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택 사건을 전반적으로 보면

구름2006.0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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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왜 현재의 평택사태가 문제가 되었는지 알기 위해서는 그 이면에

주한미군 재배치 문제와 동북아의 세력균형에 대한 논제가 그 발단을 제공했음을 알아야 한다.

 

 

이제까지 남한의 여러곳에 산만하게 퍼져있든 미군을 한 두곳으로 모아

어떤 사태에 대비하여 신속한 대응 태세를 갖추겠다는 미국측의 발상인 것이다.

 

그런데 왜 서울 이북은 안되고 서울 이남이여야 하는지부터 생각해 볼 일이다.

 

 

결국 주한미군 재배치가 완결되면 주한미군이 가까운 오산비행장과 평택항을 이용하여

동북아 지역의 분쟁에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게 되어

그 동안 그저 대부분 묵혀둔 주한미군을 한반도를 넘어서 유연하게 이용할 수 있게 된다.  

 

 

전시작전권이라고는 하지만 현재 주한미군이 우리의 사실상의 군사작전권을 가지고 있다.

군사작전권은 본래 자주국가의 상징으로 해당 국가의 주권과 같은 것이다.

 

하지만 주한미군이 평택으로 통합이전 되면

군사작전권을 우리에게 완전히 바로 넘긴다고 해도

남북으로 대치하고 있는 우리의 상황에 있어서 문제가 근본적으로 바뀌는 것도 아니다.

이 문제는 남한이 북한을 압도적으로 능가해도 남북화해와 통일 전까지는 큰 변화는 없을 것이다.

북한에 대한 압박 그 자체만으로도 계속 미국의 입김이 강하게 남한에 미친다는 것이다.

 

게다가 주한미군이 미국의 이익을 위해 태평양과 동북아 분쟁에 적극적으로 개입한다면

 

주한미군의 통합에 따른 기지 이전은 결과적으로 더욱 더 우리에게는 큰 이익은 없다.

 

 

 

게다가 기지이전과 함께 기지의 대규모 확장이 반드시 불가분의 것이 아니기에

우리 정부와 국방부의 미국에 대한 과잉 충성심을 개탄하지 않을 수 없게된다.

 

 

 

2.

 

여기에 주민들에 대한 보상문제는 또 다른 차원의 문제이다. 

댐건설 등 대규모 국가사업에서 언제나 발생하는 문제로 구지 대추리 만의 문제는 아니다.

 

그런 사업이 기존 주민들의 숙원사업도 아니였고 기존 주민들의 복지를 위한 것도 아니였다. 

 

갑자기 어떤 사람들이 나타나서는

이 지역를 돈(보상) 주고 수용할테니 모두 땅과 집을 내놓으라고 했을 뿐이다.

차후적으로 이에 불응하면 강제집행이 불가피하다고 으름장을 놓을뿐이다.

 

 

그리고 이주지역 선택이 자유라고 해도

삶의 터전을 갑자기 나타난 사람들에 의해 잃게되는 사람들에게

이주할 지역이 반드시 보상가보다 같거나 낮은 곳이여만 한다는 것도 문제인 것이다.

 

게다가 앞으로 평택이 엄청나게 발전할 것이 현실화 되고 있어 

제아무리 시가에 따라 3~4배의 보상이라 해도 그 가치는 사실 가늠할 수 없는 가치를 가진다.

그리고 실제 거래가격은 언제나 시가보다 많게는 10배 까지 높다는 것을 감안해야 한다. 

 

그리고 이번의 주한미군 기지 확장에 따른 문제의 경우는

주로 이주할 곳이 수 년전에 땅을 판다고 계속 공고가 났던 서산 간척지이다. 

평택의 그 드넓은 정들었던 옥토에 비하면 너무도 마음에 차지않을 것이다.

그리고 간척지란 게 소금끼로 인해 처음부터 농사에 맞는 좋은 터전은 아니다.

 

그리고 보상이라는 것은 

그 지역의 빈부의 차에 따라 그리고 그 지역에 있는 물적 가치에 따라 이루지는 것이다.

당연히 그 빈부차만큼 수십억을 받는 사람이 있겠지만 그렇지 못하는 주민들이 대다수가 될 것이다.

그리고 일부 지원금은 단지 지원금일뿐 차후에 갚아야할 빚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농군이라면 그 동안 계속 그 곳에서 살아온 땅에 대한 정情을 쉽게 버리지 못한다.

어떻게 그 동안 살아왔던 곳을 그렇게 돈 몇 푼에 떠날 수 있다는 말인가.

 

이주 할 곳에 가서 다시 토지를 구매하고 주택을 짓고 어쩜 농기구도 새로 구입해야 할텐데..

 

 

이런 상황에서 노무현 정권의 친미적 행각과 국방부의 설득(?)에

이기주의가 팽배한 우리사회 그러면서도 남에게는 엄청난 희생을 강요하는 이 나라의 습성상

그런 엉뚱한 사람들의 비난을 꺼러서라도 주민들은 별도리 없이 수용에 대부분 응했을지 모른다.

 

 

 

3.

 

그리고 해당 문제가 국가와 사회전반에 미치고, 또는 정의에 반하는 문제라면  

으레 여타 보상협상 등에서 제 3 자인 사람들이 끼어든다. 

그들은 협상에 정보를 제공하거나 혹은 기존의 가치를 더 중요시 생각하는 사람들이다.

그리하여 다른 한편으로는 협상과 대화에 있어 '무기대등의 법칙'과 같은 것이다.

 

이는 마치 내부의 비리를 안 사람이 즉, 내부고발자가 혼자서는 그 문제를 감당할 수가 없어

해당 사항의 고발이 건전한 사회와 비리가 있는 조직에 제대로 반영되어지기 위해 

또한 고발행위 이후 그 자신의 거취를 위해서도 외부의 사람들이 필요한 것과 유사한 것이다.

  

 

 

 

 

4.

 

이런 과정들만에서는 경찰의 역할은 전혀 없다.

 

 

다시말해, 경찰의 임무는

그런 대규모 국가 사업이나 이 번 같은 주한미군 재배치 및 기지 확장 문제,

그에 따른 미국과의 협의, 그리고 보상의 산정과 그 협상 등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 번 사건의 경우는 경찰청 부지 마련과 같은 해당 사업의 시행자도 아니기 때문이다. 

 

국가의 기관들은 각 각의 역할들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문제들에서 벌어지는 논쟁들은 경찰과 시위자들간의 행태로 집중되는 경향이 강하다.

 

시위자들의 주장을 깊이 생각할 수 없는 오직 사회질서만을 유지하는 경찰의 진압행위와

시위자들의 권리 및 이익 등의 호소는 역시 경찰의 임무에 못지않게 절실하게 된다.

 

결국 서로는 오직 그 시점에서만 당사자가 될 뿐인데,

게다가 시위대의 위력과 공권력이란 권력작용이 행해지는 일이라 더욱 더 결렬하게 맞설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이런 과정에서도

진압 훈련을 꾸준히 받으며 온갖 보호장구와 무기를 소지한 경찰의 부상은 공상처리가 된다.

하지만 뭉둥이 한 개만 둔 시위자들은 자신들의 비용으로 자신들의 부상을 모두 치료해야 한다.

 

 

결국 우리 같은 일반인들인 제 3 자의 시각에서는

 

정보와 자원을 소유한 정부의 집행기관인 경찰의 과잉진압과 시위대의 지나친 폭력행위들, 

그리고 그에 따른 양측의 마찰에 대한 차후의 강구책에 대한 대안 이왼

그런 공권력과 시위자들의 마찰 행위 그 자체만을 가지고 논의할 실익이 그다지 없는 것이다.

 

이런 점들에서는 결코 본래문제가 생긴 그 본질이 절대로 파악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오히려 왜곡과 변질만 될뿐이다.

 

 

단지 큰 실익이 있다면 해당 사회문제를 다시 재고찰하게 되는 계기를 부여하는 것이다.

 

아무리 강경진압 반대, 폭력시위 반대 등을 우리가 외쳐도

그런 문제들은 그때그때의 상황과 그 시점에서 직접 충돌하는 당사자들간의 감정이 더 크기 때문이다. 

물론 시위도 해당 정부 부처가 적극적으로 대화와 협상을 진실되게 시도한다면

그렇게 격렬한 시위로 비화될 가능성은 아주 적어진다는 것은 상식이기도 하다.

 

아마도, 그럼 지도부는 협상을 하고 시위대의 시위는 단지 어떤 단체 행사 수준이 될지도 모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