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묻지 않을 수 없었다. 한번도 자신의 고통 따위는 알 것 같지도 않은 그녀가 어떻게 이처럼 사실적으로 그의 모습을 그려낼 수 있었던 건지. 도저히 그냥 묵고할 수 없는 현실이었다. 그런데 그녀의 눈을 보는 순간 자신이 울고 싶을 정도로 심각한 외로움에 빠져든걸 알 수 있었다.
그의 눈은 촉촉이 젖어 있었다. 그녀에게 다그치듯 물어오는 그의 눈이 그녀가 알지 못하는 심각한 두려움에 젖어 들고 있었다. ‘뭐지......... 이런 기분 아마도 이 사람 나처럼 외로웠던 모양이네’ 나윤은 남자의 얼굴을 가만히 쓰다듬어 주며, 마치 동생을 달래주듯 자신의 따뜻한 마음으로 위로해 주고 싶었다. 그는 그런 그녀의 마음을 받듯 그녀의 손길을 가만히 느끼고 있었다.
“내가 예전에 알던 어떤 분에 대해서 쓴 거예요.”
10여분동안 아무런 말도 없이 서로의 위로를 받아들인 그들이 무거운 침묵을 깨기 위해 몸을 움직였다. 그리고 선선히 그녀의 위로를 받아준 그를 위해 나윤이 조용히 말문을 열었다. 그의 눈이 잠시잠깐 흔들리는 것처럼 보였으나, 그는 이네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고요한 평정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 모습은 그녀가 시나리오에 부각시킨 남자주인공의 모습과 너무도 닮아 있었다.
“운명과도 같아요.”
“운명? 무슨 말이지”
“그냥 말 그대로 당신과 시나리오가 주인을 만난 운명.”
나윤은 사실은 자신과 그가 만난 게 운명이라고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 말을 하는 순간 그가 웃을게 불 보듯 뻔하기 때문에 유치한 자신의 생각을 바꿔 말했을 뿐이다.
“틀렸어. 말은 바로 해. 나랑 이 종이 나부랭이가 만난 게 운명이 아니라 당신과 내가 만난 게 운명이겠지.”
헉! 들키고 말았다. 하지만 그렇게 면박 주듯 말을 하는 그를 보니 심사가 뒤틀려 그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건 당신 생각이고요. 참, 영화사 가볼래요? 김 이사님도 당신을 기다릴 테니까.”
“정말?”
그녀는 웃옷을 챙겨 입던 동작을 늦추며, 비꼬듯 말을 하는 그를 돌아보았다.
“뭐가요?”
“아니 내 생각엔 김 이사인가 하는 사람은 날 별로 안 좋게 보는 것 같던데”
“그래서요. 그게 이 영화랑 무슨 상관이죠. 어쨌든 당신은 내가 고른 배운데 그거면 되는 거잖아요. 김 이사님은 어쨌든 허락할 수밖에 없다고요.”
나윤은 그에게 밖으로 나가자는 모션을 취한 후 먼저 현관문으로 향했다. 그런 그녀는 황급히 쫓아온 그가 그녀를 거칠게 돌려세웠다. 그의 거친 모습 또한 그녀가 시나리오에 각인 시켜놓았기에 왠지 그녀자신이 연극을 하는 것처럼 착각에 빠져들었다.
“혹시 김 이사랑 사귀는 건가?”
적어도 그가 엉뚱한 질문을 하기 전까지 나윤은 착각 속에서 잠시나마 행복한 기분을 만끽할 수 있었다. 하지만 여지없이 그녀의 착각을 깨는 그의 엉뚱한 물음에 참았던 웃음이 터지고 말았다.
그의 차를 타고 오는 내내 웃음을 그칠 수 없었던 그녀는 결국 그의 경고에 웃는 걸 그만 둘 수밖에 없었다.
“당신이 그렇게 계속 웃어 대면 김 이사랑 당신이 사귀는 걸로 생각해야겠군.”
그의 단호한 한마디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효력을 발휘했다. 그녀는 언제 웃었냐는 듯 새침한 모습으로 창밖만 응시하고 있었다. 아마도 자신의 생각을 그에게 전달하기 전 숨을 고르듯 말을 고르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나랑 김 이사님은 그런 애매모호한 사람이 아니죠. 그 사람은 좋아 하는 사람이 따로 있으니까요.”
“그 말은 당신도 좋아 했다는 말인가?”
“이봐요! 내말을 어떻게 듣는 거예요. 아무튼 난 김 이사님이랑 관계없어요. 아마 평생 없을 거예요. 일적으로만 빼고”
그녀의 단호하리만치 격앙된 말투에 그는 안심하는 자신을 느꼈다. 그녀가 사귀는 사람이 있든 없는 지금의 그로써는 별로 중요한 게 아니었지만, 왠지 어제의 김 이사라는 사람의 태도는 그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들었다.
그는 한번도 여자를 진심으로 대하지 않았다. 아니 일부러 여자들을 멀리하고 살았다. 고등학교 때부터 대학시절까지 그를 눈여겨보는 사람들은 꾀 많았다. 그가 가진 모든 걸 좋아하는 여자들이 처음엔 호기심에서 그를 찾아오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를 혐오스럽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걸 알고는 그다지 사람들을 신뢰하고 싶지 않았다.
그녀는 달라 보였다. 그녀의 글이 말해 주듯 그녀의 손길이 느끼게 해주듯 강 나윤이라는 사람으로부터 따뜻한 ‘배려’를 느낄 수 있었다. ‘만약에 그녀라면 날 동정해 주는 대신 날 사랑해 줄 수 있지 않을 까?’ 그는 그녀로 하여금 그에게 사라졌던 일말의 희망을 찾고 싶었다.
똑똑---
“네. 들어와요.”
“이사님 강 작가님 하고, 손님이 오셨는데요.”
“들여보내요.”
반듯한 군청색의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두 남자와 한 여자가 대립하듯 응수하고 앉았다. 그녀는 지금 조단의 옆에 마치 커플처럼 앉아 있었고, 그 모습을 심기 불편한 노친 네처럼 김 이사가 지켜보고만 있었다. 드디어 더 이상 할말이 없다는 듯한 김 이사의 표정이 그들이 함께 일을 해도 된다는 무언의 암시로 전해졌다.
“미스 홍 시원한 얼음물 좀.”
“미 투”
조단도 말없이 침묵 속에 있던 것에 풀려난 안도감에 저절로 얼음물을 주문했다. 석재는 어떨 결에 그의 말을 들어 주며, 두잔의 얼음물을 홍 비서에게 주문했다.
“고마워요.”
차가운 물 잔을 받아 쥔 조단이 홍 비서에게 감사의 뜻으로 윙크를 날렸다. 그 모습에 홍 비서는 넋이 나간 표정으로 뒷걸음을 치며, 밖으로 나갔다.
“그렇담 언제부터 일을 시작할 수 있는 겁니까.”
김 석재는 여자를 여럿 울리고도 남을 전도유망한 외모의 그가 자신들의 영화에 출연한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어젯밤 은지를 통해서 들은 바로는 그는 이런 일 따위 하지 않아도 충분히 자력으로 얼마든지 큰일을 해낼 사람임을 알았고, 게다가 오늘 아침 도착한 메일을 확인 하는 순간 그 의혹은 더 커져만 갔다. 어쨌든 잘나가는 보물하나 제대로 건진 거니까 그에게는 그렇게 나쁠 건 없다고 오로지 그 생각만 하기로 했다.
“원하시면 지금 당장이라도”
시원한 물을 한 모금 마시며, 그가 석재의 말에 느긋하게 대답했다.
“그럼 우리야 좋지만, 우선 현장분위기 좀 익히는 게 좋을 듯 싶은데........ 강 작가 생각은 어때요?”
“네? 하하 뭐 저야. 회사에서 시키는 대로 해야죠.”
나윤은 갑작스런 질문의 요지가 자신의 위주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게 기분이 나빴다. 그냥 자기 내들끼리 말하고 끝내면 될 것을 꼭 그녀를 끌어들여야 속이 시원한 모양이었다.
“그럼 오늘부터 조단씨 묵고 있는 호텔 정리하고, 새로운 숙소부터 알아 봐요.”
“네? 그렇게 빨리요.”
“왜? 벅찬가?”
석재는 일부러 그녀에게 화를 내고 있었다. 조단의 조건에 멋대로 오케이 하고 말았다고 저렇게 노골적으로 그녀를 몰아세우고, 있는 것이다. 그가 그녀에게 화를 내는 방법의 하나가 바로 그녀를 숨도 못 쉴 정도로 몰아치는 것이다. 하지만 그녀 또한 절대로지지 않으려 그에 맞서서 끝까지 그의 요구를 뭐든 미련스럽게 다 들어 주었다. 미련스럽다는 말은 룸메이트인 은지의 입을 통해서 듣게 되었다. 하지만 그녀 또한 그 말에 수긍하고 말았다. 정말 누군가에게 지기 싫어서 지독히도 미련스럽게 대적하는 게 그녀의 승부근성이었다.
결국 모든 일이 다 마무리가 되고나면 그녀는 스스로 자폭하듯 며칠을 쓰러져 앓아누워 버리곤 했다. 아마 지금 조단의 일이 끝날 즈음 그녀는 또 다시 후 통에 아파할 것이다.
하지만 왠지 하고 싶었다. 그것도 지독한 고집을 앞세워 지독히도 잘.
“전혀. 하지만 상대배역과 그밖에 배역들을 정해야 하잖아요.”
“강 작가 이 바닥에서 몇 년인데 아직도 그렇게 해매도 있는 거야. 주인공만 당신이 정한 거고 나머지는 우리가 할 일이라고, 설마 나머지 부분도 모두 당신이 정할 건 아니겠지. 굳이 그러겠다면 난 이사자리를 당신에게 넘겨야 할 것 같군. 그리고 예전에 했던 것처럼 조단씨를 불편하지 않게 잘 모시라고, 그래야 우리에게 희망이 보이지 않겠어. 그러는 게 당신이 저지른 실수를 만회하는 거겠지.”
석재는 오랜만에 그녀를 쪼아대고 싶었다. 그래야 그녀가 자신에게 얼마나 큰 실수를 했는지 알 수 있을 테니까. 하지만 눈앞의 남자를 보면 볼수록 그녀의 탁월한 캐스팅 능력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는 그였다. ‘제길 내가 당신의 그 능력만큼은 인정하지’
“그렇게 까지 말하실 건 없잖아요.”
나윤은 참았던 그녀의 화를 슬슬 건드리는 김 이사의 태도가 못마땅했다. 거기다 은근슬쩍 한석의 일까지 그녀에게 화풀이를 해대다니 정말이지 김 이사의 태도는 못마땅했다.
J&I의 사무실을 박차고 나오면서 그녀는 이를 갈았다. 기필코 이 남자를 볼모로 꼭 저 빌어먹을 김 이사에게 벗어나겠다고, 하지만 그녀의 그런 다짐은 여지없이 무너져버릴게 틀림없다. 왜냐면 자신의 아킬레스건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그가 그녀의 유일한 방패막이였기 때문이었다. 그가 스스로 그녀를 밀어내지 못하는 한 그녀가 스스로 그를 떠날 수 없다는 건 하늘이 정해 놓은 이치와도 같았다.
“뭐 한 가지 물어 봐도 돼?”
그와 함께 방송국으로 향하던 나윤은 J&I의 김 이사의 방을 나온 후로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그가 침묵을 지켜준 인유가 뭐든 간에 그녀로써는 상당히 고마울 따름이었다. 그의 궁금해 하는 표정이 그녀의 머릿속에 멋지게 자리 잡았다.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내가 처음이 아닌가?”
“네?”
나윤은 갑작스런 그의 물음에 어떠한 대답도 할 수 없었다. 무엇이 처음이라는 건지? 잘 이해하지 못한 그녀의 표정을 바라보며, 그가 낮게 웅얼거렸다.
“매니저 일 내가 처음이 아니냐고”
그는 무척 기분 나쁘다는 표정을 지어 보이며, 눈앞의 신호등을 뚫어져라 주시하고 있었다. 그녀는 생각했다. 그게 뭐 어떻다고 저 남자가 과연 화를 낼만한 일인가? 하지만 그녀의 생각을 산산조각 내듯 갑자기 바뀐 신호와 함께 그가 그녀에게 갑자기 화를 냈다.
“난 또 당신이 내가 처음이라 무척 어둔할 줄 알았지. 왠지 당신이 처음으로 매니저 했던 사람이 부럽군.”
조단의 말을 다 듣고 난 후의 기분. 이런 기분을 뭐라고 해야 할까? ‘정말 어이없다’라고 해야 하는 게 맞는데........ 전혀 그런 기분이 들지 않았다. 마치 애인에게 질투를 유발시키는 말을 듣고 은근히 기분 좋아 진다고해야 하나. 아무튼 조단이란 사람은 눈빛부터가 다르더니 그녀의 특이한 사고방식을 좀더 특별하게 느끼게 해주는 것 같았다.
그녀가 아무런 말없이 그저 싱긋거리며, 그를 바라보자 그는 은근히 속이 탔다. 저 여자를 좋아하는 것도 아닌데 괜한 심술을 부리고 싶어지는 이유를 알지 못했다.
그들이 타고 온 차가 어느새 방송국 정문 앞에 도착했다. 그녀는 자신의 가방에서 작고 길쭉한 명함 첩을 꺼내 들어 플레어스커트를 입은 자신의 예쁜 무릎위에 보기 좋게 펼쳐놓았다. 그리고 그중 빛바랜 명함들을 몇 장 꺼내 들었다.
“자 시작해 볼까요?”
역시 그의 예상대로 그녀는 너무나 고난위의 프로선수였다. 이방 저 방 이리저리 그를 끌고 다니면서 그 작은 체구에서 느껴지는 지칠 줄 모르는 에너지에 놀랄 뿐이었다.
“어. 강 작가 오랜만이야?”
“안녕하세요. 박 PD님 저 이번에 시나리오 작업했어요.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우와~ 이번엔 어떤 대작을 만들었는데? 이거 은근히 기대 되는 대”
“하하 기대는요. 그냥 관심정도만 가져주셔도 저한테는 영광이죠.”
“참, 그런데 한석씨하고는 끝난 건가? 한석씨 매니저가 바뀌어서 말이야.”
“네. 그렇게 됐어요.”
나윤은 뜬소문장이 박 PD의 말을 끝까지 들어 주는 것에 한계를 느꼈다. 게다가 지루한 표정으로 일관하던 그녀 뒤의 남자가 관심 있는 표정으로 그녀를 찌를 듯이 쏘아 보는 느낌이 무척 싫었다.
“어? 이분은 누구 셔? 혹시 애인?”
역시나 말 만들어 내기 좋아라하는 박 PD의 눈에 그가 예사롭지 않게 포착된 것 같았다. 아마도 그를 만난 건 가끔은 행운도 되는 모양이었다. 며칠 지나지 않아 조단에 관한 관심의 기사거리가 여기저기 쏟아져 나올게 불 보듯 훤해 보였다.
“아이~ 박 PD님도 제가 어디 그럴 재주나 있나요. 조단씨 인사하세요. 여긴 예능 부에 계시는 마당발 박 PD님이세요. 박 PD님 여긴 앞으로 제 시나리오의 주인공 역을 맡아 주실 조단씨랍니다. 아직 한국씩 예명을 짓지 못해서”
라고 그녀는 말하려 했다. 하지만 그녀보다 뭐든 한발 앞서야 직성이 풀리는 그가 박 PD의 손을 덥석 잡고는 자신의 한국 이름을 시원스레 말했다.
“임 태완 이라고 합니다.”
“어? 이분 한국말 하실 줄 아네?”
박 PD의 말에 그녀는 괜스레 조단을 바라보게 되었다. 하지만 그는 그녀의 우려와는 상관없이 전혀 아무렇지도 않게 박 PD를 응수하고 있었다.
“물론이죠. 전 한국 사람인걸요.”
그것도 너무나 당당하게 말하는 그에 비해 박 PD는 너무도 초라하게 헛웃음을 짓고 있었다. 그녀가 생각해도 너무나 물건인 조단의 모습에 저절로 미소가 그려졌다.
“하하 그렇죠. 한국 사람이니까. 한국말 하는 건 당연해. 야! 강나윤씨 대단해 그 실력 아직도 대단하군 그래. 당신 작품이 어떤 건지 모르지만, 내가 장담하지 당신 대박날 것 같아! 아니 이미 대박 났어!”
“어머? 진짜요. 감사해요. 박 PD님 그럼 저희 PR좀 많이 해주세요. 전 박 PD님 만 믿을 게요.”
그녀가 계획한 곳은 열 곳 정도였으나, 중간에 박 PD를 만난 걸 행운으로 여기며, 조단과 함께 다른 곳으로 이동을 했다. 이동하는 차안에서 박PD와의 대화내용을 떠올리던 그녀는 조심스럽게 웃으며, 운전에 열중하는 그를 바라보았다.
“뭐지 그 표정?”
“그냥요. 당신이 대단해 보여서요.”
“하하 그래서 당신이 날 선택한거 아니었나?”
“하하하 맞아요. 누가 아니래요. 하지만 당신의 재치 있는 말솜씨에 으아~ 나까지 흥분하고 있었다고요.”
그는 여자 입에서 흥분이라는 말이 나오자 저도 모르게 인상을 구겼다. 하지만 그녀의 표정은 여전히 그를 향해 황홀한 듯 미소를 짓고 있었다. ‘저런 여자는 자꾸만 나를 피곤하게 하지. 지금도 나도 모르게 그녀를 향해 관심을 두려하는 것처럼 말이야. 당분간 귀찮아 질 것 같군.’
“헤이~ 조단씨. 아니 임 태완씨 그 이름 당신 예명인가요?”
“아니. 왜 그렇게 생각하지?”
그가 불쾌한 듯 그녀의 질문에 반문해 왔다.
“그렇담 다행이네요. 앞으로 임 태완이란 이름을 쓰기로 하죠. 그래도 괜찮죠?”
그는 그녀의 질문에 잠시나마 고민했다. 한번도 자신을 임 태완이라고 어느 누군가에게 소개한 적이 없는 그로써는 무척 당황스러운 질문이었다. 그리고 스스로 잊고 지내던 25년의 세월을 그가 혹은 그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감당해 낼 수 있는지 그것도 그의 고민에 일부가 되었다.
“아........ 안돼는 군요.”
그녀는 태완의 표정만으로도 이미 짐작을 한 모양이었다. 그가 자신의 이름을 함부로 말하길 꺼려한다는 사실을....... 그녀의 말 덕분이었을까. 그는 수고로운 고민을 털어버리고, 그녀의 실망하는 표정에 보상이라도 하듯 조용히 자신의 입술을 그녀의 입술에 지그시 누르며, YES라고 대답해 주었다.
그의 대답을 들었다. 그것도 나윤의 입술에 대고 정확하게 말하는 그의 허스키한 음성이 그녀의 입안을 가득매우며, 복사되듯 시원스레 옮겨져 왔다.
캐스팅 걸 - (4) 사랑해라는 말보다 감미로운 말은 YES.
#4. 사랑해라는 말보다 감미로운 말은 YES.
그는 묻지 않을 수 없었다. 한번도 자신의 고통 따위는 알 것 같지도 않은 그녀가 어떻게 이처럼 사실적으로 그의 모습을 그려낼 수 있었던 건지. 도저히 그냥 묵고할 수 없는 현실이었다. 그런데 그녀의 눈을 보는 순간 자신이 울고 싶을 정도로 심각한 외로움에 빠져든걸 알 수 있었다.
그의 눈은 촉촉이 젖어 있었다. 그녀에게 다그치듯 물어오는 그의 눈이 그녀가 알지 못하는 심각한 두려움에 젖어 들고 있었다. ‘뭐지......... 이런 기분 아마도 이 사람 나처럼 외로웠던 모양이네’ 나윤은 남자의 얼굴을 가만히 쓰다듬어 주며, 마치 동생을 달래주듯 자신의 따뜻한 마음으로 위로해 주고 싶었다. 그는 그런 그녀의 마음을 받듯 그녀의 손길을 가만히 느끼고 있었다.
“내가 예전에 알던 어떤 분에 대해서 쓴 거예요.”
10여분동안 아무런 말도 없이 서로의 위로를 받아들인 그들이 무거운 침묵을 깨기 위해 몸을 움직였다. 그리고 선선히 그녀의 위로를 받아준 그를 위해 나윤이 조용히 말문을 열었다. 그의 눈이 잠시잠깐 흔들리는 것처럼 보였으나, 그는 이네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고요한 평정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 모습은 그녀가 시나리오에 부각시킨 남자주인공의 모습과 너무도 닮아 있었다.
“운명과도 같아요.”
“운명? 무슨 말이지”
“그냥 말 그대로 당신과 시나리오가 주인을 만난 운명.”
나윤은 사실은 자신과 그가 만난 게 운명이라고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 말을 하는 순간 그가 웃을게 불 보듯 뻔하기 때문에 유치한 자신의 생각을 바꿔 말했을 뿐이다.
“틀렸어. 말은 바로 해. 나랑 이 종이 나부랭이가 만난 게 운명이 아니라 당신과 내가 만난 게 운명이겠지.”
헉! 들키고 말았다. 하지만 그렇게 면박 주듯 말을 하는 그를 보니 심사가 뒤틀려 그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건 당신 생각이고요. 참, 영화사 가볼래요? 김 이사님도 당신을 기다릴 테니까.”
“정말?”
그녀는 웃옷을 챙겨 입던 동작을 늦추며, 비꼬듯 말을 하는 그를 돌아보았다.
“뭐가요?”
“아니 내 생각엔 김 이사인가 하는 사람은 날 별로 안 좋게 보는 것 같던데”
“그래서요. 그게 이 영화랑 무슨 상관이죠. 어쨌든 당신은 내가 고른 배운데 그거면 되는 거잖아요. 김 이사님은 어쨌든 허락할 수밖에 없다고요.”
나윤은 그에게 밖으로 나가자는 모션을 취한 후 먼저 현관문으로 향했다. 그런 그녀는 황급히 쫓아온 그가 그녀를 거칠게 돌려세웠다. 그의 거친 모습 또한 그녀가 시나리오에 각인 시켜놓았기에 왠지 그녀자신이 연극을 하는 것처럼 착각에 빠져들었다.
“혹시 김 이사랑 사귀는 건가?”
적어도 그가 엉뚱한 질문을 하기 전까지 나윤은 착각 속에서 잠시나마 행복한 기분을 만끽할 수 있었다. 하지만 여지없이 그녀의 착각을 깨는 그의 엉뚱한 물음에 참았던 웃음이 터지고 말았다.
그의 차를 타고 오는 내내 웃음을 그칠 수 없었던 그녀는 결국 그의 경고에 웃는 걸 그만 둘 수밖에 없었다.
“당신이 그렇게 계속 웃어 대면 김 이사랑 당신이 사귀는 걸로 생각해야겠군.”
그의 단호한 한마디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효력을 발휘했다. 그녀는 언제 웃었냐는 듯 새침한 모습으로 창밖만 응시하고 있었다. 아마도 자신의 생각을 그에게 전달하기 전 숨을 고르듯 말을 고르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나랑 김 이사님은 그런 애매모호한 사람이 아니죠. 그 사람은 좋아 하는 사람이 따로 있으니까요.”
“그 말은 당신도 좋아 했다는 말인가?”
“이봐요! 내말을 어떻게 듣는 거예요. 아무튼 난 김 이사님이랑 관계없어요. 아마 평생 없을 거예요. 일적으로만 빼고”
그녀의 단호하리만치 격앙된 말투에 그는 안심하는 자신을 느꼈다. 그녀가 사귀는 사람이 있든 없는 지금의 그로써는 별로 중요한 게 아니었지만, 왠지 어제의 김 이사라는 사람의 태도는 그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들었다.
그는 한번도 여자를 진심으로 대하지 않았다. 아니 일부러 여자들을 멀리하고 살았다. 고등학교 때부터 대학시절까지 그를 눈여겨보는 사람들은 꾀 많았다. 그가 가진 모든 걸 좋아하는 여자들이 처음엔 호기심에서 그를 찾아오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를 혐오스럽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걸 알고는 그다지 사람들을 신뢰하고 싶지 않았다.
그녀는 달라 보였다. 그녀의 글이 말해 주듯 그녀의 손길이 느끼게 해주듯 강 나윤이라는 사람으로부터 따뜻한 ‘배려’를 느낄 수 있었다. ‘만약에 그녀라면 날 동정해 주는 대신 날 사랑해 줄 수 있지 않을 까?’ 그는 그녀로 하여금 그에게 사라졌던 일말의 희망을 찾고 싶었다.
똑똑---
“네. 들어와요.”
“이사님 강 작가님 하고, 손님이 오셨는데요.”
“들여보내요.”
반듯한 군청색의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두 남자와 한 여자가 대립하듯 응수하고 앉았다. 그녀는 지금 조단의 옆에 마치 커플처럼 앉아 있었고, 그 모습을 심기 불편한 노친 네처럼 김 이사가 지켜보고만 있었다. 드디어 더 이상 할말이 없다는 듯한 김 이사의 표정이 그들이 함께 일을 해도 된다는 무언의 암시로 전해졌다.
“미스 홍 시원한 얼음물 좀.”
“미 투”
조단도 말없이 침묵 속에 있던 것에 풀려난 안도감에 저절로 얼음물을 주문했다. 석재는 어떨 결에 그의 말을 들어 주며, 두잔의 얼음물을 홍 비서에게 주문했다.
“고마워요.”
차가운 물 잔을 받아 쥔 조단이 홍 비서에게 감사의 뜻으로 윙크를 날렸다. 그 모습에 홍 비서는 넋이 나간 표정으로 뒷걸음을 치며, 밖으로 나갔다.
“그렇담 언제부터 일을 시작할 수 있는 겁니까.”
김 석재는 여자를 여럿 울리고도 남을 전도유망한 외모의 그가 자신들의 영화에 출연한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어젯밤 은지를 통해서 들은 바로는 그는 이런 일 따위 하지 않아도 충분히 자력으로 얼마든지 큰일을 해낼 사람임을 알았고, 게다가 오늘 아침 도착한 메일을 확인 하는 순간 그 의혹은 더 커져만 갔다. 어쨌든 잘나가는 보물하나 제대로 건진 거니까 그에게는 그렇게 나쁠 건 없다고 오로지 그 생각만 하기로 했다.
“원하시면 지금 당장이라도”
시원한 물을 한 모금 마시며, 그가 석재의 말에 느긋하게 대답했다.
“그럼 우리야 좋지만, 우선 현장분위기 좀 익히는 게 좋을 듯 싶은데........ 강 작가 생각은 어때요?”
“네? 하하 뭐 저야. 회사에서 시키는 대로 해야죠.”
나윤은 갑작스런 질문의 요지가 자신의 위주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게 기분이 나빴다. 그냥 자기 내들끼리 말하고 끝내면 될 것을 꼭 그녀를 끌어들여야 속이 시원한 모양이었다.
“그럼 오늘부터 조단씨 묵고 있는 호텔 정리하고, 새로운 숙소부터 알아 봐요.”
“네? 그렇게 빨리요.”
“왜? 벅찬가?”
석재는 일부러 그녀에게 화를 내고 있었다. 조단의 조건에 멋대로 오케이 하고 말았다고 저렇게 노골적으로 그녀를 몰아세우고, 있는 것이다. 그가 그녀에게 화를 내는 방법의 하나가 바로 그녀를 숨도 못 쉴 정도로 몰아치는 것이다. 하지만 그녀 또한 절대로지지 않으려 그에 맞서서 끝까지 그의 요구를 뭐든 미련스럽게 다 들어 주었다. 미련스럽다는 말은 룸메이트인 은지의 입을 통해서 듣게 되었다. 하지만 그녀 또한 그 말에 수긍하고 말았다. 정말 누군가에게 지기 싫어서 지독히도 미련스럽게 대적하는 게 그녀의 승부근성이었다.
결국 모든 일이 다 마무리가 되고나면 그녀는 스스로 자폭하듯 며칠을 쓰러져 앓아누워 버리곤 했다. 아마 지금 조단의 일이 끝날 즈음 그녀는 또 다시 후 통에 아파할 것이다.
하지만 왠지 하고 싶었다. 그것도 지독한 고집을 앞세워 지독히도 잘.
“전혀. 하지만 상대배역과 그밖에 배역들을 정해야 하잖아요.”
“강 작가 이 바닥에서 몇 년인데 아직도 그렇게 해매도 있는 거야. 주인공만 당신이 정한 거고 나머지는 우리가 할 일이라고, 설마 나머지 부분도 모두 당신이 정할 건 아니겠지. 굳이 그러겠다면 난 이사자리를 당신에게 넘겨야 할 것 같군. 그리고 예전에 했던 것처럼 조단씨를 불편하지 않게 잘 모시라고, 그래야 우리에게 희망이 보이지 않겠어. 그러는 게 당신이 저지른 실수를 만회하는 거겠지.”
석재는 오랜만에 그녀를 쪼아대고 싶었다. 그래야 그녀가 자신에게 얼마나 큰 실수를 했는지 알 수 있을 테니까. 하지만 눈앞의 남자를 보면 볼수록 그녀의 탁월한 캐스팅 능력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는 그였다. ‘제길 내가 당신의 그 능력만큼은 인정하지’
“그렇게 까지 말하실 건 없잖아요.”
나윤은 참았던 그녀의 화를 슬슬 건드리는 김 이사의 태도가 못마땅했다. 거기다 은근슬쩍 한석의 일까지 그녀에게 화풀이를 해대다니 정말이지 김 이사의 태도는 못마땅했다.
J&I의 사무실을 박차고 나오면서 그녀는 이를 갈았다. 기필코 이 남자를 볼모로 꼭 저 빌어먹을 김 이사에게 벗어나겠다고, 하지만 그녀의 그런 다짐은 여지없이 무너져버릴게 틀림없다. 왜냐면 자신의 아킬레스건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그가 그녀의 유일한 방패막이였기 때문이었다. 그가 스스로 그녀를 밀어내지 못하는 한 그녀가 스스로 그를 떠날 수 없다는 건 하늘이 정해 놓은 이치와도 같았다.
“뭐 한 가지 물어 봐도 돼?”
그와 함께 방송국으로 향하던 나윤은 J&I의 김 이사의 방을 나온 후로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그가 침묵을 지켜준 인유가 뭐든 간에 그녀로써는 상당히 고마울 따름이었다. 그의 궁금해 하는 표정이 그녀의 머릿속에 멋지게 자리 잡았다.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내가 처음이 아닌가?”
“네?”
나윤은 갑작스런 그의 물음에 어떠한 대답도 할 수 없었다. 무엇이 처음이라는 건지? 잘 이해하지 못한 그녀의 표정을 바라보며, 그가 낮게 웅얼거렸다.
“매니저 일 내가 처음이 아니냐고”
그는 무척 기분 나쁘다는 표정을 지어 보이며, 눈앞의 신호등을 뚫어져라 주시하고 있었다. 그녀는 생각했다. 그게 뭐 어떻다고 저 남자가 과연 화를 낼만한 일인가? 하지만 그녀의 생각을 산산조각 내듯 갑자기 바뀐 신호와 함께 그가 그녀에게 갑자기 화를 냈다.
“난 또 당신이 내가 처음이라 무척 어둔할 줄 알았지. 왠지 당신이 처음으로 매니저 했던 사람이 부럽군.”
조단의 말을 다 듣고 난 후의 기분. 이런 기분을 뭐라고 해야 할까? ‘정말 어이없다’라고 해야 하는 게 맞는데........ 전혀 그런 기분이 들지 않았다. 마치 애인에게 질투를 유발시키는 말을 듣고 은근히 기분 좋아 진다고해야 하나. 아무튼 조단이란 사람은 눈빛부터가 다르더니 그녀의 특이한 사고방식을 좀더 특별하게 느끼게 해주는 것 같았다.
그녀가 아무런 말없이 그저 싱긋거리며, 그를 바라보자 그는 은근히 속이 탔다. 저 여자를 좋아하는 것도 아닌데 괜한 심술을 부리고 싶어지는 이유를 알지 못했다.
그들이 타고 온 차가 어느새 방송국 정문 앞에 도착했다. 그녀는 자신의 가방에서 작고 길쭉한 명함 첩을 꺼내 들어 플레어스커트를 입은 자신의 예쁜 무릎위에 보기 좋게 펼쳐놓았다. 그리고 그중 빛바랜 명함들을 몇 장 꺼내 들었다.
“자 시작해 볼까요?”
역시 그의 예상대로 그녀는 너무나 고난위의 프로선수였다. 이방 저 방 이리저리 그를 끌고 다니면서 그 작은 체구에서 느껴지는 지칠 줄 모르는 에너지에 놀랄 뿐이었다.
“어. 강 작가 오랜만이야?”
“안녕하세요. 박 PD님 저 이번에 시나리오 작업했어요.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우와~ 이번엔 어떤 대작을 만들었는데? 이거 은근히 기대 되는 대”
“하하 기대는요. 그냥 관심정도만 가져주셔도 저한테는 영광이죠.”
“참, 그런데 한석씨하고는 끝난 건가? 한석씨 매니저가 바뀌어서 말이야.”
“네. 그렇게 됐어요.”
나윤은 뜬소문장이 박 PD의 말을 끝까지 들어 주는 것에 한계를 느꼈다. 게다가 지루한 표정으로 일관하던 그녀 뒤의 남자가 관심 있는 표정으로 그녀를 찌를 듯이 쏘아 보는 느낌이 무척 싫었다.
“어? 이분은 누구 셔? 혹시 애인?”
역시나 말 만들어 내기 좋아라하는 박 PD의 눈에 그가 예사롭지 않게 포착된 것 같았다. 아마도 그를 만난 건 가끔은 행운도 되는 모양이었다. 며칠 지나지 않아 조단에 관한 관심의 기사거리가 여기저기 쏟아져 나올게 불 보듯 훤해 보였다.
“아이~ 박 PD님도 제가 어디 그럴 재주나 있나요. 조단씨 인사하세요. 여긴 예능 부에 계시는 마당발 박 PD님이세요. 박 PD님 여긴 앞으로 제 시나리오의 주인공 역을 맡아 주실 조단씨랍니다. 아직 한국씩 예명을 짓지 못해서”
라고 그녀는 말하려 했다. 하지만 그녀보다 뭐든 한발 앞서야 직성이 풀리는 그가 박 PD의 손을 덥석 잡고는 자신의 한국 이름을 시원스레 말했다.
“임 태완 이라고 합니다.”
“어? 이분 한국말 하실 줄 아네?”
박 PD의 말에 그녀는 괜스레 조단을 바라보게 되었다. 하지만 그는 그녀의 우려와는 상관없이 전혀 아무렇지도 않게 박 PD를 응수하고 있었다.
“물론이죠. 전 한국 사람인걸요.”
그것도 너무나 당당하게 말하는 그에 비해 박 PD는 너무도 초라하게 헛웃음을 짓고 있었다. 그녀가 생각해도 너무나 물건인 조단의 모습에 저절로 미소가 그려졌다.
“하하 그렇죠. 한국 사람이니까. 한국말 하는 건 당연해. 야! 강나윤씨 대단해 그 실력 아직도 대단하군 그래. 당신 작품이 어떤 건지 모르지만, 내가 장담하지 당신 대박날 것 같아! 아니 이미 대박 났어!”
“어머? 진짜요. 감사해요. 박 PD님 그럼 저희 PR좀 많이 해주세요. 전 박 PD님 만 믿을 게요.”
그녀가 계획한 곳은 열 곳 정도였으나, 중간에 박 PD를 만난 걸 행운으로 여기며, 조단과 함께 다른 곳으로 이동을 했다. 이동하는 차안에서 박PD와의 대화내용을 떠올리던 그녀는 조심스럽게 웃으며, 운전에 열중하는 그를 바라보았다.
“뭐지 그 표정?”
“그냥요. 당신이 대단해 보여서요.”
“하하 그래서 당신이 날 선택한거 아니었나?”
“하하하 맞아요. 누가 아니래요. 하지만 당신의 재치 있는 말솜씨에 으아~ 나까지 흥분하고 있었다고요.”
그는 여자 입에서 흥분이라는 말이 나오자 저도 모르게 인상을 구겼다. 하지만 그녀의 표정은 여전히 그를 향해 황홀한 듯 미소를 짓고 있었다. ‘저런 여자는 자꾸만 나를 피곤하게 하지. 지금도 나도 모르게 그녀를 향해 관심을 두려하는 것처럼 말이야. 당분간 귀찮아 질 것 같군.’
“헤이~ 조단씨. 아니 임 태완씨 그 이름 당신 예명인가요?”
“아니. 왜 그렇게 생각하지?”
그가 불쾌한 듯 그녀의 질문에 반문해 왔다.
“그렇담 다행이네요. 앞으로 임 태완이란 이름을 쓰기로 하죠. 그래도 괜찮죠?”
그는 그녀의 질문에 잠시나마 고민했다. 한번도 자신을 임 태완이라고 어느 누군가에게 소개한 적이 없는 그로써는 무척 당황스러운 질문이었다. 그리고 스스로 잊고 지내던 25년의 세월을 그가 혹은 그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감당해 낼 수 있는지 그것도 그의 고민에 일부가 되었다.
“아........ 안돼는 군요.”
그녀는 태완의 표정만으로도 이미 짐작을 한 모양이었다. 그가 자신의 이름을 함부로 말하길 꺼려한다는 사실을....... 그녀의 말 덕분이었을까. 그는 수고로운 고민을 털어버리고, 그녀의 실망하는 표정에 보상이라도 하듯 조용히 자신의 입술을 그녀의 입술에 지그시 누르며, YES라고 대답해 주었다.
그의 대답을 들었다. 그것도 나윤의 입술에 대고 정확하게 말하는 그의 허스키한 음성이 그녀의 입안을 가득매우며, 복사되듯 시원스레 옮겨져 왔다.
“당신이 원한다면 나도 좋아.”
그는 그녀의 놀란 모습을 재미있다는 듯 바라보며, 또 한번 되새기듯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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끼야홋~
벌써 캐스팅 걸 4부까지 올렸네요.
오늘의 분량은 여기까지 입니다.
왜냐.... 아직도 스토리 수정해야 할 곳이 많아서요.
보시다 오타, 내용 꼬이는 곳은 알아서들 피해가셔요 ^^**
오늘 하루도 행복으로 마감하시구요.
내일도 가열차게 올리도록 수정열심휘~ 하겠슴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