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무 / 天武......26 (죽림장의 대혈투)

월하벽송2002.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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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어느덧 호숫가에는 노을이 내리고 있었다. 바람에 대나무잎이 우수수하는 소리를 낸다.
천봉자는 태연하게 설선녀와 아기를 돌보고 있다. 사혈을 손상당한 설선녀는 의식이 돌아오지 않았고 아기는 칭얼대며 그 품에 안겨 있었다.

(도대체 천봉자의 무공은 어디가 시작이고 끝인가...... 만엽도인과 각공대사는 무림에서 명성을 날리던 대고수인데 저렇듯 한순간에 죽음을 당하였으니 어이가 없도다...... 한번의 손속에 한 명의 목숨이 위태롭다는 말은 분명한 사실이다.)
천봉자의 목숨을 노리는 고수들의 마음은 착잡하였다. 조금도 동요를 보이지 않고 처자를 돌보고 있는 태연함이 그들을 더욱 초조하게 만들었다.

대나무 숲에서 서서히 걸어 나오는 흑의인이 있었다. 바로 자혈검을 탈취하였던 흑의인이었다.
"내가 보기에는 귀공은 일선교에서 대단히 높은 위치에 있는 것 같소...... 귀공의 존성대명이나 알고 귀공의 손속을 맛보고 싶은데......" 흑의인을 보자 천봉자는 방문 앞을 나서며 흑의인에게 말했다.

"흐흐흐...... 내가 누구인지도 모르고 목숨을 잃기가 섭섭하단 말이지? 좋다, 내가 누구인지 알려 주마. 나는 일선교 본방에서 교주님을 직접 모시고 있는 혈비귀마(血悲鬼魔)이다. 흐흐흐......"
칼자루를 손에 쥐면서 혈비귀마는 음침한 목소리로 대답하였다. 천봉자는 담담하게 말하였다.
"그러면 혈비귀마의 무공을 내가 단 한번의 손속으로 꺾어 버리겠소. 기다리겠소이다."
천봉자는 뚜벅뚜벅 걸어서 혈비귀마 앞에 섰다.

"흐흐흐...... 나의 검이 피를 부르는구나......" 혈비귀마는 쨍하는 소리와 함께 장검을 뽑아 들었다.
칼을 비스듬하게 내밀면서 발을 옆으로 옮기는 혈비귀마의 숨소리는 고요하였다.
(흠...... 상대의 움직임은 잔잔한 바다와 같다. 한 손으로 들이미는 검 끝이 정지하여 조금의 틈도 없으니 대단한 무공이다. 지금의 자세에서는 최소한도 열 여덟 가지의 변화를 몰고 올 수도 있는 것이니...... 한번의 실수는 치명적일 것이다.)

두 손을 아래로 내리고는 발을 살짝 벌린 천봉자의 눈이 혈비귀마의 눈과 마주치면서 불꽃을 튀겼다. 검을 든 혈비귀마의 그림자가 석양노을에 길게 늘어지며 천봉자의 그림자를 감아 돌기 시작하였다. 목과 허리와 정수리를 더듬으며 틈을 엿보는 검은 노을 빛을 반사하여 붉은 빛을 띄우고 있었다.

이얍~ 하는 혈비귀마의 목소리가 들리면서 허공을 기역자로 꺾어 내리는 장검이 천봉자의 허리를 두 동강을 내는 기세로 날아들었다. 천봉자의 몸이 칼날을 타 넘듯이 재주를 넘으면서 아래로 검을 지나치게 하는 순간에 칼날이 휙 뒤집히면서 번쩍 하더니 천봉자의 목을 향하여 날았다.
추호의 틈도 허용치 않는 신랄한 공격이었다.

목에 칼날이 닿는 순간에 빙글 하면서 몸을 돌린 천봉자의 몸이 혈비귀마에게 바짝 다가서는 것이었다.
순간에 혈비귀마가 검을 들고 있는 손의 이간혈(二間穴)에 천봉자의 중지가 퍽하고 꽂혔다.
어엇~ 하는 혈비귀마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리는 찰나 어느새 장검은 천봉자의 손에 들려져 있었다. 흭 하고 나르는 장검의 빛이 혈비귀마의 눈에 비치는 순간에 그의 머리는 피를 뿜으며 바닥에 굴러 떨어졌다. 사방에 숨어서 이 광경을 보는 모든 고수의 목 밑이 서늘하였다. 경악하며 입을 딱 벌렸다.

천봉자는 파르르 떨고 있는 목없는 혈비귀마의 몸통에 장검을 퍽 하고 꽂았다. 그리고는 사방을 둘러보며 큰소리로 말하였다.
"내 목숨을 노리고 계시는 무림의 대고수들은 훗날에 나를 다시 찾아오라는 내 말을 못 들었는가? 오늘은 내 목숨을 드릴수가 없소이다. 보시다시피 나의 처와 자식이 저렇듯이 나의 도움을 필요로 하고 있기 때문이니...... 어서 돌아가시고 나중에 다시 오도록 하라. 더 이상 나의 목숨을 노린다면 지금 내가 동강이를 낸 혈비귀마의 꼴을 면하기 어려울 것이로다."
입을 벌린 채 숨어 있는 고수들은 모두 말을 잃었다. 누구도 앞에 나설 엄두를 내지 못하였다.

천봉자는 뒤 돌아서더니 방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는 태연하게 아기를 무릎에 앉히고는 설선녀의 혈도를 더듬어 손상된 사혈을 치료하기 시작하였다.
어느덧 밤은 깊어지고 있었다. 보름달이 둥근 모습을 산 위로 드러냈다. 천봉자는 촉각을 곤두세우고 잠자는 아기를 다독거리고 있었다. 하나의 움직임이 지붕위로 올라서는 기운을 느꼈다. 등에 아기를 업고는 천으로 칭칭 감았다. 그리고 길다란 대나무를 손에 쥐고 문밖으로 나섰다. 훌쩍 지붕위로 오른 천봉자의 앞에는 하얀 옷을 입은 백의인이 우뚝 서 있었다.

"하하하...... 드디어 일선교 교주께서 나타나시었군. 오늘은 그만 돌아가시라는 말을 못 들었소?"
"호호호...... 천봉자의 수려한 무공에 눈이 어지럽소이다. 실로 목숨을 빼앗기에는 너무도 아까운 인물이라는 생각이 앞서는데...... 내가 천봉자의 모든 행동을 용서할 터이니 일선교에 들어와서 일익을 담당해 주셨으면 하여서 직접 왔소이다. 호호호......"
요염한 일선교 교주의 웃음소리가 허공에 울렸다.

"하하하...... 정말 길 가던 개도 웃을 일이요. 남의 비급이나 도둑질하고 보복이나 일삼는 파렴치한 패거리들에게 합류하라는 말씀인데...... 하하하, 교주의 눈에는 내가 그렇게도 우습게 보이는가?"
"호호호...... 참으로 장부다운 말씀이로다. 그렇게 말하는 귀공이 더욱 내 마음에 드는 것은 어인 일인가? 내가 관대함을 베풀어 마지막 기회를 주는 것이니 잘 생각하여 보도록 하시오."

"고마운 제안이지만 일언지하에 거절하겠소. 내가 강호를 편력하여 오늘에 이른 것은 하찮은 패거리의 우두머리가 되거나 보복을 일삼으려고 하는 것은 아닌 즉, 일개 아녀자를 하늘처럼 떠 받드는 소인배의 짓을 하리라고 기대는 하지 마시오. 하하하......"
"흥...... 목숨을 위태로운 지경으로 스스로가 몰아가는 어리석은 자로다. 내가 이렇게 손수 너에게 청하는 것을 감히 거절하다니...... 정말로 세상 무서운 것을 모르는 어린아이 같도다. 호호호......"
말을 마친 일선교의 교주는 몸을 허공으로 십 장이나 날리더니 대나무 숲속으로 사라졌다.

천봉자는 한 마리의 매가 허공을 가르는 듯한 일선교 교주의 신법에 감탄하였다.
몸을 돌려 지붕 위에서 뛰어 내리려는 순간에 달빛을 타고 하나의 표창이 번쩍하며 날아 들었다. 천봉자의 손에 들린 대나무가 표창을 때리며 떨구었다. 그러자 앞뒤에서 날카로운 소리를 내며 표창이 날아왔다. 몸을 낮추면서 대나무를 휘두르니 허공에 불꽃이 튀기듯이 표장이 튕겨 오르다가 바닥으로 떨어진다.

별안간 무거운 쇠뭉치가 어둠을 가르며 날아왔다. 길다란 쇠사슬의 끝에 쇠뭉치를 단 유성추가 사방에서 날아든 것이었다. 번쩍하는 표창은 천봉자의 등에 업혀 있는 아기를 집중적으로 공격하였고 유성추는 천봉자의 몸에 떨어졌다.

지붕의 사방 끝에 네 명의 괴한이 유성추를 돌리고 있었으며 대나무 숲 속에서는 표창이 연달아 날아오는 것이었다. 아기를 등에 업은 채로 허공을 다섯 장이나 뛰어오른 천봉자가 흥 하는 소리를 내면서 날아온 표창을 죽봉으로 힘차게 때렸다. 대나무의 탄력으로 후려친 표창이 쌩 하는 소리를 내며 대나무 숲속으로 날았다.
으흑....... 하는 여자의 비명소리가 들렸다. 천봉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내 짐작대로 지금의 표창공격은 아미파의 소행이로구나. 여자의 비명소리는 분명히 아미파의 고수임에 틀림없도다.)
이번에는 뒤에서 다섯 개의 표창이 한꺼번에 날아 들었다. 몸을 휙 하고 뒤로 돌리면서 강한 내공을 실어서 표창을 후려쳤다.
하나의 표창이 역시 대나무 숲속으로 날아갔고 곧 이어 여자의 신음소리가 들렸다. 순간에 또 날아간 다른 표창이 지붕 끝에서 유성추를 돌리던 두 명의 괴한에게 꽂혔다. 한 명이 목을 쥐어 잡고는 아래로 떨어졌다. 또 한 명은 가슴을 쓸어 안으며 앞으로 꼬꾸라진다.
대나무로 날아오는 상대방의 표창을 후려쳐서 다시 상대방에게 날리는 신출귀몰한 무공이었다.

양쪽에서 유성추가 다시 날아왔다. 대나무의 양쪽을 쇠사슬이 휙리릭 감았다. 그러자 두 명의 괴한이 팽팽한 쇠사슬을 당기면서 둥근 원을 그리며 뛰기 시작하였다. 두 손으로 대나무를 잡은 천봉자는 원을 그리며 뛰는 괴한에 의하여 빙글빙글 도는 대나무와 같이 몸을 돌리고 있었다.
순간에 천리전음으로 흑선비곡의 음성이 들렸다.
(내가 지금 설선녀를 데리고 떠날 것이다. 훗날을 기약하여 다시 만나기로 하자.)

천봉자가 지붕아래를 내려다보니 흑의인이 설선녀를 등에 업고 밖으로 나르는 모습이 보였다. 바로 흑선비곡이 일선교 사람으로 변장하여 흑의를 입고 설선녀를 구하려고 온 것이었다.
(흑선비곡님...... 알았습니다. 저의 아들은 제가 보호하겠습니다. 부디 설선녀를 부탁합니다.)
천봉자도 천리전음으로 말하였다. 그러자 흑선비곡의 말이 또 들렸다.
(더 이상의 불필요한 대결은 하지 말고....... 어서 이 곳을 탈출하여 목숨을 보전하거라.)
복면하고 흑의를 입은 흑선비곡을 보고는 모두 일선교 사람으로 오인하였다. 흑선비곡의 그림자가 대나무 숲 밖으로 사라지는 것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