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태옹 '생생증언' 김두한 X파일

정원태2002.1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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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태옹 '생생증언' 김두한 X파일
김두한의 'X 파일'이 전격 공개됐다.
드라마 '야인시대'의 극중 인물 중 유일한 생존자인 김영태옹(83)이
30년간 가슴에 묻어뒀던 김두한과 그 시대 협객들에 대한 숨은 이야기를 털어 놓았다.
김옹은 서울 종로구 교남동 태생의 '서울 토박이'로 일제시대 우미관 일대 모습을
훤히 꿰고 있었고, 해방 이후 김두한의 정치 역정과 사상에 대해 정확히 기억하고 있었다.
대한민주청년동맹(1946~1947년)과 청년조선총동맹(1947~1953년), 애국단(1961~1965년)
등에서 줄곧 함께 일했고, 1947년 전국 문화예술인 경연대회 습격사건과
1966년 한독당 내란음모사건으로 2번이나 동반 사형 선고를 받았기 때문이다.
김옹은 '동지' 김두한에 대해 잘못 알려진 사실을 바로 잡았고,
당시 상황에 대해 정확하게 말했다.
싸움실력과 신체특징
발과 다리가 빠르고 강했다. 다리가 길어 상대 얼굴도 쉽게 걷어찼다.
손이 작은 대신 팔뚝의 근육이 쇠뭉치처럼 단단했다.
일본경찰 마루오카와의 대결처럼 대개 발차기로 기선을 제압하고,
주먹 한방으로 마무리 했는데 불과 몇초 안에 승부가 끝났다.
좋아했던 음식, 주량, 이상형의 여성
가장 좋아했던 음식은 설렁탕이다. 고단백 고칼로리 식품을 먹어야
힘이 난다고 생각했다. 당시는 설렁탕이 매우 비싸 대신 개고기를 먹을 때도 많았다.
주량은 맥주 5~6병이었고, 반찬으로는 장조림을 가장 잘 먹었다.
단골 주점은 종로구 낙원동 '다이아몬드 바'였다.
신여성보다 쪽진 머리에 단아한 얼굴의 고전적인 여성을 좋아했다.
타살이냐, 병사냐
72년 사망 당시 타살설이나 타살 의혹 등을 들은 적이 전혀 없다.
사망하기 얼마 전 장녀 김을동의 결혼식에서도 고혈압으로 쓰러져
의식을 잃은 적이 있어 모두 고혈압에 의한 뇌출혈로 생각했다.
중앙정보부에 의해 온갖 고초를 당한 건 사실이지만 타살이라면
구타 등 흔적이 있어야 할 텐데 당시 고려병원(현 강북삼성병원) 검사에선
그런 게 발견되지 않았다.
시라소니와의 1대1 결투에서 김두한이 졌다?
40~50대 장-노년기 김두한이라면 몰라도 20~30대엔 어림 없는 얘기다.
시라소니는 여러 명이었던 것으로 기억되는데 우미관 시절 종로에 왔던
신의주 대표 주먹은 박춘희였다. 그는 만주에서 중국으로 가는 열차에서 검문을
피하기 위해 맨 앞칸에서 뛰어내렸다 맨 뒷칸에 올라탈 정도로 빨랐다.
시속 40㎞의 2등 열차를 순간적으로 앞지를 정도였다.
당시 협객 사이엔 '김두한의 한방에 걸리면 죽는다'는 인식이 퍼져있어
시라소니가 종로에 들어오긴 했지만 김두한에 도전한 적도, 결투한 적도 없다.
상대가 될 수 없었다.
동시대 주먹들의 갖가지 별명의 의미
마적이란 '도적의 괴수'를 뜻한다.
'구마적' 고희정과 '신마적' 엄동욱은 술집에서 행패를 부리고
술값도 내지 않아 원성을 샀다. 하는 짓이 강탈을 일삼는
마적과 같다고 해서 붙여진 별명이다.
'낙화유수'는 턱이 길고 뾰족해 꽃이 떨어지고 물이 흘러내릴
분위기를 낸다고 해서 붙여졌고, '당개'는 당시 일본 영화
'당개사등'의 주인공처럼 얼굴에 대각선으로 흉이 있다고 해서 얻게 된 별칭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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