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번에 박선배가 했던 말을 믿지 않은 탓인지 어제 일은 서희에게 더욱 충격이 크다. 일밖에 모르던 정선배를 그렇게 꼼작 못하게 하던 그 여자가 신지영이였다니.. 게다가 정선배와 신지영의 다툼이 이번 드라마 여주인공을 맡은 서희 때문인거 같아 더욱 신경이 쓰인다.
할 일이 많은 서희지만 오늘따라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 당연한 일이겠지만.... 왜 정선배가 그런 여자를 좋아하는지 아무리 생각해 봐도 이해가 가지 않는다. 정선배 정도면 신지영이 아니더라도 좋은 여자를 만날 수 있을텐데 왜 하필 신지영인 것인지... 정선배가 그 정도밖에 안되는 사람인거 같아서 마음이 아프고 원망스럽기까지 하다.
기획안을 정선배한테 넣으면서 전화를 해 약속을 잡았다. 오늘 정선배를 만날 생각은 아니였지만 내일까지 기다릴 수가 없었다. 빨리 정 선배를 만나서 정선배가 나한테 할 말이 무엇인지 알고 싶었다. 정 선배를 만나러 가는 길이 그렇게 길게 느껴질 수가 없었다. 한 까페의 큰 창 너머로 정선배의 얼굴이 보였다. 어제 일 때문인지 오늘따라 정 선배의 얼굴이 그렇게 초라해 보일 수가 없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는 서희의 발걸음이 무겁다. 담배를 피고 있는 정선배 앞에 서희가 앉았다.
"죄송해요 좀 늦었어요"
"응 아니야 나도 좀전에 왔는걸 머.."
왠지 정선배의 목소리가 한층 부드러워 진 것 같았다. 하지만 평소와 다르게 부드러워진 그 목소리가 서희를 더욱 불안하게 만들었다.
"기획안은 받아 보셨어요?"
"응 아침에 받아봤어.."
물어보고 싶었다. 무슨 일로 나를 만나자고 하는건지.. 나한테 할말이 무엇인지.. 하지만 정선배가 먼저 말할때까지 아무것도 말하고 싶지 않았다. 잠시동안 어색한 침묵이 흘렀고 먼저 말을 꺼낸 건 정선배였다.
"이번에 하 작가가 서희를 여주인공으로 뽑았다는 얘기 들었어.. 서희도 알고있지?"
"네... 제가 원한건 아닌데 그렇게 됐어요.."
"그래서 말인데......."
정선배가 머뭇머뭇 거린다. 역시 나한테 부탁할 일이 있는것이다. 무슨 부탁일까? 정선배는 목이 마르는지 물 한컵을 다 마신후에야 다시 머뭇머뭇 말을 꺼낸다. 오늘은 정선배가 평소와는 다르게 보였다.
"하실 말씀이라도 있으세요?"
"사실..... 이런 말 하기 미안하지만.. 서희가 이번 작품하고 이미지도 잘 안맞는거 같고... 처음부터 이런 큰 작품을 맡기기엔 무리라는 생각이 들어.."
정선배가 왜 저런 말을 나한테 꺼내는지 대충 짐작이 갔다. 분명 신지영 때문일것이다.
"그래서 말인데.. 하작가 고집도 있지만 서희는 연기자 하는거에 별로 취미 없잖아. 그래서 말인데 다른 배우로 교체하는게..."
이 말을 하는 정선배가 그렇게 미울 수가 없었다. 무엇 때문에 내가 주인공을 그만둬야 하는지... 그리고 그 이유가 신지영 때문이라면 더욱 더 정선배 말대로 할 수가 없었다. 꼭 신지영한테 당한 것 때문이 아니라 내가 오랫동안 좋아했던 정 선배가 나한테 저런 부탁을 하는 것이 싫었다.
"그 일 때문에 절 부르신거예요? 안 내킨게 사실이였지만 이왕 하기로 한거 열심히 해보기로 마음 먹었어요. 그러니깐 그 얘기는 그만 끝내요. 저도 최선을 다할테니깐요"
정 선배 앞에서 어떻게 이런 용기가 나왔는지 모르겠다. 평소 의사표현이 불분명한 나지만, 이번만큼은 아니였다. 오기가 생기기도 했고 화가 나기도 했다. 그리고 정선배가 지금 나한테 하는 부탁이 일 때문이 아니라 신지영 때문이라는 것이 더욱 괘씸했다.
"그럼 전 이만 가볼께요.. 할일이 많거든요"
정선배는 말이 없다. 아마 나를 잘만 다독이면 주인공 자리를 신지영에게 내 줄 꺼라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사실 어제 정선배와 신지영의 대화를 듣지 않았더라면 정선배가 지금 하는 말이 충분히 이해가 가고 나도 내키지 않던 일이였으니깐 포기했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어제 대화를 들은 나로썬 지금이 내가 처음으로 PD를 시작했을때 보다 더 큰 오기와 각오가 생겼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저런 사람이였다니... 저 정도의 사람밖엔 안 됐다니... 정선배에 대한 실망감은이루 말 할 수 없었다. 나한테 이런 말을 할 수 있을 정도의 사이라면 .. 정선배는 신지영을 많이 사랑하나 보다. 아니면 어떤 약점이라도 잡혀 있는 걸까? 마음이 복잡하다. 하지만 아직 내 마음속에 있는 정선배는 떠날줄을 모른다.
어떻게 일주일이 지났는지 모르겠다.
제작발표회는 성공적으로 마무리를 했고 그동안 콘티에 연기연습에 너무 바빴던 서희는 다른 생각을 할 여유조차 부리기 힘들었다. 오히려 다행인지도 모른다. 차라리 정신적으로 힘든것보다 육체적으로 힘든게 서희한테는 행복이였다.
때르르르릉~ 때르르르릉~
하작가였다.
"서희씨 나예요"
"네 오랜만이예요 하작가님. 잘 지내셨죠?"
"나야 항상 그렇죠 머~~ 기획안을 봤는데 우리 촬영하기로 한 서해안 있죠?"
"네.. 제가 잡았는데.. 무슨 문제라도 있으세요?"
"아 얼마전에 에 여행을 다녀왔는데 이번 촬영을 서해안 말고 매물도로 했으면 좋겠어요"
"네? 매물도요?....."
순간 전화기를 잡은 서희의 손이 떨리기 시작했다. 전화를 끊고 서희는 다시 깊은 회상에 빠졌다.
-서희-
"엄마가 섬그늘에~ 굴 따러 가면~ 아기는 혼자남아 집을 보다가~"
오늘도 또 매물도의 해가 지고 있다. 석양이 참 아름다운 곳이다. 오밀조밀 작은 집들이 언덕에 촘촘히 모여있고 그 앞으론 파스텔톤의 바다가 펼쳐진다. 바다로 나가면 때지어 돌아다니는 갈매기가 한눈에 들어온다. 작은 구멍가계 하나밖에 없는 정말 작은 섬이지만 그래도 이곳 사람들은 열심히 살아간다. 주민 대부분의 업종이 민박과 어업이라 풍족하지는 않지만 정있고 평화롭게 살아가고 있었다.
어린 서희는 오늘도 새볔같이 나간 엄마 대신에 동생을 돌보고 있다. 서희의 엄마는 해녀고 아빠는 어부였다. 항상 새볔에 나갔다가 늦게까지 관광객을 상대로 부두로 나가 장사를 하시고 들어오시는 엄마, 아빠 때문에 서희는 철이 일찍 들었다. 그래서 집안일과 동생을 돌보는 일은 항상 서희가 도맡아서 해왔다. 힘들게 일하는 엄마, 아빠의 짐을 조금이라도 덜어드리고 싶은 서희의 맘이였다. 그해 서희는 9살, 동생 서문은 5살이였다.
서문을 데리고 아빠를 마중나갈때 저 멀리서 아빠의 고기잡이 배가 들어오면 아빠는 환한 웃음을 띄우며 우리 남매한테 손을 흔들어 주셨다. 배에서 내리면 아빠는 내 손을 잡고 서문의 목마를 태웠다. 그리곤 오늘 잡은 고기에 대해 이것 저것 설명을 해주신다. 비록 아빠의 살곁은 햇빛에 타서 까맣고 항상 생선 냄새에 찌들어 계시지만 서희는 그런 아빠가 자랑스러웠다.
서희가 학교를 가고 나면 이웃집 할머니가 그집 3살배기 손주와 함께 서문을 돌봐주셨다. 어렿을 때 부터 동생을 돌봐왔던 서희는 학교에 있는 시간마저 마음이 편치 않았다. 비록 할머니께서 보살펴 주시고 계시긴 하지만 항상 어린 동생 걱정이 먼저였다. 게다가 엄마보다 누나를 더 따르는 서문이였다.
"누나야 왔나?
"문이 니 밥은 먹었나? 마이 묵었제?"
서문이 서희를 쳐다보며 배시시 웃는다.
"으메~ 이 옷 지지한거 봐라~ 니 또 모래장난 했제? 응? 누나가 그거 하지 말라꼬 몇번을 얘기했나? 다시 할끼가 안할끼가?"
서문의 웃옷과 바지에 온통 흙 투성이였다. 할머니는 또 안에서 낮잠을 주무시는지 안보이신다.
"일와봐라~ 누야가 털어주께"
그날도 집으로 돌아와 서문을 씻기고 있었다.
"서희야. 서희 왔나..?"
할머니 목소리였다. 할머니 목소리가 굉장히 다급하게 들렸다.
"서희야. 이그 이 불쌍한 것 느그 아빠가.. 느그 아빠가..."
"무슨 일이데예? 저희 아부지한테 무슨 일이 있어예?"
분명 아빠한테 무슨 일이 생긴게 분명했다. 그때 서희는 어렿지만 불길한 일이 생겼다는 걸 직감으로 알 수 있었다. 할머니 얘기를 다 들을 새도 없이 서희는 뛰어 항구로 갔다. 그 곳에는 사람들이 많이 몰려있었고 몰려있는 틈 사이로 엄마를 볼 수 있었다.
"엄마 .. 엄마?"
"아이구 서희야 우린 이제 우짜노... 우찌해야 하노..."
통곡을 하는 엄마가 앉아있었고 엄마 앞에 있는 아빠가 거적때기를 덮고 있었다. 누워서 꼼짝하지 않는 아빠를 보며 서희는 불안하고 겁이 덜컥 났다.
"왜 이라는데? 응? 무슨 일인데?"
왠지 모르게 눈물이 났다. 너무 슬퍼하는 엄마의 표정을 보면서 서희는 어렿지만 다시는 아빠를 볼 수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니 아빠가......... 니 아빠가.... 타고있던 배가 뒤짚혀져서.... 그만..."
울부짗으면서 엄마가 말을 하는데 무슨 얘기를 하는지 알 수 있었다. 서희의 얼굴이 멍해졌고 그 큰 눈에서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어린 서희라 죽음이 무엇인지 잘 모르지만 직감으로 알 수 있었다. 아빠가 우리곁을 떠나려 한다는걸 다시는 만나지 못 할 곳으로 가버린다는걸....
"아빠야~ 난 세상에서 아빠가 젤 좋데이~"
"그래? 진짜가?"
"당연하제~ 난 평생 아빠하고만 살끼다."
"하하하~ 그래 아빠도 평생 우리 서희랑만 살끼다."
서희 앞에 누워있는 아빠는 눈을 감고있었다. 서희는 지금 이 사실이 미친듯이 싫어졌다. 깨우면 일어날것 같은데 아빠는 꼼짝도 안하고 그냥 누워만 있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도 깨울 생각을 하지 않는다.
"아빠야~ 아빠 일나봐라? 응? 눈좀 떠봐라? 내 두고 가면 좋나? 응? 내랑 약속했잖아~ 평생 같이 있겠다고 했잖아~ 좀 일나봐라? 응?"
어느새 왔는지 서문이 내 뒤에서 울고있었고 다른 사람들은 아빠 한테서 나와 엄마를 떨어트려 놓으려고 했다. 얼마나 울었는지 서희는 목소리마져 나오지 않았다.
그렇게 아빠가 돌아가셨다.
아빠의 장례를 치르고 마을은 언제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이 다시 잠잠해졌다.
엄마는 아빠가 돌아가신 후로 더욱 일하는 시간이 많아졌다. 항상 집에는 나랑 서문이 둘이였다. 가끔 할머니가 밑반찬을 가져다 주시곤 했다.
집에 쌀이 떨어지는 날이 늘어났고 엄마가 나가시고 나면 동생 서문과 함께 배를 곯는 날이 많아졌다. 엄마가 들어오셔야 겨우 끼니를 해결할 수가 있었다.
아빠가 돌아가시고 난 후 더욱 고생을 많이 하는 엄마였지만 엄마는 들어오시면 항상 나한테 고생했다는 말을 잊지 않았다. 엄마는 나에게 항상 미안해 하셨고, 그런 엄마를 보면서 나는 더욱 미안해졌다.
그날도 어김없이 엄마는 늦게 들어오셨고 잠시 후 할머니가 손자를 업고 들르셨다.
서문을 재우고 엄마 방으로 들어가려던 서희는 멈칫했다.
"집안도 이렇게 어려운디 서희 저것까지 꼭 키워야 쓰것냐. 내가 니를 보면 안쓰러 죽것다. 니 자식 하나만도 모자란데 서희는 니 딸도 아니잖혀..."
화장을 고치고...(7)회상
어제 밤잠을 설친 탓인지 왠지 개운치가 않다. 어제 일 때문인가 보다.
저번에 박선배가 했던 말을 믿지 않은 탓인지 어제 일은 서희에게 더욱 충격이 크다. 일밖에 모르던 정선배를 그렇게 꼼작 못하게 하던 그 여자가 신지영이였다니.. 게다가 정선배와 신지영의 다툼이 이번 드라마 여주인공을 맡은 서희 때문인거 같아 더욱 신경이 쓰인다.
할 일이 많은 서희지만 오늘따라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 당연한 일이겠지만.... 왜 정선배가 그런 여자를 좋아하는지 아무리 생각해 봐도 이해가 가지 않는다. 정선배 정도면 신지영이 아니더라도 좋은 여자를 만날 수 있을텐데 왜 하필 신지영인 것인지... 정선배가 그 정도밖에 안되는 사람인거 같아서 마음이 아프고 원망스럽기까지 하다.
기획안을 정선배한테 넣으면서 전화를 해 약속을 잡았다. 오늘 정선배를 만날 생각은 아니였지만 내일까지 기다릴 수가 없었다. 빨리 정 선배를 만나서 정선배가 나한테 할 말이 무엇인지 알고 싶었다. 정 선배를 만나러 가는 길이 그렇게 길게 느껴질 수가 없었다. 한 까페의 큰 창 너머로 정선배의 얼굴이 보였다. 어제 일 때문인지 오늘따라 정 선배의 얼굴이 그렇게 초라해 보일 수가 없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는 서희의 발걸음이 무겁다. 담배를 피고 있는 정선배 앞에 서희가 앉았다.
"죄송해요 좀 늦었어요"
"응 아니야 나도 좀전에 왔는걸 머.."
왠지 정선배의 목소리가 한층 부드러워 진 것 같았다. 하지만 평소와 다르게 부드러워진 그 목소리가 서희를 더욱 불안하게 만들었다.
"기획안은 받아 보셨어요?"
"응 아침에 받아봤어.."
물어보고 싶었다. 무슨 일로 나를 만나자고 하는건지.. 나한테 할말이 무엇인지.. 하지만 정선배가 먼저 말할때까지 아무것도 말하고 싶지 않았다. 잠시동안 어색한 침묵이 흘렀고 먼저 말을 꺼낸 건 정선배였다.
"이번에 하 작가가 서희를 여주인공으로 뽑았다는 얘기 들었어.. 서희도 알고있지?"
"네... 제가 원한건 아닌데 그렇게 됐어요.."
"그래서 말인데......."
정선배가 머뭇머뭇 거린다. 역시 나한테 부탁할 일이 있는것이다. 무슨 부탁일까? 정선배는 목이 마르는지 물 한컵을 다 마신후에야 다시 머뭇머뭇 말을 꺼낸다. 오늘은 정선배가 평소와는 다르게 보였다.
"하실 말씀이라도 있으세요?"
"사실..... 이런 말 하기 미안하지만.. 서희가 이번 작품하고 이미지도 잘 안맞는거 같고... 처음부터 이런 큰 작품을 맡기기엔 무리라는 생각이 들어.."
정선배가 왜 저런 말을 나한테 꺼내는지 대충 짐작이 갔다. 분명 신지영 때문일것이다.
"그래서 말인데.. 하작가 고집도 있지만 서희는 연기자 하는거에 별로 취미 없잖아. 그래서 말인데 다른 배우로 교체하는게..."
이 말을 하는 정선배가 그렇게 미울 수가 없었다. 무엇 때문에 내가 주인공을 그만둬야 하는지... 그리고 그 이유가 신지영 때문이라면 더욱 더 정선배 말대로 할 수가 없었다. 꼭 신지영한테 당한 것 때문이 아니라 내가 오랫동안 좋아했던 정 선배가 나한테 저런 부탁을 하는 것이 싫었다.
"그 일 때문에 절 부르신거예요? 안 내킨게 사실이였지만 이왕 하기로 한거 열심히 해보기로 마음 먹었어요. 그러니깐 그 얘기는 그만 끝내요. 저도 최선을 다할테니깐요"
정 선배 앞에서 어떻게 이런 용기가 나왔는지 모르겠다. 평소 의사표현이 불분명한 나지만, 이번만큼은 아니였다. 오기가 생기기도 했고 화가 나기도 했다. 그리고 정선배가 지금 나한테 하는 부탁이 일 때문이 아니라 신지영 때문이라는 것이 더욱 괘씸했다.
"그럼 전 이만 가볼께요.. 할일이 많거든요"
정선배는 말이 없다. 아마 나를 잘만 다독이면 주인공 자리를 신지영에게 내 줄 꺼라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사실 어제 정선배와 신지영의 대화를 듣지 않았더라면 정선배가 지금 하는 말이 충분히 이해가 가고 나도 내키지 않던 일이였으니깐 포기했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어제 대화를 들은 나로썬 지금이 내가 처음으로 PD를 시작했을때 보다 더 큰 오기와 각오가 생겼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저런 사람이였다니... 저 정도의 사람밖엔 안 됐다니... 정선배에 대한 실망감은이루 말 할 수 없었다. 나한테 이런 말을 할 수 있을 정도의 사이라면 .. 정선배는 신지영을 많이 사랑하나 보다. 아니면 어떤 약점이라도 잡혀 있는 걸까? 마음이 복잡하다. 하지만 아직 내 마음속에 있는 정선배는 떠날줄을 모른다.
어떻게 일주일이 지났는지 모르겠다.
제작발표회는 성공적으로 마무리를 했고 그동안 콘티에 연기연습에 너무 바빴던 서희는 다른 생각을 할 여유조차 부리기 힘들었다. 오히려 다행인지도 모른다. 차라리 정신적으로 힘든것보다 육체적으로 힘든게 서희한테는 행복이였다.
때르르르릉~ 때르르르릉~
하작가였다.
"서희씨 나예요"
"네 오랜만이예요 하작가님. 잘 지내셨죠?"
"나야 항상 그렇죠 머~~ 기획안을 봤는데 우리 촬영하기로 한 서해안 있죠?"
"네.. 제가 잡았는데.. 무슨 문제라도 있으세요?"
"아 얼마전에 에 여행을 다녀왔는데 이번 촬영을 서해안 말고 매물도로 했으면 좋겠어요"
"네? 매물도요?....."
순간 전화기를 잡은 서희의 손이 떨리기 시작했다. 전화를 끊고 서희는 다시 깊은 회상에 빠졌다.
-서희-
"엄마가 섬그늘에~ 굴 따러 가면~ 아기는 혼자남아 집을 보다가~"
오늘도 또 매물도의 해가 지고 있다. 석양이 참 아름다운 곳이다. 오밀조밀 작은 집들이 언덕에 촘촘히 모여있고 그 앞으론 파스텔톤의 바다가 펼쳐진다. 바다로 나가면 때지어 돌아다니는 갈매기가 한눈에 들어온다. 작은 구멍가계 하나밖에 없는 정말 작은 섬이지만 그래도 이곳 사람들은 열심히 살아간다. 주민 대부분의 업종이 민박과 어업이라 풍족하지는 않지만 정있고 평화롭게 살아가고 있었다.
어린 서희는 오늘도 새볔같이 나간 엄마 대신에 동생을 돌보고 있다. 서희의 엄마는 해녀고 아빠는 어부였다. 항상 새볔에 나갔다가 늦게까지 관광객을 상대로 부두로 나가 장사를 하시고 들어오시는 엄마, 아빠 때문에 서희는 철이 일찍 들었다. 그래서 집안일과 동생을 돌보는 일은 항상 서희가 도맡아서 해왔다. 힘들게 일하는 엄마, 아빠의 짐을 조금이라도 덜어드리고 싶은 서희의 맘이였다. 그해 서희는 9살, 동생 서문은 5살이였다.
서문을 데리고 아빠를 마중나갈때 저 멀리서 아빠의 고기잡이 배가 들어오면 아빠는 환한 웃음을 띄우며 우리 남매한테 손을 흔들어 주셨다. 배에서 내리면 아빠는 내 손을 잡고 서문의 목마를 태웠다. 그리곤 오늘 잡은 고기에 대해 이것 저것 설명을 해주신다. 비록 아빠의 살곁은 햇빛에 타서 까맣고 항상 생선 냄새에 찌들어 계시지만 서희는 그런 아빠가 자랑스러웠다.
서희가 학교를 가고 나면 이웃집 할머니가 그집 3살배기 손주와 함께 서문을 돌봐주셨다. 어렿을 때 부터 동생을 돌봐왔던 서희는 학교에 있는 시간마저 마음이 편치 않았다. 비록 할머니께서 보살펴 주시고 계시긴 하지만 항상 어린 동생 걱정이 먼저였다. 게다가 엄마보다 누나를 더 따르는 서문이였다.
"누나야 왔나?
"문이 니 밥은 먹었나? 마이 묵었제?"
서문이 서희를 쳐다보며 배시시 웃는다.
"으메~ 이 옷 지지한거 봐라~ 니 또 모래장난 했제? 응? 누나가 그거 하지 말라꼬 몇번을 얘기했나? 다시 할끼가 안할끼가?"
서문의 웃옷과 바지에 온통 흙 투성이였다. 할머니는 또 안에서 낮잠을 주무시는지 안보이신다.
"일와봐라~ 누야가 털어주께"
그날도 집으로 돌아와 서문을 씻기고 있었다.
"서희야. 서희 왔나..?"
할머니 목소리였다. 할머니 목소리가 굉장히 다급하게 들렸다.
"서희야. 이그 이 불쌍한 것 느그 아빠가.. 느그 아빠가..."
"무슨 일이데예? 저희 아부지한테 무슨 일이 있어예?"
분명 아빠한테 무슨 일이 생긴게 분명했다. 그때 서희는 어렿지만 불길한 일이 생겼다는 걸 직감으로 알 수 있었다. 할머니 얘기를 다 들을 새도 없이 서희는 뛰어 항구로 갔다. 그 곳에는 사람들이 많이 몰려있었고 몰려있는 틈 사이로 엄마를 볼 수 있었다.
"엄마 .. 엄마?"
"아이구 서희야 우린 이제 우짜노... 우찌해야 하노..."
통곡을 하는 엄마가 앉아있었고 엄마 앞에 있는 아빠가 거적때기를 덮고 있었다. 누워서 꼼짝하지 않는 아빠를 보며 서희는 불안하고 겁이 덜컥 났다.
"왜 이라는데? 응? 무슨 일인데?"
왠지 모르게 눈물이 났다. 너무 슬퍼하는 엄마의 표정을 보면서 서희는 어렿지만 다시는 아빠를 볼 수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니 아빠가......... 니 아빠가.... 타고있던 배가 뒤짚혀져서.... 그만..."
울부짗으면서 엄마가 말을 하는데 무슨 얘기를 하는지 알 수 있었다. 서희의 얼굴이 멍해졌고 그 큰 눈에서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어린 서희라 죽음이 무엇인지 잘 모르지만 직감으로 알 수 있었다. 아빠가 우리곁을 떠나려 한다는걸 다시는 만나지 못 할 곳으로 가버린다는걸....
"아빠야~ 난 세상에서 아빠가 젤 좋데이~"
"그래? 진짜가?"
"당연하제~ 난 평생 아빠하고만 살끼다."
"하하하~ 그래 아빠도 평생 우리 서희랑만 살끼다."
서희 앞에 누워있는 아빠는 눈을 감고있었다. 서희는 지금 이 사실이 미친듯이 싫어졌다. 깨우면 일어날것 같은데 아빠는 꼼짝도 안하고 그냥 누워만 있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도 깨울 생각을 하지 않는다.
"아빠야~ 아빠 일나봐라? 응? 눈좀 떠봐라? 내 두고 가면 좋나? 응? 내랑 약속했잖아~ 평생 같이 있겠다고 했잖아~ 좀 일나봐라? 응?"
어느새 왔는지 서문이 내 뒤에서 울고있었고 다른 사람들은 아빠 한테서 나와 엄마를 떨어트려 놓으려고 했다. 얼마나 울었는지 서희는 목소리마져 나오지 않았다.
그렇게 아빠가 돌아가셨다.
아빠의 장례를 치르고 마을은 언제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이 다시 잠잠해졌다.
엄마는 아빠가 돌아가신 후로 더욱 일하는 시간이 많아졌다. 항상 집에는 나랑 서문이 둘이였다. 가끔 할머니가 밑반찬을 가져다 주시곤 했다.
집에 쌀이 떨어지는 날이 늘어났고 엄마가 나가시고 나면 동생 서문과 함께 배를 곯는 날이 많아졌다. 엄마가 들어오셔야 겨우 끼니를 해결할 수가 있었다.
아빠가 돌아가시고 난 후 더욱 고생을 많이 하는 엄마였지만 엄마는 들어오시면 항상 나한테 고생했다는 말을 잊지 않았다. 엄마는 나에게 항상 미안해 하셨고, 그런 엄마를 보면서 나는 더욱 미안해졌다.
그날도 어김없이 엄마는 늦게 들어오셨고 잠시 후 할머니가 손자를 업고 들르셨다.
서문을 재우고 엄마 방으로 들어가려던 서희는 멈칫했다.
"집안도 이렇게 어려운디 서희 저것까지 꼭 키워야 쓰것냐. 내가 니를 보면 안쓰러 죽것다. 니 자식 하나만도 모자란데 서희는 니 딸도 아니잖혀..."
할머니의 말을 들은 서희는 충격에 어쩔 줄 몰랐다..
내가 우리 엄마 딸이 아니라니...... 우리 엄마 딸이 아니라니............
-----------------------------------------------------------------------------------
어제는 정말 너무 바쁜 하루여서 글을 쓸 수가 없었어요 ~
오늘 하루도 잘 지내셨나요? 이제 퇴근하시고 집에서 쉴 시간이네요~
전 퇴근시간이 아직 한참 남았답니다 흑흑 ㅠㅠ
오늘은 서희의 어린시절이 나오네요~
덕분에 귀여운 꽃미남 윤호가 안나왔어요 ㅠㅠ
담회부턴 안 빠지고 나온답니당~
지켜봐 주시구요. 서희 응원도 많이 해주세요 ^^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참 사투리가 마니 서툴러요 죄송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