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씨방 알바생의 사랑이야기 41-43

도도한병아리2006.05.01
조회2,516

 

피씨방 알바생 41

 

 

 

 

 

 


간이역이라는 술 집으로 들어왔다.

난 그냥이의 집을 알지 못한다. 회사 때문에 언니와는 따로 살고 있다고 한다.

회사 때문이 아닐꺼다. 언니가 결혼을 했으니 따로 살아야겠지.


포항 바닥은 좁기 때문에 중심지인 시내에서.. 택시비 5천원 정도면

왠만한 동네 다 간다. 저쪽 구석 산골자기 아니고서는..


그냥이의 집과 우리집 거리는 걸어서 20분?..

생각보다 그리 멀지 않은 거리였다. 택시타면 기본요금이면 충분하겠다.

그냥이만 아니라면 좋은 술 친구가 될 텐데.


지은이는.. 술을 먹으면 내가 피곤하다. -_-..


가만, 생각 해보니까 그냥이는 상당히 주량이 약했던 걸로 기억한다.

그리고 그 혀가 꼬여 귀여운 말투가 된다는 것도 기억해냈다.

 

"간단하게 맥주 먹을까?"

"소주 먹자. 맥주는 별로야."


"..여전하네."

"뭐가?"


"너 예전에도 소주만 찾았던거 같아."

"그런적없는데.. 다른 여자 아니야?"


"...-_-너 아니야?"

"...-_-"


남극 깊은 바닷속 처럼 차가운 침묵이 흘렀다.


"이모, 여기 소주 한병이랑.. 안주는?"

"우동이랑 떡갈비꼬치."


"들으셨죠? 이모."

"어~ -_-"

 

그나저나 요즘 술을 너무 자주 먹는거 같다.

하지만 이게 글이라서 그렇지 사실 일주일이 지났다는건 정독한사람만 알꺼다.

-_-;


그리고 난 술자리를 즐기는 것이지 술을 즐기지 않는다는 것도 알꺼다.

하지만 요즘은 술만 먹었다 하면 꽤나 야릇한 일이 생기고는 했다.


그게 지은이랑 술을 마셔서 그런거지만..

뭐 애시당초 술 먹고 야릇해 진건 그냥이 때문이기도 한가?


그런 그냥이와.. 다시 술을 먹고 있다.

음. 먹다보니까 좀 과한 듯 싶었다.


우린 옛날 이야기에 젖어있었다. 그때 그 시절로 돌아간 듯.

그냥이는 말투가 바뀌어있었다. 술이 조금 올랐기 때문인것 같았다.

 

"성엽아~ 다시 만나서 반가워.. 정말.."

"나도 반가워. 그런데 술 그만먹자? 많이 취한거 같은데."


그냥이는 짠도 하지 않고서 자작하며 술을 마셔댔다.

저러다 취하지?..

여전히 약간 풀린 목소리로 말하는 그냥이.

 

"갠차나.. 헤헤.. 많이 보고싶었엉."

"...나도.."


사실이였다.

많이 보고싶은 사람중에 한사람이였으니까.


하지만 이렇게 만나게 되리라곤 생각치 못 했다.

사실 만나기 전에 많은 생각을 했다.


어떻게 살고 있을까? 행복할까? 결혼은 했을까?

누나와 냥이.

어쩌다 얽혀버려 내 추억의 파편이 되어버린 그녀들.


그리고 잊지 못하고 있지 않았던가...

8년만에 다시 돌아왔다..


하지만 원점으로 돌아 온건 아니였다.

다시 예전 사이로 돌아 갈 수 있을까?

누나를 사귀기 전 시간으로.


그렇다면 그냥 좋은 누나동생. 친구사이로 지낼 수 있을텐데.


역시 사람은 함부로 사귀면 안되는 건가보다..

한 순간의 실수로 두명이나 잃어버렸으니.

 

그래도 현재는 그 중에 한명이 지금 내 앞에 있다.

이제 그만 만나야 되겠다.

이번 만남이 끝일꺼다.


행복을 빌어줘야지.

이미 한명은 행복해 보였다.

아이도 귀여웠고..

이름이 뭘까?.. 갑자기 또 궁금해졌다.

 

"그냥아. 림이 누나 아들 이름이 뭐야?"

"이름? 성냥이."


"성냥? -_-"

"응."


무슨.. 애 이름을..


"...너랑 비슷하네?"

"그렇지? 라이타처럼 오래가는 불빛이되어라고..
라이타로 하려다가 한국사람은 한국말 써야된다고 했거든."


"...그래서.. 성냥이된거야?"

"응"


-_-;;

 

"성냥은 오래가는 불빛이 아니잖아?"

"한순간 타오르듯 자기 몸을 희생하여 따뜻한 사람이 되어라고."


말도 같다 붙이면 다 뜻이되지..-_-

난 그냥 수긍해주며 또 물었다.


"...그..그렇구나.. 누나 남편 분은 뭐하시는데?"

"...그냥 일해."


"일?.."

"자세한건 나도 잘.."


"니 형부잖아."

"그래도 난 잘 몰라."


대답을 피하는 눈치다. 싫다는데 괜히 꼬치꼬치 캐 묻는 것도 안 좋겠지.


"아.. 나 머리 아퍼.."

"술 그만먹어. 집에 가자."


더 먹자는걸 억지로 꼬드겨서 겨우 술집을 나왔다.


"너희집 어디니?"

"..멀라~"


점점 혀 꼬부러지는 소리가 들린다.


"..-_-"

"우리..쉬었다 가자.."


"어디서??"

"..저기.."

 

그녀가 가르킨 곳은 모텔..


이 아니고-_-;;

 

근처 공원 앞에 있는 벤치였다.


"저기?"

"응."


많이 지쳐있었다. 나도 그렇고 그냥이도 그렇고.

그래서 털썩 앉아버렸다.


"히유~~"

"왜 한 숨쉬고 그래? 무슨 고민 있어?"


"...응."

"무슨 고민?"


"아슈크림 머꼬시퍼."

"..-_-응."


28살이면 아줌마 아닌가?

근데 이렇게 귀여워도 된단말이야??

젝일.

아이스크림 찾는건 그때나 지금이나 똑같구먼.


"여기 꼼짝말고 있어?"


얼른 달려가서 아이스크림을 사다 받쳤다-_-..


햝짝 햝짝.. 빠는 그냥이 ..

어찌 표현이..;

 


"너 아이스크림 먹고 싶은건 핑계고.. 다른 고민있지?"

"그냥.. 산다는게 그렇네."

"..너 꽤 잘나간다며?"


"잘나간다는게 어떤 의미?"

"돈 잘 벌고.. 남자들한테 인기많고."


"피.. 그럼 뭘해? 내가 맘있는 남자는 나 쳐다 보지도 않는데."

"..."

 

사람이 행복함에 있어서는..

돈이 많다고 다 행복한게 아니다.

다들 행복의 기준이 있을 것이다.


가난에 찌든 사람은 물론 돈이 생기면 행복하겠지.

그런데 처음부터 돈이 많았던 사람은?

그 사람에겐 친구가 없다면? 아마 슬플꺼야. 행복하지 못 할꺼야.


이렇듯.. 행복에는 기준이 있다.

자기의 행복에 대한 조건을 남에게 기대하긴 힘든것 같다.


아이스크림을 먹으니까 속이 시원해졌다. 술도 좀 깨는 것 같다.

이제..정말 궁금한걸 물어봐야 할 시간이다..

그날 밤..일에 대해서..

 

"냥아."

"엽아.."


동시에 서로를 불렀다..


"어..?"

"어..?"

 

그리고 동시에 대답했다.

 

엽아라.. 정말 오랜만에 듣는 호칭인 것 같다..

엽아라는 한마디. 내 이름을 부르는 그 한마디로 인해서

8년전의 추억이 굼벵이가 나비가 되기위해 허물을 벗듯 꿈틀거리며

되살아나기 시작했다.

잠시 미소지으며 추억에 잠겼다.


그냥이도 아무말 하지 않고 아이스크림 먹고 있었다.

여전히 햝짝거리며..

 

그날 밤 일에 대해서 묻고싶다.

근데.. 그냥 말 안꺼내는게 좋을꺼 같다.

난 은근슬쩍 그녀에게 말을 넘겼다.


"먼저 말해봐."


내 말을 들었는지 못 들었는지.. 그냥이는 한참을 가만히 있었다.

그리고..


"고백할꺼 있다."


드디어 입을 열었다.


"고..백? 무슨 고백?"


"내가.. 옛날에 너 좋아했었던거..알지?"

"...어."


갑자기 말투가 진지해진 그냥이.

뭘.. 말할려고 그러는거야? 독자들은 눈치 채셨나요? -_-;

두..두렵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 있다구 그랬잖아..."

"응 그런데?"


....

 


"너.. 내꺼 할래?"

"응...응??"


고..고백하는건가?

 

"내꺼 하라고.."

"...내..내가?"


고백을 이 따위로!?

 

"응."

"...왜?"


"...그때 말한 임자가.. 너야."

 

임자있다고 했던 말?

그것도 오래전 부터??...

그럼.. 날.. 오래 전부터..

좋아했다는.. 말....?

 

 

 

 

by 도도한병아리


 


피씨방 알바생 42

 

 

 

 


"나랑..사귀자.."

"..."


보통 이런 대사는 남자들이 많이하던데..

그냥이는 아무 스스럼 없이 말했다.

 

"성엽아..나 너 한 순간도 잊은 적 없어!!.."

"..."


이어지는 대사까지도..

 

"남자한테.. 여자가 이렇게 고백하는게.. 정말 자존심 상하는 일이라고 생각했거든?
근데 이렇게 술기운을 빌어서라도 꼭..하고 싶다...
사랑하는데.. 자존심은 정말 필요없는거야!!"

"..."


"너.. 처음 본 순간 부터..사랑했었어.."

 

 

갑작스런 고백이였다.

차라리 날 조금 더 자주 만난 뒤에 내 뱉었으면 좋았을 것을..


그렇다고 잔인하게 거절하지는 못한다..

좋게 말해야 할텐데. 뭐라고 말한단 말인가?

 

"미..미안하다.. 니 고백 받아 줄 수 없을 것 같다.."

"그림이 언니 때문에 그러는거야!!?"

 

정확했다.


하지만 난 대답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게 긍정적인 의미로 받아들어져버렸다.

 

"그게 얼마나 오래된 일인데 그래? 이미 결혼까지 했는데!"

"정말 미안해. 나도 어쩔 수가 없어.. 내 마음이.. 너한테 안가네.."

 

사실 그냥이보다 지은이가 더 났다.

지은이는 아무것도 상관이 없으니까.


그냥이는...림이누나 동생이다.

... 게다가 좋지 못한 추억까지 간직하고 있다.

차라리 만나지 않았으면 좋으련만..


잠깐의 만남이 그녀에게 파 묻혀있던 기억을 꺼내버렸나 보다..

가슴 속 깊숙이 묻어두었던 나에 대한 감정이 아지랑이 피어오르듯

스믈스믈 피어 올랐나보다.


술도 먹었겠다..

그래서 용기 있게 내게 고백한 것 같다..

 

그런데 받아 줄 수가 없다..

차라리 몰랐던 사이라면.. 상관없겠는데..

차라리 니가 지은이였으면 좋겠다.


그냥이에겐 정말 미안하지만.. 난 그녀의 고백을 받아 줄 수 없다..

내 자신이.. 용서할 수 없다.


이 세상 누구에게 용서를 받는다고해도..

내 자신이 나를 용서 할 수가 없다.

그래서..

더욱 더 받아 드릴 수가 없다.

..


나 이렇게 잘난 놈 아니였는데..

언제 부터 내가 이런걸 거절하는 놈이 됐지?

하하....


세상 참 오래 살고 볼일이야...

 

한동안 침묵이 이어졌다.


그냥이는 뭔갈 오랫동안 생각하는 것 같았다.

나도.. 생각을 정리하느라 침묵이 길다는 걸 인식하지 못했다.

 

어두운 공원 앞 벤치에 남녀 둘이 앉아있다.

여자는 울 것 같은 얼굴을 하고 있고.. 남자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 처해있다.


남자는 나다..

여자는 그냥이다.

내 옛 추억속의 한 여자.


난 아랫입술을 질근질근 깨물며 눈알을 이리저리 돌리고 있었다..

긴장하게 되자 나도 모르게 하는 버릇들이였다.


그냥이는 손톱을 물어 뜯고 있다.

애정결핍증이라는 손톱물어뜯기.


하긴.. 부모님도 없이 자랐으니.. 그럴 만도했다.

항상 귀여움받고 싶어했으니까..


새벽시간이 되며 날씨는 조금 쌀쌀해지기 시작했고..

공기가 차가워지고 있었다.


근처 도로도 일관 침묵을 유지했다.

가끔..택시가 한대씩 지나갔으나, 그리 크다는 소리는 못 느꼈다.

 

그런 침묵을 깨고 결심한 듯.. 그냥이가 말했다.

 


"넌.. 나한테 올 수 밖에 없어.."

"...어째서?"


".. 나중에 말하려고 했는데..."

"..."

 


불길하다.

뭔가가 불길하다.

 

"... 니 아들이야."

"허."


헛웃음이 나왔다.

무슨 소리하는거야 얘가?

 

"'성'엽이 더하기 그'냥'이는? '성냥이'."


....

헐..

무슨 애 이름을 그 따위로 지어놓구서는...

-_-;


이..이게 중요한게 아니잖아!

다시 한번 더 물었다.


"뭐라고??"


"성엽이 성. 그냥이 냥. 성냥이."

 

나 흥분했다. 술 기운이 단번에 사라졌다.

 

"거..거짓말하지마! 지금 무슨 소리하는거야!!?"

"유전자 검사 해보든가."


헛 웃음이 흘렀다. 고개를 갸웃거렸다. 얘가 왜이럴까?

이젠 대놓고 뻔뻔해지고 있다..


"허허..너.. 뻥치는거지?"

"..."

 

말하지않아도 알아요. 라고 했던가..

진짜 대답하지 않아도 그냥이의 눈에서 느낄 수 있었다.

거짓하나 없는 진실이라는 걸..


뭐야 이거!!


이건 살면서 내 인생의 최대 위기가 분명하다.

 

"...어..어쩌자고..!!"

"나도 몰라.. 유학갔더니 배가 불러왔어.. 그냥 잘 먹어서 살찌나 부다 싶었다?
근데 이상하게 배에 뭔가 있는거 같더라구. 생리도 가끔 안하는 날도 있어서
그냥 모르고 있었지. 처음이였으니까.
티비나 드라마에서 처럼 입덧도 안했거든. 근데
친구들이 임신한거 아니냐고 그러길래 병원가봤다?..
임신이라데?.."

"그..그래서 낳았단말이야?"


"응. 이렇게라도 너 되찾고 싶었어."

 

"그럼 림이누나가 왜 니 애를 키우고있는데?"

"니 애라니까 키워보고 싶데서."

"..."


허..

기가찻다.

이게 말이냐?


난 8년동안 그것도 모르고 살았는데.

8살이면 초등학교 1학년이잖아?


나더러 멀 어쩌라는거야 지금에 와서?

그럴꺼면 좀 일찍 말하던지!

 

"...왜 이제서야 날 찾은건데?"

"...성냥이 보면서 너라고 생각하려고 했어.
그냥 너 없어도 성냥이만 있으면 될 줄 알았어.
그런데.. 성냥이를 보면 볼수록 네 생각이 더 나더라.
처음엔 그냥 없어도 익숙하게 지냈는데...
언젠가 부턴가.. 니가 필요하다는걸 느꼈어."


말하면서 그녀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이슬비 내려 푹 패인 땅 웅덩이에 물이 고이듯..

덩그렁한 눈물이 고여있었다.

한번만 깜빡이면 바로 떨어질 듯..


"그게 성냥이 초등학교 가고 나서부터였어.
유치원 다닐때는 몰랐는데 초등학교 보내고 나니까..
아빠가 필요하겠더라.. 정말 없으니까.. 서러워서..
그리고.. 나도 니가 필요해..흐흑.. 더이상은.. 안되겠어..

나 잘나간다고 했지?.. 내가 이렇게 되기까지 얼마나 노력했는 줄 알아?
내가 너 먹여살릴테니까. 나한테 장가들어라.

아니.. 나 사랑하지 않아도 되니까..
성냥이 곁에 있어주라...아빠되주라...
성냥이.. 아빠 보고싶데....흐윽."

 


말이 끝나자 마자 눈물이 떨어졌다.

나뭇잎에 맺힌 이슬이 떨어지듯.. 방울이 떨어진게 아니고..

계속 비가 내려서 주르륵 떨어지듯..유리창에 비가 떨어져 주르륵 떨어지듯.

하염없이 그냥이의 눈물이 내렸다.


뭐라고 해야한단 말인가..?


"성냥이도.. 아빠가 있었으면 좋겠데..."

"무..무슨 소리야 지금!! 난 전혀 그럴 생각 없거든?
니가 낳았으니까 니가 책임져야지!!!"


내가 내 뱉어버린 말이지만 정말 무책임하다.

무식하게 짝이 없게 버릇없는 말투다. 정말 내 자신이 왜 이렇게 재수 없지?

 

"몰라!! 그럼 우리집에 와서 성냥이 키우던지!!"


"이게 진짜.. 나 지금 니 말 믿을 수가 없다?"

"...믿기 싫은거겠지.."


"..."


정확했다. 이게 무슨 되도 않한 말인가?

그냥이는 내 속을 너무 잘 알고 있었다.

 


"그래..나 솔직히 믿기 싫다."

"..."

그냥이는 말 없이 눈물만 흘려댔다..

끊임 없이 흘러내리는 여자의 눈물은 내 마음에 비수가 되어 가슴 깊숙히 박혀버렸다.


아프다.

내가 아픈 만큼 그녀도 아플꺼다..


그런데..


그런데.....


어찌할 도리가 없다...

 


허허.. 갑자기 나보고 8살짜리 아빠가 되어라고??

... 무슨 소리야 이게

꿈이지?

성엽아~ 이제 그만 잠에서 깨자.

너 무슨 잠을 이렇게 오래자냐~~

처음 부터 다 꿈이였다!!


그냥일 다시 만난 순간까지 꿈이였다~!!!

아니다.. 그냥이랑 여관방에서까지 꿈이였다!!

아니 그냥 .. 피씨방 알바하기 전부터..


그래.. 이왕 꿈인거 인심써라. 모든게 꿈이였다.

 

난..

이제 집에서 탱자탱자 놀면서 알바 구하러 다니던 그 시간으로

다시 돌아가는거다.


전부다 꿈이였다.

모두.


그래 꿈인거다.

...


깨어나자 성엽아!!


꿈깨!!

이딴 꿈은 사양이라고!!

 

 

 


by 도도한병아리

 

처음부터.. 끝까지..
차라리 모든게 꿈이였으면 좋겠어...

아프지 않게...

 


 


피씨방 알바생 43

 

 

 

 

 

 


깨지 않았다. 안타깝지만 이건 꿈이 아니였다.

화가났다. 이렇게 까지되버릴 줄 꿈에도 몰랐으니까.

조용히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야.. 박그냥.."

"...흑..왜.."


여전히 울고 있다. 한번 넘쳐흘러 버린 눈물은 전혀 멈출 생각을
하지 않는다.

난 그녀에게 자꾸 상처가 될 말들을 내뱉었다.


"...처음부터.. 이럴려고.. 나랑 잔거였지?"


그녀의 울음 소리가 더욱 서럽게 울려 퍼졌다.

하하하하. 미치겠구만..


"...니가 그날 그랬잖아.."


"..내가 뭐라 그랬는데?"

"...나 사랑한다고... 그래서 나 믿었어. 아무리 술기운이였다고 했지만
취중진담이라는 말 믿었어. 그래서 너한테 모든걸 줬어.
근데.. 아침에 일어나서 너 뭐라그랬어? 없던 일로 하자고 그랬잖아. 나쁜놈아."


...

내가 그때 일을 어떻게 잊을 수 있겠니?

그것 때문에 지금까지 여자 근처에 가지도 못 했는데.

여자랑 단 둘이서 술도 못 마셨는데.


처음에 니가 그렇게 말했다면 내가 책임 졌을지도 몰라.

근데.. 지금은 아니다.

성냥인가 라이탄가.. 내 아이 아니야.

난 몰라!!

 

"...욕하고 싶으면 욕하고 때리고 싶으면 때려라.. 난..모르는 일이다."

...


울음 소리가 더욱 커졌다.


"... 나 간다..."

 

내가 이렇게까지 매정했단 말인가? 하..

그리고 여자란 존재가 이렇게까지 무섭단 말인가.....

 

그렇게 돌아서서 가는 나의 발걸음은 무겁기 그지 없었다.

발에는 무슨 천만톤은 넘는 듯한 족쇄를 끼고 걷는 것 같았다.

내가 저지른 일이다. 그럼 내가 책임 져야한다...

그런데..

왜.. 책임 지지 못할까? 왜.. 쉬쉬하고 돌아서서 떠나려는걸까?

그녀에 대한 배신감 때문에?..

날 속인 그녀의 엄청난 거짓말 때문에?

 

멀리서 그녀의 울음이 뒤섞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김성엽 이 나쁜자식아!!!"

...

그래.. 욕해라. 지금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그것 뿐이다...

난..

또 다시 그냥이를 버렸다...

 


난.. 정말 나쁜놈이다....


동을 틀때까지 여기저기 헤매이다 집에 도착했다.

내가 살고 있는 집이 아닌 엄마집.

 

딩동. 딩동.


"누구세요?"

"어머니. 저요."


"와..20편 넘게 등장도 안시켜주더니 이제서야 다시 보여주네?"

"..-_-;; 지금 그런 농담할때가 아니예요."


"아침 부터 무슨 일이야? 너 집에 안들어갔니?"

"...엄마."


"왜 인석아. 밥은 먹었어?"

 

어머니는 아침 일찍 일어나셔서 아버지 밥상을 차려드리고

아버지는 막 출근 하신 듯 보였다.

밥상을 치우시려다가 날 보며 밥은 먹었냐고 물었다.


엄마. 나 밥 먹을 자격 없어....

나.. 나쁜놈이야....

 

"아니.. 별로 생각없어."


20년을 같이 살아오신 어머니.

내 얼굴만 봐도 무슨 일이있는지 다 아신다.


"아침 부터 무슨 일있니?"

 

일은 무슨..

...조낸 큰 일이다.. -_-;

난 대뜸 어머니에게 말했다.

 

"...엄마. 나 결혼해도 돼?"

"...결혼? 갑자기 왜? 너 자리도 못 잡았잖니? 여자는 있고?"

 

여자는 있지..

애도 있어서 탈이지만-_-..

 

"...여자가 능력이 된데."

"남자가 되서 여자한테 잡혀살려구? 아버지처럼?"

 

순간 아버지의 모습이 떠올랐다.

음.. 그건 아닌거 같은데-_-;

 

어머니는 상을 치우고 커피를 내오셨다.

 

"빈속에 커피 먹으면 안 좋은데.."

"근데 타주는건 무슨 심보야?"


"히히. 너 하고 싶은데로 하라고."


인자하신 미소속에 따뜻함이 느껴졌다.

나.. 하고 싶은데로 하라고?..

 

"...그래도 돼?"


"응. 엄만 우리 아들 믿는다."

"..."


"내..가 무슨 짓을 해도?"

"응. 엄만 니가 무슨 짓을 해도 니 편이야."


"졸라 나쁜 짓을해도?"

"응. 근데 너 뭐 사고쳤냐?"


뜨끔.

우리 엄마 속이긴 정말 힘들다니까..;

 


"..아.아니-_-.."

"엄마 좀 있다 학원 가야돼. 요즘 미용배운다고 정신 없다."

 

요즘 어머니는 젊음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이것저것 많이 배워야 한다며..

학원다니면서 맛사지자격증도 따시고 이제는 미용자격증을 따시려고하고 있다.

아버지 꼬셔서 미용실 하나 낼꺼라나 뭐라나 -_-

 

"..어. 나 가볼께."

"어디 가는데?"


"내 집에 가야지."

"한 숨자고 가지?"


"...그럴까?"

 

따뜻한 엄마의 말에 예전에 내가 쓰던 방으로 들어갔다.

내가 쓰지않는 물건들이 가득 쌓여있었다.


내 집에 따로 생겼으니까.. 내가 쓰는 것만 빼왔으니까 당연한건가?


이게.. 언제쩍꺼야..

최근에 왔을땐 몰랐는데 오늘보니까 뭐가 이렇게도 오래된게 많은지..

...


폰이 울렸다. 문자왔어요~


"전화 왜 안받니?
만나자..우리..!
-그냥이"


...

뭐야.. 만나서 또 질질짜는 꼴 봐라고?...

그냥 베터리를 뽑아 버렸다.

일단 피곤하니까 몸을 좀 뉘여야겠다.


밤세 한 숨도 잠을 자지 못해서 그런지..

눕자마자 바로 골아떨어졌다..

 

 


성냥이가 서 있다.

한번 보았는데 어떻게 저렇게 또렷하지?

자세히 보니까 까만 눈이 그냥이를 닮았다.

하하. 동그란 얼굴이 날 닮은것 같기도하다.

머리를 길게 길려놔서 사내인지 계집애인지 분간하기도 힘들다.

아직 젖살이 많아서 그런지 계집애 같기도하고..

뭐 남자라고 했으니까 남자겠지.

 

그녀석이 날 보더니 나에게 다가왔다.


"뭐야? 너 저리 안가?"


나의 외침에 녀석은 걸어오다 말고 걸음을 멈췄다.


"...아빠.."

".. 누가 니 아빠야! 증거있어?"


"이모가 그랬어. 니 애비라고."

"...난 니 이모하고 사겼었어. 니 이모가 엄마라면 몰라도..
니 이모랑 나랑 그렇고 그런 사이였는데 니 엄마랑 나랑 잘 될꺼 같아?"


"이모가 그랬는데..니 애비라고.."

"자꾸 니 애비래. 얘가. 버릇이 없구만. 누굴 닮은겨?"


녀석은 조그마한 입술을 오물거리며 말했다.

 


"니..."

"-_-;;;"

 


아악!!

 

 

잠에서 깨어나 벌떡 일어났다. 방안은 고요했으며 내 머리엔 식은 땀이 흘러내렸다.

어머니는 학원에 가신 모양이다.

악몽이다.ㅠ_ㅠ.. 무슨 꿈이 이래?.. 쳇.


난 씻고 옷을 갈아입은 뒤 누워서 티비를 보았다.

자식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다. 채널을 돌렸다.

아씨....

미치겠다.

티비가 눈에 안들어온다...

자꾸 생각난다.

성냥인가 뭔가가 내 아들이라고??

...
하..


제대로 한번 보고싶긴하다... 하하.. 내 아들?..

어쩌다가.. 일이 이렇게 되어버렸을까?...


그냥이와 난 악연인걸까?...

한참을 뒹굴거린 뒤에서야 집으로 갈 마음을 먹었다.

엄마 얼굴 한번 더 보고 가려고 했는데 많이 늦으시나보다.

 

난 내 집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다시 일이 전념해야겠다..

아니다..


노가다 때려치고 취직이나 해야겠다.

정말..

이래가지고서는 아무것도 안될 것 같다.

빨리 딴 여자랑 결혼해야지. 자리 잡아야겠다.


지은이 한테 연락해볼까-_-..

젠장. 아는 여자가 없으니.. 뭘 어떻게 할 방법이 없구나.


게다가 성민이 이 자식.

그냥이를 소개시켜준다고 왜 말을 안한거야!!

개 놈 때문에 괜히 이상하게 일만 꼬여버렸다..

아오.. 소개팅 하는게 아니였는데!!....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집으로 향했다.

그리고..

집 앞에는 그냥이가 서 있었다.

 

....


"야.. 너 뭐야 집은 도대체 어떻게 안거야..?"

"..."


하루종일 울었는지.. 그냥이의 얼굴 상태가 말이 아니였다.

약간의 연민이 느껴졌다...

내가 이렇게 모진놈이였던가...

그냥 내가 그냥이 받아주고.. 성냥이키우면 끝나는 일 아닌가?

... 근데.. 왜 그렇게 할 수가 없는거지..

그렇게 하겠다고 말을 꺼낼 수가 없는 거지.......

 

그냥이가 근엄하게 말했다..


"부탁 하나만 하자.."

"..."


"성냥이랑.. 일주일만 놀아주라...
다른 아빠들처럼.. 손잡고 놀이동산도 가고..
같이 사진도 찍고.. 목욕탕가서 때도 밀어주고..!
같이 피자도 시켜먹고 라면도 끓여먹고 게임도 하고..

단.. 일주일만이라도.. 아빠노릇 해주면 안될까?..

나랑 안살아도 되니까.. 응?.. 제발....성엽아..."

 

그녀는 끝내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


...일이 어쩌다 이렇게 되어버렸을까?

....


그냥이의 말이 계속 이어졌다..

여전히 눈물을 흘리는 채로...

...

"흑..성냥이.. 아빠와의 추억이 하나도 없어....흐윽...
나처럼.. 아빠 없다는 느낌을.. 흑..주고 싶지 않아..
성엽아... 제발.....으흑.. 아빠와의 추억 하나라도..
간직 할수 있게.. 해주면.. 안될까..? 응?..

흑..그땐.. 나.. 미련 없이 떠날께..진짜...."

 

...
.....

 

 

 

 

 

by 도도한병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