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나오는 이야기..

비탈2006.0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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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등에 깜장 고무신 마크가 테두리로 찍히던 시절-

농사꾼이 천하의 근본이란걸 믿던 내동네엔 머슴"이라는 제도가 있었다.

주로 그 머슴이라는 직업에 종사한 사람들의 공통점 몇가지를 보면-

(우리 동네 거쳐간 사람들을 근거한 나의 주관적 시각이므로 태클 절대 사절)

 

1.사고 무친 고아이거나 마누라 도망가고 집도 절도 없이 혼자사는 사람들

2.육체는 건장하나 정신이 유약하여 사회적 집체 능력을 상실한 사람들

3.개인적 일신상의 사유로 깊은 산골 도피가 필요했던 사람들

    (탈영자,기소유예자)

4.흥부네 자식들중 밥그릇에 여유있는 남의 집에 맡긴 애들(꼴머슴이라 했음)

5.기타 영농에 지대한 관심이 있던 식자들

    (한해를 견디지 못하고 중간에 야반도주)

 

주로 이러한 사람들이 시골에서 농번기 농사일을 거들고

농한기에는 소의 여물이나 땔감을 주로하며 그에 대한 대가를 새경이라

하였는데 사전에도 새경이란 단어가 존재함은 농경 사회에서 머슴이란

제도가 그만치 널리 통용되지 않았나 싶다.

 

그때 본인의 기억으로는

명절이면 돈 얼마에 새옷을 한두벌 해주는게 지금의 상여금 유사였으며

사전에 주인과 머슴이 협상하여 일년 추수후 쌀 몇가마 일괄 지급이

연봉이었다.

기본으로 밥세끼 주인네와 똑같이 같은 상에서 먹었고

술담배는 무한정 대는게 기본이며 농사 스케줄은 머슴 꼴리는대로

잡아야 했는데 만일 그러한 복지가 머슴 심사와 삐긋거리면 일년 계약후

미련없이 더 나은 조건을 찾아 떠나버리는게 통례여서 사실 일잘하는 머슴은 주인이 눈치보며 대우하던 시절이었다.

 

꼴머슴으로 몇년 새경 착실히 저축하여 장려쌀 굴리던 00형은

지금 우리동네 몇째가는 부농이되어 있고

일년내내 뼈빠지게 일해서 받은 새경 달구지에 싣고 나가

주색에 흥청이다 열흘도 못견디고 빈손으로 돌어와 제살던 방 아궁이에

불지피고 들어 앉으면 내년 재계약의 의사로 간주되어 다시 가족으로

이어지곤 하던 재호 아저씨는 평생을 그렇게 살다가

알콜 중독에 치매가 겹쳐 시설에서 혼자 생을 마감했었다.

 

새경의 많고 적음이 차이일뿐

분명 당시의 머슴은 고용주와 피고용인의 적법한 제도와 합리적인

관계였었고 그보다 더해 어쩌면 한솥밥 말그대로 하나의 가족이었다.

 

병들어 방구석 들어 앉으면 우리 어머니는 인근 한의원에서

한약을 한재 사다 달여 들이며 아끼던 엿가락 한조각 떼어 한약의 쓴맛을 달래주곤 했었고 아버지는 구둘장 식을라 우리에게 지시하여 군불을 아침 저녁

수시로 넣으라 챙기시곤 했었다.

 

볏가마 가득실은 달구지에 매달리며 타고자 떼를 쓰던 나에게

소도 심들잖여~ 하면서 등을 내밀어 나를 업고 달구지를 끌던 덕기 아저씨는

나의 유년기 아버지등짝보다 더 익숙히 매달리던 삼촌이었다.

 

고향 언저리 좋은 자리로 간다며 떠난지 얼마후

주먹만한 등창이 곪아 터져 우리집으로 다시 돌아와

몇달을 어머니 병시중으로 완치되어 엉엉 울며 떠나던

덕기 삼촌의 마지막  모습이 내눈에 선연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내가 기억하는

강원도 골짜기 버스도 없고 전기도 없던 산동네의 머슴은 그런 그리움으로

 간직되어 있는데....

 

어제 모방송에서 늦은밤 방영된 프로에서 현대판 노예라는 내용을 보고

나는 기숙사에서 새벽까지 잠을 이룰수가 없었다.

 

20대 청년이 어느 지주집에 머슴으로 들어앉아 50년간

개보다 못한 숙식의 제공을 받으며 대를이은 주인에게 폭행당해 살았단다.

 

지금이 어느 시절인가?

하늘에 인공위성이 떠돌며 개미가 옆집에 마실가는것까지 파악된다는

대명천지 아닌가.

 

그 주인이라는 사람은 악독한 성격의 세습자며 당사자인 노인은 바보일수

있다고 봐주자.

주인의 친인척이 공범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못함을 혈연에 의한 의리라고

믿고 노인의 가족들이 인연끊긴 피붙이를 잊고 살아 챙기지 못했다고 치자.

 

그러나,

50년이란 반세기를 눈으로 보고 지낸 동네 사람들은

철저히 모른척 눈감아 주는걸 이웃의 미덕으로 생각했을까?

 

도회와 다르게 주민수 하나 증감에도 민감히 반응하는 시골 행정 속리거늘

해당 관청의 공무원은 비정상 동거인의 그 참혹한 세월에 왜 그리 질기게

침묵했을까?

 

등불하나에 의지하고

법이 무언지 모르던 강원도 산골 보다

하나도 밝지 못한 시절임에 한탄이 절로 나온다.

 

무슨 북한의 인권이며 굶주리는 소말리아 깜둥이를 얘기하는가.

지금도 방송타지 못한 어느 내 이웃이 암흑에서 쓰레기통 뒤져가며

살고있음이 분명하거늘......

 

니기미 씨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