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펌]한국 기독교 보수성의 원인

사상의 틀에 갇히신 분들2006.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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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기독교는 보수적입니다. 한국 기독교의 많은 문제점이 이 보수성, 특히 캘비니즘에 유래한 보수성-패권주의로 변한 유일적 절대주의-에 기인합니다. 타종교에 배타적인 이유는이 보수성, 캘비니즘에서 유래한 예정론이나, 청교도주의의 잘못된 도덕주의에서 유래한 것일 것입니다.

하니리포터 게시판에 글을 올리신 김경열 목사님은 이러한 것을 기독교의 패권주의로 기독교의 유일신, 유일주의가 잘못된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필자는 더 근원적인 문제는 한국의 기독교의 보수성에 있다고 봅니다. 보수성에도 장점과 단점이 있고 보수성이 단점을 가지고 있더라고 필자는 그 책임을 한국의 기독교 자체에만 전적으로 책임을 물을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 이유는 문화의 법칙에 따르기 때문입니다.

'문화는 이식된 곳에서 더 보수적이 된다'는 것이 문화전파의 사회적 법칙입니다. 무슨 말이냐 하면, 문화가 전파 될 때에는 전파 된 곳에서 더 원칙적이고 교조적(dogmatic)으로 된다는 뜻이며, 필자는 이 법칙을 이식된 곳에서 다른 문화와 어울리면서 자기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필연적으로 다른 문화와 구별되기 위해 보수적이 되는 것이라고 이해합니다.

종교도 자기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기존의 종교와 다른 것을 이식된 곳에서 더 발상지보다 철저히 계율이나 원칙을 지키려고 합니다. 그렇지 않을 경우 기존의 문화에 동화되어 사라지게 되므로 문화의 법칙이나 종교적 신념은 이식된 곳에서 필연적으로 보수화 할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여기에 대한 예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오늘날 중세영어의 모습이 가장 많은 곳이 어디일까요? 영국이 아니라 바로 미국 동부라고 합니다. 철자법이나 문법도 정통적인 것이 영국보다 영어문화가 이식된 미국 동부 영어에 더 강하게 남아 있고 마찬가지로 중세-근세 불어의 모습이 가장 많이 남아 있는 곳도 불어문화가 이식된 캐나다의 퀘벡 이라고 합니다.

송대 주자학, 성리학이 가장 교조적인 힘을 발휘한 나라도 바로 성리학이 이식된 조선이었습니다. 다른 유학은 사문난적(斯文亂賊), 이단으로 규정하고 용납하지 않은 철저함은 중국에서는 찾아 볼 수 없을 것입니다.

기독교의 예를 들면 유럽보다 기독교가 이식된 미국이 더 보수적입니다. 인문주의와 종교개혁운동이 일어난 발상지인 네델란드나 스위스가 인권과 동성애, 종교에서 보듯이 가장 진보적인 국가임에 비해 미국은 종교적으로 보수적이며, 한국의 기독교가 보수적인 것은 보수적인 미국의 기독교가 이식됨으로 더욱 더 보수적이 될 수 밖에 없는 문화의 법칙을 따른 것일 것입니다.

2번이나 이식된 보수성이 한국 기독교의 보수성의 근원일 것입니다. 한국기독교의 보수성의 원죄는 바로 거듭 이식된, 기독교적 용어로 말하면 두 번이나 중생(重生, 거듭나다, 회개하여 기독교인이 되어 새 생명을 얻고 구원받다라는 뜻.) 한 것일 것입니다.

그 다음 생각 해보아야 할 것이 불교와 차이 입니다. 불교가 전파된 나라는 대부분 아무런 무리 없이 평화롭게 전파된 데 비해 기독교와 유태교, 이슬람교 등, 소위 말하는 '경전의 백성들'의 종교' (이슬람에서 유태교에서 유래된 경전을 가진 종교인 이슬람, 유태교, 그리스도교를 지칭하는 말)는 대개 전쟁을 통해, 박해와 순교를 거치면서 전파됩니다.

이러한 이유는 기독교의 유일신 사상이 배타적, 더구나 전투성을 띠고 있음에 기인 할 것입니다. 성경에는 불신자나 다른 종교를 믿는 사람을 돌로 쳐죽일 죄로 규정할 만큼 전투적이며, 성경, 구약은 실로 고대 유태인의 전쟁사라고 할 수도 있을 만큼 전쟁의 기록으로 가득합니다. 이러한 이유는 살아남기 위해 타민족을 죽여야만 가능했던 유목민적 전통과 역사에서 그 기원이 있을 것 입니다.

나아가 기독교는 전파, 전도되는 곳에서는 살아남기 위해, 즉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철저히 기존 문화와 차별화 되는 전략을 택합니다. 즉 기존 전통과 문화, 종교를 부정하게 됩니다. 죽기 아니면 살기 식의 생존 방식입니다. 그 반면 불교는 살아남기 위해, 기독교와는 반대로 끊임없이 동화되는 전략을 선택합니다. 중국의 선불교와 대승 불교는 이미 인도의 불교, 특히 소승불교와는 달라지면서 그 핵심에서는 보수적이 되지만, 밖으로는 중국에 동화됩니다.

이것은 한국 불교에서 잘 볼 수 있습니다. 선불교가 중국보다 더 교조적으로 화두선을 지키지만, 핵심과 관련 없는 문화에서는 철저히 한국의 기층문화와 종교에 동화됩니다. 칠성각이나, 산신각은 인도에는 없는 한국과 중국의 기층종교가 불교의 동화를 가장 잘 보여주는 실례 일 것입니다. 이와 같이 불교는 살아남기 위해 즉, 자기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핵심을 제외하고는 모두 양보하여 타협하는 전략을, 기독교는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차별화 하는 전략을 택한 것입니다.

이는 동물이 살아남기 위해 보호색을 띠는 것이 불교의 모습이라면, 경계색을 띠는 것이 기독교의 모습으로 비유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더불어 교리에서도 기독교는 철저히 신에 대한 복종이 최고의 원칙입니다. 인간은 신 다음에 고려의 대상이 됩니다. 인간에 대한 사랑도 신에 대한 사랑의 표현일 뿐입니다. 예수조차, 황금률이라고 하는 절대 윤리에서 "신을 사랑하라" 고 한 다음 "네 이웃을 사랑하라"고 하였지만 불교는 인간에 대한 사랑, 자비가 절대적 원칙입니다. 어떠한 것도 중생에 대한 자비가 없으면 안된다고 할 만큼. 이러한 신과 인간에 대해 어떤 것이 절대적이냐에 따라서도 기독교와 불교는 확연하게 다르므로 결국 모든 종교는 추구하는 것이 같다는 말은 오히려 각개 종교의 본질을 모르는 선의의 오해 일것입니다.

한국 기독교가 위에서처럼 수많은 반기독교 사이트가 보여 주듯이 비기독교인들이 반감을 가지는 이유가 보수성과 전투성에 있다고 보기에 그 보수성과 전투성의 근본적인 원인을 위와 같은 이유에 있다는 전제로 다음 글에는 세부적으로 기독교가 반감을 사는 이유를 말해 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