깜짝 놀라 뒤를 돌아봤다. 그리고 곧이어 서윤호의 환한 웃음을 볼수가 있었다. 하긴 시간대가 겹치니 자주 만나는건 당연할 지도 모른다. 오늘도 촬영장까지 서윤호와 함께 동행을 해야 하나보다.
"촬영 가시는 거죠? 저도 같이 가도 되죠?"
"훗~"
그의 손에 들려져 있는 여러벌의 옷을 보고 정말 웃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의상은 촬영장에 가면 다 준비되어 있기 때문에 저렇게 바리바리 싸 들고 올 필요가 없는 것이였다.
"왜 웃으세요? 무슨 일 있으세요?"
"그걸 다 가지고 가시려구요?"
"네~ 그럼요~ 제가 대본 보고 몇개 골라봤어요"
정말 순진한 사람인지 아니면 그만큼 일에 열정적인 사람인지.. 아무튼 보고 있으면 헛갈리는 사람이다.
그녀가 웃는다. 하긴 그도 그럴것이 지금 내 꼴은 내가봐도 웃스꽝 스럽다. 차라도 있으면 모르겠지만 내 나이 23살에 차는 무리다. 좀 일찍 성공했으면 모를까. 어쨌든 그녀를 웃겼다는 생각에 나도 기분이 좋아진다.
오늘은 평소보다 준비를 더욱 서둘러야 했다. 물론 제작국에 코디는 있겠지만 내가 입는 옷이라 그런지 신경이 쓰여서 오늘 촬영 컨셉에 맞게 몇벌을 준비했다. 그리고 내가 오늘 더 서두른 이유는 따로 있었다. 바로 김PD님을 기다리고 싶어서였다. 왠지 부지런한 사람 같아 보이니깐 언제 나올지 몰라서 1시간정도를 서둘렀다. 다행이도 나간지 얼마 안되서 그녀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역시 부지런한 그녀였다.
서희가 여주인공을 맡았다는 사실을 알게 된건 윤호도 얼마 전의 일이였다. 여주인공을 서희가 맡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던 윤호지만 서희인걸 알고나자 여주인공 자리에 서희가 적격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서희와 함께 연기를 한다는 생각에 윤호는 어찌나 설레는지 첫 작품도 첫 작품이지만 서희와 함께라서 더 의미가 있는 듯 했다. 따뜻한 봄 햇살을 받고 있는 서희의 하얀 얼굴과 까만 눈동자는 더욱 빛을 발했다. 그녀한테 고백을 하고 아직은 너무 이른것 같아 말도 못 꺼내고 있는 윤호지만, 만날때마다 좋아한다고 사귀고싶다는 말이 허공을 맴돌 뿐이다. 누군가를 바라보는 마음이 이렇게 힘든지 윤호는 처음으로 느꼈다,
"김PD님은 머 좋아해요?"
"네?.. 어떤거요?"
"그러니깐.. 그러니까~음식요 하하~ 좋아하는 음식이 머예요?"
"아.. 다 잘 먹어요"
"그런거 말고 한가지만 꼽으라면요? 저는 라면이 젤 좋은데 히~"
잠시 생각을 하는 듯 하더니 그녀가 대답한다.
"전 찌게요. 된장찌게가 젤 좋아요"
'이렇게.. 이렇게 그녀에 대해 하나하나 알아가면 되는거다. 성급할거 없이 이렇게 차차 알아가면 되는거다.'
윤호의 입가에 회심의 미소가 번졌다. 그리곤 다짐했다. 언젠간 그녀가 좋아하는 된장찌게를 내손으로 끓여주리라고...
촬영장 분위기는 항상 분주하다.
촬영장에 도착하자 마자 모습을 나타낸 건 몇몇의 스탭들과 정선배였다. 아직 정선배를 어떻게 봐야할지 막막했다. 몇일전 그일 이후에 처음으로 보는 정선배의 모습이였다.
"나오셨어요..."
"응 김PD도 준비 잘해왔지?"
다행이 정선배는 평소와 다름없이 나를 대했다. 정 선배를 신경쓸 겨를도 없이 나는 바빠졌다. 촬영장 점검도 해야했고 시나리오 점검도 다시 한번 해야했다. 그러나 서희가 정작 바빴던건 그것 때문이 아닌 연기준비 때문이였다. 메이크업부터 의상까지 이곳 저곳 불려다니고 옮겨다니느라 정신이 없었다.
다시 한번 연기자라는 것에 실감해야 하는 서희였다.
연기지도만 해 봤지 한번도 나서서 연기를 해 본적이 없는 서희였다. 하지만 서희의 연기는 무난했다. 그런데 정작 문제는 윤호였다. 나름대로 연기공부를 한 윤호지만 긴장을 했는지 영 감정을 잡지 못했다. 그냥 벤취에 앉아서 몇마디 대화만 나누는 것 뿐인데 영 힘들다.
"윤호씨 편하게 해봐요? 네?"
"네... 네 저도 편하게 하려고 하는데 영 힘들어요. 죄송해요 김PD님"
아직 어린티가 많이 나는 윤호이다. 많이 불안해하고 있는 것 같다. 서희는 이런 윤호를 보면서 또 동생 서문이가 생각난다. 벌써 두번째다 윤호를 보면서 서문을 떠올린게..
"윤호씨~ 지금 이 상황이 연기가 아니라 실제 상황이라고 생각해봐요. 지금 저 앞에 사람들도 스탭이 아니라 그냥 지나가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훨씬 쉬워질꺼예요. 너무 긴장하지 말구요"
어린아이를 달래듯이 윤호를 살살 달래보는데 윤호한테는 그게 먹히나 보다. 얼굴이 좀 전보다 많이 편해진게 눈에 보인다.
"자 다시한번 가 보자고 서윤호씨 이번엔 실수없게 OK?"
정선배의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다시 촬영장에 울러퍼졌고 다행이도 첫 촬영은 무사히 넘어갔다.
'후~ 다행이야'
촬영을 무사히 마치고 집에 가는 서희와 윤호의 몸은 천근만근이다.
"김PD님 힘들죠? 우리 시원한거 먹고갈래요? 제가 살께요"
"네? 전 괜찮은데.."
"그러지 말고 따라오세요 ~ 제가 좋은데 알거든요~"
이상하게도 이 사람한테는 거절할수 없게 만드는 힘이 있나보다. 이번에도 서윤호는 거절할 수 없게 만들어버린다.
그렇게 서희는 또 윤호한테 끌려가고 있었다. 그렇게 윤호를 따라간곳은 한 고층빌딩이였다. 엘레베이터 앞에 서희가 움찔 멈춰섰다.
"머해요? 안타고?"
"네? 하지만 여긴...?"
'아~~ 여기 24층에 있는 BAR예요. 예전에 모델할때 한번 와본적이 있어서.. 정말 전망 하나만큼은 끝내주거든요."
"하지만.. 전 별로 술은 마시고 싶지 않은데요."
"이집 칵테일이 맛있어요~ 그러니깐 그런 걱정 하지 마시고 따라오세요 무알콜도 있으니깐요"
지금이라도 집으로 가고 싶지만 윤호의 말을 거절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서희는 엘레베이터를 탔다. 이상하게도 서희의 심장이 제멋대로 움직이고 있었다. 윤호에게 감정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처음으로 남자와 단 둘이서 좁은 공간에 있게 되었다는 생각 때문인가 보다.
"김PD님 남자 사겨본적 없죠?"
정말 이 사람은 말을 거리낌없이 한다. 아니 거리낌이 없는건지 눈치가 없는건지...
"네? 있..있어요"
"에이~~ 없는거 같은데요 멀~ 하하~ 김PD님 지금 나이가 몇이세요?"
"29이요"
나도 모르게 29라는 숫자가 튀어나왔다. 어짜피 윤호가 알아도 상관 없지만 그래도 왠지 노처녀 소리는 듣고 싶지 않았다. 얼마전에 아줌마란 말까지 나한테 서슴치 않고 했던 윤호인데..
"와 김PD님 엄청 동안이시네~ 그럼 나하고 5살? 6살 차이죠?"
사실 더 놀란건 윤호였다. PD란 직책때문에 나이가 윤호보다 많을꺼라는건 짐작했지만 이렇게 차이가 나는줄은 꿈에도 생각 못했었다. 어느새 엘레베이터가 목적지에 도착했다. 자기를 놀리는 듯한 윤호의 말에 서희는 아무말도 못하고 조용히 윤호를 따라 내렸다.
"창가쪽 자리가 있으려나~~"
윤호가 자리를 찾으러 두리번 거리는데 저쪽에서 낯익은 얼굴들이 보였다. 정말 보고싶지 않은 얼굴들인데 하필이면 여기서 정태성과 신지영을 만났다. 눈치없는 서윤호가 먼저 반가운 얼굴로 정선배에게 다가갔다.
"정PD님 여기서 또 뵙네요~ 하하~ 데이트 중이신가봐요?"
윤호는 못 느꼈겠지만 서희는 알 수 있었다. 정 선배가 몹시 당황했다는 것을..
"전 김PD님하고 같이 왔는데 와 잘됐네요 같이 합석해요. 저흰 좀 힘들어서 시원한것좀 마시려고 왔거든요"
"아니 괜찮아. 우린 금방 나갈꺼라.."
'휴~'
속으로 정말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머 어때요? 정PD님 우리 합석해요? 네? 김PD님은 저도 좀 안면이 있거든요. 어짜피 일 얘기로 왔는데 같이 이런저런 얘기나 하죠 머? 네?"
신지영이였다. 지금 내가 본 신지영은 얼마전에 정선배한테 앙칼지게 해대던 그 신지영이 아니였다. 얼마나 다소곳해졌는지 소름이 다 돋았다.
"그래요 같이 합석해요. 저흰 저쪽 창가쪽으로 가려고 했는데.. 그럼 그쪽으로 자리 옮길까요? 전망도 좋은데"
정말 눈치 없는 윤호다. 정선배가 거절해주길 바라고 또 바랬다. 하지만 역시 예상대로 정선배는 신지영한테 약했다.
"흠 그래 그럼 조금 앉았다가 가지 머.."
근대 서윤호가 조금 이상하다. 평소 서윤호는 연예인이다 싶으면 아는체하고 싸인부터 먼저 받는게 서윤호인데 신지영은 모른척이다. 신지영을 모르는걸까? 아님 정선배하고 같이 있어서 조금은 눈치를 보는 것일까? 어쨌든 서희의 바램과는 반대로 우리 4명은 합석을 하게 되었고 역시 어색한 분위기가 흘렀다. 그 정막을 깬건 신지영이였다.
"이번 드라마 촬영 들어갔다면서요? 그러고 보니 주인공 두분이 여기 다 계시네~ 둘이 무슨사이예요? 벌써 연인 사이가 된거예요?"
역시 신지영이다. 날 벌레씹은 듣한 표정으로 처다보면서 저런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던진다.
"아.. 아뇨 우린 그냥 같은 동네.."
"연인사이가 되면 저야 영광이죠~ 김PD님 처럼 예쁜 분을"
내 말을 막아서고 서윤호가 말한다. 대체 무슨 생각으로 저런말을 하는걸까?
"그래요? 취향 참~"
"네?"
"아.. 아니예요 참 잘어울리신다구요"
신지영의 입가에서 왠지 알듯 모를 미소가 지어졌다. 정선배는 신지영이 시키는 말 외에는 한마디도 안하고 멍하니 창밖만 내다보며 애매한 담배만 피워댄다. 하긴 서희도 지금 이 상황이 많이 어색하고 한시라도 빨리 벗어나고 싶었다. 예전과는 다르게 정선배 얼굴을 보는것이 불편하고 답답하다.
"두분은 연인사이세요?"
내가 아까부터 물어보고 싶었던 말인데.. 아니 전에 정선배를 만났을때 부터 물어보고 싶었던 말을 윤호는 아무렇지도 않게 꺼낸다.
"아뇨? 우린 그냥 일 때문에 여기 온거예요. 제 다음 드라마 연출이 정PD님이시거든요"
'그나저나 김PD님은 어때요? 처음 연기인데 할만해요?"
"네 재미있어요"
"연기 재미로 했다가는 큰 코 다치는데~"
말 한마디 한마디 이쁘게 할줄은 모르는 여자다. 신지영은 정선배와 아무사이 아니라고 말하는데 난 왠지 확신이 든다. 둘이 연인 사이라는게..
왠지 서글퍼 졌다. 내가 정선배를 입사해서 처음 본게 3년쯤 전인데 첫 눈에 반한다는게 어떤 거라는 걸 알게해준 사람이였다. 따스한 정은 없었지만 왠지 차가워보이는 그런 면에 끌렸었다. 저 사람도 나와 같은 아픔이 있는 건 아닐까? 그걸 숨기려고 저렇게 차가워진건 아닐까? 이런 저런 생각에 정선배를 관찰하던게 나중에는 사랑이라는 걸 알았다. 하지만 정작 정선배와 대화를 한적은 별로 없었다. 하지만 이상하게 정선배를 향한 마음이 그치질 않는다.
"신지영씨는 이번엔 주연이세요? 요즘 맨날 단역으로만 봐서 아쉬워서요"
서윤호가 일부러 그런건 아니겠지만 이상하게도 그 말이 신지영의 자존심을 깍아내리는 말로 들렸다. 서희는 신지영의 얼굴을 한번 쳐다봤다. 신지영의 얼굴이 빨개지고 있었다. 아마 윤호의 아쉽다는 말이 그녀를 참게 만들었나보다. 하지만 왠지 고소했다.
"태성씨 우리 이제 그만 나가요 나 피곤해요"
기분이 나빴는지 신지영이 금새 일어나 나가자고 한다. 역시 감정 컨트롤이 안되나 보다.
"어...? 어 그래 나가자고"
그렇게 정선배가 신지영의 꼭두각시처럼 나가버렸고 서윤호와 나 둘이 남겨졌다.
"김PD님 정태성PD 좋아하죠? 왜 그렇게 바보같이 말도 못하고 살아요? 신지영같은 여자가 김PD님 약올리는거 안보여요? 왜 뻔히 보면서 그런걸 참는거예요? 바보 아니예요?"
윤호도 자신이 왜 그런말을 던졌는지 모른다. 하지만 김PD님이 정태성을 쳐다보는 눈빛은 왠지 슬퍼보였고 아련함까지 느꼈다. 별로 눈치가 없는 편이지만 남녀 사이의 문제는 즉각 눈치채고 마는 내 성격이 이럴때 발동한 것이다.
내 말에 그녀의 눈에 또 눈물이 고인다. 다른 사람도 아닌 내가 그녀를 울리고 만 것이다.
화장을 고치고...(8)고백
"김PD님?"
깜짝 놀라 뒤를 돌아봤다. 그리고 곧이어 서윤호의 환한 웃음을 볼수가 있었다. 하긴 시간대가 겹치니 자주 만나는건 당연할 지도 모른다. 오늘도 촬영장까지 서윤호와 함께 동행을 해야 하나보다.
"촬영 가시는 거죠? 저도 같이 가도 되죠?"
"훗~"
그의 손에 들려져 있는 여러벌의 옷을 보고 정말 웃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의상은 촬영장에 가면 다 준비되어 있기 때문에 저렇게 바리바리 싸 들고 올 필요가 없는 것이였다.
"왜 웃으세요? 무슨 일 있으세요?"
"그걸 다 가지고 가시려구요?"
"네~ 그럼요~ 제가 대본 보고 몇개 골라봤어요"
정말 순진한 사람인지 아니면 그만큼 일에 열정적인 사람인지.. 아무튼 보고 있으면 헛갈리는 사람이다.
그녀가 웃는다. 하긴 그도 그럴것이 지금 내 꼴은 내가봐도 웃스꽝 스럽다. 차라도 있으면 모르겠지만 내 나이 23살에 차는 무리다. 좀 일찍 성공했으면 모를까. 어쨌든 그녀를 웃겼다는 생각에 나도 기분이 좋아진다.
오늘은 평소보다 준비를 더욱 서둘러야 했다. 물론 제작국에 코디는 있겠지만 내가 입는 옷이라 그런지 신경이 쓰여서 오늘 촬영 컨셉에 맞게 몇벌을 준비했다. 그리고 내가 오늘 더 서두른 이유는 따로 있었다. 바로 김PD님을 기다리고 싶어서였다. 왠지 부지런한 사람 같아 보이니깐 언제 나올지 몰라서 1시간정도를 서둘렀다. 다행이도 나간지 얼마 안되서 그녀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역시 부지런한 그녀였다.
서희가 여주인공을 맡았다는 사실을 알게 된건 윤호도 얼마 전의 일이였다. 여주인공을 서희가 맡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던 윤호지만 서희인걸 알고나자 여주인공 자리에 서희가 적격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서희와 함께 연기를 한다는 생각에 윤호는 어찌나 설레는지 첫 작품도 첫 작품이지만 서희와 함께라서 더 의미가 있는 듯 했다. 따뜻한 봄 햇살을 받고 있는 서희의 하얀 얼굴과 까만 눈동자는 더욱 빛을 발했다. 그녀한테 고백을 하고 아직은 너무 이른것 같아 말도 못 꺼내고 있는 윤호지만, 만날때마다 좋아한다고 사귀고싶다는 말이 허공을 맴돌 뿐이다. 누군가를 바라보는 마음이 이렇게 힘든지 윤호는 처음으로 느꼈다,
"김PD님은 머 좋아해요?"
"네?.. 어떤거요?"
"그러니깐.. 그러니까~음식요 하하~ 좋아하는 음식이 머예요?"
"아.. 다 잘 먹어요"
"그런거 말고 한가지만 꼽으라면요? 저는 라면이 젤 좋은데 히~"
잠시 생각을 하는 듯 하더니 그녀가 대답한다.
"전 찌게요. 된장찌게가 젤 좋아요"
'이렇게.. 이렇게 그녀에 대해 하나하나 알아가면 되는거다. 성급할거 없이 이렇게 차차 알아가면 되는거다.'
윤호의 입가에 회심의 미소가 번졌다. 그리곤 다짐했다. 언젠간 그녀가 좋아하는 된장찌게를 내손으로 끓여주리라고...
촬영장 분위기는 항상 분주하다.
촬영장에 도착하자 마자 모습을 나타낸 건 몇몇의 스탭들과 정선배였다. 아직 정선배를 어떻게 봐야할지 막막했다. 몇일전 그일 이후에 처음으로 보는 정선배의 모습이였다.
"나오셨어요..."
"응 김PD도 준비 잘해왔지?"
다행이 정선배는 평소와 다름없이 나를 대했다. 정 선배를 신경쓸 겨를도 없이 나는 바빠졌다. 촬영장 점검도 해야했고 시나리오 점검도 다시 한번 해야했다. 그러나 서희가 정작 바빴던건 그것 때문이 아닌 연기준비 때문이였다. 메이크업부터 의상까지 이곳 저곳 불려다니고 옮겨다니느라 정신이 없었다.
다시 한번 연기자라는 것에 실감해야 하는 서희였다.
연기지도만 해 봤지 한번도 나서서 연기를 해 본적이 없는 서희였다. 하지만 서희의 연기는 무난했다. 그런데 정작 문제는 윤호였다. 나름대로 연기공부를 한 윤호지만 긴장을 했는지 영 감정을 잡지 못했다. 그냥 벤취에 앉아서 몇마디 대화만 나누는 것 뿐인데 영 힘들다.
"윤호씨 편하게 해봐요? 네?"
"네... 네 저도 편하게 하려고 하는데 영 힘들어요. 죄송해요 김PD님"
아직 어린티가 많이 나는 윤호이다. 많이 불안해하고 있는 것 같다. 서희는 이런 윤호를 보면서 또 동생 서문이가 생각난다. 벌써 두번째다 윤호를 보면서 서문을 떠올린게..
"윤호씨~ 지금 이 상황이 연기가 아니라 실제 상황이라고 생각해봐요. 지금 저 앞에 사람들도 스탭이 아니라 그냥 지나가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훨씬 쉬워질꺼예요. 너무 긴장하지 말구요"
어린아이를 달래듯이 윤호를 살살 달래보는데 윤호한테는 그게 먹히나 보다. 얼굴이 좀 전보다 많이 편해진게 눈에 보인다.
"자 다시한번 가 보자고 서윤호씨 이번엔 실수없게 OK?"
정선배의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다시 촬영장에 울러퍼졌고 다행이도 첫 촬영은 무사히 넘어갔다.
'후~ 다행이야'
촬영을 무사히 마치고 집에 가는 서희와 윤호의 몸은 천근만근이다.
"김PD님 힘들죠? 우리 시원한거 먹고갈래요? 제가 살께요"
"네? 전 괜찮은데.."
"그러지 말고 따라오세요 ~ 제가 좋은데 알거든요~"
이상하게도 이 사람한테는 거절할수 없게 만드는 힘이 있나보다. 이번에도 서윤호는 거절할 수 없게 만들어버린다.
그렇게 서희는 또 윤호한테 끌려가고 있었다. 그렇게 윤호를 따라간곳은 한 고층빌딩이였다. 엘레베이터 앞에 서희가 움찔 멈춰섰다.
"머해요? 안타고?"
"네? 하지만 여긴...?"
'아~~ 여기 24층에 있는 BAR예요. 예전에 모델할때 한번 와본적이 있어서.. 정말 전망 하나만큼은 끝내주거든요."
"하지만.. 전 별로 술은 마시고 싶지 않은데요."
"이집 칵테일이 맛있어요~ 그러니깐 그런 걱정 하지 마시고 따라오세요 무알콜도 있으니깐요"
지금이라도 집으로 가고 싶지만 윤호의 말을 거절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서희는 엘레베이터를 탔다. 이상하게도 서희의 심장이 제멋대로 움직이고 있었다. 윤호에게 감정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처음으로 남자와 단 둘이서 좁은 공간에 있게 되었다는 생각 때문인가 보다.
"김PD님 남자 사겨본적 없죠?"
정말 이 사람은 말을 거리낌없이 한다. 아니 거리낌이 없는건지 눈치가 없는건지...
"네? 있..있어요"
"에이~~ 없는거 같은데요 멀~ 하하~ 김PD님 지금 나이가 몇이세요?"
"29이요"
나도 모르게 29라는 숫자가 튀어나왔다. 어짜피 윤호가 알아도 상관 없지만 그래도 왠지 노처녀 소리는 듣고 싶지 않았다. 얼마전에 아줌마란 말까지 나한테 서슴치 않고 했던 윤호인데..
"와 김PD님 엄청 동안이시네~ 그럼 나하고 5살? 6살 차이죠?"
사실 더 놀란건 윤호였다. PD란 직책때문에 나이가 윤호보다 많을꺼라는건 짐작했지만 이렇게 차이가 나는줄은 꿈에도 생각 못했었다. 어느새 엘레베이터가 목적지에 도착했다. 자기를 놀리는 듯한 윤호의 말에 서희는 아무말도 못하고 조용히 윤호를 따라 내렸다.
"창가쪽 자리가 있으려나~~"
윤호가 자리를 찾으러 두리번 거리는데 저쪽에서 낯익은 얼굴들이 보였다. 정말 보고싶지 않은 얼굴들인데 하필이면 여기서 정태성과 신지영을 만났다. 눈치없는 서윤호가 먼저 반가운 얼굴로 정선배에게 다가갔다.
"정PD님 여기서 또 뵙네요~ 하하~ 데이트 중이신가봐요?"
윤호는 못 느꼈겠지만 서희는 알 수 있었다. 정 선배가 몹시 당황했다는 것을..
"전 김PD님하고 같이 왔는데 와 잘됐네요 같이 합석해요. 저흰 좀 힘들어서 시원한것좀 마시려고 왔거든요"
"아니 괜찮아. 우린 금방 나갈꺼라.."
'휴~'
속으로 정말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머 어때요? 정PD님 우리 합석해요? 네? 김PD님은 저도 좀 안면이 있거든요. 어짜피 일 얘기로 왔는데 같이 이런저런 얘기나 하죠 머? 네?"
신지영이였다. 지금 내가 본 신지영은 얼마전에 정선배한테 앙칼지게 해대던 그 신지영이 아니였다. 얼마나 다소곳해졌는지 소름이 다 돋았다.
"그래요 같이 합석해요. 저흰 저쪽 창가쪽으로 가려고 했는데.. 그럼 그쪽으로 자리 옮길까요? 전망도 좋은데"
정말 눈치 없는 윤호다. 정선배가 거절해주길 바라고 또 바랬다. 하지만 역시 예상대로 정선배는 신지영한테 약했다.
"흠 그래 그럼 조금 앉았다가 가지 머.."
근대 서윤호가 조금 이상하다. 평소 서윤호는 연예인이다 싶으면 아는체하고 싸인부터 먼저 받는게 서윤호인데 신지영은 모른척이다. 신지영을 모르는걸까? 아님 정선배하고 같이 있어서 조금은 눈치를 보는 것일까? 어쨌든 서희의 바램과는 반대로 우리 4명은 합석을 하게 되었고 역시 어색한 분위기가 흘렀다. 그 정막을 깬건 신지영이였다.
"이번 드라마 촬영 들어갔다면서요? 그러고 보니 주인공 두분이 여기 다 계시네~ 둘이 무슨사이예요? 벌써 연인 사이가 된거예요?"
역시 신지영이다. 날 벌레씹은 듣한 표정으로 처다보면서 저런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던진다.
"아.. 아뇨 우린 그냥 같은 동네.."
"연인사이가 되면 저야 영광이죠~ 김PD님 처럼 예쁜 분을"
내 말을 막아서고 서윤호가 말한다. 대체 무슨 생각으로 저런말을 하는걸까?
"그래요? 취향 참~"
"네?"
"아.. 아니예요 참 잘어울리신다구요"
신지영의 입가에서 왠지 알듯 모를 미소가 지어졌다. 정선배는 신지영이 시키는 말 외에는 한마디도 안하고 멍하니 창밖만 내다보며 애매한 담배만 피워댄다. 하긴 서희도 지금 이 상황이 많이 어색하고 한시라도 빨리 벗어나고 싶었다. 예전과는 다르게 정선배 얼굴을 보는것이 불편하고 답답하다.
"두분은 연인사이세요?"
내가 아까부터 물어보고 싶었던 말인데.. 아니 전에 정선배를 만났을때 부터 물어보고 싶었던 말을 윤호는 아무렇지도 않게 꺼낸다.
"아뇨? 우린 그냥 일 때문에 여기 온거예요. 제 다음 드라마 연출이 정PD님이시거든요"
'그나저나 김PD님은 어때요? 처음 연기인데 할만해요?"
"네 재미있어요"
"연기 재미로 했다가는 큰 코 다치는데~"
말 한마디 한마디 이쁘게 할줄은 모르는 여자다. 신지영은 정선배와 아무사이 아니라고 말하는데 난 왠지 확신이 든다. 둘이 연인 사이라는게..
왠지 서글퍼 졌다. 내가 정선배를 입사해서 처음 본게 3년쯤 전인데 첫 눈에 반한다는게 어떤 거라는 걸 알게해준 사람이였다. 따스한 정은 없었지만 왠지 차가워보이는 그런 면에 끌렸었다. 저 사람도 나와 같은 아픔이 있는 건 아닐까? 그걸 숨기려고 저렇게 차가워진건 아닐까? 이런 저런 생각에 정선배를 관찰하던게 나중에는 사랑이라는 걸 알았다. 하지만 정작 정선배와 대화를 한적은 별로 없었다. 하지만 이상하게 정선배를 향한 마음이 그치질 않는다.
"신지영씨는 이번엔 주연이세요? 요즘 맨날 단역으로만 봐서 아쉬워서요"
서윤호가 일부러 그런건 아니겠지만 이상하게도 그 말이 신지영의 자존심을 깍아내리는 말로 들렸다. 서희는 신지영의 얼굴을 한번 쳐다봤다. 신지영의 얼굴이 빨개지고 있었다. 아마 윤호의 아쉽다는 말이 그녀를 참게 만들었나보다. 하지만 왠지 고소했다.
"태성씨 우리 이제 그만 나가요 나 피곤해요"
기분이 나빴는지 신지영이 금새 일어나 나가자고 한다. 역시 감정 컨트롤이 안되나 보다.
"어...? 어 그래 나가자고"
그렇게 정선배가 신지영의 꼭두각시처럼 나가버렸고 서윤호와 나 둘이 남겨졌다.
"김PD님 정태성PD 좋아하죠? 왜 그렇게 바보같이 말도 못하고 살아요? 신지영같은 여자가 김PD님 약올리는거 안보여요? 왜 뻔히 보면서 그런걸 참는거예요? 바보 아니예요?"
윤호도 자신이 왜 그런말을 던졌는지 모른다. 하지만 김PD님이 정태성을 쳐다보는 눈빛은 왠지 슬퍼보였고 아련함까지 느꼈다. 별로 눈치가 없는 편이지만 남녀 사이의 문제는 즉각 눈치채고 마는 내 성격이 이럴때 발동한 것이다.
내 말에 그녀의 눈에 또 눈물이 고인다. 다른 사람도 아닌 내가 그녀를 울리고 만 것이다.
"당신이... 대체 당신이 나에대해 멀 안다고 그래요?"
"내가... 내가 당신을 사랑한다구요.. 언제부턴가 내 눈속엔 당신만 보인다구요~"
난 그만 하지 말아야 할 말을 하고 말았다. 그것도 이렇게 느끼한 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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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이 많이 늦었네요.. 기다리게 해드려서 죄송해요,
주말동안 정신이 없었어요.
이제 고백도 했겠다. 다음회부터는 윤호의 적극적인 구애가 시작되요.,
서희가 언능 윤호의 마음을 받아들였으면 좋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