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초 출판된 '원통한 남자'의 에피소드 중 하나입니다
다른 발췌를 보시려면 옆 메뉴의 창작마당 중 '이원영의 세상이야기' 혹은 www.210Love.com 을 참조하십시오
<episode : 이등병은 남 앞에서 울지 않는다>
군대에서 맞는 겨울은 사회에서 맞는 겨울과 비교하기 힘들 정도로 춥다.
특히, 계급이 이등병일 때의 겨울은...
뼈 속까지 시려 온다...
"이 씨발련들아!!!"
일직사관인 본부대 김중사가 아침점호부터 욕지거리를 내뱉는다.
"귓구멍에 좆대가리를 박았냐!! 씨발 개 쌍련들아!!"
그는 정확히 '련'자가 들리도록 발음을 강조했다. 욕 하는 게 '취미'이자 '스트레스
해소'인 그는, '련'이라는 발음이 단지 드라마틱하다는 이유 하나로 우릴 '쌍련, 개
련' 등으로 불렀다.
"5초안에 윗통을 안 벗는 씨발련들은 전투모 대신에 빤쓰를 쓰고 뛰게 해 주겠다!"
온도계가 영하 18도를 가리키는 상황에서 '알통구보'를 지시하는 김중사...
군악대의 말년 병장이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고 소리를 질렀다.
"오늘 날씨도 너무 추운데 알통구보는 하지 말지 말입니다!"
"장님(사단장님을 줄여 '장님'이라 부른다) 특별지시라서 어쩔 수 없어"
매년 겨울이 오면 텔레비젼에선 앞 다투어 '군인정신'등의 타이틀로 군인들의 알통
구보를 찍어 내보낸다. 단골로 나오는 우리 부대는 사단장님의 특별지시로, 날씨가
추우면 추울수록 기를 쓰고 알통구보를 했다.
"그래도 날씨가 너무 춥습니다. 말년에 얼어 죽겠습니다"
말년병장은 심하게 덜덜 떠는 목소리로 말하자, 김중사가 하이톤으로 대꾸했다.
"저 씨발련은 말년인데 왜 점호 나와서 지랄이야! 넌 내무반에서 까져 이련아!"
김중사의 말에 말년병장은 '에그 추워!'하며 내무반으로 뛰어 들어갔다. 말년의 항
의에 일말의 희망을 걸었던 고참들은 맥이 풀린 듯 천천히 윗통을 벗기 시작했다.
"우웃! 씨발!"
"존나게 춥잖아!!"
고참들이 느릿느릿 옷을 벗는 사이...
이미 5분 전부터 벗고 대기하던 우리 일,이등병들은 얼어붙기 일보직전이었다...
"선두!! 구보 시작해라!!"
윗통을 벗은 백 여명의 남자들이 함성 소리와 함께 사령부 정문쪽으로 뛰어 내려갔
다. 고참들은 덩치 큰 쫄따구들을 전면에 세워 '바람막이'로 이용했고, 덩치가 큰
나는 제일 앞에 서서 칼같이 찔러오는 바람을 가슴으로 막아야 했다. 거칠게 내뱉는
숨으로 인해 콧구멍은 고드름이 생길 정도로 얼어 붙었고, 눈썹과 가슴엔 서리가 내
려 앉았다. 숨 한번 내뱉을 때마다 가슴이 시려 내장에 통증이 느껴졌다.
구보가 끝난 후, 냉수마찰을 하기 위해 수건을 물에 적셔야 했다.
"꽉 짜서 가져 와!"
찬물을 손에 묻히기 싫어하는 건 누구나 마찬가지련만, 계급이 깡패라고 고참들은
자기 수건을 이등병들에게 적셔 올 것을 명했다.
"씨발 새끼들..."
정상근 이병은 물에 적신 수건을 짜면서 욕을 해댔다.
"지들만 춥나! 우리는 안 추워! 아무리 고참이래도 이딴 건 안 시켜야지!"
옆에서 정석현 이병이 한 마디 한다.
"할 수 없지 않습니까. 까라면 까야지 말입니다"
"하여튼 내가 고참만 되 봐라. 이 웬수는 따블로 갚아준다!"
그의 말을 듣자 가슴이 답답해졌다.
'받은만큼 돌려준다'는 심정은 이해 못 하는 바 아니나, 그렇게 하면 이런 악습은
결코 변하지 못할 것이다. 손해보는 생각이 들어도 우리가 고쳐야 나중에 들어올
후배, 나아가 우리 아들들이 힘들지 않을 것이다...
이등병의 겨울이 유난히 추운 이유는, 얼음물에 걸레를 빨아야 하기 때문이다.
"걸레 깨끗하게 빨아야 한다. 더러운 걸레로 침상 닦으면 악취가 심하게 난다"
침상을 맡은 김경록 상병이 걸레 10개를 주며 말했다.
걸레를 양동이에 담아 세면장으로 내려가는 내 마음은 착찹하다 못해 참담했다. 얼
마전부터 밤이 되면 손이 퉁퉁 부어 쓰라려 잠도 못 잤는데, 동상의 초기증상이 아
닌가 걱정되었다.
"쏴아!!!"
이를 악물고 걸레를 빨았다. 손이 마비되고, 나중엔 저려 왔지만 아무런 방법이 없
었다. 결국엔 해야 할 일이었다.
"쫘아악!!"
얼어서 감각도 없는 손아귀에 있는 힘껏 힘을 줘서 걸레를 짰다. 하나를 짠 뒤, 겨
드랑이에 손을 집어넣고 팔딱팔딱 뛴 후, 다시 하나를 짜는 행위를 반복했다.
간신히 걸레 10개를 빨아 김경록 상병에게 가져갔다.
"야 임마! 제대로 짜지 않아서 물이 뚝뚝 떨어지잖아!!"
그는 걸레 하나를 내무반 바닥에 내동댕이쳤다.
"이등병 새끼가 존나 빠져가지고 말야! 다시 빨아서 다시 짜 와!!"
"넷! 알겠습니다!!"
양동이를 들고 다시 세면장으로 뛰어갔다.
"쏴아!!!"
물을 틀었다. 물소리에 모든 것이 묻힐 수 있도록 세게 틀었다. 그리고 악에 받혀
소리를 질렀다.
"악!!!!!!!! 악!!! 악!!! 악!!!"
억울했다!!!
난 절대 게으름이나 농땡이를 칠려고 그런 게 아니다!!!
꽉 짠다고 했지만, 손이 얼어서 짜지 못했던 거였다!!!
"쫘아아아악!!!"
있는 힘껏 걸레를 짰다. 손은 이미 얼어붙어 감각이 없어진 지 오래였다. 아니, 이
젠 전기 같은 게 오는지 손이 마구 떨려 힘을 줄 수가 없었다. 그러나, 그러나 이를
악물고 있는 힘껏 짜야 했다.
확실하게 짜느라 시간이 오래 걸렸지만, 나름대로는 만족해 하며 다시 내무반으로
가져갔다.
"야 임마!"
"이병!! 이!! 원!! 영!!!"
"걸레를 짰으면 툭툭 털어서 펴야지! 짠 그대로 얼어붙어 펴지질 않잖아!!"
걸레는 마치 얼음처럼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짜는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려서, 그 동
안 얼어 붙었나 보다...
"다시 짜!"
"넷! 알겠습니다!"
그 때, 김세진 병장(12월부로 병장이 되었다)이 말했다.
"식당에 가서 뜨거운 물 좀 달라고 해서, 거기다 살짝 담궈서 짜 가지고 와"
"넷! 알겠습니다!"
한달음에 식당으로 뛰어 갔다.
"이병 이원영! 식당에 볼일이 있어 왔습니다"
취사병 짱이 방문을 열고 빼꼼 쳐다본다.
"왜?"
"뜨거운 물 조금만 얻으로 왔습니다!"
"뜨거운 물?"
"네 그렇습니다!"
"어떻허냐. 지금 뜨거운 물 하나도 없는데"
"하나도 없습니까?"
"그래, 설거지도 끝나서 전부 버렸지"
취사병 짱 옆으로 취사병 막내가 고개를 내민다.
"다음부턴 뜨거운 물 조금 남겨 놓을 테니까 그 때 와"
"그래... 고맙다..."
머슴도 부잣집에서 살아야 한다고...
그 순간만큼은 취사병 막내가 너무나 부러웠다...
"쏴아!!"
다시 찬물을 틀었다.
"그놈 참 시원하게도 쏟아지는군"
혼잣말로 중얼거린 나는, 검지 손가락을 쏟아지는 물줄기에 갖다 댔다.
"앗 뜨!"
처음 알았다. 차가운 물도 너무 차가우면 뜨겁게 느껴진다는 사실을...
"쏴아!!!"
물줄기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걸레를 바라보았다. 마지막으로, 내 손을 내려다보았
다.
"미안하다... 그러나 어쩔 수 없어..."
손에게 말했다. 그러나, 손은 겁이 났는지 시뻘겋게 퉁퉁 불어선 부들부들 떨고 있
었다.
"그렇게도 추웠냐... 그래... 너한테 너무 미안하구나... 그럼 가슴아... 니가 희
생해라..."
난 윗옷을 벗었다. 바람 속에 칼이라도 숨어 있는 듯 온 몸을 찔러댔다.
"이얏!!"
힘껏 기합소리를 지른 후, 걸레를 가슴에 품었다.
"녹아라!! 제발!!"
가슴은 마치 불에라도 댄 것처럼 뜨거워졌다. 이상했다. 왜 차가운 걸레를 품었는데
가슴은 불에 댄 것처럼 뜨거울까...
바람이 안 통하게 온 몸을 웅크리고 걸레를 품었다.
얼마를 그렇게 있었을까...
"너 뭐 하냐?"
퍼뜩 정신을 차려 고개를 드니, 조우식 상병이 날 쳐다보고 있었다.
"이병!! 이!! 원!! 영!!"
"뭐하냐니까?"
"걸레... 걸레를 품고 있었습니다!!"
조우식 상병은 날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걸레가 얼어서 녹이려고 그랬습니다!"
조우식 상병은 아무 말이 없었다. 그저, 날 하염없이 쳐다볼 뿐이었다.
"......"
뭐라 변명을 더 해 보려고 했지만, 마땅히 떠오르는 말이 없었다. 그냥, 뻘쭘하게
서 있어야 했다.
"몇 개 더 녹여야 되냐?"
"7개 남았습니다!!"
조우식 상병은 양동이를 집어 들었다.
"쏴!!!!"
물을 틀고는 걸레를 빨기 시작했다. 당황한 나는 걸레를 뺏으려 했지만, 조우식 상
병은 아랑곳없이 걸레를 빨았다.
"빨리 옷이나 입어 임마!"
뻘쭘해진 나는 한쪽 구석에서 등을 돌리고 옷을 입기 시작했다. 마음이 급해서 그런
지 옷도 제대로 입기 힘들었다. 그러나, 빨리 옷을 입고 조우식 상병에게서 걸레를
뺏어야 했다.
그때였다.
"씨발!!!!!!"
조우식 상병이 걸레를 빨다 말고 신음소리를 내뱉듯 소리쳤다. 그리곤, 주먹으로 벽
을 내리쳤다.
조우식 상병...
울고 있었다...
옆 모습만 바라보였을 뿐이련만...
눈물이 흘러 내리는 걸 볼 수 있었다...
"날씨 존나게 추우니까 눈물까지 나오네"
어색한 듯 웃으며 내게 걸레를 건네는 조우식 상병...
양동이에 걸레를 받아 넣으면서 난 고개를 떨궜다...
"빨리 올라가라..."
조우식 병장이 몸을 휙 돌렸다.
난 양동이를 내려놓고 모자를 고쳐 썼다.
그리고는, 이전에도 이후에도 하지 않을, 오로지 행사만을 위해 준비된 경례를 그에
게 하였다.
"백골!! 수고하셨습니다!!"
조우식 상병이 미처 다시 등을 돌리기 전에, 난 양동이를 들고 힘껏 내무반으로 뛰
어갔다.
그리고...
불과 20초밖에 안 걸리는 그 시간 동안...
온 몸에서 짜낼 수 있는 모든 것을 짜 내어 울음을 토해 냈다...
20초 내로 끝내야 했기에...
그 이상은 내게 울 시간조차 주어지지 않았기에...
내무반 앞에 도착한 후 걸레로 얼굴을 훔쳤다.
그리고, 서러운 표정도, 슬픈 표정도 없이...
언제나 그러했듯... 무표정하게 내무반에 들어섰다...
작가 홈페이지 : www.210Love.com