 했다.
조금 전 지하주차장에서 봤던 을씨년스런 얼굴 이며 천근만근이었던 발걸음은 이제 내 것이 아닌 것 처럼 느껴졌다.
천천히 걸었다.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들. 빠르게 경주라도 하듯 달려대는 차들..
지금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왠지 낯설어 순간 몸을 움츠렸다.
뺨을 스치는 바람도 낯설고 그 바람의 냄새도 낯설고 내가 걷고 있는 이 땅도 낯설었다.
나만 다른 시대에 살고 있는 착각이 들 정도였다.
누가 나도 모르는 사이에 몸속 장기를 몽땅 훔쳐간 것도 아닌데
아무것도 들어 있는 것 같지 않고 또 느낄 수 조차도 없었다.
위로받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 고개를 젖혀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정말…… 푸근하다.. 하늘은… 당신도 어딘가에서 이 하늘 보고 있겠죠..힘들면…
나처럼 하늘보고 있겠죠….하늘이…….. 그렇다고 말해줬어요..흑
하늘을 마주보고 있는 두 눈에서 분수대 처럼 눈물이 쏟아져 나왔다.
일부로 닦으려 손을 올리지 않았다. 눈물이 뺨을 타고 뚝뚝 떨어졌다.
그동안 눈물이 나오려고 하면 날카로운 이로 짓눌러 입술을 찢어트릴 망정 눈물방울 내보내는 걸 혐오 스럽게 여겼던 내가 도심 한 복판에서 어린아이처럼 꺼억꺼억 소리까지 내며 울어버렸다.
머리가 어지럽고 얼굴과 목은 열이 오르다 못해 뜨거운데 눈물은 들어갈 기미조차 보이지 않았다.
옆머리까지 흥건하게 적실 정도로 하늘을 보며 울고…또 계속 울었다.
하늘이 괜찮아..서화야…울어도 괜찮아..울고 싶은 만큼 울어 라고 말해 주는 것 같아 하늘로 솟았음 좋겠어요, 그래서 하늘품에 안겼음 좋겠어요 라고 중얼대며 더 크게 흐느꼈다.
이유는 자신에게 물어봐라...
1
“하하하...네? 하하하 아버님도 참…아뇨..'
'아버님 진짜 재밌으셔'
'뭐 이눔아..진짜로~~ 진지하게 생각해봐..내 아들이래서가 아니라 진짜 이 놈 괜찮아..
졸업하고 공장 다니면서 꼬박꼬박 적금 넣어서 지금 한 1000만원 돈 된다!. 애는 참 성실해..지 엄마 닮아서 숫기가 없어 가지고 여잘 못 만나서 그렇지. 아마 이 놈 장가가면 마누라한테 끔찍히도 잘할게다.."
"하하..아버님......아우....하하... 아무리 그래도 그렇죠..규석이랑 저 6살 차이 나는데요..
아니 아버님..규석이 젊은 색시 얻고 싶지 저 같은 노땅 얻고 싶겠어요..하하"
"아녀~근데....이 자식도 연상 좋아하는거 같어..니 우리집에 들어와 그냥 살자..내가 하루에 용돈 만원씩 줄께...어..? 웃기는……여 와서 살믄 규영이랑도 매일 같이 놀고 좋잖여"
"규영아! 아버님 좀 말려 드려라..하하..
우리 아버님께서 낮부터 약주가 좀 과하셨나 본데요...하하"
규영이는 과일을 깍아 한 조각 입에다 넣으면서 피식 웃어 보인다.
"아우 아빠! 서화는 눈 높아..그리고 갖다 붙일 델 갖다 붙여..대학 나와서..서울 서 좋은 회사 댕기는데 우리 규석이가 눈에 차겠어? 괜한 일에 열 올리지 마시고 그만 주무시죠 아바마마..엄마 오시면 아빠 또 한 소리 들어요..얼릉요."
죽마고우 단짝 규영이가 아버질 꼬집는 시늉을 하며 방에 들어가시라고 재촉한다.
나의 난처한 얼굴을 읽고는 20년 우정을 과시하듯 재빨리 중재에 들어간 것이다.
"(씨익) 사과 먹어...울 아빠 주책 신경쓰지마..뭔 또 갑자기 규석이랑 엮을라고 그러시나.."
"주책은 무슨...아버님 때매 오랫만에 한바탕 웃어본다...
이야~~규석이 어릴 때 그렇게 코 흘리고 다니더니..고게 벌써 연애도 하고 그럴 나이구나."
"그럼..야~~규석이는 뭐 안크냐..그 자식 요새 술을 좀 먹고 다녀서 아빠가 어디 좋은 여자 있으면 맺어 줬음 하시더라구..손주도 보고 싶다 그러시고.. 우리 아빠 벌써 늙으시나봐"
"어..그래..!?..음..아직 나이가 너무 어린거 아니야? 규석이가.. 올해 스물 둘인가?"
"음..스물 둘...너 못본지 꽤 됐지?"
"어..한 3~4년 된것 같은데...내가 올때 번번히 못 마주쳤던 것 같애.."
"제법 의젓해 졌어..고등학교 졸업하고 바로 가구 공장으로 취업 나갔던 건 알지?”
규영이 과일을 깎기 위해 꽂아 두었던 시선을 나의 대답을 유도하듯 잠시 내쪽으로 향한다.
“어 알지..그때 니가 얘기 했었어.”
“사회생활 하면서 부터 진짜 확 다르게 철 들더라고..그리고 되게 짠돌이야..돈 벌어보니까 소중한 걸 알겠나봐..내가 걔 주머니에서 돈 나오는 걸 잘 못 본다니까..적금도 꼬박꼬박 붓고 부모님 용돈도 잘 챙겨 드리고. 기뜩해 죽겠어 아주"
규영이 입에서 동생 칭찬이 나오긴 참 오랜만 인 것 같다.
어릴땐 말도 징그럽게 안 듣는다고 하소연을 해대는 통에 나도 같이 혼내 준 적이 있었었다.
지금은 철이 들었다고 하니까 규영이의 마음이 한시름 놓인 것 같아 안심이다.
규영이가 귤을 까서 살짝 벌린 내 입에 쏙 밀어주곤 창밖으로 시선을 내던지며 조심스레 물어본다.
"서화야…그 남자는……… 어떻게…… 된거야?
“그 남자? 음…”
‘그 남자..’란 말이 규영이의 입을 통해 나오는 순간 화로의 있던 불덩어리가 목에 걸려 온 몸을 뜨겁게 달구는 것 같았다. 목에서 시작된 불덩이를 끄려고 온 정신을 집중해 마음을 쓰다듬어 불씨를 겨우 잠재울 순 있었지만 목의 섬세한 기관들을 다 태우고 뿌연 연기만 자욱하다. 지금 내 목에선 남은 불씨와 연기를 지우기 위한 생명수가 간절하다
쟁반에 놓인 주스를 마신다. 주스가 식도를 타고 목으로 넘어갈 때마다
너절해진 신경들이 느껴져 고통스러운 듯 극도로 불규칙한 목넘김을 하고 있다.
이런 감정의 발작을 규영이 모를 리 없다.
규영인 내가 지금 무엇이 필요한지 가슴으로 전달받고 아무말 없이 진정할 시간을 준다.
그 침묵속에서 20년 동안 손을 놓지 않은 친구의 깊은 위로가 나로 하여금 먼저 침묵을 깰 수 있는 에너지가 되어 주는 것이 감동스러울 따름이다.
“규영아 저녁에 뭐 해줄꺼야? 나…니가 해준 닭찜 먹고 싶은데..”
분위기를 바꾸려 되지도 않는 애교를 좀 섞어서 물어보지만 영 어색하다.
“뭐? 닭찜이라고? 닭찜 좋지..빙고! 실은 니가 내가 요리 한 것 중에 닭찜이 제일 맛있다고 해서 그거 해줄려고 그랬는데..역시 우린 뭔가 통한다 그치?”
실은 저녁 메뉴는 보나마나 닭찜이란 걸 알고 있다. 규영인 내가 닭찜이 너무 맛있다고 하니까 그 다음부터 놀러올때면 항상 닭찜을 해준다. 어릴땐 내가 장조림을 좋아한다고 했더니 매일 장조림 반찬을 싸와서 날 감동시켰던 친구다. 너무 사랑스럽다.
“진짜? 아 좋아라…내가 우리 엄마한테도 솔직히 닭찜은 규영이가 해준게 더 맛있다 그랬더니 나중에 와서 꼭 한번 해달라고 그러시더라.”
“좋지~ 아.. 근데 서화야. 난 다른건 별로 모르겠는데..닭찜 맛있다 그러면 기분 되게 좋다..
니가 유달리 닭요리 좋아해서 그런가”
“규영이표 닭요린 진짜 진짜 맛있으니깐요..이런 내 애교 때문이 아닐까..하하”
“그래! 나의 영원한 골수팬 생각에 기분 엄청 좋은 가보다 하하”
우린 닭찜에 대해 얘기한 듯 하나 닭찜을 탄 그 대화 속에는
진심 어린 위로와 마음까지 들여다 봐주는 친구에 대한 고마움을 차례로 주고 받는다.
‘역시 규영이에게 오길 잘했어’
2
“김팀장! 지금 정신이 있는거야 없는거야. 지금 얼마나 바쁜지 알면서 휴갈 간다니
그게 말이 되는 소리야?”
“정말 죄송합니다 부장님. 3년동안 상반기 후반기 휴가 모두 반납하고 일주일에 몇일씩 야근했던거 아시잖아요. 정말 죄송지만 개인적으로 정리가 좀 필요합니다. 딱 일주일만 휴가 쓰고 오겠습니다. 다녀와서 더 열심히 일하겠습니다. 부장님 결재 해 주십시오. 부탁 드리겠습니다”
“대신 회사 창립 이레 초고속 승진 타이틀까지 따내며 인정 받고 있잖아. 그럼 된 거 아니야? 어떻게 남들 하는거 똑같이 하면서 성공도 하고 싶고 그런가. 그건 이기적인 생각 아닌가?”
“정말 죄송합니다. 그래서 부탁 드리는 겁니다 부장님. 저 지금까지 지켜보셔서 잘 아시잖아요. 지금 책상에 앉아 있어도 아무것도 할 수가 없어서 그럽니다. 다녀와서 정말 더 열심히 노력하겠습니다. 부장님… 저 믿으시잖아요.”
내 말에 어이 없다는 듯 한번 흘겨 보시고는
“그래도 일주일은 길어..오늘이 수요일이니까 다음주 월요일날 정시에 출근해.
그래도 목, 금, 토, 일 4일은 쉬는 거다.”
“예! 알겠습니다. 부장님 정말 감사 드립니다. 업무에는 차질 없도록 철저하게 지시 해 놓고
다녀오겠습니다. 그리고 부장님! 잊지 않겠습니다. 저… 믿어주시는 거요”
“듣기 싫으니까 그런 말 하지도 말어.”
“예! 알겠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부장님”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벗어놓은 안경을 다시 집어 썼다.
안경에서 손을 떼고 천천히 책상에 너저분하게 흩어져 있는 서류들을 들추는 모습을 보니
죄송한 생각이 들어 얼른 뒤를 돌아 버렸다.
집중에 방해가 될세라 조심조심 발을 떼어 문 꼬리를 잡는 찰나에 그가 부르는 소리에 화들짝 놀라 심장에서 ‘쿵’ 하고 내려치는 소리가 머리까지 울렸다.
“김팀장!”
“예? 예!”
“남을 다스리기 위해선 자신부터 다스릴 줄 알아야 한다.”
냉철하지만 온화한 그의 말에서 존경 받는 지도자의 운상기품이 느껴졌다.
“예! 명심하겠습니다.”
그의 방에서 나와 자리를 비우는4일 동안 비교적 업무를 차질 없이 진행시킬 전략을 짜고 직원들을 회의실로 소집했다. 갑작스런 팀장의 휴가 소식을 접하게 된 직원들의 표정을 일일이 읽기엔 내 열정이 너무나 소진 된 상태였다.
직원들에게 가벼운 인사만 전하고 도망치듯 회사를 빠져 나왔다.
휴가를 가겠노라 마음먹은 후부터 조금씩 두근대던 가슴이 주차장을 들어서는 순간 그 적막하고 음산스러움에 질색한 듯 마구 요동치기 시작했다.
문제를 해결해 보겠노라고 생각을 정리해 보겠노라고 반억지를 부려 얻어낸 첫 휴가지만 미안한 마음에 죄책감까지 들어 내 딛는 발걸음마다 접착제라도 붙여 놓은 듯 떼기가 힘들다.
‘이러고도 내가 팀장 자격이 있는걸까’
차문을 열려고 키를 꼽다 썬팅된 창문에서 굴절현상 때문인지
조금 을씨년스럽기 까지한 내 얼굴이 보였다.
벌써 몇 분째 키만 박아 놓고는 돌리지도 않고 운전석 옆 창만 응시하고 서 있었다.
내가 이 길로 주차장을 빠져 나가면 그 동안 공들인 모든 것이 날아갈 것만 같은 불안이 엄습해 왔다.
‘대체 뭐가 그렇게 두려운거야.’
뭐라 정확히 알 수 없는 불안 때문에 미적대는 내 자신이 슬슬 미워졌다.
꽂아 둔 키를 다시 재빨리 빼내 들어 가방에 던져 버렸다.
그리곤 다시 엘리베이터를 타고1층 로비로 올라갔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또랑또랑한 안내 데스크의 여직원 음성이 들려왔다.
그 음성이 유난히 크게 들리는 건 아마도 지하주차장안에 너무 오래 있었기 때문인 것 같다.
또박또박 걸음을 옮겨 문 쪽으로 걸어가 오른팔에 힘을 주고 유리문을 밖으로 힘껏 밀어 제쳤다.
얼굴 전체로 느닷없이 쏟아져 들어온 햇살 때문에 몇번 눈이 깜빡 거렸다.
따사로운 것이 그리 나쁘지 않았다. 아니 기분을 묘하게 풀어 주는 듯 했다.
조금 전 지하주차장에서 봤던 을씨년스런 얼굴 이며 천근만근이었던 발걸음은 이제 내 것이 아닌 것 처럼 느껴졌다.
천천히 걸었다.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들. 빠르게 경주라도 하듯 달려대는 차들..
지금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왠지 낯설어 순간 몸을 움츠렸다.
뺨을 스치는 바람도 낯설고 그 바람의 냄새도 낯설고 내가 걷고 있는 이 땅도 낯설었다.
나만 다른 시대에 살고 있는 착각이 들 정도였다.
누가 나도 모르는 사이에 몸속 장기를 몽땅 훔쳐간 것도 아닌데
아무것도 들어 있는 것 같지 않고 또 느낄 수 조차도 없었다.
위로받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 고개를 젖혀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정말…… 푸근하다.. 하늘은… 당신도 어딘가에서 이 하늘 보고 있겠죠..힘들면…
나처럼 하늘보고 있겠죠….하늘이…….. 그렇다고 말해줬어요..흑
하늘을 마주보고 있는 두 눈에서 분수대 처럼 눈물이 쏟아져 나왔다.
일부로 닦으려 손을 올리지 않았다. 눈물이 뺨을 타고 뚝뚝 떨어졌다.
그동안 눈물이 나오려고 하면 날카로운 이로 짓눌러 입술을 찢어트릴 망정 눈물방울 내보내는 걸 혐오 스럽게 여겼던 내가 도심 한 복판에서 어린아이처럼 꺼억꺼억 소리까지 내며 울어버렸다.
머리가 어지럽고 얼굴과 목은 열이 오르다 못해 뜨거운데 눈물은 들어갈 기미조차 보이지 않았다.
옆머리까지 흥건하게 적실 정도로 하늘을 보며 울고…또 계속 울었다.
하늘이 괜찮아..서화야…울어도 괜찮아..울고 싶은 만큼 울어 라고 말해 주는 것 같아 하늘로 솟았음 좋겠어요, 그래서 하늘품에 안겼음 좋겠어요 라고 중얼대며 더 크게 흐느꼈다.
그렇게 얼마나 울은걸까.
두 다리는 그 자리에 박혀있는 것처럼 꼿꼿하고 정신은 혼미했다.
손을 올려 얼굴을 쓰다듬고 머리를 가다듬었다.
발을 한발짝 떼는데 몸이 휘청휘청 해대는 통에 속이 미식거리고 머리가 어지러웠지만
한걸음 한걸음 천천히 다시 걷기 시작했다.
걷는 동안 아무 생각도 하지 않았다.
기운이 빠진 몸을 이끌고 한발씩 옮길 뿐이었다.
그렇게 30여분을 걸어 오피스텔 앞에 도착했다.
어느새 날은 어둑어둑해 지고 있었다.
숨을 가다듬고 다시 한번 머리와 얼굴을 차례로 쓸어 보고는 오피스텔 안으로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