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조직의 엘리스.
-고맙다 새끼야!
내가 봐도 볼 것 없는 이력서를 꼼꼼히도 살펴보는 면접관.
이력서를 보던 면접관의 눈길이 슬그머니 나의 미니스커트 쪽으로 향한다.
벌써 몇 십분 째 저러고 있다. 썩을넘..
마음 같아선 면접관의 넥타이를 친절히 풀러주어서 얼굴에다 사정없이 채찍질을 가하고 싶었지만..마음과는 다르게 내 입가엔 썩은 미소만 맴돌 뿐 이였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 “음.” 하는 소리와 함께 그제서야 입을 여는 면접관이였다.
“이력서 잘 봤습니다.”
이건 정말 말이 되지 않는다.
어떻게 몇 장 되지도 않는 이력서 하나로 그 사람의 모든 걸 판단을 한 단 말인가??
..하는 생각을 해보지만...안다. 취업 못한 뇬의 추태라는 걸..-_-;
“여희씨. 학교는 전졸에다, 전공이 건축학과, 자격증은 하나도 없고..”
“저기..여희가 아니라 려희 인데요.”
“그러니까 여희씨. 맞잖아요? 여희씨?”
“여희가 아니라 려! 희! 인데요. ㅇ이 아니라 ㄹ요.”
“참나. 대충 대충 합시다. 여희나, 려희나, 춘희나..다 거기서 거기 아니요?
뭐 얼굴은 춘희쪽이 더 가깝구먼.”
휴우..이번엔 또 춘희인가?
할아버지께서 내 이름을 지어주시면서, “우리 손녀딸은 나중에 학교 가서도 이름 때문에 마음고생 하는 일은 없겠구먼. 허허허.“ 하고 웃으셨다는 데..나도 그럴 줄로만 알았더랬다.
하지만 내 친구뇬들은 이름과 맞지 않는 페이스를 가졌다는 증거로 내 이름을 다시 지어주겠다고 했다. 그러라고 했다.
그날 이후로 별명이 붙었다. 순희, 개희. 싸희. 떡희. 퍽희, 룬희.(축구선수 루니를 말하는 거랜다. -_-;;)
뭐 아무튼;;;이름에 얼굴까지 예뻤던 나는 어렸을 때부터 친구들의 시기를 한 몸에 받으며 자라왔다.
“어머나. 춘희라니..춘희라니?? 아저씨! 제 얼굴 어디를 봐서 춘희예요??”
“이 아줌마가 진짜..사람 피곤하게 계속 말꼬리를 물고 넘어지네.”
“헐...아, 아줌마?? 이봐요 아저씨! 지금 뭐라 그랬어요??
저 이제 스물일곱 밖에 안 먹었는데 아줌마라니요??”
“아줌마 같이 생겨서 아줌마라고 한 건데..뭐 듣기 싫으면 취소합시다.”
“...........”
“그리고 여기 이력서 증명사진. 정말 본인 맞아요? 실물이랑 캐릭터가 왜 이렇게 달라요?”
“이, 이...”
“이? 무슨 대답이 그래요? 이라니?”
“이, 이...이 시발롬아!!! 너 당장 넥타이 풀러!!!”
“켁..이 아줌마가 왜이래? 미쳤나.”
“그래 미쳤다. 어쩔래? 야! 니가 면접관이면 다야? 면접관이면 면접이나 쳐 보세요. 왜 남의 얼굴이랑 이름가지고 태클이야?? 그래. 나 이렇게 생겼다. 스물일곱에 한 번도 취직 못해봤다. 근데 니가 나한테 보태준 거 있냐? 니가 술 한번 사줘봤냐구.. 내가 요즘 취업 때문에 너무나 골머리가 아파요. 근데 니가 나에 대해 뭘 알길래 주둥아리 함부로 놀려?? 어? 니가 청년 실업을 알어? 대한민국에 안 되는 게 어딨긴 여기있지! 생전 입지도 않는 정장까지 입고 왔더니만..아침부터 확 깨네 그냥..”
라고 말하고 싶었지만...-_-
내 입술은 굳게 닫혀 있을 뿐 이였다.
손이 부들부들 떨려왔다. 이쯤 되면 조용히 사라져야 한다.
그게 이 회사를 위해서도 나 자신을 위해서도 좋은 일이다.
면접에서 떨어지는 날이면, 그날은 꼭 포장마차에서 마시는 소주가 생각이 난다.
그렇다. 오늘이 바로 그날이다. 왠지 술이 떡이 되도록 마셔대도 속이 이해해 줄 것 같은 날이다.
설령 택시 안에서 오바이트를 하고, 지하철에서 몇 번을 구르고, 길바닥에 쓰레기처럼 팽개쳐져도 상관없다.
이런 날은 마시는 거다. 마시고 죽는 거다.
“야 이뇬아. 그깟 면접 떨어질 수도 있지. 취업이 인생의 전부가 아니야!
어깨 축 쳐져 있지 말고 술이나 마시자. 자자 들이켜. 얼렁!”
지금 내 잔에 술을 따르는 저 친구는 고등학교 때부터 알고 지낸 미숙이라고,
내가 면접에서 떨어질 때마다 항상 똑같은 레파토리의 위로를 지껄이며 날 열받게 한다.
하지만 그보다 더 열 받는 건 저 기집은 한 달에 150씩이나 벌면서, 꼭 나한테 술을 얻어먹는다는 거다.
아참, 안주도 항상 제일 비싼 걸로 시킨다. 썩을뇬.
그래도 할 말 없다. 이렇게 힘들 때 성의 없는 위로라도 해주는 건 미숙이 뿐이기에.
“근데 너 이렇게 술 마셔도 돼? 내일도 면접 있다며?”
“어차피 떨어질텐데..됐어. 마시고 싶을 땐 그냥 마실래.”
“려희야 그래도..”
“됐어!”
“려희야.”
“됐다니까! 됐다구! 몇 번을 말해야....”
“아니 그게 아니라 나 오늘따라 소고기 전골이 땡기는데..”
“...........”
마음 같아선 저뇬 얼굴을 소고기 전골에 푹 파묻어 버리고 싶다..
“시켜.”
이렇게 속상할 때 술을 마시면 항상 생각나는 사람이 있다.
그 사람을 생각하면 항상 눈시울이 뜨거워졌고, 사무쳐 오는 그리움에 꼭 이 말 한마디를 내뱉곤 했다.
“씹새끼..”
술은커녕 소고기 전골만 쳐 먹어대던 미숙의 표정이 굳어진다.
내가 죽도록 술을 퍼마시고 난 뒤 우는 이유에 대해 미숙은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너 또 동식이 그새끼 생각 하는 거야?”
“미숙아..나 진짜 그새끼 찾아가서 콱 죽여 버릴까?”
“고만 좀 해라. 너 이제 다 정리했다며? 아무 미련도 없다며??”
“미련 없어. 정리도 다 했고..근데 모르겠어. 자꾸 생각나고 화가 나.”
“려희야. 난 가끔씩 너라는 애 정말 이해할 수가 없어.”
“내가 왜?”
“그게 그렇잖아.”
“뭐가 그런데?”
“아니, 니 계정이랑 아이템 다 등쳐먹고 떠난 그새끼가 뭐 좋다고 이러니??”
-_-;
“넌 아무것도 몰라!! 내가 차고 있던 그 무기 지존 아이템 이였단 말야! 계정까지 팔면 현금 80까지도 받을 수 있었는데...”
“..............”
“하여튼 그자식 잡히기만 해봐. 팔 다리를 다 부셔 놓을테니까.”
사실 게임 때문 이였으면 이렇게까지 분하고 화가 나진 않았을 거다.
내가 정말 참을 수 없었던 건 그자식은 나에게 있어...첫사랑 이였고, 첫 남자라는 사실 때문이였다.
첫사랑, 스물다섯에 찾아온 첫사랑..
몸 주고 마음 주고 내가 가진 전부를 줬었는데..왜 2년 동안 몰랐을까?
그자식에게 여자가 있었다는 사실을..나보다 세 살이나 더 어린 여자가 있었다는 사실을..
사람은 참 이상하다. 잊고 싶은 기억을 스스로 들춰내서는 시리도록 아파하는 이유는 왜 일까?
술을 얼마나 마셔댔는지 모르겠다. 테이블엔 빈 소주병들이 여기저기 굴러다녔고,
맞은편에 앉아있던 미숙인 아까부터 보이질 않았다.
정확히 지 남자친구와 전화통화를 끝낸 이후부터 보이질 않았다.
핸드백을 챙기곤 몸을 일으켰다.
앉아있을 땐 몰랐는데 몸이 휘청거리는 걸 보니 참 많이도 마셨나보다.
“8만 6천원 나왔습니다.”
“뭐라구요?”
“8만 6천원 나왔다구요.”
“에이 뻥?”
“아..이 아가씨가 정말..”
“8만 6천원이라니!! 아쒸. 내가 소고기 전골에 소주 몇 병 먹은 거뿐인데 그렇게 나올 리가 없잖아? 아쒸. 지금 나 취했다고 사기 때리는 거쥐?”
“참나. 몇 병이라니. 아까 친구 가고 나서 혼자서 10병 가까이 먹었잖아요.”
“............”
그랬나? 그랬나부다. 모르겠다. 정신이 하나도 없다. 당장 집에 들어가서 푹 쉬고 싶은 마음 뿐이다.
“아가씨. 나 지금 바쁘니까 얼른 계산해줘요.”
“아씨.. 지갑 꺼내고 있잖아요. 닦달 좀 하지마요.”
게슴츠레한 눈빛으로 지갑을 뒤적거리던 나는 문득 아주 심각한 문제가 생겼다는 걸 깨닫는다.
쉬파. 돈이..2만원 밖에 없다..-_-;;
순간 얼마나 놀랬는지 술이 다 깼다.
“저기요. 아저씨. 죄송한데 전화 한통만 할께요. ^^;”
갑자기 나긋해진 나의 목소리에 주인아저씨는 뭔가 수상쩍다는 표정을 짓는다.
난 핸드폰을 꺼내어 미숙에게 전화를 걸었다.
“띠이~ 띠이~ ” 통화음이 들려오고..
쒸파 이뇬아 제발 전화 좀 받아라. 나 저때따..ㅠ.ㅠ
“상대방이 전화를 받지 않으니..”
순간 털썩 주저앉고 싶어졌다.
그래. 이왕 이렇게 된 거...하는 수 없다.
그래도 난 여자잖아? 최대한 귀엽게 애교 있게 한 번만 봐달라고-_-; 부탁해보자.
“저겨~ 아저씨잉~ ”
“돈 없지?”
“눼..-_-;;”
이미 눈치를 깐 주인아저씨였다.
“나참. 오늘 하루 일진이 더럽더니 별 거지같은 일이 다 생기네..”
“............”
“지금 얼마 있어?”
“이, 이만원요. 아저씨. 제가 민증 맡기고 갈 테니까 돈은 내일 꼭 갖다 드릴께요.”
“됐어. 엊그제도 어떤 년이 술 처마시고 낼 갖다준댔는데 안 왔어.”
“....-_-;;”
“경찰에 신고하기도 귀찮으니까 여기 땅바닥에 무릎 꿇고 손들고 앉아있어.”
“헐......아저씨 농담이시죠?? 하하..아저씨 농담치고 참 센스있으시다.”
“어서 무릎 꿇고 손들랬다?”
포장마차 안에 있던 사람들의 시선이 모두 나에게로 향한다.
그리고 내 뒤에서 혼자 술 마시던 남자는 아까부터 계속 킥킥 거리며 웃고 있다.
아아..인생 27년 동안 살면서 이렇게 치욕스런 순간은 처음이다.
난 결국 고개를 푹 숙이고 말았다. 그리곤 긴 한숨을 내쉬었고, 바닥을 향해 천천히 무릎을 꿇으려던 그 찰나! 기적이 찾아왔다.
“저 아가씨가 내야 될 돈이 얼마라고 그랬죠?”
그랬다. 내 뒤에서 술 마시던 남자가 지갑을 들고 계산대 앞으로 온 것이다.
주인아저씨도 꽤 당황했는지 말을 더듬거렸다.
“파, 팔만 육천 원이요. 아저씨가 대신 내시게요?”
“아뇨. 그냥 얼마나 나왔길래 저러고 있나 궁금해서요. 제 꺼나 계산해주세요.”
뭐..? 얼마나 나왔길래 저러고 있나 궁금했다고??
저런 인간 말종 새끼, 주인 보다 더 잔인한 새끼!! 날 두 번 죽이다니..
하는 생각을 하는데..
“농담이구요. 저 아가씨거랑 같이 계산해주세요.”
“........아 네..”
그리곤 날 향해 씨익 웃으며 말을 건네는 남자.
“아가씨. 고맙죠?”
순간 무슨 이유에선지 모르지만 입술이 미세하게 떨려오기 시작하더니..
갑자기 눈물이 왈칵 쏟아져 내렸다.
서러웠다. 그 자리에서 그러고 있는 내 자신이 너무나 서러웠다.
날 보며 당황하는 주인아저씨, 남자, 그리고 가게 안의 손님들.
난 남자의 가슴팍을 주먹으로 치며 소리를 질렀다.
“그래!! 고맙다 새끼야!”
그 자리를 뛰쳐나왔다. 그리곤 한참을 뛰었다. 한참을...
-이상한 회사-
“이년아 일어나! 하루 종일 쳐 잘래?”
“저년 저거 저래도 안 일어나네?”
“취업도 안하고 매일 술 퍼마시고 잠이나 쳐 자고..도대체 언제쯤 철이 들런지..”
오늘도 어머니의 잔소리가 들려오는 걸 보니 난 죽지 않고 살았나보다.
“아씨. 자는 데 왜 깨우고 그래. 2시에 면접 볼려면 지금 자둬야 된단 말이야.”
“닥치고 일어나. 지금 오후 3시야.”
“아 진짜!!! 왜 안 깨웠어??”
“아휴 저년 저거 도대체 누가 데리고 갈 런지..”
서둘러 일어나 옷을 입으려는데, 밑에가 좀 시원하다?
이상하다 싶은 생각에 밑을 보니, 어라? 나 어제 분명히 흰색 팬티를 입고 있었는데...왜 까만색 팬티를 입고 있지??
“엄마! 혹시 나 잘 때 내 몸에 손댔어?”
“그래. 내가 손댔다.”
“아씨. 아무리 같은 가족끼리라도 프라이버시가 있는데..너무한 거 아냐?”
“야 이 빌어먹을 년아. 새벽에 술을 얼마나 쳐 먹었길래...니 팬티에 오줌쌌길래 내가 갈아입혔다!”
문득 하늘에 감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가 우리 어머니였기에 천만 다행이였다..-_-;
면접 시간에 늦었기에 화장도 하는 둥 마는 둥 대충 꾸미곤 재빨리 집을 나섰다.
지하철을 타고 면접을 봐야할 회사로 향하는 내내 새벽에 있었던 악몽들이 차츰씩 떠올랐다.
주인아저씨, 소고기 전골, 그리고 그 남자. 제대로 악몽이였다.
난 포장마차에서의 기억을 떨쳐버리려는 듯 고개를 휙휙 휘젓곤 지갑에서 수첩을 꺼내어 들었다.
도현건설? 그나마 다행이다. 그래도 대학에서의 전공이 건축업 쪽이니..이번엔 자그마한 기대를 가져본다.
회사 앞에 도착한 나는 담당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저기 죄송한데요. 오늘 2시에 면접 보기로 한 사람인데요. 지금 가도 괜찮나요?”
그러자 생각보다 거친 남자의 목소리가 전화상으로 들려왔다.
“어디요?”
“지, 지금 회사 앞인데요..”
“3층으로 올라오슈.”
그리곤 전화를 뚝 끊어버리는 남자.
이 회사, 왠지 느낌이 좋지 않다. 그러나 내가 찬 밥 더운 밥 가릴 처지도 아니고,
일단 올라가고 보자. 무조건 취업하는 게 현재 목표니까.
3층으로 올라가‘도현 건설‘ 이라고 적힌 문 앞에 섰다.
그리곤 쉼 호흡을 가다듬고는 문을 힘껏 열었다.
“뭐요?”
문을 열고 들어가자 커다란 덩치에 검은 정장을 입는 한 남자가 나에게 물었다.
머리는 짧은 스포츠형 머리였고, 인상은 심하게 더러웠다..-_-
그 남자의 험악한 인상에 겁을 먹었는지 차마 입이 떨어지질 않았다.
“아 뭐냐니까?!”
답답했는지 날 향해 윽박을 지르는 남자.
그 남자 뒤로는 회사 직원으로 보이는 듯한 남자 다섯 명 정도가 더 있었는데..
모두 검은 정장에 스포츠 머리였다.
서, 설마....저 사람들이 말로만 듣던...?
순간 나도 모르게 뒷걸음질 치며 입을 열었다.
“아, 아니요. 제가 잘못 찾아온 거 같아여..수고하세요.”
그러던 그때, 방안에서 한 남자가 나오더니 날 향해 말한다.
“잠깐. 좀 전에 면접 때문에 전화했던 아가씨 아니요?”
“그, 그런데요.”
“지금 사장님이 자리를 비우셨으니까 이 방으로 들어와요 아가씨.”
“...............”
“어허! 뭐해요? 빨랑 안들어오구??”
마음은 밖에 있는 엘레베이터로 향하는데, 발걸음은 자꾸 회사 안으로 향한다.
불안하다. 여긴 내가 생각하고 그리던 그런 회사가 아니다.
나 이제 어떻게 되는 걸까??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